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콘/팬픽] 파편 上
[단발콘/팬픽] 파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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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아파…. 여기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눈을 뜨자 보인건, 조금은 커다랗게 느껴지는 침대와 책상 하나.

정리가 안 된 채로 여기저기 놓여있는 책들과 운동기구, 그리고 벽에 걸린 옷걸이.



"어…?"



여기…어디지? 옷걸이에 남자 옷이 걸려있어? 뭐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숙취도 잠도 모두 확 달아났다. 머리가 핑핑 돈다. 여긴 아무리 봐도 남자가 생활할 법한 방.

취한 채로, 깨어나자 모르는 남자의 방에.  나도 나이가 몇 살인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설마, 설마 하며 확인차 이불을 들춰보자 다행히도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입은 채. 이럼 어제는 별 일 없었던건가, 하고 안심하는 한편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으에…이, 일단 사람이 오기 전에 도망쳐야하는데……. 아, 가방 찾았다."



――♪♩♬



아직 메스꺼운 속을 억지로 달래며 가방을 찾은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술 자리 탓에 대중교통이 끊길 걱정을 해야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왠지 골목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가보니 단발의 여성과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리로는 남자가 억지로 여자를 끌고가려는 것 같아 나서야겠다 생각한 순간, 전혀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우욱――"



여자가 남자의 배를 때렸다. 







"미츠하 씨한테 그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쓰러진 남자를 발로 걷어차는 모습에 미츠하 씨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 채로 달려가 두 사람을 떼어놨었지.

뒤늦게 미츠하 씨인걸 알아채고 얼마나 놀랐는지. 사귀는 1년 동안 그런 모습은 단 한번도 보여준 적 없었으니까…. 

내가 아는 미츠하 씨는 언제나 침착하고 포용력이 높은 누나같은 느낌이었지, 그런 무서운 누나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미츠하 씨가 좋다. 내 눈에 콩깍지가 낀건지, 어제 미츠하 씨의 무서운 모습마저 좋았다. 

침착한 미츠하 씨도, 화를 내는 미츠하 씨도, 술에 취한 미츠하 씨도 모두 똑같이 좋아한다.

그건 그렇고 미츠하 씨 지금은 일어났을까? 어제 많이 취한 것 같았는데. 

일단 숙취해소에 좋다는 것들을 사봤는데…좋아할 지 모르겠네.







끼익―



""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 문을 열고 살짝 고개를 내밀자 타키 군과 눈이 마주쳤다.



"어, 어…타키 군이 왜……?"

"아…일어나셨네요. 많이 취하셔서 이것저것…좀 사왔거든요.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침은 아직 준비가 안 되서."



뭘까, 가정집 같은데 왜 여기에 타키 군이 있는걸까.

……설마.



"혹시…여기 타키 군네 집이야……?"

"어? 어제 일 기억 안 나세요?"

"…하나도 안 나는데, 무슨 일 있었어?"



그 말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웃는 타키 군의 모습에 가슴 한 켠에서 불안감이 싹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기억나는 것은 사치랑 술을 마시다가 취한 것 밖에…….



"글쎄요."

"잠깐만!! 정말 무슨 일 있었던거야?"

"일단 아침 차려드리고 천천히 얘기해드릴테니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저도 묻고싶은게 많거든요."



묘하게 침착한 타키 군의 모습에 싹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뭔가 취해서 실수한걸까?

취해서 이상한 얘기를 했다거나, 화를 냈다거나,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아……!! 정말 어떻게 된거야…….

타키 군이 저렇게 속을 알 수 없던 모습은 처음인데……. 불안해……. 불안하다구.



"다 됐어요."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요리를 끝낸 타키 군이 접시며 그릇들을 들고왔다.



"…와. 타키 군 이거…직접 한거야?"

"어제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아서요. 찾아보고 속이 편하다는 음식들을 한번 해봤는데, 처음치곤 괜찮게 된 것 같아요."



타키 군이 차려온 밥은 사실은 사온걸 담아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그게 아니라는건 조금 어질러진 부엌이 증명해주고있지만 믿기지않을 정도의 실력이다.

녹차향을 풍긴 죽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딱 간이 맞아 맛있었고 정갈하게 접시에 내온 야채볶음도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타키 군, 운동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말야, 그 어제…."



타키 군의 요리실력에는 놀랐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타키 군네 집에 있는지. 

혹은……창피한 일은 없었는지 물어봐야했다.



"어제는 놀랐어요."



