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는게 보였다. 붉은 노을빛을 바라보며 나는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
"타키―, 창 밖은 그만보고 공부에 집중하자. 같이 공부하자고 한건 너잖아?"
"너 말야, 공부는 곧잘 하는데 집중력이 너무 약한거 아니야?"
"아니. 그…"
그런 나를 보며 타박을 주는 친구들. 집중하자고 한 쪽의 이름은 츠카사, 집중력이 약한 것 아니냐고 한 쪽의 이름은 신타. 내 오랜 친구들이다.
츠카사의 말대로 다같이 공부를 하자고 한 것도 나, 잠시 창 밖의 풍경에 한 눈을 판 것도 나지만 정말 잠깐 봤을 뿐, 나는 별로 집중력이 약한게 아니라고 항변 하려던 나는 곧 이은 츠카사의 말에 입을 다물어야했다.
"여친이 보고싶어서 그런거겠지. 저 녀석, 아르바이트 관두고 공부하기 시작한게 여자친구랑 같은 대학 가고싶어서잖아."
"…타키 너, 그런거였냐? 여자 문제라면 공부 대신 이 타카기 신타가 조언해주지!"
"아니…됐어."
미츠하 씨도 내가 대학을 어디로 가던 별로 상관없다고 했었고, 같은 대학을 가기위해 공부하고 있는건 그저 내 욕심일 뿐이다. 고등학생인 내가 대학생인 미츠하 씨 앞에서 조금이라도 당당할 수 있기위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미츠하 씨와 함께 있고싶은 내 욕심.
그 욕심을 위해서 최근 미츠하 씨와 만나는 것까지도 자제해가면서 츠카사, 신타와 함께 공부를 하고있었다.
하지만… 해질녘의 노을빛을 볼 때면 그런 다짐따위 그냥 다 내팽겨치고 미츠하 씨한테 달려가고 싶어진다.
오늘도 만나지 못 했다는 그리움, 그냥 만날껄 하는 후회가 뒤섞여서 복잡한 기분이 든다.
"농담이었지만 너 말야, 여자친구한테도 신경 좀 써. 그러다 주객전도되면 차일지도 모른다?"
"아, 그건 동감. 네가 지금 노리는 곳이 도쿄대다 보니까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정작 차이면 말짱 도루묵이지."
"너희들 그거 조언하는거야, 약올리는거야?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조언해주는 친구들의 모습에 왁 하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엔 공부도 도와주고 아르바이트도 대신해주는 좋은 녀석들인데 한번씩 저렇게 짜증날 때가 있다.
하지만……글쎄, 어떨까…. 미츠하 씨와는 왠지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뭐랄까…내가 사귀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조금 싸우고 다퉈서 빙 돌아가더라도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다.
잡념에 빠진 사이 오늘의 공부회는 끝.
채점을 해보니 이게 왠일, 츠카사조차 틀린 문제를 내가 맞췄다.
……좋아, 오늘은 오랜만에 내 자신에게 상을……미츠하 씨와 만나도 될 것 같다.
……되겠지, 뭐.
"타키 군…이렇게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그동안 계속 보고싶었어."
"저도…. 미츠하 씨가 계속 보고싶고, 생각나고…그랬어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타키 군, 그 동안 연락도 자주 안 했잖아. 먼저 라인해도 답장도 자주 늦고…"
미츠하 씨 화난건가…?
"좀 바빴어요.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죄송해요. 혹시 화나셨으면 죄송해요. 답장은 최대한 신경쓸게요."
"…그런 대답을 바란게 아닌데. 정말…여자 마음을 모르는구나."
"예?"
"아니, 아니야. 그럼 오늘은 그동안 너무 연락이 뜸했던걸 반성하는 의미로 디저트 카페, 타키 군이 사는거야?"
디저트 카페….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뭐, 미츠하 씨가 좋아하니까. 화도 좀 풀렸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모습 보면 나도 좋으니까. 음, 좋아.
"좋아요, 얼마든지 사드릴게요."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이런 내 주먹만한 정도밖에 안 되는게 5백엔, 그리고 그게 지금…어, 몇개 째야……? 저게 다 들어가?
"잘 드시니까 보기 좋네요."
"아, 아니야. 원래 이렇게 많이 안 먹어. 그 뭐랄까, 타키 군이 사주는거니까…?"
아, 실수했다는 표정의 미츠하 씨, 잘 봤습니다. 미츠하 씨 귀여워.
이런 쬐그마한 설탕 덩어리들이 5백엔이라고 하면 정말 아깝지만 미츠하 씨의 저런 표정이 5백엔이라면 좋다.
"저기, 타키 군. ……요새 뭐하고 지냈어?"
"예? 아, 아르바이트랑 이것저것 좀……친구들이랑 하고있는게 있어서요."
아마 미츠하 씨도 내가 공부를 하고있다는건 눈치챘겠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치 하나는 정말 귀신같았던 사람이기도 하고, 곧 있으면 수험을 치루기도 하니까.
그야 뭐,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지금쯤 열심히 공부하고있겠지.
