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34b2c534ebd335a3&no=29bcc427b28477a16fb3dab004c86b6f97928ae591e31d36f52ae27a420fa787b65621b76f1fb8cabcb632492893c024dc83b04e8f84705580


늦었지만 단발콘과 만우절을 함께 모아서 써봤어.


갑작스러운 미츠하의 '단발로 자르겠다'는 통보에 당황하는 타키.


이 둘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참고로 본문의 그림 2장은 '브란' 님이 멋지게 그려주셨어!




작성자의 이전 글 모음(링크)






만물이 소생하고, 다시 깨어나는 계절 봄.


겨울내내 동면하던 동물들은 깨어나서 햇살 사이를 배회하고, 초목들은 되찾은 생명력을 만끽한다.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기대와 희망이 공존하는,

그런 계절의 한 가운데, 4월의 첫날에서-


나, 미야미즈 미츠하는 한참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 내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이 남자를, 어떤 귀여운 장난으로 놀래켜 줄 것인가를.


사실, 돌이켜보면 나는 이 서양에서 유래한 장난스러운 날과는 연이 별로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때에는 소꿉친구 둘과 함께 이런저런 장난을 치곤했지만,

철이 든 이후로, 즉 미야미즈 가의 장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알게 된 이후로는, 남들 눈치 보면서 살기에 급급하였다.

단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이 허용되는 날? 그 작은 사회인 시골마을에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였다.


별이 떨어져 자신의 삶의 기반이었던 그 작은 마을이 박살나고, 그 짐에서 해방되어 도쿄로 온 이후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감은 자신의 마음속에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올해만큼은 다르다.

작년에 벚꽃이 질 무렵에 나는 ‘그’와 기적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떠올리고, 다시 그와 사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즉, 작년까지는 사랑스러운 거짓말로 장난을 칠 대상이 없었다면,

올해는 항상 곁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남자에게, 어떤 거짓말로서 작은 일탈을 부릴까로 고민하게 되는 나.


그런 내 눈에, 침실 한 켠에 서 있는, 반 년 전 그와 함께 동거를 시작하면서 근처 잡화점에서 사온 등신대 거울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은, 윤기 있게 찰랑거리는 긴 흑발.


잠에서 깬 직후라서 조금은 부스스한 흑발을 손으로 살짝 쓰다듬는다.


타키 군이 좋아해마지 않는 이 흑발 롱헤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 짓는다.


단순히 머리카락을 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나는, 얼마나 이 남자에게 빠져있는 걸까 하고.


여하튼, 나의 타키 군은 정말로 이 흑발 롱헤어를 좋아한다.

그 장발에 대한 열정과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내 가슴을 만지는 거에 대한 그의 열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하튼, 그 정도로 타키 군에게 있어, 이 탐스러운 흑발 롱헤어는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한 순간 스쳐 지나가면 단순한 영감이었겠지만, 그 생각은 구조를 가지고 점점 구체적인 계획으로 변한다.

그래, 오늘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자 거짓말.


오늘 그를 놀래 켜 줄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나.

거울 속에 비치는 그 미소가, 조금은 짗궃어보이는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어이! 여기 한 잔 더!”

‘쾅’하며 술잔이 탁상을 내리찍는 소리 이후에 들리는 것은, 단말마와도 같은 외침.


“야, 타키, 지금 몇 병째인줄 알고는 있냐?”

“그래, 짜샤, 제발 그만 마셔.”

“맞다. 니 지금 낮부터 우리 불러서 이게 뭐하는거고?”


그리고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친구들.

목소리에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짜증이 느껴진다.


그 눈빛을 보고서야, 취기로 혼미해진 내 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그래, 아까 아침에 미츠하의 ‘그 말’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지.

그러고는 다짜고짜 이 친구들에게 ‘급하게 할 말이 있어. 다들 모여줄 수 있어?’ 라고 연락을 한 것도 나였다.


