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 주의사항
※ 등장인물의 나이설정은 엔딩을 따라갑니다.
※ 장소나 인물설정은 픽션이므로 실제상황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삽화 제공 enfoll 님 감사합니다.
<운명인가 우연인가 - 미츠타키 After>
9. 2013년 10월
검은 빛으로 둘러싸여있던 주변의 풍경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자, 다시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 여긴 이토모리잖아? 어 그런데 호수가?
이토모리는 이토모리였지만, 분명 자신들이 아까까지 봤던 이토모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호수도 1개뿐인 옛 이토모리.
두 사람은 이토모리 고등학교에 서있었다. 둘의 주변에는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고, 왜 그곳에 갔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은 상황 파악이 안 되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두 사람이 있던 지 말던 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어린 미츠하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미츠하는 혜성의 파편이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그저 매듭끈을 풀어 손에 꼬옥 쥔 채로 뭔가를 간절히 비는 것 같아 보였다.
두 사람도 과거의 미츠하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보니 혜성은 이제 곧 떨어질 것 같아보였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타키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있는 미츠하를 안았다. 그리고 잠시 후. 미야미즈 신사 옆에 직격한 혜성조각의 본체는 이토모리를 모조리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폭풍에 휘말려 잠시 눈을 감았던 두 사람은 몸에 느끼던 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눈을 떴다. 여전히 과거의 미츠하는 손을 풀지는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독백하는 것은 들을 수 있었다.
─ 그 사람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왜 난 그 사람을 잊었을까...
순간 타키는 자신의 품안의 미츠하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 타키군... 나 다 생각났어...
미츠하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 ☆ ☆ ☆ ☆
가을 축제 때 나는 분명 죽었다. 방금 본 혜성에 의해서. 죽는 순간도 뚜렷이 기억이 나고 있었다. 유카타를 입고 텟시, 사야와 혜성이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신기하게 구경하던 중 파편이 갈라져 나온 것을 발견했고, 그 파편은 미쳐 피할 새도 없이 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원래대로라면 그 기억에서 나의 생이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등산복 캐주얼 차림의 타키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고, 날짜는 2016년으로 넘어가 있었다. 다시 미래로 가버린 것이었다.
아까 둘이서 거닐던 산 정상에서 황폐해진 이토모리를 보고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지금 어떻게 해서 살아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의문을 가진 채 멍하니 앉아 있던 내 귀에 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몸이 바뀌었던 타키가 나의 몸에 들어가 있다면 분명 가능한 일이었다.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멈춰 섰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만 들릴 뿐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 다시금 실망하던 찰나. 해가지면서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나는 원래의 몸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서 내 매듭끈을 돌려받고, 나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가 내 손바닥에 무언가를 써주었다. 내가 답례로 그의 손바닥에 펜을 올리는 순간, 펜과 함께 그는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의 말대로 마을로 뛰어 내려가 텟시와 함께 변전소를 폭파시키고 학교에서 사야의 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작전은 내 몸으로 있던 타키군의 작전.
마을 사람의 대피를 독려하던 중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텟시에게 그 말을 했지만, 텟시는 일단 급한 건 아버지의 설득이라며 주민센터로 가라고 말한다.
한참을 달리던 도중 결국 혜성이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좀더 힘을 내던 도중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힘겹게 눈을 뜬 나는 그가 써준 글자를 보았다. 이름을 써주기로 했는데 내 손바닥에는
「좋아해.」
라는 글귀뿐이었다. 허탈해 졌지만, 오히려 그 글자가 나에게 힘을 줬는지, 나는 결국 아버지를 설득하여 모든 주민을 대피시키는데 성공하였고, 혜성은 우리 마을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내가 조용히 말을 했고, 그 말을 그와 함께 들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왜 난 그 사람을 잊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난 그였던 것이었다. 지금 자신의 연인, 우연히 만나서 사귀게 되었지만 절대로 우연은 아닌 거 같다고 그리고 둘 사이의 뿌옇던 기억을 하나 둘씩 걷어내어 가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바로 그 사람.
