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가방을 챙기며 저 멀리 걸려있는 벽 시계를 바라보자 벌써 시침이 11시를 가리키고있었다.
12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타키는 30분 전에 퇴근한다고 연락을 했었으니 지금쯤 집에 도착했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던지는 타키의 모습이 머릿 속에 떠오르자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계획대로 데이트만 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은 타키와 나의 결혼 2주년 결혼 기념일.
계획대로였다면 오늘은 좀 더 알콩달콩한 두 사람만의 데이트를 했을텐데, 두 사람 모두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긴다니…….
그렇다고 닥쳐온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쉰다.
그럼……결혼 기념일 선물은 어떻게 할까, 준비는 해뒀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꺼내주면…음, 그건 분위기 상 아닐 것 같구.
그렇다고 선물을 안 줄 수도 없고……어쩌지? 좀 더 뭔가…자연스럽게 좋은 분위기에서 주고싶은데. 어떻게 주는게 나을까…….
"……도착했네."
준비해둔 선물을 언제, 어떻게 주는게 좋을 지 상념에 잠겨있던 새 집에 도착했다.
스마트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현재 시각 오후 11시 30분.
30분만 지나면 아쉬움과 한숨 가득한 오늘의 결혼 기념일이 끝난다.
다르게 말하면 남은 30분 동안은 결혼 기념일이다.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기 전, 잠시 마음을 다잡으며 준비해둔 가방 안의 선물을 떠올렸다.
많이 낡아있던 타키의 지갑을 보고 주문 제작한 커플 지갑.
각각 클로버와 고슴도치 무늬가 수놓아져있고 두 개을 이어붙였을 때 클로버와 고슴도치로 이루어진 하나의 또 다른 무늬가 완성되는 형태다.
'조금 부끄럽지만…….'
작년 결혼 기념일 때 찍은 사진도 넣어두었고, 개인적으론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언제 선물을 주느냐 하는 건데.
"좋아, 일단 목욕하고서…분위기를 만들고 그, 유혹한 다음…선물을 하면……."
퇴근하고 집까지 오면서 여러가지를 고민하다 생각해낸 방법.
시간도 늦었고 괜히 이상한 타이밍에 주는 것보단 아예 침실에서 줘버리자.
부끄럽지만, 정말 부끄럽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않은 결혼 기념일을 좋은 분위기에서 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제 마음을 다잡았으니까. 문을 열자.
현관문을 열고, 타키와 인사를 하고, 먼저 목욕한 후에, 타키가 목욕하러 들어간 틈을 타서 선물을 준비하고…….
서서히 정리되어가는 머릿속을 뒤로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다녀왔…어? 어어, 타키? 여보, 타키…아직 안 왔나?"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냉기만이 흐르는 집이 나를 반겼다.
현관과 복도, 유리문 너머의 거실까지 집 안의 모든 불들이 전부 꺼져있다. 아까 퇴근했다고 했는데…….
의아해하며 타키의 이름을 불러봐도 묵묵부답.
아직 도착하지않은건가 했지만 현관을 확인하니 오늘 신고나간 타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타키?"
현관, 복도, 화장실, 거실……남은 곳은 안방 뿐.
설마 내가 도착하기 전에 잠든건가하는 생각에 조금 섭섭한 마음과 함께 화가 나서 거칠게 문을 밀어 열었다.
"어……."
문을 열자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타치바나 타키, 사랑하는 내 남편이 오늘 아침에 본 차림 그대로 등에 칼이 꽂힌 채 엎드려있었다.
분명히 아침에 잠궈놓은걸 확인했을텐데 어째선지 열려있는 창문에서 새어들어온 바람으로 차갑게 식은 방 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고여있었다.
아직까지 피가 나오는 듯, 웅덩이를 이룬 채 고여있던 피는 조금씩 흘러, 내 발 끝을 물들였다.
어째서일까, 오늘 아침에만 해도……웃으면서 인사했는데. 데이트 못 할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통화도 했는데.
퇴근했다는 연락을 받은게 한 시간 전인데.
"왜……."
왜 거기에 누워있는거야. 아냐, 안 돼. 그래선 안 돼.
오늘은…오늘은, 기념일이잖아. 결혼 기념일이잖아. 우리 둘 다 행복해야하는 날이잖아.
그렇게 거기에 누워있으면 안 되잖아.
