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춤, 춤] 이랑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본편 내용이랑 하등 상관은 없으니 안심하고 시청해 주세요.
경고. R18이지만 후타바 이야기는 노가리를 많이 깝니다.
보는 분들의 눈에 묘사가 약해보일 수도, 노골적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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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링크
http://gall.dcinside.com/yourname/73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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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아름답다.
잠에서 깨어났는가? 찬란한 아침햇살이 잔잔한 호수결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따듯한 손길에 요동치는 호수. 토시키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 앞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토시키가 조용히 눈을 반짝였다.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 다시 눈 앞의 호수. 그러자, 상의에 실오라기 같은 유카타 한 벌을 걸친 후타바가 부스스 기지개를 켰다. 아침햇살에 가려진 후광
이 이제야 떠오른다.
타지마할의 서광이었다.
호수를 등진 후타바는 서서히 양 팔을 머리 위로 교차했다. 토시키는 햇빛이 그녀의 몸짓에 따라 분광되고 굴절되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도 순식간이라 마치, 그 광경만이 역재생되는 것처럼 보였다.
두 눈이 아려왔다.
토시키는 햇빛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햇빛이 서서히 그녀를 잠식해가자, 그녀는 거대한 악보속에 홀로 새겨진 새카만 음표처럼 보였다. 텅 빈 악보 속에 칠흑같은 발자국. 곡선과 물결치는 꼬리결의 완벽한 점8분음표까지.
이상하지 않은가? 토시키는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건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었다. 입은 멍청할 정도로 높아졌고, 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였다. 오로지, 그녀만이 현실속에 존재했고, 가장 비이성적인 감각이 토시키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후타바...."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스트레칭을 하려는 것일까. 겨드랑이에서부터 시작된 꼭지점이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팔꿈치로 오가자 피타고라스의 형태가 완성된다. 기하학의 알파. 삼각형이자 직각이 목표가 아닌,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괴물같은 수식.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서서히 포개지며 명상에 잠겼다. 다시한번, 몸이 부르르 떨린다. 잔잔한 호수결과 갈증으로 쉬어버린 목. 유카타가 살짝 흔들리자 마침, 파도소리가 들렸다.
잿빛의 유카타에 씌워진 햇빛이 걸러지는 광경에 토시키는 마른 침을 꿀떡 삼켰다. 메마른 모래알갱이가 입 안을 까끌까끌하게 만들었다.
어둠에 몸을 숨긴 그녀는 테두리 부문만이 햇빛에 반짝거렸는데, 그물망 같은 유카타 사이에 가려진 그녀는 거대한 성운처럼 보였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말머리 성운? 독수리 성운? 다만, 시커멓게 솟아오른 죽음의 신이 풍만하고 차가운 유방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을 뿐이다. 시커먼 폭포수가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머리칼 아래로 잠긴 눈이 서서히 커진다.
죽음에 가까운 긴 명상.
긴 잠에서 깨어난 별의 탄생을.
토시키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두 눈에 담았다. 아니, 담고 싶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
"바보같군." 토시키가 중얼거렸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참나무 책상 위는 후타바가 읽었던 책 한권과 차 한잔을 얹어놓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오늘 밤, 토시키를 곤경에 처하게 했던 에드가 엘런 포의 단편집은 먼지 한톨 없는 한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머리 위로는 등허리 높이만한 책꽂이가 있었고 그녀의 장난에 아이디어를 불어넣곤 했던 프랑켄슈타인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가계부 정리나 재테크 공부를 위해 사놓은 책들엔 먼지가 한 가득 쌓여있었지만, 꼭대기 층엔 사전 사이즈의 초장편 집들이 가고일 석상처럼 책장 위에서 굽어보고 있었고, 예외없이 겉표지가 전부 너덜너덜했다.
뜨겁게 묻어났다가 식어버린 수증기 자국. 책장 아래로는 자잘한 지우개 가루가 톱밥처럼 쌓여있었고 그 위로는 구입한지 오래되 보이는 하얀 노트북이 피로에 절여진 채, 힘 없이 CPU 쿨러를 돌리고 있었다. 참나무 결 위로 뜨거운 하품이 뿜어나왔다. 타자판 위의 알파벳이 지문의 열기에 반쯤 지워져 있었다.
