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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 링크>


<이전편 보기>


삽화제공 : Enfoll 님 감사합니다.


<운명인가 우연인가 - 미츠타키 After>


외전 - 전할 수 없는 편지


끼익... 덜컥.


불이 모두 꺼져 어두운 집안으로 한 여성이 들어온다. 불을 켜고 신발을 벗고 부엌으로 가서 보리차를 한잔 마신다음 한숨을 쉰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그리운 듯이 바라본다.


─ 벌써 몇 년이지... 


중얼거리는 그 여성은 칠흑색의 생머리를 살짝 꼬아 뒤로 튼 묶음 머리를 하고 있었다. 묶음 부분에는 붉은색의 매듭끈이 리본의 형태로 앙증맞게 달려있다.


사고 이후 도쿄에 올라와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있었지만, 독립을 위해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후, 넓지 않은 집을 외로이 지키기 시작한지 어언 3년. 뛰어난 외모와 부드러운 성격 덕분에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그녀였지만, 고백을 해오는 남자들 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정중하게 거절하곤 했다. 자신도 그 누눈가를 모르고 있었지만, 항상 고백을 받을 때 마다 그 사람의 희미한 인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오늘도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 선배에게서 좋아한다는 고백의 말을 들었지만,


─ 죄송해요. 전 이미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요.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


거절의 말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물론 상대방이 매달릴 때는 좀 짜증났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으면서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쉽게 남성들에게서 접근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것도 있고 해서, 대학교에서의 그녀의 인기는 동성에 한해 국한 되어 있었다.


오후에 학교 정원에서 선배의 고백을 거절하고 마음이 심란해진 그녀는 친한 친구들과 가볍게 술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 


그녀는 술기운이 살짝 도는 느낌에 소파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 하아... 


언제나 똑같았다. 일상생활에서는 환하게 웃는 그녀였지만, 진심으로 웃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구석에서 자리하고 있었기에 마음속에서 나오는 미소는 아무도 보질 못했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면서 그녀는 또 다시 상념에 빠진다. 술을 마시고 나면 항상 찬물로 샤워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정신이 깨는 것도 있었지만, 잡생각이 사라져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우울할 기분을 가라앉힐 때 주로 쓰는 기분 전환법이었다.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는 물방울이 한 두 방울 씩 떨어지는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는 그녀. 자신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후 힘없이 수건으로 남은 물기를 닦아낸다.


가벼운 실내복으로 갈아입고는 언제나처럼 책상 앞에 앉아 열쇠로 자신의 서랍을 열어본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을 뿐이다. 그녀가 애지중이 하는 노트. 그래서 인지 그 노트는 항상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펜 꽂이에서 꺼낸 연필을 살짝 깎는다. 왠지 뭔가를 쓸 때는 연필의 사각사각한 느낌이 좋아서 항상 연필로 글을 쓰고는 했다. 


노트를 꺼내어 잠시 읽어본다. 지금 까지 썼던 내용을 다시금 읽어보면서 이따금 오른손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글이 끝난 지점에 연필을 들어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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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4일]


From. 미츠하

To. 


잘 지내고 있지? 나도 물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헤헤


오늘 아는 선배한테 고백을 받았거든. 하지만 거절했어. 나에게는 네가 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내 옆에 있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런데 말이지. 집에 오니까 너무 슬퍼. 반겨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데, 오늘도 어두컴컴한 집안이 날 반기더라.


네 생각에 술 한 잔 걸쳤더니 더 보고 싶어. 넌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니? 내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까지 쓴 다음 연필을 내려놓고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번 주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른다. 상실감과 허전함, 기다림. 지금 그녀를 채우고 있는 모두였다. 


행복함, 기쁨 이런 감정들을 느껴보고 싶다. 진심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편지위로 투명한 눈물이 한 두 방울 떨어져 이내 종이를 적시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대로 노트를 덮고 침대에 쓰러지든 몸을 눕혔다.


─ 보고 싶어. 정말로...


어두운 천정만이 그녀의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그녀는 눈을 감았다.



★ ★ ★ ★ ★



[2021년 12월 15일]


From. 미츠하

To.


오늘 하루도 잘 지냈네? 밖에 눈이 오더라. 오랜만에 맞는 눈이어서 그런지 오늘은 좀 설레이는 기분을 느꼈어.


네가 사는 곳도 눈이 내리겠지? 여기 도쿄처럼 말이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너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해. 오늘은 나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어.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육교를 건너고 있었어. 어떤 사람이 나랑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거든.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그 사람과 나랑 스치는 순간 내 귀에 방울 소리가 들렸거든. 난 잘못 들은 줄 알고 계속 걸어가는데 그 사람이 멈추더라? 그리고 시선이 내 뒤에 느껴졌어. 난 뒤늦게 고개를 들어 그쪽으로 돌아봤지만. 그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둠속으로 사라졌어.


별일이 다 있지? 계속 걸어오면서 그 사람의 뒷모습만 떠오르더라. 그게 너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고.


오늘 나 좀 이상한 거 같아. 평소랑은 달리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아마 내리는 눈 때문이겠지.


다음에 또 편지 쓸게 건강해야 돼!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끝까지 쓸 수 있었다. 연필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은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포근한 미소.


보고 싶던 사람을 먼발치에서 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늘 내린 눈 때문일까. 그것은 그녀 자신도 모른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육교에서 봤던 그 사람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즐거운 기분이 샘솟는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든 그녀의 표정은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그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 ★ ★ ★ ★



[2022년 03월 05일]


From. 미츠하

To.


안녕? 나야. 미츠하.


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것 같아. 미안해. 계속 써야했는데.


