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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없는 나무」 시리즈

* 본편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갤럼은 영화를 먼저 관람해 주세요.

* 설정 변경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1. 후타바가 죽지 않고 계속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직업, 인간관계 등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2. 후타바가 죽지 않으니 토시키 또한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3. 미츠하와 바뀌는 타키는, 미래의 타키가 아닙니다. 즉 2013년의 중2 타키와 17세 미츠하가 서로 몸이 바뀝니다.

4. 어느 정도는 본편을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바뀌었으니 만큼 변경점이 많을 예정입니다. IF가 싫으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 갤럼분께서 고맙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편 링크는 이쪽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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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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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미야미즈 토시키는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 여기 온 목적은 분명 연구 대상의 조사였다. 분명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토시키는 후타바와 만나 버렸고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인터뷰어에서 연구 조력자를 거쳐 그녀는 결국 토시키의 부인이 되었다. 그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어서. 굳이 비유하자면 교통사고에 비유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토시키는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다.

그렇게 데릴사위로 이토모리에 들어와 미야미즈 신사의 궁사가 된 지도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토시키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민속학 전공 교수였고, 미야미즈 신사는 처음부터 그러했듯 꽤나 흥미로운 연구거리였기에 들어오고 나서도 틈틈이 연구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여러 모로 다른 신사와는 다른 것들이 많았던 미야미즈 신사, 그 근원이 무엇인지 토시키는 항상 알고 싶어했다. 그것은 학자로서의 본능이었다. 이걸 파면 분명히 무엇인가 나온다. 토시키는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금방,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연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난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토시키는 항상 머리를 쥐어뜯으며 200년 전의 사람을 진심으로 저주하곤 했다.

야마자키 마유고로, 당신 부모님한테 불장난은 조심해서 하라고 안 배웠어? 저승에서나마 최후의 배출 활동에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길 밤낮으로 빌어 주겠어.

마유고로의 대화재. 욕실에서 발생한 그 화재는 초기 진화에 실패했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야금야금 탐욕스럽게 스스로를 키워간 불길은 기어이 마을의 절반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렸던 것이다. 미야미즈 신사가 품어 왔던, 금싸라기와도 같은 오랜 전통의 기록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때문에 토시키는 히토하나 후타바의 증언이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기록 약간과 신사의 의식에 남은 잔재들을 잘 끌어모아 퍼즐 맞추듯이 맞춰가면서 근원을 유추해 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일만 없었으면 훨씬 더 빠르고 확실하게 미야미즈와 이토모리의 신앙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이제와서 의미없는 생각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연구자로서 이런 생각을 아예 안 할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딸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 때 요츠하는 불 한번 잘못 내서 이름까지 붙었냐며 마유고로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솔직히 이 정도의 만행을 저질렀다면 이름 정돈 붙어서 후세에 누누이 전해야 마땅하다고 토시키는 생각하고 있었다. 딸의 동심 보존을 위해서 말로 내뱉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게 뭐야. 그래서 뭐라는 건데. 이래서는 결론이 안 나잖아.

해석할 수 없는 기록에 시달린 나머지 한창 머리를 쥐어뜯던 토시키에게 천사가 내려와 말을 걸었다.


“좀 쉬었다 하지 그래요?”


이렇게 연구에 지쳐 있다 보면 어떻게 알았는지 지금처럼 후타바가 딱 찾아와서 지친 그에게 활력소가 되어 주곤 했다. 어떤 때라도 그녀가 사랑스럽지 않은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지만 이렇게 지쳐 있을 때면 정말이지 그녀가 평소보다도 훨씬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스스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행복감에 빠져들어 버린다. 그 때마다 토시키는 마유고로가 비록 멍청하게 불이나 내는 놈이긴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순간을 계속 겪을 수 있게 해준 것만은 공로로 쳐줘도 좋지 않을까 하고. 잠시나마 그를 용서해 보곤 했다.

후타바가 가져온 쟁반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받아들며 토시키는 감사 인사를 했다.


“항상 고마워.”

“뭘요.”


인사와 함께 받아든 접시를 잘 보니 야키소바다. 간식 치곤 꽤나 본격적이다. 그냥 간식인데 너무 힘들인 거 아닌가 싶어 갑자기 조금 미안해져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이럴 것까진 없었는데, 너무 기합 들어간 거 아니야?”


