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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요약: 

토시키는 미츠하의 행동이 변하는 걸 보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뒤, 미츠하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한다. 

미츠하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게 되고 이토모리에 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미츠하는 PTSD와 우울증 등의 각종 정신질환적 증세에 시달리게 되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가는데...





믿음이 사라진 마을 – 4


어둠은 소녀의 가슴에서도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을 떨쳐내려고 아무리 손을 휘둘러도 그 손은 허공을 스칠 뿐이었습니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어둠에게는 쓸데없는 반항이었습니다. 


소녀는 자기가 뭘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지쳐버린 소녀는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자 편하게 몸을 어둠에 맡겼습니다. 


어둠은 그렇게 꾸역꾸역 소녀의 몸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나무에선 잎이 시들어 땅에 떨어졌다. 수북하게 쌓인 잎은 썩어서 검게 변해갔다.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에 동물들은 하나 둘 보금자리를 찾아서 동면을 준비했다. 그렇게 그 해의 겨울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유난히 춥고 마음마저 궁핍해지는, 길고 힘든 그 겨울이. 


여전히 미츠하는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누구의 탓도 아닌 불행한 사고였지만, 미츠하는 여전히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기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자기 때문에 모두가 죽었다는 그런 생각들. 그것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 미츠하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어놓았다. 


미츠하에겐 엄지손톱을 이빨로 물어뜯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습관적으로 그걸 물어뜯다가 손가락에 피가 맺히기 직전에야 그 짓거리를 그만두었다. 손톱이 조금만 더 자라면 다시 손톱을 물어뜯었다. 마치 자신의 불안감을 뜯어먹으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손톱을 아무리 물어뜯어도, 그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어느 날, 미츠하는 복도 창가 근처에서 깨진 유리파편들을 발견했다.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꼴을 보아 하니, 어떤 환자가 소동을 부린 성싶었다. 미츠하는 그 중 크고 날카로운 조각을 집어 들고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고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미츠하는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유리조각을 서둘러 등 뒤로 숨겼다. 마치 하면 안 될 짓이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그 발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학생, 이거 건드리면 안 돼. 다칠라.』

『네...』


친절한 아주머니의 말에 미츠하는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졌다. 미츠하는 뒷짐을 진 채로 그 자리로부터 서서히 멀어진 뒤 병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손에 유리조각을 잃어버릴세라 꼭 쥔 채로. 병실에 들어가 손을 펴 보니 유리조각에 이곳 저곳 베인 손바닥에는 피가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아파. 왜 내가 이 못생긴 유리조각을 들고 온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츠하는 그 유리조각을 슬쩍 배게 밑에 넣어두었다. 


『어머, 쟤 봐봐. 진짜 말랐네.』

『그러게 말이야. 불쌍해서 어째. 쯧쯧...』

『그러고 보니 저 애... 좀 무섭지 않아?』 

『그러게, 처음 입원한 뒤로 여태까지 사람들이랑 말도 거의 안 하더라고.』 


현관을 지나가는 미츠하를 보고 젊은 여자와 아주머니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군거렸다. 신경 쓰지 말자. 나만 더 힘들어질 뿐이야. 미츠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러나 이 병원에 새로 온 듯한 한 아주머니는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다른 한 아주머니에게 더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저 나이 대 애가 이런 병원에 오다니 별일이네. 무슨 일이래?』

『그니까... 저 애가 사실...』


미츠하가 그 병원에서 지겹게 겪어온 일이었다. 어느 한 사람이 미츠하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른 사람에게서 이토모리에 관해 듣고는 미츠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런 흔한 레퍼토리들. 그날따라 지끈거리며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 때문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미츠하는 그만 자제력을 잃고 소리를 내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해요!』

『어머,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한창 미츠하에 대해 쑥덕거리던 여자가 되레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 옆의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는 안절부절하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여자를 말렸다. 


