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보면 낯선 산의 정상에 있다.

내 품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다.

찰랑이는 흑색의 단발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어깨를 간질인다.

그녀는 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포대기에 둘러싸여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이처럼 그녀의 표정이 풀어졌다.

는 지금까지 여자와 연이 없었지만 그녀를 알고 있다.

이 여자를 알고 이 여자를 찾고 있었다.

그 순간 종이를 찢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멀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웬일인지 울고 있다.

일어나기 직전까지 꾸었을 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만이 오래도록 남는다.


는 침대에서 일어나 교복을 입는다.


는 이불에서 일어나 외출복을 입는다.


는 거울을 보며 까슬까슬한 머리를 만진다.


는 노을 빛의 매듭 끈을 꺼내 머리에 두른다.


는 하계보충을 위해 여름방학이 없는 여름을 나선다.


는 줄곧 찾고 있던 누군가를 찾기 위해 현관을 나선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같이 봉사활동을 가지 않겠느냐?”

아빠의 갑작스런 제안에 나는 두 눈을 끔뻑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근처의 교회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니 교회에서 도와주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하더구나.”

“아빠는 봉사활동으로 이미지관리를 하지 않아도 지지기반은 충분하실 텐데요.”

아빠는 그날의 재해에서 얻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국회에 진출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미지관리를 위한 봉사활동은 사양이다. 나는 아빠를 쏘아붙이며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봉사활동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있지. 그럼에도 봉사활동을 가겠다는 이유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의 고아들을 돕고 싶을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봉사는 미츠하 너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닐 것 같다만?”

아랑곳 않고 내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넘긴다. 그와 동시에 내가 같이 참여할 이유를 덧붙인다.

정치인과의 말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의 제안에 수락한다.

내 대답을 들은 아빠는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츠하, 난 너와 같이 봉사활동을 가보고 싶었단다.”

이 말을 남기고는 부끄러운지 빠르게 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혼자 남겨진 나는 달력을 확인했다.

벌써 혜성이 떨어지고 3년도 더 지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지금까지 크리스마스에 예정이 없으면 같이 놀자는 제안을 셀 수 없이 받아왔지만, 모두 예정이 있다며 거절해왔다.

그날 이후로 다른 누군가와 어울릴 수 없었다.

그 누가 함께 있어도 내 잃어버린 무언가를 채워주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던 텟시와 사야조차도 나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었다.

나는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되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쌓으며 온갖 제안을 거절하고 살아오던 나에게 거짓말을 안 해도 될 구실은 정말 고마운 제안이다.

나는 내심 아빠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크리스마스 당일이 찾아왔다.

나는 아빠와 함께 근처의 한 교회로 찾아갔다.

“아! 의원님! 오늘은 잘 부탁 드립니다!”

정치인인 아버지에게 깎듯이 대하는 교회의 목사에게는 진저리가 났지만 그래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며 참았다.

버려진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회의 고아원은 언제나 물자가 부족하다고 한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부모 대신 하룻동안 산타가 되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우리 봉사단은 탈의실로 가서 산타복을 입었다.

준비된 옷을 입고 준비해둔 선물을 들고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의 문을 열었다.

여러 명의 산타가 나타나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잠깐의 정적을 뒤잇는 것은 환호였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성별도 다양한 산타의 집단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산타가 되어 준비해온 선물을 건네며 아이들과 놀아준다.

정신 없이 놀아주고 일을 하고 있을 무렵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언니! 언니는 산타 맞지?”

“응? 그래. 언니는 산타야. 뭐 궁금한 거라도 있니?”

순수한 어린아이의 질문에 동심을 위해서라며 거짓말로 화답한다.

“그럼 언니는 왜 웃지를 않는 거야?”

아이의 질문은 망치가 되어 내 정신을 가격한다.

급작스러운 기습에 내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자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산타들은 모두 호!호!호~! 하고 웃잖아? 나 책에서 봤어! 그런데 언니는 왜 웃지를 않는 거야? 웃지 않는 산타라니, 난 본 적도 없는걸?”

어린아이치곤 꽤 정확한 지적이다. 아니, 오히려 순수한 어린아이기에 가능한 질문일까.

“얘, 너는 이름이 뭐니?”

“아카리!”

나의 물음에 이 아이는 해맑게 답변한다.

“아카리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니?”

나의 질문에 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카리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듯 우리 산타들도 각자가 달라. 언니가 산타지만 웃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산타들과 살짝 다르기 때문이야.”

“뭐가 다른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살짝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언니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어. 아마 언니는 그걸 찾을 때까지 웃지 못할 것 같아.”

어린애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린아이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나에게 한심함을 느꼈다.

“그래? 언니가 꼭 웃을 수 있게 되면 좋겠네!”

아카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원의 말을 남기며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와~ 비다!”

크리스마스의 때아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카리는 비를 좋아하는 듯 해맑게 웃으며 비 내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얘! 아카리! 비 오는데 나가면 감기 걸려!”

나는 아카리를 데려오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비를 맞으며 뛰노는 아카리를 붙잡고 허리를 숙여 설교하자 귓가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앞을 봐야 한다. 앞을 보면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앞을 봤을 때는 신호에 걸린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난데없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크리스마스.

