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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없는 나무」 시리즈

* 본편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갤럼은 영화를 먼저 관람해 주세요.

* 설정 변경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1. 후타바가 죽지 않고 계속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직업, 인간관계 등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2. 후타바가 죽지 않으니 토시키 또한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3. 미츠하와 바뀌는 타키는, 미래의 타키가 아닙니다. 즉 2013년의 중2 타키와 17세 미츠하가 서로 몸이 바뀝니다.

4. 어느 정도는 본편을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바뀌었으니 만큼 변경점이 많을 예정입니다. IF가 싫으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 갤럼분께서 고맙게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편 링크는 이쪽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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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로슈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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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분명 낯설어야 정상이건만, 이제는 자기 집처럼 편안해진 미츠하의 방에서 타키는 깨어났다.

평범한 중2 남자아이로서 가끔 여자가 된다는 건 타키에게도 꽤나 자아 정체성 형성에 난점을 겪게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츠하가 되었을 때면 일어나자마자 어김없이 예쁘게 나와있는 가슴을 만지면서 오늘 자신이 누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확인하고는 했다. 미츠하가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이것만은 끊지 못하던 버릇.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오늘부터는 미츠하로 살 필요가…. 없나?’


약간의 저혈압기로 인해 멍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타키는 어제 전화로 들은 충격적인 사실들을 다시 되새김질해 보았다.


* * *


전날, 여러 이유로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타키는 후타바로부터 여러 조언을 들었고, 분명히 꽤나 기운을 차렸었다.

확실히 좋은 결과였지만, 그래도 정작 미츠하 본인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 몸은 학교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하루 종일 딴 데를 향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많이도 고민해 봤지만 끝까지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타키는 후타바 말대로 한 번 정면 돌파를 해볼 수밖에 없다는 최후의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결론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 수업에 집중 안한다는 이유로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돌아가면서 꿀밤 세례를 맞은 건 덤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타키는 츠카사와 신타가 같이 놀자고 제안하는 것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전화기를 잡고 ‘미야미즈 미츠하’의 번호로 송신 버튼을 눌렀다. 아니, 분명히 그럴 작정이었다.

바로 그 찰나에 울린 진동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갑작스런 수신음에 타키는 채 놀랄 겨를도 없이 황급히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상한 전화면 바로 끊고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타키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안도해버렸다.

왜냐면 발신자의 정체는 바로 그녀였으니까.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타키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 *


어제의 가라앉고 축축 처졌던 분위기는 꾸며낸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듯 둘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상호간 사과로부터 시작해서 용서로, 그 용서가 곧 화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일이 다시 원래대로 잘 될 것이라고 타키는 확신했다. 조금 다른 의미의 폭탄이 다시 그에게 떠안겨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뭐?”

“그러니까, 다 말했다고!”


뭘? 누구에게? 얼마나 말했다고? 너무 놀라 머리가 핑 돌아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미츠하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분명, 확실하게 들었다. 다른 말일 수가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었다.

언젠가는 이런 거짓된 생활이 끝날 거라는 생각은 물론 그도 하고 있었다. 조금은 이때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때의 추억으로 묻은 채, 그렇게 끝날 것이라고…. 왠지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조금은 싱숭생숭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터트려 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타키였다. 당당하게 살라고 여러 번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당당해도 너무 당당하잖아.


“모든 걸 다 말했어. 내가 품고 있던 고민, 생각, 꿈, 친구들 얘기까지. 물론 몸이 바뀐 것까지도 전부.”

“왜…. 왜 그랬어?”


너무 놀라 말까지 약간 더듬는 타키에게 미츠하는 솔직하고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네 말대로 더 이상은 숨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최소한 가까운 사람들에게라도 나 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하게 다가가고 싶어졌어. 이거도 다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니까 그런가보다 해둬.”


그렇다. 당당하게 살아라. 솔직해져라. 라고 말한 건 타키 자신이었다. 뭐라 반박할 말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타키의 입이 콱 잠기고 만다. 아, 근데 이건 알아야겠어.


“텟시와 사야한테도 말한 거야?”


