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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絆)




***



블라디카님 요청, 킹갓슈퍼그레이트 달달한 타키미츠 연애물.



...완성도는 보장 못함미다. 쓰다보니 문체가 산으로 가는 바람에;;




역시 해피엔딩 지향.




***




항상 그렇다.


글이란 것은 쓰기 시작할 때는 용기만 있으면 되지만,


마무리할때는 용기와 지혜와 끈기가 동시에 필요하다.




"미츠하...씨...오늘...으아, 포기다 포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쓰다 만 글을 벅벅 지울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내가 쓴 글을 <편지> 랍시고 그녀 앞에 내밀 자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한 순간, 보자마자 반한 상대한테 이런 허섭스레기를 내밀 수는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바로 뒤의 침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편지라니...따지고 보면 내 센스 자체가 구식인건가.


...좋아. 그럼 좀 더 짧은 글이면...




벌떡 일어나 주머니를 뒤져 아이폰을 꺼냈다.


몇 번의 터치로 라인(LINE)에 들어갔다.


그녀와의 대화창은 텅 비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와는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색 배경의 텅 빈 대화창은 나에게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전혀 쓸 수 없다.




아이폰을 아무렇게나 침대에 집어던지고 다시 드러누웠다.




아아, 내일 만나자고 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럴거면 지금까지 고백을 다 차면서 <그 누군가> 를 기다린 의미가 없다.


차라리 그걸 다 받아주고 능숙한 경험을 얻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다가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아침에 계단에서 나는 잠깐 미쳤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부끄러운 말을 잘도...


뭐 그 덕분에 어찌저찌 번호도 교환하고 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의 내 마음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귀를 꿰뚫는 알림음. 라인 알림음.




나는 퍼뜩 일어나 내용을 확인했다. 설마, 설마, 설마.




[미야미즈 미츠하입니다.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




입꼬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붙잡았다.




***




...이게 아닌데.




괜시리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나는 지금 눈앞에 <그녀>, 미야미즈 미츠하 씨를 두고 있다.


꽤 분위기 있는 카페, 커플석에 마주보고 앉은 우리들은 일단 겉으로만 보면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올 터였다...그럴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전혀 진행되질 않는 것이다.




처음 만나 즐겁게 인사를 나눈 것 까진 좋았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한 것 까지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렇지만 정확히 거기서 끝, 둘이 만난 지 약 3분만에 이야기거리가 떨어진 것이었다.




"저기...어제는..."


"앗, 네에..."


"그, 저어, 전철에서...그...보았는데..."


"네에......"




제기랄. 제길. 제길. 제길!


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정말로 이래도 되는거냐.


평소에 잘 돌아가던 입술은 오늘따라 왜이리 멍청하게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다.




놓치고 싶지 않은데...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데.


알고 있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단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만큼 내가 지금 그녀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저어, 잠깐 화장실 좀..."


"아, 네..."




볼을 아주 약간 붉히며,


그리고 그녀는 떠나간다.




아니, 화장실에 잠깐 갔다 온다고 하는 거잖아.


어디 아주 멀리 가는 게 아니잖아...그렇지? 그런 거잖아.




사고방식이 묘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그녀의 일어난 뒷모습, 그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다.


언제 봤다고,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다고.


이제 딱 두 번째 만나는 것인데,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무슨 의존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마음이 죄였다.




나 진짜 왜 이러는 거지.


타키, 타치바나 타키, 너 오늘 진짜 상태 이상하다?




"저기, 죄송합니..."


"아뇨! 아뇨...아앗. 죄송합니다...큰 목소리로..."


"...괜찮아요. 후훗."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멍청하게 큰 소리를 내질러 버렸다.


그렇지만 덕분에 어색했던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고, 꼬였던 혀가 약간이나마 풀린 게 느껴졌다.




"헤에...XX구에 사시는군요."


"네에...병원이랑 가까우니까요."


"그러고보니 간호사 일을 하신다고..."


