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한 후, 그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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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링크 모음-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560336





 머리에,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른다. 내가 이런 일을 했었던가? 아니,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다. 손이, 발이, 눈이, 가슴이 기억하고 있다. 불과 방금 전까지 떠오르지도 않던 ‘텟시’라는 명칭에, 내 가슴은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것처럼, 깊은 신뢰를 담고 있다.


 “야, 타키. 괜찮아?”


 텟시가 상당히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온다. 하지만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 앞에 순간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풍경이 떠오른다. 그 장소. 거기에 가야 한다. 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감은, 마치 끈으로 나를 묶기라도 한 것처럼 그 곳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취할 행동은 한가지다.


 “텟시, 차 빌릴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달려서, 구형 하이에이스 차량의 운전석에 올라탄다. 시동을 건다. 낡은 엔진이, 신음을 토해내는 것처럼 쿨럭이더니 이내 규칙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까 이거 수동이잖아? 수동 운전 안 한지 몇 년 됐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엑셀을 밟자 엔진이 힘겨운 소리를 토해냄과 동시에 차가 둔하게 가속하기 시작한다. 비춰진 사이드 미러에서 텟시가 손을 흔들며 뭐라고 외치는 모습이 보이지만, 멈추지 않는다. 미안, 텟시. 이 빚은 나중에 꼭 갚을 테니까. 안 망가트리고 잘 쓰고 돌려줄게.


 아마도, 그 눈을 감은 순간 보였던 장소는, 7년 전 내가 이토모리에 왔을 때, 밤을 보낸 산 꼭대기. 길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은 GPS라도 탑재한 것처럼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리고 있다. 그걸 믿고, 차를 그 방향으로 몰아간다.


 수동식 기어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운전을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길은 더 이상 차량으로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아져 있다. 어쩔 수 없지. 차에서 내리고, 열쇠로 문을 잠근 후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기 시작한 몸은 폐활량 이상으로 산소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가쁜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달리면 달릴수록, 가슴은 두근거린다. 힘들어서라던가, 온 몸에 피를 돌리기 위해서 라던가, 그런 느낌이 아니다. 이 느낌은 꼭, 미츠하를 만났을 때처럼, 떨리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다.


 나무 뿌리를 뛰어넘는다. 뛰어내린 둔턱이 예상보다 높아, 착지하는 순간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손으로 땅을 짚어 상반신을 지탱한다. 넘어질 뻔했다, 그렇지만 달리는 기세를 늦추지 않는다.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앞으로 멀지 않았다. 감이, 느낌이, 몸의 기억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이제 곧 금방이라고, 심장의 터질 것 같은 고동이 이야기한다.


 산의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기다. 이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7년 전, 내가 밤을 보냈던 장소, 저기다. 저기에만 다다르면, 모가 되든 도가 되든, 결정 난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무엇이 결정 날지도 모르지만, 확신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으로 오르는 경사면의 가장 윗부분에 발을 디딘다.


 신비로운 광경이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된 광경이다. 칼데라 지형의 중앙에, 만화에서나 보던 세계수 이미지의 나무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주위를 둥글게 실개천이 감싸, 나무가 있는 땅은 마치 그 주변과 떨어진, 별개의 영역같이 느껴졌다.


 칼데라의 경사면에 발을 디딘다. 작은 돌과 흙이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발과 닿은 면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흘러내렸다. 미끄러진다. 두 팔을 벌려 몸의 균형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발을 디딘다.


 경사면을 내려오는 데만 제법 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에 답답한 마음에 고의로 미끄러지거나, 아예 굴러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랬다가는 뭐가 어떻게 되기도 전에 뼈가 먼저 하나 부러질 것 같아 보류했다. 이제 앞으로 정말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솔직히 여기서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확률이 훨씬 크다. 하지만 실망하게 되더라도, 가슴의 이 떨림을, 확인해보고 싶다.


