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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은.



영화, 소설의 뒷내용.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만난 두 사람에게 생기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20 - 고요함 1 (5,505)

21 - 고요함 2 (4,562)

22 - 점화 1 (5,086)

23 - 점화 2 (9,342)  <<  현재






















"그러니깐 이 녀석이 미츠하의 남자친구시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혹여나, 기적이 일어나서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시간은 멈춰있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시간이란 건 굉장히 야박한 녀석이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고 세월의 흔적을 주변에 남겨둔다. 그것은 꽤나 상당한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다.

"텟시. 그거 실례잖아."
"아, 음음. 그렇군. 미안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뒷덜미를 문질렀다. 곤란하다. 햇살이 뜨거운 오후의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미츠하와, 그리고 문제의 두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아있다. 미츠하가 테시가와라 카즈히코, 나토리 사야카라고 소개해준 이 두 사람은 기억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어딜 어떻게 봐도 사회의 선배들이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조금 알고 있다. 어렸을 때 학교 선배들을 바라볼 때 느꼈던 거리감이다. 늙었구나, 이 녀석들.

"맞아. 내 타키가 곤란해 하잖아."

사실 후후하고 웃으며 던지는 미츠하의 낯부끄러운 말이 더 곤란하다. 테시가와라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상이 난폭해져 있었다. 원래도 촌스러운 까까머리의 훤칠한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그게 세월의 폭탄을 맞고 술담배를 매일 같이 즐기는 공사장 일터의 아저씨 같은 인상이 되었다. 정면에 던지면 악담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순수한 감상이다. 절대 그런 의도로 생각한 게 아니다.

"미츠하의 남자친구인데 왜 텟시가 더 반응하는 거야."
"그거야 뭐, 흠흠. 미츠하는 미인이니깐 말이지. 이상한 녀석한테 보내줄 순 없잖아?"
"미츠하의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땋았던 헤어스타일에서 둥근 단발로 바꾼 나토리가 테시가와라에게 눈치를 주며 커피를 홀짝였다. 하지만 난 테시가와라의 말에 동감한다. 굳이 미인이 아니었더라도 사랑에 변함은 없었을 테지만 미츠하 정도의 여자라면 보통 수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법이지.

"저는 격하게 동감인데 말이죠."
"오! 너 뭘 좀 아는구나."

나토리에게 쏘이고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하던 테시가와라가 튀어 오르듯 허리를 세우더니 얼굴을 확 풀고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뭐, 뭐야. 아유. 남자들이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더니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토리의 인상도 예전과는 확 달라졌다. 예전에는 뭐랄까, 조금 시골 소녀다운 그런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도시에 동화된 직장 상사 같은 느낌이었다. 차림새도, 꼬고 있는 다리도 행동도 세련됐다. 오쿠데라 선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이건 이것대로 신선하다.

"에에잇. 됐다! 3살 동생이라고 했던가? 편하게 말해도 된다."
"텟시?"
"저 녀석은 괜찮은 녀석이야. 눈빛만 딱 봐도 알 수 있다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게."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테시가와라가 호쾌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왔다. 겉모습은 확실히 달라졌지만 두 사람 다 알맹이만큼은 예전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런 얘기, 사실 초면이라면 오히려 곤란한 얘기였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대환영이었다. 뻗은 손을 붙잡았다.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악수일 것이다.

"음. 사실 나도 뭔가 초면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왜이려나……."
"후후. 글쎄. 언젠가 두 사람과 만난 적이 있는 걸지도?"

알쏭달쏭한 상황에 웃을 수 있는 것은 미츠하 뿐이었다. 나토리는 볼에 손을 얹고 미간을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물론 그래 봤자 기억의 매듭 속에서 나의 행방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미츠하의 모습으로 만난 거니 당연한 얘기였다.

"사귄 지는 얼마나 된 거야?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곧 7개월이 다 돼 가려나? 그럴 거야."
"헤에. 한창 달콤달콤할 때잖아."
"한창 달콤달콤하지─"

미츠하의 말끝에서 옆 테이블에서 봤던 초콜릿 퐁듀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남들에게 우리의 얘기를 하는 것이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타치바나 씨는 어디 쪽에 사세요?"
"네? 저는 여기……."

손가락으로 미츠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응. 같이 살고 있어."
"우와아. 사귄 지 7개월 만에 동거라니 괜찮은 거야, 그거?"
"문제없어. 서로 잘 알고 있으니까."
"신기하네. 몇 년 동안 남자라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미츠하가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라니."
"맞아. 미츠하 너 대체 바람이라도 분 거냐?"

