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바나 타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올해 막 24살이 된 풋풋한 청년이고 짙은 밤 갈색의 고슴도치 같은 귀여운 머리를 하고 다닙니다.
키도 크고 중학교 때 농구부 출신이라 운동도 잘하고 무척이나 상냥하고 친절합니다.
게다가 공부도 잘하는지 이 젊은 나이에 벌써 대기업에 들어가 팀장 자리까지 노리는 데다 얼굴도 훈훈하고..
뭐 제 얘기는 아니지만 자랑할 거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들어봐서는 뭐 이런 완벽한 사람이 있냐 거짓말 아니야?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어떡합니까.
사실인걸. 그러니 그런 얼굴로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그런 그를 좋아하게 된 건 언제, 대체 왜일까 하고 저도 가끔 스스로 묻곤 합니다.
글쎄요. 사랑의 이유가 어딨고 때가 어디겠냐만, 그래도 짐작하는 바는 있습니다.
그는 매번, 땅거미가 질 무렵의 저녁놀을 한참 바라봅니다. 그를 따라 가끔씩 저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아마 특별한 사연이 있나 봅니다. 언제가 본, 황혼을 바라볼 때의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롭고 너무나도 서글파 보였습니다. 마치 소중한걸 잃어바린 것처럼.
하지만 왜일까요. 그 황혼에 젖은 그의 모습은 저를 설레게 하였습니다. 주제넘다고 생각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그의 소중한 것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저 하늘 대신 저를 바라보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대신 미소를 걸어두고 싶었습니다.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는 사교성도 좋아서 아무와도 쉽게 친해지지만 대신 누구에게도 진정한 그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는 정말로 고슴도치 같았습니다. 가까이는 다가오지만, 항상 거리를 두는 그런 사람.
해 질 녘의 그의 진짜 얼굴을 본 저였기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소에는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은 무언가 부족한 미소란 것을요.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열기 위해 항상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회식 때도, 식사 시간에도, 업무 중에도.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고 동료 여직원들이 꼬리 친다고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인한테도 부담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맞는 얘기였습니다. 그를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그와 손을 잡고 싶고 그와 황홀한 밤을 같이 보내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진정한 웃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고슴도치 한 명을 위해, 저는 자신을 상처 입히면서까지 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하늘도 제 노력을 들어준 건가요? 그는 저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가끔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인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저는 단지 친한 이성 친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이를 맺었다는 황홀감에 빠졌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수수께끼인 사람입니다. 그가 여자친구가 있는지, 취미가 뭔지, 그런 것들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런 그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사이겠지요.
이제 그이는 저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미츠하라고.
그이가 제 이름을 들었을 때, 그이는 깜짝 놀랐었습니다. 그이의 눈가가 풀리고 얼굴이 부드러워졌음에도,
그이는 제가 원하던 미소를 짓지 않았습니다. 많이 서운했습니다. 어쩌면 그이가 찾던 사람이 저랑 동명이인이었을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자 마치 제가 그이가 찾던 누군가의 대체품에 불과한 것 같아서.
하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다만, 단지 그이가 알아줬으면 합니다. 저는 저에게 특별한 사람에게만 제 이름을 부르게 해준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인연들 속에서 제 이름을 부른 건 당신이 처음이라고.
이제 곧 다시 월요일이 다가옵니다. 그저 쳇바퀴 돌듯, 거쳐 가는 일주일의 시작일 뿐이지만 오늘의 저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호기심에서 호기가 싹 틔웠고, 호기에서 사랑이 맺어졌습니다. 저는 그이에게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이에게 고백할 준비를 했습니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외모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름 살아오면서 여신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봤고, 연예인 제안도 받아봤으니까요.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틀 동안 편지만을 썼습니다.
오늘은 고백에 어떤 선물이 어울릴까 한참을 백화점에서 고민했었습니다.
저번 술자리에서, 그이는 지금까지 받아온 고백들을 다 거절했답니다. 정말이지 복에 겨워 넘치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뭔가 쭉 찾고 있는게 있었답니다. 운명의 상대 같은거겠죠.
하지만 그이는 그 자리에서, 그때, 석양을 바라보던 그때의 표정이 다시 지었습니다.
그저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니. 화가 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더더욱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제가 그이의 운명의 상대가 되어주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이는 저의 운명의 상대 같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이의 운명의 상대가 되면 모든게 해결되는 것이였습니다.
포장까지 완벽합니다. 이제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밤이 되면 모든 게 결정되겠죠.
그러고보니 잠들기 전, 문득 그가 금요일에 지각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게 왜 떠올랐을까요.
