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디서부터 잘못한걸까. 너무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기에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걸까.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지금은 늦은 밤. 날이 어둑해지고 사람들의 왕래도 점점 줄어들어 도로를 지나다니는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리는 가을의 어느 금요일 저녁. 나는 타치바나라는 명패가 써진 맨션의 문 앞에서 나는 쪼그려 앉아 울고있었다.
그 사람과 전화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에는 다른 사람, 정확히는 다른 여자와 껴안고 즐거운 듯이 웃고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과 오늘 헤어질 때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고민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사람과 만났을 때 나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쪼그려 앉아 울고있는지 과거를 되짚어가고 있었다.
인과응보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나는 그에게서 버림받고 구차하게 그를 붙잡기 위해 여기 있었다.
바람이 불면서 가을 저녁의 한기가 나를 괴롭혔다.
이대로 정신을 잃은 뒤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
매년 봄에 피는 벚꽃은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꽃이 피는 걸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언제 보더라도 질리지 않는 벚꽃의 개화는 보는 장소가 달라도 새로운 감동을 전해주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27번째 벚꽃은 특히 의미가 있는 벚꽃이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을 만난 봄의 벚꽃이었으니까.
예전 내 고향이 혜성의 유성 낙하로 인해 파괴됐을 때 우리 마을사람들은 전부 무사할 수 있었고그 당시에 내 손에 적혀있던 ‘좋아해’ 라는 글을 써준 운명의 상대. 타치바나 타키를 우연히 만나게 됐으니까.
처음 만나던 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지만 순정만화처럼 서로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나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데 서툴렀고 그는 나를 보고 쑥쓰러워하고 있었으니까.
서로를 알아가고 좋아하면서 우리는 예전에 못했던 말들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와 지내는 시간은 행복해서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2.
벚꽃이 피는 봄에 신사의 계단에서 마주친 우리들은 다른 연인들과 같이 회사에서 퇴근한 뒤에 데이트를 하거나 주말을 이용해서 데이트를 했다. 타키군은 데이트를 하는 도중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찍은 사진을 업로드했다. 내가 왜 그렇게 업로드를 하냐고 물어보자 사소한 추억이라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받았다.
오늘은 타키군도 나도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을 할 수 있어 저녁을 먹고 거리를 산책하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있었고 도쿄의 여름은 일찍 찾아왔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나와 그의 옷차림은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 됐고 그 더위를 식혀줄 소나기가 갑작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네.”
우리들은 근처의 편의점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전혀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나와 그는 흠뻑 젖어버렸고 얇은 옷을 입고있는 나는 그대로 속옷이 비쳐보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고 나 역시도 그에게 폐가 되지 않게 모른척하면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가 소나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네가 있었던 이토모리에서 맡는 비 냄새랑 도시의 비 냄새는 뭔가 다른 것 같아.”
“맞아. 이토모리에서는 비가 내리면 흙 냄새가 올라오곤 했는데 도시의 비냄새는 뭐랄까. 자극적인 약품 냄새랄까?”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잊고 있었던 옛 고향의 비 내리는 풍경을 생각해냈다. 그와 몸이 바뀌던 시절의 추억을 되짚어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소나기는 그쳤고 우리는 다시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저녁 10시가 안된 시간에 그는 나를 배웅해주기 위해서 우리 집 앞까지 왔다. 서로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그와 나는 집 앞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 같이 마신 술에 취해서였을까? 우리는 분위기를 타고 벤치에서 입을 맞추고 말았다. 예전에도 여러 번 키스를 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농후한 키스를 하고 말았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고 엉덩이를 스쳐지나갈 때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그와 동시의 그의 혀가 내 입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신음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왠지 분위기를 타고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가족 모두가 외출하고 있는 상태로 집에는 나 혼자만 있는 날이었고 이런 분위기라면 그와 같이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을 분위기였다.
어떡하지, 오늘 나오기 전에 집 청소를 제대로 해뒀나? 집에 아무도 없는게 맞나? 진짜 이 사람이랑 같이 자도 되는건가? 오늘 입고 온 속옷이 세트가 아닌데 어떡하지?
“잠깐만 타키군.”
그와의 거사를 치른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리에 피가 몰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입과 손길을 잠시 제지한 후 그에게서 멀어졌다.