 녹초가 깔린 평지를 건너가, 실개천의 앞에 선다. 그저 실개천일 뿐일 텐데. 경계선 같은 느낌이다. 별일…… 없겠지, 아마도. 물을 가로질러 징검다리처럼 놓아져 있는 넓은 돌들의 첫번째에 발을 디딘다. 물의 위이기 때문일까? 공기가 갑자기 싸해진 느낌이다. 다음 돌로, 다음 돌로, 발을 옮긴다. 완전히 건너는 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앙의 거목은 커다란 너럭바위에 뿌리를 휘감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더 이상 갈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슴의 떨림은 아직 더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후우…… 눈을 감는다. 어차피 눈으로 한번 훑었을 때 찾기 어려운 거라면, 시각으로 찾기는 힘들 거다. 가슴의 떨림에 의지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발을 디딘다.


 “아야-“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서부터 깨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역시 바보짓이었겠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이 눈을 감는다고 드러날 리가……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이런데 사용하라고 있는 말이겠지. 허리 정도의 높이로, 거대한 바위 밑에 틈이 있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는 걸까? 설마 무너지지는 않겠지. 이런 바위에 깔리면, 진짜 문자 그대로 쥐포가 될 것 같은데. 툭툭- 하고 거대한 바위를 쳐본다. 괜찮을 거다, 아마도.


 허리를 숙이고 틈 사이로 들어오자, 작은 계단이 아래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려가라는 거겠지. 휴대 전화를 꺼내 조명을 킨다. 원래라면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조용한 터치음이 무서울 정도로 크게 들린다. 고작 LED 하나의 작은 빛이, 회색의 공간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환하게 비추었다. 이 분위기를 수호하는 것이 있다면, 분명 벌 받겠지.


 축축한 습기와 이끼가 껴 있는 계단에 발을 디딘다. 여기서 미끄러져서 머리를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도와주러 올 사람도 없기 때문에 사망 확정이다. 반쯤은 주변의 돌과 구분도 안 될 정도로 무너진 계단을 그렇게 조심하며 내려오자, 밑에는 약 2평 남짓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휴대전화의 조명을 앞으로 향한다.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동굴의 모습에, 지극히 인공적인, 돌을 깎은 자그마한 제단의 모습이 불빛에 떠오른다. 그리고 제단의 오른쪽에 단단히 밀봉된, 이끼로 뒤덮인 잘록한 호리병이 하나, 바닥에 뚜껑이 열린 채로 놓여진 병이 하나. 그리고…… 굉장히 익숙한 형태의, 이 장소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이질적인 모습의 물건이 하나.


 “……저거, 내 가방이잖아. 어디 갔나 했는데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수학여행 갈 때, 그토록 찾았던 가방이다. 그때 정말 집안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다가, 결국 포기하고 문 닫기 직전의 가게로 뛰어가서 새 가방을 샀었는데. ……그러면, 7년 전에 이토모리 까지 온 내가, 여기까지 들어와서 가방을 벗어두고, 다시 산 꼭대기로 올라온 다음에 하룻밤 자고 그대로 내려왔다는 거야? 중간과정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그렇지만 여기에 가방이 있다는 건, 아마 그랬을 확률이 높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고 2의 나.


 가방 옆에 놓여있는 병으로 조명을 돌린다. 얼마나 오래된 걸까? 도자기 재질로 추측되는 병은(보통, 전통 제례라던가, 그런 거에 사용되는 건 다 고급 재질이니까.) 전체가 초록빛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뭘 담은 거지? 조명을 킨 휴대전화를 빛이 잘 비추도록 바닥에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조심스럽게 병을 들어올린다. 역시나, 제법 무겁다. 뭐가 든거지? 병을 흔들자 찰랑-하는 맑은 액체소리가 들린다. 아직 남아있다. 뚜껑을 연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인지, 이제 바닥에 깔릴 정도로 아주 조금의 양만 남아있는 것 같지만. 애초에 이 정도 이끼가 덮일 정도로 긴 시간을 뚜껑을 연 채 방치해 둔거라면 모조리 증발했어야 정상이다. 아마도 이 장소의, 습하고 차가운 성질이 액체의 기화를 최대한 억제해준 모양이다.