"이것저것?"
"예…음, 아무래도 곧 고등학교 생활의 끝이니까요. 친구들이랑 좋은 추억만들기? 같은걸 하고있어서…."
그러니까 거짓말했다.
내 목표는 미츠하 씨와 같은 도쿄대. 꼭 붙기위해서 매일 새벽까지도 공부하고있는 상황이다.
미츠하 씨라면 분명 걱정할테니 말해줄 수 없다.
"음…친구들한테 밀린건 좀 서운하지만 이해는 되는 이유네. 그래도 타키 군, 그런건 수험이 끝난 후에 하는게 좋아. 잘못해서 시험에 악영향이 가면 안 되잖아?"
"명심할게요."
―♪
"하…!?"
"…타키, 일어났냐? 깨울까 하니 딱 맞춰 일어나네."
"알람 맞춰놨으니까."
"열심히 공부하는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진 마라."
"별로 무리 안 했어요."
피곤하긴 하지만 별 수 없지. 다른 곳도 아니고 도쿄대인데 이 정도는 무리도 아니다.
도쿄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당연한 노력이지.
"먼저 갈테니까 밥 먹고 학교 가고. 다녀오마."
"다녀오세요."
'아침밥…뭐 해먹지…….'
잠이 덜 깨 멍한 머리로 하는 고민은 늘 그렇듯 무엇을 해서 밥을 먹을 것인가.
아마도 밥을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혼자 먹을 밥을 직접 차리는건 굉장히 귀찮고 성가시고 또 짜증나는 일이다.
그냥 컵라면으로 떼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침부터 그건 영 아닌 것 같고….
아―미츠하 씨랑 같이 밥 먹고싶다.
그럼 미츠하 씨가 좋아할 법한 것들 직접 다 해줄 수도 있을텐데. 어제는…푸딩을 제일 좋아했던가.
나도 푸딩할 줄 아는데….
…내가 참, 무슨 생각하는건지. 빨리 학교 가야지.
"맑은 국이랑…생선 남은거 있고, 계란도 있네. 이 정도면 대충 있는걸로 먹으면 되겠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럭저럭 어제 남은 반찬들이 꽤 있었다.
국을 데우고 생선을 꺼내고, 계란은…뭘 해 먹을까. 계란은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고민된단말야.
―♪
「타키, 오늘은 지금까지 틀린 문제들 모아서 한번 더 복습할거니까 같이 공부한 것들 전부 가져와.」
한참 밥을 먹고있을 때 츠카사에게서 라인이 왔다.
이상하게 한번 틀린 문제는 다시 공부해도 또 틀린단 말이야.
솔직히 복습은 정말 싫은데 그렇다고 틀린 문제들을 포기해버리면 수험을 망칠테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츠하 씨랑 함께하는 대학 생활을 떠올리면서 수험 생활, 한번 버텨보자.
"오―타키, 왠일이냐? 오늘은 문제 다 맞췄네. 만점이야."
"엥, 그 28번 문제는 답을 적으면서도 좀 헷갈렸는데 그 것도 맞았어?"
"그 것도 맞았다. 풀이 보면 잘 풀었던데? 뭐가 헷갈린거야?"
"아…그 이 부분에서 이걸 이리로 해야하는건지, 이걸 그대로 해야하는건지 헷갈리더라고."
"그건 헷갈리라고 꼬아놓은 부분이니까. 앞에 이 부분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할지 언급했잖아? 함정에만 안 빠지면 되는거야. 이 문제, 잘 풀었어."
이야―역시 츠카사, 신타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지만 츠카사에 비하면 좀 손색이 있고…설명도 잘하니까.
복습할 때는 츠카사한테 문제풀이를 듣는게 훨씬 알아듣기 쉽단말야.
그건 그렇고, 만점이라…. 처음이네, 이거.
지난 반년동안 같이 공부하면서 1등은 츠카사, 2등은 신타, 3등이 나.
변하지않는 순위였는데 처음으로 등수가 변하고…그 것도 만점으로? 기분 좋은데?
이래서 범생이들이 그렇게들 공부를 하는건가?
"좋냐?"
"신타, 너는 몇 점이야?"
"…5문제 틀렸네. 오늘은 3등. 타키한테 밀린건 처음이다…솔직히 충격인데."
"열심히 한 결과겠지. 저 녀석, 여자친구때문에 진짜 열심히 했잖아."
"그 얘긴 그만하고, 오늘은 내가 살테니까 카페 갈 사람있냐? "
"카페? 좋아, 나는 간다. 신타 넌?"
"…나는 오늘 집 가서 공부해야겠다. 둘이서 가."
요즘 공부가 잘 된단말야. 수험도 멀지않은데 느낌이 좋네. 새벽까지 공부한 보람이 있다.
"…타키, 그거 말야…파르페같은데?"
"아, 내가 좋아하는건 아니고….다른 데랑 비교 좀 해보려고."
"지극 정성이네. 하, 참 그러고보면 나도…뭐, 좋아하는 사람이면 어쩔 수 없지?"
"그래, 어쩔 수 없더라."