타자판을 주무르던 토시키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노트북 화면 위를 질주하던 빈 블랭크가 멍청하게 두 눈을 껌뻑였고 토시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짓누르며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꿈의 내용을 생생하게 기록하던 토시키는 글의 내용을 쭈욱 검토해보곤 맥없이 노트북을 덮었다. 3년 약정은 훌쩍 뛰어넘긴 오래된 노트북이 갑작스런 절전모드로 돌입하며 참나무 테이블 결을 뜨겁게 태우는 소리가 들렸다.
노트북에 급하기 휘갈겨 적은 기록물에는 꿈의 내용과 사학적으로 유사한 사례나 현상들(가령, 말머리 성운의 어둠이 과거, 인류학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없었고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들로 넘쳐났다.
멍청한 짓이었다.
처음엔 그저 꿈이었다.
토시키는 꿈에서 깨자마자 별안간 이불에 잠긴 몸을 털고 일어났다. 생생한 기록을 위해 적을만한 도구가 필요했다. 생명과 직결된 일처럼 머리속이 백치처럼 새하얗게 물들었다. 속사로 옮겨적어야 했다.
꿈을 기록했다는 사람들은 많았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아우르기 까지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은 각각 머리맡에 작은 필기노트나 녹음기를 지참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루한 사색에 영감을 일깨워 주는 꿈들. 복권 번호를 읊어주는 귀신이나 가위나 눌리게 만드는 망령따위는 아니지만, 가끔 토시키에게도 운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후타바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그는 더욱 생생한 글을 기록할 수 있었다. 꿈 보다 생생한 영감....
불행하게도, 간밤의 거사덕분에 기록할 녹음기나 노트따위를 지참할 여유는 없었다. 후타바의 오래된 노트북이 토시키의 눈에 띄었고 뜻하지 않은 야간 근무덕에 CPU 쿨러가 열쇠를 잃어버린 당직근무자에게 호출된 야간경비처럼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절전모드에 들어선 CPU는 한참 후에야 촛불이 꺼지는 소리를 내며 축 늘어졌다. 눈 앞이 시커멓게 암전되자, 9월의 쌀쌀한 가을낙엽이 싸늘하게 칼바람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 드리워진 커튼너머로 다닥다닥 낙엽이 엉겨붙자 귀신이 그림자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토시키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등 뒤로 손을 짚었다. 눈의 피로가 몰려왔던 것이다. 솜이불 아래로 파란 공기가 닿자 간신히 감겨졌던 눈을 떴다. 내장을 모조리 덜어간 것처럼 거죽안은 싸늘하게 식었고 환각처럼 생생했던 꿈도 축제가 끝난 뒤의 모닥불처럼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다행이도, 기록엔.....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다.
전혀 객관적이진 못했지만.
그 때, 후타바가 잠결에 그의 등 위로 손을 척 올렸다.
팔뚝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토시키가 힐끗 뒤를 돌아보자 착 달라붙은 손바닥이 잠시 딱딱한 벽을 더듬으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가볍게 토닥였다. 반쯤 감겨있는 눈 아래로 푸른 달빛이 엿보였다. 잠들어 있었다.
꿈에서 길을 헤메는 건가. 토시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후타바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게 가만히 앞을 바라보며 온 신경을 등으로 집중했다.
좋은 감촉이었다.
자립심을 키워주려는 어미의 마음일까? 아니다. 대조군이 적절하지 않다. 그녀 앞에선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그건, 이 마을에 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공통된 이야기였다.) 그녀는 나와 이야기를 할 때 언제나 모성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같이 잠을 청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항상 그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때때로는, 손가락만으로도. 발가락으로도. 저 헝클어진 머리결만이라도. 그녀는 나를 데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이끌곤 했다. 덩굴처럼 두 팔을 칭칭 얽은 채. 비밀의 화원 속으로.