 병의 입구에 코를 가져간다. 희미한 알코올 냄새. 술이 담겨있는 걸까? 휴대전화의 조명을, 병의 입구에 가까이 한다. 하지만 깊은 병의 내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셔볼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대로라면 미친 소리라고 그 생각을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게 틀림없는 주변의 모습.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내 가방. 그리고, 열려있는 술병의 뚜껑. 정황상, 아마도, 이 뚜껑을 연 사람은 7년 전의 나다. 만약 그 뒤로 이곳에 온 사람이 있다면 술병을 이대로 방치하지도, 내 가방을 저 자리에 그대로 두었을 리도 없겠지. 기억에는 없지만, 7년 전의 나는 이곳에 와서, 저 가방을 내려놓고, 이 술병의 봉인을 풀어, 마신 것이다. 어쩌면, 목적도 생각나지 않는 그때의 이토모리 여행은, 이것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내가 이것에 필사적이었는지, 알고 싶다. 어차피 남아있는 분량은 기껏해야 한 모금 정도. 상한 술, 아니 썩은 물이더라도 한 모금이라면, 마신다고 죽지는 않을 거다.


 병을 손에 들고, 심호흡한다. 혹시 뚜껑이 열려있는 동안 벌레가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지? 그 경우까지는 감당할 자신 없는데…… 아까 조명으로 안을 비추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어찌 보면 더 다행이다. 만약에 속을 비췄는데 시커먼 벌레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면, 마실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눈을 감고, 병의 입구를 입에 가까이 한 채 고개를 젖히고 팔을 들어올린다. 차가운 액체가 입으로 쏟아진다. 맛을 음미했다가는 상한 맛에 토할지도 모르니, 입에 들어오는 물방울은 즉시 즉시 목 너머로 넘긴다. 알코올 특유의 뜨거운 느낌이 목을 타고, 위로 넘어간다. 얼마나 그렇게 눈을 감고, 그저 흘러 들어오는 액체만을 느끼고 있었을까? 더 이상 추가로 입에 들어오는 건 없다. 혹시 몰라 병을 든 채로,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그리고 나는, 눈에 들어온 예상치 않던 광경에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천장에는 혜성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 혜성. 척 보아도 오래되어 보인다. 뭐지, 이 그림은? 더 가까이서 봐야겠다. 나는 휴대전화를 조명이 천장이 향하게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을 펴는 순간, 술 기운 때문일까, 다리가 엉켰다.


 넘어진다. 다리는 앞으로 뻗고, 몸은 전면은 천장과 마주한 채로, 그러니까 뒤로 넘어진다. 몸의 뒤에서부터 충격이 닥치기를 기다린다. 어라?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천장에 그려진 오래된 혜성의 그림만이, 나를 보고 있을 뿐. 술에 취해서일까, 그 혜성이 천장에서 떨어져 낙하하기 시작한다. 나를 향해, 똑바로, 곧은 궤도를 그리며. 시야에 점점, 혜성의 둥근 핵이 가득 차오른다. 오지마, 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볼 뿐.


 마침내,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뒤통수에 지면의 돌과 격돌하는 충격이 느껴진다. 동시에 혜성은, 내 몸에 부딪혔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평소와 같은 분량입니다. 이제 슬슬 스토리가 결말점을 향해 달려가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단발콘을 쓰러(?) 아 물론 R-18은 아니에요. 그나저나 이번 화에서 표지가 바뀌었어야 했는데, 귀차니즘에 포토샵을 못켜서 안바꾸었네요...... 과연 다음 화에서는 바꿀 수 있을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