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혼(許婚) - 혼인을 허락함


흔들리는 기차의 안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숨을 죽이고 있다.

“저.. 타키 군?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니까 좀 침착 하는 게 어때?”

미츠하는 팔걸이에 얹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타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타키는 그 손길의 따스함을 느끼며 손가락을 멈추고 미츠하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 설마 첫 대면이 이렇게 될 줄이야..”

“타키 군! 타키 군이라면 아빠가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을 거야. 타키 군과 우리 아빠는 닮았는걸?”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뜬 타키는 미츠하를 응시했다.

“그럼 나한테 아빠라고 불러볼래?”

“뭐?!”

타키는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능글맞은 표정으로 미츠하를 놀렸다.

그런 타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미츠하는 크게 동요했지만 금세 정신을 다잡고 수줍은 표정으로 타키를 올려다보았다.

“아.. 아빠…?”

양 손을 다소곳이 입 앞에 가지런히 모은 미츠하는 어미를 바라보는 새끼고양이와 같은 표정으로 타키를 불렀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를 보고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타..타키 군?”

미츠하로부터 황급히 고개를 돌린 타키의 모습에 미츠하는 양손으로 타키의 얼굴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런 미츠하의 시야를 기다리던 것은 얼굴을 붉히고 최대한 그녀로부터 시선을 피하는 타키의 모습이었다.

“저.. 타키 군?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나도 곤란한데..”

미츠하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했는지 떠올렸다.

결혼을 약속하러 가는 상대를 아빠라고 부르다니, 보통연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행동일 것이다.

미츠하 역시 얼굴을 붉히며 타키의 시선을 피했다. 둘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먼저 흐름을 깬 것은 타키였다.

“미안.. 미츠하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미츠하가 너무 귀여워서…”

타키의 말에 미츠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더욱 빨개진 얼굴은 토마토와 견주어도 될 수준에 도달했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의 배에 손을 살포시 얹으며 말했다.

“여자아이면 좋겠네.. 방금 미츠하의 모습을 보니 딸이라면 미츠하를 닮아서 분명 예쁘고 귀여운 아이가 될 것 같아.”

타키의 손길에 안정감을 느낀 미츠하는 타키의 손을 양손으로 덮었다. 그러고는 볼을 부풀리며 새침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아들이 더 좋아! 타키 군을 닮아서 잘생기고 늠름한 아이가 될 것 같은걸!”

둘은 지기 싫다는 듯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눈싸움을 시작했다.

바깥의 풍경이 빠르게 변화하며 나무나 산의 그림자가 타키의 등과 미츠하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다.

그러기를 약 세 번, 기차가 터널에 진입하고 차 안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둘의 모습이 흐릿해져 사람의 윤곽만 보이기 시작했다. 둘의 승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둘은 서로를 바라본다.

길고 긴 터널도 끝에 달하고 다시 찾아온 햇빛이 눈부시게 세상을 비춘다.

그 햇빛에 미츠하가 잠시 눈을 찡그리자 타키가 입꼬리를 올린다.

“미츠하, 너 지금 눈 감았다.”

“내 자리는 햇빛 때문에 어쩔 수 없잖아! 타키 군 치사해! 어차피 터널에서 나 몰래 눈 감았지?”

미츠하는 검지를 들어 타키를 가리키며 항의했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의 항변에 곧바로 대응한다.

“그건 미츠하도 마찬가지 아니야? 둘 다 터널에서 눈 깜빡였다고 치고 터널에서 나오면서 2차전 시작이라고 치면 미츠하의 패배잖아?”

놀리는 듯한 타키의 목소리에 미츠하는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웃기 시작했다. 장난을 치는 아이와 같이 깔깔 웃는 미츠하를 보고 타키도 웃기 시작한다.

급변하는 창 밖의 풍경과 새어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배경 삼아 둘은 웃었다.

무엇이 그리 웃긴지 마냥 웃기만 하는 타키와 미츠하에게 기차의 소음은 웃음소리의 화음일 뿐이었다.

둘만의 세계에서 먼저 탈출한 것은 타키였다.

“그래서 미츠하는 딸이 싫어?”

타키의 물음에 미츠하도 정신을 되찾고 살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여자아이가 나오든, 남자아이가 나오든, 이 아이는 나와 타키 군의 소중한 아이야. 만약 딸이 나온다면 다음엔 아들을 낳으면 돼.”

아직 미츠하의 배 위에 얹어져 있는 타키의 손으로 미츠하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럴 때는… 타키 군이 힘내줘야 돼?”