후타바의 뜨거운 손바닥이 닿자 토시키는 그녀의 손길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솜이불 속에 기어나온 손바닥은 불지장처럼 팔딱거렸고 차디찬 등에 적셔진 손가락 사이로 달빛이 흘러들어왔다. 냉돌처럼 식어버린 등짝위로 흉폭한 맥박이 느껴지자 토시키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 때, 따듯한 온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허밍(Humming)이 들려왔다. 귓결을 간질이는 소리였다. 토시키는 문득, 잠결에 푹 빠진 손바닥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어둠에 적셔진 새하얀 손바닥. 포개진 입술을 가볍게 헝클이는 그림자. 머리칼의 끝자락으로 향할 수록 깊어지는 어둠과 폭죽처럼 스멀스멀 어둠을 좀먹는 불꽃. 손바닥이 다시 스르르 이불 속으로 주저앉기까지 토시키는 가볍게 몸을 떨며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벼운 한숨소리가 뒤에서 들리자, 토시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을바람처럼 스산한 미소였다.
달빛에 처량하게 식은 등과 헝클어진 뒷머리 털. 반쯤 켜진 눈꺼풀 아래로 잠든 눈은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토시키가 헝클어진 뒷머리를 어루만지자, 다시 기분좋은 허밍이 들려온다. 이번엔, 노래가락인가? 토시키는 그녀의 엎드린 자세를 고쳐잡은 후에 이불을 턱 아래까지 올렸다. 이불 아래에 드러난 텅빈 발가락이 마굿간을 지키는 경비견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확실히 어젯밤의 잠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발끈 달아오른 요기가 하복부를 진득하게 괴롭히자 토시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반갑군."
오늘밤은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화장실을 다녀오고 난 뒤, 토시키는 갈팡질팡 발걸음을 옮기며 냉장고 문을 제꼈다. 생수통 째로 벌컥벌컥 들이키자 물통에서 공기를 찢고 터지는 소리가 공허한 복도를 울렸다.
침실로 돌아와보니 후타바가 깨어있었다.
어스푸레한 연기. 스탠드의 반사광이 살며시 드러난 광대뼈에 깊게 페었다.
그녀는 피로감에 주름잡힌 눈꺼풀을 가다듬으며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질을 하는 해녀가 그렇듯이 입을 굳게 다문채 숨을 참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 토시키가 만지고 있던 노트북의 하얀 공백위로 삐뚤빼뚤한 글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후타바는 이불 위에 비스듬히 정좌한 채, 십대소녀가 요가 프로그램을 따라하려는 듯이 엉성한 팔동작을 머리 위로 교차시키고 있었다.
후타바가 토시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피곤에 잠긴 눈꺼풀 안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이 드러났다. 갓 잡은 활어의 싱싱함이.
토시키는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못볼걸 봤을 때 건네는 인사치레에 가까웠다. 호기심에 똘똘 뭉친 동공이 노트북의 하얀 공백으로 가득찼다. 후타바의 입가에 서서히 기지개가 번졌다. 웃음이 번지자 토시키는 어젯밤의 작은 소동이 떠올랐다. 멋쩍은 미소가 표하는 애도. 에드거 엘런 포가 앞으로는 영원히 구석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길 바라는 짧은 기원. 신관의 자격이니 이 정도는 과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아, 안자고 있었어...?” 토시키는 식체를 한 것처럼 헛기침을 했다.
“물 좀 갖다줘요. 당신.” 그녀가 팔뚝을 교차시킨 채 허리를 좌우로 꺽으며 말했다. 자세를 잡으며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자 향유기름같은 윤기가 온 몸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토시키가 물을 가져오고 난 뒤에도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꼿꼿이 돌리며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욱 그럴싸해졌다. 아니, 그새 토시키의 머릿속을 그대로 답사한 듯했다. 등 뒤로 신비로운 호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토시키는 괘념치 않았다. (현실 속 침실에선 이토모리 호수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땀에 도드라진 몸이 사막의 고운 모래알갱이처럼 번쩍였기 때문이다.
