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2013년의 소녀 미츠하. 2016년의 소년 타키. 두 사람이 육교에서 카타와레도키로 만났다면? 【RE: 1부】 |
“혜성을…… 보러 가자고?”
“응!”
타키는 혜성을 보러 가자는 말을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눈에 비친 소녀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물기를 머금었던 두 눈이 어느새 해맑은 미소와 함께, 그 물기 너머로 비치는 석양빛을 이리저리 반사시키며 보석처럼 빛났다. 순수한 소녀만이 발산할 수 있는 감성이라고나 할까. 마치 테마 파크를 그 눈에 처음 담은 어린 아이의 눈빛을 보는 듯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혜성이라는 게 대체 뭐야?”
타키는 이 소녀의 눈빛에 보답할 만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뭐?”
소년의 그 대답에, 소녀의 눈에서 순간 반짝임이 멈춰버렸다. 미소마저도 사라졌다. 타키는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죄책감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타키 군. 오늘 혜성이 보일 거라는 얘기 못 들었어?” “못 들었는데?”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그랬잖아? 내일 혜성이 가장 크게 보일 거라고. 그래서 오늘도 혜성이랑 가까운 도쿄 같은 곳에서는 충분히 보일 거래. 여기까지 오다가 본 무지 큰 텔레비전에서도 나오던데, 타키는 못 봤어?”
‘무지 큰 텔레비전’이라는 건 건물 등에 붙어있는 대형 스크린 얘기인가. 그야말로 ‘촌뜨기’다운 표현 방법이긴 하네. 살짝 귀여운 면모가 있는걸.
그 면모와는 별개로, 미츠하의 대답은 타키의 머릿속을 더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뉴스에서 오늘 혜성이 떨어지네 어쩝네 하는 소식은 하나도 안 나왔다니깐? 대체 무슨 뉴스를 보고 사는 거야? TV에서 그런 게 나왔다고? 만화영화를 본 거 아니야?”
타키의 그 반응에 미츠하는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다.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만화영화라니?
“이토모리도 인터넷이라든가 그런 건 다 잘 되거든요!? 시골 촌뜨기여도 뉴스랑 만화영화는 구분할 줄은 안다고!”
타키는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자기 자신을 ‘시골 촌뜨기’라고 표현하면서까지 혜성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너 말이야, 생각을 좀 해 봐.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혜성이 지나간다면 전 세계적으로 아주 대서특필 감이라고. 근데 정작 혜성 어쩌고 하는 소식은 근래 들어서 한 마디도 못 들었거든? 오히려 지금 도시는 별 하나 안 보여서 문제라는 얘기가 더 많이 나오고 있는 판국이라고.”
“얘 좀 봐. 그 혜성 때문에 일본 전체가 난리가 났거든? 뉴스고, 잡지고, 심지어 예능 방송을 틀어도 전부 다 혜성 얘기밖에 안 한다니까! 어쩜 어떻게 도시 사람이라는 애가 더 세상 물정을 모를 수가 있담?”
“네가 생각하는 ‘세상 물정’은 대체 어느 세상에 있는 물건인데? 그러니까…….”
말대꾸를 해 주다가 “하아…….”라는 한숨과 함께 지쳐버린 타키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어주는 척이라도 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이 소녀가 얼마나 잘못된 정보 속에 파묻혀 있는지를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발상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래. 뭐…… 하다못해 그 혜성이 뭔지 좀 알아야겠다. 설마 이름도 없는 혜성은 아닐 테고, 이름이 뭔데?”
“그러니까……, 티아마트 혜성이었나?”
티아마트? 무슨 신화에 나오는 여신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이름을 지어도 참 괴팍하게 지어놨네. 하다못해 ‘이케야-세키 혜성’처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든가.
그런데─
소년은 자신의 기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선지 혜성의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게다가 자기도 모르게, 혜성의 이름이 어디에서 나왔는지까지 떠올랐다.
어떻게?
‘티─아─마─트…….’
타키는 스마트폰 화면에 검색엔진 홈페이지를 열고 한 글자씩 검색창 화면에 그 이름을 새겨 넣었다.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길 때마다 어째선지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뭔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향해 전진하는 기분이었다.
‘─혜성.’
그 단어를 끝으로 소년의 스마트폰 화면이 바뀌었다.
소년은 그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을 쳐다보는 소년은 말이 없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그 반응을 본 미츠하가 다시 석양빛으로 물들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소년의 표정을 살폈다.
요 녀석. 같이 보러 가기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어디서 거짓말로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해? 뒤늦게 싹싹 빌면서 ‘미안해! 내가 전혀 몰랐어! 같이 보러 가 줄 테니까 화 풀어!’라고 말할 때까지 한참 화난 척 해 줘야겠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이 녀석을 코앞에서 만나서 한 방 먹여주겠어?