☆ ☆ ☆ ☆ ☆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나는. 아직도 내 손에 들려있는 뚜껑이 열려져 있는 펜을 바라봤다. 7년 전 이토모리에 왔다가 잃어버렸던 펜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잊고 있었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금 찾았다.
그녀가 쿠치카미자케의 봉인이 풀렸던 것을 보고 누군가가 마셨다고 놀라던 그 범인은 나였다.
이토모리 고등학교까지 올라가서야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날 시내의 한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이 잡듯이 뒤졌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 거기에 더하여 점점 나는 그녀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목의 매듭끈을 본 오쿠데라 선배가 나에게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물어봤고, 나는 그 덕분에 미야미즈가 신체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때 아닌 가을폭우를 맞으며 도착한 나는 제단위에 놓여 있던 예전에 내가 바친 그녀의 쿠치카미자케를 마시고 그녀의 몸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2013년 10월 4일.
그 날 나는 어떻게든 미츠하를 살리기 위해 사방으로 고군분투했다. 그나마 텟시와 사야가 내 말을 믿어줬고 같이 협력해줬다. 텟시와 짠 계획에 따라 난 그길로 바로 이토모리 정장인 미츠하의 아버지를 찾아갔고, 당연히 내 말을 듣지 않았던 미츠하의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말았다.
「넌... 미츠하가 아니야.」
맞는 말이었다. 나는 미츠하가 아니었고, 설득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바로 정장실을 나와 힘없이 길을 걸었다. 또 다시 만난 텟시 사야를 보던 나는 미츠하가 내 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텟시의 자전거를 빌려 미야미즈 신체로 달리기 시작했다. 요츠하에게 미츠하가 도쿄를 갔었단 말을 듣고 지난번에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너, 정말 나를 찾아 도쿄로 왔었구나.」
미안해졌다. 난 그때는 미츠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에. 미츠하의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난 더욱 힘을 내어 나무뿌리에 자전거가 걸려 넘어져도 내가 떨어질 뻔했어도 계속해서 정상을 향해 달렸고, 결국 정상에서 미츠하를 만날 수 있었다.
카타와레도키. 그 짧은 시간에 원래대로 돌아가 미츠하를 만난 나는 미츠하의 매듭끈을 돌려주고 제발 살아나기를 부탁했다. 서로의 이름을 써주기로 하고 나는 미츠하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써줬고, 미츠하가 내 손에 무언가를 써주려고 하는 순간,
툭.
펜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미츠하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미츠하의 이름을 외치면서 잊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내 그 이름은 내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나는 얼마간 정신을 잃은 상태로 있다가 홀로 도쿄로 돌아왔던 것이었다.
☆ ☆ ☆ ☆ ☆
─ 이게... 그 펜이었던 건가. 미츠하가 나에게 써주려고 했던 말을 미쳐 못쓴...
살짝 눈물이 고였다. 손에 들고 있는 녹슨 펜. 미츠하가 쓰고 싶었던 말은 쓰지 못한 채 그곳에 오랜 세월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 타키군...
신기하게 그렇게 많은 기억들이 오갔는데 침착함을 보이는 미츠하. 거기다 황혼의 기억 때는 두 사람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갔으나 지금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이토모리 고등학교에 수많은 사람들과 서 있는 그대로.
─ 우리 아버지네... 저기 계신 분이.
양복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직원들에게 계속 지시를 내리고 있는 한 사람. 미츠하의 아버지 토시키였다. 타키도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다만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뿐.
그 전에 미츠하랑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말씀을 하시긴 하셨었다.
「자네. 나를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나? 낯설지 않다만.」
타키는 몰랐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는 토시키씨를 처음 봤었으니까. 거기에 덧붙여 토시키씨는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면서 말을 맺었다.
「우리 딸은 화를 내게 해서는 안 된다. 화가 나면 내 멱살도 잡으니까」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순간 미츠하는 얼굴이 빨개졌고, 타키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었다.
─ 멱살을 잡은 게 나였구나... 정말 죄송하네...
─ 응? 그게 무슨... 아? 설마 그 날 아버지 멱살 잡은 내가 타키군이었구나?
─ 응... 맞아... 정말 사죄라도 드리고 싶네.
