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부】
─키 군─? 타키 군─?
멀리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들어 본, 흐릿한 기억 속의 목소리. 하늘을 수놓은 별빛처럼 아련한 목소리.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가닥 구명줄을 잡은 사람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거기에 확신에 차지 않은 듯이 반복되는 질문.
그 질문은 이내 울림이 된다. 울림이 곧 머리, 가슴, 이내 온 몸을 타고 퍼진다.
그 질문에 질문으로 회답한다.
누구지?
너는 누구지?
─나를, 잊지 말아줘.
……!
발작하듯이 몸이 튕겨져 나왔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타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꿈속에서 빠져나왔다.
그제야 자신이 병원 로비의 소파에서 잠들었던 걸 기억해낸 타키는, 눈을 비비면서 피로에 절어버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비비며 일어나는 와중에도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타키는 어제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히다 특급열차. 라멘 가게. 병원. 중환자실. 휴식 공간. 병원 로비. 같이 왔던 두 사람이 숙소를 잡는 동안 타키는 그대로 병원에 남아있었고, 그러다가 로비에서 잠들었으니까.
오쿠데라와 츠카사는 먼저 도쿄로 돌려보냈다. “정말 우리만 먼저 돌아가도 돼?”라고 걱정스럽게 묻는 오쿠데라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마 지금 시간이면 두 사람은 열차에 올랐을 것이다.
아침밥 삼아서 빈 속에 들이킨 캔 커피 한 잔은 이내 지독한 쓰라림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쓰라림보다 더 잔혹한, 어제 자신이 마주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소녀가 자고 있을 중환자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한 번 드나들 수 있게 된 중환자실의 문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열려버렸다. 문을 열어준 간호사는 “처음이니까 봐 주는 건데, 면회 시간은 좀 엄수해 주세요. 다음에는 어림도 없을 줄 알아요.”라고 핀잔을 주고서는 종종걸음으로 자기 업무로 돌아가 버렸다.
삑 삑 소리를 내는 의료 기계를 자장가 삼았다는 듯, 소녀는 쌕 쌕 소리를 내며 세상모르고 잠든 채 소년을 맞이했다.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는 소녀는 누가 억지로 깨우려 든다 한들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의사에 말대로라면, 입원 당시 과다출혈에 전신 골절.
외상이 회복된 이후에도 의식 불명, 운동 능력 상실.
흔히 식물인간이라고 부르는 상태.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을 뿐인 한 송이 꽃.
타키는 멍하니 그 꽃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만난 날은 10월 3일.
운석이 떨어진 날은 10월 4일.
입원 일자는 10월 5일.
틀림없다.
그 ‘이토모리의 기적’이라는 건, 이 소녀가 만든 기적이다.
아니,
우리가 만든 기적이다.
테시가와라 씨와 나토리 씨가 말한 게 전부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 날 도쿄에서 만나 혜성에 대한 얘기를 나눈 덕분에 이 기적이 만들어졌다.
“고생 많았어. 친구 분들한테 전부 들었거든. 나와 만난 그 다음 날에, 네가 어떤 일을 했는지.”
타키는 깊이 잠들어 있는 소녀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정말 대단한걸. 만약 내가 그 때 너와 몸이 바뀌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 역시 무리였겠지. 난 그런 거 전혀 못한다고. 너였기에 가능했던 걸 거야.”
운석 충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재앙에, 단 한 명의 소녀가 맞서 싸운 것이나 다름없다. 고등학생이 이루어 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됐네.”
어린 소녀가 거대한 기적을 빚어 그 마을에 흩뿌렸다. 그 기적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맞아, 너 있잖아. 서로 알게 되기도 전에 무턱대고 찾아와서 약속해달라고 사정하면 어떡해? 덕분에 무슨 일인지 전혀 몰랐다고. 그래도…… 일단은 만났으니, 이걸로 된 건가?”
이 소녀가 모두를 구했다.
“……네가 그 때 준 실매듭도…… 계속 가지고 있었어. 봐봐…… 여기 이렇게 가지고 왔잖아?”