짠 바닷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물... 여깄어. 여보.” 토시키가 말했다.
토시키는 무심한 척 물통을 들고 다가갔다. 바닷내음에 뱃속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자세를 취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잡아뜯던 후타바의 위로 검은 거인이 높게 솟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어깨에 걸치던 유카타에 몸을 폭 숨겼다. 등으로 유카타를 끌어안자 굴곡진 물결이 허벅지에 진하게 입을 맞추는 모양이 되었다.
“날 위해 쓴 거예요?”
갈증에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다.
토시키의 목이 발기한 것처럼 호되게 붉어졌다. 얼굴은 암영 안에 가려져 있었다.
“... 중요할 것 같은데, 꿈속에서 당신이 나타났어. 거북했다면 미안해.”
“아뇨, 당신이... 이렇게 감상적인 줄은 몰랐어요.”
후타바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며 토시키를 올려다 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손 닿지 않은 머리칼이 볼을 타고 느슨하게 흘러내렸다. 토시키는 화면 너머로 빈 공백을 슬쩍 곁눈질을 하며 말했다.
“언제, 깨 있었던 거야?”
“달밤의 연주소리가 잠 깨기에는 정말 좋은 리듬이거든요.” 그녀가 싱긋 웃자, 토시키는 난감하다는 투로 짧게 목을 풀었다.
냉수통을 든 손바닥이 냉기에 저렸다. 땡땡하게 부은 손바닥엔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토시키는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화면을 슬쩍 훑어봤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최하단의 말미부문이 검은 블랭크로 뒤덮여있었다. 제길.
“위쪽은 무슨 뜻이에요? 묘사가 좀... 애매한걸요.” 후타바가 앉은 자세로 손을 쭉 뻗자 화면위로 또다른 블랭크가 칠해졌다.
토시키가 모니터 화면으로 고개를 쭉 내밀며 눈을 찡그렸다. 백색 모래사장 위로 개미 떼 같은 조막만한 글씨체가 화면을 따라 사납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후타바가 토시키의 엉덩이를 끌어당기자 입에서 순간, 피식 터지는 소리가 나왔다. 웃음이 터져나오자 토시키는 헛기침을 하며 진압했다.
“인류 공통으로 볼 수 있는 상징 중에 하나야.” 따위의 말을 생각을 하던 그는 무겁게 조여오는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진정시켰다. 노트북을 정면으로 받은 빛이 동공을 파고들자 안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에 두 눈을 찌뿌렸다.
후타바의 손가락이 짚은 곳은 피타고라스의 묘사였다.
순간, 낯빛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대체 어떤 변명이 써먹힐 수 있을까? 내 와이프가 이렇게 어여쁘다? 학회에서 발표한다는 이야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공식자리였다면 공처가 취급이나 당하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토시키는 문득 팔뚝을 교차시키며 어정쩡하게 요가자세를 취하던 모습이 문득 꿈 속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후타바가 재밌다는 투로 토시키를 바라보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렸다. 대낮처럼 뜨거운 한숨이었다.
잠시 후, 토시키가 말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평면 기하의 정리법 중 하나야. 한쪽 빗변이 다른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두 개의 정사각형의 면적 합과 같다는 뜻이야.... 음. 그러니까... 여기선, 어떤 각도로 변해도 유지되는.... 그러니까. 삼각형 모양이 항시 유지가 된다고.”
“이렇게 말이에요?” 그녀가 팔뚝을 머리위로 교차시키자 매끈한 유방이 드러났다. 팔꿈치가 서로를 지탱하며 이루어진 빗변. 두 변들 사이로 놓인 쇄골속에 칠흑같은 모서리 점이 토시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커먼 흑발아래로 펼쳐진 검은 심연.
팔뚝을 쭉 뻗자, 그녀는 태평하게 입을 오므리며 하품을 했다. 모락모락 보이지 않는 김이 콧김을 통해 뿜어져나왔다.
