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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예고한대로 윾동으로 던지고가는, 팬픽 "너를 만나러 가"의 3차 창작 작품입니다. EP 이후 시점, 즉 후일담이며 원작 스포 당연히 있고

안보신분은 띵작이니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549638 <<감상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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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7월 말. 이토모리.

 고3에게 있어 여름방학이 갖는 의미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험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재정비 기간. 그것은 시골 깡촌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미츠하는 방 책상 앞에 걸터앉아 오답노트 위에 펜을 한참 굴리는 중이었다.

 올 한해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간 시점. 현재까지의 모의고사 편차치는 나쁘지 않다. 센터시험까지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도쿄 내의 대학은 가시권에 충분히 들어올 정도로. 남은 건 나태해지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것뿐이다. 학원도 과외도 없는 이토모리에서는 다그쳐 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야 하는데.


 “더워………”


 더위라는 놈은 정말로 지독했다. 이토모리의 여름이야 언제나 더웠지만, 올해는 유난히 덥고 습도까지 높으니 찐득한 공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온풍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후덥지근한 바람을 뿜으며 덜컹덜컹 소리를 내는 낡아빠진 선풍기 한 대로는 감당이 될 리 만무하고, 이미 의식은 책상 위에서 떠나간 지 오래. 이래서야 오기로 더 붙잡는다 한들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다.  

 미츠하는 펜을 놓고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창가를 향했다.


 드르륵.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열어젖힌 창문 너머,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이토모리 호수가 보였다. 뛰어들어서 물장구라도 치면 시원하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이토모리 호수는 보기보다 수심이 빠르게 깊어지는 곳이라 물놀이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분명 텟시가 어릴 적 멋대로 뛰어들었다가 위험하다며 엄청 혼났다고 했던가?

 게다가 이토모리 고교는 수영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건물부터가 낡아빠진 판에 수영장을 바라는 건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 당연히 수영 수업 따위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미츠하의 인생에서 수영이란 걸 해본 기억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시절, 근처 계곡에 한두번 피서를 가본 게 전부였다. 물장구를 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도 이미 잊어버렸다.


 “도쿄에 간다면, 워터파크 같은 곳도 얼마든지 갈 수 있겠지……”


 도쿄.

 그렇다. 자신이 이 찜통 속에서도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목록을 스크롤, 그리고 하나의 사진에서 손을 멈춘다. 올해 초에 있었던 짧은 대탈주.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야경을 배경으로 둘이서 찍은 사진이다. 수줍게 포즈를 잡은 타키와 미츠하의 뒤로, 도쿄 시내의 무수한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더위 따위에 굴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살인적인 더위에 잠시나마 꺾였던 마음을 다시금 다잡는다.


 —띠링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LINE 수신음이 붙잡았다. 집어넣으려던 스마트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다.


 “……타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메시지를 터치한다.


 「다음주 주말, 혹시 시간 괜찮아? 통화 가능하면 전화로 얘기하자」





 “와아……”


 짙은 푸른빛과 새하얀 태양빛의 반사광이 수면에 뒤섞여 넘실거리는 바다. 한여름의 햇살이 눈부시지도 않은 듯 하늘을 춤추며 끼룩끼룩거리는 갈매기들. 해안에 부딪혀 부서지며 철썩철썩 귀를 간질이는 파도소리. 

 그 모두를 품은 채 세상 끝까지 닿을 기세로 이어진 수평선이 신비로움, 경이로움, 호기심, 그 외에도 저 수면 아래에 있을 생물의 종류만큼이나 많을 수많은 감정과 뒤섞여,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인다.

 미츠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눈으로 보는 바다에 넋을 잃은 채, 타키의 손을 꼭 붙잡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번과 똑같이 반머리로 묶은, 이제는 완전히 뒤바뀌던 시절의 길이로 돌아간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오른손으로 붙잡으며, 입은 멍하니 벌어진 상태 그대로. 맞잡은 손으로 전해져 오는 미츠하의 고동소리는 철썩대는 파도소리보다 크게 울린다. 내게 있어서는 이쪽이 진짜 파도소리가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일순간 스쳐 지나가자 타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지난주에 타키가 보낸 메시지는 다름아닌 둘이서 여행을 가자는 제안이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더위도 식히고 바쁜 수험생활의 기분전환도 할 겸. 장소는 도쿄 근교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에노시마.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처음 들른 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카타세히가시하마 해수욕장.

