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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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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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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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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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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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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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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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만입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유와 잡설은 후술할테니 일단 본편을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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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왜 이래. 그러게, 비 오려고 그러나-.
라는 주변 소리답게 하늘은 어떻게 봐도 좋은 날씨라고 할 수 없었다. 슬쩍 보기만 해도 시비를 걸 양아치마냥 쳐다보면 바로 비를 쏟아 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짙은 회색빛 구름.
어디 안 나가고 집에만 있고 싶게끔 만드는 색이지만 평일에 그럴 순 없으므로 그 색을 잠시 지워두고 학교로 가는 중이다.
언제나 익숙한 길 위로 뻗어있는 익숙한 풍경.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봇대 근처에서 느릿느릿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그 고양이를 본 것만으로도 익숙한 풍경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있잖아. 너희 나중에 뭐 할거야?
애들과 잡담을 하던 와중 슬슬 진로 희망서를 적어내야 할 시기이기도 해서 그런 화제가 나왔다. 뭐 할꺼냐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애들은 바로 즉답이 나온다.
회계사 공부 해 보려구. 우리집 술집 하니까 그거나 이어갈까 생각중인데. 꽃집이려나, 좋아하니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예약 중~. 바텐더가 되는 게 꿈이야. 등등.
의외로 다들 장래에 대해 착실히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있자니 친구 한명이 물었다.
‘넌 뭐가 되고 싶어?’
그 질문에 나는 ‘글쎄 그냥 대학 가고 회사 다니다 현모양처로~’라고 장난스레 넘겼다.
쿠릉. 흐리기만 하던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방과 후 종소리가 울리고 나서 모두 집에 가거나 동아리로 가서 교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집에 안 가냐는 친구들의 말을 대충 얼버무리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간간히 음악 동아리의 합창소리, 악기소리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저 사람들도 저걸 하고 싶고, 되고 싶기에 저기에 있는 거겠지.
‘넌 뭐가 되고 싶어?’
낮의 그 질문은 피할 틈도 없이 내 마음에 꽂혀 입안 가득 씁쓸한 맛을 감돌게 했고 그것은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는-
친구들이 적당히 있고 따돌림 당하지도, 따돌리지도 않는다. 성적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불량한 짓을 하지도 않는다.
가정사와 가족들 관계도 원만, 의식주에 큰 문제도 억압도 없기에 딱히 지금 삶에 불만은 없다.
한마디로 평범하다. 그렇다는 것은 -잘하는 것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다.
장래에 뭐가 되고 싶다, 뭐가 하고 싶다 그런 것 역시 없다.
목표 없이 막연하게 사는, 마치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는 따분한 허수아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외면하고 밝은 분위기란 거적을 뒤집어쓰고 제 갈길 가는 척 도망치는 그런.
아이들이 보인다. 다들 캔버스 앞에 서서 차근차근 색을 칠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하며 뭐라도 그리려 해도 내 손엔 붓도, 팔레트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도구를 빌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지만 다들 자신만의 도구와 색을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맹렬하다 싶을 정도로 집중하기에 쉬 빌려달라는 말을 걸 마음도 수그러졌다.
슥삭 슥삭하는 덧칠하는 주변의 소리가 귓속에 가득 찬 나머지 나는 멍청할 정도로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지직하며 이젤의 다리가 부서지면서 캔버스가 앞으로 엎어지며 귀를 찢는듯한 굉음이 났다.
'교내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모두 귀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아리 활동을 끝내는 방송 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도 없던 교실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난 하늘은 아까보다 더 짙은 회색을 우악스럽게 내보이고 있었다. 눈앞의 의자 다리를 보자니 꿈에서 본 이젤이 생각나 재빨리 가방을 정리하고 학교를 나왔다. 집에 가는 내내 하늘은 천둥 소리 하나, 비 한 방울 안 떨어졌지만 나는 달렸다.
왜 그러니, 밥 좀 더 먹지 않고. 입맛이 없어서, 먼저 들어갈게요.
저녁 식사 때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지만 먹는 둥 마는 둥 고사하고 방에 올라와 불도 켜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앉아 위를 바라보았다.
조용하면서도 어두컴컴한 천장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나를 덮칠 것만 같아 고개를 내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도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지만 저 멀리 불빛이 비치는 게 보였다. 번화가 건물의 빛일까, 그냥 단순한 가로등일까, 교각을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일까. 어찌되었건 모두 빛나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반짝반짝.
