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단편] 편의점 아가씨의 추억


언젠가부터, 늘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 있다.
뭘 찾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도 모르는 것 같다.
항상 어딘가를 찾는다. 때론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포기하는 법은 없다.


퇴근길에 몇 번 스쳐본 바에 따르면, 가끔 홀린 듯이 어딜 찾아다니는 것 같은데  이 길거리에서도 자주 머문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잊어버린 걸까?
둘 다인지도 모른다.


이 남자는 항상 뭔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다 한숨을 쉬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오른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멍하니 보는 날도 있고,

가끔 이 편의점을 뒤적이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그냥 나가긴 무렴한지 캔 커피를 하나 산다.

항상 같은 브랜드의 커피다.

다른 종류를 사는 일은 없다.


그런 날이면 이리저리 잔돈을 찾아 뒤적이면서도 눈은 늘 어딘가에 있다.
그렇지만 그 방향은 알 수 없다. 나를 향하는 법은 도무지 없다.


잔돈을 찾지 못해 지폐를 꺼낼 때만 얼굴이 간신히 돌아갈 뿐이다.


아스팔트 냄새가 풍기는 날, 양떼구름이 빛나는 날.
쾌청한 날. 살짝 흐린 날. 우중충한 날. 비 내리는 날.


강한 황사가 부는 날, 서리가 내리는 날.
달무리가 뿌옇게 지는 날.


그 사람은 어떤 날이건 불쑥 나타나선 오직 커피만을 사 간다.
다른 것을 사가는 일은 일절 없다.


한참을 서성이는 날도 있고, 잠깐 멈칫하는 날도 있다.
들어오지 않고 서성이는 때도 있다.


편의점 직원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커피는 점장인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해서 항상 떨어진 적이 없을뿐더러  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

그러니 그 커피를 찾지 못해서 헤맨다곤 생각하기 어렵다.


가격인가? 다른 것을 사려는 것인가?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눈빛을 보아도, 짤막한 대화 사이에서도 가난함은 보이지 않는다.
더 낮은 가격도, 1+1을 고르는 일도, 더 높은 가격의 세일 상품을 사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하나만 사는 경우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옷, 지갑, 눈동자, 제스처. 어디를 보든 중산층 이상의 교육받은 사람의 모습인데....


하여간 꽤 괴팍한 손님이다.


아무튼, 나는 이 손님을 꽤 자주 보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생각해보면 얼굴은 꽤 잘생겼으니 눈요깃거리가 되고 좋은 일이다.

그렇게 감상하다 보니 이 사람의 손버릇, 입버릇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이 사람의 성격이 누군지 꽤 친한 친구처럼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티를 낼 일이 없겠지만. 꽤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여기겠지만.
약간 뿌듯함을 느낀다.
나는 이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조금 쪽팔리는 종류의 뿌듯함이긴 하지만. 그냥 그렇다.
 

 

가끔 나름의 손놀림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길 때도 있다.
선이 겹치면서, 흰색이던 종이에 나름의 그림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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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같은 머리 모양. 완고한 눈썹. 조금 서글서글해 보이는 커다란 눈동자.
단단해 보이는 목덜미. 흐릿하게 남은 귀여움.
그리고 캔 커피 한 개.


처음 낙방을 하고 술에 취했을 때 모습을 생각하면 꽤 귀엽다.
그날에, 온통 취한  와중에도 상품은 제대로 커피 하나만 골라갔다.


비슷한 디자인의 신제품이 출시되었는데도 한결같이 한 브랜드를 사 가는 걸 보면 취향은 꽤 확고하다. 오직 그것만 사간다.

다른 제품을 사 간걸 본적이 없다.


만약 그게 단종이 되면 어쩌나 반응이 궁금할 정도다.
 
이 잘생긴 남자가 편의점에 올 이유가 사라지면 좀 슬프겠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안건임은 분명하다.


이 사람은 누굴까?


여지것 내가 알아낸 바는 수차례 면접에서 떨어졌으며,
그림을 가끔 그리며 잘생겼다는 정도. 커피 애호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커피가 만만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시는 장면을 딱히 본 적은 없다.

.

얇은 티셔츠를 입은 날 보인 단단한 근육의 흔적, 날카로운 눈매를 보아하니
운동선수로 꽤 날렸는지도 모른다.


농구선수? 축구선수? 그건 잘 모른다.
그쪽으로는 아는 바가 없다.



그 정도?

더는 모르겠다.


더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


불행히도 그 이상 알아내진 못했다.
내가 유학을 나가 알바를 쓰던 시절에도 꾸준히 출몰하던 이 사람도 결국 떠나가 버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오던 날에는 말쑥한 얼굴에 안경을 낀 잘생긴 친구를 대동하고 왔다.
꽤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대화를 엿들어 보니 대충 감이 잡혔다.


수년 동안 낙방하던 이 불쌍한 총각을 업어갈 기업이 드디어 나타났고 그 기업의 위치가

지금 사는 집의  정 반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출근 하기는 지나치게 멀고, 따라서 이사를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날도 캔 커피 하나만을 사 갔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편의점에서 같은 일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브랜드의 음료를 사기 시작했을까?


...그렇게 차가운 비만 뿌리던 겨울도 떠나가고 봄이 왔다.
슬슬 벚꽃이 질 무렵이 찾아왔다.
이 무렵이면 어느 순간이든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벚꽃이 떨어지면서 편의점도 분주해진다.
 
나도 역시 바쁘다. 꽃길만 나투시는 커플 나으리들은 모르겠지만,
이 벚꽃은 사실 발로 밟으면  매우 더럽게 변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빗자루로 쓸어야만 한다.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벚꽃 구경을  한다.
어차피 구경을 하지 않더라도 떨어지고 치워야 하니, 구경이나 실컷 하자는 심보였다.


어차피 이 벚꽃을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이번은 어쩐지 여유가 생겼기도 했다.


아버지가 물려받고 싶다면 넘겨주신다고 하셨지만, 나도 언제까지고 편의점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떠나기로 거의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멋지게. 훌륭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빗질을 하고 있으려니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 사람이다.
괴상한 커피 매니아가 돌아왔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여전히 작은 고슴도치가 머릿속에 떠오르리 만치 생겼고.
여전히 양복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커피를 사지 않았다.

처음 보는 밝은 표정으로,  단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서 무언가를 단박에 집어 들었다.


 딸기 맛 하겐다즈.
아마, 이번 달 인기 상품이었나...
그런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새로 들어온 맛이다.

음...


그 괴짜는 뭔가 찾았다는 듯이 밝게 웃는다.

한참을 찾던 것을 찾았다는 표정. 안도감.


이 사람은 설마 딸기 맛 하겐다즈를 찾아 그토록 헤맨 걸까?


설마 그럴 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조금 귀엽긴 하다.

 
그렇지만 분명 뭔가를 찾은 눈빛이다.
그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자신감을  되찾은 것만은 확신할수 있다.


과연 무엇을?

그가 진짜 되찾은 것은 뭘까?



하겐다즈. 남자. 딸기. 커피. 새로운 맛.
음... 어쩐지 알 것만 같다.


물론 물어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렇게 멋대로 생각이하는 거야말로 점원의 유일한 낙이니까.


혹시라도 아니랄까봐 무섭기도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 괴짜를 만나는 일은 어차피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환상을 하나쯤 품더라도 딱히 화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