 원래는 좀더 먼 곳, 사람이 적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역시나 교통비가 문제였다. 자신은 몰라도 시골에 사는데다가 용돈도 짠 미츠하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게 마련이다. 결국 미츠하와 의논 끝에 도쿄 근처인 에노시마로 가기로 정하고, 미츠하가 도쿄로 오는 교통비의 절반은 타키가 부담하는 쪽으로 합의를 보았다. 

 에노시마는 타키가 농구를 시작한 계기가 된 모 만화의 배경이기도 했기에, 스스로도 전부터 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마침 도쿄 근처인 덕에 어제 저녁에 도착한 미츠하에게 오랜만에 도쿄의 디저트도 맛보게 해줄 수 있었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이런 광경은 한적한 시골에서만 살아온 이 녀석에게는 나름대로 매력적인 광경일지도 모른다고 지금 와서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타키, 굉장해……! 나, 바다를 직접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역 앞에서 산 크레페를 한 손에 들고, 살짝 회색빛이 감도는 모래사장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미츠하. 꺄르륵 웃으며 내딛는 걸음마다 움푹 패이는 모래는 신기함의 무게일까. 미츠하는 바닷가를 달리는 에노시마 전철을 탈 때부터 바다가 보이는 차창에 양 손과 얼굴을 딱 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모래사장과 바닷바람이 직접 피부에 와닿으니 더더욱 신비감에 취하는 모양이다.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을 보면 사소한 문제 같은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바다로 데려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도쿄 인근의 바다가 고작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외국까지 가서라도 코발트색, 비취색, 에메랄드색…… 수많은 색깔의 바다를 보여주자. 그러고 보니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는 곳은 대부분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니까, 언젠가는……

 ……생각이 너무 앞서나갔었던 것 같다. 정신을 억지로 붙잡아 다시 에노시마의 해안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럼 슬슬 물장구치러 가볼…


 “아앗!”

 “미츠하?!”


 잠시 두리번거리며 탈의실이 어딘가 찾던 타키는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미츠하를 돌아본다. 딱히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뭔가에 놀라기라도 한 걸까.


 “무슨 일이야?”

 “아, 아아……”


 가리키는 손끝을 보니 크레페를 채어 날아가는 무언가가 보였다. ……매?

 그러고 보니 여행 일정을 짜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볼 때 본 적이 있다. 이 부근 바닷가에서는 먹을 걸 함부로 들고 다니면 매가 채가는 일이 잦아서, 가끔 발톱에 다치는 사람도 나오는 판이라 조심하라는 표지판까지 세워둘 정도라고. 보통 매라 함은 육식성 조류 아닌가? 이 동네의 매는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건지 모르겠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미리 말해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일까.


 “내 크레페에에~”


 아~ 안되겠다. 그토록 좋아하는 디저트를 빼앗긴 미츠하는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린 채, 얼굴은 완전히 울상에다가 혼이 절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이다.


 “야… 어쩔 수 없잖아. 미련은 버리고 빨리 물에나 들어가자고.”

 “크레페에에에……”


 하아, 정말이지…… 초등학생이냐, 너는. 

 나란히 손을 잡고 분위기 한껏 내며 모래사장을 걸어갈 생각이었건만, 계속 이래서는 곤란하다. 살짝 놀려주면 정신을 차릴지도.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가슴 속에서 장난기가 살짝 고개를 쳐들었다. 그것을 제지할 생각 따위 없이 바로 입으로 내뱉는다.


 “도쿄 왔다고 디저트 신나게 먹어대니까 살찔까 걱정됐는데, 매한테 감사하라고”

 “윽…… 너 진짜!”