"아, 아냐……. 아냐. 이건 꿈이야. 거짓말이야……거짓말이라고…"
어이없는 현실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방바닥을 더듬으며 남편의 상태를 확인하려다 그만 미끄러져, 손이 피웅덩이에 빠져버렸다.
피에 물든 손을 보며 현실을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믿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나에게 가혹했다.
이번에도 그런 가혹한 현실인 것 같다. 깨어날 수 있는 꿈이 아니라, 현실.
그제서야 눈물이 차올랐다.
흐려진 시야 너머로 붉은 바닥이 보이고 다시 뿌연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뚝뚝, 눈물을 흘리고있을 때 남편의 손에 잡힌 것이 보였고, 곧이어 꺽꺽대며 울음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왜…왜……!! 선물, 이런거……!! 타키, 나는, 여보……나는, 당신이랑 같이 지내고싶었어. 그게 행복이었는데……."
줄곧 찾아온 인생의 반 쪽, 2년 전에서야 겨우 찾아낸 내 반 쪽, 함께하며 행복했던 2년의 삶.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차갑게 내 따듯한 미래를 부숴버렸다.
"제발…거짓말이라고 해줘……."
절망감이 온 몸을 감쌌다.
큰일났다.
결혼 기념일 이벤트 준비하면서 인터넷에서 본 거 따라서 장난 좀 쳐본건데 미츠하의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가만히 숨 죽이고 있다가 미츠하를 놀래켜주고 당황해있을 때 웃으면서 미리 준비해둔 선물을 건네려 했는데.
이거 지금 일어나면 등짝 맞을 것 같다. 어떻게 하지? 어……일단 상황을 좀 확인해볼까?
"……어?"
"어……미츠하, 왔어?"
"뭐…뭐야?"
눈이 마주쳐버렸다.
침착하자. 여기서 대답을 정말 잘 해야해. 침착, 침착해야 해. 그러니까……음, 으음…….
"타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잖아."
늦었다.
미츠하의 목소리가 쫙 내리깔렸다. 지금부턴 변명을 하면 안 된다. 사실 그대로를 말해야 해.
그런데 사실 그대로를 말해도 화낼 것 같은데, 아…….
"그게,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
"결혼 기념일 데이트…이벤트 준비했었는데 우리 둘 다 야근하면서 흐지부지 되버려서."
"그래서?"
시선이 너무 따갑다. 아니, 시선으로 찌르는 것 같아 아프다.
2년 전 미츠하를 만난 이후로 가끔씩 화를 내기는 해도 저렇게까지 화난건 처음보는데, 만약에 화가 안 풀리면 어떻게 하지……?
"대답해."
"데이트랑 이벤트 준비할 때 보니까…'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있습니다.'란 글이 있길래 봤는데 재밌었거든, 그…흐지부지 됐고 시간은 얼마 없으니까 장난…치려했어. 재밌다고 생각해서."
"이게 재밌어?"
"아니, 난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미안해, 잘못했어."
눈을 굴리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생각하고있으니 미츠하가 대답을 독촉하는게 들려왔다.
더 이상의 변명은 소용없으니 사실대로 털어놔야겠지, 싶어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으니 미츠하의 굳어있던 얼굴이 일그러지는게 보였다.
아…이런걸 생각한게 아닌데. 그냥 재밌자고 한건데…
미츠하가 잠깐 놀라있을 때 깜짝 선물 꺼내주면서 같이 웃는걸 생각했는데. 화나게 해버렸다.
너무 후회된다. 저렇게 화날 줄 알았으면 안 했을텐데.
할 수만 있다면 히히덕 거리면서 준비하고있던 과거의 나를 뜯어말리고싶다.
그리고 또 무섭다. 미츠하가 지금까지 저렇게 화난걸 본 적이 없어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서, 너무 무섭다.
평소처럼 짧게 화를 내고 한 마디 하는걸로 끝낼 것 같진않은데.
욕을 할까도 싶고, 때릴까도 싶고, 차라리 그렇게 끝나버린다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혹시나, 정말 만약에 미츠하가 이번 일로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무섭다.
이렇게 미츠하가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데, 나는 왜 화나게 해버린걸까.
"미안해…."
"……."
"정말 미안해, 그러려던건 아닌데, 아니…이게 아니라……미안해. 잘못했어."