─ 어이구. 아무리 그래도 우리아버지의 멱살까지... 정말 못살아 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미츠하. 그리고 이내 다시 시선은 지금 운동장의 토시키씨한테로 옮겨져 갔다.
그곳의 토시키씨는 어느 정도 현장이 정리되자. 미츠하의 앞으로 똑바로 걸어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은 토시키씨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미츠하, 요츠하. 정말로 미안하다. 이 아버지가 여태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이 아버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것이냐. 나는 이제 진심으로 너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그 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지막 말에 한참을 망설이던 그 때의 미츠하가 토시키씨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너희의 옆이었다. 절대 이곳 정치판이 아니었다. 네 어머니가 했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구나. 그 동안 너희의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아 정말로 사죄하고 싶구나.」
─ 맞아. 아버지는 저렇게 말했었어. 난 솔직히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 하지만 내 맘을 이해한 아버지에게 나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로 했지.
눈물이 고인 채로 미츠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를 다시금 꼬옥 안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거 같다.
모든 기억을 찾았으니,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츠하는 갑자기 완강하게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 아니야. 타키군. 나 지금 돌아가면 안 돼... 제발 부탁이야. 오늘 알았던 제일 처음에 있던 기억 때문에 돌아가기 싫어. 난 그 기억은 지우고 싶단 말이야.
─ 미츠하. 우리는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과거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미츠하가 갑자기 반대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지금 두 사람은 너무 오래 이 곳에 있었다. 아까 펜 뚜껑을 열고 과거로 왔기에 돌아가기 위해서 그 뚜껑을 다시 닫으려 하는 타키를 말리는 미츠하.
─ 싫어! 난 더 과거로 가고 싶다고!
더 과거로는 갈 수 없는 것을 알 터인데. 갑자기 미츠하가 떼를 쓰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엔 타키는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 미안. 미츠하. 난 그 부탁은 받아들일 수 없어. 이제 펜 뚜껑 닫을게.
─ 안 돼! 타키군! 내가 죽.....
미츠하의 대답이 채 끝나기 전, 타키는 펜의 뚜껑을 닫았고, 다시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의식을 잃었다.
☆ ☆ ☆ ☆ ☆
눈을 떠 보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타키의 몸에 있는 미츠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 나... 죽었던 거야?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 사람 덕분에 그녀는 살아 있다. 그런데 기억이 돌아오자 이미 한 번 죽었었단 사실을 알아버렸고 그것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려 버렸다.
─ 그래... 난 죽었어... 그런데 어째서!! 살아 있는 거야!!!
갑작스러운 미츠하의 발언. 타키는 놀라서 그런 미츠하를 바라봤다.
─ 어째서... 라니? 미츠하 너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어 타키는 미츠하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미츠하는 그런 타키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호수를 바라보며 계속 절규했다.
─ 이 답답한 세상. 탈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었으면 했던 생각이었어.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못 알아보고 내 소중한 것마저 건네 줬고. 난 정말 아무것도 없이 허망하게 집에 돌아왔어. 타키군도 알다시피 내가 머리를 자른 것도 그 이유였단 말이야. 더 이상 세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어!!!
계속해서 절규하며 미츠하는 말을 이어갔다.
─ 타키군도 내 입장이 돼서 생각해 봐. 그저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나 혼자 그 먼 길을 갔는데. 정작 그 사람은 날 못 알아봤어.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았는데. 그 때의 그 답답한 이토모리에서 그나마 나에게 의지가 되었던 사람이었는데. 날 못 알아봤다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타키는 미츠하의 말을 끊어버렸다.
─ 미츠하.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진정해라.
─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 야 이 멍청아!!!!!!!!!!!!
갑작스럽게 고함을 지르는 하이톤의 목소리에 미츠하는 고개를 들어 타키를 바라봤다. 타키도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런 미츠하에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너 지금 너만의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나는 도대체 뭐야. 너에게 뭐냐고!!!
타키의 말에 미츠하는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네가 나를 찾아온 건 2013년이야. 내가 너랑 바뀐 건 2016년이고. 그거 이미 기억 돌아와서 알고 있었던 거잖아. 그걸 잊은 거야? 잊은 거냐고!! 그 당시에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땐 난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상태야!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 그... 그건...
