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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현관으로 나오더니 놀란 표정을 짓고 곧 "어머나" 하고 중얼거린 후 미소를 지었다.

마치 한동안 만난적 없는 친한 친구를 맞이 할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토시키는 자기 등 뒤에 다른 손님이 서 있지 않은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여자는 오래 찾아 헤매던 무엇인가를 찯아낸 듯한 미소를 지으며 토시키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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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키는 벌써 몇년째 시토리 신앙을 주제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었다.
시토리노카미는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은 신이었고, 일본서기와 고어습기에만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고사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베를 짜는 법을 가르친 신이라고 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마츠 신 계열의 무신인 후츠누시노카미와 다케미카즈치노미코토가 토착신을 평정하려 했을 때 천상에 거주하는 별의 악신 아메노카가세오를 토벌하지 못해서 곤란해 했었다....
그때 별의 신을 굴복시킨 사람이 시토리노카미다케하즈치노미코토라고 한다.


여러 번 유명 신사들을 들렀고, 오지의 작은 신사들도 들렀다.
그러나 얻은 것이라고는 이것뿐이다.

전부 허탕이다.


얻은 자료들이라곤 이미 서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별로 가치 있는 정보는 아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몇 가지 추가로 듣긴 했지만, 그것은 지류. 원류를 찾는 자신의 연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명 신사라 하더라도 이미 쇠락해 가는 신사들이였고, 그들이 간신히 전승해낸 것들은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이미 연구자들도 아는 것들뿐이다. 이미 공개된 비의들은 연구엔 의미가 없다. 그들도 알기 때문에 공유하는 일은 적다.


짜증나는 마음으로 새 책을 펼쳤다.


토시키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책에서 영 안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이 느껴진다.

서두부터 글러먹은 느낌이 확 풍겨서야...



이번 책은 사실상 꽝이다.



다년간 연구 경험으로 축적된 바로는, 이런 느낌을 가지고 좋은 내용을 담았던 적은  3번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3류의 느낌이다.

이 연구자는 3류다.


토시키는 장담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틀림없이 엉터리라고


그렇지만 이미 긁을 만큼 긁어모은 지라 이런 책을 찾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토시키는 그렇기 때문에 읽어 내렸다.


미련이라고 해도 좋고, 우둔이라고 해도 좋았다.

혹시라도 실마리를 얻을지도 모르는데 내팽겨 치기엔 자료가 너무 적었다.


...

물론 예상대로 내용은 엉망이다. 그것을 제하더라도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신사와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이 시토리 신앙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연구자는 연구윤리를 배우긴 한걸까?
이 양반, 혹시 낙하산인가?


그리 생각하면서도 토시키는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어쩐지 읽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자료 부족에 대한 아쉬움? 그것은 아니였다.

자료가 적긴 하지만 은사나 동료들을 구뤄 삶는다면 아마 좀더 얻을지도 모른다.
이런 조악한 잡지수준에나 적합한 저술가의 의견 따위, 연구에 참고자료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토시키는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 조악한 저술중에도 그의 마음이 쏠리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시토리 신사가 있다는 기록.
 허황된 내용 속에서도 신사의 대략적인 묘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한때 대단히 번영했지만 쇠락한 마을. 그러고도 그 규모를 유지하는 신사.
아득히 오래된 전통. 대단히 과장된 묘사들 사이에 보이는 얼마 없는 정보들.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이어졌다.


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어진 것이라 우기는 것일 뿐이지 않느냐 싶지만, 어쩐지 그런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어짐의 중심에는 이토모리의 시토리 신사가 있었다.

이토모리의 미야미즈 신사에, 그 중심에, 그것이 있다. 


토시키는 이 모든 것을 엮을 열쇠가 거기 있을을 거라고 확신했다.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지지부진한 연구에 상당한 성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이라면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토시키의 인상이 다소 밝아졌다.


