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것은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편도 Enfoll님께서 멋진 삽화를 그려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는 달린다.
비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그저 달린다.
정처 없이, 스스로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는 채로.
10월 날의 가을비는 누군가에게는,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는 그저 한 없이 냉혹한 폭풍우와도 같을 뿐.
그저 비를 맞으며,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생각한다.
사실,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아니, 미츠하와 신사 옆 계단에서 재회하여 과외를 하며 수험생활을 하던 그 때부터, 줄곧 생각했었다.
우리 둘의 나이차.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3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그 때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그 시간 차 덕분에 미츠하에게 과외를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바쁜 수험생활 와중에 그 3년의 시간차를 진지하게 고민할 겨를이 없기도 했고.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함께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손 잡고 둘이서 캠퍼스를 거닐면서도, 자꾸만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점점 미츠하의 졸업이 다가오면서, 나는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제 졸업까지도 수개월 남짓.
미츠하의 졸업 이후를 생각한다.
그녀가 떠난 캠퍼스. 그녀가 없는 대학생활.
홀로 걷는 캠퍼스. 나 혼자만의 대학생활.
아니, 사실 학교에 나 혼자 남겨지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자신보다 한 발짝 먼저 사회로 나아가는 미츠하이다.
그리고 그런 미츠하와 함께 일하게 될 동료, 혹은 동기들은 모두 나보다 경제력이나, 여러 가지 예의범절 등 매너에서 앞서 있겠지.
물론 미츠하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누구보다도 미츠하를 믿는다.
내가 아는 미츠하는, 나를 놔두고 절대로 딴눈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믿음과 별개로, 그런 남자들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때마다, 열등감 혹은 분한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 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한 그들. 몇 년 동안 일을 했으니, 적지 않은 돈이 있을 터이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 돌아가는 것이나, 그에 맞는 격식을 잘 알겠지.
그에 비해 나는?
그저 학생일 뿐이고,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 급여는 그들의 벌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또한 그저 학교 공부만 하였기에, 사회물정이나 그에 맞는 행동양식을 잘 알지 못한다.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있다가도, 미츠하의 웃는 얼굴 한 번이면 모든 걱정을 다 날릴 수 있었겠지만.
이번 여름방학에, 미츠하는 특히나 바빴다.
물론, 둘이서 워터파크에 간 것이나, 간사이 여행을 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고, 서로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쁜 미츠하의 얼굴을 보지 못할 때마다 점점 불안해졌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나보다 앞선 ‘그들’에 대한 열등감인지.
아니면 이대로 미츠하가 나보다 앞서 나가서, 그대로 나를 떠나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 때문인지.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고민하다가, 한 번은 츠카사와 신타 녀석을 붙잡고, 술자리에서 한탄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이 일은 미츠하에게는 비밀이었다.
여러모로 바쁠 미츠하에게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까 미츠하에게 숨겼던 것은 이것 하나 뿐이다. 맹세코.
미츠하. 내가 너에게 말 못할 것이 뭐가 있겠니.
누구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인 너에게 말이야.
여하튼, 그렇게 불안한 감정에 싸여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요즈음.
오늘,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이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그저, 내가 지나가다가 어떤 이야기를 엿들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그 이야기 내용은 도저히 내가 넘겨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낮의 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시간의 농구부 연습을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나서던 참이었다.
오늘의 뒷정리 담당은 나였기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체육관 입구를 나서려던 그 때에.
간만에 미츠하가 시간이 나서, 오늘 만나서 무엇을 할까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며 걷고 있던 그때에,
모퉁이 너머 입구 쪽에서 웬 말소리가 들렸다.
코너 너머라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농구부 소속의 4학년 선배 두 명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랑 사이는 그저 그런 사이의 둘.
연습 시간도 겹치지 않아서 같이 경기를 한 적도 별로 없고, 만나면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이다.
여하튼, 평소 같았으면 간단히 목례만 하고 지나갔을 터이지만, 그 내용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벽에 붙어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야, 1학년에 타치바나인가 뭔가 하는 후배 아냐?”
