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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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뒤죽박죽 꼬여버린 생각은 정리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털어놓으면 조금은 시원해질 줄 알았건만. 어째 걔만 관련되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단 말이지.
테시가와라는 쓰게 웃으며 의자 위에서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저녁에 큰 맘 먹고 시도했던 일련의 대화에 대해선 어떠한 유감도 없었다. 테시가와라는 의도했던 그대로 스스로를 진솔하게 드러냈고, 그 또한 꾸밈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을 받아주었다. 조금은 서툴렀고, 어떻게 보면 속편하기까지 했던 대답이었지만, 그래도 꾸며낸 대답은 아니었음을 테시가와라 또한 알았기에 괜찮았다.
분명히 모든 일은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애초에 결과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았기에 분명 과정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나는 지금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과하게 몸을 뒤로 젖힌 나머지 의자가 뒤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 뻔한 몸을 간신히 추스린 테시가와라의 의식이 다시 먼 과거를 향했다. 그리고는 불의의 사고로 미처 마치지 못했던, 먼 옛날의 생각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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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 왜 사는 걸까?
지금 나는 별로 해본 적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리 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민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처량하게 산길을 달리고 있는 건 덤이다. 물론 숨은 이미 턱밑까지 차오른 지 오래였다.
일이 이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그렇게 매달렸지만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뿐.
산 중턱까지 먼저 도달하면 이기는 승부라지만, 솔직히 이젠 더 볼 것도 없었다. 시작한지 10분이 지났을 때부터 나는 미츠하의 작은 등조차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아마 녀석이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지금쯤은 이미 결승점에 도착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꿈도 희망도 없었다. 결판 따윈 이미 진작에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냥 달리고 싶었다. 나아가고 싶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주체하지 못하고, 경련하는 다리를 추스르지 못하면서도 나는 계속 달렸다. 어디로? 산 중턱? 당연한 얘기였지만, 왠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푸라기를 잡아본다는 심정으로. 그래, 분명 그런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러면 지금 그 지푸라기조차 잡지 못한 나는 좌절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전혀 그런 생각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지만, 지금 이 시간이 즐겁다고까지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분명 그랬다. 지기 싫어서, 이 발칙한 계집애의 콧대를 꺾고 싶어서. 그저 단순한 어린애의 오기, 또는 호승심에 불과한 그런 것.
그렇다고 그 녀석과 무언가 거창한 일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극히 어린애다운 사소한 장난, 이성이야 어쨌든 발끈하는 감정만을 그대로 서로에게 풀어낼 뿐인, 유치한 싸움. 발단은 그게 전부였다.
얼마 안 되는 인생이지만, 동네 최고의 장난꾸러기로 통하던 나에게 이 정도 일은 지금까지 아주 많이 경험해 봤던 일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순간적인 감정에 버럭 화내고, 잠깐 투닥거리고 나면 모든 게 끝난다. 뒤끝이고 뭐고 없다.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직 지금을 제외하면 말이다.
장난으로는 어지간한 건 다 해본 나였지만 왠지 미츠하에게만은 덤덤할 수 없었다. 콧대를 꺾어보겠다고 처음으로 도전을 했을 때도 그냥 조금 뒤끝이 오래갈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접을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일주일을 매일같이 도전하고, 깨지고, 그러면서도 승부욕을 불태우다니. 단순한 장난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게도 인생의 목표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 들으면 유치하다고 욕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끈덕지게 매달렸다. 맨날 져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다. 매번 처참하게 깨지면서도 매일 아침마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었다. 진심이었다.
“앗!”
생각에 빠져 미처 보지 못한 작은 돌멩이가 내 발에 걸렸다. 그대로 넘어질 뻔한 몸을 두 팔을 휘저어가며 간신히 건사해냈다. 놀라서 리듬이 깨진 나머지 호흡이 더 가빠졌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안정시키려 애쓰며 나는 다시 달렸다.
불타오르던 승부욕도 한계는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을 이어가기 위해서만 애쓰고 있었다. 더 이상 불타오르지 않았고, 지더라도 유감을 가지지 않았다. 가면 갈수록 도전의 의미는 퇴색되었고, 그저 애기들 떼쓰는 거 돌봐주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았다. 그리고 아마 미츠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으니까 스스로는 멈출 수 없었던 나를 미츠하 쪽에서 먼저 거부했던 거겠지.
