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춤, 춤] 이랑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본편 내용이랑 하등 상관은 없으니 안심하고 시청해 주세요.




경고. R18이지만 초반이니 쎄게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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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어둠에 잠길 무렵, 토시키는 서둘러 낡은 검은색 세단에 시동을 걸었다. 차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시트가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엔진이 거칠게 갈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자, 어두운 실내에 길잡이처럼 차 계기판의 강철면이 하이라이트로 강조되기 시작했다. 토시키는 손에 쥐고있던 봉투를 조수석 위로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책 1권이 봉투 사이로 비죽 튀어나와 시트 위를 부드럽게 짓눌렀다.
 

  머리 위로는 썬 코팅이 되어있는 유리막에 오렌지 빛 하늘이 야트막하게 녹슬었고, 기름칠을 한꺼풀 뒤집어 쓴 듯한 시트위로 가라앉은 등허리가 제자리를 찾자 시트코팅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야단났군. 늦겠어.”
 

  정신없이 중얼거리며, 계기판 위로 떠오른 네비게이션 화면을 조작하자, 잠시 후. 익숙한 이름과 함께 무뚝뚝한 통화연결음이 차 안을 가득 울렸다.

 

  차 안에선 일절 운전하는 버릇을 들이지 않던 토시키는 오늘만큼은 예외로 학술회가 끝나고 뒤풀이자리에서 늦게 벗어난 것에 대한 변명과 차 안에서 전화통화를 하지 말란 것에 대한 해명을 입 속으로 조용히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발표회 때는 발표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예외없이 조용히 논문을 훑어보던 눈을 멈추고 한 곳만을 바라보아야 했다. (게으름을 핑계로 벼락치기로 논문준비를 할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발표 코멘트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발표시간에선 발표자가 곧 알파였고, 그가 준비한 논문이 허무맹랑하든 혹은 참신한 논쟁거리를 가져오든 간에 준비한 말들이 끝날 때 까지, 조용히 경청하는 것이 학자들의 올바른 자세였다.
 
  불친절한 전화국 직원처럼 한참을 무뚝뚝하게 신호음을 내보내던 스피커폰이 ‘우두두둥’  갈리는 소리와 함께 떨리자, 금세 생기발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수석의 짐더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여성의 목소리는 놀라우리 만큼 침착했다.
 

  “후타바.” 타이어가 자갈의 곡선을 따라 떨리자,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떨렸다.
  “당신.” 짧은 쉰 목소리였다.
  

  차가 이제 곧 자갈길 없는 편안한 산길로 들어설 터다. 토시키는 침을 꼴딱 삼켰다. 시선은 도로변에 빈틈없이 고정됬지만, 온 뉴런 세포는 그녀의 다음 말 한마디 한마디를 빠짐없이 기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어디에요?...”
 

  점잖은 말 한마디가 뇌리 속에 흘러들었다. 산 중턱에 들어선 듯이, 차 안에는 한줌의 빛 조차 들지 않았다. 헤드라이트가 길을 비추자, 올망졸망한 자갈떼들이 일제히 길 위를 가로막았고, 토시키는 말없이 마른 한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미동조차 없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머님 집에 안 계셔요.”
  “서둘러 갈게. 거의 도착했어.”
  “당신. 지금 운전하면서 통화하는 거에요?”
 

  날카로운 눈썰미다. 첫 만남 때부터 그랬지만, 후타바에겐 유려한 춤 솜씨와 성격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미야미즈 가의 궁사에게 이어받은 통찰력과 물러섬 없는 말솜씨가 토시키의 변명을 무력하게 했다. 말을 이을 생각조차 구차하게 느껴지자, 토시키는 체념하듯이 웃어보였다.
 

  “...일 끝나고 바로 연락을 줬어야 했는데.”
  “말했잖아요. 오늘이 안되면 안된다고.”
  “곧 도착할 거야. 이제 송전탑이 보이는 걸?”
  “목소리가 그렇게 덜덜 떨리는데. 벌써 송전탑이라고요?”
 

  후타바의 지적에 토시키는 말문이 막혔다. 타이어가 바닥을 쿵 차자 중력을 역행하는 붕 뜬 몸뚱아리가 변명처럼 다가왔다.
 

