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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화 보기는 링크를 따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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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두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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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미츠하는 주위에 보이는 풍경이 낯익은 자기 방의 풍경임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만은 ‘그 녀석’ 과 바뀌지 않았으면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랬으면 곤란할 뻔했지.’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츠하는 조금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타키와의 전화는 매우 갑작스럽게 끝났다. 기껏 떨리는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사실대로 말해놨더니만, 잠깐 아무 말도 없다 싶더니 갑자기 전화가 툭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무슨 생각으로, 어떤 감정이 일어나서 전화를 그렇게 확 끊어버렸을까. 전화가 끊어진 뒤에 미츠하는 그것에 대해 열심히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타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상 결국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역시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제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미츠하의 몸은 멈추지 않았다. 일어나서 잠을 깨고, 화장실로 가서 씻고, 이제 묶을 필요가 없어진 머리는 말린 채로 내버려 둔다. 사실은 이대로 대충 끝내진 않고, 나름의 코디를 좀 더 하지만, 오늘만은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옷까지 다 갈아입고 나서, 그녀는 방의 전신거울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쳐보았다. 뭐,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 때, 갑자기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언니, 일어…. 아니, 웬일이래?”


문 너머에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언니를 멀거니 바라보는 요츠하가 있었다. 미츠하는 뜻밖의 상황에 놀란 동생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요츠하, 밥 먹으러 가야지?”


# # #


사실, 어제와 비교해서 별달리 나아진 건 없었다.

여전히 텟시에 대한 것도, 사야에 대한 것도, 타키에 대한 것도, 무엇보다 미츠하 자신의 마음조차도 불분명한 채 그대로였던 것.

그럼에도 오늘은 의연할 수 있었다.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라도 절대 최악의 상황만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야카로부터 보장받았으니까.

말이 좋아서 보장이지 그냥 허울만 좋게 적당히 떠든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구두 약속 따윈 약속이 아니니 당장 안일한 생각 따윈 집어치우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미츠하는 믿고 있었다. 나토리 사야카가 아닌, 십년지기 친구 사야를.

그리고 바로 그랬기에 하루 종일 그녀는 오로지 한 사람에 대한 생각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타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만 생각했다 하면 무언가 머릿속이 꼬여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타치바나 타키라는 남자애는 과연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몸이 바뀌게 된 기구한 남자애? 좀 다혈질이긴 해도 사람은 괜찮은 남자애? 가끔은 혼자 통통 튀어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기도 한 어린 남자애?

누군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열해 보라면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나열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아무리 나열해봤자 무언가, 무언가 매우 중요한 게 빠져있다는 느낌을 끝까지 지울 수 없었다.

분명 미츠하는 타키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보름 가까이 그 사람이 되어 생활해 보았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더 알고 싶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알아야만 한다는 어렴풋한 느낌 같은 것을 계속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의 기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어, 미야미즈냐.”

“네, 아사키 선생님. 잠시 좀 드릴 부탁이 있어서요.”

“부탁?”

“그, 제가 축제에 전시하기로 한 그림 말인데요.”

“전시 취소라면 할 수 없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지레짐작에 의해 들이대어진 차가운 답변 앞에서 결국 미츠하는 잠시간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려야만 했다. 다행히도 놀랐던 마음은 머지않아 진정되었고, 그녀는 다시 평온하게 자신의 용건을 어필할 수 있었다.


“전시 취소가 아니라. 전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고 점검할 수는 없나 해서요. 안 될까요?”

“오, 그래? 그런 거라면 당연히 되지. 뭐 내 눈에는 그렇게 크게 잘못된 점은 없어 보인다마는. 직접 확인을 해야만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자, 미술실 열쇠다. 얼마든지 미술실을 써도 좋다만 다 쓰면 꼭 돌려줘야 해.”

“감사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미츠하는 조용히 미술실로 발을 옮겼다.

미술 담당 아사키 선생을 찾기 전에도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미 타키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그토록 갈구했던 ‘어떤 것’이 무엇인지는 최소한 혼자선 알 수 없었다.

결국, 미츠하는 다시 한 번 타키와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걸 위해서 그녀는 오늘도 타키에게 전화를 걸어 볼 작정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일이니만큼 오늘도 전화를 안 받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시도해보기로 정했다.

가능하다면 직접 만날 수 있었음 더 좋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거리상 그것은 무리였기에 미츠하는 아쉬움을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전화는 해봐야 아는 것이기에 지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둬야겠지만.

타키에 대한 건 그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젠 자기 몸으로 타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되돌아볼 차례였다. 또 뭔가 의미있는 정보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미 그녀도 대부분의 사실은 알고 있었다. 타키 자신에게서도 들었고, 테시가와라와 사야카를 통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제 모르는 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마츠모토를 때렸던 그 날, 타키가 무엇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지에 관해서만은 아직 그 누구에게서도 들은 바가 없었다.