나는 그 사실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저 멈추지 못해서 계속 하고 있던 무의미한 짓거리를 드디어 멈추게 되었으니 나 또한 조금은 홀가분해져야 한다는 것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라는 놈에게 그토록 처절하게 배신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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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회상한 그의 의식이 다시 오늘로 되돌아왔다. 테시가와라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약간은 낡은 의자가 잠시 끼익 끼익하고 소리를 내더니 곧 다시 조용해졌다. 일어나긴 했지만 어딜 갈 생각은 아니었기에 그는 다시 다다미 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으며 얼마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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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긴 생각에 빠질 것 같던 눈치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리 오래지 않아 녀석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입을 열었다.
“음…. 뭐, 알겠는데 말이야. 근데 굳이 그런 게 필요해?”
“이봐! 난 정말 진지하게 물어본 거야!”
예상치도 못한 맥 빠진 대답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울컥 치솟아올랐던 나는 그만 벌컥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남은 기껏 고민 끝에 질문을 하는데 그 필요성을 묻고 앉아 있는 건 뭐란 말인가. 치솟은 화에 숨까지 거칠어진 내게 타키는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며 변명했다.
“아니, 질문이 진지한 건 알겠는데. 내 말은 그, 자격이라는 게 필요하냐는 소리지.”
“자격이라는 게 필요하냐고? 내가 걔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또 읊어줘야겠냐?”
설명을 그렇게 열심히 해줬는데도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순간적으로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타키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저지르고 보니 조금은 자괴감이 들어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 상대로 이런 추태라니.
“그러니까 네 말은, 요약하자면 너 때문에 미츠하가 정신적으로 크게 몰린 적이 있어서 그 뒤로 어색해졌다는 거잖아. 뭐 틀린 거 있어?”
타키의 말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역시나 속에 가시가 숨겨져 있음이 느껴졌다. 내가 자기 말을 헛소리로 치부한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겠지.
그래, 여전히 녀석이 한 게 무슨 질문이었는지 제대로 이해는 안 된다. 그래서 그만 버럭 화를 내버렸다. 하지만 저건, 그래도 저 녀석 또한 나름대로 진심이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왠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순간적이었던 분노는 금세 가셨고, 분노가 떠난 빈자리엔 내 마음대로 친구의 마음을 지레짐작해 버렸다는 미안함만이 남았다. 머쓱해진 나는 조금은 쑥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없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눈만 움직여서 녀석을 보았다. 여전히 진지한 모습. 다행히도 녀석은 내가 다소 수그러들었다는 걸 알아챘는지 더는 화내는 기색은 아니었다. 타키는 손바닥을 턱에 괸 채로 내게 물었다.
“텟시는 미츠하의 친구지?”
“응.”
“그리고 미츠하는 텟시의 친구고?”
“…응.”
두 번째엔 약간 지체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타키가 갑자기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리곤 말했다.
“그럼 괜찮잖아? 뭐 곁에 있겠다는데 친구 이외의 자격이 필요해?”
“친구 이외의 자격?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는!”
“미츠하에게 민폐를 잔뜩 끼친 머저리 같은 남자애라고? 아니, 괜찮아. 그 녀석, 그런 거 요만큼도 상관 안하고 있으니까.”
“뭐?”
“어제 들었을 거 아냐. 그 녀석한테.”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 떠지고 말았다. 나야 그러거나 말거나 타키는 차근차근 자기 할 말을 했다.
“그 녀석, 분명 너희들에게 말했을 거야. 더 이상은 과거에 묶인 채 살지 않겠다고. 너희들에게 자기를 잘 부탁한다고. 안 그래?”
“…너희들은 그런 것도 다 말해주고 사냐?”
맥이 약간 빠져버린 나는 타키에게 그렇게 물었다. 내 질문에 녀석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가 그걸 모르면 다음 날에 너희들이랑 만나서 어색해지니까. 뭐, 괜찮아. 나도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고 살거든.”
“그래? 뭐, 듣고 보니 그렇군. 어쨌거나, 그래.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그래서 더 문제라는 거지.”
“왜?”
어차피 말할 거 못 말할 거 다 해보기로 결심하고 온 몸이니 못해줄 것도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너, 사람 사이에서 벽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있냐?”
“벽?”
“음, 그러니까 이 이상 가까워지지 마시오. 같은 거.”
내 말을 들은 타키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지와 검지를 펴서 턱에 대고, 으음~ 하고 생각하다가. 뭔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러는 건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마침내 입이 열렸다.
“… 있어.”
“그렇다면 얘기가 편하겠네.”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야. 나는 간단하게 말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미츠하와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뭐, 아까 말했듯이 어떻게든 친구는 되었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녀석에게서 그런 벽을 느꼈어. 네가 가까워질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더는 안 된다. 그런 걸 말이야.”
