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이 없는 나무」 시리즈
* 본편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갤럼은 영화를 먼저 관람해 주세요.
* 설정 변경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1. 후타바가 죽지 않고 계속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직업, 인간관계 등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2. 후타바가 죽지 않으니 토시키 또한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3. 미츠하와 바뀌는 타키는, 미래의 타키가 아닙니다. 즉 2013년의 중2 타키와 17세 미츠하가 서로 몸이 바뀝니다.
4. 어느 정도는 본편을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바뀌었으니 만큼 변경점이 많을 예정입니다. IF가 싫으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 갤럼분께서 고맙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편 링크는 이쪽을 참조해 주세요.
------------------------------------------------
하굣길, 타키는 며칠 전 핸드폰에 남겨진 일기의 한 부분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일기를 남긴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참 오지랖도 넓어요. 나 몰래 친구도 하나 만들어 주고, 나 몰래 아버지한테 엉겨붙고. 남자친구(?)도 하나 만들어주려고 들질 않나. 참으로 골치 아픈 누나야. 일련의 생각 끝에 타키는 간단하게 결론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나중에 한 소리 해야겠어.
타키는 휴대폰을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일기의 한 부분이 자꾸 눈에 밟혀 그러지 못했다.
‘나라의 고민을 짊어지는 내가 너 정도 고민 추가돼 봤자 티도 안 난다. 임마.’
본인의 몸을 하고 있던 미츠하에게 아버지가 말했다는 그 말. 참으로 아버지다운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마냥 속 편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말. 아버지한테 정말 그래도 될까. 아니야. 그래도 그건 아니야.
잊어버리려 했지만 그 갈등은 체한 음식처럼 명치 끄트머리에 걸린 채 며칠을 타키의 마음속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
8화. 최고의 상담사 (1)
-----------------------------------------------
“나 왔어.”
수업이 끝나고, 신타로부터 셋이서 좀 놀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타키는 일이 있다며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타키가 문을 열고 인사를 하던 그 때, 마침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타치바나 씨는 아들의 빠른 복귀를 마냥 환영하지는 못했다.
귀가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프로농구 선수가 되길 원하던 꿈나무였다. 당연히 저녁까지 연습이나 체력 트레이닝을 하다 오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고 가끔 그러지 않는 날에는 츠카사인지 하는 친구놈한테 끌려간다며 어딘가 쏘다니곤 했었다.
그래서 타치바나 씨는 외로이 맞이하는 저녁에도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은 평범한 가정을 가진 가장처럼 토끼같은 처자식들의 환영도 받아보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래도 아무 의미 없는 독수공방은 아니었기에 유감은 없었다. 어쨌거나 이미 익숙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자꾸만 집에 일찍 들어온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맞이하는 외롭지 않은 저녁에 몇 번 기뻐하곤 했다. 무슨 일로 일찍 들어온 거냐고 아들에게 묻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들은 그저 감독님에게 휴식을 명받았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의심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 다음날, 왠지 귀엽게 싱글거리며 아침을 맞이하던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차마 아들에게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뒤로도 그의 아들은, 꼭 이틀 걸러 한 번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몰라도 매번 웃으며 집에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타치바나 씨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분명 아들에겐 속에 감춘 문제가 있다고.
웃는 얼굴로 들어오는, 왠지 말씨도 공손해지고 행동거지는 약간 여성스러워지는 귀여운 아들의 모습은 절대로 이틀 연속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 다음 날은 무조건 원래대로의 아들. 이 패턴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잠깐 텐션이 높아지는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바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타치바나 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의 타키는 자기 마음을 그리 능숙하게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니까 그 정도는 알았다. 그랬기에 이상한 아들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그토록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그러니까 원래의 아들일 때면 항상 얼굴 한구석에 정체모를 근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결국 눈치채고야 말았다.
아버지에게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자 타치바나 씨는 마음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워짐을 느꼈다. 몇 번은 자신처럼 홀아비 신세로 아들을 키우는 직장 동료들에게 조언도 구해 봤지만, 일단은 최대한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 보라는 선배들의 일관된 조언이 있었고, 타치바나 씨 또한 그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오냐. 너 요즘 들어 일찍 들어오네?”
그래서 타치바나 씨는 앞치마 차림으로 부엌에 서서, 돌아온 아들에게 평소처럼 고개만 돌려 인사의 한 마디를 건넸다. 타키는 ‘일찍 들어온다’는 대목에서 약간 쭈뼛댔지만, 어쨌든 대답은 했다.
“응. 좀.”
“얼마 전까지 농구다 츠카사다 뭐다 하면서 잘도 늦게 들어오더니. 드디어 가정적인 사나이로 변신이냐. 이 아빠도 널 기특하게 생각한다.”
기특하게 생각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타키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변화를 진짜로 기쁘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는 것을. 아마 아버지도 좋은 일로 귀가시간이 빨라진 건 아님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타키는 드디어 확실히 결심할 수 있었다. 타키의 얼굴에 결심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있지 아빠.”
“오, 그래.”
“나, 농구 그만두려고 해.”
그릇을 닦던 타치바나 씨의 손이 멈췄다.
