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34b2c534ebd335a3&no=29bcc427b28a77a16fb3dab004c86b6fb0c4686306b615a5894dbac9461812669cade1926de1402c43d429b7e597860af1ed8e4b913b4c49cca8b8be8baf


* 이전 화 보기는 링크를 따라가주세요.


*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 26화. 폭풍전야 (下)


쉬는 시간도 이제는 지났다. 이제는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 필요할 때를 위한 작은 용기를 내어야만 할 때.

그리고 타키는 용기를 냈다.


“저기, 미츠하.”

“응. 말해줘.”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 걸까?”


설마 했던 질문이 그대로 나왔다. 놀란 미츠하의 눈이 왕방울처럼 크게 뜨였다. 타키는 자신이 품던 의문과 정확히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사실은 미츠하 또한 굳이 이 먼 길을, 학교까지 빠져가며 찾아온 이유가 정확히 무엇일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내가 타키에게 무슨 존재이기에 그렇게까지 했던 걸까.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타키도 알고 싶었던 것이리라. 스스로의 마음을. 미츠하의 마음을.


“우리, 지난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지나가는 일상의 이야기처럼 타키는 툭 하고 화제를 던졌다. 그랬다. 언젠가부터 비일상 중의 비일상이었던 일이 완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 일상 아닌 일상을 새삼 되짚어보던 미츠하가 말을 받았다.


“그럼, 졸지에 노브라 걸이라고 소문나 버리기도 했지.”

“그건! 야! 너도 솔직히 내 몸으로 돈 막 쓰고 다녔잖아?”

“난 그래도 친구도 하나 만들어 줬으니 좀 봐주지 않을래?”

“남의 인간관계를 맘대로 바꿔놓고 뻔뻔하게 그러기야?”


어느 날 학교를 갔더니 알지도 못하는 산만한 남자애가 자기를 친구로 칭하던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을 떠올리며 타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새삼 인간관계를 마음대로 바꾸고 다녔던 미츠하가 조금은 더 괘씸해 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츠하가 꺼낸 단 한 단어에 타키의 짧은 반란은 강제로 종언을 고해야만 했다.


“마츠모….”

“뭐, 어쨌든 그렇게 많은 일이 우리 사이에….”


그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던 타키는 잽싸게 말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물론, 미츠하가 그걸 그냥 넘어가 줄 리는 없었다.


“불리하니까 말 돌리고 그러기야?”

“큭!”

“큭!이 아니라, 할 말이 있지 않아?”

“…죄송합니다.”

“네. 네. 참 잘했어요.”


저 고슴도치 닮은 머리라도 쓰다듬어 줘야 될려나. 미츠하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타키의 머리 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해놓고도 벌써부터 뭐 이런 부끄러운 생각이 드나 싶어서 얼굴이 좀 빨개져 버렸지만.

그런 미츠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타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말이야. 나는 좋았어.”

“그렇지? 나도.”


미츠하 또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으로는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까 푸념하면서도, 사실은 즐거웠다. 내일은 어떤 새로운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매일매일이 기대로 가득 찼던 하루. 잠이 들 때면 내일은 몸이 바뀌었으면 하고 남몰래 기도해보기도 했다.

마음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와 꿈이 꺾이고 난 절망. 이유는 달랐지만 두 사람은 은연중 스스로의 인생에 조금씩은 절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별로 특별할 건 없는, 누구나 죽기 전에 한 번쯤은 해보곤 하는 망상이었지만,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보통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역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사실, 어쩌면 나는 그냥 지금 상태가 너무 만족스러웠는지도 몰라. 이대로 이런 삶이 지속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렇지? 나도 미처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을 겪었고, 내 일상을 맘대로 휘저어 놓은 너에게 화도 냈지만. 역시 그 모든 일들은 내겐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고 생각해.”


언젠가는 닥칠 일, 그러나 피해왔던 일.

