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의 슬픔을 느낀 날 1 - 청각, 헤어짐을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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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초여름의 햇살이 길거리에 수려한 가로수들의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산뜻한 느낌을 주는 날씨였다. 여름 휴가 시즌에 맞춰 사람들은 분주히 여행을 떠나기 바빴다. 몇 주 째, 산뜻하다 할지라도 30도를 넘나드는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에 오늘만이라도 비가 오기를 바랐는데 내가 원한 것과는 정반대로 날이 맑았다. 어제와 똑같이 맑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 덥다. 땀 한 방울이 내 뺨을 죽 타고 내려 바닥에 뚝 하고 떨어진다. 며칠간 치우지 않아 난장판인 집 안에선 창문 너머로 부는 바람 소리와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너무 덥다."
몸은 땀으로 젖어 굉장히 찝찝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 날씨는 몇 도일까? 오늘 일어나자마자 조금 전까지 샤워만 3번은 한 것 같은데 무더운 날씨 탓에 땀은 다시 내 몸 전체를 적셔놨다. 이러면 샤워를 한 보람이 없잖아 라고 생각하며 결국 밤에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샤워하기로 마음먹고 그전까진 해가 지고 그나마 괜찮아질 때까지 가만히 뻗어 있기로 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난장판인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여러 번 갈아입은 옷과 수건들로 가득 찬 바구니는 욕실 앞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었고 거실 바닥은 여러 가지 잡지와 신문들로 어질러져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와 테이블 위에 엎질러진 채로 있는 음료수 캔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주방 테이블도 어제 먹고 내버려 둔 접시와 컵이 놓여있었고 싱크대 안에는 아직 설거지를 못 한 접시들로 한가득하였다. 침실은 구겨진 종이마냥 놓인 이불과 베개가 침대 위와 바닥을 놀아나고 있었고 책장과 책상 위에는 여러 잡동사니로 더럽혀져 있었다.
"저것들 언제 치우냐……."
움직이기 귀찮았다. 치울 것이 너무 많은 것들도 이유겠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움직이기 싫은 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움직이기 싫다는 욕구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소파에 가만 누워 있은 지 3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오후 1시가 막 다 된 참이었다. 가장 더운 때라서 그런지 아까보다 땀이 더 많이 흐르는 듯했다. 이런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더위에 절어 말할 힘도 없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힘을 전부 짜내어 불렀다. 하지만 현관문 너머로까지 들리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고 결국 초인종까지 누르며 조용하던 집안에 은근한 소음을 내며 나를 짜증 나게 만들었다. 난 결국 악을 바리바리 쓰면서 크게 소리 질렀다.
"누구세요!"
그제야 현관문 너머로까지 들렸는지 문 너머 있는 사람이 자기소개를 했다.
"나야 나, 미츠하!"
생각해보니 1시쯤 미츠하가 온다고 했었지. 난 좀비처럼 죽은 몸을 질질 끌고 가서 미츠하가 더러운 집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축 처진 팔로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와. 집안 꼴이 말이 아니지만."
"또 청소 안 했구나?"
"어."
난 그녀의 말에 대충 대꾸하며 다시 소파에 뻗어 누웠다. 미츠하는 구시렁거리며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내 귀에는 제대로 뭐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미츠하는 거실부터 해서 더러워진 내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런 더운 날씨에 잘도 움직인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하나. 나는 귀찮았지만 미츠하 혼자선 힘들 테니 나도 어느 정도 돕기로 했다. 일단 거실 테이블 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한곳으로 모은 후, 팔에 한가득 안고서 주방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봉투 안에 전부 쏟아부었다. 그 후로도 미츠하 옆에서 청소를 돕다 보니 집안이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하고 쾌적한 곳이 되었다.
"그렇게 더러웠는데 이런 여름에 벌레 하나 꼬이지 않은 게 신기하네."
미츠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치우다 보니 어느덧 3시였다. 내 배에선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고 미츠하는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너도 점심 안 먹었어?"
난 미츠하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바보야, 너 먹을 거 만들려고 그러는 거 아냐."
