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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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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카의 눈을 피하던 그 순간, 미츠하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아, 역시 나라는 애는 참 모순된 인간이구나.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삼일은 커녕 이틀도 채 안 지났는데.
하지만 모순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사야에게만은 들키지 않았으면 했는데, 들켜버렸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만 해도 힘들 텐데. 하필이면 또 그 대상이 자신의 제일 절친한 친구라니. 무슨 드라마 각본을 써도 이렇게는 안 나올 거다. 미츠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 스스로에게 닥친 이 알궂은 운명이 꿈은 아닐까 하고 뺨도 꼬집어 봤었다.
물론, 무지 아팠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현실을 깨닫고 나니 미츠하는 사야카를 제대로 마주볼 수 없게 되었다. 사야카 특유의 장난기 깃든 그 눈을 행여나 마주보기라도 했다간 틀림없이 모든 걸 줄줄이 말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피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미츠하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만다. 약속을 어긴, 사랑을 뺏어간 나쁜 친구에게 사야라면 과연 무슨 말을 던질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서.
결과는 머지않아 나왔다.
“있잖아, 미츠하.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텟시가 널 좋아한다는 것 정돈 옛날부터 알고 있었어.”
사야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먼 하늘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하늘을 덮어가던 구름은 이제 완전히 이토모리의 하늘을 점령하고 있었다. 잔뜩 낀 구름을 멀거니 바라보는 모습은 아련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은 초탈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고, 그 사람은 바로 자신의 제일 절친한 친구. 그리고 그 친구는 자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지금 미츠하가 얼마나 난처할지는 그녀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까지 그녀가 처했던 상황과 같았으니까.
솔직해지고 싶다. 확 고백해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친구 관계가 깨질 것만 같다. 그건 또 싫다.
그래서 사야카는 마음을 숨겼다. 바보 같은 빡빡이에겐 말하지 않은 채로 7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어차피 눈치도 못 챌 둔해빠진 남자에게 가끔 장난이라도 슬쩍 쳐 보는 것이 그녀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였음을 안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실수는 자기가 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친구도 같은 실수를 하게끔 하고 싶지는 않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똑똑한 너라면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 구구절절 다시 설명하진 않을게. 어차피 이틀도 안 된 일이니까.”
아까 미츠하가 속으로 했던 생각을 사야카가 다시 짚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내가 걱정되는 거야? 아니면 텟시가? 솔직히 말해 봐.”
생각보다 차분하게 물어오는 사야카의 모습에 미츠하는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짐이 조금은 덜어지고 나니 입 또한 훨씬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다시 지켜야만 했기에 말에는 조금의 허세도 들이지 않았다.
미츠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희들이 없어진 뒤의 내가 걱정돼.”
사야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7년간 마음 깊숙이 간직만 해왔던 말이 지금 풀리려 하고 있었다.
“사야 너도 그렇고 텟시도 그렇고. 내겐 정말 고맙고 소중한 친구들이야. 너희들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힘든 시기도 버틸 수 있었어.”
털어놓으면서도 조금은 겸연쩍었던 것일까. 어느새 미츠하의 손이 자연스럽게 옆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아까 너희들을 나보다 더 신경 쓰는 거 아니냐고 했지? 사실 말이야, 나. 너희들 기분도 기분이지만 그보다도 너희들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너무 괴로웠던 거 있지.”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츠하 정도로 인생을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지언정 사야카 또한 같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결국 마지막까지 완전히 솔직해지지는 못했기 때문에.
“텟시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솔직히 나로서도 그렇게 정확하게 정의하지는 못하겠거든.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텟시 또한 내 소중한 친구라는 거야. 너 또한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고. 그래서 둘 다 잃고 싶지 않아. 그래서 제대로 답을 못하겠어. 내 답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사이의 관계는 변하게 될 테니까. 어떻게든.”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데.”
끝에 가선 숫제 자조하는 듯한 말투가 되어버린 말.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야카가 끼어들었다. 화들짝 놀란 미츠하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해진다.
“뭐?”
잘못 들은 거 아니냐는 듯이 되묻는 미츠하의 얼굴 바로 앞에 검지를 들이대고는 좌우로 까딱였다. 츕츕.
“우리 관계가 고작 말 한마디 때문에 서먹해지고 말고 할 관계가 아니라는 말씀.”
말 한마디래 봤자 이건 그냥 말이 아니잖아. 남녀간의 중대사라고?! 미츠하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사야카는 말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어차피 뻔한 반론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쉴 틈도 없이 사야카는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난 텟시를 좋아해. 그치만 말이야. 아직 텟시는 나만의 것이 아닌걸.”
“하지만 난 두 사람이 정말로 잘 됐으면 했어.”