우연의 일치였을까. 서로를 만나기 전에는 두 사람 모두 애써 피해왔던 그림자가 사실은 각자의 마음속에 깊게 드리워져 있는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는 알면서도, 직시하지는 못했던 스스로의 그림자.

하지만 서로의 인생을 접함으로써, 둘은 달라질 수 있었다.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본 지난 한 달. 남의 인생을 살아 보고야 깨달은 것들.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빛나는 한 달.

두 사람은 지금, 그 모든 순간들을 목소리에 실어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도쿄에서의 생활이라면 나도 정말 즐거웠으니까.”

“나도, 여기서 살아가면서 이런 평화로운 인생도 살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나는 하루빨리 나가는 날만 꿈꾸고 있었는데.”

“거 우연이네, 나도 슬슬 도시가 지겨워졌던 참이었어.”


순간 미츠하는 말은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왠지 한마디도 지기 싫어하는 특유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타키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웃음과 함께, 미츠하는 다시 말을 건넸다.


“어쩌면 우리는 말이야.”

“응?”

“서로를 알지 못했을 시절에도 서로의 인생을 조금은 그리워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생각해?”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을지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오그라드는 말 하지 말라고 한 대 쥐어박기라도 했을 말이었지만, 왠지 미츠하가 말하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서, 타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이토모리가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이렇게만 계속 살아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거기까지 생각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


마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타키의 설명에 미츠하 또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사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지금에 만족하고 살다 보니까, 텟시가 너에게 고백을 해 버리더라고.”


미츠하는 숨을 삼켰다. 타키의 심층의식은 조금씩 더 수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가슴속에 숨겨진 마음 한 조각까지 모두 나누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체를 밝히고 나서, 텟시가 나한테 찾아온 적이 있었어. 나를 이미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친구로서 상담을 좀 해달라고 했었지. 자세한 건 너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짧게 말하면, 그래. 걔는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해져도 되는지 확신을 가지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내 할 말만 했어. 솔직해지라고. 그리고 결과는, 너도 알지?”

“전화로도 들었지만, 다시 들으니까 일이 정말 그렇게도 되는구나 싶어.”


타키 본인도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모르고 했던 조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타키는 그 조언이 틀렸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조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해본 적은 있었다.

바로,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자괴감이 들었어. 친구로서, 텟시가 너에게 숨겨왔던 마음을 고백했다고 하면, 응원해 줬어야 했는데.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거든.”


자기 자신의 민낯마저 낱낱이 꺼내놓는 타키의 앞에서, 미츠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만약, 다른 여자애가 타키에게 고백했다면, 나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타키처럼 생각했을까. 아니면.

미츠하는 계속해서 조용히 타키의 말을 경청했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못된 생각을 하는 걸까. 나라는 놈이 너에게 있어 도대체 무엇이기에? 끝없는 자괴감 속에서, 계속 생각해 봤지만…. 결국 내 스스로는 결론을 낼 수 없었어. 그래서 찾아온 거야. 응. 너를 만나서, 답을 얻고 싶었어.”


마침내 타키는 가슴속의 말을 거의 다 토해놓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배턴은 미츠하에게로 넘어왔다. 타키는 모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미츠하는 그에 답을 해줘야만 했다.

조금은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대답. 타키 또한 그걸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오랫동안 기다릴 작정이었지만 미츠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먼저 한 가지만 말할게. 나, 거절했어.”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타키의 어깨는 결국 주인의 기대를 배신하고 만다. 움찔하고 들썩이는 타키를 보면서도 미츠하는 최소한 겉으로는 별 반응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텟시 걔, 너도 알다시피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야. 단지 좀 표현이 서투를 뿐이지. 나름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이것저것 많고. 그래, 그렇지만 말이야. 결국 난 텟시와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었어. 뭔가에 꽉 막힌 것처럼, 상상해 보려 해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지 뭐야.”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어느덧 창문 바깥으로 비치는 빛의 색깔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대합실을 채우는 빛깔 또한 밝은 노란빛에서 이젠 조금씩 어두운 황혼의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의 현장에서,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조금씩 변하려 하고 있었다.