"맞아요. 타치바나씨는 직장이 어떻게..."


"전 건설업체에서..."


"제 친구도..."




한 번 말이 트이자 그럭저럭 이야기가 잘 흘러나갔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를 쳐다본다.


사실 부끄럽기 때문에 빤히 눈을 맞추거나 하는 일은 못하고,


단지 일정한 주기를 두고 그녀 얼굴 2초, 주변 1초 하는 식으로 왔다갔다했다.




반짝였다.


단순히 밝은 조명을 받아서 반짝인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피부가 보기 드물게 새하얀 것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넘쳤긴 했지만, 그것도 이유는 못 되었다.


그녀의 앙증맞은 입술이 그리는 곡선이 귀여웠지만, 역시 그것도 이유는 아니었다.




나를 두근거리게 한 것은 그녀의 존재였다.


내 앞에 그녀가 있다.


때로는 부드럽고, 그렇지만 때로는 강인했다.


하지만 쉽게 상처받고,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분명히 그녀를 만나는 것은 오늘로서 두 번째지만, 나는 어쩐지 알 수 있었다.




반짝이는 것은 그녀의 영혼이었다.




사람에게 정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정답은 <그 사람의 모든 것> 이다.




그녀의 눈길이 훑고 지나가는 방향,


발그레하게 분홍색으로 생기있는 두 뺨,


난처한 듯 머리칼을 매만지는 잘 빠진 손가락,


귓가에 기분좋게 와닿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그 모든 것들.




그 하나하나가 그녀의 영혼을 이루었고,


그 영혼은 나를 사로잡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작년엔...어...으...타치바나...씨?"


"...에...아아, 앗! 아니, 그게..."


"우으..."




어? 지금 어떤 상황이지.


정말로 잠깐,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녀가 말하는 사이 내가 멍청하게도 말을 잃고 그녀를 빤히 쳐다본 것까진 기억이 낫다.


그래서 그녀가 이야기하다 나를 쳐다보았고...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눈동자는, 내 눈동자 답지 않게 반짝였다.




누가 그랬지, 눈동자는 영혼의 창이라던가.


이토록 반짝이는 것을 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보면,


이토록 자석같이 나를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말은 정답인 것 같았다.




그녀도 내 눈길을 피하질 않는다.


왜 그럴까? 그녀는 내 눈동자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사실은 그저 그랬으면 하는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내 영혼을 보았을까?


그녀에게 나는 반짝이고 있었을까?




그녀도 내가 지금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꼈을까?




 -띠리링♪




"앗! 아아...죄송해요, 잠시만요..."


"윽? 으엇, 네..."




눈맞춤의 시간을 깬 것은 그녀의 벨소리, 무거운 현실이 부르는 소리였다.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달아올랐던 뇌를 가라앉히고 있자니 추가 타격이 들어왔다.




"저어...정말 죄송하지만...갑자기 응급환자가 생겨서..."


"아...네에..."




아까보다도 조금 더 붉게 달아오른 뺨을 이리저리 일그러트리며 - 


그러니까 잔뜩 난처한 모습으로, 그녀는 먼저 가봐야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은 그녀도 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딱히 근거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황급히 핸드백을 챙기며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


그 모습이 왠지 보기 싫어 나도모르게 따라 일어났다.




카운터로 뛰어가 먼저 계산을 한 후,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그렇지만 손잡이를 잡는 순간, 나는 문을 열어주고 싶지 않은 충동이 들었다.




왜 그러는 건데? 민폐잖아. 빨리 놔.


니가 뭘 알아. ...뭘 아냐니?


붙잡아. ...뭐라고?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정말로 이번엔, 붙잡아.


후회하기 전에, 붙잡아...




"...저기, 타치바나씨?"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뭔지모를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녀의 시원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이상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어딘가 아픈게 분명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 말을 꼭 해야 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불분명한 자음과 모음의 집합일 뿐이었다.




"....있을까요?"


"...네?"