잠시 숨을 고르고 타키는 이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더 이상 미츠하에게 고함을 지르기는 정말 싫었다.
─ 미안해. 정말로 미안하다고. 내가 너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면,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겠어? 나도 그날을 떠올리면 네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겠어. 그리고 네가 그 때 준 매듭끈 3년 동안 잘 가지고 있었잖아. 너는 하루 만에 돌려받았겠지만. 난 3년이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것을 3년 동안 잘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가 뭐겠어. 뭐겠냐고... 제발, 미츠하... 난 정말 미안해서 지금도 미치겠다고... 그러지 말아줘... 부탁이야. 내 앞에서 죽고 싶었단 말은 하지 말아줘. 간신히 다시 만났는데 그리고 잃어버렸던 기억을 모두 찾았는데. 왜...
미츠하를 붙잡고 오열하기 시작하는 타키. 미츠하의 눈에서도 다시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미츠하. 좋던 싫던 기억은 가져가는 게 맞아. 지금도 그렇잖아. 너 10년간의 암울했던 기억 다 가지고 있잖아.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한 타키. 미츠하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10년 동안 자신을 기다리면서 겪었던 아픈 기억들은 지금의 자신을 만나고 서서히 지워가고 있었다. 그 기억도 자신이 지워주면 되는 것이었다.
─ 내가 지워줄게. 천천히. 절대로 생각나지 않게 해줄 테니까. 제발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줘. 부탁할게...
잠시 말을 끊었다. 심호흡을 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
─ 살아 있어 줘서... 정말로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제까지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말. 고맙다는 말을 사랑스런 연인에게 전해준다.
─ 아니야... 나야말로... 정말로 고마워 타키군... 그리고 미안해
서로를 부둥켜 앉고 눈물을 흘리는 두 사람.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 ☆ ☆ ☆ ☆
─ 이제 조금 진정됐어? 미츠하?
미츠하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진 것을 본 타키는 그렇게 물었다.
─ 으응. 괴로웠던 기억 때문에. 내가 그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고, 말했었는데. 타키군은 정말.
─ 미츠하. 나도 괴로웠어.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네 기억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을 때 난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어. 잊고 싶지 않은데 계속 기억이 지워져 가고 있었지. 다행히 네가 준 매듭끈이 기억을 붙잡아 줬지만. 그리고 난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얼마나 절망에 빠졌는데. 내 발 아래에 떨어져 있던 펜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고. 거기에 난 너의 이름을 그 자리에서 잊어버리고 말았어. 그리고 해 주고 싶었던 말도 있었다고.
「네가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가 꼭 너를 다시 만나러 갈 거라고.」
─ 타키군...
감격에 젖어 아무 말 못하고 있는 미츠하. 자신의 몸에 그렇게 눈물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오늘의 미츠하는 계속 눈물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눈물짓지는 않았지만. 미츠하는 조용히 말했다.
─ 이젠 잊지 않을게. 정말로. 타키군의 이름을 절대로. 그리고 이번엔 나도 타키군을 잃어버린다면, 다시 한 번 찾으러 갈 거야. 타키군이 어디로 가던 지.
─ 나도 마찬가지야 미츠하. 지난번에도 말했었지만. 오늘의 약속은 평생 지키도록 할 거야. 혜성이 다시 떨어지더라도 난 미츠하와 운명을 같이하겠어. 우리는 우연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운명으로 만난 거니까.
이제까지 계속 우연이라 생각했던 일들은 실은 운명적으로 만난 사이라는 것을 이제 모든 기억이 돌아오고 나서 깨달았다.
운명인가 우연인가. 두 사람 사이에서 계속 던지던 저 질문은 오늘에서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연의 연속은 결국 운명이었다는 것. 그것이 해답.
─ 사랑해 미츠하.
비록 지금도 서로 상대의 몸에 들어 있었지만. 이젠 아무 상관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키스가 이제는 해가 지는 산 정상에서 뜨겁게 이어지고 있었다.
─ 그 쿠치카미자케 이제 다시 갖다 둬야지?
─ 으응... 아참! 범인 찾았다.