그 둘은 미츠하의 가장 가까운 친구고, 아마 내일 혹시 몸이 바뀐다면 타키 또한 그 둘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때문에 그 둘이 알고 있느냐 아닌가도 타키로서는 미리 알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 둘은 아직이야. 당장 가족들한테도 얼마 전에 다 말한 거였으니까.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

“뭔데?”

“만일 몸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두 사람에게 말할 거야. 하지만 혹시 바뀐다면 말인데.”

“내가, 말해야 되는 거야?”


언제 말해야 하지, 말해도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지. 아직 그런 거 준비도 안 돼 있는데.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샘솟는 와중에 타키는 어렵게 입을 떼어 그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역시 말해야만 되겠지. 그렇게 예상하면서.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은 틀렸다.


“아니, 부담이 된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몸이 바뀌는 동안은 너 또한 나니까 굳이 이것저것 간섭하고 싶지는 않아. 판단은 너에게 맡기도록 할게. 아, 그래도 가슴 또 만지면 죽어!”


어차피 내가 말 안 해도 자기가 말할 거면 의미없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왜인지 반론할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타키는 조용히 미츠하의 말을 받아들였다.


* * *


그렇게 돼서 오늘만은 몸이 바뀌지 않길 바랐건만, 하늘은 참 야속하게도 귀신같이 몸을 맞바꾸고야 만 것이다. 요츠하를 보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어머니, 아니 후타바 아주머니에겐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이따가 학교 가면 또 뭐라고 해야 되는 거고.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에 타키는 하마터면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을 뻔하고 말았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비단결 같은 흑발 롱 헤어를 내가 함부로 상하게 할쏘냐. 애써 손을 자제시키며 타키는 평소처럼 멍하니 거울 앞으로 나아갔다. 그 찰랑거리는 머리야말로 매 아침마다 그를 진정시키는 원동력이었으니까. 또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키는 거울에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뭐, 뭐야…. 꿈이지?”


전화의 마지막에, 미츠하는 분명 말했었다. 타키를 위해서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마 몸이 바뀌면 분명 많이 놀라게 될 거라고.

이제 바뀌는 것도 며칠째인데 뭔들 놀랄 게 있겠냐며 맞받아친 타키에게 미츠하는 내기를 제안했었다. 만일 타키가 놀라면 하겐다즈 하나. 타키가 놀라지 않으면? 원하는 거 아무거나 하나 들어주기.

솔직히 타키는 필승을 자신했었다. 그래서 미츠하한테 무슨 부탁을 할까나 하고 어젯밤에는 혼자 희희낙락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설레발은 죄악이라고 했던가. 설마설마 했지만 이런 결말일 줄은.

머릿속으로 자기 지갑 사정에서 하겐다즈 하나가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계산해 보며, 타키는 다시 한 번 어깨 위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무겁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거울 속의 여자는 장발이 아닌 단발머리라는 사실을.

그 때, 문이 열렸다.


“언니? 아니, 오빠인가? 아무튼, 밥. 먹. 어! 빨리 와!”


언제나처럼 요츠하는 그렇게 외치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 소리에 심란하던 타키의 머릿속이 다시 비워졌다. 허둥지둥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타키는 아침에 가족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급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 * *


“결국 완전히 최악의 시나리오로 접어들었다는 거네요.”

“그렇지. 혹시 이런 상황 아닐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나도 이러길 바라진 않았는데 말이야.”


후타바의 말을 긍정하며, 토시키는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역시 그로서도 꽤나 뒷맛이 씁쓸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히토하가 다시 한번 확인사살에 들어갔다.


“음, 역시 그 둘은 연계가 되어 있었구만. 아범아, 내가 맞게 이해했나?”

“그렇습니다. 테시가와라 건설과 정장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 일에도 테시가와라 사장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어제, 후타바와 히토하는 정사무소로 다시 찾아갔지만 정장은 어디로 갔는지 만날 수조차 없었다. 직원들에게 행방을 물어봐도 우리도 모른다는 답밖에 돌아오지 않아서, 둘은 매우 큰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지금껏 축제 관련 협의를 해오면서 이런 일이 하루이틀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하필 이런 타이밍이라니. 도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야속한 것인가. 허탕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은 운명적인 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토시키의 말에 따르면 그건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야속한 것이었다.


