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 if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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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청춘이라면 학교 하루 정도 빠지고 어딘가 갔다 오는 정도의 인생 경험은 해봐야 한다는 게 신조기도 했고. 

그래서 평생 그래 본 적이 없던 놈이 갑자기 채팅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을 때. 기꺼이 대타를 서 주었다. 끝나고 돌아오면 타키 그 놈이 기쁜 얼굴로 밥을 살 거라 생각하면서.


반만 맞았다. 고맙다고 밥을 사 주긴 했지만. 영혼이 휴가차 출타한 것만 같았던 그 놈의 표정은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좀 틱틱거리는 습성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행동력 있고 활기차던 녀석이 그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타키 자식에게 물어볼 상태는 아닌 것 같아서, 같이 갔던 츠카사에게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냐며 캐물어봤지만. 그 녀석도 뾰족한 답을 말하지 못한 채. 우물우물. 항상 건축가는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애매한 결론을 부모님의 원수보다 증오하던 그 놈이 처음으로 애매한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이토모리. 혜성 사고. 그 외에도 무언가 타키에게 얘기를 들은 것 같지만. 무슨 얘기를 들었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 안개처럼 머릿속이 흐리다. 이런 말들의 동어반복.

실망한 나는 타키에게 그 채팅 친구는 만나고 왔냐고 물었지만. 채팅 친구라는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눈이 희번득 하고 뒤집혀서는 내 멱살을 잡고, 누구야! 그 녀석이 누구야! 빨리 말해!!라며 날 죽일 듯이 달려드는 바람에. 츠카사가 황급히 타키를 뜯어말렸고. 그제서야 완전히 풀죽은 얼굴로 ‘타카기, 미안’ 이라며 자리에 주저앉아서는, 자기 오른손만을 하염없이 쓸쓸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 친한 친구 두 명이 그렇게 한꺼번에 맛이 간 것일까. 둘 다 무슨 귀신이라도 만나고 온 것일까. 나는 미치도록 그것이 알고 싶었지만 그 의문을 풀어 줄 친구들의 상태는 둘 다 썩은 동태만 같았고, 그날 저녁은 그렇게 불편한 자리가 되어 조기에 파해 버렸다.


오쿠데라 선배와도 같이 갔다기에, 마지막으로 선배에게도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선배에게서도 뾰족한 대답을 얻지 못했었다. 완전히 츠카사랑 상태가 같았다.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결국 스스로도 답을 얻지 못했던 타키의 이상 행동은 이후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하루종일 당시의 이토모리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혜성 충돌 이후의 기사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 모으고. 공부도 뭣도 내팽개치고는 비는 시간이 있으면 그 자료들만 읽어댔다. 그럼에도 그 녀석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고. 결국 뾰족한 답이 없었던 우리들도 언젠가는 그 녀석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마인드가 되어 마냥 방치해둔 채 기다리기만 했다. 


그 녀석이 정상으로 돌아온 건 기어이 황금같은 시험을 제대로 망치고 난 뒤였다. 입시 준비라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그런 몽상과도 같은 집착은 갈가리 찢겨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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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취업은 했냐?”

“이 자식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분해하는 타키. 그 꼬락서니를 보아 오늘도 면접 결과는 기대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승리의 썩은 미소를 지어주며 두 손가락을 폈다.


“난 두 곳.”

“난 여덟 곳.”


옆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츠카사도 한 마디. 여덟 손가락을 펼 때 왼쪽 손가락을 다 편 건 아마 노린 거겠지. 츠카사의 왼손 약지에는 오쿠데라 선배와의 약속의 증표가 반짝. 하고 빛나고 있었다.


“크으으... 분하다.”


털썩.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모양인지 타키는 상체를 테이블에 박고는. 왜 난 안되는 걸까~ 왜 난 행복해질 수 없는 거야~ 라며 넋두리 모드. 불난 집에는 휘발유를 잔뜩 들이부어 주는 게 오랜 친구로서의 매너겠지. 난 매너를 지키기로 했다.


“너, 양복이 안 어울려서 그런 거 아냐?”

“그건 니네들도 마찬가지잖아!”


젠장,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은 아닌데. 라며 타키는 투덜거린다. 사실, 그 말이 맞다. 타키 저 놈이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은 아니다. 딱 하나. 그놈의 고슴도치 같은 삐죽머리만 빼면. 

하다못해 저 츠카사처럼 가지런히 가르마라도 태우면 좀 더 나으련만 싶어서 몇 번이고 머리 스타일 좀 바꾸라고 권했지만. 다른 옷을 사고 얼굴에 화장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삐죽머리만은 바꿀 수 없다며 버티는 통에 포기하고 있었다. 뭐래나. 이 머리를 바꾸면 앞으로 영원히 무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 했나. 그 말을 하는 놈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기에. 차마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었다.

