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의 식욕은 무섭다.
말로만 듣던 이야기를 실제로 재현하고 있는 연인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달에 한 번의 만남. 예고도 없이 몸이 휙휙 바뀌던 그 시절이나 조그마한 액정 너머로 그리움을 키워야했던 시절보단 훨씬 나았지만 반대로, 그 나아짐이 애달픔을 앗아간 결과가 이것이라면 좀...
"...맛있냐?"
"당연하지. 안 줄 거야."
쓰러지겠군. 하- 고래마냥 쳐들며 뿜고 다시 들이쉬는 숨 속에 회상이 섞여 들어왔다. 그녀가 처음 온 도쿄. 자홍색 원피스를 입고 하얀 스트랩샌들을 신었던 너는 어린아이보다 선한 눈망울을 빛내며 내 손을 붙잡아 끌곤 했지. 몸은 앞으로. 눈은 뒤로. 마음은 이미 저만치 앞서서 도쿄 타워나 디즈니랜드로 향한 너였지만 붙잡은 손의 온기만큼은 결코 놔주질 않았었어. 사람에 치인다고 짜증이나 낼 법한 인파의 물결마저 신기한지. 연신 타키 군, 타키 군 하면서 어린 새처럼 재잘대는 너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수가 없었는데.
아니, 적어도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지금 눈 앞의 너보다는 나쁘지 않았을거야.
보기만 해도 짠 맛이 느껴지는 부스러기 가득한 입술이나 목 늘어난 박스티, 그 사이로 칠칠치 못하게 다 보이는 브래지어 끈이나 벌러덩 뻗은 다리를 1/10도 가리지 못하는 돌핀팬츠.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던 매듭끈도 이젠 오자마자 내 방 테이블 위에 놔버리는 바람에 방향성 없이 풀어헤쳐진 머리칼.
결정적으로 이 한심함을 농축한 시선을 받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씹어대는 과자까지.
후- 고개를 숙인 채 뿜는 숨이 분위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정확하게는 핀 포인트로 내 어깨만을.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작은 입술로 감자칩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솔직히 부아가 치밀었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이토모리의 그 답답한 분위기나 책임감. 작은 사회 특유의 끊이지 않는 시선. 그 안에서 억눌려온 스트레스를 푸는게 나를 만나는 순간의 설레임보다 커진 것 뿐이니까. 몸이 변하던 시절. 미츠하의 고충을 조금씩 알아가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받았던 이상한 시선은 아직도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오히려 그걸 알고 나서 반골 기질이 돋아 더 나답게 행동해버렸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빠르잖아.
가을 축제때부터 시작해서 이제 늦은 봄. 만난 횟수로는 열 번 남짓도 안 되는데 벌써부터 덤덤해질 정도로 가벼운 설레임이었니 너는.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만큼 가볍고 편한 녀석이라서?
...모르겠다. 싸워봤자 서로 져 줄 성격도 아니고. 그 대신에 과자 하나라도 받아가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릴 것 같은 마음에 휙 손을 뻗었다. 헹, 어찌 알았는지 귀신같이 쳐내려는 손을 피한 궤도 그대로, 앞에 놓여진 과자를 집자마자 박스를 재빨리 뜯었다.
아아?! 그거 좋아하는 건데! 칠푼이의 투정을 무시하고 비닐포장까지 뜯은 손에 길다란 막대가 딸려나온다. 폼으로 농구를 한 건 아니라고. 바로 지금처럼, 휙 접근하는 그녀를 피해 과자 봉지를 쥔 손을 뒤로 쭉 뻗은 채 재빨리 입에 문 과자를 까딱거렸다. 사실 다 알고 있단 말야. 네가 포키를 좋아한다는것 정도는. 너를 알아갈 때의 풋풋함을 돌려줄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써먹어야지 이 바-보.
"...내 놔."
"주겠냐 너라면. 재량껏 가져가보시던가."
입에 문 포키때문에 새는 발음으로 어떻게든 한 도발이 먹혔는지 그녀의 볼이 금새 부루퉁해진다. 한 순간 귀엽다고 생각한 내 순두부같은 뇌를 질책하며 이내 임전태세를 갖췄다. 저 녀석 다음으로 저 녀석의 몸을 잘 알고 있는 건 나니까. 으... 음란한 의미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가 익힌 농구 기술을 여자의 몸으로 쉽게 해낼 수 있을 정도니. 그런 주제에 지는 건 또 엄청나게 싫어해서, 대체 어떻게 그 말괄량이같은 성격을 숨기고 살았는지 의문이 들었을 정도니까.
그래 바로 지금처럼.
"흐응, 그래? 타, 타키 군이 재량껏 가져가보라고 한 거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슬쩍 다가온 팔이 어깨를 붙들었다. 부, 분명 손에 들린 과자를 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이 녀석은...