나토리가 요염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물었더니 텟시가 맞장구를 쳤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확실히 신기한 일이긴 했다. 우리가 기억을 되찾은 것은 서로 만나고 나서도 조금 뒤였다. 만나기 이전의 긴 시간 동안 미츠하의 옆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아무래도 궁금했다. 아까 텟시가 말했듯이 미츠하 같은 미인이라면 인기도 많았을 텐데. 물론 나는 여자한테는 영 약한 데다가 구직으로 바빠서 만날 틈도 없었다.

"맞선도 소개팅도 전부 거절하더니. 갑자기 남자친구가 생겼다면서 라인을 보내고 말이야."
"내가 좋은 녀석들 소개 시켜준다고 했는데도 전부 거절했었지."
"뭔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였는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계속 꺼려지더라구. 타키를 만나고 그 이유를 알았어."
"뭐야, 그게. 로맨틱해."
"그치!?"
"어디 영화 같은 얘기구만."

우리의 만남은 분명히 영화 같은 일이기는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꺼낼 때도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도 당장 얘기해봤자 믿어줄지는 미지수였다. 꺅꺅거리며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여자들을 보고 텟시는 흥미가 동했는지 훗 하고 웃었다. 이 녀석 예전부터 오컬트 쪽에 관심이 많았었지.

"너 일은 하고 있냐?"
"입사한 지는 얼마 안 됐는데 건설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뭐야, 같은 직종인가. 나도 그쪽 계열 현장에서 일하고 있거든."

텟시가 건설업자의 아들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가업을 잇고 있는 걸까, 회사에서 일하며 몇 번인가 들어본 적은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영향력을 끼치던 회사였지만 재난 이후에도 어떻게 잘 해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런 일상 얘기나 서로의 얘기를 나누고 커피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역시 괜찮은 녀석들이다, 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그때의 작전은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우리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기는 했지만, 그 또한 거스를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이 두 사람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준비된 열쇠였다던가.

다행이다.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때와 같이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움을 녹여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정이 들었었다는 얘기였다.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근데 너희 내일이 결혼식인데 이러고 있어도 돼?"
"괜찮아, 괜찮아. 준비는 다 끝났고 내일 일찍 몸만 가면 돼."
"나는 청첩장도 안 받았는데 가도 되는 건가?"
"말이라고 하냐? 미츠하랑 손잡고 꼭 와. 안 오기만 해봐!"

텟시가 "오늘부터 친구야, 인마!"하며 쪼아대는 통에 즐거워서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예전부터 텟시와는 죽이 잘 맞았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에서 친해지는 것도 빨랐다. 인생의 톱니바퀴가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대로 굴러가다 보면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앗."

미츠하가 늘 가방에 메고 다니던 고슴도치 인형이 떨어졌다. 묶어두었던 끈이 오래된 탓에 헌 탓이었다.

"끈 갈아줘야겠는걸."
"그러게. 이런 실은 수명이 짧아서 잘 끊어져."

떨어진 인형을 주워 먼지를 털어주며 미츠하가 말했다.






"이쪽인가?"

 결혼식은 호텔의 식당에서 진행되었다. 수많은 식당 중 하나를 빌려 그곳에서 소소하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결혼식장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입구의 접수처에서 절차를 끝내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고급스러운 테이블들이 가득히 있었다.

"후후. 10년 전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광경이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충분히 멋진 결혼식장이었다. 텟시가 건설회사 사장의 아들이다 보니 관련 인사들도 많아 북적거릴 정도였다. 괜히 신경 쓰여서 입고 온 정장의 넥타이를 고쳐맸다. 미츠하는 마냥 싱긍벙글 웃고 있었다.

"왔냐?"

검은색 정장을 쫙 빼입고 하객을 맞이하던 텟시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멋쩍은 표정이 인상적이다. 자신도 자신에게 정장이 안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시선을 의식하는 모양이었다.

"바쁘네."
"주인공이잖냐."
"정장 안 어울려."
"미츠하, 너까지……. 사야카는 대기실에 있어."

간단하게 인사를 던지더니 다시 다른 사람들을 맞이하러 가버렸다. 중요 인사들이 오다 보니 자리를 오래 뜨는 게 불가능해 보이긴 했다. 그 모습이 낯설다. 역시 인생의 선배.

"사야한테 가보자."
"그래."

미츠하가 팔짱을 껴왔다. 옆구리로 체온이 실려 왔다. 나도 언젠가는 미츠하와 결혼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상상이 아닐 수 없었다. 상상이 언제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이렇게 그녀를 옆에 두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안쪽 멀리에 대기실이 보였다. 테이블들의 사이를 지나 그곳을 향했다. 공간 전체가 시끌벅적한 통에 보는 사람까지 텐션이 솟구치는 듯했다. 식당의 한가운데에는 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다. 달콤해 보이는 3단 생크림 케이크였다.