너무 바빴었어. 일이 너무 큰 게 나한테 들어와서 계속 집에 너무 늦게 들어왔었거든. 


그래도 지금부터는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인턴으로 들어갔던 회사에서 날 정식으로 채용해주겠데. 내 디자인이 거래처 심사에서 통과했나봐. 그래서 회사에서 그 공로를 인정해 앞으로 계속 다니라고 해줬어. 


너무 기쁜 거 있지? 너도 내 편지를 받으면 기뻐해 줄 거라고 생각해. 


넌 요즘 어떠니? 회사를 다니고 있니? 아니면 대학원? 그러고 보니 난 너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나. 이제까지 내 이야기만 했으니까.


나도 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이 편지를 받으면 답장 꼭 해줘야 돼? 알았지?


난 계속 네 편지를 ....




기쁜 일로 쓰는 편지였지만,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또다시 연필과 노트를 놓아야 했다. 


─ 난 왜 계속 이걸 쓰고 있는 거지? 받아줄 사람도 답장을 받을 일도 없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책상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오늘 같이 기쁜 날도 자신과 가족들에게만 이런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졌다. 


─ 그 사람이 이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왜... 난..


하염없이 울면서도 그의 생각을 한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의 형태. 그리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에 대한 이야기들...


그렇게 그녀는 책상위에서 울다 지쳐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 ★ ★ ★ ★



[2022년 12월 31일]


From. 미츠하

To.


안녕? 잘 지냈지?


벌써 올해도 마지막 날이다. 시간 참 빨리 가는 거 같아. 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며칠 전에 친구가 남자를 소개시켜줬었거든. 그 남자가 너무 상냥해서 계속 이야기 하다가 얼떨결에 고백 받았는데 받아들일 뻔 했거든. 날 너무 자상하게 생각해주고 대해줘서 말이야. 헤헤


하지만, 이번에도 또다시 거절했어. 나도 모르게. 


이제 주변에서는 날더러 철의 여자래. 남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지낸다고. 웃기지 않니? 난 그저 너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뿐인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난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에겐 네가 있으니까.


근데 어쩌지? 나 이제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얼마 전에 할머니가 나한테 그러셨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나 갑자기 그 말 듣고 무서워졌던 거 알아? 어렸을 때부터 날 계속 길러주신 할머니가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견딜 수가 없더라. 할머니마저 떠나면 이제 요츠하 뿐인데... 난 이제 누구를 의지하면서 지내야하니... 


이제까지 말은 안했지만. 부탁할게.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내 앞에 나타나 줘. 나 더 이상 못 버틸 거 같아.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네. 


마지막으로 부탁 할게... 제발... 내 앞에... 한 번만...




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온다. 난 도대체 뭐 때문에 계속 오랜 기다림을 견뎌야 하는 건가.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냐고.


─ 나 이제 너무 힘들어... 도와줘 제발... 안 그러면 나 무너질 거 같아... 도와줘... 도와줘...


어두워진 방안에서 그녀는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만 쏟고 있었다.



☆ ☆ ☆ ☆ ☆



[2023년 04월 XX일]


From. 미야미즈 미츠하

To. 타치바나 타키


안녕 타키군! 나야 미츠하. 


아마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거 같아. 왜냐고! 난 널 만났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너를!


계단에서 난 솔직히 네가 나를 불러줬으면 했었어. 난 좀 자신이 없었거든. 그런데 계속 멀어져가는 너를 느끼니 갑자기 슬퍼졌었는데...


넌 내 바람대로 나를 불러줬어. 그리고 내 이름을 물어봐줬지. 


난 너무 기뻤어. 그리고 바로 널 바라봤지.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너였다는 것을 한번에 알았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를 본 적이 있었고, 뭔가 중요한 일에 나를 도와줬던 그런 느낌이었어.


아!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너랑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 그리고 너에 대해 좀더 많이 알고 싶어! 그러다보면 처음에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


정말이라고! 난 그런 느낌을 받았어. 놀리지 마. 내 느낌 꽤나 정확하단 말이지?


오늘 만나서 정말로 반가웠어. 내일 내가 문자 보낼게. 너랑 하는 첫 데이트 신청 문자를 말이지? 전화를 하고 싶지만, 아직 내 전화로 인해 네가 피해보면 안 되니까 우선 문자로 대신할게.


그럼 내일 문자 꼭 봐줘야 돼? 알았지? 안보면 화낼 거야?




그렇게 마무리 하고 그녀는 연필을 펜 꽂이에 가지런히 정리 한 후 노트를 덮었다. 이번에는 서랍이 아닌 자그마한 바구니를 꺼내어 그 곳에 노트를 넣었다.


미리 준비한 자물쇠로 바구니를 잠그고는 자신의 옷장 깊숙한 곳에 그것을 살며시 집어 넣었다.


이제 그 편지를 더 이상 읽을 일도 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만나서 너무도 기쁘고 지금은 행복하니까.


옷장을 닫으면서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 그 동안 고생해줘서 고마워. 이제는 편히 쉬어...


<전할 수 없는 편지 끝>


<4편에서 계속>


<잡담>


미츠하가 타키를 만나기 전에 어땠었는지 상상하면서 쓴 글이었습니다. 외전형식으로 짧게 써봤습니다.


날짜를 일부만 넣은 것은 거의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리움에 사무쳐서 쓰는 그런 내용이죠. 랜덤 날짜입니다 마지막 빼고는 의미는 없어요.


레브레터랑 형식이 비슷하다는 분들이 많아서 짤막하게 추가합니다. 편지 형식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러브레터 작가님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겠습니다.


쓰다보니 그렇게 돼버렸네요 ㅠ


검은별을 다시 쓸 줄이야...


삽화제공해주신 Enfoll 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