"다시...만날 수 있을까요?"




있는대로 쥐어짜낸 목소리는 정말 형편없었다.


게다가 내용도 정말 바보같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하,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도 아니고...




하지만 나의 그런 한심한 말을 들은 그녀는, 빙긋 웃더니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것이 열쇠가 되어 손잡이를 움켜쥔 내 손이 움직였고, 카페의 문이 차임벨을 울리며 열렸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싫어, 나는 그저 고개를 들 뿐이었다.




...정말 바보같은 하루였다.




***




어둑어둑한, 그리고 익숙한 천장.


눈을 떠 보니 내 방이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맥주 캔이 엎어져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어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집에 돌아와서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엉엉 울면서 들이켰다, 라는 상황이었다.


나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을 퍼마시고 잠드는 버릇 같은 건 없었다.


변화의 원인을 따져보면, 역시 한 가지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미야미즈 미츠하...3살 연상의 여성.




그녀를 만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이틀은 지난 이 년보다 길게 느껴졌다.




우연히 전철문의 유리창을 통해 그녀를 보고, 만나러 뛰어갔던 일.


속으로 <너 왜이러냐> 고 미친듯이 자문하면서도, 그녀가 어디로 향했을 지 생각했던 일.


마침내 어느 골목길의 계단에서 만나, 쭈볏쭈볏하며 지나쳤던 일.


완전히 멀어지려 할 때, 참지 못하고 뒤로 돌아 그녀를 붙잡았던 일.




그것 뿐인가?


어줍잖은 글솜씨로 편지를 써보겠답시고 낑낑댔던 일,


그녀에게 먼저 라인 메세지를 받아 침대 위를 방방 뛰었던 일, 


다음날 만난 카페에서 낯부끄러울 정도로 서로 쳐다봤던 일...




그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정말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길어봐야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기억은 내 의식의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보고싶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따뜻한 영혼을, 나를 끌어당기는 그 반짝거리는 마력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 띵동♪




그러고보니 조금 전부터 계속 초인종이 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잠에서 깬 원인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폰 화면을 보니 새벽 3시였다. 이럴 때 찾아올 사람은 보통 없는데...


어쨌든 그 초인종에 응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것이므로, 슬리퍼에 대충 발을 끼워놓고 현관으로 향했다.




"예, 나가요..."





문을 열자 새벽의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공해가 가득한 도쿄의 공기답게 차가운 공기는 그러면서도 약간은 매웠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 눈높이의 약간 아래, 부풀어오른 진갈색 머리카락이 있었다.


조금 더 아래엔 흰 피부와 반짝이는 눈동자와 머리를 묶은 붉은 끈이 있었다.


조금 더 아래엔 추위에 붉게 달아오른 코와 뺨과 입술이 있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다만 아래쪽을 쳐다볼 뿐인 시선이 있었다.




"...근무가 끝나고...집에 가려는데..."


"......"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그게...나도...모르게..."


"......"


"모르지만...어쩌다보니...주소가...떠올라서..."


"......"


"망설였는데...없을까봐, 망설였는데..."




그녀의 시원한 목소리는 점점 습기에 물들어 달아오르고 있었다.


정확했던 발음은 뭉개지고, 일정했던 발성은 흔들렸다.


일정한 템포로 나의 귀를 매만지던 목소리가 사라질락 말락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안을 뿐이었다.




차가운, 그러나 막상 만져보면 뜨겁게 흐르는 붉은 피, 영혼의 흐름이 느껴지는 피부.


내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살짝 갖다댄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눈가 언저리가 살짝 빛났다 - 그렇게 느꼈다.


그녀의 손이 내 등허리에 와닿았다. 


그러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입술이 귀에 가까웠다. 그녀의 작은 코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날숨이 너무나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여태까지 정말 추웠어요...정말."


"......"


"...그렇지만 이젠 따뜻해요..."


"......"


"계속,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반짝여서...


그녀의 손길이 너무나 반짝여서.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