"사─야!"
"들어와!"

대기실의 문 앞에서 미츠하가 노크를 하며 말하자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날이 날인 만큼 기분 좋은 하이톤이었다. 결혼 직전의 신부는 어떤 마음일까. 내가 그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 설렘은 영원히 가늠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문을 열자 드러난 것은 그래, 그 설렘 그 자체가 아닐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나토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허. 이게 누구야!

장발의 중년 여성이었다. 풍겨오는 분위기는 중년의 것이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30대 초반 정도라고 해도 믿을 만했다. 유난히 돋보이는 붉은 색의 단아한 드레스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나토리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굉장히 터프하다고 해야 할까, 걸음걸이도 그렇고 말의 억양 따위도 그러했다.

"잘 지내셨어요?"
"물론이지! 엄청 예뻐졌네. 엄마도 울고 가겠다."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더니 미츠하가 귓가에 "사야의 어머니셔."하고 작게 소곤거렸다. 나토리의 부모님이었다. 뒤에 있는 갈색 머리의 남성이 그녀의 친부인 듯했다. 부케를 손에 꼭 쥐고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던 나토리도 에헤헤, 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아주머니도 여전히 멋지세요! 엄마도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사야의 결혼식……."
"걱정 안 해도 돼. 딱 봐도 이 주변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애초에 그 녀석이 만든 장면인걸."
"미츠하, 미츠하. 오자마자 미안한데 부탁이 하나 있어!"

나토리가 대화에 끼어들더니 요염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뭔데?"
"사회 좀 봐주지 않을래?"
"뭐!?"





"어, 음. 그, 그러니까……. 부, 불붙여주세요."

그리하여 현재 식이 진행되고 미츠하가 사회를 보고 있다. 애초에 텟시와 나토리가 작정하고 골탕을 먹이기로 한 게 분명했다. 그를 위한 준비가 완벽했다. 절대 싫다고 거절하던 미츠하에게 나토리의 부모님이 1차 압박을 먹이고 준비해두었던 대본과 진행 순서 따위가 적힌 종이를 품에 떠맡겨 버렸다.

두 사람에게 '나이스!'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싶다. 나는 당연히 테이블로 빠졌다. 덕분에 현재 스마트폰으로 미츠하의 사진을 잔뜩잔뜩 찍고 있다. 당황하는 미츠하는 집안의 가보로 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우니까. 미츠하가 사회를 보고 있는 낮은 단상의 양옆에 앉아있던 텟시와 나토리의 부모님들이 식당 가운데 있던 케이크의 촛대에 불을 피웠다.

"다음은…… 신부, 아. 아니, 신랑 입장해주세요!"

열심히 웃음을 참고 있는지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 텟시가 홀로 단상의 앞으로 걸어왔다. 결혼식에 주례가 없다 보니 식의 분위기가 가볍다. 순서는 제대로 따라가지만, 절차는 조금 간소화되어있었다. 미츠하는 당했다 싶었는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킥킥 거리는 텟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부도 입장해주세요!"

면사포를 쓴 나토리가 드레스를 이끌고 입장했다.

결혼식의 색깔을 표현하자면 딸기 우유와 비슷한 밀키 핑크, 그런 느낌으로 달콤하게 빛났다. 식이 진행될수록 마음속에서는 어떤 욕심에 불이 붙었다. 결혼식이 점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순간의 욕구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만큼은 그 욕심에 뚜렷한 확신을 가졌다.

미츠하와 결혼하고 싶다. 미츠하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다. 나 역시 멋진 턱시도를 입어보고 싶다. 이런 즐거운 결혼식을 올리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싶다. 비록 7개월밖에 안 된 연인일지라도, 그런들 어떠하리. 서로를 이런 아름다운 파스텔 분홍으로 물들일 수 있다면 아무렴 괜찮았다.

"……맹세하시겠습니까?"
"맹세합니다!"
"정말로요?"
"네? 매, 맹세합니다! 아니면 사야카한테 죽도록 맞겠습니다!"

"흐윽, 내 딸을 이런 까까머리한테 보내야 한다니……."
"저, 저 어머님? 평생 잘하겠습니다. 그러니 맘 편히 보내셔도……."
"아니면 나한테 죽도록 맞을 예정이니까."
"사야카!?"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 행진!"





"수고했어."
"으으, 너무하잖아!"

사회를 마친 미츠하가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표정에서는 생기가 사라져 이미 기진맥진한 게 대충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토리와 텟시는 이미 피로연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위해 떠난 참이었다.