다들 빛나고 있어. 라며 나 자신이 어둡기 때문에 빛이 잘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몸을 웅크려 어깨를 감쌌지만 손끝마저 어두운 나를 감싸도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저 불빛을 보지 않으면 정말 지탱할 것 없이 무너져 내릴 거라고 생각해 계속 불빛을 바라보는 치사한 짓을 계속했다. 뭐야 나 천장이랑 다를 게 없잖아. 그렇게 중얼거린 혀끝으로 어두움이 느껴졌다.
어두운 맛이 좀 지워질까란 마음으로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여니 희미하게 찬 기운이 코와 입술을 스치며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낮에 잔뜩 끼어있던 구름이 조금 걷혀져서 달이 희미하게 보였다.
방금 보고 있던 빛과 비슷한 정도로 희미했지만 어둠 속의 구름을 해친 달은 윤곽일지언정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 드러내고 있었다.
나갈래. 밖에 나가고 싶어.
그 하얀 구멍이 내 마음의 짐을 조금 빨아들이기라도 했는지, 나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겉옷을 챙겨 입었다. 이 시간에 어디 가니? 그냥 바람 좀 쐬러요.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일찍 들어와. 응.
목적지 없이 무작정 나왔기에 어디로 갈까 서성이다가 강변 가를 걷기로 마음먹었다. 죽 이어진 강변가라면 계속 걸어도 좋고 탁 트여있어 달을 보기도 좋을 것이다.
가로등도 곳곳에 있고 산책하고 운동하는 사람도 많으니 치안도 별 문제가 없다. 그렇게 강변가의 산책로에 첫 발을 디딘 나는 달이 있는 방향을 따라서 걸었다.
5월 중순이지만 하루 종일 햇빛을 안 받은 날이라 그런지 선선하다 못해 쌀쌀했다. 약하지 않지만 짧은 주기로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그런 느낌을 더욱 체감시켜주었다.
괜히 나왔나 하고 후회가 조금 들었지만 집에 있을 때의 그 씁쓸함을 생각하면 몸이 차가운 지금이 차라리 나았다.
계속 걸으며 차가운 기운에 몸을 맡겼지만 그마저 적응되니 이내 마음 속 괴로움이 다시금 기어올라왔다. 오히려 찬 몸과 어우러진 그것은 더욱, 괴롭게 마음을 침식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밋밋하고 아무런 특징도 없어. 빚다 만 반죽, 새기다 만 조각, 지운 흔적만 남은 스케치. 주변을 보니 어느새 너무 멀리 걸어와 사람들도 가로등이 뜸해진 구역까지 왔다.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눈 앞 저 멀리의 풍경은 더욱 깊은 검정색의 큰 원을 그린 듯 했다. 마치 동굴처럼. 저 동굴로 들어가면 숨기고, 감추고, 잊을 수 있을까. 검정 안 쪽에서 숨죽이며 있을 수 있을까. 망설임과는 달리 나는 동굴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체념하고, 도피하고, 이러면 되겠지. 늘 그랬잖아. 무감각하게. 매일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면서 그렇게 내일도 모레도 매일매일-
쉭, 퐁-.
산책로에서 들릴 꺼 같지 않은 소리에 정신이 들어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책로 바깥쪽 멀지 않은 곳에 널찍한 장소가 있고 거기 있는 벤치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아까보다 뜸해진 형광등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보니 여자였다. 단정하지도 그렇다고 산발도 아닌 약간 삐친 장발의 그 여자는 후드 티와 편한 바지를 입고 병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여자 혼자 맥주라니,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에 조금 거칠게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잘못 들었겠지. 발걸음을 옮기지만 한번 더 내 이름이 들려온다. 뭐지 환청인가 아니면…. 조금 무서워져서 뛸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얘~!!!”
하는 크고 아까보다 크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는 익숙한 목소리. 그렇게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세번이나 불렀는데 왜 그냥 가려고 한거니.”
“죄송해요. 환청이거나 이상한 사람인줄…”
“하긴 이런 곳에서 무리도 아니었겠구나. 뒷모습이 익숙해서 일단 불러본건데.”
“그렇다 하기엔 여러 번 부르신 거 같은데요.”