하지만 역시 연애 생활 때도 그랬듯이, 언제나 한수 위인 쪽은 후타바였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남편에게 클린 히트를 먹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벌써 점심도 한참 넘었는데.”

“뭐라고?”


아내의 지적에 황급히 시계를 보는 토시키.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3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작할 땐 분명히 아침이었는데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믿을 수 없어.

꼬르륵. 꼬륵. 꼬르륵.

애써 현실을 부정해보려는 토시키였지만. 공복에 음식을 보자 격하게 요동치는 위장이 그 말이 맞는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적나라한 소리에 토시키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고 후타바는 웃음을 터트린다.


“거 봐요. 배꼽시계가 이렇게 요란하게 울잖아요.”

“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멋쩍음에 입만 다시며 부끄러워하는 토시키에게 후타바는 마지막 일격을 먹였다.


“얼마나 연구에 빠져있으면 함께 하는 점심시간도 홀랑 빼먹고… 어머님 조금 화나신 거 알아요?”


어머님. 장모인 히토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처음엔 꽤나 성격이 꼬장꼬장해서 토시키와도 자주 충돌하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부드러워지기도 했고, 토시키도 이제 신사 일에 완전히 익숙해졌기 때문에 몇 년간 큰 충돌은 없이 지내왔었다. 그래도 히토하가 화가 났다는 상황만은 여전히 무서웠기에 토시키는 놀라 되물었다.


“정말로?”


태연한 척 묻지만 속으로 무서워하는 게 뻔히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후타바는 속으로 웃는다. 이 정도에 속아 넘어가다니. 역시 나이는 먹었어도 순수하다니까. 그래서 좋지만. 살짝 웃어보이며 후타바는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거짓말이에요.”

“뭐? 거짓말이라고?”

“네. 당연히.”


속았다는 생각에 살짝 발끈하려던 토시키였지만, 웃는 얼굴에 대고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입만 쩝쩝 다시고 만다. 정말 고집불통이면서도 자기에게만은 약한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후타바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멋쩍음에 입만 다시던 토시키가 쭈뼛쭈뼛 히토하의 안부를 물었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좀 죄송스럽군. 혹시 나 때문에 기다리시기라도…?”

“아뇨, 그건…”


후타바는 대답하려고 했지만, 누군가 후타바의 말을 끊었다. 


“그래, 하던 건 잘 되어 가느냐?”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뒤를 돌아보았고, 방문 앞에는 히토하가 부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히토하가 말했다.


“자네 덕분에 모처럼 심심하지 않았구만.”

“저, 죄송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신관으로서 좀 일을 했어야 하는데 너무 두 사람에게만 맡겨버렸다며 토시키는 사과했지만 히토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닐세. 나도 방구석에서 늙어 주책바가지가 되는 것보다야 가끔이라도 일하는 게 더 좋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죄송한 건…”


엉거주춤 사과하는 사위에게 히토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네. 다음부터 연구를 하고 싶으면 그냥 내게 미리 말해주게. 하루 정도는 얼마든지 대신해 줄 테니.”

“정말이십니까?”


귀가 번쩍 뜨이는 말에 토시키가 깜짝 놀랐다. 그런 사위를 살짝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히토하.


“자네 속고만 살았나?”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잘 됐네요. 여보.”


원래 신사 일이 한가할 때면 혼자 짬짬이 시간을 내서 해왔던 연구였다. 가끔 정말 한가할 때면 히토하와 후타바까지 모두 모여 셋이 머리를 맞대고 신사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오곤 했다.

후타바가 남아있는 기록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 둔 데이터베이스를 진작에 구축해 두었기에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거기에도 누락된 부분이 당연히 있었고 그 부분은 후타바나 히토하가 경험으로 보충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십 년이 넘게 진행되어 온 연구가 요즘 들어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것도 같아서, 조금 더 열중하게 되다 보니 오늘 같은 일도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뭔가 성과는 있는가?”

“아직이네요.”

“흠, 항상 생각하지만 학자란 거 꽤나 성가시단 말이야. 우리는 그냥 배운 대로 하면 되는 건데.”