개 중에 목소리가 걸걸한 녀석이 먼저 말했다.
“알고 말고. 국어 교육과의 미야미즈 씨인가? 엄청나게 예쁜 분이랑 사귀는 녀석 아니야?”
아까 얼핏 봤을 때 얍실하게 생긴, 나머지 녀석이 대답한다.
“나 참, 그런 꼬마가 뭐가 좋다고. 당장 우리 같은 또래의 남자들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야.”
목소리가 걸걸한 녀석이 바닥에 침을 찍 뱉으며 말한다.
“뭐, 곧 졸업이잖냐. 사회 나가면 더 좋은 남자들이 득실득실 한데 말이야.
두고 봐. 미야미즈 씨도 졸업하면 분명 다른 남자 찾을 걸?”
나머지 녀석이 실실 웃으면서 화답한다.
도저히 가만히 넘겨들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나에 대한 욕은 상관없었다.
그러나, 미츠하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가서 반박 내지는 몸싸움 까지도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열이 올랐던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미츠하에 대한 모함 빼고는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저, 미츠하와 동년배 내지는 좀 더 앞선 사람들과, 그저 대학교 1학년짜리에 불과한 나의 차이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말들이었다.
정곡을 찔려서 혼란스러운 감정과, 그래도 미츠하를 욕보였으니 한 소리라도 따끔하게 해줘야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그들은 담배를 다 태운 모양인지, 이미 제 갈 길을 간 모양이었다.
분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들의 말이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갈 길을 잃은 분노는, 그 모습을 불안 혹은 공포로 바꾼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의 입구에서, 나는 불안에 몸을 떨며, 다리를 후들거리며 벽을 짚고 겨우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오후 수업은 어떻게 들었는지,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 마치자마자 바로 그 길로 미츠하의 자취방에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오늘 오후 수업이 휴강이라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문자를 받은 덕분이었다.
마침 비가 내려서 우중충한 거리를 걸으면서, 아니 달리면서.
비에 젖은 냄새가 진동하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
계속 한 사람만을 생각했다.
어서 빨리 미츠하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먹구름 속의 한줄기 햇살과 같은, 밝은 미소를 보면서 이 모든 불안, 공포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간만에 내 표정을 본 미츠하는 조금 놀랐을지도 모른다.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불안으로 얼룩진, 내 표정이 안 좋았을 테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미츠하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싶었다. 울면서 이 모든 감정을 다 날려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그저 미츠하와 붙어 앉아서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오늘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모든 불안과 걱정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치유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잘 풀리려나 하고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순간.
그녀가 말하였다.
‘타키 군. 있지 나, 논문 통과되었데. 대학원 합격이야.’ 라고.
그 말을 들은 내가 떠올린 첫 감정은 ‘혼란’.
미츠하가 이전에 대학원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까지의 내 모든 걱정의 원천은, 미츠하 혼자서 먼저 사회에 나가는 것에서 기인하였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서로 비슷한 시기에 학업을 마무리하고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되니,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좀 기뻤다.
미츠하가 내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준비한 점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찌 되었든 그만큼 나를 생각하였기에, 혼자서 열심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일 것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샘솟는 것은 이와는 상반된 감정.
바로, 미츠하에게 이렇게 큰 부담을 지운,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자신이 아는 한, 미츠하는 대학원 진학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입학 직후에 즈음이었나, 그때 나눈 대화에서도,
‘헤에, 타키 군도 졸업 후 곧장 취업 생각하는구나.
나? 으음... 나도 곧장 졸업하고 곧장 교단에 서지 않을까?
이 누나가 먼저 사회 나가서 돈 모아 놓아야 나중에... 으으, 아무것도 아니야!’
얼굴이 빨개지며 그렇게 말하던 그녀.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츠하 역시 대학원 진학에는 크게 뜻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어째서 대학원 진학에 뜻을 두게 되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더 크고 깊은 학문에 대한 뜻이 생겼거나. 아니면 다른 목표가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미츠하의 성격이라면, 분명 ‘나’를 위해서 한 선택일 가능성이 컸다.