나는 밥도 안 먹고 몸을 쓴 탓인지 힘없이 의자에 풀썩 쓰러져 앉았다. 미츠하는 냉장고를 한참 뒤적거리며 그나마 먹을 만한 것들을 꺼내어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생각해보니 장도 안 봐서 먹을 것도 별로 없었지. 근데 미츠하는 뭘 만들려는 것일까? 그녀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마 있다가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그러고 보니 미츠하는 예전부터 요리를 줄곧 잘했다고 들었었다.
"자, 먹어."
그녀가 만든 음식은 이것저것 섞어서 밥이랑 함께 볶아낸 볶음밥이었다. 꽤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과 맛있는 냄새가 내 침샘과 후각을 자극했다. 난 며칠을 못 먹고 굶은 사람처럼 급하게 먹다가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미츠하에게 물었다.
"너는 점심 먹었어?"
"난 먹고 왔어."
"그럼 뭐……"
그렇게 나는 아무 말 없이 볶음밥을 전부 먹어 치웠고 설거지까지 내가 다 하고 나서 거실 소파에 앉은 다음에 TV를 틀었다. 폭염 경보가 내렸으니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가 하고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별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없어서 TV를 끄고 테이블 위에 있는 잡지를 펴서 읽기로 했다. 며칠 전에 사놓고 읽은 적 없었던 패션 잡지였다. 잡지를 한참 읽던 도중 미츠하가 말을 걸어왔다.
"타키, 요즘 너 많이 달라진 거 같아. 예전이랑 너무 다르다고."
"내가?"
"요즘은 내가 와도 별로 말이 없는 거 같아서.'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그녀가 하는 말에 대꾸는 줄곧 잘했지만 내 시선은 계속해서 패션 잡지에 꽂혀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얼마 안 가 그녀는 TV를 틀었고 드라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은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절반 정도 읽은 잡지를 덮어놓고 미츠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평상시와 같은 그저 평범한 표정이었다. 예전보다 내가 많이 달라졌다고?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생각했다. 미츠하가 내 집에 와도 예전처럼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어서 그런 건가.
"미츠하."
"응?"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게 네가 집에 와도 내가 막 예전처럼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뭐, 대충."
"그건 단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해져서, 이렇게 같이 있는 게 편해서 그래."
"그래? 그럼 뭐 상관없고."
미츠하는 TV를 보며 내 말에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처음 보는 그녀의 무뚝뚝한 표정과 대답과 행동에 나는 무언가 속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난 그녀와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 TV를 끄고 미츠하의 양쪽 어깨를 붙잡으며 말하려 했다. 미츠하는 뜬금없는 내 행동에 놀라 내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안 하던 짓만 골라서 하고!"
"뭐, 뭐가."
"갑자기 말이 없질 않나, 내 어깨를 갑자기 잡지를 않나! 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깨 잡은 건 그냥 너랑 제대로 대화하고 싶어서. 그건 그렇고 왜 소리를 질러? 이게 그렇게 소리 지를 일이야?"
"오늘은 너 행동이 하나같이 너답지 않아서 그래! 이상하잖아, 안 그래? 아직도 모르겠어?"
"사실 잘 모르겠어. 난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오늘 넌 이상해. 예전답지 않다고."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난 대체 뭐가 달라진 거야?"
미츠하는 내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며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에 다 말해줬잖아, 이 바보야!"
미츠하는 내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현관문을 쾅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갑작스러운 싸움과 처음 보는 그녀의 분노에 한참을 황당해서 멍청하게 서 있다가 뒤늦게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했지만 미츠하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서 동네 주변을 샅샅이 살피고 다녔다. 미츠하가 많이 다니는 가게나 좋아하는 장소, 그 외 여러 곳에도 들려보았지만 미츠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나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쉴 틈도 없이 뛰어다녔다. 얼마나 더 뛰어다녔을까, 나는 더는 뛰어다니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숨을 돌리기로 했다. 휴대전화로 미츠하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어디 있는지 이젠 짐작도 가지 않았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갈까 생각하려던 찰나에 그녀가 있을법한 곳에 가보기로 했다. 그곳으로 가던 도중에 하늘이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온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일기예보도 말하지 않았던 소나기가 갑자기 오는 바람에 당황하긴 했지만 나는 급한 대로 외투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미츠하가 있는 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분명 거기라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숨 가쁘게 뛰어갔다. 그 공원이라면, 그 공원에서 매번 같이 걷던 그 길이라면 미츠하가 있을 거라 믿었다. 걱정 반 믿음 반이었지만 미츠하라면 분명히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참을 뛰어 공원에 도착했다. 내 예상은 맞았다. 미츠하는 그곳에 있었다.