“저도 배운 대로는 합니다. 안 배운 것도 새로 알아내야 되는 게 문제지만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학자 같은 거 안 했을 텐데. 하면서 토시키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득 히토하는 처음 그가 집으로 인터뷰 차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성가신 날파리인 줄만 알았던 그는 결국 미야미즈의 가족이 되었고. 의미조차 모른 채 관습적으로 해 오던 많은 일들의 정체를 밝혀 주었다. 

생각해 보면 마유고로 때문에 그게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해 본 것도 꽤 오래 되었다.

히토하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전통을 유지하고 후세에 전하는 거야말로 우리 미야미즈 신사의 역할이지.”


토시키에게 다가간 히토하는 그의 넓은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러니 힘을 내시게. 자네는 일을 방치해서 미안하다곤 하지만 자네가 하는 연구 또한 어떤 의미에선 미야미즈 신사의 일인 게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지.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게나. 우리가 도울 테니.”


연이어 전해진 장모의 따뜻한 마음에 토시키의 가슴이 약간 벅차올랐다. 그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마울 게 뭐 있는가. 가족끼리 이 정도는 돕고 사는 게지.”


훈훈한 분위기로 빠져드는 둘. 그 둘을 보면서 함께 훈훈해지던 후타바는 문득 어머님 또한 자기처럼 점심을 걸렀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머님도 간단하게 뭐 좀 드시겠어요?”

“그러자꾸나.”


마침 히토하 또한 출출한 참이었기에 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후타바는 바로 먹을 것을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히토하의 시선이 토시키가 보고 있는 화면으로 집중되었다.


“흐음. 뭐라고 써 있는 겐가? 잘 안 보이는구만.”


운석, 낙하, 혜성, 소행성, 신체 등의 낱말이 중구난방 퍼져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사위에게 질문했다. 설명하지 못할 것도 없었기에 토시키는 순순히 설명했다.


“아, 이건 제가 생각을 정리한다고 대충 써 놓은 거라서 그렇습니다. 저만 보려던 화면이지요.”

“그래서 뭐라고 써있는 겐가?”


토시키는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 주었고 히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가 알던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던 것이다.


“음. 지금까지 많이 얘기해왔던 거구만.”

“예. 우리 신사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신체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림으로 보아서 운석 낙하는 거의 확실하다는 게 결론이었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다만 그 운석이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미?”


사실 예전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정도만 알면 되었다고 생각했던 히토하였다. 알아보던 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역사였으니까. 그러나 토시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운석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그것을 토시키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운석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듯 소행성이나 혜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작은 유성이 다 타지 않아서 떨어질 수도 있고. 다양합니다. 기왕이면 어떤 운석을 숭배했는지도 좀 알고 싶어서요.”


말을 끝낸 토시키는 옆에 있는 이토모리의 지도를 가져와서는,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찍었다.


“저희 신체가 있는, 산 정상에 움푹 파인 칼데라 지형은 운석에 의해 만들어진 게 거의 확실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아는 지질학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4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고 했었지?”

“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아직 치매는 아닐세.”

“다행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천문학자들과도 접촉을 해 보았습니다만. 2400년 전에 떨어질 만한 천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더군요.”

“유감이구만.”


뭔가 새로운 게 나올까 조금은 기대했었던 히토하가 결과에 유감을 표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토시키가 결과에 마저 확인사살을 했다.


“예, 이번에 찾아올 혜성에 대해서도 한 번 물어 봤습니다만. 궤도 계산 상 로슈 한계는 돌파하지 않을 거고. 지구로 떨어진 역사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답변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흐음. 상당히 유력한 후보였는데.”

“그렇지요. 아무래도 그 그림으로 봐서는 혜성일 확률이 높았으니까요.”


1200년마다 찾아오는 티아매트 혜성. 마침 2400년 전에 떨어진 운석과도 주기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토시키는 이 혜성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알아봤었다. 하지만 2400년 전의 기록은 전혀 없었고. 시간상으로는 남아있을 법도 한 1200년 전의 기록 또한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듯이. 

혹시 그놈의 마유고로가 불만 싸지르지 않았더라면 기록이 남아있을 지도 몰랐다는 생각에 토시키는 다시 한 번 아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 모든 감정을 토시키는 말 한마디로 털어냈다. 언제까지나 지나간 것에 사로잡혀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으니까.