『얘, 그만 좀 해. 애한테 왜 그래.』

『이거 좀 놔봐. 누가 어른한테 버릇없이 굴라고 가르쳤어? 너희 부모님이 그러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함부로 내뱉는 건지.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미츠하는 갑자기 서러워져서 울음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런 미츠하를 보며 여자는 비아냥거리며 날카롭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쟤 좀 봐봐. 이제는 막 울려고 그러네. 아주 내가 죽을 죄를 지었구나?』

『아니, 넌 좀 그만하라니까. 자꾸 왜 그래.』

『저렇게 버릇없는 애는 정신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놔 봐.』

『아줌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미츠하는 빽 소리를 지르고는 오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아니, 쟤가 정말…!』

『아이고, 제발 그만 좀 해. 애가 싫다잖아.』


그 신경질적인 여자는 잔뜩 얼굴을 붉힌 채 길길이 날뛰며 성을 냈고, 같이 있던 아주머니는 변덕스러운 여자를 진정시키려 팔을 붙들었다. 그들이 내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미츠하의 귀에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 뛰었다. 어느 샌가 그 소리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자 미츠하는 안도하며 한숨을 살며시 내쉬었다. 겨우 이런 사실로 안도하고 있다니.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져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틀어막으며 자신의 병실에 뛰어들어갔다. 


차라리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깊은 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어.


그곳에서 혼자 숨죽여 끅끅거리던 미츠하는 기운을 차린 듯,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배게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미츠하가 몰래 가져온 깨진 창문의 파편이었다. 미츠하는 유리조각을 들고 그것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그 유리조각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미츠하는 유리조각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유리조각을 조심스레 팔뚝에 갖다 대었다. 미츠하가 손을 움직이자 예리하고 날카로운 것이 미츠하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고, 금새 그 자리엔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아ㅡ』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미츠하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프다. 하지만 그 상처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새빨간 피야말로, 다시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가장 죽음으로부터 가까워 보이는 그 행위가 사실은 살고 싶음을 보여주는 처절한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아이러니를.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뿐이었다. 자해가 끝나면 상처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은 차라리 그 부위를 도려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미츠하의 주변엔 아무도 없다는 그 현실과의 괴리감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말이다. 


그 뒤로 미츠하는 한 두 번 자해를 더 시도했다. 하지만 매번 할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만 더 커질 뿐, 그 행위로부터 느껴지는 쾌감이나 해방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반면에 상처 부위는 더 쓰라려 왔고 미츠하의 기분은 날이 갈수록 비참해져만 갔다. 쓰잘데기 없이 자주 나오던 눈물조차 더 이상 나오질 않았다. 잎이 몇 장 안 남은 가녀린 나무 한 그루는 점차 말라 죽어갔다. 더욱 야위어가는 미츠하를 보다 못한 의사는, 그녀에게 매달리다시피 애원했다. 


『미츠하, 너 정말 뭐라도 말해줄 수 없겠니?』


애걸하는 듯한 저 표정, 나를 위한다는 식의 저 말투. 의사의 그 모든 게 거슬렸다. 저런 표현이 설령 가식이 아니라 진짜라고 할지라도. 미츠하는 눈 앞에 그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불편하기만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았던 주제에, 이제서야 내 말을 들어주겠다고? 어쩌면 저 사람에겐 내가 말라 죽는 게 최고의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의사 인생에 빨간 줄 그이기 싫어서 저러고 있을 게 뻔한 사람에게는.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참 씁쓸해졌다. 


『그럼 저한테 참견하지 말아주세요.』

『잠깐만...』


나가려는 미츠하를 붙잡는 의사의 손은 그만 미츠하의 팔과 닿고 말았다.