"그래도 부케는 얻었다! 헤헤!"

미츠하의 손에는 분홍색의 작약꽃으로 만들어진 부케를 품에 안고 해맑게 웃어 보였다. 바깥에는 이미 늦은 오후가 되어있었다.

"달콤하네, 결혼식."
"그러게. 좋겠네─ 사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우리의 집이 눈에 보일 것이다. 결혼식의 끝에는 약간의 뒷맛이 남아있었다. 떫은 여운이었다. 여운이라기보다는 부러움일까. 나도 미츠하도 그런 마음을 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럴 나이가 되었으니까.

"에에이!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우리도 신혼 못지않다구!"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던 미츠하가 조금 앞서가더니 획하고 돌아 정면에서 안겨 왔다.

"미츠하?"
"맹세하시겠습니까!?"

활활 타오르던 불씨는 이미 한계치까지 커져 있었다. 미츠하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서로의 숨이 닫는 거리에서 나의 눈을 지켜보고 있었다. 간절함을 품고 있는 작은 동물 같은 표정이었다. 허리를 감싸고 꼭 안아주었다. 아까 보았던 사회의 연장을 하고 싶은 듯했다.

"맹세합니다.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정말로?"

따뜻하다. 품속의 미츠하가 직접 주는 온기는 아니었다. 이것은 나와 미츠하의 사랑이 서로의 마음을 달구는 것이다. 방금 한 맹세를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심을 묻는 미츠하의 질문에 그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타키?"

세상에서 나와 미츠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사라져 간다. 의식이 미츠하만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우리 둘뿐이다. 대답이 없자 걱정되는 듯 미츠하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진심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이게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미츠하의 어깨를 살짝 밀어내고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움, 우유와 시럽이 가득 들어간 카페라떼를 잔뜩 마셨을 때의 달콤함이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진심을 흘려보낸다.

그 순간 결심이 섰다. 어떤 문제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전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었다. 아마 이 찰나가 지나가고 나는 미츠하에게 프러포즈를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계획은 순조로웠다. 미츠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최대한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괜히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나토리와 텟시에게 도움을 청한 게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반지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나의 안목으로는 뭐가 좋은 거고 뭐가 예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직원의 말만 듣고 3시간 동안 머리를 쥐어짜 내어 선택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마음만은 감정이 벅차올랐다. 우리는 아직 약혼도 하지 않은 사이였기 때문에 내가 욕심내서 프러포즈를 한다고 하더라도 식을 올리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행복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오늘이 결전의 날이었다.

▷ 응! 그러면 있다가 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동거하고 있는 주제에 프러포즈를 하는 걸 이토록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일주일, 오늘만 벼르고 벼르며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낸 게 허사가 아니란 게 실감이 났다. 회사에서 퇴근한 직후부터 만지작거리고 있는 반지 케이스가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미츠하는 이미 도착해 있다고 메시지로 연락을 받았다. 한 발 한 발, 격전지로 나아가면서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이걸 건네며 프러포즈할 때, 미츠하는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설렘, 설렘, 설렘 그것이 끊이지 않는다. 웃어줄까,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까? 그건 너무 과한가? 미츠하라면 어떤 반응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타키!"

횡단보도 건너에 미츠하가 보였다. 딱 건너편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내 이름을 부르며 살짝살짝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심호흡을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는 거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최대한 좋은 분위기에서 하고 싶으니까.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기다리는 신호등의 신호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어서 바뀌지 않으려나. 그저 이 주머니 속의 반지를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휘감고 머릿속은 미츠하의 생각만 가득했다.

신호등의 신호가 녹색불로 바뀌었다. 이 설렘을 다리에 실어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앞으로 조금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퍽 맑은 날이었다. 마치 오늘을 축복하듯이 말이다. 조금 뒤면 그가 나에게 다가와 여느 때와 같이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 줄 것이다. 그것은 항상 기대되는 일이다. 오늘은 또 그와 어떤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행복한 상상의 나래가 실처럼 가득 풀려간다.

"타……"

거대한 경적이 들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서 힘을 빼앗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 순간 머리 위로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물방울이다. 그래, 사실 오늘은 저녁에 장대비가 내릴 거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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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화 FIN.









설정 오류 있을 수 있음.
필력 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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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장면을 쓰고 싶어서 쓰게 된 팬픽이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네. 힘들었다.


삽화는 내가 그린 건 아니고 여친이 그림쟁이고 내가 글쟁이라 가끔 이렇게 콜라보 하기도 함.

삽화는 좀 있다가 따로 올려야지.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2991


<< 위기 상황 제외한 짤이랑 삽화 같이 올린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