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2013년의 소녀 미츠하.
2016년의 소년 타키.
두 사람이 육교에서 카타와레도키로 만나 이루어낸 또 하나의 결말.
그 결말의 끝에서 이어지는 평온한 일상.
【RE: 1부】
"저기, 미츠하. 6월에 축제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타키 군. 둘만 있을 땐, 미야밍이라고 불러도 돼."
"무슨 주책이에요, 누나."
도시에서 맞는 여름은 시골과는 다른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외부 온도와 내부 온도의 차이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건물 어디를 가든 에어컨이 있었다. 시원하다못해 차가운 바람이 건물 전체를 쾌적하게 식혀주었다. 오히려 한기를 느끼는 바람에 긴팔 옷이 그리워지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건물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후욱 하고 습격해오는 뜨거운 기운에 다시 땀범벅이 되어버렸다.
“더워……”
이제 막 버스에서 내린 미츠하는 오른손을 부채삼아 부채질을 하며 자신을 덮쳐온 열기를 식히려고 했다. 그러나 가녀린 소녀의 손짓만으로는 아스팔트로부터 올라오는 기운을 전부 뿌리칠 수는 없었다. 결국, 부채질에 지쳐버린 소녀의 시선은 길가에 자리잡고 있던 편의점 쪽으로 돌아갔다.
‘하겐다즈…… 하나만……’
결국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미츠하는 작은 컵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설레는 마음을 한껏 품고 뚜껑을 열어 바로 한 스푼 떠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입안에서 퍼지기 시작한 달콤함과 시원함이 심신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역시, 살아있기를 잘했어.
“아. 식단일기.”
아이스크림을 반쯤 비우고 나서야 뒤늦게 식단일기 생각이 났다. 행여나 속여서 적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또 한바탕 폭풍이 지나갈 거라는 것쯤은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다.
─미츠하, 너! 간식 먹는 것까지 다 적어야 할 거 아니야! 네가 애냐?!
……그리고 항상 그 뒤에는, 그 폭풍의 최전방선에서 모든 공격을 죄다 받아내야 하는 보호자의 후폭풍이 몰아치고는 했다.
“정말, 언제쯤이면 해방될까.”
미츠하는 자신의 에코백에서 꺼내든 오늘자 식단일기에 ‘컵 아이스크림 100ml’라고 쓰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아, 사는 건 여전히 힘들구나.
“언니∼!”
띵─동 하고 울린 초인종 소리에 반응해 멘션의 문을 열어준 건,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 요츠하였다.
“잘 지냈니, 요츠하?”
“응!”
“부탁한 건?”
“포장까지 다 해놨어! 근데, 그냥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지 그랬어. 굳이 안 찾아와도 됐는데.”
“오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거지, 뭐. 지나가던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즐거워. 전부 신기하기만 해. 겸사겸사 길도 알아둘 겸.”
“아항. 알 것 같다. 언니, 실은 그거지?”
요츠하의 얼굴에서 음흉함이 떠올랐다. 이게 정녕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소녀가 지을 법한 표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거라니?”
“데이트 코스 짜는 거잖아. 유카타 부탁한 것도, 축제 같은 데서 입으려고 하는 거지?”
으엑!
미츠하의 속내는 허망할 정도로 빠르게, 여동생에게 들통나버렸다.
“산노마츠리, 맞지? 나도 할머니랑 거기 가려고 했는데.”
“어? 알고 있었어? 그럼, 그때 또 만날 수도 있겠네?”
신발을 벗으면서 한참 여동생과 회포를 풀던 미츠하는 거실을 둘러보다가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는 어디 계셔? 외출하셨니?”
“아니. 저쪽 방에 계시는데.”
“방에서 뭐 하시는데?”
“요즘 바쁘시거든. 아마, 우리 얘기는 한 마디도 못 들으셨을걸.”