그런 내가 대낮부터 아무 말없이 술만 연거푸 마시고 있으니, 아무리 아량이 넓은 친구들이라도 짜증이 나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어 내 눈앞에 놓인 빈 술병을 본다.

안주 없이 생으로 맥주만 3병. 많이도 마셨네. 속도 더럽게 쓰리고.


그리고 비틀비틀 시선을 옮겨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의 면면을 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속에서도, 나에 대한 진지한 걱정이 느껴진다.

아아, 너희들은 참 좋은 녀석들이야.


사람이 술에 취하면 감정의 기복이 커진다고들 하지.

나 또한 마찬가지인지라, 아까의 당혹감, 허탈감이, 이제는 친구들에 대한 사랑, 우정으로 급격히 바뀐다.


“흐으... 으아아아, 친구들아...!”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녀석들에게 다가가서 강하게 껴안으려는 나.


“으아아,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오늘?”

그리고 뒤로 물러나며 기겁하는 친구들.


“야, 너 무슨 일 있지?”

그 와중에 역시 감이 좋은 츠카사다.


“너, 혹시 미야미즈 씨한테 이별 통보라도 받은거냐?”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는 신타와,


“야가 머라카노! 미츠하는 그럴 애가 아니라카이!”

 당황하는 텟시.

“...그래도 타키 상태가 영 안좋은데, 다 털어놔바라. 이 형님들이 다 들어줄꾸마.”


말을 놓기로 했지만,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


친구들의 그런 따스함에 감동하며, 나는 다시 앉아서 입을 연다. 최대한 담담하려고 노력하면서.


“...미츠하가...”


“미츠하가?” “미야미즈 씨가?”

제각기 반응하는 친구들.


“미츠하가... 갑자기 머리를 자른단다!”




시간을 돌려서 다시 오늘 아침.


간만의 휴일을 즐기며, 함께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식후 티타임을 가지며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래, 그때였다.


그녀가 갑작스런 ‘폭탄 선언’을 한 것은.


“...있잖아, 타키 군...?”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기대고 있다가 말을 걸어오는 그녀.


“...응”

나를 바라보는 촉촉한 눈망울에, 최대한의 따스함을 담아 대답해준다.


“있지, 있지, 나 말이야...”

웬일로 뜸을 들이는 그녀.

이제는 살짝 몸을 배배 꼬으기까지한다.


아아, 미츠하, 아침부터 그렇게 교태를 부리면 내 이성이 도저히...!


조바심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참으며 겨우 대답하는 나.

“응...?”


“...”

얼굴이 빨개진 채로 한동안 주저하는 그녀.

대체 뭐길래 이러는걸까?


그러다 별안간 그녀가 고개를 든다.

두 눈에 강한 결의를 담은 채로, 입을 여는 그녀.


“나, 단발로 자를까 하는데, 어때?”

그러면서 싱긋 웃는 그녀.


뭐라고?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거 맞지?


단발?


“...미... 미츠하?”

어째서야.

당황해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며, 겨우 묻는 나.

내가 잘못 들은걸 거야. 아무렴.


“응, 이제 슬슬 날도 더워질거고, 모처럼 스타일 변화도 해보고 싶으니까...!”

더욱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


갑자기무슨소리야너는장발이어울린단말이야


마음이 몸을 뛰어넘어서일까, 속사포처럼 그런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


구체적으로는 거실 벽에 걸린 달력.

거기에는 적혀 있는 것은 : 4월 1일 토요일.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닫는 나.


아하, 그런 거였나.


방금 전의 당혹이 있던 자리를, 무언가의 다른 감정이 채운다.


구체적으로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안도감과, 왜 거짓말을 해도 하필이면 이런거야 하는 괘씸함. 그리고 무엇보다 역으로 그녀를 골탕 먹여야겠다는 호승심.


“음... 그으래?”

부러 뜸을 들이는 나.


“어때 어때? 타키 군은 어떻게 생각해?”

이제는 왜 이렇게 그녀가 조바심을 내는지도 이해가 간다.