“뭐, 아쉽지만 계속 알아봐야겠지요.”

“그렇겠지?”


남은 아쉬움을 함께 달래는 두 사람의 뒤로 후타바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들 하세요!”


기다리던 말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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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간단한 먹을거리를 가지러 간다고 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제대로 상을 내어버렸다고, 후타바는 약간 부끄럽다는 듯이 둘에게 고백했다. 오래 걸린 건 이래서였나. 하고 두 사람은 상황을 납득했다. 

안 그래도 배도 고팠겠다. 본격적으로 먹을 수 있는 편이 더 좋았기 때문에 토시키와 히토하는 후타바에게 순수한 감사를 표했고. 감사를 받은 후타바는 해냈다는 성취감에 절로 뿌듯함을 느꼈다.

소소하지만 즐거웠던 늦은 점심이 끝나고. 세 사람은 다시 방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은 뭐 짚이는 거 없어?”

“글쎄요… 저도 그 혜성 뒤로는 짚이는 게 없네요.”

“당신도…”


이렇게 난항에 부딪힐 때면 예전에 후타바가 가지고 있던 그 직감이란 게 가끔은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물론 그 빌어먹을 직감이 후타바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이 연이어 떠올라 곧 사라져 버릴 생각이긴 했지만.

아쉬움에 생각이 꼬여갈 때쯤, 타이밍 좋게 후타바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도 전 어떤 혜성이 맞을 것 같아요.”

“뭐?”

“후타바, 그 말 진짜인 게냐?”


갑자기 던져진 한마디 말에 토시키와 히토하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가지는 말은 아니었지만, 왠지 후타바가 말하면 거짓말도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며 두 사람은 가끔 그녀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곤 했다.

그래도 너무 기대가 크잖아요. 이젠 아무 것도 아니게 된 지 오래인데. 

후타바는 곤란한 심정을 가득 담아 두 손을 내저었다.


“아뇨. 별 건 아니에요. 단지 그 신체의 그림으로 봐서는 분명히 혜성이 맞는 것 같다는 정도니까.”


그럼 그렇지. 하며 토시키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다.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잡고 싶었는지 더 캐묻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천체라면 역시 혜성이니까. 그래도 마땅한 혜성이 없었지 않았어? 유성 같은 거도 꼬리 비슷한 건 가지고 있고.”

“이번에 오는 혜성, 정말 그게 딱 맞는 것 같았는데 진짜로 아니래요?”


하지만 후타바는 정말로 잘 모른다는 듯이 다시 물었고, 실망감에 토시키는 어깨의 힘을 조금 더 뺐다. 축 늘어진 채 토시키는 답했다.


“그래. 실망스럽지만 그게 지구에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을 거라는군.”

“그렇게까지 딱 맞는 조건의 혜성은 처음이었는데 참 아쉽네요. 정말.”

“누가 아니래.”


토시키의 씁쓸한 긍정을 마지막으로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끝에 히토하는 무의식적으로 푸념을 내뱉고야 말았다.


“내가 죽기 전에는 알아낼 수 있을런지.”


후타바는 깜짝 놀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어머니가 지식에 목말라하는 건 대체 얼마만인 걸까. 아니. 그런 적은 있었나? 그녀의 기억에 어머니는 마유고로 때문에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말만 했었지 이처럼 아쉬워하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에 후타바는 적지 않게 놀랐다.


“어머님?

“응? 내가 뭐라고 했느냐?”

“돌아가시기 전까지 알아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토시키는 무표정하게 방금 들은 말을 반복해 주었다. 듣고보니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히토하였다. 별로 할 생각이 없던 말을 실수로 입 밖으로 내버렸다. 나이 먹고 주책도 적당히 해야지 이건 좀 큰 주책 아닌가.

 

“으. 나이 먹고 괜히 주책만 늘었구만. 방금 한 말은 잊어주게. 자네한테 부담이나 더 지우려는 생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니까 말일세.”


희게 센 옆머리를 슬쩍 만지며 스스로를 겸연쩍어하는 장모의 모습을 보며 토시키는 조금이지만 깨달음을 얻었다. 호기심이란 건 학자의 전유물이 아니야. 우리 모두가 함께 궁금했던 거야. 함께 힘을 합쳐서 알아내야만 했던 거야.