즉, 그저 나와 함께 하기 위해서, 3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다.
미츠하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분명, ‘희생이라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 이렇게 반문했겠지만.
물론 나는 미츠하의 의지와, 그 뜻을 존중한다. 언제나.
나는 미츠하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며,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더 이상 그 낡은 시골마을의, ‘전통’이라는 인습에 갇혀 살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기에, 나는 미츠하가 졸업 이후에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나’는 개입할 요소가 아니었다.
물론,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은 이해하고, 그렇게까지 생각해줘서 너무나도 기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미츠하가 나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미츠하의 ‘더 큰 걸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해야할 때도 있는 법이야.’라는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미츠하가 말하고자 하는 말은 ‘장래에 타키 군과 함께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타키 군과 함께 할 시간이 좀 줄어들지도 모른다.’였겠지만.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타키 군과 함께 하는 미래가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나의 3년 쯤은 희생할 수 있어.’라고.
물론,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른다. 나 까짓게 뭐라고.
그저 내 걱정이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미츠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행복하게 지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츠하에게만 그런 부담을 일방적으로 지우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불공평했다.
그 빌어먹을 혜성 이후에도, 미츠하는 나를 3년 넘게 기다려주었다.
그런 여자를 또 3년이나 기다리게 하라고?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표정은 자연스럽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도, 기뻐하지는 못하고. 멍청하게.
따라서,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사단이 난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와 함께 할 행복할 미래를 꿈꾸었기에.
이 모든 사단이 났다고 하면 너무 자기애(自己愛)적인 발상일까?
그렇기에, 미츠하에게
‘더 이상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진지하게 나랑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기는 한거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라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항상 그녀와 함께 할 미래만을 생각한다.
체계적이지는 못해도, 나름의 계획을 세워놓았고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학점관리도 하고이것저것 대외활동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견딜 수 없이 슬펐다.
내 그간의 노력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에게 부정당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대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고 말았다. 남자답지 못하게. 바보 같이.
물론 그녀에게 말한 대로, 그렇게나 서로 머리가 가열된 상태에서는 어떤 심한 말을 내뱉어서 그녀를 상처 입힐지 몰랐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다가는 눈물을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 그녀에게 그런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달릴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세찬 비를 온 몸으로 맞아서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자신의 노력을 부정당했다는 충격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심이 아니면서도 그런 심한 말을 내뱉어야했던 그녀의 찢어지는 마음을 생각했더니 견딜 수 없이 슬퍼져서인지.
나는 아무런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발 가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게 반쯤 정신 나간 채로 걷고 있던 내 눈 앞에 무언가가 보인다.
돌로 된 아담한 계단.
노을 빛 손잡이 내지는 기둥.
옆에 보이는 주택가와 신사.
그래, 바로 그녀와 재회했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 곳’이다.
빌어먹을, 어째서 하필 와도 여기로 오게 된 거지?
나는 스스로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눈길로 계단의 층계를 좇는다.
그리고 보이는 무언가.
아니, 누군가.
어깨까지 오는 탐스러운 세미 롱 헤어에,
사무칠 듯이 그리운 노을빛의 머리 끈.
그래, 그 계단 위에는 있는 것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달려 나온 듯한 그녀였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연휴라 그런지 금방 올라오네 | 사진콘 개최중
갤질을 안 하니 쓰는 속도가 빨라지네
잘 봤습니다
어서와라잉
언제나 잘 보고 있어
잘 봤습니다. 마지막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니 부담감이..
추추 잘 읽고있음
역시 이정도 갈등정도는 있어줘야 타키미츠지... 심리묘사가 매우 좋았네요. 다음편 계단씬 기대됩니다.
크 퍄퍄퍞
타키의 심리묘사가 좋았습니다 잘 봤습니다
저런 식으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 좀 더 헤어져서 생각할 시간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