미츠하는 오랜만에 뵙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희미하게 불빛이 흘러나오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 풍경을 들여다본 미츠하는 짐짓 놀라고 말았다. 미츠하의 눈에 들어온 건 무수히 쌓여있는 각종 문서와 책자, 그 가운데에서 빛나는 기계와 그 앞에 앉아서 ‘타다다닥’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할머니 히토하의 뒷모습이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어머.” 히토하는 미츠하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안하구나. 자료를 정리하느라. 잘 지냈니?”
“네.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도 미츠하의 시선은 무언가에 사로잡혔다. 그건, 할머니가 방금 전까지 쳐다보고 있던 빛나는 기계였다. 그 기계의 정체는─
“할머니, 컴퓨터도 하실 줄 아셨어요?”
작은 노트북이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는 법이다.”
히토하는 내심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안경을 바로잡았다.
“그렇잖아도 언젠간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이렇게 찾아와줬으니 지금 말해도 되겠구나.”
책자 중 하나를 집어든 미츠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이건……?”
“보는 그대로란다.”
그 책자의 제목은 다름 아닌 「이토모리 향토 자료집」이었다. 아직도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미츠하를 향해 고개를 돌린 히토하는,
“미츠하. 혹시, 지금 기억나는 신악무가 있으면, 한 번 내게 보여주겠니?”
그렇게 말했다.
거실로 나와 캠코더 앞에서 기억나는 대로 신악무를 춘 미츠하는, 저번에 오쿠데라 씨가 즉석 생수 CF랍시고 자신을 동영상으로 찍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몇몇 동작은 워낙 오래되어─그야 당연히 3년도 더 된 이야기니까─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동작들도 많았기에 할머니의 근심어린 표정을 조금은 풀어드릴 수 있었다.
“설마, 인터넷에 올리시려고요?”
“바로 올릴 수는 없지 않겠니. 이대로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못할 테니까.”
히토하는 방금 전 캠코더로 찍은 신악무가 제대로 녹화되었는지를 확인했다. ‘바로 올릴 수는 없다’라는 건, 다시 말해서 ‘조금 다듬기만 하면 올릴 수 있다’라는 소리인가.
“그래도, 원래 있던 자료가 더 낫긴 하구나. 행여나 조금 더 나은 부분이 있으면 참고하려고 했건만.”
“원래 있던 자료라고요?”
“녀석도 참……” 히토하는 짐짓 씁쓸해하면서도 복잡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미츠하를 인도했다.
“이걸 좀 봐 주겠니?”
히토하가 노트북을 이리저리 두드리자, 그 화면에서 어떤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 동영상에서, 자신과 똑닮은 인물이 훨씬 더 세련되고 우아한 춤사위로 신악무를 추고 있었다.
미츠하는 그 동영상의 인물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엄마……?”
“네 아버지가 복사해서 내게 줬단다.”
동영상의 끝을 본 히토하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정리하신다는 자료라는 게, 설마……?”
히토하는 고개를 끄덕여, 무언의 질문에 무언의 대답을 해 주었다.
미츠하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자들이 말해주고 있다. 이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이 동영상이 말해주고 있다. 할머니는 지금, 미야미즈 신사가 이토모리에서 계승해 온 신악무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다.
“신악무 뿐만이 아니란다. 네가 없던 사이에, 네가 하던 실매듭 제조법도 거의 다 정리를 끝냈단다.”
맙소사.
이런 건, 분명 ‘고생이 많으셨어요’라든지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라고 감탄해야 할 일인데.
어째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까.
“미츠하. 이 할미가 했던 말 기억나니? ‘형태에 새겨진 의미는─’”
“‘─반드시 되살아난다.’ 기억하고 있어요.”
미츠하는 그 말을 잊을 리가 없었다.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긴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 문장이 마을사람들을, 우리 모두를 구해준 셈이나 다름없다.