"아……진짜………."
슬쩍 눈치를 보니 미츠하의 일그러진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히는게 보였다.
어, 어…우는건가……? 어어….….
"어떻게…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가 있어……. 진짜…"
"미츠하……그, 잠깐만……"
"저리 가!! 진짜…난 진짜……아……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싶었는데, 그런 걸로 장난칠 생각을 해?"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미츠하, 잠깐 나좀 봐. 진정하고……미안해."
고인 눈물이 뚝뚝 하고 흘러내리고 이내 굵은 물줄기로 변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내 가슴팍과 등짝을 주먹으로 퍽퍽 때리면서 서럽게 펑펑 울고있었다.
울게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웃는 모습을 보고싶어서 준비한 장난이었는데, 우는 모습은 보고싶지않은데.
나는 네가 우는 모습을 원했던게 아니야.
"울지마, 미츠하. 내가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울지마. 미안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어떻게……."
"그렇게 슬퍼할 줄 몰랐어. 그러니까……"
정말 네가 그렇게 슬퍼할 줄 몰랐어. 알았다면 이런 장난은 안 했을거야.
너의 젖은 눈가도, 울음섞인 목소리도, 일그러진 얼굴도 내가 바란게 아니었어.
"읍…읏……."
거부하는 것처럼 품 안에서 밀어내는 몸짓이 느껴진다.
네가 지금 나에게 화가 난 이유, 미리 눈치채지 못 해서 미안해.
놀라 울던 모습에서도, 슬퍼 우는 모습에서도, 화를 내는 모습에서도, 너의 사랑을 느끼고있어.
울게 만들어서 미안해. 화나게 만들어서 미안해.
…이기적이라 미안해.
"미안해, 미츠하"
펑펑 울어서일까, 긴 키스 때문일까. 미츠하의 거칠어진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진다.
긴 머리도, 젖은 눈망울도, 방금 전의 키스로 침이 번들거리는 입술도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냥, 쭉……계속 너와 함께 있고 싶었어."
"미안해."
"무서웠어, 정말…이대로 혼자 버려지는 것처럼 남게되는건가 싶어서 무서웠어……. 다시는 그런 장난 하지 말아줘."
"…잘못했어."
아직까지 울음이 그치질 않은건지 울먹이고있던 미츠하는 천천히 내 품에 얼굴을 묻고는 말을 이어갔다.
"약속할 수 있어…?"
"응, 약속할게. 다신 이런 일 없도록……."
"그럼……보여줘."
다시 한번 입술이 맞닿았다.
부드럽고 뜨거운 설육이 입술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훑고 얽히며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열기가 머릿 속을 감싸고 한 꺼풀 옷을 벗기고 벗으며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사랑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빠~!!"
"아이쿠, 그러다 다칠라, 위험해."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어린 여자아이가 아빠의 품에 안기는게 보였다.
부녀의 사이가 좋은듯, 혹시라도 다칠까 허리를 활처럼 구부려 부드럽게 안아주곤 서로 뺨을 부비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왜 그렇게 서 있어?"
"아니, 보기 좋아서."
"우리 딸이 너무 예쁘긴 하지. 아빠한테 애교도 부리고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니깐."
으음,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 이는 자기가 얼마나 귀여운 지는 자각을 못 한다니까.
"으음…밥 차려놨어. 여보, 손 씻고 와. 이츠하, 밥 먹게 손 씻자."
"알았어. 이츠하, 아빠랑 손 씻자."
"네~"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 귀엽고 말 잘 듣는 딸, 화목한 가정.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날이 너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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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떡씬 쓰려고했고
타키가 선물 주는 장면도 있었는데
요렇게도 써보고 조렇게도 써봤지만 내가 아다인게 티나기만 할 뿐이라 짜증나서 걍 생략하기로 함 ㅅㄱ
불만있음 대주던지
진짜 쓰고 있었네 구라가 아니어써
떡씬은 몰라도 선물 주는 장면은 정말 많이 아쉽네요
떡신은 없어도 되는데 선물 주는 장면은 없는것이 아쉽네요
재밌었네 갑자기 등짝 칼빵맞았다 그래서 이게 뭐여 이러고 읽었는데 재밌었네요 ㅋㅋㅋㅋ 오랜만에 보는 일상 개그물이라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