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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없는 나무」 시리즈
* 본편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갤럼은 영화를 먼저 관람해 주세요.
* 설정 변경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1. 후타바가 죽지 않고 계속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직업, 인간관계 등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2. 후타바가 죽지 않으니 토시키 또한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3. 미츠하와 바뀌는 타키는, 미래의 타키가 아닙니다. 즉 2013년의 중2 타키와 17세 미츠하가 서로 몸이 바뀝니다.
4. 어느 정도는 본편을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바뀌었으니 만큼 변경점이 많을 예정입니다. IF가 싫으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 갤럼분께서 고맙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편 링크는 이쪽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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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나를 비추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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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네.”
“그러게.”
교실 창가 맨 뒷자리,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이 학생이라면 왠지 꼭 주인공의 자리로 간택받곤 하는, 속칭 축복받은 자리. 실제로 여러모로 조건이 좋기도 해서 매 학기 초면 저 자리를 바라는 학생들이 각축장을 벌이곤 했다. 옆에 부대끼는 학생 별로 없지. 선생님 몰래 자기도 좋지. 더울 때 문 마음대로 열 수도 있지. 치열할 만 하지 않은가. 뭐, 현실은 선생님이 찍어주는 대로 앉는 처지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좋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침 HR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말이다.
보통 불량배들의 자리로 인식되곤 하는 자리였기에 비어있어도 어디서 이런 장면을 많이 본 듯한 인상을 주곤 했지만, 그 자리의 주인은 불량배와는 한참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낯설게만 보이는 장면이었다.
테시가와라 카츠히코는 미야미즈 미츠하의 빈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9월도 거의 다 지나가던 어제, 미츠하는 결국 일을 벌이고 말았다. 물론 이상한 미츠하 쪽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번에 벌인 일은 이상해진 이후 평소에 가끔 보이곤 했던 소소한 괄괄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반의 소문난 날라리인 마츠모토를 자그마치 주먹 단 한 방으로 잠재워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말았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서 여러 경로로 확인도 해 봤지만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단 한 방이었단다.
미야미즈가 쌓인 게 많은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와, 그래도 한 방이라니 좀 센데? 다시 봤어. 있잖아, 마츠모토 걔 그렇게 약한 애였어?
아닌 척 했지만 반의 모두가 여기저기서 그렇게 수군대고 있었다. 두 당사자들은 둘 다 아직 등교하지 않았다. 관계자라 할 수 있는 나머지 두 날라리, 사쿠라와 하나 또한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은 채 마음껏 온갖 억측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테시가와라는 눈으로는 여전히 그 자리를 응시하며, 귀로 솔솔 흘러들어오는 소음은 가볍게 흘려들었다. 그는 생각한다. 젠장. 맘에 안 들어.
그 때였다. 갑자기 무언가 부드러운 게 테시가와라의 등에 착 달라붙은 것은.
“텟시, 뭔가 맘에 안 들어?”
“사야카, 너 또냐. 덥다고….”
정곡을 찔린 테시가와라는 애써 아닌 척 의미 없는 신소리만을 사야카에게 돌려주었다. 그런 신소리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사야카는 테시가와라에게 마음껏 툴툴거렸다.
“거 좀 달라붙는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쩨쩨하게 굴기야?”
“무겁거든!”
“아, 네. 네.”
사야카는 샐쭉한 표정을 하고는 테시가와라의 등에서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평소대로의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흐름, 하지만 곧 사야카 또한 미츠하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테시가와라의 그것과 꼭 닮은 모습이었다.
“미츠하, 늦네….”
“그러게.”
“혹시…. 학교, 안 나오는 걸까?”
“그럴 리가 있냐!”