“알아. 분위기 조금만 탔다 싶으면 우리 둘만 있게끔 신경써주곤 한다는 것 정도는.”
“그랬구나. 뭐, 사야라면 알아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어.”
예전부터 사야카는 그런 쪽에서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그런 쪽만 빠른 게 아니라는 사실은 방금 전에야 알았지만.
“근데 말이야. 나도 말할 수 없었어. 왜냐면 나도 너처럼 생각했거든.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어. 진심으로. 그랬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텟시 자식이 덜컥 너한테 고백을 해버리는 거 있지?”
“혹시 그거, 나 때문일까?”
얼마 전, 둘에게 직접 선언했던 그 내용이 갑자기 눈에 밟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아서 사야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해.”
“그렇지?”
이런 난처한 일이 벌어질 줄 알았으면 그냥 말하지 말걸 그랬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던 미츠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심한 이상 말해야만 했다. 애초에 그 정도 말도 하지 못할 사이였으면 지금 하는 고민 따위도 하지 않았을 테고.
“그래도 괜찮아. 미츠하도 텟시도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것뿐이지.”
“사야?”
“있잖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서로에게 솔직했으면 해. 너도, 텟시도, 그리고 나도.”
절친한 친구, 그러나 7년간 자기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은 꼬여 있었던 관계. 그 실타래를 이제는 풀고자 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너의 마음이라면,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좋아. 스스로도 모르겠다고 아까 말했으니까. 솔직해지겠다고 너는 말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그게 본심이라고 나는 믿어. 그치만 말이야. 결심이 선다면.”
사야카는 두 손을 가슴께로 모으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잠시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간단한 기도를 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말했다.
“결심이 선다면, 우리는 괜찮으니까 네 마음에 솔직했으면 좋겠어. 만약 네가 텟시랑 사귀게 되면, 음, 솔직해지기로 했으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해야겠지?”
가끔 보여주곤 했던 장난스런 미소가 아니었다. 약간은 서글프게까지 보이는, 쓸쓸한 미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야카에게서 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리고 바로 그랬기에 미츠하 또한 그녀의 진심을 의심할 수 없었다.
“속이 좀, 쓰릴 거야. 많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미츠하는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너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는 메아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여전히 약간은 아련한 미소를 지은 채로 사야카는 계속 말했다.
“솔직히 나도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예상을 못하겠어. 텟시에 대한 내 마음이 그렇게 가벼운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하나만은 확실해.”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감정이 어떻게 요동치더라도 마음의 그 부분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사야카는 주저없이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미츠하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대로 손을 가슴께로 올리며 사야카는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가감없이, 순수하게.
“단지 텟시가 나보다 더 솔직했을 뿐이야. 나는 그러지 못했던 거고. 그것뿐이야. 내가 솔직하지 못해서 여기까지 온 걸 미츠하 너의 탓으로 돌릴 정도로 나는 졸렬하지 않아.”
미츠하의 손을 감싼 양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이제부터 하려는 말은 정말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목에도 힘이 들어가서 조금 긴장한 것 같은 어조가 되었다.
“네가 설령 텟시랑 사귀더라도 괜찮아. 그렇더라도 너는 여전히 내 소중한 친구니까. 어차피 더 빨리 텟시의 마음을 얻지 못한 내 잘못이기도 하고.”
“그럼, 내가 거절한다면?”
“으음. 나는 조금 더 안심하겠지? 희망이 생긴 거니까?”
“하지만, 텟시는 그럼 어떻게 될까? 책 같은 거 읽어보면 남녀 사이엔 우정이 없다고 다들 그러던걸.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두렵기도 하고. 난 텟시 또한 잃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듣자 사야카는 쿡쿡쿡, 하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어쩜 얘는 또 이런 실없는 걱정을 한다니까. 역시 이런 데서 눈치 없는 건 비슷하네.
“걱정 마, 텟시 그 녀석이라면 절대 안 그럴 테니까.”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느냐. 뒷말은 하지 못했지만 미츠하는 분명 그렇게 묻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것은 사야카 또한 알 수 있었다. 듣지는 못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답은 해 주어야겠지?
“왜냐면, 난 눈치 백단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평소라면 그렇게 타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만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기에 미츠하는 조용히 사야카의 말을 받아들였다. 사야카 또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알겠지?”
“응.”
“나도, 텟시도 어쩔 수 없는 너의 친구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너를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이제 사야카의 손은 미츠하의 손을 감싸고 있지 않았다. 긍정의 대답 대신 미츠하는 자연스럽게 맞깍지를 끼게 된 손에 힘을 주었다. 맞닿은 손을 통해 전해져 오는 따뜻함에 사야카 또한 마음을 맡겼다. 지금의 둘에겐 말이란 결국 사족에 불과했다.