“텟시는 내게 솔직하게 말해줬는데. 내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오늘, 나는 텟시를 불러서 말해야만 했어. ‘미안해.’ 라고.”


7년간 품어왔던 마음을 하루 만에 거절당한 남자는 어떤 마음이 되어 있을까. 같은 남자로서 타키는 테시가와라를 동정했다. 그러면서도 그 소식에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던 스스로를 마음속으로 저주해야 했지만.

이제, 미츠하는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만 했다.


“근데 있잖아, 그렇게 거절한 다음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설마. 하고 타키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가지만, 애써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겠지.

이 때, 미츠하의 머리가 좌우로 움직였다. 마치 타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맞아. 너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 전화가 아니라. 제대로 만나서 한 번쯤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이상하지?”

“아니야, 전혀 안 이상해.”


같은 마음으로 왔기에, 타키는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츠하는 다시 눈을 떴다. 이제 완연히 황혼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이 다시 돌아온 그녀를 조용히 반겨주었다. 타키는 그 세상의 한가운데에 앉아 미츠하를 똑바로 마주봐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미츠하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나에게 너는 어떤 존재냐고? 사실, 나도 잘 몰랐어. 그래서 얼굴을 마주보고 직접 말해보면 생각날 거라 생각했지.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있어도 아직은 잘 감이 안 와. 그래서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원하는 답은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괜찮아.


“언제나 힘들 때면 생각나는 사람. 항상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은 사람. 그래. 나에게 너는 그런 사람이야. 타키는 어때?”

“나도 그래, 정확히 너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화라도 할 때면 티격태격 대면서도 속으로는 항상 즐거워했어. 매일 그 시간을 기대했고,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고. 비록 멀고 힘든 길이였지만 너와 이렇게 마주할 수 있어서 나는 지금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그래. 그럼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나는, 우리는 지금에 솔직하고 싶으니까. 비록 또다시 갈림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그 때도 지금처럼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을 거야.

나는 나를 믿어. 나는 너를 믿어. 너도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까, 너 또한 스스로를 믿어주길 바라.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감상에 빠져드는 두 사람.

그 때, 미츠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타키, 저길 봐.”

“응?”

“해가 지고 있어.”


미츠하의 손가락을 따라 타키의 시선도 창밖을 향했다. 태양이 산과 산이 겹쳐 만들어낸 하늘과 땅을 가르는 경계를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낮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콧대 높은 지배자였던 태양도 결국은 영원할 수는 없다. 온 세상을 비추던 태양의 위세는 점점 사그라지고 그림자들은 슬금슬금 자기 영역을 넓혀가는 시간.

낮과 밤의 경계, 사람과 자연을 구분하는 윤곽마저 흐려져 가는 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마저도 잠시나마 허물어지는 시간.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마주보지 못하던 마음과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


“그렇구나…. 황혼의 시간이야.”

“타키, 너도 알고 있었어?”

“나도 그 고전문학 선생님한테 수업은 들었으니까. 성함이…”

“유키노 선생님. 그 분 정말 예쁘지?”

“응. 그랬지. 정말로.”


바뀌었을 때의 일은 꿈속과 같아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기억을 못했지만 엄청 예쁜 사람이라는 인상 자체는 타키의 마음속에도 깊게 남아 있었다. 선생님이 예쁘다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타키를 보며 미츠하는 왠지 조금은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츠하는 핀잔을 주었다.


“꿈 깨. 도쿄에 남자친구가 있다더라.”

“그, 그런 생각 안 했어!”


같은 일을 두고도 여자와 남자의 생각에는 차이가 크다는 건 대대로 전해오는 사실이었고. 지금도 그랬다.

미츠하의 의심과는 별개로, 타키는 유키노 선생님에게 어떤 흑심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넘어가는데다, 신분까지 학생과 선생 신분이다 보니 흑심을 가진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 타키가 하고 있는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맞는 것이었다.