"미츠하!"
난 미츠하를 부르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역시 미츠하가 맞았다. 서로 비에 홀딱 젖은 채로 만났다. 미츠하 역시 비가 올 거라 생각은 못 했겠지.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싫은지 팔을 치우며 아직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날 매섭게 노려봤다. 한참을 째려보던 미츠하는 등을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난 또 그녀를 놓치기 싫어 그 뒤를 쫓았다. 울적한 잿빛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면 소나기가 아니라 장마인 건가.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고 단지 나와 미츠하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비에 맞으며 빗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공원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서 미츠하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제 보니 미츠하도 굉장히 연약하구나. 그렇게 더 한참을 걷고 또 걸어 다니다가 미츠하가 중간에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계속 날 쫓아다니는 거야?"
"난 그냥 너랑 이야기를……"
"됐어. 그냥 가! 그럼 아깐 왜 얘기 안 했어? 왜 이제 와서 그러는 건데!"
나는 그녀가 쏘아붙이든 말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미츠하가 한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닐 테니, 나는 할 말이 없었고 결국 해주는 것이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미츠하는 나를 때리며 밀어내려 했지만 나는 한참을 더 그러고 있었다. 이제 그녀도 지쳤는지 팔을 내리고 가만히 안겨있었다.
"미안해."
난 그제야 그녀에게 사과했다. 이제 와서 사과하기엔 너무 늦었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몇 번이나 더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답답했던 속이 어느 정도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안고 있던 미츠하를 놔주고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눈물과 비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고서 등을 돌려 집으로 가려고 했다.
"타키."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꽉 쥔 채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분명 내게 뭔가를 말하기 위해 각오한 듯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미츠하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여기서 다 하고가."
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울창한 나무에 가려져 젖지 않은 벤치를 찾아 그곳에 앉았다. 이 벤치는 매번 미츠하와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앉았던 벤치였지. 나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정리하던 도중 미츠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제 생각해보니까 내가 별것도 아닌 거로 너무 화만 낸 거 같네."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내가 더 미안하지."
"그럼 해봐. 네가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
"무슨 말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럼 정리해서 말해봐. 기다려줄게."
무슨 말을 할지 정리하던 도중 어느덧 비는 그치고 다시금 맑은 하늘과 햇살이 비에 젖은 공원을 환하게 비추었다. 맑은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공원의 풍경을 보며 한참을 정리하고 정리하다 보니 무슨 말을 먼저 할지 편하게 정할 수 있었다.
"그냥 네 말이 다 맞는 거 같아. 난 달라졌고 아무 말도 없었어. 많이 이상하지."
"그걸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네."
"이제서야 깨닫고 사과를 하다니, 나도 참 미련한 놈이야."
"눈치도 없고."
"난 네 속마음이 어떤지 아직도 모르겠어.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미츠하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나와 똑같은 풍경을 보며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서로 같은 곳을 보며 매번 앉는 벤치에 앉아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곳을 보는 이 상황이 왜 이렇게 익숙하고 낯익을까? 생각해보니 미츠하랑 처음으로 싸웠고 처음으로 미안하다 말해보고 처음으로 무슨 말을 할지 고민이란 것을 해보았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일까? 비가 그치고 맑아진 하늘이 아까처럼 똑같이 맑은데도 왜 내 마음속 비는 그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이런저런 과거를 생각하면서 넋 놓고 있다가 미츠하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제서야 속마음을 말하는 걸까. 그녀의 진정한 속마음을 듣는 것도 처음인 건가. 그녀의 선한 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살짝 긴장되었다. 무슨 말을 할까? 내가 싫다? 질렸다? 문득 헤어지자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땐 그녀를 그냥 놔줘야 할까, 잡아야 할까? 또 다른 생각에 머리가 정신이 없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네가…… 사실은 굉장히 아주 싫어졌어."