# # #
인생만사 화가 있으면 복이 있고, 복이 있으면 화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혹시 지금도 그런 건 아닐까 하고 미츠하는 속으로 살짝 생각해 보았다.
방금 전의 대화로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싶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썩 좋지 않은 소식이 그녀를 찾아오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그것은 비보일지언정 엄밀히 따져보면 ‘화’ 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그래도 조금은 괜찮았다. 어쨌든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더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미츠하는 생각했으니까.
‘설마 했었는데, 진짜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니….’
며칠 전, 그녀는 우연히 부모님과 할머니가 심각하게 하던 대화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제대로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혜성이 떨어질 것이다’ 라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었다.
솔직히 그 땐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 맞게 들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만간 온다는 그 소문의 혜성에 대해 잠시 검색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 따위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걱정거리 따위는 전혀 없다는 듯이 전 인류가 혜성 방문을 맞이하여 축제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었고, 따라서 그녀 또한 역시 에이, 그냥 별 거 아닌 영화 얘기라도 했나 보다. 라며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방금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것은 잘못된 결론이었다.
얼마 전, 그녀 자신과 요츠하를 불러놓고 할머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혜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
오죽했으면 불효막심하게도 미츠하는 순간적으로 할머니가 조금 치매가 생기신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었다. 그러나 곧이어 창백해진 얼굴로 연달아 난입해 들어온 부모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의심을 집어치워야만 했다. 세 사람은 정말로 진지했던 것이다.
셋은 둘을 잠시 내버려둔 채 격론을 나누었다. 오가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할머니와 부모님은 그녀들 몰래 혜성 낙하에 대한 어떤 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해 줄지 말지를 놓고 조금 의견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았다.
다행히도 격론은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토론의 끝에, 토시키는 이왕 장모님이 저질러 버렸으니 어쩔 수 없게 됐다며 잠시 한숨을 쉬고는, 이내 모든 전말을 알려주었다.
120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혜성과, 이토모리 마을의 믿기 힘든 무스비에 대한 장대한 대서사시를.
그 말을 듣고 난 미츠하의 반응은, 얼마 전 상담할 때 왜 말해주지 않았냐며 자신의 어머니를 타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타바는 간단하고 쉽게 경위를 설명해 주었고, 그 설명을 그녀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 입장이었어도 이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이야기는 결국 자세한 계획은 정사무소 측과 조율이 끝나면 다시 말해주겠다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미츠하 또한 분명 그 말에 동의했기에, 선선히 그러겠다고 말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장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또 다른 일을 해결해야만 했으니까.
미츠하는 오른손에 쥔 휴대폰을 꼭 움켜쥐었다.
‘타키…’
냉정하게 말하면, 자신과 몸이 바뀌는 그 녀석, 타키와는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오로지 그녀 자신과 테시가와라 사이의 문제였고, 그가 끼어들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건 자명했다.
하지만, 왜인지 말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몸이 바뀌는 이상 알긴 알아야 하는 일이니까?’
의문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왠지 고작 그런 사무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에라이, 모르겠다!’
생각을 그만둔 미츠하는 눈을 꼭 감고 휴대폰을 터치했다. 또르르, 또르르 하고 전파가 가기 시작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떠서 미츠하는 화면에 뜬 수신인을 확인했다. 수신인은 ‘타치바나 타키’. 올바르게 걸린 것을 확인한 미츠하의 눈에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걱정의 빛이 어렸다.
“여보세요?”
받았다. 타키다. 잔뜩 긴장해 있던 몸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금은 풀리는 것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아무리 기분이 나쁘고 긴장을 한다 한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풀리게 되었다. 이유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어투로, 미츠하는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타키?”
“어, 안녕 미츠하. 오늘 하루는 잘 지냈어?”
“응, 글쎄?”
“뭐야, 그게?”
“이따가 말해줄게.”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곧 운명을 가를 전화의 시동을 걸었다. 평소대로 시답잖은 잡담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인 정보를 주고받기 전에, 두 사람은 이렇게 별 거 아닌 잡담들을 주고받는 걸 즐기곤 했다. 그 내용도, 분위기도 평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미츠하의 목소리가 조금은 떨리고 있었음을, 과연 타키는 느끼고 있었을까.
# # #
전화는 끊어졌다. 흐름은 평소와 비슷했던 것 같다. 약간의 노이즈가 낀 것을 제외하면. 그러나 그 노이즈는 들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타키의 귀에 남아 그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그녀와의 연결이 되어있지 않은 전화기를 타키는 침대 위에 힘없이 집어던졌다.
