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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없는 나무」 시리즈
* 본편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갤럼은 영화를 먼저 관람해 주세요.
* 설정 변경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1. 후타바가 죽지 않고 계속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직업, 인간관계 등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2. 후타바가 죽지 않으니 토시키 또한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3. 미츠하와 바뀌는 타키는, 미래의 타키가 아닙니다. 즉 2013년의 중2 타키와 17세 미츠하가 서로 몸이 바뀝니다.
4. 어느 정도는 본편을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바뀌었으니 만큼 변경점이 많을 예정입니다. IF가 싫으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 갤럼분께서 고맙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편 링크는 이쪽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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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에서 계속)
“미술 시간이 끝나고, 화장실 갔다 오는 길에 그 셋이 모여 있는 걸 봤어.”
첫 마디가 끝나자마자 한숨부터 쉬는 타키. 미츠하는 그대로 숨을 죽이고 타키의 이어지는 말에 집중한다.
“별로 들을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들리더라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너에 대한 얘기였어. 자아도취가 심각하다느니. 몸을 함부로 굴리니. 어쩌니 하면서. 뒤에서 비겁하게…”
“내 얘기가 아니라. 네 얘기겠지. 내 몸에 들어간. 말은 똑바로 해줘.”
의식조차 하지 않고 움직인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본인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소리.
그 차가움에 잠시 끊겼던 타키의 진술이 다시 이어졌다.
“응. 맞아. 내 얘기지. 네 몸으로 함부로 날뛴 것도 나. 어째선지 애들한테 고백을 많이 받아버린 것도 나. 그래, 나도 거기까지였으면 참았을 거야. 실제로 그냥 지나가려고 했고. 그런데.”
“그런데?”
궁금하다는 의미의 ‘그런데’가 아니었다. 좀 더 다른 의미의 그것. 그걸 알아낸 타키의 목소리에서 점점 색채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사실 그 자체만 말할 거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그 녀석들, 미츠하의 부모님까지 욕하고 있었어.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나 같은 애가 나오냐면서.”
하. 하고 타키는 다시 화를 삭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꼭지가 돌아서 그만. 정신을 차려보니 마츠모토의 턱에 한 방 갈기고 있더라고. 그 녀석. 한 방에 뻗어버리더라. 때려 놓고도 덜컥 큰일났다 싶었어. 나머지 둘은 바로 도망갔고. 그리고 선생님께 잡혀가서 한참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 다시 한 번 미안해.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던 건데. 그나마 네 몸이 다치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왜.”
“응?”
고장난 장난감과도 같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 그러나 미츠하는 입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보고 있던 건 이미 현재조차 아니었다. 타키를 향해 포문을 여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7년 전 과거의, 아직도 선명하기만 한 장면들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왜, 타키 네가 화를 내는 건데.”
미츠하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전화 너머의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답 없는 수화기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 네가 내 일에 그렇게 열심히 화를 내? 내가 언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어?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미츠하, 그러니까…”
변명이라도 해 보려는 그의 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끊어지고 말았다. 그 틈새로 점점 형태를 잃어가는 미츠하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스며들기 시작했다.
“알아! 왜 그랬는지는 다 들었다고. 근데? 그래서? 왜 네가 발끈하는 건데. 그것도 내 몸으로 멋대로? 화를 내도 내 몫이고 싸움을 해도 내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네가 맘대로 저질러 놓곤 팔자도 좋게 이러는 건데.”
“그래도 완전 너만의 일은 아니야! 그 일 중 몇 개는 내가 한…”
“아아, 그렇지. 타키 너가 내 몸을 써서 맘대로 저지른 일들. 일은 타키가 내고, 응징도 타키가 하고, 뒷수습은 내가 해? 이건 무슨 경우야?”
두 번 연속으로 하려는 말도 제대로 못한 게 억울했는지, 절제돼 있던 타키의 목소리에도 점점 억울함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미츠하 네 말이 맞는다고! 나도 거기까지면 참을 수 있다고 그랬잖아! 그런데, 그런데 그것들은…”
그래, 뭔 말인지는 잘 알아. 왜 그랬는지도 알겠는데 말이야. 너, 꼭 그래야만 했니? 네가 생각 없이 성급하게 디뎌버린 한 발자국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는,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거니?
흙바닥에 쓰러진 남자아이, 갑갑하기만 한 병원, 등 뒤에서 비열하게 찔러대던 수많은 말의 비수들.
비겁해. 비겁하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멋대로 굴지 말아줘.
“우리 부모님을 욕했다고? 너, 말 잘했다. 지금 스스로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알기나 해?”