사야카가 가볍게 던진 걱정의 말에, 테시가와라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격탕되어 목소리를 높이고 만다. 약간 놀라서 둥그렇게 눈을 뜬 사야카의 모습을 보고서야 테시가와라는 간신히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곤, 헛기침과 함께 조금씩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어, 흠! 그, 미츠하 그 녀석 정말 아프거나 하지 않으면 학교 안 빠지는 애였잖아? 암. 마츠모토 그깟 놈이 뭐라고 미츠하가 학교를 빠지겠어. 난 걱정 안 해. 암, 그렇고말고.”
“흐음…. 뭐, 알았어. 그 정도로 용서해 줄게. 미츠하가 학교에 안 나올 지도 모른다는 게 텟시에겐 엄청난 걱정이었다 이거지.”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네, 네.”
눈을 살짝 치켜뜨며 능글맞게 웃는 사야카. 이럴 때의 사야카에게는 뭔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아는 테시가와라의 입이 다시 굳게 닫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눈은 다시 미츠하의 빈자리를 무의식적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시선을 따라가는 사야카의 눈에도 어느새 능글거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드르륵.
선생님이다! 시선을 다른 데 두고 있던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러나 앞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그대로. 뭐지? 선생님이 아닌가? 아니, 그보다 애들은 왜 다 뒤를 보고 있는 거야?
테시가와라는 급우들을 따라 뒷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 다음, 누군가를 보았다. 그녀를 본 테시가와라의 눈이 놀람의 팽창을 거치곤, 조금씩 걱정의 빛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뒷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방금까지 그들이 걱정하던 사람이자 이 사건의 주인공인 미야미즈 미츠하였다. 머리 스타일을 보니 아마도 평소대로의 미츠하. 평소대로라면 ‘안녕.’ 이라는 한 마디와 함께, 밝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사람같기는 한 얼굴로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을 그녀.
하지만 오늘의 미츠하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교실에 들어오던 그 순간부터 그녀는 고개를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걸음걸이에서도, 축 처진 어깨에서도, 다른 그 어디에서도 생기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미츠하는 무거운 침묵에 잠긴 교실을 터벅터벅 가르며 자기 자리로 걸어가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 그건 앉음이 아니라 주저앉음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테시가와라마저 점점 미츠하처럼 가라앉아 갈 때쯤.
뒤이어 바로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고, 그렇게 반을 지배하던 기묘한 침묵의 시간 또한 함께 끝이 났다.
모두가 선생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이제 테시가와라만이 미츠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하지만 푹 숙인 미츠하의 얼굴은 그녀 스스로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그 그림자 너머의 얼굴을 보는 건 결국 테시가와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침내 미츠하를 보는 걸 포기한 테시가와라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처럼, 내키지는 않지만 선생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의 싫은 기억이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혹시, 또다시 그 때처럼? 아니야. 아니라고. 재수 없는 생각하지 마라. 테시가와라 카츠히코.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쾌한 추측을 애써 떨쳐내며, 테시가와라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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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그저 멍하게. 선생님은 앞에서 수업을 하고 계신다. 주위 어딘가에서는 선생님 몰래 숙덕대는 짓궂은 친구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야미즈 미츠하의 세상은 검기만 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세상을 보지 않았고 귀가 열려 있어도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아마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어라…?’
놀라운 일의 연속에, 미츠하는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아침에 분명 미츠하는 이렇게 각오했었다. 저질러 버렸어. 눈에 띄어 버렸어. 이제 모두가 날 욕할 거야. 그리고 그런 날 키운 우리 집을 욕할 것이고. 그래, 그 때처럼.
사실은 학교도 확 빠져 버릴까 하고 잠시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피해 버리면 그 모든 비난은 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었기에 미츠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집안에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기 싫었던 학교에도 온 것이다. 밍기적밍기적 간신히 HR 시간에 맞추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한 하루였지만… 놀랍게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평화 그 자체.
