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을 소파 위에 내동댕이치고 사지를 쭉 뻗었다. 고단함이 푹신함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내 체세포들이 즐기도록 일 분 정도 그렇게 누워 있었다. 이사할 때 새로 구입했던 목재 옷장에는 근처 공립 고등학교의 교복 셔츠가 걸려 있다. TV 뉴스는 최근 발생한 정치 이슈에 대한 따분한 가십거리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나 참, 여자 두 명밖에 없는 집에서 정치 뉴스라니.'

어느샌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해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렸다. TV 스크린은 방송인들의 모습을 1초 정도 비추었다가 바로 사라지게 하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그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왔으면 씻기부터 하고 누워! 채널 좀 그만 돌리고!"

"으음..."

이미 쓰러져 있는 몸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등이 소파에 달라붙어 버린 것 같았다. 저 아이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언니에게 왜 저렇게 매정하게 구는 걸까. 이유 없는 섭섭함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도쿄에서 대학교 과정을 마친 뒤 나는 무엇인가에 쫓기듯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생활이 가져다 주는 청량감을 맛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혼자만의 시간을 더 오래 갖고 싶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이 또다른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취업 및 면접 준비에 치이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최대한 다양한 사람과 만나 교류하려고 애쓰며 삶의 활력소, 새로운 흐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흐름은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큼 나에게 가까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에 알고 지냈던 이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거나 혼자 캔 맥주 따위를 마시며 새벽까지 깨어 있는 일은 거의 무의미했다. 고향 친구들에게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을까도 해 보았지만 그 두 사람은 이미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물리적인 의미에서든, 심리적인 의미에서든. 의도적으로 연락을 피했던 건 나니까 결국엔 나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그렇게 나를 온통 에워싼 비구름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스스로의 마음 속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사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혜성이 이토모리 마을에 떨어진 날을 전후해서 일어난 현상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만 할 뿐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널브러져 있던 몸을 간신히 일으켜 소파에 걸터 앉았다. TV는 어느새 꺼져 있었다. 멍하니 생각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가스레인지 타는 소리가 멈추더니 동생이 나를 소리쳐 불렀다.

"샤워 귀찮으면 세수라도 하고 와. 밥 다 했어."

"알겠어. 미안."

"어른이 되더니 사람이 더 게을러졌다니까."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물이 손에 쏟아졌다. 간단히 씻은 뒤 빨개진 볼을 빈틈없이 덮은 옆머리카락을 뒤로 모아 묶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때 잘랐던 머리가 어느새 장발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로 자라 있었다. 시간은 때로는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동생이 열여덟 살이니 나는 이제 스물여섯 살이다.

어릴 때부터 쭉 양 갈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동생은 나와는 반대로 집에서 머리를 풀고 지낸다. 프라이팬에 올려진 계란 부침을 접시에 옮겨 담는 동생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기가 뭐해서 상투적인 말을 건넸다.

"뭐 도와줄 거 있어?"

동생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별로. 밥솥에 밥 있으니까 배고프면 먼저 먹고 있어."

"그래도 오랜만에 같이 밥 먹는 건데 먼저 시작하긴 아깝잖아. 그럼 그냥 앉아 있는다?"

그러자 동생이 뒤를 돌아보았다. 표정으로 보아 볼멘소리를 할 작정인 것 같았다.

"아까 전화로 배 많이 고프다며."

"그게... 아까 전철 안에 있을 땐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고프진 않아. 미안."

"수험이 코 앞인 고등학생한테 뭘 시키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그러고는 툴툴거리며 접시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동생은 겉으로는 나를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나를 생각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씨에 대해 딴지를 거는 법이 없었다. 동생이 나를 생각해주는 만큼 나도 언니로서 동생을 아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나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식사 준비가 끝나자 우리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활짝 열어 놓은 부엌 창문으로 바람 한 줄기가 새어들어와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까 너도 내년이면 졸업이구나. 시간 참 빠르네?"

"그거 완전히 어린애 대하는 태도인데."

"어린애로 보일 수밖에 없지. 난 고등학교 졸업한 지... 몇 년이지? 7년? 8년? 어쨌든 그만큼 세월이 지나갔잖아. 넌 아직 고등학생이고. 시간이란 건 말이야. 가끔은 의식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단다."

"시끄러. 연애 경험도 없는 어른한테서 인생 이야기 듣고 싶지는 않은데."

아픈 곳을 찔렸다. 내가 얼빠진 표정을 하자 동생은 한 방 먹였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얄미웠다. 이런 공격을 당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던 변명이 뭐였지.

"연애 못 한 게 아니고 안 한 거야."

"또 그 얘기 한다... 물론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이해해."

"기분 나빠..."

동정과 비웃음이 섞인 묘한 미소를 띠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억지로 웃어 주고 고개를 떨구었다.