농구를 그만 둔다. 외골수 타키에게 있어 그 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큰 일이 있을 거라곤 짐작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큰 일이였구나. 너무 큰 충격에 현기증마저 엄습하려는 것을 간신히 단속한 타치바나 씨는 고무장갑을 순식간에 벗어다 구석에 내팽개치고는, 의자에 앉아 식탁을 두드리며 말했다.
“타키. 앉아라.”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약간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 하지만 타키는 얌전히 앉으라는 대로 앉아서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했다. 타치바나 씨도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부자의 눈이 마주친다.
“며칠 전부터 고민이 있다는 건 알았다. 그게 이거였냐?”
“응..”
“너 임마, 이런 큰 일을 이 아빠랑 상의도 없이 묻으려 했었냐…”
이 녀석, 정말… 타치바나 씨의 마음 속에서는 이제 분노마저 스멀스멀 기어올라올 지경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못 믿을 모습만 보여 왔다는 건가. 나름대로는 그래도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속 고민 하나 털어놓지 못할 정도밖에 안 된다니.
타치바나 씨는 이마 가운데를 손으로 짚으며 탄식했다.
“이 아빠가 좀 못 미더울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큰일을 가슴에 묻어두고 말을 못할 정도로 나를 못 믿었다니. 너, 조금은 실망이다.”
나를 못 믿었다. 아버지가 내뱉은 회한의 한마디에 타키의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건 아니다. 아버지의 오해는 막아야 했다. 내가 그동안 그걸 숨겨두고 있던 건 그런 썩어빠진 이유가 아냐.
타키는 황급히 외쳤다.
“그, 그건 아냐!”
“그럼 왜 말을 안했는데?”
여전히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박히는 아버지의 한마디.
타키는 대답하려 했지만, 타키의 마음이 대답을 내놓기를 거부했다. 있지도 않은 대답을 자꾸 요구하지 말라는 마음의 소리. 그래서 타키는 우물쭈물하며 판에 박힌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빠. 안 그래도 일도 많고, 나 때문에 많이 힘든 것 같아서…”
손가락을 꼬물대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짜내는 아들의 모습. 처음에는 진심으로 괘씸했지만, 행여나 아버지가 더 기분이 나쁠까봐 전전긍긍하는 아들의 모습에 타치바나 씨는 약간이나마 응어리가 풀림을 느꼈다.
“너 하나 키우는 정도로 힘들어 죽을 거 같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안 키우고 니 엄마한테 맡겼어. 임마.”
한마디 일침과 함께 타치바나 씨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라미 모양으로 만들어 타키의 이마에 가져가선, 튕겼다. 딱!
“아얏!”
가볍게 튕긴 딱밤이 꽤나 아팠는지 타키의 몸이 약간 튀어올랐다. 이마 한가운데에 뻘건 손가락 자국을 새긴 아들의 얼굴을 천천히 감상하며 타치바나 씨는 쐐기를 박았다.
“아빨 함부로 얕보지 마라. 내 비록 아내는 제대로 못 챙겨서 떠나보냈어도. 내 아들만은 똑바로 챙겨주기로 다짐한 몸이니까 말이다. 알았냐?”
할 말이 없었던 타키는 아직도 얼얼한 이마를 감싸쥐며 아버지에게 사과했다.
“알았어. 미안.”
“어차피 넌 평소에도 속 좀 썩여 임마. 맨날 수틀리면 싸우질 않나.”
그럼 그럼, 이 민폐 아들놈아. 너 은근히 키우기 힘든 거 알고 있냐. 짜식이 말야. 아버지 걱정이나 시키고.
타키는 들어오는 연속 공격에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되어 간신히 더듬댔다.
“그. 그건…”
따끔한 공격은 여기까지로 할까. 타치바나 씨는 숨을 살짝 내쉬고, 본론으로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뭐 아무튼, 니 멋대로 아빠한테 부담이 되니 뭐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괜히 니 속만 문드러지잖냐. 내가 힘든지 안 힘든지는 내 스스로 판단할 테니 너는 그냥 나한테 말만 하면 돼. 알았어?”
“응.”
생각보다 좀 따끔하게 혼이 났지만, 타키는 오히려 명치에 걸려 있던 묵은 체증이 조금은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타치바나 씨는 그런 아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냐? 어디 한 번 말해 보거라.”
-9화. 최고의 상담사 (2) 에서 계속
-----------------------------------------------------
이전에 8화는 이미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독자분들의 평가를 보고 나니 글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지우고 대대적으로 보강해서 다시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거죠. 분량이 상당히 많이 증가해서, 더 이상 한번에 올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주로 타키의 아버지 타치바나 씨의 심리묘사를 상당히 보강했습니다만. 제대로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사실은 원래 제 스타일대로 하면 타키의 1인칭 시점이 좀 더 어울리는 서술이었습니다만. 3인칭 시점을 제대로 그릴 수 있도록 연습을 해 보겠다고 한 게 결과가 처참하게 나와서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그래도 독자분들의 평가가 있어 글을 조금이나마 수정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음에 기쁩니다. 부디 앞으로도 계속 평가해 주세요.
다음 화는 바로 올라옵니다.
- 좋은 평가든, 따끔한 비판이든 한줄 평은 더 좋은 글을 위한 원동력입니다. 아끼지 말고 마음껏 비평해 주세요!
--------------------------------------------------------------
전편 링크 및 제가 쓴 다른 글을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