뒤에서는 어땠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건 아마도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최소한 그녀의 주위에선 그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미츠하로서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중한 두 친구, 테시가와라와 사야카가 자신을 탓하지 않을 것은 예상했던 범위였다. 그들 또한 정도는 달랐지만 마츠모토에게 쌓인 것이 있었고, 미츠하가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듯 그들 또한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틀렸다. 좀 다른 의미로.
누구에게서도 그녀를 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누구도 그녀의 집을 멸시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한두 시간쯤이야 어제 보여준 매서운 주먹질이 무서워서 본인 앞에선 말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 학교 전체에 그 일이 소문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츠하는 학교 안에서 어떤 불쾌한 기운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방과 후,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며 더욱 더 분명해졌다.
평소에 조금은 험상궂은 얼굴로 인해 범죄형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시카와 선생이 말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판에 박힌 소리를 했다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려 했다만.”
이시카와 선생은 약간 흘러내린 안경을 집어올려 바로잡았다.
“미야미즈 네가 평소에 그렇게 불량한 애도 아니었고, 변명 없이 솔직하게 모든 전말을 말해 줬으니까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대신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주먹질을 하지 말고 꼭 선생님한테 말하도록. 알겠지?”
그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는 해도 너무 지나치게 관대한 게 아닌가 싶었던 미츠하는 그만 반문을 하고 만다.
“그게, 끝이에요?”
“그래, 끝이다. 이제 들어가 봐도 좋다. 아, 그때 그린 그림. 잘 봤다. 정말로 좋은 그림이던데?”
“그림이오?”
기억에 없는 언급에 미츠하는 깜짝 놀랐다. 애초에 그녀에겐 그리 많지도 않은 그림의 소양. 그렇다면 그 그림을 그린 것은 타키일 것이다. 얘가 뭔 소리를 하나 싶었던 이시카와 선생이 반문했다.
“몰라? 미술담당 아사키 선생이 그 전에 너에게도 축제 때 그림을 전시하겠다고 허락을 받았다던데.”
허락? 그런 거 받은 적 없다. 그림, 축제, 엥? 축제?
생각보다 무지 커진 스케일에 잠깐이나마 심각한 일은 날려버린 미츠하가 다시 질문했다.
“축제요?”
“그래, 축제. 네 그림은 이미 축제에 전시되기로 확정이 났어.”
“제, 제가 그린 그림이 뭐라고 축제에…. 취소 안 돼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핑계거리를 찾아낸 미츠하였지만 역시 급조의 한계.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미 본인 동의도 받은 걸로 돼 있는지라 그건 이제 학교에 결정권이 있어. 그리고 우리 선생들은 모두 축제 전시에 동의했지.”
되돌릴 수 없다는 말에 미츠하는 속으로 약간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아직 물고 늘어질 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재차 물었다.
“그래도, 그건 너무 수준 이하의….”
“수준 이하? 어허, 무슨 그런 실례되는 소리를!”
“선생님?”
조금 과하게 커진 이시카와의 목소리에 미츠하는 조금 놀라버리고 만다. 자기도 모르는 새 흥분해버렸음을 안 이시카와는 무안함에 팔자에도 없는 헛기침을 하면서 부연했다.
“그런 겸손은 떨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그 그림을 봤으니까 말이다. 아사키 선생이 호들갑을 떨면서 교사들을 모아놓곤 보여줬거든. 학생이 마을 축제에 무언가를 전시하게 된다는 건 엄청 오랜만이라, 나름대로 각자 기준을 가지고 봤겠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말 훌륭한 그림이었어. 아, 갑자기 얘기가 샜구나. 곧 있으면 전 인원 귀가시간이 될 테니 얼른 들어가 보도록 해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전원 귀가시간을 들먹이며 등을 떠미는 이시카와가 물어봤자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아서 미츠하는 떠밀리는 대로 교무실을 순순히 나섰다.
* * *
“미츠하!”