 “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럼 옷 갈아입으러 가자”


 입을 삐죽 세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런 모습도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단 말이지. 타키는 저절로 히죽대려는 얼굴을 애써 억누르며, 미츠하의 손을 잡아끌고 탈의실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 이상 웃었다간 오랜만에 팔을 꼬집힐지도 모르니까.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타키는 적당한 위치에 빌린 파라솔을 세우고,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탈의실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위치니까 미츠하도 금방 찾아올 터. 처음으로 보게 될 미츠하의 비키니 차림을 상상하자 저절로 입가에 호가 그려진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

 ……

 ………

 이 녀석은 왜 이리 늦는 거야?

 핸드폰은 락커에 넣어두었을 테니 전화로 연락도 불가능. 타키는 별 수 없이 직접 탈의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도 미츠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뭘 하느라 아직도 안 나오는 걸까. 아니면 서로 엇갈렸을지도. 전화도 안 되는데 엇갈려서는 곤란한데…… 그렇게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익숙한 시선이 느껴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미츠하, 거기서 뭐 해……?”


 아까는 문 뒤에 숨어있었던 것일까. 탈의실 문 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던 미츠하가 타키의 부름에 움찔한다.


 “뭘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서 가자고.”

 “그, 그치만……”


 쥐구멍은커녕 바늘구멍으로도 들어갈 법한 다 꺼져가는 목소리. 얼굴은 이미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알몸도 본 사이인데 무슨 문제냐……고 말하고 싶지만, 팔이 180도로 꺾일지도 모르니 그만두도록 하자. 


 “노, 놀리면 안 돼……?”


 미츠하는 한층 더 새빨개진 얼굴로 문 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으로 보는 미츠하의 연분홍색 비키니 차림. 음— 확실히 오쿠데라 선배만큼은 아니어도 나올 곳은 그럭저럭 나왔고, 들어갈 곳은 들어갔다. 뒤바뀌면서 아침마다 주무르던 시절에는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범한 가슴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런저런 일을 거친 뒤의 플라시보 효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와 비교해도 꽤 느낌이 다르다. 콩깍지를 거르고 보더라도 내 나이대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이야. 그렇게 머릿속으로 짧은 감상을 내놓던 타키는 어디선가 심상치 않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른의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성인까지 1년도 안 남은 나이에 맞는 나름대로의 성숙을 이룩한 미츠하, 그런 미츠하의 몸매와 대비되는 엄청난 위화감이 망막을 쿡쿡 찌른다. 이윽고 위화감의 정체, 미츠하가 끝까지 문 뒤에 숨기고 있던 오른손에 들린 물건에 눈길이 갔다. 저건……


 ……고슴도치 튜브?


 “……고슴도치 진짜 좋아하는구나, 너”

 “아, 역시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린애 같으면 뭐 어떠냐. 성숙한 모습만 그렇게 좋아했으면 오쿠데라 선배와 사귀었을지도 모르지. 

 게슴츠레하게 반쯤 뜬 눈으로 쏘아보는 미츠하의 시선과, 얼굴엔 붉은 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입에서 쏟아지는 불평을 흘려넘기며 타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 말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그치만, 나…… 수영 못 하는걸. 학교에도 수영장이 없었고, 당연히 수업도 받은 적 없고”

 “하아……”


 정말이지 질릴 지경이다. 아까부터 시작해서 몇 번이나 이러니 어이의 ㅇ자도 남아나질 않는다.

 둘이서 바다에 들어온 것까진 좋았는데, 미츠하는 고슴도치 튜브 위에서 발만 담근 채 영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까는 그렇게나 바다를 보고 감탄하던 주제에 막상 들어오니 이러는 건 또 뭐야? 보통 이렇게 햇빛이 쨍쨍하면 뜨거워서라도 뛰어드는 게 정상이 아닐까 싶은데.


 “아니, 그러니까 여긴 끽해야 허리 깊이니까……”

 “떠내려갈 수도 있잖아…”

 “……”


 떠내려가는 걸로 치면 튜브 쪽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 평소의 학교 성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바보스러움에 타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되겠다. 설득은 도저히 무리. 