일이 끝나자마자, 타키를 술집으로 불러냈습니다. 왜 하필 술집이겠냐만, 술의 기운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말조차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타키가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둘만의 술자리에서 누가 끼어드는 것도 언짢았지만, 타키는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여자에게는 목석같았던 타키가 여자를 데려왔던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였습니다.
긴 흑발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키도 크고 늘씬하고, 정말로 타키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속으로 누나거나 아니면 친척이겠지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켰습다.
그 사람이 제게 악수를 청합니다. 손은 또 왜 이리 희고 고울까요. 여자가 봐도 어쩜 이리 이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하필 오늘 현장을 돌고 와서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악수했습니다. 그냥 타키가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라고 물어보지나 않았으면 했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그때 거기서 도망쳐 나올 걸 그랬습니다.
식사 내내, 그냥 먹기만 했습니다. 타키는 그 여자를 자기가 찾던 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금요일 아침에 만났다고 합니다. 이틀 동안 진도는 빠르게 나간 했습니다.
이름도, 저와 똑같은 미츠하였습니다.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쌓아놓은 감정들, 노력들. 모든 게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저 여자는 확실히 타키의 운명의 상대였나 봅니다. 보기에도 둘은 완벽했습니다.
이전의 타키가 향기 없는 꽃이라면, 이제 그녀와 함께 있는 타키는, 너무나도 향기로운 완벽한 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 여인이 타키의 운명의 상대라고 느낀 건. 저 미소. 저 미소를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봐도, 죽어라 노력해봐도 보여주지 않던 그 미소를, 저 여자는 곁에서 말만 해도 얻어냈습니다.
절대 보여 주지 않던 자신의 속내를, 저 여자에겐 다 보여줬습니다.
너무나도 슬프고, 혼란스럽고, 짜 증나고, 힘들었습니다. 어째서 그가 저 여자를 데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가 한 건 아니고 저 여자가 한 거 겠지요.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는 남자의 핸드폰에서,
친해 보이던 여자의 톡을 봤던거겠죠. 그렇지만 저는 아무 말도,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무대를 바라보는 한 명의 관객처럼, 금술 좋은 고슴도치 부부를 지켜보는 것밖에 말이죠.
운명의 상대. 흔히들 붉은 실로 묶여 있다고 합니다. 저와 그가, 붉은색 라카로 칠해진 싸구려 끈이라면,
그 둘은 고운 비단 실로 만든 운명의 붉은 실이었습니다.
그가 내가 가져온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선물입니다. 아니, 선물이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자리를 떴습니다. 그가 일어서며 뒤따라옵니다. 왜 눈물을 흘리냐고.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그 사람은 정말 쓸데없이 친절합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잔인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며 나왔습니다.
지금,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이 거리를 저 혼자만 울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늘도 정말 무심합니다.
운명이 정말 잔혹합니다. 왜 줬다가 뺏은 것입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 말 것이지.
이렇게 가지고 놀 거면 그냥 처음부터 들어주지 말지, 라며 고함쳤습니다.
하늘을 원망했고, 그 사람을 원망했고, 저를 원망했습니다. 네, 저 혼자만 저만의 망상에 빠져 놀아난 것입니다.
운명의 상대라는 건, 원래는 좋은 뜻이어야 하는데. 저에게는 비극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운명의 상대라는 건 행복한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내일 또 어떻게 얼굴을 볼지, 제 뒤집힌 속은 어떡할지. 정말로 지쳐갑니다.
하지만 더더욱 슬픈 건, 잊으려 해도 그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는 겁니다.
어느덧, 해가 져가고 있습니다. 저는 문득 서서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그를 따라 하다가 생긴 버릇입니다. 타치바나 타키. 제가 좋아했던 사람을 말이죠.
물론, 이제 그가 황혼에 젖는 일은 없겠네요. 그의 곁에는 항상 황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저의 표정은 분명, 예전의 그가 해 질 녘의 하늘을 볼 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죠.
그러니 그런 얼굴로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어.. 일단 첫 단편인 기억을 걷는 시간 날려보내줘서 고맙다ㅎㅎ
그 얘기는 좀 나중에 하고
제목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프랑스에서 해질녘을 뜻한다는데, 유래가 저 언덕 너머로 달려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소설 속 화자에게 있어서는 운명의 상대와 이어지는 해피엔딩) 아니면 늑대인지(화자에게 있어서는 소설 결말처럼 이어지지 않는 배드 엔딩)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라 그렇대.
부담 없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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