교무실을 나서니 거기엔 미츠하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테시가와라와 사야카였다.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라 걱정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들은 미츠하가 나오자마자 미츠하의 이름을 동시에 불렀다. 그 모습들이 왠지 조금은 절박해 보여서 미츠하는 약간 난처하다는 듯이 웃었다.
“선생님이랑 얘기는 잘 됐냐?”
속사포와도 같이 묻는 테시가와라에게,
“미츠하 들들 볶지 좀 마. 얘 놀라잖아!”
옆에서 사야카가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태클을 걸었다. 그야말로 일상 그대로인 둘의 모습에 미츠하는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궁금증이 더 심해진 테시가와라가 다시 물었다.
“미츠하?”
“어, 응. 그래, 잘 된 것 같아.”
웃다가 눈가로 조금 배어나온 눈물을 닦으며, 미츠하는 그렇게 말했고 두 친구는 눈을 끔벅이며 잠시 서로를 바라보곤, 씨익 웃으며 나란히 만세를 불렀다.
* * *
“미츠하 너, 괜찮아진 거야?”
“응?”
“너, 아침엔 정말 어디 자살이라도 하러 갈 것 같은 표정이었으니까….”
“그래! 하루 종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뭐? 정말? 아…. 근데 아침이라면 좀, 응. 그랬을지도.”
오랜만에 셋이서 함께하는 하굣길, 미츠하를 가운데에 둔 채 셋은 나란히 이토모리의 한적한 도로 위를 유유자적 걸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마츠모토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된 거야? 너, 혹시 예전처럼….”
“텟시!”
해서는 안 될 말을 막 꺼내려던 테시가와라의 입을 사야카가 타이밍 좋게 틀어막았다. 그제서야 스스로의 말실수를 깨달은 테시가와라는 헙, 하고 헛숨을 들이키며 살살 미츠하의 눈치를 보았다. ‘예전’ 이라는 말을 들은 미츠하의 눈빛이 잠시 아련해졌지만, 오래지 않아 곧 정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미츠하?”
대답은 없이, 미츠하는 발에 채이던 애먼 자갈을 뻥 차서 날려버렸다. 이내 길을 벗어난 자갈이 곧 퐁당, 소리를 내며 호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저 산 너머 어딘가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어딘가를 응시하며 미츠하는 말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더라. 좀 더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라고, 이왕 저지를 거면 망설임 없이 저질러라. 나아갈 길이 보인다면 주저 없이 나아가라. 그렇게 말이야.”
“누가?”
잠시의 침묵 후에 미츠하는 대답했다.
“친구.”
“어떤?”
“너희들은 아직 모르는, 아, 알 수도 있으려나?”
뜬금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에 잠시 혼란에 빠지는 둘, 뭔가 잘못되었음을 안 미츠하는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곧이어 해서는 안 될 말을 무심코 꺼내버렸음을 안 미츠하는 급하게 둘, 그 중에서도 테시가와라의 눈치를 봤다. 왜 하필 테시가와라 쪽이었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 다음에 언제 한번 소개시켜 주라. 호탕한 게 맘에 드는 친구로구만.”
다행히도 테시가와라는 큰 의심 없이 이렇게 넘어가 주었고, 미츠하는 놀란 가슴을 간신히 쓸어내릴 수 있었다.
“언젠간 꼭 소개해 줄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서도, 미츠하는 그렇게 둘에게 약속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그 친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남자애, 키는 딱 자기 키만한, 삐죽삐죽한 귀여운 고슴도치 머리, 이 남자는 나에게 있어 과연 어떤 사람일까?
생각에 막 빠져들려던 미츠하는 이내 고개를 휘휘 저어 타키에 대한 생각을 억지로 몰아냈다. 이런 건 나중에 하자, 지금은 더 중요한 용건이 있으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이번에 나답지 않게 마츠모토를 때려 버린 것도 사실 거의 그 친구 영향이야. 걔랑 이것저것 교류하다 보니 그런 버릇이 조금은 들은 모양이더라.”