뭐, 고등학교 때 잠시 혜성에 한눈을 팔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 가서 정말 열심히 했으니 성적이 문제인 건 아닐 것이다. 결국 문제는 면접. 


“임마. 인상을 더 좋게 못 하면 말이라도 잘 연습해야지. 맨날 도쿄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며 횡설수설 해봤자 뭐하냐. 넌 건축회사를 가는 거지 철거회사를 지원하는 게 아냐.” 


타키에게 한 마디 해 주고는, 나는 내 앞의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홀짝였다.


고등학교 때를 얘기하자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타키가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다던 그건 어떻게 되었을까. 타키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떡이 되어서는 내게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게 사람인지, 이상인지, 아니면 단지 취직할 회사인지 나도 모르겠다면서. 

타키가 내 오래된 의문에 조금이라도 답해준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 일이 다시 우리 사이에 화두가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 녀석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마 아직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 놈이 어릴 때부터 자기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는 놈은 아니었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아직도 저 자식은 매일 아침마다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끝내는 떠올리지 못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겠지. 언제나처럼 결국은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굴할 줄 모르는 시시포스처럼 기억의 언덕을 끝없이 오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인지도 모를 바위를 그저 영원히, 무한히 굴리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것밖에 없다는 듯이.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마음이 무거워진 나는 남은 커피를 원샷하며 마음 속으로 빌어주었다. 언젠가는 네가 찾는 그것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라고. 내가 그 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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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 결국은 성공했구만.”

“음. 아주 대견한 일이지.”


우리는 오랜만에 타키 놈이 취직 기념으로 밥을 산다고 하여, 모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타키를 기다리고 있다.


“평생 면접관 앞에서 어버버만 하다가 끝날 줄 알았더니.”

“누가 아니래. 그래도 그 어버버도 끝까지 들어주는 마음 넓은 회사가 결국엔 있었구나.”


우리 둘은 열심히 이 자리에 없는 그 놈을 까내리며 무료한 시간을 때웠다. 뭐, 진심은 아니지만, 그 놈이 처음 드디어 취직했다고 연락을 했을 때, 난 기뻐서 펄쩍 뛸 뻔했다. 맨날 침울하기만 했던 그 녀석이 기쁜 소식이라니! 

사실 나처럼 츠카사 놈도 타키가 오랜만에 전한 좋은 소식에 기분이 좋아서 저러는 거다.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다 알지. 

타키가 취직한 회사도 절대 녹록한 회사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해줄 수 있었다. 


“그 놈,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 정도 회사는 되어야 우리도 마음 놓고 기뻐해줄 수 있지 않겠어?”

“명색이 이 위대한 츠카사 님의 친구인데 당연하지.”

“그래서 마음 놓고 기뻐해 줄 거다. 내 기쁨의 크기를 내 위장으로 표현해 주겠어.”

“하하, 역시 내 친구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다니.”


우리는 씨익 웃으며 오랜만에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첫 월급날에 그 놈의 통장 잔고를 0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낄낄대고 있던 우리의 귀에 타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나 왔어!”


그 목소리에 동시에 돌아보니, 7년만에 처음 보는 타키의 해맑게 웃는 얼굴, 그리고 그 옆엔.


“안녕하세요. 미야미즈 미츠하라고 합니다. 타키와는 얼마 전에 처음 만났어요.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긴 흑발을 매듭끈으로 묶어 장식한, 단아한 인상의 미인. 그리고 옆에서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이 헤벌쭉 웃고 있는 타키의 얼굴을 보고. 우리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오른다. 말해주지 않아도 우린 알 수 있었다. 짜식. 드디어 찾아냈구나. 

우리들의 시시포스는 7년의 세월 끝에 마침내 산 꼭대기에 바위를 올리고 승리의 환호를 지를 수 있게 되었다. 


7년 만에 찾아낸 친구의 반쪽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우리는 미야미즈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미야미즈 씨. 저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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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주) 시시포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기꾼입니다. 사기 때문에 벌을 받아서 뾰족한 산 위에 둥근 바위를 올려야만 하는 형벌을 받았고, 영원히 이루지 못할 목표를 쫓게 된 사람입니다.


쓰던 시리즈가 슬슬 반환점에 접어들면서, 많은 것을 재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 와서. 잠시 쉬고 가볍게 외도를 했습니다.


아마 며칠 정돈 더 이렇게 외도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볍게 신타의 시점으로 재구성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전 신타를 꽤나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글 봐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평가는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