‘나, 텟시한테 고백 받았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굴리고 굴린 그 말을 그는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었다. 그래서 못 들었다는 듯이 되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답변이 돌아왔고, 결국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받아들인 이후에는 어떻게 생각했더라?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텟시가 미츠하에게 고백? 뭐,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미츠하는 단지 나와 몸이 잠시 바뀔 뿐인, 별 인연도 없던 여자애. 그리고 텟시는 미츠하와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 이상할 것 하나 없는데. 왜 나는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일까.
“그 자식, 미츠하한테 말한다는 게 이런 거였냐….”
짜증에 이어,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을 테시가와라를 잠시 원망해 보기도 했다. 왜 원망해야 하는지는 스스로도 몰랐지만, 그래도 원망했다. 솔직하게.
뭐, 그래도 진지하게 원망해야 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생각의 주제를 바꾸었지만.
‘미츠하는 나에게 있어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지금 타키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였다.
왜지? 나와 미츠하는 무슨 관계지? 몸이 바뀌는 관계? 그냥 아는 사람? 친구?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고백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이렇게 불안하고 화를 내야만 할 사이는 아직 아니라는 것.
알고 있으면, 그만 해야 할 텐데. 이러지 말아야 할 텐데.
나는. 왜.
“아, 제기랄!”
짜증이 그만 임계점을 돌파하고 말았다. 타키는 애꿎은 베개를 걷어차고 이불을 걷어찼다. 그러고도 기분이 채 풀리지 않아서 침구를 몸에 두르고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난처하고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면 그는 가끔 이러곤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사라진 버릇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얼마 전, 장래희망으로 한껏 고민할 때조차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기를 몇 분 더, 짜증과 번뇌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결심이 섰다.
“에라, 모르겠다!”
외마디 외침과 함께, 타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왜 이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겠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에 가까운 것. 원래 같았으면 말도 꺼내보지 못했을 소리였다.
하지만 타키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이것저것 다 따지고 생각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 날 저녁, 타키는 평소대로 아버지와 마주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저녁 테이블이었지만,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의 반응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믿지 못해서, 그대로 굳은 채 젓가락을 놓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했다.
“나, 내일부터 꼭 가 봐야 할 데가 생겼어.”
왜 가야만 하는지는 모른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할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말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그 말을, 타키는 다시 입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지금부터 나는, 미츠하를 만나러 간다.
- 25화. '두 사람의 길'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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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예정보다 이삼일 가량 늦어졌습니다. 제가 하루동안 몸이 안좋아서 뻗어버렸던 것도 한몫합니다만, 그보다는 글이 잘 나가지 않았던 것이 컸습니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은, 분량상의 이유도 있고 일일이 다 넣으면 안 그래도 루즈한 흐름이 더 루즈해지기 때문에 다소 빨리 진행시킨 부분입니다.
완결은 전 30화, 또는 변동사항에 따라 31화 정도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늦어도 현충일 정도까지는 완결을 낼 생각입니다. 최대한 이번 달 내로.
지켜봐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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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신줄알았네
어우야... 오늘내로 올리신다더니 진짜 빡일하셨네 ㄷㄷㄷ
으엄, 아까 오늘내로 올린다고 말씀도 드렸습니다.
연재 실화냐?새벽에 나올줄알앗는데 빠르네
저번 화 후기에는 주말에 올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늦어진 부분이죠. ㅜㅜ
후기 리스트에 하나 추가되겠네요 ㅎㅎ 잘읽었습니다~ - dc App
ㄴ 살생부 하나 추가라니.. 아무튼 기대해보겠습니다 헉헉
왠지 타가놈이 이토모리에 가서 먼저 고백할 것 같다 ㄹㅇ..
잘봤습니다 이제 타키도 행동으로 나서는것 같네요 가서 고백도 할것 같지만 이제 슬슬 결말부로 가고 있는데 혜성 떨어질때 타키하고 텟시 둘이서 어떤 역활을 주어지게 될것인지 궁금하네요 다음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다려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이거 왜 안 념글이죠ㅠㅠ 요건은 다 채운 것 같은데 이상하네
역시 사야갓....ㅠㅠ 사야카뽕이 찹니다... 영화에서 텟시한테 미츠하 유카타 기대하고 있냐고 물을 때 정말 대인배다 싶었는데...
그때 분명 사야카도 예쁘게 차려입고 온 거였을텐데.ㅠㅠ 클라이막스도 혜성도 가까워지고 있네용 다음화도 기다립니다
ㄴ 원작의 사야카도 그냥 여유롭게 지켜보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속으로는 조금이나마 타들어가는 듯한 생각을 했을 것 같았고요. 그 이미지를 조금 반영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멋진 글 고마워 타키 행동력이 좋네
* 작자입니다. 닉네임 변경 관계로 달아둡니다.
오오 타키가 미츠하를 만나러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재미있는 전개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