“그 버릇이란 거 네가 요즘 가끔 이상해지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실은 타키가 저지른 짓 그 자체였지만, 그대로 말해줄 수는 없어서 미츠하는 적당히 각색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예리한 지적을 하는 사야카에게 미츠하는 애매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뭐, 그렇다고 해 둘게.”
고개를 기울이며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야카, 그녀에게 더 이상의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츠하는 빠르게 말했다.
“아무튼 막상 마츠모토를 기세 좋게 눕혀 놓긴 했는데, 내가 그랬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니까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더라. 뒷감당을 할 생각하니 예전 생각나서 앞이 아득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전화기에 대고 그 친구한테 화를 잔뜩 내고 있었지 뭐야. 왜 나한테 그런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은 거냐고. 되지도 않는 생떼를 말이야. 내가 봐도 나 좀 나쁜 거 같은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미츠하….”
걱정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둘의 이구동성에도 미츠하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물어보긴 했지만 별로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또 담담하게 미츠하는 가장 밑바닥의 자기 자신을 숨김없이 두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정신 차려보니까 전화까지 이미 내가 먼저 끊어버렸지 뭐야? 당연히 미칠 듯이 자괴감이 몰려오고 그랬어, 그랬는데 좀 있더니 메시지가 오더라고.”
“그 친구한테?”
“응.”
사실 문자 메시지는 아니고 일기장이었지만.
“뭐라고 보냈어?”
사야카가 일기장의 내용에 대해 물었다. 미츠하는 말할 수 있는 부분들만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너는 좀 더 스스로에 대해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길 바라. 너처럼 참는 것도 좋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 이렇게 확 뒤집어 버리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친구 참 맘에 드는 친구인데? 화통하구만.”
“하여튼 누가 텟시 아니랄까 봐…. 뭐 터트린다는 소리만 나오면….”
사야카가 한숨을 쉬며 또 핀잔을 주었다. 전언으로도 느껴지는 그 화끈한 다혈질에 역시 같은 남자라 그런지는 몰라도 테시가와라는 타키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텟시는 항상 뭘 터트리는 걸 좋아했지. 방금 전에도 하나 터트릴 뻔했고. 그렇지?
아까 테시가와라가 무의식적으로 꺼내들 뻔한 폭탄을 미츠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꺼내들었다.
“아까 텟시도 말했지만, 그래. 난 아직 그 때의 일을 잊지 못했어.”
“미츠하?”
“괜찮아, 이젠 괜찮을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얘길 들어줘.”
자기를 걱정하려던 사야카를 바로 말리며, 미츠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 메시지도 믿을 수 없었어. 속편한 어린애가 할 만한 소리라 생각했지. 우리 집을 물어뜯으려고 안달난 사람들이 이 마을에만 몇 명인데? 예전에도 그랬듯이 내 허물이라면 정말 물어뜯기 좋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마츠모토도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집요하게 물어뜯어왔고 말이야.”
그동안 감내해 왔던 인내의 세월을 조금씩 떠올리며 미츠하는 생각한다.
타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주제에 너는 어떻게 이런 걸 벌써부터 그렇게 잘 알고 있었니. 네 인생엔 대체 어떤 풍파가 그리도 몰아쳤던 거니?
“아침에 학교에 온 것도, 실은 내가 학교에 안 와버리면 혹시 우리 집에 더 누가 될까봐였어. 차라리 조금이라도 내가 먹을 욕은 먹는 게 낫다. 그런 마인드였지.”
“네가 이번 사건에 먹을 욕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내가 오늘 제일 이해가 안 됐던 게 그런 반응이었다니까?”
“엥?”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서 눈만 껌벅이는 사야카, 그런 사야카를 앞에 두고 미츠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모든 게 다 빗나갔어. 욕이라곤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었지. 오히려 가끔은 경외심 비슷한 시선까지 느껴졌다면 너희들은 믿을 수 있겠어? 선생님한테도 대판 깨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다음부턴 주먹질 하지 말고 나한테 말하라는 한 마디로 끝났어. 도대체가 맞은 게 없었다니까?”