"아."
난 이미 그런 대답을 예상했지만, 막상 싫다는 말이 내 귀에 하나하나 또박또박 선명하게 박히고 나니 꽤 충격적이었다.
"조금 오래전부터 간혹 넌 내가 있어도 예전처럼 말도 안 섞었지."
"그건…… 그것도 미안해."
"그때부터 아마 네가 싫어졌던 거 같아."
"이해할게."
"싫어도 널 계속 만나면 괜찮아 져서 좋았는데 이제 그것마저 안될 것 같네."
"그럼……"
"우리 헤어지자."
"응?"
난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그 한마디에 확 죽어버렸다. 분명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헤어지자는 말이 왜 이렇게 잘 들릴까? 헤어지자는 말도, 내가 싫다는 말도 전부 예상했던 것인데 왜 막상 실제로 듣고 나니 이렇게 허탈한 걸까.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나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대로 미츠하가 떠난다면 붙잡아야 할까, 그냥 놔줘야 할까? 이 자리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선 무언가 하나가 툭 하고 풀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동시에 다른 무언가가 채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레 헤어지자는 말이 이렇게나 아픈 것이었던가? 결국, 이제라도 그녀에게 예전보다 더 잘해주려 했던 내 각오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 나 갈게. 잘 지내."
넋이 나간 채로 고개를 푹 떨구고 있던 나를 뒤로하고 미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가버렸다. 결국, 나도 집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연당하고 나서도 서로 가는 방향이라도 같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을 했다. 역시 나는 멍청이인 걸까. 집으로 가던 도중 공원에서 미츠하와 시간 날 때마다 같이 걸었던 길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다. 걷기 익숙해진 이 길이 왜 오늘은 낯설게만 느껴질까?
둘의 추억인 이 길은 이제 올 이유가 없겠지. 무언가 굵은 물방울 하나가 내 뺨을 타고 죽 흐르는 기분이다. 처음엔 빗방울인가 생각했지만 내 눈물임을 알아챘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누군가를 다신 못 볼 거란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차라리 떠나지 말라고 그녀에게 사과하며 붙잡기라도 했다면 미츠하는 받아줬을까? 나는 옷의 소매로 눈물을 쓱 닦고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과연 받아줄까?"
난 미츠하의 번호로 전화를 걸기 위해 통화버튼 위에 손을 올렸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손을 뗐다. 하지만 지금의 내 행동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들을 천천히 보고 있었다. 하나하나 보다 보니 다시 눈물이 나왔다. 사진 속에서나마 환하게 웃는 미츠하를 보며 미츠하에게 못 해준 것들이 뒤늦게 후회라는 비수로 돌아와 내게 꽂혔다. 가슴이 답답했다. 유일한 편마저 떠나가고 애처로운 표정과 짝 잃은 외로움에 물들어 시들어져 찢긴 종잇장 같았다. 소리 없는 눈물과 비명을 집어삼키며 그녀가 나를 떠난 것처럼, 나도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다.
나는 그녀와 찍은 사진들을 전부 삭제하고 그녀의 연락처 마저 지워버렸다. 이제 나에게도 그녀는 한낱 추억만 남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지우고 잊어버리려 하니 엊그제 같던 몇 년이 바람에 허무하게 꺼져버린 불씨처럼 허탈했고 상실감이 컸다. 나란 사람이 미츠하라는 사람을 겨우겨우 만나서 오랫동안 평생을 함께하자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너무나 쉽게 깨져버린 듯했다.
그 약속이 깨진 지 오늘로부터 정확히 3년 하고도 4개월이 되던, 지금의 날씨는 내 기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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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작으로 구성한 팬픽이다. 솔직히 팬픽이라는 것을 처음 써봤다.
뭔가에 빠져서 이렇게 팬픽을 써본다는 것이 처음인 만큼 엉성하고 어설픈 부분도 많다.
그 점에 있어선 많은 지적을 해줬으면 한다.
그래도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나니까 뭔가 하나를 끝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긴 하다.
앞으로 잘 봐줬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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