후후, 미츠하. 네가 나보다 누나일지는 몰라도, 이런 점에서는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단다.

거짓말에는 거짓말. 엄청난 거짓말로 대응해 주는거다!


“좋아. 미츠하는 예쁘니까, 어떤 헤어스타일도 어울릴 거야!

그리고, 나도 단발 좋아하는 걸!”

그렇게 나는 웃으면서, 마음속에 하나도 없는 말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미츠하가 예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외모를 200% 살릴 수 있는 건 그 흑발 롱헤어야.

오오, 흑발 롱헤어는 진리이자 빛일지니...


‘에이, 무슨 소리야, 타키 군. 그렇게나 장발을 좋아하면서.’

이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미츠하.

‘맞아, 역시 미츠하는 흑발 롱헤어가 최고지!’

맞장구 치며 하하호호 웃는 나와 미츠하.


이런 식으로 흘러갔어야했다.

그런데...


미츠하의 반응이 나의 예상과는 180도 달랐다.


“...에엣?”

언젠가의 황혼 때와 같이, 입으로 손을 가리면서 뒤로 살짝 물러나는 미츠하.

이건 미츠하가 당황했을 때의 반응이다.

황혼의 그 때처럼 내가 무언가 말실수라도 한 것일까?


여하튼, 내가 예상한, 장난스러운 반응과 너무 달랐기에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나이다.


“왜 그래, 미츠하?”

그런 감정을 담아 묻는 나.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것보다! 나 어디 좀 나갔다 올게, 헤헤...”


누가 봐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재빠르게 챙겨서 나가는 그녀.


그녀가 떠난 자리를 보며, 다시금 의문에 잠기는 나.


“방금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러다가 무언가를 다시 깨닫는 나.


오늘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

한 달에 한번, 이 날 오전에 미츠하는 머리를 하러 미장원에 간다.

철저한 예약제로 이루어 지는 미용실이고, 가서는 주로 커트와 손질을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4월 1일, 토요일...


그 말은 즉슨...!


미츠하... 정말로 미용실에 간 거야?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미용실에 간다는 것도 만우절 거짓말일거야. 그렇고 말고, 하하.


하지만 내 이성은 이미 알고 있다.


아무리 만우절이라고 해도, 미용실 예약 같은 것을 거짓으로 할리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든 나는, 침실로 우당탕 뛰어 들어가서 미친 듯이 서랍을 뒤진다.

그녀의 서랍을.


평소의 나였다면, 그녀의 서랍을 몰래 뒤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급박한 상황에 몰린 나는 물불 가릴 것이 없었다.


없어... 없어!

미츠하의 미용실 적립 카드가 없어!

분명히 한 달에 한번만 쓰는 거라서 이때만 가져 갈 텐데!


서랍이 어지럽혀진 방에서, 반쯤 나간 정신으로 멍하게 생각하는 나.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을 종합해본다면...

결론은 하나다.


“안 돼, 미츠하, 가지 마. 미용실에 가지 마. 내가 잘못 했어. 다 거짓말이야, 그러니까...!”

듣는 사람도 없는 방에는, 나의 메아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니까, 니 말을 오해한 미츠하가 미용실에 진짜 머리를 하러 갔단 거 아니냐 지금?

에휴, 난 또 타키 니가 그러기에 진짜 심각한 일이 있는줄 알았구만.”

내 긴 이야기를 들은 텟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뭐야, 그 어이없는 표정은!

여자 머리가 다시 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줄 알아?

그 말은! 앞으로 최소 몇 달간은 미츠하의 그 장발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소리라고오!”


그렇게 흥분하는 나를 진정시키며 말하는 츠카사.


“흐음, 확실히 미야미즈 씨는 장발이 잘 어울리지.

만약 나라도 갑자기 미키가 머리를 자른다고 하면... 으으, 정말 그건...”

무언가 끔찍한 것을 상상한 듯이, 표정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츠카사.


그때, 울려퍼지는 ‘쾅’하는 소리.