“저기, 나 22시까지 통금이 있어서 이제 들어가봐야 해.”
나는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그에게 통금시간이 있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알다시피 우리 아빠가 좀 엄하시잖아. 그래서 내가 외박하거나 그러는 거 되게 싫어하시거든.”
미안해요. 아빠.
“이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
분위기를 타고있던 우리들은 결국 내가 산통을 깨는 바람에 분위기를 탈 수 없었다. 그는 약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저 표정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타키군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뒤에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이라면 다 큰 처녀한테 무슨 통금시간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나를 믿어주었다.
그렇게 그와 헤어지고 난 다음 날부터 여름이 다 지나갈 동안 타키군은 나와 만나고 나서 저녁 9시 전에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매번 집 앞에 데려다주었다.
3.
나는 그에게 통금시간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여름을 보내고 말았다. 골든위크나 여름휴가철에도 주변의 연인은 서로 여행을 가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는 아직 정식으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나와 멀리 여행을 가면 내가 곤란할거라고 나를 배려해줬다.
나는 몇 번이나 통금시간은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배려해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와 헤어져야 했고 그 날 벤치에서 나눴던 키스는 살짝 입술을 부딪치는 가벼운 키스로 끝날 뿐이었다.
계속되는 이런 상황에 나는 뭔지 모를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불안감을 증폭시킨 날은 여름휴가가 다 끝나고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의 점심시간이었다.
오늘은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회사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어제 회식에서 약간 취한 나를 맞이하러 온 타키군에 대한 화제였다.
“어제 본 미야미즈 남자친구는 연하라고 그랬지?”
“네, 맞아요.”
동료직원 중 한명이 그의 나이를 물으며 나와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어제 보니까 남자친구 되게 귀염상이란 말이야.”
“맞아. 인기 되게 많을 것 같아.”
“미야미즈씨 능력 좋다.”
그의 외모를 칭찬하는 다른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괜히 내가 칭찬받은 것 마냥 어깨가 으쓱했다.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 미야미즈는 그 사람이랑 어디까지 갔어?”
5년전에 결혼했지만 결혼은퇴를 하지않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선배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하의 남자친구와 어디까지 갔냐는 짓궂은 동료들의 추궁에 나는 부끄러움에 머뭇머뭇하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키….스….요.”
내 말을 듣기가 무섭게 주변 동료들이 ‘거짓말이지?’ 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여자 세명이 전부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을 쳐다봤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우리는 사과의 의미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과가 끝난 후 이 주제가 끝났으면 했지만 동료들은 계속해서 나와 타키군의 진도에 대한 주제를 이
어나갔다.
“미야미즈씨, 총무팀 다나카 알아?”
“얼굴은 알고 있어요.”
이름을 듣자 얼굴만 아는 사이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야미즈처럼 연하 남친이랑 사귀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뜸을 들이자 옆에 있는 동료들은 무슨 내용인지 알고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동시에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 내용을 모르는 나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걔 혼전순결인가? 그거 한다면서 남친이랑 진도 안 빼다가 결국 걔보다 나이 어린 애한테 남친 뺏겼잖아.”
혼전순결? 진도? 뺏겨?
내가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선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미야미즈는 이제 27살이지?”
“네.”
“남친은 연하남이고, 이제 한참 물오를 때고 막 들러 붙을텐데 설마 미야미즈도 혼전순결인가 뭔가 해서 벽 치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닐…에요.”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헛 나왔다.
“그러다가 다른 여자애가 채가면 어쩌려고 그래?”
선배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상상도 못해본 일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여자와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말하고 나를 내치는 타키군의 모습을 상상하자 마음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타키군은 저랑 운명의 실로 맺어진 사람이라 절대 그럴 일 없어요.”
확실히 나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냥 개꿈을 꿨다고 생각할 만한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몸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생면부지의 땅을 찾아오고 결국 나와 이토모리의 사람들을 살려주고 10년간 만나지 못했다가 신사의 계단에서 만난 사람을 운명이 아니면 뭐라고 말하겠는가.
“풉, 푸하하. 운명이라니, 무슨 옛날 순정만화 보는 느낌이야.”
