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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없는 나무」 시리즈

* 본편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갤럼은 영화를 먼저 관람해 주세요.

* 설정 변경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1. 후타바가 죽지 않고 계속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직업, 인간관계 등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2. 후타바가 죽지 않으니 토시키 또한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3. 미츠하와 바뀌는 타키는, 미래의 타키가 아닙니다. 즉 2013년의 중2 타키와 17세 미츠하가 서로 몸이 바뀝니다.

4. 어느 정도는 본편을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바뀌었으니 만큼 변경점이 많을 예정입니다. IF가 싫으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 갤럼분께서 고맙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편 링크는 이쪽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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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변주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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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의 멤버에 언제나처럼의 일과. 오늘도 이어지는 카페 투어. 

원래는 두 명이었던 투어 멤버는 얼마 전에 미츠하가 멋대로 사귀어놓은 친구, 신타가 합세하게 되어 세 명으로 늘어났다. 멋대로 나도 모르는 친구를 만들어 놓곤 잘 지내 보시지! 라며 뻔뻔하게도 엄지손가락 치켜드는 이모티콘을 같이 보내시던 미츠하 씨의 얄미운 모습은 정말이지… 으으.

뭐, 막상 실제로 만나보니 다행히도 좋은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신타와 친구가 된 게 싫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신기하게도 죽이 잘 맞아서 친해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었다.


“뭐 마실래? 난 카페라떼 하나.”

“츠카사 너, 오늘은 소박하구만?”


싼 메뉴를 시키는 츠카사를 살짝 놀리는 신타였지만 항상 침착한 츠카사답게 어깨를 으쓱대며 유하게 넘겼다.


“나도 요즘 그렇게 넉넉한 건 아니라서 말이지.”

“나도 간단하게 아메리카노 하나만 마시려고.”


그런 츠카사의 흐름에 편승하는 척 나도 적당히 싼 메뉴를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아닌 것 같아보여도 은근 예리한 신타는 이번에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웬일이냐? 요즘은 카페만 오면 커피에 디저트에 아주 풀 세트가 일상이더만.”

“그러게? 타키 너 오늘 뭐 소화불량이라도 걸렸냐?”


내가 그렇게 누누이 돈 좀 아껴 쓰라고 했는데 이 여자가 또… 말 안 듣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친구들 입으로 다시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으으, 내 말만 잘 들어주면 착하지, 이쁘지, 별로 흠 잡을 것도 없는 여자인데.

결국 또다시 나는 하릴없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다. 그러고보니 왠지 요즘 이토모리에서나 여기에서나 자꾸 주먹을 떨 일이 생기는 것 같은데…. 아니겠지.


“그 녀석…”

““그 녀석?””


아차, 또 생각이 말로 나갔어. 젠장. 괜히 화들짝 놀라 고갤 절레절레 젓는다. 친구들은 얘 대체 뭐하냐는 듯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망할. 나도 내가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물어보지 마라.

한숨과 함께 나는 그냥 친구들을 무시하고 내 볼일을 보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그건 됐고, 여기요! 아메리카노 하나만 주세요.”


사실대로 말하면 배가 좀 고프긴 했지만, 내 지갑 사정상 주문은 간단하게만 해야 했다. 더 이상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

이유야 뻔하다. 요즘 누군가 자꾸 내 돈으로 비싼 디저트를 먹어대는 바람에 나라도 아끼지 않으면 파산할 판이니까. 뭐, 꿍쳐둔 비상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돈을 고작 이런 데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문을 마친 나는 힐끔힐끔 친구들을 보았다. 다행히도 더 이상 나를 물고 늘어지는 일은 없이 친구들 또한 각자의 메뉴를 주문했다.


“그래? 그럼 나도 간단하게 데운 우유로.”

“저기, 주문 좀 하겠습니다!”


각자의 주문을 마치고 나자, 둘은 이리저리 카페 안을 휘휘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 이러려고 오는 거니까 당연하지만.


“야, 여기 느낌 좋지 않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네?”

“여기 양식은 좀 고딕 양식 같기도 하고. 르네상스 양식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음, 그런가? 거 참 희한하네.”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 그럴 때면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곤 한다. 나랑 단 둘이었을 때는 건축에 조예가 없는 나를 고려해서 올 때마다 그냥 훑어보기만 하고 자기 감상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던 츠카사도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가 생기니까 꽤나 신났는지 안 하던 열변을 마구 토하고 있다.