  “으음! 이제 외곽 쪽인가 보네요. 얼른 끊어요. 여보, 운전 중에 변고가 생기면 가을 날씨에 입 돌아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거에요! 그럼!”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토시키의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낭떠러지로 격돌하지 않기 위해 운전대를 움켜잡은 두 손이 소란스러운 난리법석에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비상! 비상! 오늘 밤도 글렀어! 따위의 소리를 내뱉으며 클락션을 귓가에 빵빵 울려대자, 토시키는 입가가 근질거린듯 가볍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후타바? 오늘은 도서관에서...”
  “운전에만 집중해요. 여보.”
 
  통화는 단숨에 끝났다.
 
  툭 끊어져 버린 신호앞에 토시키는 망연히 엑셀을 쌔게 밟은 것도 모른채 멍하니 자갈밭이 끝나는 걸 지켜봤다. 곧 이어, 차가 지나가기 편하게 가운데만 남기고 나머지는 깔끔하게 모래길로 뒤덮인 산길에 들어서자 토시키는 그제서야 차가 70km/h을 밟고 있다는 사실에 브레이크를 침착하게 연달아 짓밟기 시작했다.
 

  가속하던 차가 점점 느려지더니, 양쪽 둔덕 사이의 야트막한 평지 위로 우뚝 멈춰섰다. 양쪽 타이어 사이의 빈 공간아래로는 장대 풀이 가지런히 피어나 있었고, 그 모양은 마치, 후타바가 토시키를 위해 잠시 머리나 식히라고 다듬어 놓은 듯 했다.
 

  이마가 차갑게 펄펄 끓었다. 핸들 손잡이에 이마가 닿자 뜨겁게 달궈진 손잡이가 달짝지근하게 달라붙었다. 입을 오물거리기만 했던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리라. 오늘만큼은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토시키는 발표 시간을 놓쳐버린 발표자 처럼 입 안에 망령된 말들이 쓴 맛처럼 감도는 것을 느꼈다.
 

  문득, 시트 아래로 엎어진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 위로 스위치를 조작하자, 오렌지 빛 랜턴이 일식처럼 머리위를 덮었다. 조용히 수그린 머리 아래로는 오늘 하루 포식하기엔모자른 양의 책들이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살짝 접힌 겉표지 아래로, 전부 예외없이 수취인 “미야미즈 후타바.”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책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신화학. 인류학. 수집가들 사이에서나 인기가 많을 법해보이는 LP판 하나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DVD가 담겨 있었다.
 
  물건들을 한 곳에 다시 쌓아두자, 차가 다시 시동이 걸리며, 계기판에 형형색색의 라이트가 실내를 밝혔다.

 

  책 더미를 힐끗 내려다 보던 토시키는 성난 아내를 생각하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

 
 

  시간은 겨우 8시 50분 이었지만, 이토모리 기준으로는 새벽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벌써 불이 꺼진 구멍가게 문을 지나, 신사 차량이나, 테시가와라 건설 차량을 제외하곤 인적이 뚝 끊긴 아스팔트 언덕길을 골골 기어오르고 나면, 사극에서나 볼 법한 어두컴컴한 달빛에 만 의존하는 조경이 집 한 채를 돋보이게 했다.


  침입자를 경고하듯이 풀벌레 우는 소리와 스산한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로수 하나 없는 길이라 초행길의 사람들이 이곳 까지 들어서게 되면 사람사는 집이 아닌, 귀신이 나오는 흉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토시키는 이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이제야 겨우 익혀둔 풍경들이 잘 익은 과일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번쩍번쩍한 샷시회사 로고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미닫이 유리문, 작년에 심어둔 오얏나무 한 그루와 마당에 심어놓은 화단 따위가 보였던 것이다.
 

  그 중에, 토시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건 호롱불처럼 흔들거리는 그림자였는데, 토끼면 토끼, 늑대면 늑대, 그림자 놀이를 하듯이 사시사철 저 곳에 앉아 사색에 잠기곤 했던 아내는 늘 자기전에 책을 가까이 했다. 토시키가 조용히 방문을 열 때면, 언제나 2인치는 되는 참나무 간이테이블에 편한 자세로 책을 펴고 앉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베시시 웃곤 했다.
 