“확실히, 설명을 들으니까 알겠네. 그랬나…. 그래서 내가…”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얼굴까지 빨개지며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타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뭐, 그래도 친구가 된 게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지. 뭐라고 따질 계제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거야. 얼마 전까지는 전혀 유감이 없었지.”
“얼마 전까지는 유감이 없었다면, 지금은 유감이 있다는 거야?”
어린애답지 않게 핵심을 파고 들어오는 타키에게, 이번엔 내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이게 정확히 유감인 건지 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녀석이 스스로 변하겠다고 한 말에 나는 뭔가를 느꼈고, 그걸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거야. 내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고.”
“흐음.”
“그런데, 내가 그걸 뻔뻔하게 말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다.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말하면 내가 뻔뻔한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 돼? 야, 참지 말고 웃어. 내가 봐도 웃기니까.”
“안 웃겨. 하나도. 그리고 나는 널 이해해. 스스로를 설명 못하는 일 따위, 나도 얼마 전에 잔뜩 겪어본 일이니까.”
“겪어 봤다고?”
내 질문에 타키는 간단하게 얼마 전, 농구를 그만두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업이 정해져 있던 나로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에 나는 그만 침을 꿀꺽 삼키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어버렸다. 말을 마치며 타키가 한 마디 했다.
“그 때 미츠하가 말했지,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솔직하게 아버지에게 털어놔 보라고. 그렇게 말이야.”
“미츠하가….”
훈훈한 이야기 끝에 나는 신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츠하에게 그런 조언을 들었다니.
타키 말이 맞았다. 그 녀석, 정말로 이토모리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거기서 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난 아직 너희들에 비해서도 새파란 애송이일 뿐이니까. 솔직히 뭐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는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말이야.”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하던 타키는 갑자기 두 팔을 쭉 들어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이 너무 시원하고 좋아 보여서 엉겁결에 따라할까 하다가 슬쩍 그만두었다. 기지개에 조금은 몸이 개운해졌는지 녀석이 씩 웃었다.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그 말을 던졌다.
“미츠하 그 녀석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음, 너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했으니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할지는 몰라. 모르지만, 그래도 전해줄게. 그냥 솔직히 말해봐. 미츠하라면 진지하게 들어 줄 거야. 그런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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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느낀 해방감을 테시가와라는 아직도 기억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몰랐다.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해방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몸은 다다미 위에 누인 채 그는 계속해서 오랜 과거와 얼마 전의 과거를 번갈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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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지금뿐만이 아니라 이미 그 시절에도 처음의 동기 따윈 이미 아무래도 좋게 되었던 것 같다. 거기까진 알았다. 그러나 이 무기력증의 정체만은 몰랐던 것 같다. 미츠하에게 거부당하면 늘어나고, 그러면서도 잠시나마 함께 있을 때면 조금은 줄어들곤 하던 이 외로움과 무기력증의 정체.
그 날, 산속에서 홀로 뒤처져 달리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왜일까.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왕 승부는 망해버린 김에 결론이 나올 때까지 생각할 참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바로 결론이 나오려던 그 때, 나는 운명의 그 돌을 밟았고, 그 뒤로 난 두 번 다시 그 때의 생각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다시는 떠올릴 수 없는, 하지만 포기할 수만은 없는 무언가.
악화일로의 상황에, 갈 길을 몰라 갈팡질팡하면서도 그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이젠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나 같은 놈에게 그런 건 허락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얼마 전까지는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츠하는 말했다.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살지 않겠다고.
미츠하는 타키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타키는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말해 보라고, 미츠하라면 아마 들어 줄 거라고.
뭐, 그렇게 잘난 말들은 아니었다. 전부 다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해줄 수 있는, 심지어 나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그런 흔해빠진 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들에서 큰 힘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준 두 사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는 어쩌면 그 말을, 남들에게 다시 확인받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진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감춰둔 무언가는, 아마 다시는 떠올릴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스스로에게 부과한 짐을 조금은 내려놓은 지금이라면 그게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갑자기 몰려왔던 외로움도 그 녀석의 앞에서만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미츠하가 나를 쫓아낼 때, 그 외로움은 더욱 더 커졌다. 대체 나는 왜 이유도 모르면서 계속 그 녀석에게 추근댔을까. 결국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때의 마음을. 지금까지도 가슴속 한구석에 숨죽이고 있던 이 마음을 이제는 떠올릴 수 있었다.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나는 마음속에 아른거리는 그것을 힘껏 움켜잡았다. 다시는 놓치기 싫어서. 다시는 잊기 싫어서. 머릿속에, 가슴속에 그 생각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새겨넣으며, 나는 어떤 다짐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일단 오늘은 빨리 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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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일 수요일.
