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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적은 것 같고 묻혀서 그냥 좀 더 추가하고 1편으로 만듬. 액자식 구성은 처음인데 잘 써졌을지 모르겠다.


미츠하가 첫사랑인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인어공주에서 모티브를 얻은거라 화자가 묘하게 여성스러울듯. 남자니깐 그러려니 하고 봐라.


아마 이거 말고도 몇개 더 소설이랑 단편을 써서 하나로 묶을 것 같은데 제목을 뭘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사랑하며 깨달은 것들'로 정했는데 좀 더 좋은 제목 있으면 추천좀.


+ 누가 고닉을 파던지 반고닉을 하라고 해서 진짜 반고닉으로 함.




너의 이름은 : 동경외전

비가 온 뒤에 땅은 굳는다

봄과 여름의 중간

비가 온 뒤의 일상


동경인어

옴니버스 단편

꿈 속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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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인어공주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사람들은 인어공주의 비극을 어떻게든 해피엔딩으로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책 속의 인물이라도 불행한 건 싫으니깐. 하지만 인어공주는 왕자님과는 이어지지 못했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랍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창문을 타고 서점으로 들어옵니다. 바깥에는 벌써 왕벚나무 이파리가 햇빛을 머금어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5월 말의 오전은 한산해서 서점에도 거리에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거리에는 가볍지만 화사하게 입은 사람들이 걸어갑니다. 저 가족은 어디 유원지에라도 가는걸까요? 차 없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걸 보면 그리 풍족한 집안은 아닌 것 같지만 얼굴에 웃음꽃을 함박스럽게 피워내는 걸 보면 행복하게 알콩달콩 사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저에게도 가족이 생긴다면 저런 기분이 들까요?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저는 이내 저는 책을 하나 사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창 밖에서 눈을 거두고 책장으로 눈을 돌립니다. 큰 서점이긴 하지만 제 눈 앞에는 학습지만이 가득합니다. 아마 학습지가 제일 잘 팔리니 그렇겠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자주 오는 이 서점이라면 학습지보다는 동화를 제일 앞에 세워놓았으면 합니다. 
 
 저는 계속 제가 찾으려는 책을 찾아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카운터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점원을 불러봅니다. 
 
 "저기요, 죄송한데 혹시 '인어 공주 완역본'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까요?" 
 
 "아, 그건 동화 코너가 아니라 소설 코너에 있을 거에요." 
 
 점원은 카운터에서 나와서 소설 코너를 찾아봅니다. 저도 옆으로 가서 같이 '인어 공주 완역본'이 어디있는지 찾아봅니다. 한 몇 초 뒤에 점원이 한 책을 찾아냅니다. 
 
 "찾았네요. 여기 있어요."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Den lille havfrue. 일본어 완역본.』 
 
 "덴마크어로는 작은 인어라는 뜻이에요. 의역하자면 인어 공주. 그냥 인어 공주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원어로 적는지 모르겠다니깐요." 
 
 점원은 불평하듯 말했습니다. 
 
 "그나저나 의외네요. 완역본을 사가시는 분은 별로 없는데. 대부분은 축약본을 사가시거든요. 어린 아이들 읽히려고 그러나봐요. 대부분 해피 엔딩 버전을 많이 사가시는데, 물거품이 되는 엔딩 버전을 사가시는 분도 있어요." 
 
 점원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인어 공주의 결말은 두개 모두 아니래요. 인어 공주는 비극도, 희극도 아닌 성장에 대한 이야기래요. 안데르센이 실연을 겪고 성장하면서 쓴 동화지만 그 실연이 이 걸작을 만든거죠. 앗, 죄송해요. 시간을 좀 많이 뺏었네요." 
 
 참 수다쟁이 점원입니다. 아마 핸드폰만 보다가 지루해진 모양이겠죠. 학습지를 사러 오는 아이들이 오는 것 빼고는, 오전의 서점은 정말 한가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금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터라 바쁘지 않기 때문에 이 수다쟁이 점원과 어울려줄까 합니다. 
 
 "아니에요. 누굴 기다리는 겸해서 책을 찾고 있었으니깐요. 그나저나 책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빈말이 아닙니다. 정말 책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이 책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니깐요. 혹시 문학쪽 전공을 하는 사람일까요?  
 