 그 뒤로 몇 번인가 힘으로 끌어내리려고도 해봤지만, 튜브를 잡고 악착같이 버티니 좀처럼 끌어내릴 수가 없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달리기와 자전거로 단련된 시골 소녀의 체력은 남자 입장에서도 마냥 얕볼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토모리에서의 농구에 이어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예 튜브를 뒤집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랬다간 아무래도 물을 너무 많이 먹을 것 같아서 기각.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미츠하의 뒤편으로 지나가는 어린아이의 튜브 모양을 보고 타키는 이거다! 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일부러 경악한 표정을 지어내며, 최대한 놀란 목소리를 꾸민다.


 “미츠하, 뒤, 뒤에 상어가……”

 “뭐?!”


 예상대로 그대로 믿었는지 화들짝 놀라서는 등 뒤를 돌아본다. 해안에서 10m도 안 떨어진 곳인데 여기까지 상어가 올 정도면 한참 전에 난리가 났겠지. 정말이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시골 태생은 다 이런 걸까? 아니, 사야카 같은 경우는 상식인 포지션이니까 역시 이 녀석이 별종일 것이다.

 어쨌든, 빈틈 발견.


 “꺅!”


 재빨리 손을 잡고, 튜브에서 끌어내린다. 갑작스런 기습에 튜브를 잡을 새도 없이 등부터 그대로 바닷물에 다이빙. 성공이다.


 “푸핫! 우으……콜록, 콜록”


 물에서 솟구쳐 나온 미츠하는 코는 훌쩍대고 입으로는 기침을 연발한다. 살짝 담가줄 생각일 뿐이었는데 등부터 떨어진 탓에 생각보다 물을 많이 먹은 모양이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미츠하, 괜찮아? 물 많이 먹었으면 잠시 나가ㅅ어풉!”


 미츠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순간, 가슴께에 손이 닿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뒤통수부터 수면에 격돌한다. 코에 잔뜩 물을 먹은 채 일어난 타키의 시야에서 눈물과 바닷물이 겨우 빠져나간 뒤, 비로소 개인 시야 한가운데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의기양양해하는 미츠하의 얼굴.


 “흐흥, 이걸로 무승부네”

 “너……!”


 ……그 뒤는 서로 물만 끼얹는 치킨 게임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둘 다 지칠 대로 지쳐 강제 휴전이 이루어질 즈음, 물을 무서워하던 미츠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너, 아깐 그렇게 물에 들어오기 무서워하더니, 이젠 괜찮은 거야?”

 “그러게…… 어느 샌가 아무렇지도 않아졌어.”

 “나도 참, 어쩌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녀석한테……하하”

 “미안하지만 내가 할 소린데요……푸훕.”


 서쪽 하늘로 꽤 기울어진 태양빛을 등지고 둘이서 그저 하염없이 웃었다. 언젠가의 도쿄에서처럼. 이런 실없는 주고받음 하나하나가 너무나 즐겁다. 수험이 끝나면 부디 이런 실없음이 매일매일의 일상이 될 수 있기를.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무릎까지 오는 바닷물을 깔깔 웃으며 텀벙거리고 뛰어다니며, 타키와 미츠하 모두 같은 소망을 품었다.





 둘은 조금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섬 안을 돌아보기로 했다.


 미야미즈 신사와 같은 붉은 도리이가 서있는 에노시마 신사를 돌아보고, 신사 안에 두 그루가 부둥켜 안듯이 자라있어서 연인들이 소원을 빌곤 한다는 은행나무, 무스비노키(むすびの樹) 앞에 『타키♡미츠하』라고 쓴 에마도 걸었다. 참고로 글씨는 미츠하의 독단. 뒤늦게 에마를 확인하고 '그런 오글거리고 식상한 거 말고 다른 멘트는 없는 거야?' 라고 말하려던 타키는, 에마를 걸며 싱글벙글 행복에 겨운 그 옆얼굴을 보고 내뱉으려던 말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신사를 비롯한 섬 곳곳에는 고양이들이 널려 있어서,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미츠하를 타키는 흐뭇한 눈빛으로 지켜보곤 했다.