혜성 방문을 이틀 앞둔 그 날도 날씨는 화창했다. 혹시나 축제 때 비라도 오면 어쩌나 마음 졸이던 관계자들도 일기예보를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토모리 고등학교의 오늘 또한 평범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제외하면 말이다.
“지금… 뭐라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미야미즈 미츠하는 신음처럼 말을 흘렸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테시가와라 카츠히코는 다시 심호흡을 들이켰다.
말해야 했다. 전해야 했다. 7년간이나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던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마음을. 이제라도 전해야만 했다.
처음엔 편지라도 써볼까 했다. 그렇지만 책상에 앉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그 계획을 철회했다. 역시 글자로 전할 마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음을 다시 가다듬으며 그는 친구의 얼굴을 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잘 아는 친구지만, 아직 얼굴만은 모르는 친구를.
이걸 원한 거지? 타키.
역시 아직도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 원하는 대로 발버둥 쳐볼게. 네가 가르쳐준 대로. 미츠하가 가르쳐준 대로.
과거에 묶여 사는 것 따윈, 나도 사양이니까. 나도,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면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섰다. 그래서 미츠하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려고 한다.
몰려드는 긴장에 두 주먹을 부서져라 움켜쥐며, 테시가와라는 다시 단어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을 주었다. 마음을 전하는 데는 일말의 오해조차 있어선 안 되었으니까.
그렇게, 또다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 말이야, 미츠하 너를 좋아한다.”
공기 중으로, 말을 타고, 마음이 전해졌다.
저지른 이상 한 순간도 눈을 뗄 수는 없었다. 테시가와라는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 미츠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 23화. '방향타'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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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가 살아있는 세상의 이야기.
예, 저질렀습니다. 젠장. 어떻게 보면 원작 브레이킹 수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이렇게 플롯을 만든 이유는 완결 뒤에 알아서 밝히겠습니다.
솔직히, 이거보단 더 잘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내내 고민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네요. 지금의 저는 이게 한계입니다.
완결나면 다시 한번 퇴고를 해봐야겠어요. 얼마나 이불을 차게 될지 지금은 짐작조차 안됩니다.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내 능력 이상의 물건을 시작한 게 아닌가 싶은 감상도 듭니다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예고는 이번에도 없습니다. 아마 완결될 때까지는 없을 겁니다.
어차피 언젠가 다시 한 번 건드릴 글입니다. 건드려야 할 것 같은 부분이 보인다면 아무 주저없이 지적해 주십시오.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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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떴다
오오 떴다
직무유기..
ㄴ 진지하게 유기 아닙니다 진짜루... 요즘 제가 쓰긴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그래요
차이는거 맞져??? -까칠한 느갤러입니다
차이는지 아닌지는 제 성향을 보고 여러분이 자유롭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진행되다 보면 결과는 나옵니다.
제발 차여라
항상잘보고있네요
잘보고갑니다 ㅎㅎ
갤주 텟시에게 어떻게 퇴짜 놓을까 궁금하네
전개 잘 풀어나가야겠네
이 팬픽보면 많은 인물들이 성장하면서 나아가고 있지만 타기가 제일 성장 많이 하는것 같네요 농구 관련일이나 미츠하고 싸운것나 타키가 스토리 진행되면서 정신적으로 제일 성숙해지는것 같네요 초반에14살타키라면 저런 조언도 못해겠죠 타키한테 조언 받은 텟시가 이제 자신의 마음까지 알아채고 고백하지만 차이겠죠. 어떻게 차이려나.. 다음편 기대 하고 있겠습니다
ㄴ 타키는 다른 등장인물보다 어리기 때문에 너무 달변가가 되면 안 되었습니다. 지금도 솔직히 너무 말을 잘하는건 아닌가 싶을정도입니다ㅋㅋㅋ 뭐, 그래도 확실히 시작 시점의 타키였다면 이정도 말도 해주지 못했겠지요.
끼요오오옷 감사합니다 센세... 카운셀링을 잘하는 낙엽 프렌즈들...
미츠하 입장에서는 저 말을 들으면 또 얼마나 고민할까... 그래도 돌직구로 저지르니 통쾌하네
내용 면에서는 지적하고 싶은 게 없는데(텟시 심리묘사에서 조금 숱을 쳐냈으면?) 시간 이동이 잦아서 조금 읽기 힘들었다.ㅠㅠ
ㄴ 시간 이동이 잦다라... 하하. 이런 방식을 택한 이상 어쩔 수 없는 디메리트로 안고 가는 부분이긴 했습니다. 완결 후 수정할 때 좀 더 읽기 쉽도록 중점적으로 손을 볼게요.
텟시가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