“마! 단발이 머가 우째서 그러노!”

간만에 흥분한 텟시의 모습.


“진정해 카츠히코. 그래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장발이 더 어울리는 법이야.

아마 나토리 씨도 머리를 기르면 좀 더...”

전혀 동요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여유롭게 말하는 츠카사.


“안 된다! 사야카는 단발이 어울린다! 단발이 예쁜 여자가 진짜 예쁜 여자라는 말도 있지 않나!”

간만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하는 텟시.


“호오... 방금 그 말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겠는데. 미키의 외모가 평가절하 한 발언으로 이해해도 되는 건가?”

그리고, 안경코에 손을 짚으면서 태도가 날카롭게 변하는 츠카사.

이건 이 녀석이 나름대로 진지해졌을 때의 습관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 오쿠데라 씨도 이참에 팍 단발로 쳐버리면 그 외모가 더 살지 않겠냐는...”


“무슨 소리! 장발이야 말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스타일이란 말이다! 네 녀석은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쓱삭하고 가위질 한 번에 자르라는 말이냐!”

츠카사 역시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항변한다. 뭔가 태클 걸 곳이 좀 많은 것 같긴 하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뭐라꼬? 단발의 매력을 모르는 니가 참 불쌍하구만!”

텟시 역시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서, 화기애애하던 술자리는, 어느새 각자의 신념을 고수하는 단발파 텟시와, 장발파 츠카사의 논쟁과 애인자랑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이 이념의 광전사 녀석들 사이에 끼여서 그런지, 한창 머리가 어지러운 나.


그리고, 저기 구석에서 홀로 ‘커플지옥 솔로천국’을 외치며 연거푸 술을 마시는 신타가 있었다.






나는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답이 없는 질문의 답을 고민하면서.


고민, 그래 구체적으로는 오늘 아침의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시작은 분명 사소한 거짓말이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누가 봐도, 아니 적어도 타키 군 기준으로는 뻔한 거짓말이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자신의 남자가 좋아해마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스타일 변화’를 핑계로 스윽 바꾸어버리려고 할까?


자신은 그런걸 이해할 수 없었다. 타키 군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단발로 자르겠다.’라는 말에 이어질 그의 대답은 ‘에이, 무슨 소리야. 미츠하는 장발이 더 어울리는 걸?’ 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고, 거꾸로 내가 당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황을 감추기 위해서, 그에게는 대충 얼버무리고 곧바로 나오긴 했지만, 딱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무작정 걷는 중이었지만.


물론, ‘나도 단발 좋아해’ 라는 그의 대답이 만우절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보긴 했다.

즉, 누가 봐도 뻔한, 나의 거짓말에 그도 거짓말로 응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주제도 아니고,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장발이 걸린 문제인데.

아무리 타키 군이 장난기가 많다고는 해도,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장발을 가지고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혼란스러운 사고 속에서 나름대로의 결론이 도출된다.


즉, 결론은, 그에게 어떤 심적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타키 군이 단발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가 나의 단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마침 오늘은 미용실 예약 날이기도 했다. 어제 준비했는지 가방에는 미용실 적립 카드도 있었고.

어쩌면 이건 일종의 계시일지도-.


여하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 풍성한 흑발을 자른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던 나였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발걸음을 돌려 미용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용실 앞에서 머리를 하고 나오는 미키를 만났고, ‘단발’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근처 카페에 끌려온 나.

만우절에 텟시가 장난을 받아주지 않아서 심심한 사야찡과, 바늘과 실처럼 우리가 가는 곳에는 항상 빠지지 않는 요츠하까지 해서 지금에 이른다.




“흐음, 그래서 미츠하가 단발 이야기를 한거구나?”

지금까지의 나의 긴긴 이야기를 듣고 미키가 짧은 감상평을 한다. ‘과연 그렇구만’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도 뭔가 부럽네... 카츠... 아니, 텟시였으면 만우절이라고는 해도, 절대 그런 거짓말 안 받아줬을걸? 참으로 고지식한 남자라니께...”