  차가 삐뚤하게 마당 바깥의 도로변 위에 세워지자, 토시키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당겨지기 무섭게, 손에 잡힌 봉투를 들고 한 걸음에 50줄이 넘는 돌계단을 뛰어넘어갔다. 돌 바닥을 짚는 소리가 울리자, 토시키는 의아한 표정으로 방금 전까지 흔들거리던.
 

  이제는 시커멓게 어둠이 내린 유리벽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유리벽 안으로는 수의실 처럼 냉랭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위아래로 젖히는 방식이 아닌 좌우로 움직이는 민무니 비단 원단의 커튼이었다.
 

  따듯했던 커튼의 그림자 속은 이제 어둠만이 빼곰히 눈구멍 너머로 토시키를 마주하고 있었다. 등골 뒤로 아슬아슬한 한기가 얄궂게 스치자, 토시키는 숨을 꾹 참으며, 참을성 있게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살금살금 옮겼다.
 

  현관문 문지방도 싸늘하게 식어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문턱이 부드러운 마찰음과 함께, 따듯한 공기가 안에서 반기자, 등 뒤로 찬 바람이 토시키의 등을 떠밀듯 불어왔다.
  

  문을 닫은 토시키는 현관불을 켜기 위해 벽면을 더듬거리며, 우산꽂이 방향으로 한 발 내딛었다.
 
 

그 순간,

 


  물컹한 촉감과 함께, 내장이 얄궂게 웃음보가 터지는 소리가 바로 발바닥 아래에서 들렸다. 흡사, 살아있는 병아리를 발로 으깬 듯한 느낌이었다. 알수 없는 액체가 주체할 수 없이 새어나왔고, 양말과 나뭇바닥 사이로 보이지 않는 미꾸라지가 지나간 듯했다. 토시키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차가운 현관바닥으로 맨발을 내딛었다. 아늑한 통각과 함께 작은 모래알갱이가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어깨 위로 무언가 쿵 떨어졌다. 엄청난 무게다. 꿈틀거리고 살아있었다.
 
  소름이 내장을 뚫고 옷결을 쓰다듬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끔찍한 비명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낮게 으르렁 댔다.
 
  토시키는 눈 앞이 하얘졌다. 위험을 감지하는 양쪽 대뇌는 이미 허둥지둥 땅바닥에 드러누워버렸고, 무중력 속에 몸을 맡긴 달팽이관은 그대로 현관 안으로 데구르르 몸을 굴렀다

 

  “와악!”     
 
  “흐, 흐아아악!”
 
  어스푸름한 달빛이 창호지 문을 비추자, 민담을 그대로 답사한 듯한 마녀가 창백하게 서 있었다. 토시키가 지른 비명에 만족한듯이, 그가 장대우산을 허우적 거리며 더듬거릴 때도 가만히 서 있었다.
 

  토시키는 괴물이 곧 찢어지는. 아니, 날카로운 괴성을 지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악 물고.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대답처럼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자, 토시키는 당혹감을 느끼며 냅다 고함을 질렀다.
 

  “귀...귀신이면 물러나라! 아니면, 당장 망할. 정체를... 드러내던가!”

 

  토시키의 말에 괴물은 길게 팔을 뻗어, 팔랑거리는 날개 지느러미를 조심스럽게 벽면으로 뻗었다. 그리고.
 
  <탁.>

 

  어둠에 익은 동공 안이 대뜸 대낮처럼 환해지자, 토시키는 눈을 감지 않으려는 듯이 광대를 잔뜩 일그러뜨렸다.
  다시 태어난 듯한 세상속에 괴물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미소로 조용히 웃고 있었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미소였다.
 
  대낮이 되자, 긴 지느러미는 어느새, 하얀 무녀복으로 바뀌어 있었고, 현관 바닥을 뒹굴던 내장주머니는, 장모님이 애용하는 마사지용 물주머니로 변했다.
  물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듯한 따듯한 온수가 언 발을 녹이려는 듯이 토시키의 바지자락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후, 후타바!” 토시키가 소리쳤다.
 
  후타바는 입을 쿡쿡 가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양털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이야기를 듣던 꼬마가 엄마 몰래 애지중지하던 이불을 뒤집어 쓰고, 동네 한 바퀴를 쏘다니다가 혼나는 아이를 연상케 했다.
 

  토시키는 허망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탈진한 듯한 입꼬리는 무겁게 주저앉아버렸다.