 "에이, 그렇게 많이 아는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안데르센이라서 좀 알고 있는 거에요. 아,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책도 같이 읽어보세요."  
 
 점원은 카운터 서랍에서 빛바랜 책 하나를 들고 옵니다. 독일 동화라고 합니다. 이름은 『운디네』. 원 저작자는 푸케입니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책입니다. 아마 빛이 바랜 걸 보니 별로 아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일테지요. 
 
 "이 책은 운디네라는 책이에요.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지을때 많이 참고했다고 하는데, 파는 게 아니니깐 저기 소파에 앉으셔서 읽으셔도 돼요. 어차피 손님도 없고, 손님도 누굴 기다리시는 중이시니깐. 파는게 아니라 그냥 제가 읽고싶어서 가져온 책이라 편하게 읽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저는 가볍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책장과는 좀 떨어져있는 소파로 가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일단 책을 먼저 계산해야겠지만, 점원의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인어 공주를 읽으라는 말에 일단 계산을 하기 전에 이 책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양장 표지를 보니 고풍스러운 일러스트 위에 중세 필기체로 Undine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아마 운디네라는 뜻이겠죠. 아래에는 어느 여인이 분수대 위에 서서 슬픈 눈으로 옆을 바라보는 그림이 그려져있습니다. 저 여인은 무슨 슬픈 일이 있었기에 그리도 슬픈 눈으로 옆을 쳐다보는 것일까요. 옛날의 저를 보는듯해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양장 표지를 넘기고 책으로 빠져들어갑니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저는 제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흑발에 붉은색 실로 반묶음 머리를 한 긴 생머리의 여인이 생각납니다.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야미즈 미츠하 선배. 제가 대학 시절 좋아했던 선배의 이름입니다. 
 
 그 때의 추억이 다시 머리 속에서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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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 되어 동경으로 왔습니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전력회사 직원용 아파트밖에 없던 고향 섬과는 달리 마치 하늘을 받치는 듯 쭉쭉 뻗어있는 마천루를 보고 있으면 압도되는 기분까지 듭니다. 동경대학 캠퍼스는 마치 우리 마을만 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홀로 키우셨습니다. 비록 아버지께선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와 언제나 함께 있고 친척들이 저를 잘 돌봐준 덕분에 힘들고 괴롭지는 않습니다. 저를 정말로 불행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저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편모가정이라 불쌍하다는 아주머니들의 잡담. 혹시 어머니만 있어 불편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물음. 그리고 자기 딴에는 배려해준다면서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 상처가 남은 탓인지 저는 아직도 마음속이 공허하고 비어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공허감을 채우고 싶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첫 강의날입니다. 모두 첫 수업이라 그런지 전공책과 노트를 들고 옵니다. 가벼운 노트북을 준비해온 친구도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해 온 것 치고는 모두가 집중하지 않습니다. 옆의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졸거나 하고 있습니다. 분명 선배들 말로는 첫 수업이라 10분만에 끝난다고 했는데 이 교수님은 그런 교수님이 아닌 것 같네요. 그럼에도 아랑곳않고 노트에 뭘 적고 있는 몇명은 아마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겠지요. 
 
 저 역시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옆에서는 대학 와서 처음 사귄 친구들이 작은 소리로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보나마나 연애 이야기거나 어제 본 유럽 축구 이야기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주제에 별 관심이 없어서 끼어들지 않고 잠자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흑발에 검정 롱헤어. 붉은색 실에 반쯤 묶여있는 머리는 마치 가을의 높은 밤하늘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노란색 가디건에 흰색 티는 마치 민들레 꽃 위에 하얀 솜털이 자란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저 사람이 저를 봐 준다면 하는 생각이 들 때즈음, 그녀가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따스해보이는 호박색 눈동자. 건강하게 하얀 피부. 연분홍색의 입술. 자연스러운 화장이 인상적입니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가 이내 그녀가 눈을 돌립니다. 저는 아직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제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가 바로 그녀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수업이 끝났습니다. 저를 아까부터 힐끗힐끗 보고 있던 친구가 저에게 갑자기 실없는 말을 던집니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냐? 여자냐 예뻐?"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첫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