“뒷조사는 길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투덜거리는 테시가와라 건설 직원 아무나 하나, 우오즈미 씨였나? 붙잡고 물어보니까 바로 술술 불더군요. 사장은 정장이랑 술판이나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노가다나 한다니 불공평해도 정도가 있다며 말입니다.”

“우리도 장난을 치고 있는 건 아닌데, 역시 믿어주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네요. 뭐, 그래도 그 둘의 연결을 빨리 알아낸 건 다행이에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후타바는 불가항력의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은 뭘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이미 존재하는 모든 자료를 정리했고 연락이 가능한 전문가들에게는 모두 자문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보기에도 결과물은 그럴듯한 가설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 과학적이고 명확한 증거라는 것이 그들에겐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빈 자리를 채울 방법 따위는 더 이상 없었고, 이것이 현재 그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토시키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보다 훨씬 빨리. 그렇기에 토시키는 이미 모종의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뭐, 내가 테시가와라 사장이었어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 같으니까. 아무튼 당신 말대로야. 빨리 알았으니 행동도 빨리 해야겠지. 내일은 마을 일정상 정장이 어디로 튀진 못할 테니까.”

“내일? 아범아. 하지만 더 이상은 뭘 어떻게 할 수가.”

“자세한 건 일단 비밀로 하겠습니다. 장모님은 이제 조금 쉴 필요가 있습니다. 신사 일에 자료 정리에 많이들 무리하셨잖습니까? 내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잠시 다 놓고 푹 쉬십시오. 후타바. 당신도.”

“네? 하지만 당신만 혼자 짐을 짊어지게 놔둘 수는.”


열심히 할 의욕에 가득 차있던 후타바가 소스라치게 놀라 되물었다. 그녀는 절대로 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열심히 일하겠다는데 아내 혼자 쉬다니 말도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토시키 또한 그들을 내일의 일에 참여시킬 생각이 절대 없었다. 어차피 그 두 사람 성격상 하지도 못할 일이었으니까. 그런 내심을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토시키는 후타바를 달랬다.


“난 그동안 원래 본업이었던 연구만 했지만, 두 사람은 원래 하던 신사 일에 내 연구까지 도와준 거잖아? 그러니까 이젠 내가 좀 더 힘을 낼 차례지. 알겠어?”

“그치만….”

“쉿, 난 전혀 무리하는 게 아니야. 당신에게 쉬라는 것도 쉬어도 되는 때니까 쉬라고 하는 거야. 내 말을 믿어. 자꾸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확 무리해 버릴 거니까.”

“정말로 무리하면 안 돼요?”

“안 한다니까.”


조금 장난스럽긴 해도 단호한 남편의 모습, 저렇게 되면 더 이상 설득이란 불가능함을 그녀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상기시키는 쪽을 택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둘을 참여시킬 수 없었던 토시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대답과 함께 토시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후타바를 안심시켜 주었다.

더 이상 논리를 강화할 수도 없고, 설득을 하더라도 상대측에서 받아줄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설득 이외의 다른 방법이 동원될 때라고 토시키는 자연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기에는 성격상 두 사람은 방해가 되었고, 따라서 토시키는 어떻게든 내일 하루만은 그 둘을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상대에 따라서는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정장에게는 쓸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고, 이에 토시키는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야 마침내 원하는 결론을 얻어낸 토시키는 미뤄두었던 개인의 호기심을 채우기로 했다. 정확히는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사실의 재확인이었지만.


“갑자기 생각나서 그런데, 오늘의 미츠하는 그 놈이다 이거지?”

“네. 아침에 보니까 그렇던데요. 뭐, 여러 번 얘기를 해 본 바로는 나쁜 애는 아니고. 오히려 좋은 애 같았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어젯밤, 긴 이야기 끝에 미츠하가 마지막으로 털어놓은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긴 했어도 역시나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후타바나 히토하와는 달리 그럴 거라곤 짐작도 못하고 있었던 토시키에게는 더욱 더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이 이름도 모르는 놈팽이에게 잠시나마 몸을 뺏겼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토시키는 짜증을 냈고, 그럴 때마다 후타바와 히토하가 적당히 변호해 주곤 했다. 막상 짜증은 내면서도 토시키 스스로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냥 왜인지 모르게 어딘가 마음에 안 든다고밖엔 설명이 불가능한 짜증.