타키 군의 말에 흠칫, 하고 몸이 떨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저런 소리는 하지 않을테니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위험했어요. 모르는 남자가 헌팅하다 안 되니까 끌고가려했다고요."



위험하잖아?!



"그, 그래서? 별 일 없었지?"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게되서 구하려고 달려가는데…."

"타키 군이 구해줬구나!"



타키 군은 운동도 잘 했으니까, 싸움도 잘했겠지. 무서운 남자를 쫓아내고는 나를 부축해서 집에 온거야.

그거라면 뜬금없이 타키 군네 집에 있는 이유도 납득이 가.



"아뇨, 미츠하 씨가 남자를 때렸어요."

"……."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주먹질을 하고 발로 뭔가를 걷어차는 시늉을 하는 타키 군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거 비현실적이야.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거짓말하지 마.



하지만 타키 군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는 빛을 띄지않고 있었다.











휙, 휙하며 조금 과장되게 주먹과 다리를 내뻗었다.

힐끔, 몰래 곁눈질로 미츠하 씨를 보니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서 눈이 갈팡질팡하는 미츠하 씨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미츠하 씨."

"에, 에?! 왜, 왜??"



당황한 미츠하 씨도 귀엽구나. 아, 정말…미츠하 씨가 귀여워.



"으…. 왜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거야?"

"아, 아뇨…….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하셨나 해서……."



귀여워서 멍하니 쳐다보고있자니 미츠하 씨가 볼을 부풀리고는 화를 낸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화를 내는 모습도 귀엽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떻게 해.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가? 너무 귀여워서 꽉하고 품에 끌어안고싶다.



…그런데 뭐지? 갑자기 미츠하 씨가 조용해졌는데.



"……정말 몰라서 물어?"

"에…. 짐작이 가질 않는데요……."

"정말?"



어……. 이번 건 정말 화난 것 같은데, 귀엽다기보단 뭐랄까…어제 밤에 본 그 미츠하 씨 같다. 

대답 잘 못 하면 한대 맞을 것 같은데? 뭐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봐도 특별히 미츠하 씨와 관련된 사건은 없었다.

그도 그럴게 도쿄대에 붙은 것조차 이야기를 못 했었으니까. 아, 그럼 혹시?



"어…미츠하 씨한테 제가 도쿄대에 붙은걸 얘길 안 해서……?"

"도쿄대에 붙었었어?!"

"…이건줄 알았는데, 그럼 왜 연락 안 한거예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기다려도 아무 소식도 없고."

"……."



갑자기 침묵을 지키는 미츠하 씨의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어, 내가 뭘 잘못했었나? 미츠하 씨 생일…은 아직인데. 연락이 끊긴 때 쯤엔 기념일도 없었는데.

뭐지,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게 있는건가?



"…전에 타키 군이 미팅하는거…봤어."



그거…최악이다. 전혀 생각하질 못 하고있었는데, 그건 설명도 좀 복잡하고.



"그, 그건 오해예요."

"오해? 여자랑 번호 교환하는 것도 직접 눈 앞에서 봤는데?"



미츠하 씨의 미간이 찌푸려진게 보였다. 하필이면 들은 것도 아니고 미츠하 씨가 직접 봤다니.

아…이러면 변명의 여지가 없잖아……. 어떻게 하지?



"그…오해예요. 제가 잘못한건 맞는데, 생각하는 그런건 아니예요."

"……."

"믿어주세요. 설명할 수 있어요."



미츠하 씨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다. 잘못 건들면 깨져버릴 것처럼 꽁꽁 얼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나는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다.



신타가 부탁해온 일, 취해있을 때 실수로 받아들인 일, 미팅에서는 절대 먼저 여자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일.

번호 교환은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졌던 일이며 이미 사정을 설명하고 연락처를 지웠다는 것까지.



설명하는 내내 미츠하 씨는 뭔가 미심쩍다는 반응이었지만 내가 라인 내역까지 보여주자 비로소 믿는 듯 했다.



"그래도 미팅에 나간 것 부터가 타키 군이 잘못한거야. 내가 그런데 나가서 남자랑 번호 교환하면 어떨 것 같아?"

"…정말 싫네요. 죄송해요, 미츠하 씨를 생각 못 해서…그런데 신타가 부탁해오는걸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건 타키 군의 친구 잘못이 아니라 타키 군 잘못이야. 변명하지마."

"예……."



내 잘못이라는건 부정할 수가 없다. 

여자친구가 있으면서도 미팅에 참여한 것, 그 사실을 숨긴 것, 미츠하 씨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은 것. 