내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 동료들이 웃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타키군과 나 사이에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간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남자친구가 뭔가 신호를 주는데 미야미즈가 못 알아차린거 아니야?”
선배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그와 진도를 더 나갈 수 있던 적이 과거에 있었다. 내가 거부해서 거기서 끝나고 말았지만.
“에이, 설마요. 미야미즈 선배가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요. 아마 남자 쪽에서 머뭇거렸겠죠.”
후배 한명이 나를 변호해줬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선배는 나를 잠깐 쳐다보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지금 내 표정을 보고 선배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안해주면 부부사이에도 이혼사유니까.”
선배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성행위를 암시하는 손동작을 양손으로 취하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4.
선배와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며칠이 지나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귓속에서 맴돌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최근에 타키군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눈치였다. 나와 진도를 더 나가고 싶어하는 타키군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타키군과 진도를 더 나가고 싶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기엔 너무 부끄러웠고 간곡하게 돌려서 ‘라면먹고갈래?’ 라거나 오늘 집에 아무도 없다고 말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는 철저하게 나를 통금시간 전까지 집 앞에 데려다주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보통 저런 말을 한다면 남자들은 좋다고 달려들어올텐데 통금시간 전에 나를 데려다준다.
이쯤 되면 슬슬 내가 보내는 메시지를 알아차려야 할 텐데 무슨 버릇 뭐 못 준다고 타키군은 여자에게 숙맥인 상태 그대로 성장하지 못한 듯 했다. 직접 말하지 않으면 못 알아차리는 그의 상태를 보면서 나는 매일매일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고 한창 때의 남자들이 안달이 난 게 아니라 내가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여느때처럼 타키군과 저녁에 데이트를 하고 주말에 데이트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와 시간을 보내면서 선배의 이야기는 점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가 나를 집 앞에 배웅해주고 헤어질 때면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츠하, 그럼 이제 가볼게.”
타키군은 언제나 저녁 9시가 되기 전에 나를 집 앞에 바래다주었다. 특히나 오늘은 시간이 더 빠른 8시가 안된 시간이었다.
“저기, 타키군.”
나와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고 하는 그를 불러세웠다.
“그, 저번에 있잖아.”
타키군이 공원 벤치에서 계속하려고 했던 행동을 떠올리니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통금시간은 부끄러워서 한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다.
타키군은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농후한 키스는 고사하고 서로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더 이상 진도를 나가는 것은 포기한 듯 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통금시간 전에 집으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저기, 미츠하.”
타키군이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요즘 만나는 동안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약간의 뜸을 들이고 있는 그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냐, 신경쓰지마. 잘 자.”
그는 나와 시선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헤어졌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계속해서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우리는 서로 문자메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여기까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타키군의 문자메세지 답장이 점점 늦어지다 밤 11시가 지나고 결국 문자메세지의 답장이 끊어지고 말았다.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고 생각한 나는 문제메세지 앱을 종료한 후에 주변 사람들의 SNS를 살펴보고 있었다.
타키군의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됐다.
“오늘 데이트한거 사진 올리느라 답장 안한거구만.”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와 내가 함께 만든 추억을 살펴보았다.
“거짓말.”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오늘 타키군과 내가 갔던 카페나 식당의 사진은 업로드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업로드 된 사진은 검정색 긴 생머리의 어느 여자와 타키군이 다정한 모습으로 서로 껴안은 채 웃고있는 사진이었다.
- 걔 혼전순결인가? 그거 한다면서 남친이랑 진도 안 빼다가 결국 걔보다 나이 어린 애한테 남친 뺏겼잖아.
선배의 말이 갑자기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거짓말. 진짜로.”
나는 거짓말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요즘 타키군은 계속해서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나에게 질려버렸다고 말하려고 한 게 아닐까.
- 남자친구가 뭔가 신호를 주는데 미야미즈가 못 알아차린거 아니야?