“그러니까, 크기가 큰 거랑 예술적인 가치랑은 관계가 없다니까!”

“사나이의 로망을 무시하지 말라고 츠카사!”


뭐 이런 쓸데없는 얘기들도 섞어 가면서. 음. 하지만 꽤나 진지하게 공통의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잖아. 저렇게 진지하게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야.

나도 저렇게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해서 다시 내 앞길을 밝혀보고 싶다.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저 둘이 솔직히 부러웠다.

아직 나는 그 때 넘어진 채 그대로, 새롭게 열중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 아버지 말대로 혹시 신발끈 정도는 다시 묶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조바심을 갖지 말라 했지만, 그게 그렇게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건축이라.

이따금 츠카사는 건축이란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내게 피력하곤 했지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었다.

그 땐 내가 농구에 한창 빠져있을 때여서, 건축 따위야 나와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냥 대충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이제는 츠카사 녀석이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이따금씩 미츠하의 몸으로 살 때마다 체험하게 되는 이토모리 마을. 도쿄에선 몇 년을 살아도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생활감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유의 분위기. 텟시와 사야카가 데려다 준 마을의 많은 모습들.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마을에 매료되었다. 십년을 넘게 살아온 도쿄보다 한 달도 안 살아본 이토모리가 더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로.

틈틈이 읽어봤던 소설책의 주인공들은 꽤나 자주 고향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마음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나를 지탱해 주며, 항상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그럴 때마다 난 그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뭐가 치유야. 더럽게 힘들기만 한데.

하지만 이젠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속에서 삶에 치여 살다가, 그대로 도시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 속 고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곳이 더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없다면, 정말로 그런 곳이 이제는 없다면 내 손으로 한번 만들어 보고도 싶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입은 이미 제멋대로 열리고 있었다.


“야, 너희들은 건축이란 게 어디가 좋은 거냐?”

““엉?””


아차차, 이래가지고서야 그냥 시비 거는 거잖아. 이럴 생각은 전혀 아니었는데. 정말 이놈의 입방정은 언제나 고칠지. 약속이나 한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린 친구들 앞에서 난 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들키지는 않았겠지. 나는 빠르게 내 실수를 수습했다.


“아, 아니 그냥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래? 뭐, 그렇다면야.”


뭔 소린가 했네. 하면서 신타는 호인답게 별 생각 없이 넘겼다. 


“이 자식아. 시비 거는 줄 알았잖아.”


하지만 츠카사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던 모양인지 가볍게 툴툴거리며 내게 불만을 표시했다. 쳇, 까다로운 놈. 뭐 그래도 먼저 잘못한 건 나잖아? 사과는 해야겠지.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 하하… 미안.”

“뭐, 마음 넓은 이 타카기 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신다고?”


내 사과를 신타는 허허롭게 넘겼지만, 츠카사는 여전히 뭔가 남아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 임마, 그 생각보다 입이 먼저 나가는 성질머리 좀 고쳐 봐라. 애가 다 좋은데 항상 이상한 데서…”


저 녀석 오늘따라 꽤나 뒤끝이 센데? 츠카사는 착하고 좋은 놈이지만 가끔 화나면 정말 무서운 면도 있다. 설마 진짜로 화가 났나? 그럼 진짜 미안해지는데.

나는 최대한 티 안 나게 츠카사의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면 내가 눈치본다는 티는 안 나겠지.

그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푸하하하하!”


어라? 저 녀석 난데없이 왜 웃는 거야? 상황 파악이 안 되잖아 이러면. 어리둥절해있는 내게 여전히 깔깔 웃어대던 츠카사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임마, 고작 이 정도에 쫄았냐? 난 너처럼 다혈질이 아니라서 그렇게 아무 때나 화 안내.”

“뭐?”

“이 정도 어설픈 연기에 파닥파닥 낚이다니. 너 정말 갈 길이 멀구나…”


내 속을 박박 긁어대는 츠카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다혈질, 다혈질 거 참 말끝마다 잘도 붙여대는군. 그 다혈질이 뭔지 한 번 보여줘?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끝까지 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됐고. 건축이 뭐가 좋냐고 물었지?”