그런데……
“그런데, 너는 왜 여기 있어?”
…….
“왜 이런 곳에 누워있냐고?”
………….
“……대답 안 할 거야?”
…………………….
“……대답해!”
………………………….
어느새 뺨을 타고내린 뜨거운 무언가가 병실 바닥을 수놓았다. 아무리 닦아내고 닦아내도 멈추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했는데도, 결국 이 소녀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알고 있다.
대답 같은 게 돌아올 리 없다는 걸.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면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병실 밖의 벤치로 퇴출당하다시피 한 타키는,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해 준 신문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토모리의 기적.’
그 기사에 나온 그 단어를 다시금 곱씹었다.
곱씹을수록 쓴 맛이 났다.
이따금씩 시궁창 냄새가 풍기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 기적이 정말로 완전한 기적이었다면, 이 소녀도 그 곳에서 웃고 있었어야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만나면 서로에게 보여 줄, 어색하면서도 서투른 미소를 연습하면서.
그러나 지금, 소녀는 여기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하얀 공간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이루고 임종에 든 사람처럼. 모든 이들을 구원하고 눈 감아버린 구세주처럼.
정작 그 기적은.
소녀가 모두에게 나눠준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에 쥔 기적은, 마치 마트의 폐점시간 직전에 할인 쿠폰이 덕지덕지 붙은 물건과도 같은 기적.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라고 말하며 선심이라도 쓴 것처럼 던져진.
말 그대로, ‘싸구려 기적’이었다.
왠지 불쾌해졌다. 지금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서 세상을 향해 고함이라도 질러주고 싶었다. 이런 거대한 재앙을 철저하게 숨겨놓고, 고작 소녀 한 명이 휘말려서 의식불명이 된 게 뭐가 대수냐는 듯이 넘겨버리고서는 ‘이토모리의 기적’이네, 어쩝네, 하며 떠들어대고 있는 작태가 역겹기만 했다. 이 시커먼 진실을 알고 있을 누군가는 그 단어를 보며 코웃음치고 비웃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저 위에 있을 신인지 뭔지 하는 초월적인 존재들까지 이 모습을 보고 조롱거리로 삼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 둘이서 만들어낸 기적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그런 식으로 업신여김을 당할 거라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이딴 걸 기적이라고 부를 사람이 어디 있어. 어린 소녀 한 명도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으면서 무슨 기적이라고 신나게 떠벌리는 거야.
기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따위 기적, 엿이나 처먹어.
“저기요.” 아까 문을 열어줬던 간호사가 타키에게 다가와서는 짜증난다는 듯이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뭐 때문에 열 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죄 없는 벽이랑 벤치는 발로 차지 말아주실래요? 환자들이 밖에 뭔 일이 났냐고 물어보잖아요.”
“……죄송, 합니다.”
“정말이지, 젊은 사람이 그렇게 기본 매너가 없어서 어떡해요? 뭐가 문제인데요? 3년 동안 잠만 퍼질러 자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댁한테 뭐라고 했어요?”
…….
그 말을 듣고 주먹을 꽉 쥐었던 타키는 차마 주먹을 휘두를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울분을 삭혀야만 했다.
결국, 오갈 데 없는 분노를 어디에도 풀 수 없었던 타키는 그 날 저녁이 되어서야 응어리만 남은 가슴을 안고 도쿄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냐?” 라고 묻는 아버지의 말도 무시해버린 채, 타키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 속으로 뛰어들어버렸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버린 타키는 오랜만에 깊이 묻어두었던 생각을 다시금 꺼내보았다.
셋이서 왔던 길을 혼자서 돌아왔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버렸다.
- 계속 -
-----------------------------------------------------------------------------------
[작가 코멘트]
퇴고첨삭 vs RE판 3부 완결 중 어느쪽이 더 빠른지 시합이다
ㄴ 단행본 작업의 산물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요즘 자주 나오니까 보는 입장에선 너무 좋다 오호홍
감사합니다...... 무스비...
잘보고 잘 간다.
잘 봤습니다 요즘 연재 속도 빠르네요 좋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