선배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타키군이 업로드한 사진을 계속해서 봤다. 긴 생머리의 세련된 도시미인,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 아마 타키군보다 어릴 것이라 생각됐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생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배가 말하던 다른 여자한테 뺏긴다는 이야기가 현실화되는 상황에 다다르자 나는 타키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의 송신음이 가고 있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은 되지 않고 있었다. 내 머리속에서는 타키군에 옆에 있는 여자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잠자기 전의 얇은 옷을 입은 채로 거리로 나와 타키군을 찾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그가 지금 어디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무작정 그의 집으로 향하는 있었다. 도중에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음을 들은 뒤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집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그의 집안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문 앞에서 주저앉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한걸까. 너무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기에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걸까.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지금은 늦은 밤. 날이 어둑해지고 사람들의 왕래도 점점 줄어들어 도로를 지나다니는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리는 가을의 어느 금요일 저녁. 나는 타치바나라는 명패가 써진 맨션의 문 앞에서 나는 쪼그려 앉아 울고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전화는 신호음만 가고 있을 뿐 연결되지 않았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다른 사람, 정확히는 다른 여자와 껴안고 즐거운 듯이 웃고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와 오늘 헤어질 때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고민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와 만났을 때 나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쪼그려 앉아 울고있는지 과거를 되짚어보았다.
인과응보
그는 언제나 나에게 진심을 부딪치고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나는 그에게서 버림받고 구차하게 그를 붙잡기 위해 여기 있었다.
바람이 불면서 가을밤의 쌀쌀함이 느껴졌다. 겉옷을 걸치고 나올 새 없어서 추위가 나를 괴롭혔다.
이대로 정신을 잃은 뒤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무작정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와 만난 뒤 무슨 말을 할것인가.
그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미츠하, 난 너무 지쳤어.’
‘우린 서로 안 맞는 것 같아.’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았어.’
‘우리는 여기까지야. 좋은 사람을 찾길 바래.’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차갑게 내치는 내용의 말을 하는 상상을 하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 이미 눈물은 말라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빨리 타키군을 보고싶었지만 나와 관계를 끝내고 싶어하는 타키군이 이대로 이 장소에 오지 않길 바랬다.
5.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시계를 잠깐 쳐다봤다.
새벽 2시가 아직 안된 시간. 그는 아직도 그녀와 함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성인남자 입장에서 매일매일 일찍 집에 들어가려 하는 여자와 연인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엄청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 당연했다. 어찌 보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당연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오늘 그가 외박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그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는 와중에 계단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미츠하?”
지금 내가 가장 듣고싶지만 한편으로는 듣기 싫었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미츠하? 무슨 일이야?”
타키군은 엄청 당황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말라버린줄 알았던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매어서 끅끅 거리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이 울기만 했다.
“몸이 완전 차갑잖아. 일단 들어가자.”
타키군은 내 손을 잡더니 울고있는 나를 끌어안고 달래주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그에게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 바로 피웠어. 무슨 일이야? 겉옷도 안 걸치고.”
나는 집안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울고 있었고 타키군은 보일러를 켜고 커피포트에 전원을 누르면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물어봤다.
“타키군이, 끅, 전화도 안받고, 나랑 헤어지고, 흑, 다른 사람이랑 있고, 나한테 질려서. 흑, 불안해서,”
여태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말들이 한꺼번에 내 입을 통해서 나오려고 했다. 이 생각들은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아서 무질서하게 내 입 밖으로 나왔고 그는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듯 했다.
“일단 이거 마시고 진정하자.”
그는 커피포트의 끓인 물을 나에게 건내줬다. 따뜻한 컵의 온기가 내 손을 통해 온 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물을 마시진 못하고 그냥 그 컵의 온기를 느끼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방은 따뜻해지고 내 몸에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와 만난 뒤 터져버린 감정도 잠시 누그러들었다.
“미츠하. 무슨일이야?”
타키군은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전화가 안돼서 왔어.”
“뭐?”
타키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도 나에게 짓지 않던 저 표정은 아마 나에 대한 정이 다 떨어졌다는 증거겠지.
“나 타키군이 다른 여자랑 있는 사진을 봤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약간 움찔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타키군이 나에게 질려버렸다는거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다시 울음이 나와서 울고 말았다. 타키군은 계속해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표정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 있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타키군한테 사과하고 다시 시작하려고 왔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밀려들어오는 서러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눈물은 아까부터 말랐다고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를 만난 순간부터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미츠하. 술 취했어?”
이렇게 말한 타키군을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대고 ‘술냄새는 안나는데.’ 라고 말한 뒤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슬프고 미안하고 어떤 의미에선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 남자는 어쩜 저렇게 얼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날 바라볼까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생각들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그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결국 그가 빵 터지면서 바닥을 구르기 시작하자 뭔가가 잘못된 것을 같았다.