켁! 사레가 들려버리고 말았다. 마침 한마디 하려했는데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말이 끊겨버린 탓이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매정한 츠카사 놈은 뭔가 더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츠카사도 그럴 수 있는 운명은 아니었다.


“그거야 당연히 이따시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남자의 로망이지!”


츠카사가 했던 그대로 확 끼어들어 녀석의 타이밍을 끊은 신타는 두 팔로 큰 원을 그리며 자신만의 로망을 마음껏 피력했다. 나는 여전히 아까 들린 사레에 캑캑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나마 신타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어주었다. 나대신 복수해 줘서 고마워. 친구.

일격을 당한 츠카사의 말이 조금 뾰루퉁해졌다.


“야,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이러기냐?”

“헷, 친구가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데 1초라도 빨리 대답하는 게 임자지! 안그래 타키?”


그래, 츠카사. 너처럼 사람 들었다 놨다 하는 거보다는 낫다. 나 또한 신타를 도와 한마디 했다.


“어, 그렇지. 츠카사 니가 나쁜 거야. 괜히 친구 놀려먹기나 하고 말이야. 신타처럼 좀 솔직해져보라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의 츠카사. 뭐, 업보니까 받아들이라고. 신타와 나는 말없이 서로에게 씨익 웃어주고는,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한다. 짝!

그걸 말없이 지켜보던 츠카사가 문득 한숨을 쉬었다.


“하아, 뭐 그래서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봤어?”

“아, 그렇지.”


정작 피가 쏠려서 본론을 까먹어버렸다. 쳇. 나는 다시 머리를 긁적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아까 말한 대로야. 진짜로 그냥 궁금해서.”

“너, 혹시 이쪽으로 오려는 생각이 있냐?”


예나 지금이나 츠카사는 핵심을 잘 짚는다. 나는 순순히 그 말을 긍정했다.


“조금은 그럴지도.”

“그렇군…”


내 말에 츠카사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앉아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신타가 빈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타키. 어, 그러니까 진지하게 생각이 있다는 얘기야?”

“그렇게 될지도 몰라. 얘기를 해 봐야겠지만.”

“얘기?”


무슨 얘기인지 짐작하지 못한 신타를 위해 나는 살짝 부연해 주었다.


“아버지랑도 잘 얘기를 해봐야지.”

“그럼 아저씨랑은 아직 얘기를 안 해봤다는 거야?”

“응. 아직. 오늘 밤에 말씀을 드릴 생각이다.”

“그래, 같이 잘 얘기해 보라고.”

“왜냐?”


신타가 내게 격려의 말을 늘어놓으려던 와중이었다. 갑작스럽게 무색에 가까운 목소리로 츠카사가 나에게 무언가 이유를 물었다. 근데 뭘 묻는 건지.


“뭐가?”

“너, 분명 이런 데 별로 관심 없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진지하게 관심이 생겼다고?”


솔직히 굳이 말해 달라면 마음 같아선 못 말해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줄 수는 없다. 사실대로 다 말하면 결국 거짓말 하지 말라는 소리밖에 못 듣겠지. 몸이 바뀐 경험 때문이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뭔가 답은 해야겠기에 나는 대충 답했다.


“별로 관심 없었던 것도 맞고. 지금 생긴 것도 맞아.”

“그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집요하게도 캐어묻는 츠카사에게 나는 잠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어떻게든 앞부분은 새로 만들어내야 할 판이니까. 좋아. 떠올랐어.


“얼마 전에 아버지랑 다큐멘터리를 같이 봤는데, 거기 나온 이토모리라는 시골 마을이 참 아름다워 보여서. 보다보니 완전히 빠져 버렸다. 거기가 내 고향 같고 그래.”

“그래서?”

“그래서 그런 푸근한 광경을 좀 더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는 말이지.”


내 말을 듣고 신타는 음.음. 시골 그거 좋지. 하고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지만. 츠카사는 별로 납득하는 기색이 아니었고, 날카로운 어조로 다시 내게 캐물었다.


“그 프로그램 이름이 뭐지?”

“어… 『그리운 풍경을 찾아서』?”


사실 비슷한 주제의 다큐멘터리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댄 거다. 나 별로 TV엔 관심 없다고. 그 때였다. 갑자기 츠카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 또 생각이 입으로 나왔나? 그 표정처럼 그대로 굳어버린 목소리로 츠카사는 나를 불렀다.