자해로 인한 상처는 채 아물지 못했고, 상처가 옷에 닿을 때의 쓰라림 때문에 미츠하는 반사적으로 팔을 뺐다. 의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츠하의 팔을 우악스럽게 걷어붙였다. 미츠하는 그의 손을 떼어내려고 발버둥쳤지만 성인 남성의 힘을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옷자락에 가려져있던 미츠하의 팔이 드러나자 여기저기 그어진 칼자국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너... 』


미츠하는 재빨리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려 했다.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들킨 아이처럼, 미츠하는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졌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느껴졌다. 


『잠깐, 내가 지금까지 다 잘못했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말해도 좋아. 욕을 해도 좋고, 무슨 말을 해도 괜찮으니까. 강요는 하지 않을게. 딱 5분만 더, 앉아있다가 나갈 수 있겠니?』


의사가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자, 미츠하도 잠시 마음이 약해졌는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의사가 먼저 입을 뗐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무슨 말이라도요?』


미츠하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의사에게 되물었다. 의사는 미츠하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미츠하는 저 사람의 그런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애초에 자기의 말을 조금도 들어주지 않은 주제에, 이제 와서 의사 노릇을 하려는 저 사람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미츠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입을 뗐다. 이번에는 다분히 원망이 섞인 투로, 자신의 화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제가 이토모리에 혜성이 떨어질 거라고, 제가 그걸 직접 봤다고 몇 번이나 소리내어 이야기했을 때에는 어째서 하나도 들어주지 않은 건데요? 지금이라도 그걸 사람들한테 다 말해주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그리고…』


말하던 도중 감정이 너무 격해져 숨이 찼던지 미츠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저보고 이중인격이라는 둥, 아버지한테 말해버려서 결국 이렇게 되버린 거잖아요. 내 말은 하나도 안 듣고 이곳으로 끌고 왔으면서. 왜, 왜 이제서야 말을 들어주겠다고 그러는 건데요? 왜 전부 다 죽어버린 뒤에야 저한테 이래 봤자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요! 난 가족, 친구, 그리고 모든 걸 다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태연하게 그런 말을...』


미츠하는 먹먹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자신이 그리워하던 그 사람들이, 그 시절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고, 앞에 있는 사람이 원망스러워서. 도움이 되고 싶다며 아무 거라도 말해달라던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의 슬픔이 그에게도 와 닿아 마음을 찔러대는 것만 같아서 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 잔인하시네요.』


미츠하는 얼굴에 그렁거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마지막으로 독하게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나가버렸다. 다 맞는 말이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에 그는 더더욱 미츠하를 붙잡을 수 없었다. 저 아이는 다시는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거라는, 그런 슬픈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는 부탁한대로 일을 수행했고 의사로서 맞는 진단을 내렸지만, 그 결과는 500명이 넘는 사상자를 초래했으며 파릇파릇한 나이의 한 아이의 인생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가 성급히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의 섣부른 판단이 없었다면, 이런 참극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믿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의미로 경이로웠던 그 사건 자체의 잘못이었을까. 아무래도 그 답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존재는 미츠하에겐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존재이고, 그가 미츠하의 의사로 남는다는 것은 미츠하에겐 독이 될 뿐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이제 그만둬야겠지.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미츠하가 낫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써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그가 여태껏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었단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차례였다. 


상담실을 뛰쳐나간 미츠하는 다시 개인병실에 틀어박혔다.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거나 아니면 그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하는 것뿐.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 일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미츠하에겐 병원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보단 한결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 지내야만 하는 건데?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또 그런 생각이 미츠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태까지 자신이 사는 이유는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것만 같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사는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미츠하는 이제 그걸 실행에 옮기고자 마음먹었다. 그래, 하나씩 정리하고 완전히 끝내자.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내 꿈도 그날 다 사라져 버렸는데. 


다음날, 미츠하는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이 일어난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평소완 다르게 조금씩 신경을 더 써서, 흐트러지지 않게. 미츠하는 다시 한 번 더 이부자리를 살펴본 뒤에야 만족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쭉 기지개를 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미츠하는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미츠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 밖의 날씨는 그날도 화창했다. 바깥에서 차들은 엔진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며 병원 건물 옆을 지나쳤다. 정말 누군가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밖의 풍경은 평화로웠고 한결같았다. 