‘흥!’
그렇게 생각하며, 미츠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미츠하.”
그 말과 함께, 한참동안 말이 없었던 타키는 미츠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서려있는 감정은 진실을 알려줘야겠다는 사명감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자기도 몰랐던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다는 당혹감이라든가, 그마저도 아니면 소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은 데서 온 죄책감 같은 감정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공포.
소년의 얼굴에 공포가 서려 있었다.
시선을 마주하는 동작조차도 ‘삐그덕’소리가 날 정도로 천천히 그 감정을 드러냈다. 마치 목격하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은 이미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응? 왜?”
“너, 오늘이 며칠인 지 알아?”
미츠하는 도시 소년에게서 이상한 질문을 받아버렸다.
뭐야? 갑자기 무서운 표정 지으면서 날짜는 왜 물어봐? 오늘이 며칠인지를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나? 꽤나 별난 구석이 있네. 저런 반응은 텟시한테서나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에…… 그러니까, 10월 3일. 타키 군도 참. 어차피 스마트폰 켤 때 화면에 나와 있었을 거 아니야?”
“그럼…… 연도는?”
“연도? 왜 그래, 타키 군. 바보같이 올해가 몇 년도인지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타키는 지금 공포에 휩싸였다.
그 공포를 어떻게든 떨쳐내기 위해 소녀에게 큰 소리로 외쳐버렸다. 그렇게 외친 목소리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절망감이 섞여 튀어나와버렸다.
그 외침에 소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얘, 갑자기 무섭게 왜 이런담.
“그러니까…… 올해야 당연히…….”
간신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소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
─2013년이잖아?
“뭐……?”
덜컹.
타키의 가슴 속에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쇳소리가 울려퍼진 가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차가워진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심장마저 얼어붙어버릴 뻔 했다. 그 심장이 생존본능을 일깨우는 듯이 엄청난 진동을 만들어내며 열을 온 몸에 퍼트렸다. 숨이 가빠졌다.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공포를 담은 눈이 손과 함께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이게 뭐야.
대체 무슨─?
“너 뭐야?”
“뭐…… 뭐야, 라니?”
“너 뭐냐고!”
그 말을 들은 미츠하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사람한테 ‘누구냐’도 아니고 ‘뭐냐’라니?
“타키 군…… 왜, 왜 그래? 싫어……. 그러지 마……. 되게 무서우니까…….”
소녀는 소년을 향해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웃음과는 정 반대로, 요동치는 목소리와 힘이 풀려 뒤로 밀려나는 다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너, 올해가 2013년이라고?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대체 왜 그러는데! 뜬금없이 사람 겁주려고 그래! 그것도 고작 날짜 가지고서!”
“올해가 정말로 몇 년도인지 몰라서 그래?”
“올해는 2013년이라니까!”
“미츠하!”
“왜!?”
“올해는…… 올해는……!”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슬러 목소리를 쥐어 짜낸 소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올해는 2016년이야.
오늘 날짜는 2016년 10월 3일이라고.
타키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 인터넷 신문 기사였다.
제목. 혜성이 부른 재앙. 혜성에 사라진 마을.
기사의 연도는 2013년.
타키는 그 기사의 제목과 연도를 보고 나서야, 잊고 있던 3년 전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티아마트라는 이름이 붙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혜성의 모습을. 수많은 별들이 마치 꿈 속 풍경을 그리듯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은 모습을. 3년 전 자신이 옥상에서 바라 본 풍경을.
그리고, 그 재해를.
3년 전.
일본을 지나가던 티아마트 혜성은 두 개로 나뉘어, 그 파편 중 하나가 일본에 떨어졌다. 파편이 떨어진 곳은 기후 현에 위치해 있던 조그마한 시골 마을. 거대한 크리에이터가 생길 정도의 충격이 그 마을을 덮쳤다.
난데없이 일본 열도에 떨어진 초대형 자연재해.
날짜. 10월 4일.
그리고 그 재해의 무대가 된 마을.
그 마을의 이름은─
─이토모리.
방금, 소녀는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틀림없이 그 이름을 입에 담고 ‘시골 촌뜨기’운운하며 으스대고 있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마을을─이 소녀가 알고 있다.
“……뭐?”
소녀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소녀가 살고 있는 마을.
이번엔 소녀의 가슴 속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년이 품고 있던 공포가 이제는 소녀에게도 옮겨 붙었다. 무언가가 터져 나올 뻔한 입을 두 손으로 막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흘리던 눈물과는 전혀 다른, 절망이라는 성분을 띠고서.