“타키.”

“응?”

“왜 거짓말을 하지?”


아무래도 화가 난 것 같다. 하긴 거짓말을 한 건 맞으니까. 친구가 거짓말을 하는 게 눈에 딱 보이면 나라도 좀 화나겠지. 이해는 한다.

근데 어떡하란 말인가. 현실이야말로 진짜 거짓말 같은데. 나라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난처해진 내가 말이 없자 츠카사가 마저 말을 이었다. 네가 안 하면 내가 하겠다는 듯이.


“내가 이렇게 카페까지 순회하면서 그런 프로그램 하나 챙겨보지 않을 것 같냐? 매주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번쯤은 시간 내서 다 챙겨본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이토모리라는 마을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젠장, 실제로 챙겨 보고 있었을 줄이야.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다. 나야 자책하거나 말거나 츠카사는 사정없이 내 빈틈을 후벼팠다.


“너 원래 TV에 관심 없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TV를 봤다길래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역시나였어. 말해. 왜 거짓말을 한 거지?”


화났다. 저 녀석 분명히 화났다. 그것도 꽤나 심하게. 이럴 때 구구절절 변명해 봐야 화만 돋울 뿐이다. 아무리 내가 미숙해도 그 정도는 안다. 난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래. 맞아. 반쯤은 거짓말이야.”

“너…”

“타키…”


듣고 있던 신타도 약간은 실망했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진짜로 미안해지게스리.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다고.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진짜거든. 내가 이토모리를 봤고. 그 마을에 빠졌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전혀 거짓이 아니다. 그것만은 믿어 줘.”


나는 츠카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비록 말할 수 없는 사실은 말하지 못했지만, 내 마음에 떳떳하지 못한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거리낄 건 없다. 잠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던 츠카사가 이윽고 눈을 거두곤 한숨과 함께 다시 물었다.


“그럼 왜 거짓말을 한 거냐?”

“내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곳에 거짓말을 섞은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그래야만 할 사정이 있었어.”

“말해 봐.”

“말할 수 있었으면 거짓말을 안 했겠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후. 하고 츠카사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런 녀석을 옆에서 신타가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달래고 있었다.


“이봐. 그래도 그 마음만은 진짜라잖아? 그 정도면 된 거 아니겠어? 너무 그렇게 화내진 말라고. 거짓말을 한 건 좀 그렇지만 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겠지. 안 그래? 그보다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진정하라고. 열내서 좋을 거 없잖아?”


신타의 말에 츠카사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조금은 표정이 풀어진 채로 츠카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별 건 아니야. 타키가 진지하게 생각이 있다면, 친구로서 당연히 힘을 다해 도와줘야 하겠지만…”

“하겠지만?”

“도와주기 전에 지금 품고 있는 생각이 정말로 진지한 장래 희망인지. 아니면 그냥 농구를 잃은 자리에 대용품이 필요해서 무작정 친구 따라가는 것인지. 그 정도는 먼저 알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어.”

“아하. 그건 그럴 수도 있겠네.”


무언가 통하는 게 있는지 신타 또한 선선히 츠카사의 말을 긍정했다. 뭐, 그래봤자 나 또한 반박할 말도, 생각도 없었지만.


“그런데 나는 진지하게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게 거짓말이다 보니 순간적으로 울컥하더라고. 우리가 어디 보통 친구냐. 불알친구지. 근데 고작 이런 거도 솔직하게 못 말한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확 나더라.”


그래. 맞는 말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만일 내가 농구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친구가 별 생각도 없이 나 따라서 프로농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다고 생각해 보면 나라도 피가 거꾸로 솟았을 테니까.


“언젠가는.”

“응?”


내가 나지막이 내뱉은 한마디에 둘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그래. 언젠가.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언젠가는 숨김없이 너희들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을게.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정말로. 그러니 기다려 줘.”

“어쩔 수 없네…”


츠카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의자에 몸을 푹 묻었다. 신타는 언제나처럼 다시 웃음을 잔뜩 머금었다. 저 녀석이 웃지 않는 때는 언제인가. 문득 궁금해진다.


“건축에 대해 생각이 있다면.”

“응?”

“아니다. 핸드폰을 줘 봐.”