쿠치카미자케의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미츠하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순간 위험을 느낀 타키는 등을 돌려 내려가려 했지만, 이내 미츠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 타키~군? 어딜 도망가시려고 그래? 이거 타키군이 마신거지!!!
─ 어... 내가 마셨네. 그거... 하지만 난 널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좀 봐줘라.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 침이 섞인 걸 마실 수가 있어!!!
미츠하가 기세등등해졌다. 타키는 그런 미츠하의 기세에 눌려 말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그건...
─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아 이 변태야!!!
결국 미츠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 미안해. 미츠하 정말... 이렇게 사과하니까 화 좀 풀어...
─ 뭐... 됐어 날 살려주기 위한 타키군의 노력이었으니... 한 번 뿐이야. 두 번은 안 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타키를 보고 미츠하는 타키의 손을 잡고 신체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 ☆
제단에 다시 쿠치카미자케를 놓으면서 풀려있던 봉인을 다시 단단히 여몄다. 그리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잠시 기도를 한다.
「어머? 미츠하구나? 거기에 연인과 함께라니? 몸이 바뀌어도 영혼의 분위기는 똑같구나. 이렇게 아름답게 컸을 줄이야.」
갑자기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한 아름다운 여인의 희미한 형상이 나타나고 있다. 타키도 어디에선가 그 모습을 봤다. 바로 미츠하의 어머니, 미야미즈 후타바.
─ 이게 도대체...
말문을 잇지 못하는 타키.
─ 타키군이라고 했었던가요? 후훗. 고마워요. 우리 미츠하를 잘 보살펴주고 또 살려줘서. 이제 모두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간 모양이네요. 우리 미츠하도 훌륭하게 자란 거 같아서 너무 기뻐요.
희미한 형상의 후타바는 뚜렷하게 보일정도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 두 사람이 바뀌었어도 난 알 수 있답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정말 강하군요. 다행이에요.
후타바는 다시 미츠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미츠하?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일찍 가버려서 쓸쓸했지? 하지만 이제는 네 곁에 엄마보다도 훨씬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 엄마도 안심이 되는구나. 타키군을 잘 따르렴. 그는 우리 미야미즈 가문의 진정한 은인이야.
그 때서야 말문을 연 미츠하는 후타바를 향해 말했다.
─ 엄마? 엄마??? 정말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 알고 있잖니? 여기는 저승이라는 걸. 그래서 잠시 보일 수도 있겠구나.
또렷하게 떠오르던 형상이 희미하게 흐려지기 시작한다.
─ 엄마!! 가지 마요!! 가지 말아요!!!!
─ 아니란다. 이곳엔 산 사람이 있어야지 죽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단다. 미츠하? 그리고 타키군.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군요. 이제 모든 것을 알았으니 더욱 더 행복해 질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계속 두 사람을 하늘에서 지켜볼게요. 언제까지나 지금의 모습을 간직해 줬으면 좋겠어요.
「고마워 미츠하... 그리고 고마워요 타키군.」
마지막 말을 끝으로 후타바는 두 사람의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미츠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고 타키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두 사람은 동굴에서 나왔다. 이미 해는 져서 어두워지고 있었고. 이젠 서둘러 이 장소를 내려갈 때가 왔다.
─ 이제 가자 미츠하.
─ 으응. 타키군...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두 사람은 하산을 하기 시작한다.
─ 카타와레도키.
오늘 후타바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이 카타와레도키에서 만났던 것처럼 후타바를 카타와레도키에서 만났던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서로의 모습이 보이는 그 짧은 찰나.
그렇게 뜻하지 않았던 후타바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 ☆ ☆ ☆ ☆
차를 몰고 내려와 잠시 멈춰 선 곳은 이토모리 고등학교의 운동장. 주변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스쳐지나가고 두 사람은 그것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다.
─ 할머니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지 타키군?
─ 응? 무슨 말?
─ 저승에 가면 무언가를 바치고 와야 한다는 말 있잖아.
─ 아아... 그거...
미츠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 아마. 그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기억과 바꿨다고 생각해. 죽었던 나를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신의 장난.
─ 그런건가... 아마 네 말이 맞을 지도.
두 사람의 말이 어찌 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관대한 신은 두 사람의 재회를 승낙했고, 기억마저 되찾아 줬다.