“인생 삼세판이잖아? 마지막은 크게 불러봤지. 그래도 아니면 그만두려 했고.”
“그래도 선생님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우연이네요.”
비닐봉지를 사이에 두고 옆에 앉아계신 미야미즈 선생님에게 대답했다. 비닐봉지에는 병맥주 서너병과 안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늘 그러하시듯 집에서도 단아하고 우아하게 입으실 줄 알았던 선생님은 자유스러울 정도로 편한 옷을 입고 머리 정리도 대강 하신 모양새다.
첫 데이트 준비 때 뵙던 모습하고는 또 다른 느낌의 신선함이었다. 마감을 끝내 잠시 숨을 돌린 만화가나 소설가가 미인이라면 이런 이미지일까.
“이 시간엔 어쩐 일? 산책하러 나온 거니?”
“네. 조금 멀리 와버렸네요. 선생님은요?”
“음… 뭐. 보다시피.”
맥주병 목을 잡고 살짝 흔드셨다. 찰랑하는 또렷한 소리가 병 입구에서 울려퍼졌다.
“혼자 나오신 거예요? 타치바나 씨는요?”
“아마 지금쯤 영화 보고 있을걸. 끝나고 잠깐 친구들하고 만난다고도 한 거 같고.”
“보통 영화는 애인하고 같이 보거나 하지 않나요?”
“타키 군 취향엔 맞는데 나한텐 별로 안 맞는 영화라서. 신 고질라라는 괴수 영화라 그랬거든. 평소에는 못 볼 건축물의 파괴에서 미학을 느낄 수 있다나 그렇다나 봐. 그래서 그냥 잘 보고 오라고 했어.”
“그래도 조금 매정한 느낌이 드는데요. 애인 놔두고 혼자만 즐기는 거잖아요.”
“그렇지도 않아.”
맥주를 한모금 드시고 나서 말했다.
“학교에서 이미 퍼질 대로 퍼졌으니 말하는 건데, (이때 선생님은 조금 쑥스러운 듯 웃으셨다) 난 타키 군을 사랑하고 있어. 타키 군 역시 나를 아껴주고 있구…. 그래도 우린 모든 일상과 취미를 공유하진 않아. 강요도 안하고. 일할 때 이외랑 휴일엔 언제나 함께 있지만 그래서 서로의 개인적인 생활과 시간도 분명 소중하고 필요한 걸 깨달았거든. 잠깐씩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해.”
“네에…….”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는 걸 넘어 존중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이 고슴도치 좋아해서 애완동물 샵 가끔 갈 때 있거든? 그때 타키 군한데 권유해보곤 하는데 응 난 괜찮아 다녀와- 하면 응 알았어 다녀올게- 하고 다녀오는 거야. 갔다오고 나면 재밌었어? 어땠어? 응 재밌었어 타키 군은 뭐했어? 하는 이런 대화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그리고 함께하는 순간도 분명 많고 아침에 눈을 뜰 때랑, 잘 때 같이 있어주는 걸로도 충분히 행복하거든….”
술을 드신 분답지 않게 선생님은 진지하고 유연하게 말씀하셨다. 어, 근데 방금 뭐라 하셨지?
“아니 잠깐요, 아침이랑 잘 때 같이요?”
“……앗.”
“선생님 혹시… 동거하세요?”
아뿔싸라는 단어를 말하는 대신 표정에 가득 담고 입을 가려버리셨다.
“아아… 정말. 술만 마시면 이실직고 해버린다니까.”
“아니, 성인이시고…… 예, 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다 큰 성인 개인의 사생활이니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이래봬도 부모님들한테 허락 받고 하는 거니까, 그래도 학교에 소문내면 안 돼, 알았지?”
라며 선생님은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소리를 내셨다.
살짝 필사적인 그 모습이 귀여웠던 나머지 나도 똑같이 검지 손가락으로 쉬-하여 화답하였고 우린 서로 소리 내어 웃었다.
“보통은 캔맥주 가져와서 먹지 않나요? 병맥주라니…”
“타키 군이 영화 볼 동안 나는 나가서 맥주나 마실까- 하니까 타키 군이 이거 마셔보라면서 주더라구. 이래봬도… 짠~ 수입 맥주.”
선생님이 내미신 맥주병은 평소 보던 맥주병보다 아담한 사이즈의 작은 크기였다.