살짝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하는 사야찡.


“우으... 집을 나올 때 까지만 해도 확신이 있었는데... 다시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잘 모르겠어...”

지금 드는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과연 타키 군의 본심은 어떤 것일까.

말만 해줘, 타키 군. 내 모든 것은 너의 것이니까... 네가 원하는대로 해줄게!


그렇게 핑크색으로 물들어가려는 나의 사고를, 미키의 말이 환기시킨다.


“으흠, 내 생각에는 애초에 타키 군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데. 그도 그럴게, 타키는 예전부터 쭈욱 장발파였는걸?”

얼음이 둥둥 띄워진 레몬 에이드를 홀짝이면서 말하는 미키.


흐음, 하긴 내 기억에도 몸이 바뀌던 고등학생 때부터, 타키 군은 착실한 장발파였다.

예전에 한때 미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의 침대 밑에 숨겨져 있는 얇은 책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 적나라한 내용이 떠올라서 괜스레 얼굴이 빨개지는 나.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팬케이크에 시럽을 듬뿍 부으면서 입을 여는 사야찡.


“그래도 머리는 여자의 생명인디... 타치바나 씨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데이.”


맞아, 사야찡. 내가 고민하는 점을 제대로 짚어주는구나. 역시 20년지기 내 친구라니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의견이 모두 타당한 것 같았기에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고개를 들어 미키의 찰랑이는 갈색 장발을 본다.

다시 고개를 돌려 사야카의 단정한 단발을 본다.


아아, 타키 군, 대체 너의 취향은 어떤거니?

잊고 싶지 않은 것. 잊으면 안 되는 것. 너의 취향은...?


그렇게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하며 한참 사고에 잠기려고 하는 순간.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나의 동생, 요츠하가 입을 연다.


“...좋은 생각이 있어.”


일순간에 우리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이고-.


“흠흠, 애초에 언니는 타치바나 씨의 취향이 단발과 장발, 어느 쪽인지 고민하는 거잖아?

‘그 중에서 꼭 하나만 결정해야할까?’ 하는 게 내 생각이란 말이지.”

아이스크림 스푼을 쪽 빨면서 모든 것을 간파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나의 동생.


아직 이해가 안 되어서 알쏭달쏭한 나의 표정을 무시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여기 묘안(妙案)이 있어. 장난에는 장난으로 대응해야지. 그러니까...”


곧바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하는 요츠하.

때로는 무언가를 휴대 전화로 열심히 보여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요츠하의 설득과 설명이 끝나자, 타키 군을 역으로 골탕먹일 생각에 즐거워진 우리 여성진들.

특히, 얼굴 면면히 회심의 미소와 더불어 짗궃은 미소가 퍼지는 것을 느끼는 나였다.






반짝이는 석양을 배경으로, 비틀비틀 거리는 한 남자가 있다.


백주대낮부터 친구들을 불러서 신나게 마시기를 몇 시간.

푸념과 의미 없는 논쟁이 끝나고, 이제 겨우 파하여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집에 들어선다.


그런 내 눈에 보이는 누군가.


그리고 살짝 숨을 들이키는 나.


놀람에 술이 깨는 것을 느끼며, 생각한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방을 배경으로, 웬 여인이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두워서 그 모습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창틈 사이로 살짝 비치는 노을빛이 그녀를 살짝 비춘다.


그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에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보는 나.



viewimage.php?id=34b2c534ebd335a3&no=29bcc427b28477a16fb3dab004c86b6f97928ae591e31d36f52ae27a420fa787b65621b76f1fb8cabcb63249289ec170e3980cc0253d1f9060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니다. 저기 있는 건 둘도 없는 나의 반쪽. 나의 여자인 미츠하였다.


다만,

아침까지만 해도 찰랑거리던 긴 머리가, 목 언저리에서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항상 반 머리에 포인트로 주던 노을빛 매듭끈도, 지금은 카츄사 대용으로 둘렀을 뿐이다.