 다음으로는 연인의 언덕을 올랐다. 500엔이라는 비싼 가격에 불평하면서도 둘의 이름을 써넣은 자물쇠를 사서 걸고, 마침 일몰 시간이 되자 그 자리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치면 사랑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전해지는 용연의 종을 몇 번이나 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노시마 씨캔들 등대의 전망대로 향한다.

 밤을 은은하게 밝히는 노란빛 등롱들 사이로 튤립이 만발한, 일본의 바다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사무엘 코킹 정원을 지나, 몽환적이기 그지없는 푸른빛 조명으로 둘러싸인 등대를 오르기까지 미츠하는 쭉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로 놀라운 광경은 전망대에 올랐을 때 비로소 둘의 눈앞에 펼쳐졌다.


 “타키, 저거 봐! 파도가 푸른색으로……”


 어느 쪽이냐고 하면 밤하늘의 검은색 쪽에 가까운 검푸른빛으로 물든 한밤중의 바다. 그 위로 푸른 형광빛으로 빛나는 파도가 보였다. 파도가 해안선에 밀려들 때마다, 파도의 최고점을 따라 형광펜으로 등고선을 그은 것 같은 코발트색의 빛이 깜깜한 해안을 밝히며 여러 개의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 정도면 하늘의 유성우에 견줄 수 있는 바다의 절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저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 저런 사진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타키는 오래된 기억 속의 지식을 더듬었다. ……그래, 이거였다.


 “야광충이네. 책에서 본 적이 있어. 플랑크톤의 일종인데 자극을 받으면 빛을 발한대. 그래서 파도가 칠 때마다 저렇게 푸르게 빛나는 거야. 이쪽 바다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고는 들었는데 마침 오늘이구나.”

 “와아……”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닐 텐데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이번 계획은 츠카사 녀석의 도움 없이 짰기에 반쯤은 걱정이었지만, 이런 장관을 다 준비해 주다니 천운이 따라준 것만 같다. 눈부신 푸른빛 조명으로 둘러싸인 등대의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검푸른 바다 위를 달리는 코발트빛의 파도와, 바다 건너 후지사와 시부터 요코하마를 거쳐 저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도쿄까지 걸친 야경. 자신 같은 쑥맥에 연애 빵점짜리 남자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로맨틱하지 않은가.

 옆에서 하염없이 경치를 감상하는 미츠하에게 시선을 옮긴다. 지난번의 도쿄에서와는 달리 더 이상 그 옆얼굴에 예전과 같은 불안은 섞여있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미츠하가 다시 입을 연다.


 “저기, 타키”

 “왜?”

 “지평선에 보이는 불빛, 도쿄 맞지? 저건 도쿄 타워고, 저건 도쿄 스카이트리……?”

 “맞아. 여기서도 잘 보일 줄은 몰랐네.”


 타키의 눈길이 지평선으로 돌아가 있는 틈을 타, 미츠하는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스카이트리에서 타키와 찍었던 그 사진을 다시금 화면에 띄웠다.


 공부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면 항상 열어보는 사진이었다. 그 때는 이토모리에 핸드폰을 두고 온 탓에 타키의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며칠간의 짧은 무단 휴가 동안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오다이바…… 수많은 장소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굳이 그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은 밤하늘 아래 펼쳐진 도쿄 시내와 타키가 한 눈에 들어온다는 이유였다. 부끄러워서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미츠하의 두 목표를 모두 담고 있는 사진은, 자신의 이정표 그 자체였다.

 도쿄는 더 이상 타키의 인도 없이 만질 수도, 딛고 올라갈 수도 없는 신기루성 따위가 아니었다. 확실히 존재하는 곳, 언젠가 미츠하 자신의 힘으로 두 다리로 딛고 서야 할 곳. 내가 타키와 만나기 전까지 잊고 있었던 너의 이름은, '꿈'. 

 마침내 찾았어. 지평선 건너편에서 반짝 빛난 너의 모습은 환상이 아니었던 거야. 


 “미츠하”

 “으, 응?”


 미츠하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어떻게든 얼굴 뒤편으로 억누른 채, 시계를 확인하던 척 스마트폰을 황급히 주머니에 밀어넣으며 대답한다.