“그거 유감이군요. 저는 앞으로 장모님한테 부담을 좀 지울 생각인데 말입니다.”

“당신?”


뜬금없이 튀어나온 토시키의 한마디에 후타바는 다시 놀라버렸고. 히토하 또한 눈이 둥그래져서 사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토시키는 계속 말했다.


“이렇게 혼자 틀어박히는 것도 좋지만. 역시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더 의견을 교환해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은. 음. 후타바 말을 빌리면 신관의 직감이 드는군요. 그러니 앞으로 저는 장모님을 좀 더 많이 귀찮게 할 겁니다. 괜찮으시겠죠? 후타바. 당신도?”


말실수를 해 버렸다며 속으로 조금은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사위가 좋게 받아들여 주었다는 생각에 히토하의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후타바 또한 남편이 자기를 더 의지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도록 하게. 난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저야 당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귀찮아도 괜찮다구요? 아무때나 불러만 주세요.”


두 모녀의 하모니에. 토시키 또한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고. 마침내 함께 웃어버렸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 목소리로 웃으며 다짐했다. 반드시 힘을 합쳐서 정체를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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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타키는 미츠하로서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후타바는 웃으며 돌아온 딸을 맞아주었다. 그런 후타바에게 타키는 꽤나 익숙하게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랑 아빠는?”

“음. 두분 다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셔.”

“중요한 일?”

“으응. 중요한 일.”

“그게 뭔데?”


호기심 많은 중2답게 망설임 없이 묻는 타키였지만. 후타바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왔던 미츠하 그대로였다면 그냥 가르쳐 줬겠지만. 지금 상태의 딸에게 가르쳐 줘 봤자 역시 쉽게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내일 따로 말해주든지 하자. 하고 마음을 정한 후타바는 지금은 대충 얼버무리기로 결정했다.


“아직 미츠하는 몰라도 되는 신사의 일이란다. 나중에 좀 더 본격적인 무녀가 된다면 그 땐 꼭 알려 줄게.”

“그래? 알았어.”


타키 또한 굳이 본격적인 미야미즈의 무녀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속셈엔 넘어가 주었다. 대신에 다른 얘기를 하기로 했다.

후타바와 이야기하는 건 마치 진짜 어머니와 하는 대화처럼 느껴져 매우 즐거웠기에. 타키는 미츠하가 될 때마다 없는 짬을 내서라도 저녁이면 후타바와의 대화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엄마는 이토모리 호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레 들어온 질문에도 후타바는 솔직하게 답했다.


“호수? 으음. 내 기억 속에는 항상 있던 거라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구나.”

“나도 그렇지만. 요즘 들어 아침저녁으로 학교로 오갈 때 호수만 보면 항상 마음이 포근해지고 힘이 나는 걸 느끼곤 해.”

“그렇구나. 확실히, 호수와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이야말로 이 마을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기도 하니까.”


후타바가 별생각 없이 끼워 넣은 ‘몇 안 되는’ 이라는 수식어에. 타키는 약간이지만 섭섭해하고 있었다. 입술이 약간 튀어나온 타키가 툴툴거렸다.


“이토모리도 꽤 이것저것 좋은 마을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머, 얘도 참. 얼마 전까진 도쿄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맞다. 미츠하는 이 마을 별로 안 좋아했었지. 하지만 미츠하는 미츠하고 나는 나다. 타키는 그 말을 조금 바꿔 말했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여러 의미가 함축된 타키의 말, 하지만 후타바는 딸이 말실수에 부끄러워한다 정도로 넘겼다. 사실 진짜 의미를 알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후타바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미츠하는 요즘 호수에 완전히 꽂혔구나?”

“응. 정말로. 가끔은 그게 인생의 낙인 것도 같다니까.”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그런 게 인생의 낙이면 안 된단다?”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태클을 타키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중2 창창한 나이에 세상 다 산 노인네 취급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당연하지! 텟시도 사야도 있고 요츠하도 있고 엄마 아빠도 있는데 고작 호수 정도가 내 인생의 전부겠어?”

“그럼. 나도 미츠하가 있어서 매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단다.”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고백(?)을 해 버린 두 모녀(?)는 그렇게 한동안 실없이 웃음을 주고받았다. 둘 중 먼저 웃음을 그친 건 후타바였다.