─ 정말 이번엔 신께 감사드려야 하겠네. 그렇게 우리를 만나게 해줬으니.
─ 그러게 말이다. 앞으로 1년에 한번 씩은 와서 참배하자. 미야미즈 가문의 신. 미츠하의 신이니까 말이야.
─ 그래. 나는 무녀를 그만뒀고. 이제 더 이상 무녀의 의식은 계승하지 않지만, 그것만은 계속 이어지게 하고 싶네. 쿠치카미자케도 가끔은 만들어야지.
쿠치카미자케라는 말에 타키는 움찔했다.
─ 아참, 타키군? 이번엔 그거 마시면 안 돼? 정말 무슨 일 날지 모르거니와. 내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으니까 말이야.
─ 으응. 알았어. 미츠하. 꼭 약속할게.
활짝 웃으며 미츠하와 약속을 한 타키. 그렇게 이토모리를 등지고 두 번째 날의 여정이 끝났다.
☆ ☆ ☆ ☆ ☆
숙소에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 샤워를 한 후 나란히 침대 가에 앉아있었다. 아직은 몸이 바뀐 상태였지만. 잠에서 때면 이제 본래의 몸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억에서도 그랬으니까.
─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시간까지 넘나들었고.
─ 그러게... 다 저것 덕분인가...
타키는 잠시 침대 머리맡 옆 탁자 위에 올려져있는 녹슨 펜을 바라본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펜을 찾음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기억까지 찾게해 준 고마운 존재.
─ 저 펜은 죽을 때까지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 그러게 말이야. 아참 타키군. 그 때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 써줘도 될까? 저 펜은 안 나오지만. 다른 걸로 말이야. 대신에 내일 아침에 봐야 돼?
─ 으응... 나도 써주고 싶긴 한데? 괜찮아?
─ 음... 난 그 때 타키군이 「좋아해」 라고 쓰는 바람에 이름을 알 수 없어서 좀 아쉬웠어. 하지만 그것 덕분에 내가 넘어져서 못 일어날 때 힘이 됐었으니. 그걸로 괜찮을 거야.
아 잠깐!
그 때 문득 생각이 났는지 타키가 외쳤다.
─ 아직 우리 몸이 안 바뀌었잖아. 서로의 손에 쓰는 건 서로 본인의 몸에 돌아오고 나서 하자. 지금 써줘도 자신의 몸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쓸 뿐이네.
─ 어머.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일 정말 부끄러울 뻔했네. 헤헤.
─ 뭘 쓰려고 했어?
─ 비밀!! 타키군. 이제 자자. 아마 자고 일어나면 우리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 그래 맞네...
이제 잘 시간이 되어 두 사람은 이불 속에 몸을 뉘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눈을 감은 두 사람의 마지막 한 마디.
「잘 자. 내일 아침에 다시 인사하자.」
이내 꿈나라로 빠져들은 두 사람의 얼굴은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잡담>
7,8,9 편이 이번연재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만리장성을 쌓고 서로의 기억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그런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7~9화를 연속으로 보시면 좋습니다.
이제 마지막 편은 에필로그 편으로 끝날 예정입니다. 원래는 7~8편으로 끝낼 예정이었는데 템포 늦추다보니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졌네요. 원래 리마스터링전 5만자짜리가 8만자가 되버리는 마법이라니.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이것도 곧 끝이네..ㅠㅠ
리마스터링 전의 원본은 여기서 끝인데 한편 더가는 것임.
잘 읽었음.
잘봤습니다 중간에 미츠하가 죽음에 관한 기억 때문에 멘붕되는 부분과 그것을 위로하는 타키부분이 좋았네요 후타바도 등장이라니 ㅎㅎ 이번편에 주제까지 등장하고 좋았네요 마지막 에필로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마 제가 쓸수 있는 내용은 7~9편에 다 들어갔습니다. 이 중편의 목적이었죠. 이제 남은 에필로그에서는 잔잔하고 달콤하게 끝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ㅠㅠ
이 중편에서 내가 쓰고 싶은건 7~9에 다들어가있었음... 이제 잔잔한 에피소드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