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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날도 좋잖니?"


밤하늘이 참 아름답구나. 별들을 보렴. 조개가 참 예쁘네.
모래가 반짝이는 게 보이지 않니? 저 별은 1등성인데....


미안. 이런 말은 못해줘서.


한참을 고르고 골랐지만, 나온 말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들은 머릿속만 잠시 맴돌 뿐이다.
말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시간이 흘렀다.


아들은 더 이상 초등학생이 아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조금만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갑작스럽게 바다에 태우고 가는 대신 좀 더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득하게 펼쳐진 밤하늘.

비좁은 해안.


이것들이 아들에게 뭘 줄 수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 이곳에 왔는지도 잘 모른다.


그저.. 생각났을 뿐이다.


아들이 갑작스럽게 기차여행을 다녀가고 나서, 여행 잡지를 뒤적거리다 든 생각일 뿐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끌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바다를 보고 싶었다.

바다는 정말 많은것 들을 받아주었다.
...

그러고 보면 꽤 무심했다.
냉정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름 노력하려고 했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

 

이혼 이전에도, 이혼 이후에도 많은 것이 달라졌고,
정말 많은 것이 망가졌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바위에 앉아 밤하늘을 보노라면,
수평선을 보노라면,


말 한마디 없이도 많은 대화가 오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하늘과 땅이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나는 것 같다.

저 멀리서라면 하느님과도 직접 닿을 듯하다.


그러니 바다라면 그 말을 대신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고쳐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찾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솨악. 솨-아
파도가 말을 데려가고, 답신을  보내온다...


우리는 가만히 않아 짠 내음 나는 전령을 맞이한다.


말은 필요 없다.
흐르는 바다는 말이 없다.


우리도 지금만큼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저 앉아서 별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이 동상이몽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느낀다.


평상시라면 이러지 못했겠지.


조용함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가 뭔가 말을 했을 것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작은 상처도 여럿 주고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상처조차 주고받지 못하고 그게 두려워서 멋쩍은 표정으로 자릴 떠 버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화 없이 같이 머무르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이곳은 다르다.
모두가 조용하다.

그렇지만 떠나지 않을 수 있다.


바다는 온갖 감정들을 받아먹고도 불평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배가 크다.
그 곁에선 온갖 감정이 삭아 내리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는 바다가 있는 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다.
얼마간은 좋다는 생각도 든다.

바다와 밤하늘은 그런 마법이 깃들어있다.



무심코 고개를 돌아본다.

아들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손을 멀리 뻗고- 어딘가를 보고 있다.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찌 보면 사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같은 밤하늘을 보지만, 바다에 비치는 것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달에 얽힌 것도 조금 다른 것을 볼지도 모른다.


몇 달 전에 한참을 그리던 그림들과 관계가 있을지도.


무심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머릴 스쳤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확신으로 자리잡았다.


자신도 안다.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선 말하기 어려운 우연을.

3년 전에  별이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은 우연히 대피훈련을 하고 있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저번 세미나에서 강사가 해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처럼...

그 아이도 나름대로 어떤 별로부터 대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이야.

아니, 타키야. 너는 무엇을 바라는 거니?
나는 도울 수 있는 거니?

너가 그리는 미래에 나는 얼마만큼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다 찬 기운에 발밑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바다가 벌써 이까지 왔다.

곧 우리가 있는 곳이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생각이 쓸데없이 길게 늘어졌나...

물이 점점 차올라서 오래는 못 있을 것 같다.


손을 바다에 담아, 한번 퍼 올린다.
초승달이 어느새 내 손에도 두둥실 떠오른다.

바다위의 달.
손위의 달.

하늘위의 달이 반짝거리고 있다
.

손에 뭍은 모래가 씻겨 내려가며 반짝인다.
조금. 아름답다.


물을 다시 바다에 돌려 준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떠나갈 순간은 있는 법.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슬슬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다.
타키도 그렇다.


다시 나는 타키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번은 눈을 마주친 채로.

할 말이 있었다.


“타키”
이런 말을 너에게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다음번에도”
그래... 다음 시간을 내는 게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구나.
“여기, 또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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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기운이 느껴지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