물론, 일련의 일이 끝난 뒤 타키에게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긴 했다. 하지만 그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말해주기는 너무 부끄럽다면서.

그렇다면 남은 건 테시가와라와 사야카지만, 그 당시, 아직 몸이 바뀌는 현상에 대해 두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시절엔 당연히 물어볼 수 없었다.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남에게 물어본다는 건 엄청나게 부자연스러운 행위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모든 전모가 드러났기에 얼마든지 물어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처해 있는 곤란한 상황도 상황이고, 무엇보다 왠지 그런 식으로 전모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츠하는 직접 자기 눈으로 그림을 보기로 결심했고. 미술 담당 아사키 선생의 협력도 받아냈던 것이다.

이제는 눈앞의 미술실 문을 열고 그림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미츠하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이건가?’


미야미즈 미츠하라는 이름표가 선명하게 붙어있는 캔버스 앞에서 미츠하는 멈췄다. 그리곤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것이 자기 이름을 달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실소했다. 정말, 요놈 참. 나 몰래 잘도 이런 일을 멋대로 저질러 놓고. 부끄럽다고? 알지도 못하는 걸 내 이름 걸고 전시하는 나는 안 부끄럽겠니.

실없는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녀는 캔버스를 감싼 베일을 주저 없이 벗겨내었다.


# # #


“젠장, 멀다 멀다 말로만 들었지….”


각오는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10월 3일 목요일. 오후 3시. 원래대로라면 슬슬 학교가 끝날 때가 되어서 방과후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었지만, 불량 학생 타키는 이역만리 기후 현의 히다후루카와 역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물론, 학생으로서 가야만 할 학교는 당연히 땡땡이친 채였다. 뭐, 때로는 규칙 따위 알면서도 무시해야만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농구를 할 때도 준법 게임만 한 건 아니고.’


그랬다. 분명 반칙이란 건 하지 말아야 할 금지 행위였지만, 감독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하다면 반칙도 서슴없이 해서 경기의 흐름을 끊어야 할 때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타키 또한 짧다면 짧은 선수 생활 동안 그리 적지만은 않은 반칙을 범하기도 했다. 상대 학교가 반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쪼잔한 놈들이라고 욕하면서도.

이번에도 같았다. 어쨌거나 타키는 그 반칙이 필요할 때라고 판단을 했고. 저질렀다. 페널티는 받겠지만, 반칙이라는 건 그 페널티 정도야 감수하고 벌이는 작전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바로 거리.

기후 현 히다 시 이토모리. 살면서 들어본 적조차 없는 지명. 아마 미츠하가 아니었으면 평생, 죽을 때까지 몰랐을 곳이다. 도쿄에 살면서, 하다못해 지나가는 이야깃거리로라도 오르내린 적이 없을 정도로 기후 현은 도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었다. 타키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멀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히 얼마나 먼지는 바로 오늘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까지 와서, 열차를 갈아타고 기후역으로, 또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히다후루카와역까지. 여기까지만 해도 먼 길인데 거기서 다시 지방교통선으로 갈아타서 이토모리 역까지 들어가야만 하는, 그야말로 근성의 대장정.

평생 움직여 본 적도 없는 거리였지만, 그래도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열차를 타는데 이 정도면 껌이라고 생각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산이었다.


“아버지가 괜히 먼 길 떠난다고 걱정한 게 아니었어….”


투덜거림의 끝에, 타키는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걱정과 근심마저 뒤로 하고 아들의 결심을 이해해 준 아버지의 넓은 마음에 또다시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사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떼에 불과하다는 건 타키도 알고 있었다. 누군지도 잘 설명 못하는 애 때문에 그 먼 길을 학교까지 빠지고 떠나겠다니 그 어떤 부모가 이해를 해 주겠는가. 상식이 있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딱 하나, 이미 사랑에 실패해서 아내와 이혼해 버린 마음 넓은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해버리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 # #


“그 여자애가 그렇게 예쁘냐?”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아마도가. 부끄럽냐?”


타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 또한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기에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아까 꺼내놓았던 맥주를 말없이 땄다. 놀랄 건 이 다음부터였다. 아버지는 바로 마시는 대신 앞의 컵에다 맥주를 조금 따라주었던 것이다. 그리곤 말했다.


“마셔라. 건배나 한 번 하자.”

“제정신이야? 나 아직 중학생이라고?”


매우 당연한 상식을 말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또한 상식으로 맞받아쳐 주었다.