지금 미츠하 씨가 지적한 것들은 모두 옳았다. 내게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 잘못이다. 미츠하 씨가 화난건.



"그래도…나도 잘못했네. 타키 군한테 한번이라도 물어봤다면, 싶어."



그런데도 미츠하 씨는 자신을 탓했다.



"우스운 일이 있었지만 어제 그렇게 만나지 못 했다면, 그래서 오늘 이렇게 얘기할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대로 헤어질 수도 있지않았을까…그렇게 생각하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는 미츠하 씨의 표정이 너무 괴롭고 슬퍼보인다.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내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데. 자신을 탓하는 미츠하 씨한테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까.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머릿 속에서 정리되질않는다.



"죄송해요."



결국 입 밖으로 내뱉은건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

이런걸 말하고싶은게 아니었는데…끝내 위로의 한마디가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이렇게…말을 못 했나.



"……죄송해요. 정말…"

"…다음에는 그런 일에는 끼어들지 마? 타키 군이 계속 그러면 나도 똑같이 해줄거야."

"안 돼요, 어제처럼 해주세요."

"어제처럼?"

"엄한 남자가 접근하면 그냥 두들겨패서……."



미츠하 씨의 눈이 무섭다. 입은 웃고있는데…….



"농담이었어요."

"농담?"



이건 지뢰다. 그럼…



"…사실 반쯤은 진담……."

"타키 군, 자꾸 그러면 정말로 화낼거야?"

"죄송해요……."



뭘 이야기해도 다 지뢰잖아…….

애초에 난 어제 이야기를 왜 꺼냈던거지? 미츠하 씨가 싫어할 건 당연한데.



"풉, 푸흡…."

"에?"

"아하하, 타키 군…바보같아. 도쿄대에 붙었단거 진짜야? 안 믿기는데…"



아니, 그냥 미츠하 씨가 놀리는거였구나.

다행히 미츠하 씨는 계속 놀릴 생각은 없는지 화제를 돌려 도쿄대 합격 건을 물어왔다.



"예……저도 못 믿겠어요. 정말 붙을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

"정말 열심히 했구나."



열심히 공부하긴 했는데, 정말 붙을거라곤 생각 못 했지.

아니, 붙을 생각으로 공부하긴 했는데…아, 이거를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기분이 복잡해.



"저, 미츠하 씨랑 같은 대학에 가고싶다고 생각하니까…."

"…동기가 불순하네."

"하하…."



원래는 미츠하 씨와 마주보고 좀 더 당당하게 합격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합격 건을 말해버리고, 지금은 미츠하 씨의 페이스에 넘어가버렸다.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멋지게, 좀 더 당당하게 내가 미츠하 씨의 남자친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내가 의지가 되었다면 연락을 끊기보다 믿고 기대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느낌이 든다.



"미츠하 씨."

"응? 왜?"

"죄송해요."

"으응…나도……."



지금도 미츠하 씨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면 내가 지금까지 너무 미츠하 씨한테 어리광을 피웠구나, 싶다.



"좋아합니다."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용기는 꽉 하고 미츠하 씨를 안고서 고백하는게 고작이지만….

언젠가 미츠하 씨가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 타키 군…잠깐……."



미츠하 씨가 벗어나려는듯이 뭔가를 말하려했지만 그 것도 잠시. 곧 잠잠해졌다.

말이 없어진 상황, 품에 안긴 미츠하 씨, 눈에 들어오는건 붉어진 미츠하 씨의 귓볼.



충동적으로 미츠하 씨를 안고 마음을 고백했는데 분위기가 묘해졌다.

이거 괜찮을까, 한 발 더 내딛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렸다.



"아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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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파편의 엔딩은 해피엔딩은 아니었음.



타키랑 미츠하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화해하지만 타키-신타-츠카사의 사이가 박살나고 중간에 나왔던 여자도 따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생각이었는데 1편부터 왜 타이틀이 파편이냐고 엔딩 해피엔딩하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2편부터 스토리를 갑자기 바꿨더니 2편은 내용 면에서 많이 어설펐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 

원래 전개대로 갔으면 타키-신타-츠카사의 사이가 깨졌을 테니 박살난 사이를 강조할 부분이었던 단체 데이트를 나중에 에필로그로 써볼까 싶기도 하고, 그거 여름콘으로 내면 재밌긴 하겠네.



첫 팬픽 완결작인데 아쉬운 점이 많다. 후편은 너무 늦게 쓰기도 했고. 그래도 완결에 의의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