“그래. 비록 우리 신사도, 마을도, 전부 그 재해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는 계속해서 이 모든 것들을 후세에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단다. ‘마유고로의 큰 불’을 겪고도 우리가 계속해서 신악무와 실매듭을 이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미츠하는 고개를 끄덕였음에도, 얼굴에 살짝 낀 먹구름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머지않아 다시 이토모리의 무녀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일까. 그래서 신악무를 추어보라고 하신 걸까. 나는 곧 이 동영상을 보면서 다시 신악무를─
“너에게 이으라고는 하지 않으마.” 히토하는 미츠하의 눈빛과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금세 알아차렸다.
“이미, 요츠하가 다 이어받기로 했단다.”
“네?!”
미츠하는 방금 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 걱정 마.” 뒤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츠하가 끼어들었다. “내가 잇기로 했거든. 신악무 추는 거랑 실매듭 만드는 거, 전부 내가 다 이을 거야. 그러니까 언니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살아도 돼!”
“뭐?”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했을 때, 미츠하는 하마터면 요츠하에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게 무슨……?”
“처음에는 요츠하에게도 말했었단다.”
미츠하가 뭐라고 말하려 하기도 전에, 잠자코 있었던 히토하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신사를 다시 세워달라고 할 수도 없고, 이토모리를 그대로 다시 복원시켜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너희의 길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요츠하는 전부 다 이어받겠다고 성화를 부렸단다. 원, 녀석도. 고집 센 건 누굴 닮은 건지…….”
그렇게 말하는 히토하의 얼굴에는 “뭐, 내가 너희더러 무조건 이어받으라고 윽박지르기라도 할 줄 알았니?”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이미 아버지라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일까.
“언니가 그랬잖아? 언니도 마음대로 살 테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우리 집 가업을 잇겠다는 거야. 딱히 잘못된 건 아니잖아. 어차피 3년 동안 잠만 자느라 다 잊어버렸을 거 아니야?”
“그런……”
“언니는 그만하면 됐어. 그러니까, 언니가 뭐라고 하든 간에 난 내 마음대로 살 거야.”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너무나도 해맑게 얘기하는 요츠하를 보고 있자니, 후련해지기는커녕 되려 기분이 착잡해졌다.
대체, 왜일까.
“혹시, 저희 둘 다 안 잇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어요?”
“음…… 인간국보로 지정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 신악무 학원이나 실매듭 만들기 강좌를 열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든가?”
요츠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히토하를 대신해 대답해주었다.
“그건 신청한다고 되는 게 아닐걸. 학원이나 강좌도, 할머니 혼자서는 무리잖아.”
“흐음…… 아쉽네.”
요츠하는 팔짱을 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이을 사람은 있었어야 했어.”라고 중얼거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미츠하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이게 최선일까. 나는 모든 책무를 전부 여동생이 뒤집어쓰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이건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요츠하.
네가 다 뒤집어쓰려고 할 필요는 없어.
미츠하는, 요츠하와 나누었던 또다른 대화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언니, 남친이랑은 잘 되어가?”
“응? 음……잘 되어간다고 해야 하나,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야.”
“이를테면?”
“뭔가, 요즘 들어 내가 좀 끌려 다닌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언니가 나이 더 많잖아! 언니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야지!”
“……그 연애 주도권이라는 거, 정말 유명한 말인가 보구나.”
“그럼, 언니 쪽에서 한 번 파격적으로 변신해 보는 건 어때?”
“파격적으로? 어떻게?”
“그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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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코멘트]
딱히 요츠하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닌데, 왜 자꾸 이런 역할만...
오 드디어
오늘은 이거다
잘 봤습니다 요츠하도 어떻게 보면 희생인것 같지만 본인 나름대로 잘 즐기면서 신사를 이어 받을것 같습니다 다음편에 파격적인 미츠하가 궁금해지네요
잘 보겠습니다
저 가업이란 건 항상 나올 때마다 머리아파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퍄퍞
가업.... 요츠하는 도대체... 허허... 잘읽었습니다~ 너무 붙어있어서 읽기 약간 힘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