“흐응, 그래도.... 이러고 있으니까... 날개뼈가 확실히...! 쑤시네요.”
후타바가 팔을 내리며 토시키의 품으로 등을 맡겼다. 웃음소리가 토시키의 가슴결을 타고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깊은 곳 아래에서부터 또 다른 짠내가 올라왔다. 토시키는 군말않고 후타바의 등을 조곤조곤 주물렀다. 우직한 손길 아래로 하얀 유카타가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맨들맨들한 살결에 비하면 유카타 자락은 사포처럼 거칠기 짝이 없었다. 진득한 살냄새가 오도독거리는 소리와 함께 분질러졌고 토시키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때, 허벅지 위로 문어처럼 건조한 손길이 천천히 감아올라왔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부드럽게 그의 가슴팍 움켜쥐었다.
“여보.”
토시키는 말없이 옆구리와 팔뚝사이의 날개죽지 사이로 손가락을 옮겼다. 후타바의 목소리가 덩달아 떨려왔다.
“어젯밤의 일... 충분하지 않았죠? 꿈자리가 사나울 만도 해요..”
허벅지의 바깥을 손바닥으로 여러번 훑었다. 덩굴이 세월을 타고오르는 것처럼 은밀하고 신중한 손길이었다. 마른 입술이 토시키의 턱에 닿았다. 고른 숨결이 닿자, 마른 산불이 턱 밑을 불태웠다. 토시키는 고개를 밑으로 내릴 수 없었다. 시커먼 어둠이 그를 올려다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식은 땀이 이마를 덮었다.
“그런 게 아냐.” 토시키가 턱을 빼며 말했다. 어투는 부드러웠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턱 밑에 그르렁거리는 야수의 숨결이 가슴팍 아래로 웅크렸다. 뒷머리를 기대며 말없이 허벅지를 쓰다듬는 모습은 처량했다. 유카타 아래로 차가운 침묵이 높게 고개를 치켜들자 그녀는 차가운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긴 머릿결이 등 위로 차갑게 드리웠다. 한기가 맨살을 타고오르는 생각이 들자 팔뚝에 덩달아 소름이 돋았다.
검은 덩굴아래로 눈동자가 조용히 토시키를 향해 돌아보았다. 아니, 염탐하고 있었다.
“주물러줘요.” 후타바가 말했다.
토시키는 무릎을 이불위로 지탱한 채 그녀의 등 위로 섰다. 마르고 앙상한 등 위로 유카타가 날개처럼 걸쳐졌다. 문득, 자신의 말이 너무 냉혹했다고 생각했다.
자잘한 뼈대와 척추기립근. 등골 사이를 길게 파인 수로. 양 날개뼈가 고대도시에 남겨진 마지막 보루처럼 보였다. 마르고 앙상한 집터 사이에 터전을 잡은 근육들. 쇼트닝 가루가 손길이 닿는 곳마다 묻어났고 누룩처럼 보기좋게 부풀어올랐다.
토시키가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며 날개뼈를 주무르자, 허리 아래로 부러진 부리가 수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내려가길 반복했다.
그 때, 후타바가 웃음을 터뜨렸다. 근육의 노곤함이 불러온 매마른 웃음 말이다.
“당신, 당신. 그때, 첫날밤 때 기억나요? 우리 엄마랑 같이있던 그날 밤 말이에요.”
땀을 흘리던 토시키는 그렇다고 말했다. 좋은 기억이었다. 엄지손가락 아래로 딱딱한 공기방울이 닿았다. 낮은 신음소리를 시작으로 토시키는 열심히 반죽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다시 딱딱해졌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그날 당신을 <“미조구치 군!”> 라고 불렀잖아요. 사위한테 말이에요. 그 때 내가 얼마나 성을 냈는지 참.”
토시키의 손길이 점점 강해졌다. 그녀는 아픈 줄도 모르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허파가 짓눌리는 소리가 청명한 공기를 타고 가늘게 떨렸다.
토시키가 끙끙대며 말했다. 웃고 있었다.