미츠하의 귀여운 부탁에 타키는 이성의 끈이 풀릴 뻔했지만, 공공장소임을 깨닫고는 금방 자중했다.

“만약 그 반대의 경우는 미츠하가 각오해.”

미츠하는 눈을 휘둥그래 뜨며 타키를 바라봤다. 자기 나름의 필살공격이었는데도 타키는 보기 좋게 받아 쳤다. 그 공격은 역으로 미츠하에게 닥쳐왔다.

미츠하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잡고 있던 타키의 손을 세게 잡았다. 소심하게 응.. 이라고 그의 말에 호응하자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아직 복구중인 이토모리의 주변, 타카야마의 한 주택가에 둘은 도착했다.

골목길을 걸어 어느 주택의 앞에 멈춰 섰다. 타키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미츠하는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시오.”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남성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랑이는 늙어도 호랑이라는 것일까. 그 근엄함에서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타키는 식은땀이 흐르는 뒷목에 손을 올려 땀을 닦아냈다.

그런 타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츠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빠, 저 왔어요.”

덜컹, 대문이 열렸다. 미츠하는 문을 열고 타키에게 손을 건넸다.

타키는 미츠하의 손길에 응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쥐 죽은 듯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했다.

짧지만 영원하다고 느껴지는 복도를 지나 거실에 도착했을 땐, 미야미즈의 1)가문(家紋)이 박힌 2)키나가시를 입은 토시키가 차를 따르고 있었다.

미츠하를 발견한 토시키가 그녀의 곁에 서있는 타키를 보고 잠시 움찔했다.

“자네는?”

짧지만 간결한 질문. 그 질문만으로 미야미즈 토시키라는 남성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타키는 덤덤한 모습의 토시키를 보고 잠시 겁을 먹었다.

그런 타키의 손을 미츠하가 등 뒤로 살며시 잡아주었다. 그 손에서 용기를 얻은 타키는 힘차게 입을 열었다.

“타치바나 타키입니다. 따님과는 현재 교제중인 관계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타키의 당찬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토시키는 살짝 미소를 흘리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기다란 직사각형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미츠하와 타키 앞에 토시키는 마주앉았다.

잠시 동안 서로를 응시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타키였다.

“저희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대충 예상은 하고 있다. 미츠하도 그럴 때가 온 것이겠지. 장모님을 불러오마. 둘은 잠시 여기서 기다리거라.”

토시키는 타키의 말을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시키가 나가자 냉담했던 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으아.. 죽는 줄 알았어.”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타키 군.. 우리 아빠도 사람이야. 너무 겁먹을 필요 없어.”

미츠하는 한숨을 푹 쉬며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타키를 격려했다.

“여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는데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미츠하의 아버지.. 너무 점잖으셔서 대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그 말에 미츠하는 겸연쩍은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하기 위해 온 거지만 사실 통보나 마찬가지고 말이지..”

타키는 미츠하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타키는 서둘러 자세를 고쳐 정좌로 앉았다.

미츠하의 할머니인 히토하와 아버지인 토시키가 타키와 미츠하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깐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히토하였다.

“자네.. 나와 만난 적이 있나?”

안경을 고쳐 쓰며 타키를 응시하던 히토하가 꺼낸 첫마디였다.

“네? 오늘이 처음 뵙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키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말로만 전해듣던 미츠하의 할머니였다.

미츠하보다 연하지만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히토하로부터 느껴져 타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자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로구나. 이것도 무언가의 연이겠지. 그래서, 오늘 온 목적은 무엇인가?”

토시키와 미츠하는 히토하의 발언에 주의를 기울이더니 시선을 타키에게 옮겼다.

타키는 미야미즈 가문 세 명의 시선에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입을 여는데 성공했다.

“미츠하.. 아니, 따님을 저에게 주세요. 금 같은 손녀겠지만 저에게 주세요. 제가 반드시 미츠하를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미츠하는 얼굴이 새빨개져 타키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토시키와 히토하를 응시했다.

타키는 고개를 숙이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답변은 매우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

“안 된다.”

토시키가 말했다. 미츠하가 따지려는 듯 입을 벌리는 순간 먼저 말을 꺼낸 건 히토하였다.

“미츠하는 줄 수 없네. 이토모리가 재건 중이야. 미야미즈 신사도 재건되겠지. 우리 미야미즈 가문의 여성은 신사를 이어갈 의무가 있어. 미츠하, 너도 기억하지? 그날의 일을, 너는 어엿한 미야미즈다. 미야미즈의 무녀로서 신의 힘을 받아 마을을 구하는데 성공했지. 우리는 그 은혜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겠지?”