그래, 결국 그녀는 머리를 싹둑 자른 모양이다.

혜성이 떨어지기 직전의 그때처럼.


솔직히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혹시나 했다. 그녀가 머리를 자르면 어쩌지 하고.

당분간은 그 찰랑거리는 머리를 볼 수 없나 싶어서 걱정도 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단발의 그녀는, 방금의 걱정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그저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그녀가 눈을 뜨며, 살며시 입을 연다.


“다녀왔어, 타키?”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석양빛을 받아 더더욱 빛이 난다.


“저기... 내 머리스타일... 어때...?”

언젠가 황혼의 그때처럼,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수줍게 살짝 웃는 그녀.


아름답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뭐, 나쁘지 않네.’라고 어물쩡 대답해서 그녀에게 혼났던 10년 전의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마치, 말로서는 그 숭고함,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나는 한 걸음, 두 걸음 그녀와의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는 끌어안는다.


“에엣...? 타키 군?”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놀라는 그녀.


포옹을 풀고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살짝 홍조가 오른 표정, 석양을 받아 반짝거리는 눈.


“저기... 장발이 아니어도 괜찮은거야?”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기어드는 그녀.


그 아름다운 두 눈을 보면서 천천히, 그러나 똑똑히 대답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했었어. 미츠하가 정말 머리를 자르면 어쩌지 하고.”

“하지만 이젠 그런 건 상관없어. 내가 사랑하는 건 미츠하니까. 어떤 모습의 너라도 나는 사랑하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애타게 그 다음 말을 찾는 그녀.


“...잘 어울려. 미츠하.”


이것이, 10년 전에, 그곳에서 전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시간도 공간도 달랐지만, 드디어 이번에는 그녀에게 직접 이 말을 전하는데 성공하였다.


내 말을 미츠하의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그리고 작게 속삭인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닌데...”


“응?”


“타키 군의 놀라는 반응을 기대했는데...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주면... 장난친 게 너무 미안해지잖아...!”

내 품에 포옥 안기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


“... 무슨 말이야, 미츠하? 장난이라니?”

아직 상황 판단이 안되는 나.


“타키 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갑자기 나를 살짝 밀어내더니, 검지 손가락을 세우면서 말하는 그녀.


“으응, 4월 1일, 만우절이지.”

그녀의 온기를 아쉬워하며, 멍하게 말하는 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

그리고는 곧바로 손을 머리 쪽에 가져다댄다.


이윽고, 내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녀의 손짓 몇 번에, 단발이었던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곧바로 장발로 바뀐다.


“에엑?”

뭐야 이거. 내가 잘못 보는 건가? 어떻게?


“으음, 이런 걸로 장난쳐서 미안해, 타키 군.”

땋은 머리카락을 풀며, 쑥스럽게 웃는 그녀.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


오늘 아침에 나의 거짓말, 즉 ‘단발도 좋아’라는 말을 듣고 진짜인줄 알고, 정말로 미용실에 갔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진들과 함께, 나의 거짓말을 이용해서 역으로 나를 골탕먹일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즉, ‘단발로 자르지 않고도, 단발을 연출해서 타키 군을 놀래켜주자!’라는 계획이라나 뭐래나.

주요 입안자는 요츠하라고 한다. 이 녀석...


하지만,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나의 반응에, 오히려 그녀가 더욱 놀랐다고.

동시에 나의 따뜻한 말에 감동까지 한건 덤.

그래서, 더는 속이기가 미안해졌다는 것까지가 그녀의 설명이었다.


“기분 나빴으면 사과할게, 타키 군. 미안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그녀.


“아니야, 미츠하. 애초에 내가 그런 거짓말을 해서...

나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었네. 미안해.”

나 역시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솔직히 고민은 되었지만, 타키 군의 속마음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구?

게다가, 처음에 시작한건 나였으니까...“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진다.


“그럼 우린 서로에게 완벽하게 속은 거네.”

“그러게나 말이야.”


그 말을 하며,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웃는다.