차마 미츠하를 향해 불만을 토해낼 수 없었던 타키는 마츠모토를 향한 불만이라도 잔뜩 토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키에게 끝까지 말을 잇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미츠하는 또다시 타키의 말을 끊어버렸고, 이제 타키는 더 이상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차갑게 굳은, 또다른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어야 했다.
“모르겠지? 한 가지만 알려줄까? 우리 집은 동네에 딱 하나 있는 신사고. 우리 마을에는 여전히 전통 신토를 존중하는 풍습이 깊게 남아 있거든.”
미츠하는 여전히 듣기에만은 담담해 보이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타키 또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미츠하의 모습에 혼란을 금치 못하면서도 내용에는 귀를 기울였다.
“그 말인즉슨 우리 집은 원래부터 주목받는 집이고.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일본 총리 이름은 몰라도 우리 가족 이름은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너도 꽤나 많이 겪어봤을 텐데?”
그건 타키 또한 확실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몸이 바뀌어 미츠하로 살아가면서 그는 별생각 없이 지나다니다가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난처한 상황을 수십 번을 넘게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 확실히, 마을의 어디를 가든 날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이 한둘씩은 꼭 있었어.”
여자들은 공감과 긍정을 바란다고 누가 그랬던가. 분명히 타키는 미츠하의 말에 긍정해 주었지만. 미츠하는 타키야 그러거나 말거나 하려던 말만을 계속할 뿐이었다.
사실, 그녀에겐 이미 그런 걸 의식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지? 그런데 그거 알아? 사실 난 그 셋이 아무리 뒤에서 그래봐야 별로 상관없었어. 어차피 그 셋은 내가 뭘 하든 욕했을 거고, 다들 그런 건 알고 있어. 근데 내가 마츠모토를 때렸다? 물론 실제로 마츠모토를 때린 건 내가 아니야. 너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봐줄까? 우리 몸 바뀌는 거 아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어?”
타키 또한 걱정했던 부분이었고,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미츠하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기도 했다.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린 걱정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타키는 어쩔 수 없이 미츠하의 말을 긍정했다. 반박할 거리 따윈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아니.”
“없지? 자. 신사 집의 망아지만한 큰딸 미츠하가 마츠모토 집의 장손을 한 방에 때려눕혔습니다! 어머나, 얼마나 가정교육을 못 받았으면 다 큰 여자애가 저렇게 괄괄하대요? 그러게요. 정말이지 우리 애는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겠어요. 과연 우리 부모님 얼굴에 먹칠한 게 마츠모토일까. 너일까? 꽤나 생각해볼 만한 과제 아니야?”
“…”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미츠하가 때리는 대로 다 맞고만 있던 타키. 그러거나 말거나 미츠하는 그대로 계속 타키의 가슴속에 말뚝을 박아 넣었다. 가드조차 없이 들어간 클린 히트였다.
“그 녀석들이 무얼 했든 그건 평판이라는 데 있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얼마나 물어뜯기 좋은 상대인가. 그 여부지. 우리 집은 언제나 참 좋은 타겟이었어. 난 어릴 때 그걸 알았고, 항상 행동거지를 조심해야만 했어.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지. 근데 그걸 오늘 네가 제대로 망쳐버린 거야. 알아?”
미안하고, 또 부끄러워서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와중에, 타키는 문득 어떤 의문을 떠올렸다.
혹시 미츠하는 예전에 무슨 일이라도 겪었던 걸까. 지금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여전히 목소리만은 담담하게,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 미츠하였다.
“이제 알았지? 남의 일에 함부로 뛰어든다는 게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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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하에 의해 무심하게 내밀어진 ‘남의 일’ 이라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한 단어에 타키는 마치 가슴을 도려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 통증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타키는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사과,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는 순수한 ‘미안해’.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 한 마디에 끓어 넘칠 것만 같았던 원망과 분노의 고개가 조금이나마 꺾였음을 미츠하는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과는 또 다른, 어떤 감정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항상 자기도 모르는 새 타키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느끼곤 했던 그것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말 그대로 ‘어떠한’ 감정.
그렇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복마전 한가운데 선 채로, 미츠하는 또다시 매정한 대답을 내뱉고야 말았다.
“알았으면 이제 남의 일에 함부로 이상한 오지랖 부리지 말란 말이야. 정말, 민폐라니까.”
예상했던 말이었다. 자기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타키는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농구는 그만뒀지만 혹시라도 미츠하가 나 몰래 싸움을 벌여서 우리 농구부 전체가 손해를 봤다면, 나 또한 지금의 미츠하처럼 혼란스러워하고, 분노하고, 마침내 저렇게 체념 섞인 한 마디로 끝을 내려 했겠지.