6.
죽고 싶다.
진짜로 죽고 싶다.
집에 돌아가서 유서를 쓰고 목을 매달고 죽고 싶다. 아니면 옥상에서 떨어지던가.
그냥 여기에 운석이 한번 더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별개로 내 앞의 남자는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큰 소리가 나지않게 웃음소리를 죽이면서 웃고있었다. 저 남자를 볼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샘솟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사진에 찍힌 애는 나랑 고등학교 동창이야.”
타키군은 배터리가 다 된 휴대폰 대신 패드를 가져와서 나에게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살펴보니 둘이서 찍은 말고도 다른 여러 사진들이 같이 올라와 있었고 그 안에는 내가 잘 아는 츠카사군과 신타맨의 사진도 있었다.
타키군과 동창이니까 나이가 어려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계속 말하려고 했던 건 오늘, 아니, 어제 동창회 열리는데 같이 갈까 말해보려던 거였어.”
그런 거였구나.
나는 마음속을 안심하면서 한편으로 내가 과대망상이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미츠하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여서 다행이네.”
죽고싶다. 진짜로 쪽팔려서 죽고싶다.
나는 지금 내 얼굴을 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근데 미츠하는 통금시간 있다고 나한테 말해서 그냥 혼자서 간거야.”
그 놈의 통금시간.
“근데 미츠하는 통금시간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랬지?”
타키군은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내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가까이 댔다.
“죄송합니다.”
내가 다시 사과하자 타키군은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사실은 거짓말인거 다 알고 있었는데, 언제 거짓말 했다고 고백하나 했는데, 오늘 했네.”
아까 생각했던 쑥맥이란거 다 취소.
지금의 타키군은 엄청나게 사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으응?”
계속해서 내가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를 추궁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어차피 부끄러워 죽고싶은 마당에 다 말해줘버리자고 생각했다.
“그때, 브라랑 팬티랑 다른 거 입어서 그랬어.”
“꼴랑 그거?”
내 말이 끝나자 타키군은 사악한 표정은 사라지고 얼빠진 표정만 짓고 있었다. 꼴랑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부끄러웠던 점 중 하나라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크..큭.크크큭.”
고개를 돌리고 웃음소리를 죽여가면서 웃는 그. 그리고 반대로 나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도 미츠하. 이제부터 우리 사이에 이제 거짓말은 하지 않는거야. 알았지?”
타키군을 웃음을 멈추고 나에게 말했다.
“이제 거짓말 안할거야.”
서로의 오해를, 정확히는 나만 하고있던 오해를 풀고 난 뒤 우리는 차례대로 뜨거운 물에 몸을 씻었다. 내가 먼저 씻고 나온 뒤 타키군이 다음에 씻으러 들어갔고 나는 그가 씻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오늘의 일을 반성했다.
어찌 보면 내 거짓말에 내가 혼자서 불안해하다가 벌어져버린 이 촌극을 처음부터 다 알면서도 이해해주는 타키군을 보면서 능구렁이 같아서 얄밉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맙다고 생각했다. 통금시간이 있다는 거짓말에서 비롯된 이 작은 소동은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반성하는데 타키군이 벌써 다 씻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확실히 남자여서 그런지 나보다 빨리 씻는 것 같았다.
욕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욕탕의 열기를 간직한 채로 타키군은 내게 다가온 후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은 세트인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치킨콘 때 내려고 했던건데 이젠 뭐 상관없어.
본인이 직접쓰시다니... 면목없습니다... - 覚えてない?
뭔데 니가 면목이 없음?
개추
대가 쓰자....푹찍~~
그때 갤에 올린 통금시간 소재로 나도 하나썼었거든... - 覚えてない?
히힛
와;; 잘쓴다잉... 몰입해서 순식간에 읽었네 ㄷㄷ
개별 문장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다듬어줬으면 더 읽기 좋은 글이 됐을 듯. 핵심 소재를 사용한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러워서 그런 부분이 상쇄되긴 했다. 개추! [RADWIMPS - 狭心症]
핫산도 주말엔 쉬어야지
놀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