수줍지만,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미소를.



viewimage.php?id=34b2c534ebd335a3&no=29bcc427b28477a16fb3dab004c86b6f97928ae591e31d36f52ae27a420fa787b65621f9334cd1cab3b03d464190cd74fa9210c0882730da89be580a3b



웃음이 잦아들 무렵,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만우절이라고는 해도, 미츠하에 대한 나의 마음은 진심이니까...”

그녀의 빛나는 두 눈을 보면서 말한다.


“응, 나도 마찬가지인걸. 사랑해, 타키 군.”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


타는 듯한 석양을 배경으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겹친다.


카타와레도키는 곧 끝난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 우리에게는 기나긴 저녁과 밤이 있다.


이렇게 만우절의 밤은 뜨겁게, 동시에 행복하게 저물어가는 것이었다.



FIN





(아쉬워서 추가한 사족. 안 읽어도 무방함!)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뜨거운 키스 이후에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던 미츠하가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그나저나 타키 군, 솔직히 아까 내가 머리 자르지 않은거 알았을때 안도했지?"

살짝 샐쭉한 표정으로 묻는 그녀.


"에엑?"

갑작스럽게 정곡을 찔린 나는 당황할 수 밖에.


"그 반응을 보아하니 맞는거 같네! 흥, 뭐야. 아까는 어떤 모습의 나라도 사랑한다면서!

그래서 어느 쪽이야? 단발이야 장발이야?"

살짝 화난 모습으로 손가락을 두개 들고는 내게 선택을 강요하는 그녀.

그 모습이 자못 기세등등하기에, 주도권을 뺏긴 나는 꼬리를 내릴 수 밖에.


그나저나, 저런 화난 모습까지 귀엽게 느껴지는 나는, 이 여자에게 얼마나 빠져있는걸까.


흠흠, 여하튼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10년전부터 정해져 있었는걸-.


미츠하는 단발도 어울리지만, 그래도 흑발 롱헤어일때 가장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그 찰랑거리는 머리, 윤기있는 머릿결, 그리고 살짝 땋은 반머리 조합을 볼때마다, 나는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를 연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담아서 솔직히 말한다.


"휴우... 정말이지, 이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홱 돌리는 그녀.

하지만 그 얼굴에는 웃음이 서려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젠가와 같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바탕 웃는다.


그렇게 웃으며 생각한다.

그녀가 무방비해진 지금이, 내가 주도권을 가져올 기회라고.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쏘냐.


"그나저나 미츠하, 오늘 이 모든걸 시작한건 누구였더라?"

나 역시 살짝 입을 내밀면서 말한다.


"에엣? 갑자기 그걸 왜 묻는거야아...?"

당황하는 표정으로, 한순간에 표정이 휙휙 바뀌는 그녀.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 이성을 짜내어서 한 마디를 던진다.

"장난을 좋아하는 미츠하에게는 벌을 줘야겠지?"


"타...타키 군?"

살짝 겁에 질리는 그녀.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아까 말마따나, 만우절의 밤은 이제 시작이니까.






오늘도 긴 글 읽어준 갤럼들에게 감사!


네, 결국 단발콘에 참가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작중 타키처럼 장발파이지만... 단발도 가끔은 좋다고 생각해요(진심)

여하튼 덕분에 합작도 해보고, 정말로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ㅋㅋ


이 자리를 빌어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총대에게 감사하고 싶음! 물론 치킨도 ㅋㅋ


그리고 무엇보다도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그림 그려주신 '브란' 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림 덕분에 글 묘사에 더 힘이 실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검수한다고 예정보다 늦게 올리게 된 점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ㅠㅠ


여하튼, 모쪼록 장발파와 단발파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네요.


의견/지적/감상평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다들 저와 브란님께 힘을!


그럼 다음 글로 찾아올게요! 이만 총총!



ps. 참고로 작중의 미츠하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고도 단발 연출이 가능하데요!


궁금하면 이 링크로 가보도록!(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