츠카사도 최근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
어째선지 그게 누구인지 이야기해주진않지만 뭐, 그건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신타녀석 괜찮을까?"
"왜? 신타는 처음부터 공부 잘 했잖아."
츠카사가 신타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건 좀 싫은데. 왜 저러지? 신타한테 무슨 일 있나?
"같이 공부 시작하고 한 번도 점수가 안 올랐어. 성적도 그렇고."
"음…그래도 신타는 처음부터 성적이 좋았잖아?"
"…그렇기야 한데."
츠카사는 뭔가 내키지않는듯, 살짝 한숨을 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별 문제 없어보이던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타키, 너는 지금부터 어디로 갈거야?"
"어디로? 어…집 가서 공부할건데? 넌?"
"그래, 나도 집 가서 공부해야지."
그 날, 츠카사는 뭔가 고민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웃고있었다.
『저, 어디선가 당신을 본 적이 있어요.』
타키 군이 처음으로 나와 만났을 때 건네온 말이었다.
첫 만남은 정말 우연히 계단을 지나가다 이루어졌었다.
계단을 오르고있는 한 소년, 이제 고등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그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일텐데.
왠지 모를 기시감과 함께 느껴진 가슴의 통증은 마치 가슴 속 어딘가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신경쓰여서 흘금, 바라봤었다.
왜일까, 지나가버린 소년에게 순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버리는 소년의 모습이 가슴에 말뚝을 박아버리는 것 같았던 이유는 뭐였을까.
소년이 뒤돌아서 불러주었을 때, 가슴 한 켠에서 알아봐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뭔가 타키 군과 함께 있으면, 그래.
’이 사람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 너무나 마음이 따듯해지고 행복해진다.
타키 군은 눈치채지 못 한 것 같지만, 뭔가…정말 열심히 하고있구나, 하는 정도는 당연히 눈치챘다.
그렇게나 수험생이 바쁘다는 티를 내는데 오히려 모르면 이상한건데.
가끔 타키 군을 보고있으면 눈치없는 모습이 뭐랄까….
'귀여워'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에 잠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정말 귀여운 걸 어떻게 해?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가끔 보면 답답할 때도 있지만 눈치없는 타키 군의 모습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선 좋아하지않는 디저트 카페에 데려와준 타키 군도, 언제나 열심히 사는 타키 군의 모습도 정말 좋아하니까.
'달다….'
타키 군이 데려와 준 디저트 카페를 즐기면서, 타키 군이 원하는 곳에 가기를 바랐다.
―♪
"오늘이네."
평소보다 일찍 울린 알람을 끄고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마친다.
전부 오늘을 위해서였다. 미츠하 씨와의 데이트도 줄이고 공부한 결과는 오늘, 그 결실을 맺는다.
사실 정확하게 따지면 오늘로 끝은 아니지만, 시작이니까. 마음 단단하게 먹자.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챙기고…아, 혹시 안 챙긴게…없는 것 같네.
왜 이렇게 불안한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하면 될텐데, 불안하다.
원래 현관이 이렇게…꽉 닫혀있었던가? 평소엔 좀 더…
―♪
"히엑?!"
아, 씨. 뭐야, 누구야, 갑자기. 방금 그 비명소리 꼴불견이잖아.
짜증을 내며 라인을 확인하자, 머릿 속을 가득 채웠던 불안감이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타키 군, 힘내. (๑˃ᴗ˂)+」
뭐야, 이 이모티콘…. 귀엽잖아…….
이렇게 귀여우면 누가 채갈까, 꼭 붙어있을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꼭…붙어야지."
"타키 군…잘 하고 있으려나."
나도 이렇게 불안한데 타키 군은 어떨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잘 되겠지…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타키 군이 원하는 곳에 붙는다면 뭘 해줄까, 혹시, 정말 혹시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만약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 떨어지는거라면 어떻게 할까…. 아니, 그럴 리는 없지만….
머릿 속이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럽다.
그래도, 타키 군이니까. 괜찮겠지.
뭔가 하겠다고 하면 끝까지 잘 해내던 애니까, 괜찮겠지.
지금 할 수 있는건 그저…
"타키 군…힘 내."
응원 뿐이니까, 그래, 음…타키 군이 원하는 곳에 붙었다고 한다면, 그래.
원하는 것 하나, 소원을 들어주자. 열심히 했으니까, 상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야한건 안 되는데.
봄이 서서히 다가올 즈음, 수험이 끝났다.
요번 까지만 딱 눈 감고 봐주길 바란다. 안 봐주면 어쩔 수 없지만…나도 세이파리 네이파리엔 애착이 있어서 완결 낼거야….
그리고 이건 上中下 나눠놨는데 분량조절한다고 이것저것 쳐내다보니 5천자 못 채웠음. 반성해야겠다.
그래도 뭐, 분량조절 실패했던 세이파리 네이파리 때보단 많이 나아진 것 같아.
단발은 중편부터 나올거야;
지금부터 중편 쓰러갈거니까 단발 안 나온다고 화내지마라;; 나도 치킨 뜯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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