아직도 도쿄 시내는 고요했다. 둘만의 풍경이라고 여겼던 이 세상이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노란빛이었던 하늘도 칠흑 같은 어둠이 덧발라져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핏빛이었다.
소년과 소녀를 비추는 석양이 휘감았던 세상은 이제 섬뜩한 핏빛을 띠기 시작했다.
여전히 도로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둘만이 존재하는 풍경을 그 섬뜩한 색깔이 집어삼켰다.
아무도 없이 시뻘건 색으로 타오르는 유령 도시.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두 사람 뿐.
“미츠하……!”
소년은 소녀를 향해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갔다.
3년 전에 없어진 마을에서 온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다고? 자신을 3년 전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나와 서로 몸이 바뀌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다고?
─이 여자애는 대체?
“그만해……. 듣고 싶지 않아……!”
소녀는 소년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이 사람이 3년 뒤의 사람이라고? 우리 마을에 혜성이 떨어져? 그래서 마을이 사라진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잖아! 난 왜 이런 사람과 몸이 바뀌는 꿈을 꿨던 거지?
─이 남자애는 대체?
“너…… 정체가 뭐야?!”
이 여자애가 정말 미츠하라고?
“그러는 너야 말로…… 누군데?!”
이 남자애가 정말 타키 군이라고?
“너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너는……!”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누구야?
그 말과 함께.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세상은, 네온사인과 신호등과 고층 건물들이 아름답게 빛을 수놓는 총천연색으로 되돌아갔다.
도로에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가득히 울려 퍼져, 다리 위에 서 있던 사람의 고막을 갈가리 찢어발기려 들었다. 모습을 드러낸 행인들이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기의 흐름조차 멈춰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정작 미츠하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녀의 세상은 2013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정작 타키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년의 세상은 2016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소녀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소년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미 태양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도쿄의 하늘이 흩뿌리기 시작한 검푸른 색 그림자만이, 사라진 사람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
。。。。。。。。。。。。
소년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올랐다.
‘엄청 늦었잖아. 예정에도 없던 과학실 청소는 왜 시키고 난리야? 그마저도 다른 녀석들이 죄다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서 다 했잖아.’
덕분에 소년의 하교시간은 훨씬 늦춰지고 말았다. 어느새 해는 져 버렸고, 천천히 떠오르고 있는 달빛을 받으며 자신들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요요기 역에 정차한 열차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전에 읽은 소설의 줄거리가 그런 거였지. 과학실에서 청소하다가 시간 여행 능력을 손에 넣는다는 이야기. 정말로 그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나면 정말 신나겠는데. 만약 나라면…….’
─저기, 실례할게요.
어디선가 들려 온 아리따운 목소리에 소년은 몽상에서 깨어났다. 그래. 그런 일은 어디까지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얘기지.
늦었다고는 해도 퇴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객실 안을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한 인원이 객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객실 안이 북적거렸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바닥에 깔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년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은 주머니에서 영어 단어장을 꺼내어 펼쳤다.
어디까지 했더라. 이 단어는 어제 봤는데.
─키군.
아, 이 단어부터였던가.
─타키 군.
……?
‘뭐야? 누가 날 불러?’
“타키 군!”
앞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아까 ‘저기, 실례할게요’라고 말한 그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소년의 앞에서 들려왔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죽 훑어보았다. 키는 나랑 비슷한 것 같고. 처음 보는 교복인데. 이 근방 학생이 아닌 건가?
“저기, 나야.”
그렇게 말하는 소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눈이 살짝 퉁퉁 부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 기억 안 나니?”
소녀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서 울먹임이 뒤섞여 있었다. 어딘가 아스러지는 별빛처럼 애잔하고 아련한 목소리. 어디서 울다 온 게 아닐까?
“……네가 누군데?”
그래도 소년은 시큰둥하게 대답해 버렸다. 어디서 친한 척이람. 우는 척까지 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 한 발상은 좋았다만. 요즘 조심하라고 난리가 난 신종 사기수단 같은 걸까?
“아……, 실례했어요.”
뭔가 수법이 먹히지 않자, 소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덜컹.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소녀와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소녀의 머리에서 은은한 샴푸향이 느껴졌다. 문득 스쳐지나간 소녀의 표정은 그런 향기와는 정 반대쪽의 감정─절망감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 역은 요츠야.” 곧 열차가 정착할 다음 역을 알리는 방송이 객실 안에 울려 퍼졌다.
“타키 군. 약속해 줘.”
아무 말 않던 소녀가 다급하게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소년은 숨을 들이켜 버렸다. 좀만 더 세게 들이켰으면 딸꾹질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약속하라니? 뭘?”
