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씩 정리 해 보도록 하자.
먼저 미츠하의 예상과는 달리 타키는 세 살 연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서로 성씨가 아닌 이름을 부르고 있었으며, 말까지 놔 버렸단 사실.
마지막으로 무척 낯익고 그리운 기분이 들지만, 분명히 두 사람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판 모르는 남이었다는 사실 등등….
여기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어렸을 때 만난 적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 해 보는 거지만 애석하게도 타키는 도쿄에서 태어난 이후로 이곳을 거의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딱 한번 이토모리에 온 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오년 전이다. 사고가 났었던 날이거나 혹은 그 이후에 왔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주 옛날도 아니고 겨우 5년 전에 그와 만났더라면 기억 못할 리가 없다.
즉, 무슨 가설을 세운다고 해도 앞뒤가 전혀 맞지를 않고 있단 소리다.
계속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부러지는 가설에 지쳐버린 미츠하는 가는 날숨을 토했다.
“으음… 복잡하네.”
미츠하는 사무실 구석에 방치된 낡은 복사기를 쳐다보더니 A4용지를 한 장씩 뽑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게 찢어댔다. 그리고 그 광경을 실시간 목격한 여동생―요츠하(四葉)는‘위험해… 미쳤어… 또 귀신이 들렸나봐…!’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톱을 오물오물 씹어댔다.
“…? 요츠하, 얼른 도시락 두고 돌아가렴. 자꾸 꾸물대다간 점심시간이 끝나고 말 거야.”
“으응,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지 말아줄래? 말하고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아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미츠하의 땀으로 축축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쇄골부터 발목 언저리까지 천천히 훑어 내려간다. 이윽고 언니의 발등을 뒤덮고 있는‘그것’을 가리키며 요츠하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어라, 행동이랑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니? 무슨 말이야?”
“…그건 일단 바닥을 내려다 본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 바보언니야.”
“아까부터 무슨 소릴… 헉?”
그제서야 여동생이 어떤 의도로 말을 꺼낸 건지 눈치 챈 미츠하는 손을 살짝 움켜쥐곤 머리를 쥐어박았다. 애당초 체벌의 강도를 떠나서, 그녀 나름대로 반성의 의미를 내보인 최소한의 행동이었다.
바닥에는 잘게 찢긴 A4용지가 작은 산을 쌓고 있었다.
이것은 미츠하가 사회인이 된 이후로 생긴 악습惡習인데, 불안하거나 초조한 일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 된 일이란 것쯤은 미츠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이미 몸에 배인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는데다 마음씨 착한 사야는‘사회인은 저마다 마음의 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라면서 보듬어만 줄 뿐, 마땅한 해결책은 제시조차 안 해줬고….
‘(게다가 사야랑 같이 얘기하다보면 현실에 안주해버릴 듯한 기분이 들어서 위험해.)’
하지만 딱히 주변에 상담할 만한 사람은 텟시나 요츠하랑 할머니 뿐인데, 텟시는 최근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돼서 바쁜 모양이고, 요츠하는 말해봤자 비꼬기나 하겠지.
그런가하면, 사실은 할머니도 마찬가지야. 무슨 말을 지껄여도 인자한 얼굴로‘그것 또한 무스비란다.’라고 대꾸할 뿐,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준 적이 있기나 했던가? 아니 그 이전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도, 타키랑 조우했던 것도 전부 필연必然으로 묶여있다는 말이잖아? 얼핏 보면 로맨틱 해 보일지 몰라도 막상 겪어보면 진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거라고.
그 때였다. 익숙한 오르골 소리가 달팽이관의 림프액을 휘휘 저었다.
그와 동시에 미츠하의 마음도 착잡해졌다.
문자를 확인하는 것이 이토록 두려운 건 처음이야, 대학 합격 통보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었잖아? 물론 해외여행을 갔다가 데이터 요금 폭탄을 맞았을 땐 문자 확인하기가 겁났지만 그거랑 이건 근본부터 다른 상황이고… 아아! 아무튼 모르겠어! 고작 문자내용을 확인하는 것일 뿐인데 왜 이렇게 겁나는 건데! 이진법으로 구성된 데이터 쪼가리 주제에!
‘열받아! 열받아열받아열받아열받아열받아열받아열받아!’
핸드폰을 움켜쥐고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하고 있던 미츠하의 동공이 순식간 부풀었다.
뜬금없지만 그 경위를 설명하자면….
미츠하가 핸드폰 하단을 움켜쥐고 → 방방 뛰면서 열 받아 하다가 → 지문이 인식되면서 스위치가 켜졌고 → 본의 아니게 문자 내용을 확인 해 버린 것이다. (현재)
참고로 문자 내용은‘내일 7시 요요기역에서 만나자!’라는 단순명료한 것이었다.
거기에다 타키같은 듬직한 성인남성이 사용할 거라곤 도무지 상상조차 안 될 고슴도치 스탬프까지 추가해서.
일찍이 아버지와 둘이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눈치가 빠른 편인 타키는 미츠하가 고슴도치 열쇠고리를 잔뜩 매달고 다니는 것을 본 순간 그녀의 취향을 단박에 눈치 챈 것이리라.
상당수 부자가정은 대화가 별로 없으니까 대부분 눈치만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제법 많을 테고 말이야―.
“…그보다 내가 이걸 왜 알고 있는 거지?”
당장 머리 위에 전구가 떠버려도 안 이상할 얼굴로 의문을 던진다.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잘그락, 잘그락….
또 습관적으로 프린터기에 손을 뻗어보지만 더 이상의 종이는 안 남았고 굳은 먼지만이 군데마다 붙어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찢을만한 용지도 없어 시야를 내려다보니 눈더미가 발목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를 멋지게 장식하는 여동생 특제 도시락―.
그것만을 아무 말 없이 남기고 자리를 떠난 것도 모른 채 미츠하는 붉은 머리끈을 꼬면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일단 약속시간은 일곱 시. 아직 답장은 안 했지만 곧 보낼 예정이다.
물론 거절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이 감정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고 올 생각이다.
‘그렇게 계획도 다 세워놨는데 아까부터 초조한 기분이 들어서 어쩔 줄 모르겠어!’
하지만 말은 저렇게 했어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초조하다’라는 감정의 정체가 바로‘기쁨’과‘혼란’의 융합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미츠하는 숫자「7」에 자신의 감정感情을 크레이프 생지를 반으로 겹치는 것 마냥 투영하더니‘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닮았어.’라고 생각했다. (*숫자 7은 두 가지 발음으로 -なな, しち- 읽을 수가 있다) 반면 고작 숫자 따위한테 자신의 감정을 겹쳐 올렸다는 생각을 하니까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아, 진짜… 나조차 내 마음을 모르겠단 말이야.’
어때?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어?
(2장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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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결까지 2, 3, 4, 5 편 남은 거 같음. 이건 1.5편.
2. 사실 극장판 한번 보고나서 바로 완결까지 다 플롯 써 버린거라 원작이랑 충돌되는 부분이 많을 거 같아.
예를 들어 요츠하가 도쿄에 있다는 부분이라던가?
3. 아무튼 그래요. 나머지 네편 될수있으면 빨리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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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아...아앗... 글쓰는 속도가.. 느렷...
그리고 중간에 요츠하 야바이한다는 문장 두번들어감
퇴고하다가 실수했나봐. 지워야겠다. ㄳㄳ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