타키는 미츠하를 이해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항상 머리보다 앞서 나서곤 했던 그의 감성은 이번에도 이성을 저버리고 말았다.
타키는 그녀의 말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타키의 마음이, 몸을 앞서가 말하기 시작한다.
“아니야.”
마지막 말을 끝으로 스스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미츠하의 정신이 그 한마디에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미츠하가 급히 되물었다.
“뭐가 아닌데?”
“남의 일이 아니라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타키 또한 감정과 이성이 맞서며 빚어내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가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도 아직 스스로의 감정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타키에게 그걸 알 방법은 없었다. 미츠하 또한 그렇듯이.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마음, 전화선이라는 물리적 한계 앞에 가로막힌 둘의 대화에 이성이 개입할 여지라곤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왜 남의 일이 아닌데?”
“미츠하의 일이니까!”
타키는 더 이상 머리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만 말했다. 묵직하게 집어던진 돌직구에 혼탁했던 미츠하의 마음에도 작지만은 않은 파문이 일어났다. 잔뜩 굳어있기만 했던 그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황이 섞이기 시작했다.
“내가 남이 아니면 뭔데?”
“처음 전화했을 때, 넌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너는 나고, 나는 네가 되었다고.”
그랬다. 처음으로 몸이 바뀜을 자각하고, 처음으로 둘이 연결되었을 때, 미츠하는 타키에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미츠하의 마음에 이는 파문이 조금 더 강해졌다.
“그때 나도 부끄러워서 그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너 참 부끄러운 말을 한다며 틱틱거렸었지. 기억 나?”
“기억 나! 하지만, 하지만 그건…”
“내 말 마저 들어.”
처음으로 미츠하의 말이 타키에 의해 끊겼다. 실은 그녀에게도 할 말은 있었지만, 미츠하에게도 타키가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 절절이 느껴졌기에 결국 포기한 채 타키의 말을 마저 듣기로 했다.
“사실, 그 때 정말 기뻤어.”
마음 속 파문이 이제는 파도가 되어 몰아치기 시작했다. 성난 파도처럼 쏟아지는 감정 속에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해야 할 말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정체조차 모르는 미지의 세상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으니까.
“왜인지는 설명 못해. 나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 마음에 변함은 없어. 설령, 설령… 그 모든 마음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해도.”
‘착각’, 미츠하의 마음 속 격랑은 더욱 더 거세졌고. 몰아치는 파도에 더 이상은 표리부동한 채로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미츠하는 장장 7년 만에 순수하고 꾸밈없었던 이전의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야. 아니, 오히려 모든 게 달라. 나는 여자, 너는 남자! 나는 시골, 너는 도시! 가족 관계부터 집안, 그 모든 것까지! 우린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어. 서로 만난 적도 없고. 맞아?”
“맞아.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변함은 없어.”
마지막 남은 생각의 찌꺼기조차 버려버린 둘의 대화는 이제 마음이 입 밖을 나오는 대로 던지고 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럼 뭐야! 이렇게까지 철저히 남이지만 그래도 남은 아니라고? 몸 하나 바뀌니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부정한다는 건, 뭐야.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나도 몰라! 모르지만 아니야! 난 인정 못해!”
마치 어린애처럼 떼를 쓰기 시작하는 타키. 그 떼쟁이스런 말투에 미츠하 또한 왈칵, 하고 정체모를 답답함을 느꼈고, 알아보기도 전에 무작정 투하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폭탄인지도 모른 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뭐야, 그거? 분명히 말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아니면 혹시 너, 내 애인이라도 되어 주겠다는 거야?!”
잠시나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곧 지나간다. 태풍의 눈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폭풍이 몰아치는 법. 얼굴을 잔뜩 붉힌 타키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놀라버린 타키의 급한 단말마에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자각한 미츠하의 볼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한다. 당장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미츠하의 입에서 조합되지 않은 말이 마구 튀어나갔다.
“그, 그치만!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남이기는 싫다면, 방법이 없잖아!!”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이럴 때 그런 말을 해 버리면 어떡해!”
“몰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래서, 뭐야?”
“어?”
“몰라서 물어? 대답해!”
급하게 대답을 종용하는 미츠하. 애인? 내가? 미츠하의? 타키는 그 모습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지를 채 떠올려 보기도 전에 당황한 타키의 입은 이번에도 주인을 배반한 채 멋대로 움직여버리고 말았다.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멋대로 한 거야. 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며 타키는 수화기에 귀를 갖다댔다. 잠시 동안, 수화기에선 아무 말도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타키는 더욱 더 귀를 가까이 들이댔고, 그 순간.
“이제 너 같은 거 몰라! 됐어!”