 “그…… 어때? 오늘 계획은 내가 짰는데 말야, 아름다운 광경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도시다 보니 네가 살던 이토모리만큼 예쁜 별하늘은 아닐테고…… 네가 만족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네”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귀 뒤쪽을 긁적이는 타키. 고작 데이트 스폿의 감상을 물어보는 것 하나에 그렇게 부끄러워해서 어쩌자는 걸까. 가뜩이나 연애 쪽 센스는 빵점인데 부끄러움은 쓸데없이 많이 탄다니까. 말 한 마디에도 한 세월이 걸려서 미츠하의 속을 타게 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런 서투른 면조차도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소위 말하는 콩깍지라는 것일까. 사실 서투른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확실히, 이토모리만큼 별이 많이 보이진 않는구나.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역시 그런가? 하하……”

 “그래도 괜찮아.”


 그까짓 별이 좀 덜 보인다 한들 푸른빛 바다를 끼고 도는 야경은 충분히 그것을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의, 바다를 난생 처음 보는 미츠하에게는 과분한 황홀함이었다. 그리고.


 “북극성보다 밝게 빛나는 별이, 내게만 보이는 별이 도쿄에…… 지금은 바로 옆에 있는걸. 더 이상 내게 길을 헤맬 일 같은 건 없을 거야”


 오컬트 외에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텟시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북극성이라 함은 특정 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해당 위치에 가장 가까운 별에 주어지는 칭호일 뿐, 긴 세월이 흐르면 지금과는 다른 별이 그 자리에 오게 된다고 한다. 1000년 후에는 알라이, 8000년 후에는 데네브, 12000년 후에는 베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만의 별을 정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실제의 동서남북 방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게끔, 울며 주저앉지 않게끔 자신을 이끌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곁에 있는 타키를 바라봤다. 타키도 방금 전의 발언의 의미를 느꼈는지 이쪽을 동시에 돌아봐주었다. 곁에서 빛나는 별을 관측하는 데는 망원경도 가대도 필요 없었다. 다시 이토모리와 도쿄로 떨어지더라도 그럴 것이다. 이토모리에서 스쿠터의 운전대를 잡은 그의 뒷모습이 발하던 눈부신 빛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으니까.


 “그치?”

 “응. 그렇네”


 꽤나 부끄러운 소리를 한 것 같은데 말뜻을 알아준 것 같아서 다행이다. 타키의 과거 전적으로 보아 ‘너 그런 말 하면 안 부끄럽냐?’ 같은 소리로 무드를 와장창 깨뜨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서 한숨 놓았다. 이 남자도 조금은 성장한 걸까.

 뒤꿈치를 들어올리고, 이어서 발을 내딛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미묘한 거리를 좁힌다. 타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톡 하고 맞대고, 닫아뒀던 눈꺼풀을 다시 열어젖힌다. 코앞의 타키의 얼굴을 확인하고 서로의 웃음을 나눈다.


 “……도쿄로 만나러 갈 테니까, 기다려 줘”


 ‘나만의 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1등성보다 밝은 미소로 반짝였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밤 늦은 시간이었다.


 “후우……”


 미츠하가 먼저 씻고, 다음으로 들어간 타키는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에노시마와 도쿄 사이의 거리는 1시간 남짓. 사실 타키의 집에서 숙박해도 무리는 없는 거리였지만 타키는 굳이 숙소를 잡는 쪽을 택했다. 단순히 일정에 여유를 두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문득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예쁘다아……”


 유카타 차림으로 베란다에 서서 난간에 기댄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미츠하.

 야광충의 청록색 빛을 머금은 채, 마치 바다 위에 은하수가 뜬 것처럼 빛나는 수많은 파도가 해안가로 밀려드는 환상적인 광경. 그녀에게 있어서는 난생 처음 눈동자에 담는 경이로운 바다.