두서도 없이 다짜고짜 얘기를 꺼내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달라 하는 츠카사. 그 일련의 과정이 상당히 의아했지만 나는 말없이 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잠깐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던 츠카사가 내게 폰을 돌려주었다. 폰을 보니, 메모장에 책 이름으로 빼곡하다.


“너…”

“우리에게 물어봐도. 아직 중2 햇병아리일 뿐이니까…”


츠카사는 콧등을 문지르며, 자신 없다는 투로 말끝을 흐렸다. 언제나 객관적이고, 자신 없는 일이라면 아예 건드리지도 않던 저 츠카사가 저런 모습이라니. 상당히 낯설었다.


“이건 입문자들이 읽기 좋은 책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본 거다. 이따가 아저씨랑도 얘기해 보고. 그 때도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책들을 읽어봐. 기본 지식을 쌓는데도 좋고 너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어디어디, 진짜로 맞게 줬나 이 엉님이 확인해 보도록 하지!”


슉. 하고 뭐라 반항해 볼 사이도 없이 핸드폰을 뺏어간 신타는 목록을 잠시 훑어보더니, 빠르게 돌려주며 한 마디 보탰다.


“음. 역시 모범생답군. 정말로 좋은 책들만 추천해 줬는데? 읽기도 쉬운 책들이니 꼭 읽어봐.”

“너까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신용도가 두 배로 올라가는군.”

“이봐. 나는 못 믿겠다는 거야, 뭐야?”


서로 너스레를 떤 우리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함께 웃는다. 그 웃음의 끝에서, 츠카사가 결론을 냈다.


“아무튼, 우리도 기본기에 대해 그렇게 큰 자신은 없으니 기본은 우리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책을 보며 스스로 익히도록 하는 게 맞겠지. 어느 정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왔다 싶으면 그때 다시 우리에게 모르는 걸 물어봐. 그럼 그 때야말로 정말 성심성의껏 알려줄 테니까.”

“츠카사…”


조금은 감동에 젖어버린 내 목소리. 그게 츠카사에게도 느껴졌는지 녀석 또한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이왕 하는 거. 대충할 생각은 없다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타키.”

“역시 우리의 에이스 츠카사님답게 아주 그냥 똑 부러지는구나! 하하! 마음에 든다!”


신타는 츠카사를 칭찬하며 동시에 등을 사정없이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뭔 칭찬만 했다 하면 저러는 버릇이 있는데. 저거. 무지 아프다. 소리만 들어도 퍽. 퍽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게 장난 아니다. 근데 자꾸 저러면…


“저기. 손님분들. 조용히 해 주세요.”


예상대로, 종업원분이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고. 우리는 할 말도 없이 그저 부끄럽게 몸가짐을 조심할 뿐이었다. 이봐 친구들. 여긴 공공장소란 말이야. 사회도덕은 지켜야지.


#


“그래서?”

“아. 그리고 금방 집에 들어와서 아버지한테 말씀을 드렸지. 나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이야. 반대가 심할 줄 알았는데.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아셨는지 금방 납득해 주셨어. 지금은 츠카사가 추천한 책 몇 권을 먼저 읽는 중이야. 아까 들어오면서 빌려왔거든.”

“타키, 정말 다행이야! 축하해!”

“별 말씀을.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미츠하 너 덕분이지. 나야말로 고마워.”

“흥, 어떻게 보면이 아니라 그냥 내 덕분 아냐? 더 고마워하라고!”

“그것도 그렇네. 이토모리도 너랑 몸이 바뀌어서 볼 수 있었던 거니까. 나랑 몸이 바뀌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너, 부끄러운 거 잘도 말하네…”

“누군가한테 배웠어.”

“으으…”


오늘은 서로 몸이 바뀌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몸이 바뀌지 않더라도 저녁만 되면 서로에게 전화를 거는 게 습관이 되었다. 분명 몸이 바뀌는 날에만 하는, 다음 날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전화였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그래도 싫지 않다.


“타키?”

“아, 미안. 그래서 뭐라 한 거야?”

“너, 자꾸 내 말 제대로 안 들을래?”

“하하, 갑자기 생각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그만.”

“누나 말 안 들으면 나중에 자다가 가위 눌려요!”

“이봐. 평소엔 누나 취급 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요하더니 이럴 때만 누나냐…”

“억울하면 너도 나이 먹든가!”

“거 빨리 늙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뭐?”