 

  토시키는 후타바가 한참을 웃게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토시키가 엎어진 채 원망스런 눈빛을 보내자, 두 눈가를 닦으며 토시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품에 파고든 그녀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아련한 미소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화경.
 

  거짓을 고한 적이 없다는고 전해지는 거울이 바로 눈 앞에 놓여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학회에 보고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지만.
 

  “하, 하하! 어, 으... 흠! 오늘은 에드가 엘런 포! 어때요, 소름끼쳤죠?”
 

  토시키는 문득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책의 목록을 떠올렸다. 신화, 소설, 괴물. 상상력이 뛰어난 그녀가 꾸며낸 일들을 생각한 토시키는 공포 장르의 소설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안도를 느꼈다.
 

  “....얼른 자고있지. 나 기다리느라 그랬어?”
 

  "왜 그랬어 여보?" 토시키의 원망하는 표정을 읽은 후타바가 참을성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가져온 책들은 진작에 다 읽었거든요. 요 늦장꾸러기.”
 

  볼을 가볍게 꼬집자, 토시키는 현기증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바지자락 아래로 물기가 허벅지를 타고 가랑이 안으로 스며들자, 후타바가 물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멋쩍게 토시키를 바라보았다.
 

  토시키는 후타바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우산을 다시 제자리로 꽂아두며 말했다.
 

  “음....피곤할 텐데.. 먼저.... 씻고 있을게.”
  “여보.”
  “응?”
 

  후타바를 돌아본 토시키는 발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닥에 처연히 엎드린 후타바는 마룻바닥을 쓰다듬으며 손가락으로 토시키의 바지자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지자락을 붙잡은 새하얀 집게 손가락은 더 없이 억셌다.
  올려다 본 눈빛에 온기를 품은 듯한 하얀 입김이 뿜어나오자.
 

  토시키는 다음 한 마디를 듣고 다시 한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님. 오늘, 집에 안 계셔요.”


 

  ***


 

  “흐음~... 따듯해...” 나른한 목소리였다.
 

  토시키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에 입꼬리를 올리려 했다. 목욕물 위로 떠오른 뚱한 표정이 아래로 잠기자 꼬르륵 물거품을 내며, 조용히 침몰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미야미즈 가의 욕실.
 

  토시키가 벽면을 짚자, 세공한지 얼마 되지않은 세련된 모자이크 타일이 손가락을 타고 미끄러졌다.
  보일러만큼은 예외로 대를 이어간지 오래되지 않았다.
 

  무려 10년이나 된 오래된 고물이었다.
 

  뜨거운 물이 왈칵 수도꼭지 아래로 쏟아지자, 기지개를 켠 듯이 보일러가 달린 벽면위로 창문이 바르르 떨렸다. 
  

  새하얀 온수를 타고.
 

  토시키는 후타바가 넘실거리는 살결위로 사뿐히 가라앉는 모습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맥주처럼 시원한 거품물도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후타바가 고개를 젖히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자 삶은 계란처럼 알맞게 익은 풍만한 유방이 코르크 마개처럼 거품위로 솟아났다.
  후타바는 눈 앞에 토시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어느새, 양 손에 <신화학> 책 한권을 들어올리며 참을성 있게 한장한장 펴내기 시작했다.
 

  “책은....다 읽은 거 아니었어?” 토시키가 말했다.
  “우웅....푸우...! 당신이 가져다 준 책.... 지루할 틈이 없어.” 후타바는 입가에 묻은 거품을 천진난만하게 뱉어버리며 말했다.
  “장모님은...오늘 멀리 계신것 같은데...”
  “부부간의 정은 만큼이나, 달밤도 아-주 길답니다.”
 

  책을 여러장 펴내던 후타바는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토시키를 향해 바라보았다. 한 손가락이 책의 한 구절을 향해 있었다.
  후타바가 갑작스레 토시키의 가슴팍에 파고들자, 바다에 잠긴 활화산이 부글부글 끓는 듯 했다. 토시키는 얼떨결에, 하얀 거품이 묻어난 어깨를 붙잡았다.
  손가락의 감각은 매우 섬세했고, 물기하나 묻어나지 않은 머리칼이 콧날을 간질이자 토시키는 눈 앞의 구절에 집중할 수 없었다.
  콕콕 집는 아몬드 모양의 검지 손톱이 정확히 “<자패석>” 이라는 단어를 찔렀다.
 