시원한 파도 그림에 굵은 폰트의 빅 웨이브란 글씨 아래는 필기체로…골든…에일이라 적혀있었다.
“수입 맥주는 처음 봤어요. 미국 껀가요?”
“응 하와이 맥주래. 흔한 라거가 아니라 에일이라는 맥주 종류인데 처음 마셔보는 건데도 맛있네~.”
라고 말씀하시며 한모금 들이킨 후 상쾌한 느낌으로 하~ 소리를 내셨다. 비닐 봉지를 뒤적거리며 안주를 꺼내시는데… 초콜릿?
“맥주 안주로 초콜릿 드시는 거예요?”
“특이하지? 선생님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알려주신 조합인데 이거 괜찮아. 당분이 숙취에 도움 되기도 하고. 왜 그 위스키 봉봉이란 초콜릿도 있구.”
“헤에.”
“선생님 얘기하니까 또 생각나네. 연락 마지막으로 드린 게 언제더라~.”
취기가 오르셨는지 또박또박 말씀하시면서도 말꼬리가 조금씩 꼬이는 게 들린다.
상기된 얼굴과 풀어진 눈의 기분 좋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느껴서 나는 말을 꺼냈다.
“저기, 선생님.”
“응?”
“맥주 조금만 마셔보면 안되요?”
“…너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니?”
“알고 말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도 알고 있겠네.”
“그건 모르겠어요.”
“안돼.”
“한 모금만요.”
“안돼요, 미성년. 선생님으로서 허락 못해.”
“어른한테 배우는 술은 괜찮다고 했는데….”
“그건 보통 부모님 얘기지.”
“선생님이 술 가르쳐 주셔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맥주를 먹고 싶은거니?”
왜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싶은거니. 선생님을 만나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있자니 하루종일 느꼈던 무거운 기분을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 이 질문에 나는 다시금 그 기분을 떠올렸다. 맥주를 드시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그 기분이 조금은 씻겨 내려갈까 싶어 맥주를 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가를 쳐다보며 마음 속 여러 생각 중 첫 마디를 꺼냈다.
“오늘 학교에서 애들하고 얘기하다가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다른 애들은 난 이거 하고 싶다, 저거 하고 싶다 다들 얘기를 꺼내는데 전 아무 대답도 못했어요. 다들 꿈이 있고 장래를 준비하고 있는데 난 이게 뭐하는건가 싶은게 뭐라고 해야되지…자동차 미터기 바늘 있잖아요, 그게 갑자기 0으로 뚝 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뭐라도 해야지 싶어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계기도 보이질 않더라구요.”
선생님은 고개를 살짝 숙이신 채였다. 살짝 풍기는 술기운에 나 역시 취한 것일까 취중진담마냥 계속 마음에 담아둔 말을 두서없이 꺼냈다.
“이러다 혼자 뒤처지는 거 아닐까, 진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니 다급해져서 더욱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도 답은 안보이고, 무작정 뭘 한다해도 그게 내가 찾는게 아니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떻해, 그때 가서 뭔가 다시 시작하긴 늦을꺼 같단 두려움도 들고요…. 백지처럼, 그래요. 백지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될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 어떻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에 결국 답을 말했다. 늘 피하고 싶었던 답.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봐, 얕보일까봐, 알고 있지만 얼버무리고 도망쳐온, 이미 알고 있던 답. 마음 속의 말을 토해내면 개운해져야겠지만 서늘할 정도로 정답이었던 그 말은 입에서 귀로 들어와 다시 한번 불안한 괴로움이 되었다.
결국 나는 무릎을 꿇어 안고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아버렸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셨다. 이런 두서없는 얘기를 잠자코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죄송할 지경이다.
“백지 같다라…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니?”
“네……?”
“백지니까, 글을 써도 되고, 그림을 그려도 되고, 종이접기를 할 수도 있고.”
“…….”
“아무것도 아니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거잖아.”
선생님이 조금 웃었다. 베일 듯한 시원한 웃음에 나는 눈만 내밀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선생님 학창 시절 얘기 들려줄까? 재밌는 얘기는 아냐.”
잠자코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경청의 뜻을 비치자 맥주를 조금 드신 후 얘기를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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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짤리네요. 상 하로 나누겠습니다. 여기서 끊어도 될려나...
6화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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