“아무튼 이제 와서 누나누나 해봐야 별로 와 닿지도 않네요. 포기하시죠?”

“크윽…”


어쨌든 나이는 적게 먹은 쪽이 깡패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술 먹고 나한테 그렇게 말했으니 아마 틀리진 않을 거야. 미츠하도 저렇게 분해하고 있고.

아까 패배의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말이 없던 미츠하를 불렀다.


“미츠하?”

“응?”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응… 아니! 그건 아니야. 갑자기 왜?”

“너, 아까 처음에 뭔가 말하려던 거 아니었어?”

“그래? 그렇게 느껴졌다면! 유감이지만 아니었습니다! 내일 수업은 중요한 진도 나가니까. 혹시 바뀌면 이해는 못하더라도 꼭 제대로 필기해 놓으라고!”

“알았어. 알았어. 이거 나도 빨리빨리 진도를 따라잡든가 해야지 서러워서…”

“이제야 제대로 공부 시작한 운동부 출신한테 선행학습까지 바랄 정도로 난 야박하지 않으니까 괜히 무리하지 마!”

“알아. 알아. 몇 번을 들었는데 당연히 알지.”


그럼, 그럼. 처음에 내가 예습이라도 해서 미츠하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예상외로 미츠하는 펄펄 뛰며 날 말렸었다. 3년 차이 진도를 이제 와서 극복하겠다니 제정신이냐고. 시험 전까지 이 현상이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냥 하던 거나 열심히 하라며 마구 쏘아붙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항상 괴로웠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씨가 그땐 꽤나 고마웠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없다. 난 츠카사가 추천해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미안하지만, 읽던 책은 다 읽고 자고 싶으니까. 오늘은 끊는다. 자세한 건 일어나서 일기를 봐. 너도 남길 거 있으면 일기로 남기고.”

“어, 응! 그래 알았어. 잘 자!”

“그래. 너도 잘 자.”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약간의 아쉬움과 상실감이 몰려온다.

내가 끊고 싶어서 끊었으니 기분이 이상해질 일이 없는데. 다른 사람과 전화할 때는 이런 일이 없는데. 왜 미츠하한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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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끊어졌다. 타키 저 고얀 녀석이 감히 나와의 전화를 그렇게 빨리 끊고 싶어하다니. 좀 섭섭해야 할 것 같았지만. 오늘의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전화했다간 나도 믿을 수 없는 곤란한 사실 하나를 무심코 얘기해 버릴 뻔했으니까.

그런 걸 어떻게 말해. 말해봤자 미친 애 소리밖에 더 듣겠어? 그것도 이토모리랑은 크게 관련도 없는 애한테.

나는 아까 슬쩍 엿들은 얘기를 다시 떠올려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얘기하던 건. 분명 그런 이야기였다. 잘못 들은 게 절대로 아니다. 나도 내 귀를 의심했지만. 내 귀가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 근데 그럼 엄마 아빠의 정신상태를 의심해야 하는 건가? 혼란스럽다. 정말로.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이토모리에 혜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언제나 금슬 좋은 부모님이 정말 오랜만에 가라앉은 얼굴로 진중하게 나누던 이야기는, 분명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 14화. 변주곡 (2)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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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서두에 썼듯이 모 갤럼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왕이면 후타바까지 포함된 미야미즈 집안의 실루엣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전달했습니다만 아직까지 바쁘신지 결과물이 안 나와서 일단은 초안이라도 먼저 썼습니다.


이번 화는 타키가 어쩌다 건축쪽으로 빠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 화는 대부분 마지막에 언급된 후타바와 토시키의 토킹 어바웃으로 채워질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분위기가 하나의 통일된 장편이라기보다는 한 세계관 아래에서 쓰여지는 단편 다큐멘터리 연작에 가깝다는 느낌도 듭니다. 애초에 쓸 때도 세계관에 맞춰서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찍듯이 쓰고 있다는 느낌이구요. 굳이 말하자면 느그판 인간극장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래도 옴니버스식은 아니고. 단편 모음집도 아닙니다. 분명히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가끔 필요하다면 회상씬이 붙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본편에 나온 장면을 다시 회상하지는 않을 겁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탈자 및 각종 지적 항상 대환영합니다.


어떤 내용이든 코멘트 남겨주시면 방방뛰며 좋아하니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화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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