팔 한 마디 만큼의 간격을 사이에 둔 참호전이 그렇게 시작됐다. 뭘 노리고 있는 것인지 때로는 붉어졌다가, 때로는 한 손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가. 그러는 와중에도 용케 피하려들지 않는 눈도 행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갔다. 보고 있는 나도 슬슬 객기가 차오를 무렵, 뭔가를 각오한 듯 눈을 한 번 질끈 감은 그녀가━━
━━아작 하고, 뭔가의 소리를 울렸다.
정확하게는 입에 문 포키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뇌를 울린 것이었지만. 폭탄을 맞은 듯한 충격에 한 발짝 늦은 오감이 그 사실을 뒤늦게 알려왔다. 팔 한 마디에서 이젠 손 한 뼘까지 가까워진 그녀라는 폭탄이.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 놓여진 채 지금도 실시간으로 작아지고 있는 외나무 다리도.
사각 사각 사각 햄스터처럼 포키를 갉아먹는 소리가 검지 손가락만한 거리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든 정신이 경종을 울렸다. 무슨 짓이야 대체. 더 다가오면 진짜로...
"..."
...그러면 그렇지.
내 바보같은 연인은 정말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뒷감당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해버리고 보는, 알고 보면 발랑 까진 제멋대로의 말괄량이.
그리고 지금 딱 이 검지만큼의 길이. 대차게 저질러놓은 추진력이 모자란 만큼의 길이.
처음에 눈싸움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아니면 이제서야 머리가 식어서 상황 판단이 됐는지 얼굴만 붉히고 있는 이런 모습까지도 그녀의 원래 모습이었으니.
그렇다면 나머지 부분은 내가 채워주는게 맞겠지.
━━사각 사각.
단 두 번의 입방아에 이제는 자신의 머리가 울리는지 크게 떠지는 눈을 감상할 새도 없이 입을 맞췄다.
정확하게는 지금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이 절경임을 알기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지금보다 서툰 연애를 하던 시절. 내 나름의 칭찬이라고 했던 것이 눈에 대한 얘기였으니. 바로 지금처럼. 오차 없이 빚어낸 토파즈 위로 흑진주를 박아 넣은 것 같은 눈이 빛을 받아 영롱함을 뽐냈었지. 그 때와 변함없이 뒷머리와 허리를 살짝 감싸 안았다. 첫 키스의 순간과 같이. 지긋이 감기는 눈을 따라 감으며 살며서 입술 안의 벽을 핥았다.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지. 이렇게 노크를 하듯 신호를 주지 않으면 굳어버리는 입이 그제야 조금씩 열려갔다. 부끄러움을 형상화한 듯 느릿한 움직임 사이로 농후한 단 맛이 새어나왔다. 포키의 맛도, 그녀의 맛도 아니지만 달콤하다는 공통점 하나가 차츰 혀를 적셔온다. 못 기다려. 혀 끝부터 퍼져나가는 그 감질남을 참지 못한 혀를 예고 없이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악?! 하고 뇌를 울리는 숨결이 가시기도 전에 혀 아래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훑었다. 반대로 숨을 삼키는 입에 따라 혀가 빨려드는게 재미있고 귀여워서 살짝 눈을 떴다.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들의 끝에 옹기종기 내려앉은 이슬들이 앙증맞은 자태를 뽐냈다. 하늘도, 바다도 아닌 그녀에게서 태어난 작은 것들. 한껏 열이 달궈진 볼. 장난감처럼 작고 뾰족한 코에서 흘리는 얕은 숨결. 그 위로 내릴 준비를 하는 비처럼 보이는 그것들이 너무나 예쁘고 조화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혀를 멈춘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가장 은밀한 부분을 더듬는다는 쾌감보다 익숙한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는 새로움에 마음이 간 것인지. 그저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던 눈이 어느 새 떠진 채로 자연스럽게 맞았다.
입맞춤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물기가 어려 빛나는 눈. 처음의 어수룩한 움직임이 아닌 장난을 치듯 서로를 건드리는 입 안의 왈츠. 그에 따라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선명하게 떠지는 각자의 눈에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나왔다. 호선을 그리는 눈 위의 속눈썹마저 이어질 것 같은 거리에서 우리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의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손가락 열 개를 다 펴지도 못 했을 시간의 체감을 끝내려는 듯 그녀의 팔이 가슴을 살짝 밀쳤다. 조금만 더. 약간의 반항을 담아 허리를 감싼 손을 굳혀봤지만 이내 역팔자를 그리는 시선에 하는 수 없이 손을 풀었다. 바보... 투정을 남기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 뒤로 보이는 아날로그 시계의 분침은 어느 새 처음보다 5분이나 앞서 있었다.