“중학생이 학교를 이틀이나 땡땡이치고 기후 현까지 갔다 오겠다는 건 제정신이냐? 이 짓거리를 허락하려는데 술 정도를 허락 못할 건 없지. 아무한테도 안 이르고 나만의 비밀로 할 테니 얼른 잔이나 들어라.”


핀잔보다도 ‘허락해 주겠다’는 한 마디가 타키의 귀를 강하게 파고들었다. 망설임도 잠시, 곧 타키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손의 맥주캔을 아들이 든 잔에 부딪치며 익숙하게 구호를 외쳤다.


“불초 아들놈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뭐라는 거야!”


구호의 뜬금없는 내용에 화들짝 놀란 타키가 펄쩍 뛰었다. 막 입으로 캔을 가져가려던 아버지가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냐, 아직 모르는 거였냐? 그럼 일단 잔말 말고 마셔.”


속을 바닥까지 긁어내는 듯한 아버지의 말투에 타키는 잠시 분노했지만, 그래도 더 끌었다간 혹시라도 허락을 취소할세라 저어되었던 탓에 말없이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씩 웃은 아버지 또한 가볍게 캔을 비웠다.

그렇게 부자지간의 조금은 어색한 첫 건배가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잠시간 첫 건배의 여운을 즐겼다. 침묵의 끝에 먼저 말을 꺼낸 건 아버지 쪽이었다.


# # #


내 사랑은 너도 알다시피 실패했다. 네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정해도 좋다. 대신, 아버지처럼 실패하지 마라. 말을 할 때는 반드시 해야 한다. 기회는 그렇게 많이 오는 것이 아니고, 지나고 나면 이미 늦어버리게 되니까.

아들을 붙잡고 아버지가 늘어놓았던 길고 긴 얘기는, 요약해보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인생 선배로서 자신의 실패를 아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들을 향한 마음이 듬뿍 담겨있었다. 그걸 느꼈기에 타키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고 아버지 앞에서 약속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여행을 허락하며 아버지가 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여행 기간 동안 매일 밤마다 반드시 전화를 할 것.

2. 그 아이랑 잘 되면 나중에 꼭 소개해줄 것.


“쳇, 잘 되면 소개해달라는 건 또 뭐야. 하여간 주책바가지 아버지 같으니.”


어제의 일을 생각하고, 아직 카스미가세키에서 일하고 계실 아버지를 혼자 열심히 씹어가며 이토모리 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토모리 역엔 2시간에 한 번 열차가 들어온다는 점은 미츠하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곤 해도, 진짜로 2시간을 기다려야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세상에 누가 바로 눈앞에서 열차를 놓칠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제발, 한 번만 더 문을 열어주세요! 하고 빌어도 봤지만 기관사는 무심하게 다이어를 따라 발차해 버렸고, 어쩔 수 없이 타키는 2시간 동안 벤치 신세를 져야만 했다.

물론, 2시간 동안 이토모리 방면으로 가는 열차가 아예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토모리 역은 깡촌의 조그마한 간이역이었기에 그리 열차가 많이 서지 않았다. 2시간이라는 건 이토모리 역에 서는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래. 미츠하에게로 가는 열차가.


‘다음 열차를 타면, 미츠하랑…’


만날 수 있다.

타키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미츠하는 아직 내가 이토모리에 간다는 걸 모르는구나.

어제, 고백 받았다는 그 한마디에 왠지 모를 감정이 잔뜩 끓어올라서, 정신차려보니 이미 전화는 스스로 끊어버린 뒤였다. 그 뒤로도, 얘기를 더 해봐야지, 해봐야지 하면서도 결국 다시 전화는 걸지 못했다. 미츠하 또한 그 뒤로도 전화를 걸지 않았고, 그래서 미츠하는 그가 이토모리까지 찾아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민폐… 일려나? 당연하지. 말도 안하고 외간 남자가 불쑥 나타나다니 그게 민폐가 아니면 뭐겠는가. 역시,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무지하게 신경 쓰이려나? 아니면…. 혹시.


‘으아악, 나라는 놈은!’


당연한 문제에 대고 괜히 정신승리하려 들지 말란 말이다!

타키는 고개를 붕붕 흔들어 갑자기 떠오른 잡념을 몰아냈다. 곧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혹은 갈 데가 없어서 시계로 향했다.


이토모리행 열차 발차까지, 앞으로 1시간 46분.


# # #


이토모리 고교 미술실.

괴짜 선생으로 유명한 아사키 선생의 소굴답게, 여기저기 어질러진 미술 도구와 각종 그림으로 엉망진창. 그런 와중에도 그림 자체는 전부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는 게 역시 괴짜라도 자기 할 일은 하는 아사키 선생다운 방.