  “<자패석>... 제비가 가져오는 돌?”
  후타바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자, 토시키는 눈을 찡그리며 빠르게 구절을 읽어내려갔다. 
 

  “제비가 가져오기로 유명한 이 돌은.... 새끼의 눈을 고치게 하고.... 온갖 질병에 대한 특효약이자.... 아이가 없는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거나.... 순산하게 도와주는 돌로 유명....”
  자패석에 대한 이야기를 훑던 토시키는 물끄러미 후타바를 바라보았다.
 

  마치, 원하는 걸 산타클로스에게 들킨것만 같은 아이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자패석 말이에요. 여보.”
 

  거품이 묻어난 손가락이 입술을 엇그리자, 토시키는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와락 당기며 주체할 수 없이 꽃 향기를 들이마셨다.

 

  턱 끝까지 조여오는 향기가 부드럽게 숨통을 조여왔다.
 
 


  욕실 바로 옆이 미야미즈 궁사가 거주하고 있는 사랑채라고 생각하면, 매일 밤 9시 이후로 보일러 사용금지가 십분 양해를 구할만한 일이라는 건 이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


 


  정신없이 얽히고 섥히고, 두 사람은 이부자리에 까지 그 열의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침실바닥은 싸늘하게 식은 다다미만 보였고, 어디에도 두 사람을 받아줄 푹신한 이부자리는 없었다.
 

  “흐음... 어머니 방은....안되요...” 간신히 입을 떼며 후타바가 말했다.
  착 달라붙은 유카타가 어색하게 미끄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토시키는 허리께로 매달린 후타바를 다시 들어올리며 방안 곳곳을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이불이란 이불은 전부 옷장안에 쳐박혀 있었다.
 

  “다다미는...?”
  “매맞은 자국이라도 남기면.... 어머님이... 싫어해요...”
 

  후타바의 말에 토시키는 가래가 끓어오르는 듯 했다. 결국, 맥빠지게도 그날 잠자리는 이부자리 덕분에 한껏 식어버렸고.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넓직한 이불이 펴진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은은한 마호가니 책장 위로 켜진 등불이 넓직한 이불을 간신히 비췄다.
 

  후타바는 여전히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상아같은 단단한 어깨가 책장을 넘길때마다, 반들거리는 달빛을 춤을 췄다.
 

  상체아래로 이불이 얹혀져 있었고, 이불이 위아래로 꿈틀거리자, 후타바는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그만 두래도요. 여보. 이미 끝났는걸요.”
 

  후타바의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꿈틀대던 이불이 결국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치, 바위가 심통을 부리듯이 높게 솟아오른 듯 했다. 그 아래로 안달이 난 발목이 안타깝게 무너지자, 토시키는 후타바의 옆자리로 지친 몸을 날렸다.
 

  달빛이 철렁하고 흔들리자, 후타바는 불을 끄려는 듯이 유려한 몸을 뒤집었다.
 

  토시키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자패석> 말야, 여보. 그건 무슨 의미였어?”
  “음... 많은 의미가 있어요. 뛰어난 약효. 가정에 아이를 가져다 주는 효과. 무엇보다 더 재미있던 점이...”
 

  후타바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 동공 안이 달빛에 비춰져 새하얗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구혼자를 골탕먹일 때...?”
  “구혼자라니...” 후타바의 등을 한팔로 감싸자 토시키는 노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 당신은 아니고요! 히히.. 전, 그냥...”
  “그냥?” 이라고 답하려고 했던 토시키는 반쯤 어두워진 의식속에 뚜렷한 안광만을 볼 수 있었다. 아무 힘도 없었다. 창백하게 식은 어깨만이 품 속에 가득했다.
  “심술이랄까...?”

 

  후타바는 작별인사를 대신해 이마에 입술을 맞닿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슴팍으로 토시키를 안아들자, 바위처럼 단단한 얼굴이 콧김을 내뿜었다.
  부드럽게 가슴을 애무하며 포근한 냄새가 그녀를 감싸자, 그녀도 토시키의 뒷 머리를 감싸며 웃었다.
 

  토시키가 잠결에 그녀를 팔뚝으로 꼭 끌어당기자, 후타바는 웃으며 기꺼이 꿈 속으로 걸어갔다.
 
  꿈 속에서 토시키가 그녀를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비정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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