미츠하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외투를 걸치고는 외출 허가를 받기 위해 카운터 쪽으로 갔다. 


 『저...』 

『응, 미츠하구나?

『잠깐 외출 좀 하고 싶은데요...』

『잠시만, 의사 선생님께 연락 좀 하고. 그리고 저기 명단에 이름이랑 외출 시간부터 적으렴.』


몇 번의 통화 연결 음이 울린 뒤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리고 안내원은 상대방과 무어라 얘기하더니 금방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짝 곤란한 표정을 한 채로 말을 꺼냈다. 


『어머, 미안해서 어떡하니. 네 담당인 의사 선생님이 지금 부재중이라서 말이야. 외출 허가를 내주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

『그럼 혹시 다른 분이랑 동행하는 건 안될까요? 딱 30분 정도만 나갔다 오고 싶은데...』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다시 한 번 알아봐줄게. 잠깐만...』


안내원은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건 뒤, 상대방과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보호사 한 분이 가능하시다네. 그 분이랑 동행하도록 하렴.』

『감사합니다.』


3분 정도가 지났을까.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미츠하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보호사님. 이 쪽이에요.』

『안녕하세요.』

『네가 미츠하구나? 반갑다.』


크고 따뜻해 보이는 손. 여기저기 조금씩 진 잔주름은 그가 견뎌온 세월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대강 40~50대 사이로 추정되는 그 사람은 얼굴에 순박한 미소를 띄운 채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그리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후타바가 죽기 전의 토시키를 닮았다고 미츠하는 생각했다. 아주 잠시, 추억에 잠긴 듯 그가 내민 손을 바라보던 미츠하는 자신의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반갑습니다.』

『그래, 외출한다고 했지. 어디를 가려는 거니?』


미츠하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카라타시 고등학교 한 번 가볼 수 있을까요?』


매우 뜬금없는 장소가 미츠하의 입에서 튀어나와서인지, 보호사와 안내원은 그 대답에 많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곳은 왜 가려는 건데?』

『그냥... 제 또래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요.』

『아직 정규수업 기간이라 힘들텐데... 밖에서 잠깐 볼 수는 있어. 그거라도 괜찮겠니?』

『네. 감사합니다.』


미츠하는 그 말과 함께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소로 화답했다. 


15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자 시내의 풍경이 눈에 띄었다. 마침 시장이 열린 탓인지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오로지 자신만이 혼자 다른 세계에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차는 천천히 그 고등학교 쪽으로 굴러갔다. 


창 밖을 주시하고 있던 미츠하의 눈에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그곳은 분명히 미츠하의 기억에 있는 장소였다. 그곳을 알아본 미츠하는 갑자기 다급해졌다. 여기서 내려야 해. 


『보호사님.』

『응?』 

『여기서 내려주실 수 있으세요? 저 화장실이 급한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서 갔다와.』


그리고 미츠하는 볼일을 본다며 수풀이 무성한 언덕 쪽으로 갔고, 보호사는 차 안에서 미츠하가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5분이 넘도록 미츠하는 차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이토모리를 봐야겠어. 


무엇인지 이해도 되지 않는 그 감각을 뒤쫓아, 미츠하는 무성한 수풀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구불거리는 언덕길은 전보다 더 가파르게 느껴졌고, 조금씩 숨이 가빠왔다. 한동안 운동에 사용되지 않은 다리는 쉴 새 없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곧 쓰러져 버린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미츠하는 한 걸음씩 더 앞으로 내디뎠고 마침내 언덕의 봉우리에 다다랐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차디찬 바람이 불어왔다. 점퍼 밑으로 얇게 입은 환자복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추위는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들 것 같았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구멍 두 개. 미츠하는 아직도 저곳이 이토모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어떤 폭발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미츠하는 그 소리가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들었던 그 소리.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자동차는 미츠하가 다가가려 할 때마다 매번 터져버렸다. 그 장면은 매일같이 미츠하를 혜성이 떨어지던 그 날로 돌려놓았다. 