미츠하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와 히토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타키를 본 토시키가 답답한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타치바나 군이라고 했나? 자네, 미츠하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지?”

타키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것은 토시키가 타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 기회를 놓친다면 토시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타키는 스읍 숨을 들이쉬고는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제가 못하는 것이라면 하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서 해줄 것입니다.”

지금의 타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하지만 토시키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잡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타키는 턱 선을 타고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등은 땀으로 가득 젖어있었다.

타키와 미츠하가 동시에 입을 열려고 할 때 또 다시 먼저 입을 연 것은 히토하였다.

“자네는 미츠하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냐고 물었던 것이네. 미츠하는 미야미즈의 무녀로서 살아갈 의무가 있어. 아직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것 같지만 미츠하는 이미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네.”

타키가 미츠하를 바라보자 미츠하는 조용히 시선을 아래로 떨굴 뿐이었다.

“미야미즈 가문의 사위는 데릴사위로서 신사에 들어와 신관을 지내야 해. 이것은 자신의 가문을 버리고 꿈을 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가혹한 길이네. 자네가 지금 겁먹은 이 남자조차도 중간에 내팽개친 일이야.”

“장모님!”

히토하가 이은 말을 토시키가 큰소리로 끊었다. 히토하는 아랑곳 않고 타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자네는 미츠하를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겠는가?”

“모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가문을 버리고 데릴사위로 들어가더라도 제 가족과 연이 끊기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세상은 전화나 메일 등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와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제 꿈은 미츠하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모조리 버릴 것입니다. 이건 제 의무이기도 합니다.”

타키는 즉답했다. 미츠하는 그런 타키의 모습에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타키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장 타키를 불렀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이미 결혼할 명분은 충분하지 않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토시키의 눈썹이 움찔했다.

“의무? 명분? 웃기는군. 미츠하, 너는 조용히 하고 있거라. 자네가 말하는 의무는 대체 어디서 온 의무지? 명분? 미츠하가 말하는 명분은 뭔가? 설마 남자친구라는 이유인가? 그런 소리를 할 것이라면 여기서 당장 나가게.”

미츠하는 토시키의 말을 듣고 조용히 타키의 답을 기다렸다.

타키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토시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가 있습니다.”

토시키와 히토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타키를 계속 바라봤다.

“미츠하에게 제 아이가 있습니다. 미츠하가 말한 명분은 이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 아이는 제가 미츠하와 결혼할 명분이 아닙니다. 제가 미츠하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를 하나 더 주었습니다. 미츠하를 책임진다는 의무를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의무감으로 미츠하와 결혼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미츠하의 남자친구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미츠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타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울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토시키의 오른손이었다.

“미츠하가 임신? 결혼의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임신을 시켰다고? 자네같이 생각 없는 사람의 무엇을 믿고 미츠하를 맡기라는 건가!”

토시키의 언성이 높아졌다. 무릎 위에 얹어진 타키의 손에는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미츠하 역시 표정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사라는 이름의 자리는 순식간에 죄인의 심문대로 변모했다.

분위기는 급속도로 최악을 향해 치닫았다. 그런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기 위해 히토하가 입을 열었다.

“미츠하, 이 남자의 말이 사실이냐?”

히토하의 물음에 미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토하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 자네..”

“타치바나 타키입니다.”

타키는 빠르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아까까지의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자네는, 미야미즈 타키로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히토하의 물음에 타키는 즉답했다.

“그런 준비는 이미 끝마치고 왔습니다.”

“자네는 데릴사위에 대해 몰랐지 않나? 대체 무슨 준비를 하고 온 거지?”

타키의 답변에 토시키가 빠르게 파고들었다.

타키가 당황하자 이번엔 미츠하가 말했다.

“타키 군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어요. 설령 준비가 아직 덜되었다고 해도 괜찮아요. 타키 군은 혼자가 아니에요. 나도 있고, 뱃속의 아이도 있어요. 타키 군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우리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미츠하는 확신에 찬 눈으로 토시키를 강하게 바라봤다.

히토하는 그런 미츠하와 타키를 보며 차를 홀짝이더니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마치 토시키와 후타바가 떠오르는구만. 타치바나라고 했나? 자네는 미츠하의 아버지와 닮았어. 미츠하, 너는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구나.”

토시키가 휘둥그래진 눈으로 히토하를 바라봤고 타키와 미츠하는 어리둥절한 채 서로를 바라봤다.