순간적인 감정의 대폭발을 참아내지 못한 미츠하의 외마디 고함과 함께, 길었던 전화는 허무하게 끊어지고 말았다.
* * *
‘뭐였을까, 오늘의 나는.’
전화가 끊어지고, 조금은 진정이 되자 미츠하는 오늘의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떠올려야만 했다.
‘나, 너무 심한 말을 잔뜩 해 버렸지.’
작게 중얼거리며, 미츠하는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뒷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앞이 깜깜하긴 했지만,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말할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동기가 불순했던 것도 아니고, 그녀 자신이 마츠모토 3인방을 인간적으로 좋아했을 리도 없다. 예전에 책상 사건 때도 그랬듯이, 할 수만 있다면 언제고 혼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내 버린 건 역시.
‘아직도, 나의 일부는 거기에 있다는 거겠지.’
고개를 든 미츠하는 벽 너머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하기 시작한다. 벽을 넘어, 도쿄를 넘고, 머나먼 거리를 도약한 끝에 마침내 보이는 그 곳은-
이름 모를 산 속, 비탈길 아래 쓰러진 누군가, 그 누군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또 다른 여자아이.
어떻게든 몸만은 건사해 내긴 했지만 그 날, 그녀의 일부분은 그대로 그 산에 버려진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은 아무것도 못하고, 팔팔한 나머지 한쪽으로 쏟아지는 온갖 감정들. 어떻게든 감내해 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뿌리치지 못한 그 때의 기억.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그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미안하다는 소리밖에 못하는 두 남자가 순간 너무나도 겹쳐 보여서. 그래서 그렇게 심하게 대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잘못한 게 아닌데. 나 혼자만 생각하고, 응석 부리고.
그래, 그랬으면 거기서 끝냈을 것이지. 난 또 뭘 했지?
차라리 그 앞은 설명 가능한 영역이었지만, 그 뒤에 찾아온 그 감정은, 그녀에게는 말 그대로 미지의 영역.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제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지금도 그녀는 스스로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첫 전화에서 생각 없이 던진 그 말. 하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진심이었던 그 말.
‘너, 부끄러운 말 참 잘하는구나.’
타키가 그 날 했던 말들, 지금도 그녀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다. 대체 나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며 그날 하루 잠들 때까지 이불을 몇 번이고 걷어찼던 것까지도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혹시 나 혼자만의 설레발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뻤다’ 라고 타키가 말해줬을 때. 그녀는, 분명 기뻐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라고 토로했을 때도. 사실 그녀는 그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실제로 그녀가 부정한 건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했으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만 해도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그래 놓고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또다시 염치도 없는 말을 스스로 던져 놓고는. 지극히 당연한 타키의 반응에, 나는- 어떻게 반응했더라?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말했고.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들었고. 어떤 생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생각도. 마음도. 사소한 기분조차도.
정말, 나라는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넘쳐흐르는 눈물로 타키의 베갯잇을 뜨겁게 적시며, 미츠하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타키에게는 들리지 않을 사과를.
“이런 나라서, 정말 미안해. 타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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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가 살아있는 세상의 이야기.
순전히 쓰기가 힘들어서 오래 걸렸습니다. 18화는 분량 때문에 상 하편으로 나누어졌는데. 대략 이만 자 정도의 길이가 되었습니다. 그 길이를 쓴 만큼의 보람이 있었는지는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전개상 생략은 되었지만, 결코 몸이 바뀌었을 때 미츠하와 타키의 일상이 그렇게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제 믿음을 담아서, 조금은 억지스러울 지는 모르지만. 둘이 몸이 바뀌어서 유쾌한 장면뿐만이 아니라, 크게 싸우고 갈등하는 장면, 미츠하가 마냥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털어놓는 장면까지 넣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늦어진 것도, 이게 캐붕인지 아닌지 스스로 갈등이 매우 심해서 보고 또 보느라 늦어졌습니다.
앞으로 넣을 장면도, 인슐린일 수도 있고 사카린일 수도 있지만 다들 이런 식일 것입니다. 제 희망 사항이 많이 반영된 스토리가 될 겁니다. 그건 미리 예고해 두겠습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밸런스를 맞춘다고 맞춰 보았지만, 캐붕으로 느껴지셨다면 그건 저의 능력 부족입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에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타키 군' 이라는 호칭을 쓴 것은 오타가 아닙니다. 여기서만은 그 호칭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설명 못합니다.
이번 화에 원래 예정해 두었던 플롯과 상당한 변경점이 있기 때문에, 다음 화의 플롯은 어느 정도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금 예고는 못 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8화는 피드백을 받고, 내일쯤 다시 한 번 수정할 예정입니다. 느낀 점이 있다면 반드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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