그만해, 제발 그러지마... 요츠하, 할머니, 아빠, 텟시, 그리고 사야카도... 제발, 제발... 날 버리지마... 날 남겨두고 가지마... 외로워, 너무 외롭다고... 무서워...


미츠하는 귀를 틀어막으며 온몸을 뒤틀었다. 속으로는 피를 토하듯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정작 미츠하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건 조그만 흐느낌 소리뿐이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 외딴 언덕 위. 그 누구도 그곳에 올 리가 없었다. 저 멀리서 미츠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미츠하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미츠하는 잠에서 깨어났다.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몸은 괜찮고?』

『죄송해요...』

『에휴...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안 그래도 가뜩이나 못 먹어서 앙상한데... 앞으론 그러지 말어, 응?』

『네...』


참혹하게 파괴된 이토모리는 이제 누구도 살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 그곳에는 공사하는 사람조차 보이질 않았고, 몇 년이 지나더라도 그곳은 폐허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ㅡ그런데 어째서 내가 혜성이 떨어질 거란 걸 알게 된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미츠하의 뇌리를 스쳤다. 심지어 점장인 아버지조차 그걸 몰랐는데, 어째서 나는 그걸 그리도 확신하고 있었을까. 


병원이란 장소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그래서 미츠하가 우울증에 시달려 하루를 쓸데없는 생각들로 낭비하지 않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 중에서 유독 미츠하의 마음에 걸리던 것은 바로 혜성이 떨어질 걸 알고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그 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만 편집된 것처럼, 그 날의 하루 중에서 그 부분만이 사라져 있었다. 오로지 기억나는 것은 그날 밤에 일어난 일과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었다는 점. 그 당시의 애타는 감정만이 미츠하의 기억 속에서 잔잔히 파도치고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쓰여져 있던 글씨. 미츠하는 뒤늦게 어떤 글씨가 손바닥에 쓰여져 있는 걸 기억해냈지만 그건 이미 지워져 버린 뒤였다. 펜을 잡고 다시 기억해내려고 애를 써도 아무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대체 뭐였지?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같아. 이건 뭐지? 넌 누구야?


펜은 손바닥에서 힘없이 땅에 떨어졌고 미츠하의 눈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를, 그 뜨거운 감정에 휩싸여 한참을 울다가 밤을 지새웠었지. 


그래서일까. 갑자기 미츠하가 생각지도 않았던 이토모리로 향한 이유가. 분명 다시 돌아가기 싫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뛰어갔다. 그러나 미츠하가 발견한 것은 혜성이 떨어진 후의 이토모리에 대한 더욱 생생해진 기억뿐이었다. 


ㅡ아무래도 이젠 그것도 소용없겠지. 결국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 버렸는데. 


미츠하는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듯, 자신을 붙들고 있는 그런 감정조차 외면해버렸다. 이미 너무 힘들었기에, 이젠 그런 것을 신경 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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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

대략 1달이 넘는, 참으로 오랜 휴재기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무리 해야할 일들도 많아서 미룬 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게 끝나도 쉽게 원고가 잡히질 않고 갤질만 하게 되더군요


스토리가 연결도 잘 안 되어서 전체적으로 엉망이었던 터라 처음 2000자를 두고 다시 싹 갈아엎었습니다


그냥 크게 무거운 마음으로 쓰는 팬픽은 아니지만 그래도 멀쩡한 걸 내놔야 할 것 같아서였어요


결국 후반부 스토리를 다 뜯어고친 후에야 이걸 올릴 수 있게 되었네요.


힐링물 완결까지 잘 지켜봐주세요 오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