세간을 밝히는 연인들의 이벤트에 나는 부질없음을 느낀다.

정처 없이 길을 방황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난 10월의 어느 날, 나는 이름 모를 산의 정상에서 깨어났다.

싸움이라도 했던 걸까. 같이 갔던 츠카사와 오쿠데라 선배와는 따로 도쿄로 돌아왔다.

약 2개월 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희미하다.

그곳에 왜 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중학생 때 혜성이 떨어져 이토모리라는 마을이 사라졌다.

당시의 나는 이상할 정도로 그 사건에 빠져들어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그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어째서 이토모리에 갔는가.

중학생 때 잠시 빠져들었던 사건인데 왜 이제야 이토모리 마을로 찾아갔는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라지기 전의 마을 사진을 보며 어째서 그리움을 느끼는가.

그리고… 나는 대체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가.

두 달 전의 여행은 나에게 많은 의문과 상실감만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내가 찾는 것이, 누구인가. 무엇인가. 혹은 어디인가조차 모르는 주제에 상실감은 커져만 간다.

비 내리는 날 도시 특유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의문을 풀기 위해 츠카사와 오쿠데라 선배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질문에 그들은 질문으로 답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우리의 여행은 세 명의 미스터리로 남은 채 우리를 괴롭혔다.

그 둘은 의문을 금새 털어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 의문의 끝에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다.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의문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풀리지 않는 퍼즐을 들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비에도 아랑곳 않고 거리를 쏘다니는 연인들을 보니 츠카사와 오쿠데라 선배가 떠올랐다.

둘은 이토모리에 다녀온 뒤로 부쩍 사이가 좋아진 모양이다.

그 뒤로도 자주 만나더니 결국은 연애에 골인했다.

“그 둘은 지금쯤 노느라 바쁘겠지..”

쓰디쓴 혼잣말은 빗소리에 묻혀 사라져간다.

나는 분명히 오쿠데라 선배를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둘이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성에 대한 마음을 빼앗겨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 뒤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어차피 여자와는 연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왠지 나랑 친했던 여자가 한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여자랑 인연이 없던 삶이 만들어낸 망상으로 치부하며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비 내리는 길을 찰박찰박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당시에 오른손에 그어져있던 직선은 대체 뭐였을까…

왼손에도 그어져있긴 했지만 약간 달랐다. 오른손에서만 애절함이 느껴졌다.

그 뒤로 오른손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의미 없는 동작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도 포기하지 못한다.

나의 많은 의문과 잃어버린 무언가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딸랑

근처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봐야 한다.

소리가 나는 곳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내가 찾아 다니던 무언가가 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신호에 걸린 버스가 정차해있었다.

저 버스가 아니다. 그 건너편에 무언가가 있다.

나는 버스가 떠나가기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고 버스가 떠나갔다.

그곳에는 닫히고 있는 고아원의 문이 있을 뿐이었다.

고아원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로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고3의 여름이 찾아왔다.

그날의 방울소리는 뭐였을까.

그 뒤로 나의 의문에 대한 힌트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는 점점 잊혀져 가는 의 의문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는 침대에서 일어나 교복을 입는다.


는 이불에서 일어나 외출복을 입는다.


는 거울을 보며 까슬까슬한 머리를 만진다.


는 노을 빛의 매듭 끈을 꺼내 머리에 두른다.


는 하계보충을 위해 여름방학이 없는 여름을 나선다.


는 줄곧 찾고 있던 누군가를 찾기 위해 현관을 나선다.


등교를 위해 전철에 올랐다.

오늘따라 싱숭생숭한 마음에 이상함을 느끼며 신주쿠 역에서 내렸다.

정처 없이 방황하던 발은 를 한 신사의 계단으로 안내했다.

신사라는 존재에 웬일인지 그리움을 느낀다.

는 참배라도 하고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내려온다.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올라온다.

오랜만에 발견한 신사에서 는 이토모리의 신사를 떠올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는 이미 신사에 올라와 세전함에 돈을 넣고 참배를 하고 있었다.

‘제발 그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에게 좋아한다는 말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린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는 도쿄를 방황한다.

3년째 찾지 못하는 그 사람을 하루아침에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는 이루어질 리 없는 소원을 빌고 자리를 나섰다.

터벅터벅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누군가의 옆을 지나가자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을 올라가 누군가의 옆을 지나가자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그 방울소리다!


는 급하게 뒤를 내려다본다.

는 급하게 뒤를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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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는 타키킁이고 는 미츠하입니다.

워드파일로 글 쓰기 왜 이렇게 어렵나요?

분량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ㅠㅠ

주최자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거나 쓸랍니다.

단발 갤주님은 나오잖아요! R-18 가산점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써봤습니다.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어디가 부족한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어디가 아쉬운지

좋았던 것이 있다면 어디가 좋았는지

모든 지적과 의견을 받아들이고 답해드립니다.

추천과 댓글은 이 핫산의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편] 링크 모음집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19525


장편] 너를 위해서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874 (完)


장편] 네가 없는 3년 / 내가 없던 3년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900 (完)


장편] 처음 온 이토모리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9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