“나 혼자서... 성처리나 하고 있었지 그때.” <성처리>라는 단어에 굳어있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땐, 바깥에 구경꾼들로 가득했잖아요. 바람만 쌩쌩 불던 밤이었어요. 십리 밖에서도 우리가 뭘 하는지는 다 들릴 밤이었죠. 당신도 알고 있었을거에요. 엄마는 그 때, 문지방 앞에서 조용히 앉아 신들께 빌고 또 비셨죠. 부부의 연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이에요. 엄청나게 큰 목소리였죠....”
<“두 인연이 한 곳에 얽히는 것 또한 무스비. 모든 것은 흘러가게 냅두시오!”>
히토하의 호령소리가 토시키의 귓가에도 들렸다. 호랑이가 튀어나온 것처럼 상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합이었다. 농담거리도 안됐지.
후타바가 계속 말을 이었다.
“...궁사님의 입장에서 한 말이었지만 저도, 당신도 그 상황이 모두 불편했어요. 당신은 그 때 이렇게 말했죠. 아직도 잊을수가 없어요. <부부가 첫날밤에 앞서 대화를 많이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섹스 말이에요. 사람들 앞에서 첫날밤을 치루는 날에 그렇게 말했죠 당신은. 저한텐 이렇게 들렸어요. 당신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전통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겠지만 말야!”
후타바가 꽉 눌린 바리톤을 쥐어짜며 말했다. 초원의 뿔나팔처럼 울창한 울림이였다. 토시키가 웃음을 터뜨렸다. 가지런한 누런 이와 함께.
“궁사님은... 그게, 신사를 위한 일이다... 라고 하셨어... 벽문 너머로 부부관계를 가만히 듣고 계시는 입장도.... 난처하셨을지도 몰라.... 우리가, 지금....지금 생각해보면....참 소름끼치는 일이었지만... ”
“흐음.” 어깨 너머로 공기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대신 가쁜 숨소리를 토했다.
그런걸로 눈도 깜빡일 분이 아니시죠.
“....아무렴. 그 땐 잘 넘어갔잖아?”
한참의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로 침묵이 찾아왔다. 이불 스치는 옅은 소리만이 들렸다. 끙끙거리는 등 근육과 간헐적으로 피로를 토해내는 결린 근육결들.
후타바의 등 근육을 주무르던 토시키의 엄지에서 뿌드득 소리가 들렸다. 옅은 파열음이었다. 토시키는 허리를 부르르 떨며 쭉 내밀었다.
우두둑.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히자 쑤시던 등 근육에 달콤한 감상이 전해졌다. 그는 지친 얼굴로 후타바의 옆에 바짝 드러누웠다. 새근거리는 숨결이 볼을 간질였다. 반쯤 감긴 눈은 볼살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살짝 벌려진 입술너머로 새근새근 숨소리도 들렸다.
이불을 덮지 않은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솜이불이 그를 점점 이불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불이 늪지대처럼 서서히 그의 두 눈을 삼켰다. 이불을 덮을 생각도 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두고도.
그는 유언을 남기듯이 후타바의 어깨를 깊숙이 붙잡았다. 작은 환희가 미적지근하게 적셨다.
변명이 아닌 사실을 말해야 했기에 그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살짝 떠진 눈꺼풀이 토시키를 보고 있었다. 차갑게 젖어있었다.
졸음일까?
꿈을 꾸게 된 계기. 바닥을 긴 것. 생각해보면 그것은 수치심이었다.
묵묵하게 땅 위를 기웃거리며 열매를 주워담았다. 묵묵히 사랑하는 것. 이것도 수치심일까? 가슴이 울렁거렸다. 큰 눈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웠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었다. 마음 속 어딘가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다. 큰 거목나무 위로 형형색색의 온갖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고. 풍요로운 가을 한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언어와 수치심.
모든 결실들이 평등하게 매달려 있었다.
토시키는 한 손으로 그녀의 귀 뒤로 머리칼 한 가닥을 쓸어넘겼다. 손가락에 부딪히자 머리카락이 스프링처럼 이리저리 튀어나왔다.