무엇을?
토시키도 그건 아직 잘 몰랐다.
아마도 연구에 감이 잡힌 모양이라고 중얼 거리면서도,아주 확신하지는 못했다.

토시키가 찾는 것은 그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토시키는 그것이 그런 직감이 과학적 발견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배웠지만,
토시키는 그런 일을 신뢰하지 않았으니까-그런 것들은 우연일이라고 간주해 왔다.


어색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얻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느낌은 그저 느낌일 뿐이다

.

그렇지만 토시키는 그 느낌을 받아 들였다.
그 느낌이 그저 감일 뿐이라도 좋았다.
이번은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실패하면 돌아가면 그뿐이었으니까.
자신은 미조구치 가의 후계자였다.

당장 실패하더라도 자금에 시달릴 일은 없었다.


크나큰 도박을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연구하더라도 재산은 한치도 줄지 않을 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

갈피를 잡았다고 생각하자, 맥이 탁 풀려 내렸다.
그 순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생각해보면 며칠 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잠깐 여유를 부리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연구를 위해서라도

...



“....너는 누구냐?”


스스로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군데군데 삐죽 튀어나온 검고 긴 머리. 크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
누가봐도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다.


나라의 대지주의 후계자의 모습이 아니라 귀여운 소녀.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귀여운 소녀.


헛것을 보았나 하며 다시 뜯어보지만 그런다고 사실이 달라질 리가 없다.
거울 앞에는 여전히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의 침착성을 가지고 주변을 찬찬히 뜯어봤다.

토시키는 상황이 좀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선 거울, 거울에 비친 모습에 당황해서 잊던 사실이지만, 토시키의 방에 그런 거울은 없었다.

방의 면적도 잘 모르지만 조금 다르다.

 
게다가 이 거울을 비롯하여 이방 어디에도 토시키가 아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천하의 토시키라도 당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도 아직 애송이에 불과 했으니까

.

애초에 자고 일어나 보니 여자애가 되는 수준의 일이였다. 

이런 종류의 변화는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하고는 쉽게 수용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충 뭉개고 넘길만한 일이 아닌것이다.


비록 그가  학생의 신분으로 신화에 대해 배우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변형으로써 우화에 불과하다고 받아 들였을 뿐이었다.


이런 저급 펄프소설에나 나올법한 종류의 현상이 실존하리라 생각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변명이 아니라, 그는 적잖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적잖게 따위가 아니라 많이 당황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토시키는 그만큼 놀랐었다.
그렇지만 토시키는 그 상태에서 머물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굴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토시키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자신이 꿈이 어떤 형식인지 그는 잘 알고 있다.토시키가 보기에 이것은 그의 꿈과 질감과는 많이 달랐다.
토시키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현실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믿을 수 없고, 비현실적이라도 일단 일어난 이상 현실이다.
굳이 그것의 원리를 알 필요는 없다.


옛 성인이 말하던 독화살 비유 같은 너저분한 이야기는 꺼낼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의심할 시간은 없었다.


꿈이라면 깨고 나서 금방 잊으면 되는 일이였으니, 현실이라 판단하는 편이 옳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판단이 빨라졌다.


토시키는 우선 의문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고 쓸모 있는 것들을 추리기로 했다.
밖에 나가다 이 몸의 주인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곤란할지도 몰랐으니까.


토시키는  생각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의문들을 정리 해 내려갔다....


1.이 현상은 무슨 현상인가-보류
2.이 현상은 영구적인가?-지금으로는 알 수 없음. 보류
3.이 여자는 누구인가?-우선적인 파악이 필요함.
4.내가 원래 이 여자아이 이고 미쳤을 가능성은 없는가?-이만큼 정밀한 체계를 가진 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
5.여전히 남자이고 환각을 보는 가능성은 없는가?-.....




내가 연애를 해본적이 없는데 로맨스를 쓸수 있을까?

하긴, 신카이도 혜성에 맞아본 적은 없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