“그래. 그래. 혹시 미츠하는 호수의 어떤 면이 좋니?”

“음. 그 동그란 모양도 되게 좋고. 잔잔하게 마을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도. 물이 깨끗한 것도. 다 좋은 것 같아!”


후타바는 쫙 편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호수의 장점을 늘어놓는 타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도,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다 좋다니. 그거 나중에 남자친구 되는 애한테 해 주면 정말 좋아 죽겠다 얘.”

“엄마가 돼서 못하는 말이 없다니까.”


실없는 소리를 잔뜩 해대는 후타바를 살짝 타박한 타키의 의식이 약간은 다른 곳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미츠하의 남자친구라. 사실 타키는 거기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미츠하의 몸으로 살고 있었지만 타키는 미츠하가 아니었으니까.

가끔은 급우들에게 고백도 받곤 했지만. 그런 건 전부 미츠하에게 처리를 맡겨두고 있었고. 나중에 들어보니 미츠하는 모두 거절했다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녀석. 남자친구 사귈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이던데.

문득 타키는 미츠하의 미래의 남자친구가 과연 누구일지 조금. 정말 조금 궁금해졌다.


“미츠하?”


생각의 바다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타키를 후타바가 구해주었다. 생각해 보니 약간 부끄러워진 내심을 숨기기 위해 타키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어어어엄마. 혹시 그거 알아?”


어머, 남자친구라니까 당황을 하네? 얘 지금 뭐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문득 들었지만 후타바는 당장 추궁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되묻는다.


“뭘?”

“이 호수, 1200년 전에 운석이 떨어져서 만들어진 호수래.”


겸연쩍었던 나머지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호수에 대해 아무 말이나 주워 삼긴 타키. 하지만 딸의 말에 후타바는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감이 옆머리를 스쳐 지나갔음을 느꼈다. 지금 분명 뭔가 중요한 말이 나왔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후타바는 서둘러 반문했다.


“뭐라고?”

“그러니까. 음…”


말로 하기에는 조금 길어지기에 타키는 미츠하의 휴대폰을 켜서 익숙한 손길로 잠시 검색한 뒤, 후타바의 눈앞에 띄워주었다.


“일단, 여기 한번 봐 볼래?”


후타바의 모든 의식이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갔다. 이토모리 호수, 운석호. 생성 연도 서기 800년 가량으로 추정. 

미야미즈 신체는 2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2400년, 1200년, 그리고. 혜성의 그림. 1200년 주기로 돌아오는 티아매트 혜성.

쟁점은 바로. 한번 부딪힌 혜성이 같은 장소에 한 번 더 떨어질 확률이 있을까?

아마 천문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그럴 리는 절대로 없다고. 그렇지만 이미 그런 일이 한 번 일어났다면? 세 번째는?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도 일어난다. 두 번이나 속고서도 세 번이나 속은 놈은 바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세 번은 안 된다.

마유고로가 태운 기록이란 건, 어쩌면….

빠르게 돌아가는 후타바의 머릿속에서 어떤 퍼즐이 점점 맞춰지기 시작했다.


“엄마?”

“미츠하, 미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후타바는 황급히 집을 뛰쳐나갔다. 다급하게 내딛는 발걸음은 토시키와 히토하가 있는 신사 쪽을 향하고 있었다.


- 1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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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의 이야기.


아마 눈치 빠르신 분은 앞으로 혜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벌써 짐작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은 몰라도 세 번은 안 된다는 건 사실 실제로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꽤나 참고한 표현입니다만. 제가 무슨 사건을 참조했는지는 독자분들의 즐거움으로 맡겨 두겠습니다.


맞추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긍정은 해 드릴지도요.


이번 화도 분량이 꽤 깁니다. 사실은 그래서 조금 급하게 끊은 면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연재 주기 말인데. 앞으로도 최소 2~3일, 길어지면 4~5일 정도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전보다 팬픽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고. 문장 하나하나에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매일마다 기다려주시는 분이 안 계실 줄 알았는데 계셨다고 해서 꽤나 죄송합니다.


다음 편 써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봐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비판도 비난도 칭찬도 뭐든 좋으니 코멘트 하나라도 달아주시면 더욱 더 기뻐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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