 그 바다를 조금이라도 오래 눈에 새길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비싼 숙박비를 마다하면서까지 바다가 최대한 잘 보이는 곳을 고집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런 단순하고 바보 같으면서도 양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작년 겨울에는 서로의 미숙함으로 인해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미츠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타키의 마음만큼은 그 때부터 진짜였고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말없이 다가가 미츠하를 뒤에서 껴안으며 어깨에 머리를 살짝 올린다. 잠시 움찔하면서도 곧 말없이 타키의 뺨에 자신의 뺨을 기대왔다. 고작 뺨 크기의 면적으로 나누는 자그마한 온기이지만, 바닷바람의 쌀쌀함 정도를 맞받아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정도다. 

 그대로 밤중의 바다를 둘이서 바라본다. 검푸른 밤바다에 비치는 달빛과 별빛, 수평선 근처 멀리서 반짝이는 배나 부표의 불빛, 거기에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은하수까지, 우주 그 자체가 바다 위에 수 놓여져 있었다. 이럴 줄 알고 날짜를 잡은 것은 아니고 그저 우연이었지만, 미츠하에게 처음 보여주는 바다가 이런 장관이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면 수험 힘내자. 다음에는 도쿄에서 만나는 거야”

 “응”


 그 뒤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대로 둘이서 늦은 밤까지, 졸려서 더 이상 서있지 못하게 될 때까지, 수평선 아래 펼쳐진 우주를 그저 계속, 계속 둘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리, 진짜로 날씨 운이 없구나”

 “그러게 말야… 완전히 홀딱 젖어버렸네”


 돌아가는 날 아침. 둘은 난데없이 쏟아진 소나기를 피해 버스 정류장에 와 있었다. 너무 갑작스레 쏟아진 탓에, 짐 안에 넣어둔 우산을 꺼낼 새도 없이 이미 옷은 전부 젖어버렸다. 타키는 비에 다 젖은 미츠하의 블라우스 너머로 살이 비쳐 보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정신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적당히 떠오르는 말을 입에 담았다.


 “지난번에 네가 도쿄에 왔을 때도, 돌아가는 날 하필이면 딱 눈이…”


 —아.

 그날 있었던 일을 뒤늦게 떠올리고는 그대로 입을 닫아버린다.


 도쿄에 유난히 눈이 내리던 날. 두 사람의 시간이 2달간 멈췄던 날. 그녀의 감정을 자기 입맛대로만 받아들이려 하던, 어리석기 그지없는 어린애였던 자신.

 돌이켜 보면 정말로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인생에서 어떤 말실수를 하더라도 이것만큼 후회할 일은 없겠지. 아직 20년도 살지 않았지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의 죄책감이었다.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눈치도 없이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다니, 여전히 발전이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분명 미츠하도 침울해하고 있겠—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고……”

 “어?”


 예상치 못한 웃는 얼굴, 그리고 더욱 예상치 못한 대답.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말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와버렸다. 천둥소리는 딱히 안 들리는데 말이지.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면… 당신은 여기 있어줄까?”


 영문 모를 말들을 늘어놓고선 이쪽을 돌아보는 미츠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비에 젖은 머리칼이 살짝 나부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쳐다본다.


 “타키, 이 단가(短歌), 들어본 적 있어? 우리 고전문학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던 시야. 도쿄에서 근무하실 때의 이런저런 추억이 담겨 있다던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를 자주 하셨거든.”

 “음……”


 사실 고전문학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아니, 흥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약했다. 이제는 쓰지도 않고 알아먹을 수도 없는 말이 잔뜩 나오는 고리타분한 내용에 지나지 않았다.


 “……미안. 나 고문은 엄청 약해서”

 “후후, 왠지 그럴 것 같더라. 나는 좋아하는데 말이지… 그럼 이 시의 답가도 모르겠구나”


 여전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쏭달쏭해하는 타키에게, 미츠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비를 보고 문득 떠올랐는데, 그 때, 작년 겨울의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어. 이토모리에 얽매여 있는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서, 이왕 도쿄에 온 이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만 타키가 계속 내 옆에 있어줄 것 같아서, 네가 여기 있어줄까 불안해서. 하지만 그런 마음이 거짓말이 되고 상처를 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어. 몸이 뒤바뀐다는 반강제로나마 누구보다도 솔직해질 수 있는 경험을 했으면서, 나는 그 때까지도 그러지 못했었던 거야.”