“그럼 다행인 거 아니야? 다 좋게 끝났다는 건데.”
“그래, 다행이지. 다행이긴 한데 말이야. 나, 조금 혼란스러워.”
“미츠하?”
미츠하의 머릿속에서 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한없이 해맑았고, 어떻게 보면 비어 있었던 그때 그 시절, 세상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듯했던 그 시절, 그 이후 친구들에게도, 심지어 가족들에게조차 마음을 다 터놓지 못한 채 살아왔던 생활상까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타키가 행동을 통해 비추어 준 그녀 자신의 모습. 이제 미츠하는 알 수 있었다. 역시, 타치바나 타키는 미야미즈 미츠하가 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 스스로의 모습을 깨우쳐 주는 거울이 될 수는 있었다. 그로 인해 떠올린 과거를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한 채 몸부림쳤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이었다는 사실도, 타키가 보여준 자신의 가능성도.
옛 술은 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이제 과거의 망령과는 작별의 준비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 꽤 많이 참으면서 살아왔잖아? 참아야 할 것도, 참기 힘든 것도 어지간하면 전부 참으면서 살았어.”
“너가 고생한 거야 우리라면 당연히 알지. 또,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 그래.”
힘든 과거를 조금씩 되돌아보는 미츠하의 등을 두 친구는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그런 친구들을 돌아보며 미츠하는 미소지었다.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었지, 나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는, 그런 건 너무 싫어서…. 내가 참아야 된다. 내가 눈에 띄면 안 된다. 일종의 강박관념이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렇게까지 그 친구에게 화를 냈을지도 몰라. 그건 내 인생관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었으니까. 나라는 인간 자체가 부정당한 셈이었으니까.”
타키에겐 너무나도 심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 생각하고 저지른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 미츠하는 타키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스스로에게 충실했던 것뿐이다. 자신 또한 스스로가 정해둔 속박에 충실해왔듯이.
“그래도 이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가끔은 이렇게 감정에 충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지도 몰라. 응. 그래. 정말 몰랐을 거야.”
오늘은 꼭, 타키한테 어제의 일을 사과하겠어. 사과하고, 좀 더 이야기하고, 그리고 꼭 말할 거야. 나를 깨우쳐 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미츠하는 그날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껏 지금에 충실해 보려고 해. 더 이상은 예전에 묶인 채 살지 않을 생각이야. 못난 나지만, 지금까지 어울려 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할게. 그래도, 되겠지?”
말을 마친 미츠하는 두 친구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자신을 부탁했다. 그런 미츠하를 둘은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
“암!”
“응! 당연하지!”
흔쾌한 승낙과 함께 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웃기 시작한다. 함께해 왔지만 나란히 서지는 못했던 세 사람이 이제서야 함께 내딛는 첫 걸음을, 태양 또한 저 하늘에서 말없이 지켜봐주고 있었다.
* * *
“다녀왔습니다.”
“미츠하? 어서 오렴.”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후타바는 집에 들어오는 딸을 정답게 맞아주었다. 사실 그녀는 미츠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제의 비교적 훈훈했던 상담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수렁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던 아침의 미츠하. 대체 어떤 연유인지 후타바는 꼭 다시 한 번 딸과 이야기를 나눠봐야만 했다. 하지만.
미츠하의 얼굴을 본 순간, 후타바는 원래의 계획을 포기했다. 분명 아침에는 그렇게도 심각해 보였던 딸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았다는 듯한 얼굴.
계속 마음에 끌어안고 살아왔던 그늘마저 이제는 걷어내려 함을 후타바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 대신에 딸을 보고 그냥 웃어주었다. 미츠하 또한 어머니를 보고 마주 웃는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니?”