“나를 잊지 않겠다고.”
“뭐?”
“꼭, 나를 다시 만나겠다고!”
“그러니까 네가 누구냐니깐?”
“내가 누구든 간에!”
뭐야, 이 여자애. 왜 이리 막무가내야? 뜬금없이 앞에 나타나서는 자기를 기억해달라니? 한 번 물어볼까? ‘너도 미래에서 왔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소년은 도무지 소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표정이 지나칠 정도로 필사적이었으니까. 소녀의 눈에선 아까 보여줬던 절망감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었다. 각오가 서려 있었다. 마치 ‘약속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어버릴 거야!’라고 외치는 듯한 각오가 소녀의 눈동자 너머에 서려있었다.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소년은 마지못해 승낙하고 말았다. 좀 이상한 애지만 그래도 예쁘긴 하니까, 딱히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다. 뭐 전화번호나 그런 걸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고마워. ……타키 군.”
어째서인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있는 소녀의 눈망울은, 그 말에 기뻐하면서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녀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대화를 마친 소녀는 인파 속에 파묻힌 채 정차한 열차의 객실 문 너머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은 갑자기 무언가에 이끌렸다는 듯이 어떤 충동에 휩싸였다.
오늘 처음 만난 소녀가 나를 알고 있다. 그 소녀가 다짜고짜 ‘나를 잊지 말아 줘’라고 외치며 나에게 매달렸다. 그렇다면 저 소녀는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일 지도 모른다.
그 강렬한 충동이 소년의 머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 충동이 하나의 의문문을 만들어냈다.
“저기! 네 이름은……?”
소년의 그 질문이, 무수한 사람들 너머에서 소녀의 귓가에 닿았다.
소녀는 알고 있다.
소녀는 이 소년을 알고 있다.
오늘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소년은 나를 모른다. 더 정확히는 아직 어린 이 소년은 아직 나를 모른다.
그런데도 어딘가에서 외침이 들리고 있다. ‘나는 이 소년과 이어져있다’고. 머릿속, 아니 가슴 속─그것도 아니면 저 머나먼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을 어떤 생각의 집합 속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소년이 먼 훗날 나와 다시 만나게 될 사람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년이 나를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한 무언가를 남겨야만 한다고.
지금 당장 남길 수 있는 것은……?
소녀는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던 실매듭에 생각이 닿았다. 소녀의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겨 준 물건. 소녀의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 해 온 물건.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 때 길을 잃지 않도록.
어머니는 그 실매듭을 소녀에게 건네줬을 때 그렇게 말했다. 이 실매듭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녀는 오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지금, 소녀는 그 소중한 사람을 두 번이나 만났다.
이 실매듭이 나를 이 곳으로 인도했다.
지금 이 실매듭만큼 그 약속을 증명하기 위한 표식에 걸맞은 물건은 없다.
소녀가 손을 뻗었다.
그 손에서 오렌지색 섬광이 뻗어져 나왔다.
소년이 손을 뻗었다.
그 섬광이 소년의 손에 닿았다.
내가 오늘 너를 만나러 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너를 만났으니까.
다음번에는 네가 나를 만나러 와 줘.
이 실매듭을 가지고, 나를 다시 만나러 와 줘.
그리고─나를 기억해 주기를.
네가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게 될 날이 오기를.
내가 너의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기를.
잊지 말아 줘.
약속했으니까!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미츠하!”
그 외침과 함께 열차 문은 닫혀버렸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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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코멘트]
말씀드렸듯이, RE판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덕분에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는 수준으로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후기에서 종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퍄퍄
퍄퍄퍄
와 이것도 느낌 다르네
미츠하가 한층 시골소녀답게 풋풋해진 것 같다. 잘 보고 있음
다르게 흘러가면 뒤에 일상물들은 어떻게 되는거야
개추
스토리 바뀌는거구만!
55米
추천 눌르다가 실수로 비추 눌렀네 미안. 구판하고 전혀 다르게 스토리 진행되고 있네 미츠하는 하루에 두번이나 타키 만나고 가네 고2타키 중딩타키를 그리고 미츠하는 시골 소녀 같아졌네 ㅋㅋ
이 쪽이 좀더 전개흐름이 좋은듯 앞으로도 기대할게
아 이거도 다시 읽어봐야돼는데 ㅠㅠ
진짜 기대되는 작품이다 re편
육교?에서 2013년의 미츠하와 2016년의 타키가 만나고, 이 둘이 만났던 날에 다시한번 2013년의 미츠하와 2013년의 중딩타키가 만난거?
ㄴ 네 맞습니다
ㅗㅜㅑ 잘보고 갑니당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