“후타바와 토시키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했지. 그때 토시키는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후타바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후타바도 곁에서 거들며 나를 몰아세웠지. 결국 둘의 고집에 못 이겨 둘의 결혼을 허락했단다. 처음에도 후회했고 나중에도 후회했지만.. 미츠하, 너를 보면 그런 생각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구나. 둘이 만났기 때문에 네가 태어났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으니 말이다.”

히토하를 제외한 셋은 조용히 히토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허락하마. 타키라고 했지. 자네는 앞으로 미야미즈 타키로 살아가야 할걸세. 신관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야. 내 옆의 이 남자는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워했으니 말이야. 그래도 견뎌낼 수 있겠는가?”

토시키는 포기했다는 듯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미츠하는 이미 밝아진 표정으로 타키를 바라봤다. 타키 역시 미츠하와 같은 표정으로 당차게 말했다.

“네! 부족한 몸이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타키의 말을 마지막으로 히토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아직 자네가 석연치 않아. 그래도 장모님의 뜻을 존중하도록 하지. 앞으로의 행동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게나.”

토시키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히토하의 뒤를 따랐다.

“저.. 감사합니다! 토시키 씨.”

“아버님으로 됐네. 장인어른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아무래도 나이 먹은 게 실감이 나버리는구나.”

토시키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며 거실을 나섰다.


히토하와 토시키가 나가고 타키는 털썩 드러누웠다.

“으아..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수고했어 타키 군.”

미츠하는 바닥에 누워있는 타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타키의 머리 근처로 다가가서 무릎을 팡팡 친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머리를 들어 미츠하의 무릎 위에 얹었다.

“고마워 미츠하.”

“고맙긴.. 나야말로 고마워. 진심을 털어놔줘서. 정말로 나를 위해서 꿈을 포기해도 괜찮은 거야? 타키 군, 건축가가 되고 싶었잖아.”

미츠하는 타키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긴장 탓인지 땀에 흠뻑 젖은 타키의 머리는 약간 축축했지만, 미츠하에게 있어 그것은 불쾌한 느낌이 아니었다.

“방금 말했잖아? 내 꿈은 미츠하와 함께하는 거야. 내 건축가라는 진로가 그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건축가를 포기하겠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건축가는 츠카사와 타카기의 영향을 받은 진로야. 하지만 미츠하는 달라. 미츠하는 오직 내 의사로, 내 마음으로 결정한 나의 목표야. 내 진짜 자리는 그 어디도 아닌 미츠하의 옆이라고.”

타키의 볼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물방울은 차갑고 불쾌한 것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보다도 따스한 물방울이었다.

놀란 타키가 고개를 돌려 미츠하를 바라보자 미츠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 미츠하?!”

타키가 미츠하를 불렀을 때 상황을 파악한 미츠하가 움찔했다.

“어라? 나는 지금 분명 기쁠 텐데…”

미츠하는 실제로 기뻐하고 있었다. 타키의 진심을 듣고 더 이상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기뻤지만, 그 감정과 반대되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타키는 손을 들어올려 미츠하의 뺨을 향해 뻗었다. 미츠하의 뺨에 도달한 손은 살며시 그 뺨을 쓰다듬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훔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미츠하는 그 손길을 거절했다. 흐르는 눈물을 보고 타키는 깨달았다.

미츠하가 슬플 때 웃던 이유를, 기쁜데 울고 있는 이유를.

그리고 자신도 그래왔던 이유를.

“미츠하, 사랑해.”

타키는 말했다. 뜬금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갑작스러운 고백은 그 어떤 말보다 적절했다.

“응! 나도 사랑해! 여보!”

흐르는 눈물을 방치한 채 미츠하는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타키에게 있어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웠으며, 약 10년의 세월을 찾아 다녔던, 반드시 지키고 싶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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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문(家紋) - 한 가문의 표지(標識)로 정한 문장(紋章)

2)키나가시 - 남성용 기모노의 한 종류, 평소의 약식 복장

후기-

리퀘스트 받은 소재는 '속도위반하고 토시키에게 결혼 허락받으러 가는 이야기' 입니다.

2시간 30분 안에 써오기로 해놓고 이런 분량을 3시간 좀 넘게 썼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쓰면서 열심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의 단편이라 신나기라도 했던 걸까요?

궁금하신 점, 지적할 점 모두 댓글로 남겨주세요. 모두 답변을 달아드립니다.

지적은 핫산의 글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편] 링크 모음집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19525


장편] 너를 위해서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874 (完)


장편] 네가 없는 3년 / 내가 없던 3년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900 (完)


장편] 처음 온 이토모리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9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