가볍게 던진 후타바의 물음에 미츠하 또한 가볍게 대답했다.
“응, 조금 늦었지만. 고마워. 엄마.”
무엇이 늦었다는 건지, 무엇이 고맙다는 건지 후타바는 묻지 않았다.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묻는 대신 그녀는 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그 손길에 머리를 맡기며 미츠하는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그러기를 잠시, 미츠하의 입이 다시 열렸다.
“있잖아, 엄마? 나, 부탁이 좀 있는데, 괜찮아?”
“응, 얼마든지 말해 보렴.”
“오늘 나, 엄마랑 할 얘기가 많이 있어. 이것저것, 정말로 많이. 할 수 있는 얘기, 하지 못했던 얘기, 믿을 수 없는 얘기. 전부, 털어놓을 생각이야. 혹시 괜찮아?”
“그럼, 그럼. 우리 딸인데. 당연히 무슨 얘기든 다 들어줘야지.”
아무리 부탁해도 속내를 절대로 털어놓지 않던 미츠하. 그런 그녀가 먼저 요청해온 대화에 후타바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응했다. 그래야 우리 엄마라는 듯이 미츠하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째 부탁을 말했다. 하지만 그건 첫 번째랑은 좀 다른 부탁이었다.
“있잖아, 엄마. 나, 머리를 좀 자르려고 해.”
후타바의 손이 잠깐 굳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츠하는 웃었다. 정말로 환한 미소였다.
-21화. '로슈 한계'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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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가 살아있는 세상의 이야기.
으악, 써놓고 보니 엄청난 설정 오류를! 후타바의 시간을 예정보다 하루 더 워프시켜 버렸습니다. 별로 시간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없는데!
그래서 급히 수정후 다시 재업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생각이란 걸 하고 글을 쓰겠습니다. ㅜ
역시 갤주님은 행복해져야 제맛이죠.
다음화 예고는 그냥 타키와 텟시가 주가 될 것이라는 점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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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용
지금 밖인뎅
몸 바뀌는거 말하려나 - dc App
퍄퍄퍞
ㄷㅈ // 말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건! 다음 화에 나옵니다. ㅎㅎ
머리자르고 몸바뀌면 타키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네 ㅎㅎ
ㄴ 우리 타키킁은 솔직하니까 반응을 하겠죠?
타키가 머리 왜 잘랐냐고 말할부분 나올것같네
음 드디어 제대로 된 전개로 돌입하는거 같군
다만 항상 이야기 하듯이 그 과거의 일이 뭔지 모르니 궁금하면서도 찝찝하달까... 뭐 그건 차차 이야기해준다고 했으니 그렇다고치고
네 녀석...! 어째서 갤주님의 머리를 단발로 하는 것이냐! 변하겠다는 결심을 나타내려면 다른 방법도 많잖아! 어째서... 단발인가냐아아아!
로슈한계?
단발로 한 이유는 별 건 없습니다. 단지 그것도 완결 후에 후기로 밝힐 겁니다.
미츠하한테 전에 무슨 사건이 잏었던거같은데 그게 먼가요ㅜㅜ - dc App
ㄴ 곧 나옵니다.
단발로 되면 타키는 실망하겠지 ㅋㅋㅋㅋㅋ 크게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타키의 애매한 도움? 으로 어두운 성격을 극복하는 미츠하가 되었네요
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타키가 의도한 건 아니죠. 그렇지만 타키의 다혈질도 어느 정도는 미츠하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고 생각해요. 타키 정도는 아닐지라도ㅋㅋ
완결 몇화정도 예상하시나요? 이거랑 다른팬픽 완결나면 탈갤할건데 그 팬픽은 조만간 완결날것 같아서
ㄴ 현재 예정상으로는 30화입니다.
타키가 바뀔때 엄마 나 머리왜잘랐어? 하는거아님? - dc App
저기요, 단발콘 이미 냈잖아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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