다시 한 번 뭐라 말이라도 해보려는 토시키, 하지만 후타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한 번 그를 막았다.


“이따가 학교 끝나면 실컷 이야기해 볼 수 있을 테니까, 그 때까지만 참아요.”


* * *


“뭐라고? 사야카,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냐?”

“우연이네, 나도 텟시한테 그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럼 지금 쟤가 그렇게 말한 게 맞는다고? 야 미츠하, 아니…. 아무튼 너! 그 말 확실해?”


그럴 리가 없다고 되물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타키의 말을 인정해버리고 마는 테시가와라. 그런 그에게 타키는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응. 나는 미츠하가 아니고, 지금까지 너희들이 귀신 들렸다고 표현했던 미츠하는 사실 전부 나였어. 내가 여기 있을 동안은 미츠하가 나한테 들려 있지.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는 서로 몸이 바뀐다. 이거야.”


아침, 등굣길에서 타키는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말해도 되는 걸까, 역시 이건 미츠하의 몫이 아닐까, 이번에도 주제넘게 참견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주저감과, 말하더라도 믿어주긴 할까 하는 망설임, 자기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설명해야만 하는 부담감.

하지만 고민 끝에 타키는 그 모든 중압감을 뒤로 하고 둘에게 모든 것을 말하기로 결정했다. 역시 미츠하가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이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결정하면 행동이 빠른 타키답게 방과 후 하굣길에서 둘에게 모든 전말을 가감없이 말했고, 그 결과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는 말에 이렇게 눈이 튀어나오도록 놀라고 마는 것이다.


“확실히 이게 미츠하가 맞나 싶은 생각을 우리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일 줄은, 오컬트는 역시 멀리 있는 게 아니었어…”

“텟시! 또 그 놈의 오컬트 타령!”

“그럼 이게 오컬트가 아니면 뭔데?”

“그, 그것도 그렇지만 그래도 이게 확정은 아니고….”


텟시의 오컬트 타령에 사야카는 언제나처럼 태클을 걸어보지만, 이번만은 힘을 쓰지 못한다.


“왜, 모든 게 맞아떨어지잖아? 인격은 다른 사람처럼 바뀌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정신이상은 또 아니라면 뭐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긴 했지.”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큰 문제만 빼면 말이야.”


못내 인정하기 아쉬웠는지 마지막으로 툴툴대 보는 사야카, 그런 마음도 모르고 기어이 무정하게 한 마디 하는 테시가와라였다.


“근데, 뭐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있어?”

“하아….”


쟤는 예전부터 여자애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사야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어쩜 저리 여자애한테 마구 말할 수 있는 거람. 정말 어쩔 수 없는 애라니까.

그래도 테시가와라 말대로 다른 가설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사야카는 한숨은 쉬면서도 고개는 끄덕여 마지못해 동의를 표했다.

마침내 사야카마저 더 이상 반론을 하지 못하게 되자, 타키는 다시 자기소개를 했다. 거짓된 자신이 아닌 진정한 자기 자신을.


“텟시, 아 아니지, 테시가와라 씨와 나토리 씨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도쿄 진구중학교 2학년 재학 중인 타치바나 타키라고 합니다.”


전직 운동부 중2답게 연상의 남녀에게 정중한 자기소개를 한 타키였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테시가와라와 사야카는 손사래를 쳤다.


“지금까지 잘만 반말해놓고 이제 와서 뭘, 그냥 대충 부르던 대로 불러라.”

“나도, 그냥 사야라고 불러, 어차피 몸은 미츠하잖아? 나중에 혹시 진짜 몸으로 만날 일 있으면 호칭 문제는 그때 생각하는 걸로.”

“그래? 사실 저, 아니 나도 지금까지 그렇게 실컷 불러 놓고 지금 바로 바꿔야 한다니 조금 걱정이긴 했는데.”