그리고, 그 방의 한가운데에서, 미츠하는 그림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타키가…”


이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그림에 압도되었다. 벌어진 입을 막은 두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타키, 너라는 사람은….


그것은, 아름다운 한 소녀의 그림이었다.

주변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듯, 등이 여기저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 또한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저 먼 하늘에서 마치 떨어지기라도 할 듯이 스쳐지나가는 혜성 또한 이토모리의 하늘을 찬란히 수놓아주고 있었다. 도저히 한 시간의 제한시간 내에 연필로만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그림.

그 찬란한 축제의 한가운데에서, 소녀는 웃고 있었다.

환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함박웃음. 고민 따윈 원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 그림 속 소녀는 그렇게 마음껏, 솔직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이 나오지 않은, 누군가의 손을 힘껏 잡아끌면서.

그리고 소녀의 머리에는, 익숙한 머리끈이 있었다.

이건…


“나잖아….”


설마, 설마 하고 미츠하는 그림을 보고 또 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도저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림 속 소녀의 정체는, 바로 미츠하 자신이었다.


“타키… 너는…”


더 이상 입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미츠하는 너무 중요한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꼬이고, 또 꼬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감정의 흐름. 이 흐름을 풀어내려면 너무나 많은 것이 필요해 보였다. 무엇을 알아야 할까. 여기서 뭘 더 알아야 할까. 그렇게 미츠하는 이틀간 고민을 했다. 하고 또 했다. 그러다가 또 친구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풀리지 않던 갈증은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겠지. 아직 내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반증이겠지.

그러나 미츠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꼬이고 꼬인 줄 알았던 감정의 흐름, 그러나 그 흐름들 사이를 일관하는 단 하나의 큰 흐름이 그녀의 마음속에 있었음을.

너무나 많은 것이 필요해 보였던, 그 느낌은 사실 착각이었음을.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아무도 듣지 않는 미술실에서, 그녀는 조용히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게 던져진 질문, 그리고, 역시 이 자리에 없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줘야만 할 답 또한 조금씩 구체화되어 간다.

지금 이 순간, 미츠하의 마음속에 어떤 결심이 섰다.


# # #


“…오랜만이다.”

“그런가? 음, 그러네. 요즘 이렇게 서먹서먹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으니까.”


뻣뻣하게 굳은 채 인사를 건넨 테시가와라를 미츠하는 웃으며 긍정해 주었다. 그녀의 웃음에 테시가와라의 몸을 꽉 잡고 있던 긴장감도 조금은 힘을 뺐다.

솔직해지자. 라고 생각한 순간 자각해버린 마음. 그래서 테시가와라는 눈 딱 감고 고백을 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그는 미츠하를 만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무서웠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미츠하가 먼저 그를 부른 것이다. 응하지 않을 수 없는 부름에 테시가와라는 긴장감이 꽉 잡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자리에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역시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봤자 서먹해져 있는 우리 둘 사이엔 침묵만이 가득하겠지. 그런 답답하고 갑갑한 상황을 테시가와라는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답게, ‘테시가와라’ 답게 그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내 질문, 어… 생각은, 좀 해 봤어?”


조금은 부끄러워져서 질문이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츠하가 모를 리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대답에 앞서, 미츠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말을 하고 나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이틀 전 테시가와라가 느꼈던 압박감을 지금 이 순간, 미츠하 또한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똑바로 말해야만 했다. 지금의 이 마음을, 기분을, 대답을. 곡해의 여지없이 확실하게 전달해야만 하니까.

격탕하는 마음을 미츠하는 애써 억눌렀다. 마침내, 미츠하의 호흡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그 모든 모습을 테시가와라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말이 테시가와라에게 떨어졌다.


“미안해.”


그 대답을 들은 순간, 테시가와라의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러기도 잠시, 곧 그의 두 손은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그렇지만 그의 다리만은 여전히 땅을 굳건히 디디고 서 있었다.

곧, 테시가와라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았다. 그의 작은 두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감긴 두 눈에선,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미츠하는 생각했다. 마치, 우는 것 같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테시가와라는 씁쓸하게 말했다.


“나는, 여기까진가….”


- 26화. '폭풍전야'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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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후기.


죽겠습니다. 몇번을 지우고 다시 쓴 결과입니다.


역시, 텟시에겐 예정된 실연이었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텟시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텟시는 이 팬픽에서 꽤나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덤으로, 중학생 주제에 타키 행동력이 너무 좋은 건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뭐, 보내고 싶었으니까! 보냈습니다.


아무튼 이제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난이도가 가면 갈수록 치솟기만 하는군요. 거참.


너무 어려워서 다른 단편으로도 잠깐 외도를 해볼까 했습니다만, 그게 이것보다도 더 어려워서 아직 채 반도 완성을 못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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