연애 못 한 게 아니고 안 한 거야, 뻔한 소리지만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대학에서 받았던 미팅 제의 같은 것도 전부 거절했고 어쩌다 조금 친해진 남자들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으니 연애를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아예 연인 관계가 성립될 여지 자체를 피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그런 태도를 취한 이유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어느새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가 된 옛 친구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솔로의 외로움을 절감한 것은 비밀이지만. 어쨌든 나는 이상하리만치 남녀 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동생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단순히 나를 놀릴 목적인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나 대학생 때 고백 몇 번 받았어. 내가 전부 거절한 거고."

"에이, 그냥 못생겼다거나 좀 이상해 보이는 남자들만 있었던 건 아니고? 원래 미인한테는 이런저런 남자가 전부 꼬이는 법이니."

미인이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동생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미인이라는 소리 들어서 좋나 보네?"

"아니, 싫어하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 그냥 얼굴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도록 뒀을 뿐이야."

"그게 좋다는 거지."

"아니야!"

한숨 소리. 얄미운 동생은 끝까지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나의 괴상한 변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마지막에 손해를 보는 사람은 나일 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동안 귀를 닫아 버리기로 작정했다.

혼자 먹을 때보다 길게 느껴졌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동생은 빈 그릇과 접시들을 모았다. 나는 남은 반찬들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해가 거의 저물었는지 짙은 붉은색 노을로 물들어 있던 하늘은 군청빛이 만연해 있었다. 부엌 정리가 대충 마무리된 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리모컨을 쥔 동생이 내가 했던 것처럼 채널을 계속해서 바꾸었다.

"아까는 나보고 그러지 말라며."

"그 땐 TV 볼 생각도 없었잖아. 지금은 볼 만한 채널이 있나 보는 거고."

"아, 네."

일부러 최대한 빈정거리며 말했더니 옆 자리에서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설마 아까 연애 경험도 없는 어른이라는 말에 화난 건 아니지?"

"아냐, 나 화 안 났어. 근데 너도 연애 경험 없는 건 똑같지 않아?"

그 말을 건네자마자 동생의 입가에 싱글거리는 미소가 걸렸다. 뭐야, 왜 웃는 거야. 조금 당황스러운 감정을 뒤로 하고 태연한 척 말을 이으려는데 동생이 내 말을 잘랐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한 달 전에."

세상에.

"연애 경험 없는 언니는 잘 모르겠지만 시작하고 나서 며칠 정도는 진짜 알콩달콩해. 저번 주말엔 하루종일 데이트도 했어. 사진 많이 찍었는데 보여줄까? 아, 그리고 얘가 나랑 나이는 같은데 정신연령은 나보다 어린 것 같다니까. 남자애들은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는데 완전 아이 돌보는 엄마 된 기분이야. 그래도 진짜 귀엽다니까. 그리고..."

"알았어. 그만."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즐겁게 남자친구 자랑을 하는 동생이 부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점이 두렵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겨우 자기 동생한테 부러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그렇지만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처럼, 이 정도로 차갑게 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동생은 순간 입을 다물어 버리더니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폈다. 대화가 재개되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미안해. 이러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아니야, 언니. 내가 미안해. 언니 생각은 하지도 않고 너무 내 자랑만 해서..."

"그게 아니고..."

입을 떼긴 했지만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어색해져 버린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머릿속으로 갖은 방안들을 모색해 보았지만 모두 소용없을 것 같았다. 둘 사이에 흐르던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동생 쪽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언니."

"정말 미안. 원래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알았어. 난 먼저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와."

그러고는 도망치듯이 내 곁을 떠나 안방으로 향한 뒤 문을 닫아 버렸다.

어쩌면 나는 동생을 질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동생이 이제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시간은 때로는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가 버리니까, 동생이 그렇게 바뀌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인정하고 싶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걸까.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멀어지려고 한 건 나이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 느낌이 나를 이리도 집요하게 구속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 구속에서 당장에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의 내면은 찾고 있는 누군가와 꼭 다시 만나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몇 살인지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아는 것은 오직 그 사람과 마주친다면 우리는 서로를 단번에 알아볼 것이라는 확신 뿐이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그 사람은 커녕 그 사람의 그림자와도 닿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런 막연한 감정에 사로잡혀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이 나는 그저 끝없는 평행선 위를 달려나가고 있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바깥 세상은 회색과 검은색으로만 칠한 그림처럼 색상을 잃어버린 채로 있었다. 언제부터 세상은 빛을 잃었을까, 질문을 던져 보아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세상 그 자체가 이런 빛깔인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빛을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다채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동생마저도.

하지만 결국 나는 그 누군가를, 빛을 잃은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사람을 언제까지나 찾아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늘한 밤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와 몸을 떨리게 했다. 나는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빤히 바라보다가 창문을 닫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