“뭐, 어쨌든 너도 우리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머리 위 잔디밭을 벅벅 긁으며 머쓱하게 지나가듯 대답한 테시가와라의 말, 그렇지만 타키의 마음속에 혹시나의 걱정이 사라지고 역시나의 기쁨이 들어차게 만드는 힘이 그 말엔 있었다. 역시 이 두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어제의 미츠하와 동일한 결론을 내린 타키는 타키는 해맑게 웃음으로서 마음속의 기쁨을 드러냈다.


* * *


“그러고보니 너, 야구는 어디서 배웠냐?”

“배운 적 없어. 운동은 했지만 야구는 아냐.”

“그럼 타키 넌 무슨 운동을 했던 거야?”

“농구, 얼마 전에 그만뒀지만.”

“왜?”

“농구는 키가 중요한데, 내 성장판이 거의 다 닫혀버렸대. 그래서.”

“아…. 미안.”

“별 거 아냐. 이미 마음 다 정리했어. 뭐, 그것도 다 미츠하 덕분이지만….”


본의 아니게 아픈 데를 건드렸다며 미안해하는 사야카를 타키는 적당히 다독여 주었다. 그러고보니 미츠하한테는 빚도 있었는데. 하며 다시 미츠하에게 잘해주겠다고 다짐하는 타키.

이 와중에도 테시가와라는 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했다.


“역시 너, 다른 애들이 다른 거 하자고 할 땐 다 하면서 농구만은 안 하길래 혹시 그런 거 아닌가 짐작은 했다.”

“텟시 주제에? 그냥 이제 와서 대충 때려맞춘 거겠지.”

“아, 아니거든!”


평소처럼 치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정겨워서, 오랜만에 타키는 어떤 말 한마디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너희들, 사이 정말 좋다?”

““아니거든!!””


예상한 그대로 악을 잔뜩 써대며 애써 타키의 말을 부정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는 미츠하가 남겼던 어떤 낙서를 떠올렸다.

‘텟시는 사야찡의 것, 너무 친하게 지내면 안 됨.’ 

확실히 미츠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저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라니. 타키는 그 둘을 지켜보는 게 너무도 즐거웠다. 조금 더 함께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니, 가능하다면 미츠하의 몸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다시 한 번 더 만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각자의 갈림길로 접어들 때가 되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타키, 잘 가!”

“그래. 이제 집은 알지?”

“당연한 걸 물어보고 있냐!”


작별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까지도 테시가와라는 능글맞게 한 마디를 했다. 알면서도 타키 또한 그가 원하는 반응을 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실없이 웃은 셋은 그렇게 각자 집으로 떠났다.

세 사람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타키는 오늘 하루를 찬찬히 정리해 보았다. 아침부터 가족들에게 자기소개, 지금은 친구들에게 자기소개, 이제부터 집에 들어가면 또 잘 때까지 자기소개를 하겠구나. 성인들도 어디 가서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정신건강에 위협이 온다는 얘기는 타키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만은, 지금만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정도로 타키는 지나온 오늘 하루가 즐거웠다.

뭐, 애초에 연기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놈이었으니까. 나는.


‘어?’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타키는 반사적으로 미츠하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수신음의 정체는 문자, 발신자는 테시가와라 카츠히코. 내용은.


‘잠시 시간 되냐? 나 지금 너에게 꼭 물어봐야 하는 게 있다.’


- 22화. '묵은 속마음'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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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가 살아있는 세상의 이야기.


역시 도쿄의 친구들은 가면 갈수록 비중이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주고 싶은데. 쩝.


조금 자세히 읽은 독자분들이라면 이번 화만 봐도 대충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감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뭐, 정말로 그 정도로 별 거 아닌 일입니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죠. 두 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그 일을 겪었고, 받아들였는가지.


그런 의미에서 이미 일의 전말을 짐작하시는 분들이라도, 부디 다음 화를 기다려 주세요.


다음 화의 주인공은 뭐, 마지막에 나온 대로 텟시와 타키입니다. 거의 내내 두 사람의 대화만 나올 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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