"...달콤하네."
"포, 포키니까 달지..."
홀린 듯 내뱉은 말이 그렇게나 대답하기 어려웠을까. 미리 대답하듯 한껏 붉어진 얼굴과 함께 옆머리를 비비적대는 손 끝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워서 풋- 하고 웃어버렸다. 틀림없이 방금 전 까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한심함의 오오라가 핑크빛으로 바뀌어가는 그 모습에 조금, 진심어린 장난기가 동했다.
"아니. 네 입술 말야."
잠깐의 딜레이도 없이. 흐... 흐에에? 평소와는 다른 특유의 바보같은 비명성에 이젠 상쾌하게까지 보이는 웃음이 나왔다. 입까지 가려가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나, 나도 엄청 용기 내서 한 말이니 그 정도 반응이 안 나와주면 곤란하다고. 그런 걸 원했으니까.
"━━역시 너는 최고로 재미있고, 최고로 바보같고, 최고로 사랑스러워."
...방금 건 생각만 했어야 하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도 모르게 나가버렸지만.
"바, 바, 바보! 무, 무슨 부끄러운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말은 좀 더 분위기 잡고 하는 거야. 하여간 서, 섬세하지 못해서는!"
예상하지 못 한 말이었지만 예상한 반응대로. 새침떼기의 정석마냥 벌컥 쏟아낸 성화가 추진력이라도 됐는지 그대로 방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과자 부스러기와 나만이 남은 방이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에 취해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뭐, 냉수라도 마시고 돌아오겠지. 진짜로 화가 났다면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을 테니. 츠카사나 신타 녀석이 봤다면 경악을 할 일이겠지만 나라고 언제까지 쑥맥일 것 같냐.
더군다나 저렇게 예쁜 녀석이 연인이라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
"나도 참 어느 새 이렇게 글러먹어서는..."
그렇게 투정 아닌 투정 이후.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벌컥 열린 문 너머로 그녀가 성큼 성큼 걸어왔다. 다부진 걸음. 한껏 치켜세운 눈. 당장 싸움이라도 걸 것 마냥 진군한 몇 발자국의 끝. 뭐라고 말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흉흉한 기세의 무사는 침대 구석에 버려져 있던 칼자루를 난폭하게 잡아챘다.
그리고는 한 마디의 끊어짐도 없는 칼 한 자루를━━포키를 입에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당당하게 왔으면서 왜 내 말 한 마디에 벌써 작아지는 건데. 얼굴 붉히지 마. 눈 피하지 마 귀엽잖아. 넌 할 수 있는 녀석이잖아. 뭐라도 말 해 보라고.
"이, 이번엔 타키 군 차례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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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단편이나 쓰는게 마음은 편하다...
심오한 주제도 뭣도 없이 그냥 꽁냥대는것도.
끈적하단 말들이 많아서 뒷 전개도 꽁냥달달로 좀 틀어버렸다. 어짜피 마음 가는대로 쓰는 글이니.
원래는 눈 뜨고 하는 키스의 퇴폐적인 느낌과 원숙함, 그 시선으로도 이뤄지는 교감을 다 표현하고 싶었지만 내 표현력이나 글빨이 거기까진 못 미치는 것 같다.
각 잡고 썼으면 좀 더 공을 들였을텐데. 지금은 머리에 과부하 주면서 글 쓰고 싶지 않아서... 힘 빠져 보이는 부분들도 보일 거고.
나름 나 자신한테 준 글 휴가? 글 휴식? 이런 거라 정말 즉흥단편만 쓰는 이번 주가 될 것 같고..
원래 연재하던 3부작은 다음 주 부터 쓰기 시작할테니 조금만 기다려주길.
그리고 개인적인 바램이고 스스로 선택할 일이지만 내 글에서 굳이 뭔가를 끄집어서까지 배우려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난 정식으로 작문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진짜 야생으로 무작정 쓰기 시작해서 체계도 뭣도 없는 그냥 망나니에 가까워. 내가 진짜로 글로 각을 잡았으면 팬픽이 아니라 공모전 준비하고 있었겠지.
차라리 내 자의식과잉이면 좋겠는데. 오늘 올린다고 하니 뭔가 배운다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서.
- dc official App
어우 짜당
끈적추
이게 팬픽이군... 난 조용히 감사히 읽기나 해야겠따.. ㅎㅎ
캬 건어물 미츠하ㅋㅋㅋ 그래도 기승전 달달 - dc App
올라가리
달달하네요 ㅋ 제 글엔 세부표현이 부족해서 좀 읽어보려고 했던겁니다 즐겁게 읽고 가요. - 覚えてない?
으악 다디달다
달달하네요 좋습니다
초반부의 문장이 읽기 좀 난해한 것만 빼면 좋네요.
농도 100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