“당신이 좋아.”
낮게 중얼거리며 토시키는 후타바의 손가락 위로 입술을 갖다댔다. 손톱이 콧잔등에 부딪히며 살갗을 헤집었다. 두 눈이 감겨왔다. 실눈으로 본 마지막 풍경은 아름다웠다. 살짝 벌어진 은하수 아래로 펼쳐진 검은 머릿결.
그 때, 토시키의 등에 깊은 손톱자국이 박혔다.
우지끈.
거목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토시키의 가슴 위를 덮쳤다.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과 등 아래로 간질이는 이불결.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건 초가을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시커먼 덩굴이 머리 위를 덮었다. 귓가를 간질이며 틀어막았고, 두 눈을 장막으로 가렸다. 그리고 이제는....내게서 언어조차 앗아가려듯이.... 입술을 포갰다.
뜨거운 향유고래가 서로의 태반너머로 지느러미를 뻗어왔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양수로 가득찬 세계는 축축하고 어두웠다. 두 향유고래가 얼굴을 맞대며 반갑게 서로를 쓰다듬자 안타까운 한숨이 서로의 양수를 덮혀왔다. 새끼를 낳은 어미가 태반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남김없이 쓰다듬었다.
보듬는 손길은 애잔했고, 사랑으로 가득찼다.
입술을 가볍게 뗀 후타바가 토시키를 바라보았다. 칠흑같은 머리카락이 장막처럼 토시키의 머리를 덮었다. 배 위로 칠흑같은 한쌍의 배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눈빛은 그믐달이었다. 졸음과 기묘한 분위기에 흐느적거리는 눈빛이 말했다. 몸을 겨우 들썩일 수 있을 정도의 공간. 다시 숨이 막혔다.
“당신과 하고 싶어.”
“지금요. 여기서 지금 당장.”
부리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곧 어둠이 부드럽게 감쌌다.
토시키가 허리를 곧게 피며 탐스럽게 열린 과실을 취하기 시작했다. 부르짖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오자 그는 서둘러 마개를 열어 소리란 소리를 모조리 주워담았다. 앗아간 언어가 다시 뚜껑 안으로 새어들어왔다. 술잔이 넘치는 소리.
“토시키.... 토시키.... 좋아... 좋아...” 고개를 젖힌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후타바.... 후타바.... 후타바....”
반말을 하는 당신은 오직 이 순간에만 볼 수 있지. 뜨거운 콧김이 서로를 어르고 달래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토시키는 극히 냉정하게도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려 애썼다.
밀착한 체온과 바깥. 가을 칼바람의 서늘함.
등줄기의 땀과 바짝 긴장한 허벅다리들.
한 곳만을 응시하는 공허한 동공과 만족을 모르는 널뛰기.
노을에 가라앉는 해와 여명에 도망가는 달.
폐를 가득채운 유독한 유황불과 곧 녹초가 될 바다냄새.
오로지 고정된 것은 눈동자. 서로를 활활 태우는 등불과 길쭉한 속눈썹들.
서서히 감겨오며.
손톱자국이 피부를 뚫고 나왔다. 토시키가 옅은 한탄을 뱉어내자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고운 앞니가 뜨겁게 베어 문 머리칼을 귓가로 뱉어냈다. 진한 입김이 귓불을 간질였다.
먼저 정신을 차린 후타바가 어느새 귓가를 입술로 베어물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진한 여운이 다시 몰려왔다.
계속해서.
두 사람은 가쁜 미소를 지으며 밤이 그대로 지나가겠끔 기다렸다.
오래 도록 누워있었다.
To Be Continued.... 비정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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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후타바 이야기는 한동안 휴재하고
한동안은 춤, 춤, 춤 팬픽이나 건들여야겠네요.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정적이양
근데 R18이라고 하기엔 수위가 낮다 ㄹㅇ..
묘사를 너무 예쁘게 하려다보니 독해가 한 번에 잘 안 되는 부분이 쬐끔 있어용...ㅠㅠ
19씬을 너무 묘사로 덮엇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