 “미츠하……”

 “……저기, 타키”


 미소는 이윽고 무언가의 굳은 결심을 품는다. 타키도 엉겁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토모리에서 내게 해준 말, 아직 제대로 대답 안 했었지.”


 —나는, 너의 전부를 좋아해.


 단어 하나하나, 어조, 떨리던 목소리, 하나하나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말.


 사귀고는 있으면서 여태 고백에 대답도 안 했다니 조금 우습기도 하다. 굳이 말로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은 진작에 통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언젠가는 정식으로 대답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수험이 끝나고 미츠하 스스로 당당히 도쿄에 올라가는 그날까지 대답은 미뤄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단둘이 만날 기회가 찾아오니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굳이 중요한 말을 그 때로 미루는 것 자체가 자신이 도쿄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고,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의문이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미츠하 자신에게 있어서도 마지막 남은 의문을 떨쳐버리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의식이리라. 

 그래서 이번 여행이 끝나기 전에 꼭 대답을 전하자고,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왔다. 막상 만나니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결국 몇 번이나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센터 시험 전까지 기회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 걸음만 더, 용기를 낸다.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난 여기에 있어요. 당신이 붙잡는다면”

 “그거, 아까 말했던……”


 굳이 말로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만 끄덕인 뒤 잠깐의 심호흡. 그리고,


 “너의 마음에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구름이 껴도, 맑게 개어도”


 비가 오면 내가 우산을 씌워 줄 거야. 

 눈이 오거나 서리가 끼면 내가 보듬어서 녹여 주면 그만이야. 

 흐린 날에는 미약한 빛이라도 괜찮으니, 조금이나마 태양 대신이 되어 줄게.

 맑은 날에는 함께 따스한 햇살을, 햇살보다 기분 좋은 서로의 온기를 만끽하자.


 차마 여기까지는 말로 할 수가 없다. 방금 내뱉은 한 마디만으로도 자신의 심장은 이미 한계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꼭,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전하고 싶었던 한 마디. 떨림을 애써 억누르며, 마음 깊숙이 잠겨있던 무겁기 그지없는 말을,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던 의문째로 온 힘을 다해서, 가진 모든 용기를 쥐어짜 끄집어낸다.


 “타치바나 타키, 좋아해. 너의 전부를”


 터져 나온 마음 뒤로는 드디어 말했다는 한 줄기 안도감. 그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 빈자리에는 강렬한 충동이 찾아왔다. 눈을 감으며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올린다. 타키가 무어라 대답을 생각할 새도 없었다. 뭔가 대답하려고 우물거리던 입은 발돋움해온 미츠하의 입술에 가로막혔다. 등 뒤로 감겨오는 팔의 감촉이 기분좋았다.


 ……고마워.


 입은 열 수 없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전해지겠지. 그렇게 믿으며 타키는 눈을 감았다.




 어느 여름날.

 비가 내리던 이른 아침.




 우리는 마지막 남은 유년기의 조각을 빗물과 함께 흘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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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프터 여름편이 엎어진게 너무나 아쉬워서 직접 써버린 단편임. 원래 처음 구상했고 가장 쓰고싶던 내용은 마지막파트인데 여름이니 바다도 쓰고싶고, 원작에도 많던 천문학쪽 소재도 쓰고싶고. 이거저거 고민하다가 그냥 다 때려박음. 난잡할지도 모르겠다.

2. 제목은 5초만에 의식의흐름으로 정함. 별 의미는 두지 마셈

3. 저동네서 매가 먹을거 채가는거 실화임. 내가 여행갔을때 직접 당해봤고ㅡㅡ 실제로 표지판도 있음

4. 3차창작 하지마셈 진짜 부담개쩐다. 캐붕이나 모순점 없게하려고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지... 원작 엔딩 후의 미츠하 심리를 담아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잘 됐을지는 모르겠다.


애미뒤진 디시에디터 때문에 한시간 지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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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충이란 게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대충 이런 광경이다. 실제로 이 글 배경인 가마쿠라 시 앞바다에서 찍힌 사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