‘세상에 선생한테 연애 감정을 가지는 놈이 어딨어. 무슨 소설도 아니고.’


여자애들은 정말 상상도 못한 생각을 자유자재로 하는구나. 하고 타키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그런 일이 아니라도 타키가 유키노를 연애 상대로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예쁘긴 했지만, 항상 단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다니는 유키노는 흑발의 긴 머리 여성을 좋아하는 타키의 취향에 걸맞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상당히 특이하단 말이지.’

“타키?”


미츠하가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타키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타키의 눈이 천천히 미츠하를 향했다.

지금 미츠하의 머리는 어깨 위에서 잘려 있는 전형적인 단발 스타일. 기실 앞에서 화제가 되었던 유키노와도 큰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미츠하에게서도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해야 할 텐데.

어째서 계속 눈은 미츠하를 향하게 되는 걸까.

누군가는 별 것도 아닌 고민이라고 말할지는 몰라도. 꽤나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타키는 생각했다.

원래 스타일을 알기 때문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분명 처음 봤을 때의 미츠하는 스스로가 그토록 좋아하는 검은 장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거라면 유키노 또한 조건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머리를 기른 모습은 꽤나 쉽게 상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도 미츠하만은 달랐다.

완연한 황혼빛 세상을 배경 삼아, 시골의 고즈넉한 역 대합실에서 마주 앉은 미츠하.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지긋이 올려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이….


“타키?”

“예뻐.”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얼굴 마주보고!”


예상치도 못한 느끼한 말에, 미츠하의 얼굴이 황혼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동시에 심장 또한 콩닥콩닥 달뜬 맥박으로 고동치기 시작한다.

한껏 달아오른 미츠하의 얼굴을 보고서야 타키는 방금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곧 타키의 얼굴도 미츠하처럼 벌겋게 익어버리고 말았다. 나란 놈은, 정말!


“아, 아니야! 그, 그게 아니라!”


부끄러움이 한계를 넘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말로 애써 부정해 보려는 타키. 그런 그를 보는 미츠하의 눈이 조금씩 가늘어졌다.


“어라? 난 분명 예쁘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 그건 또 아니고! 아니, 그러니까 거….”

“으응?”


게슴츠레 뜬 눈으로 타키를 슬쩍 흘겨보는 미츠하.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타키의 눈이 어지러이 흔들리더니, 결국 고개를 푹 떨구고 만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미츠하 네가 예쁘다고.”


어떤 미사여구조차 없이 스트레이트로 던진 직구에 미츠하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들어간다. 그리고 이제 타키는 현기증마저 느끼고 있었다. 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완전 반칙이잖아.

지금, 그녀의 오른손은 어느새 옆머리에 가 있었다. 아마 자기 자신도 의식하고 있지는 않겠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생각이 날 것도 같다. 저건, 미츠하가 무언가 부끄러워할 때의 버릇이라고 사야가 그랬던 것 같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한 손으론 옆머리를 꼬아가며, 그런 얼굴을 숨기기 위해 약간 숙인 고개 너머로도 느낄 수 있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부드러운 눈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자태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서, 지금 타키는 진탕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누지를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 결정타.


“정말?”


조금은 수줍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다시 답을 요구하는 미츠하. 그런 그녀가 너무도 귀여워서 더 이상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기에. 타키는 대답의 말 대신 그저 천천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걸 본 미츠하의 얼굴에 조금씩 안도의 웃음이 떠올랐다.


“다행이야. 나, 사실 걱정을 좀 하고 있었거든.”

“어떤 걱정?”


타키를 만난 순간 순간적으로 떠올렸지만,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어진 걱정, 미츠하는 편안히 웃으며 걱정의 찌꺼기를 털어내었다.


“나,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타키를 만난 거니까. 지금 내가 타키에게 어떻게 보일까. 혹시 조금, 수수하고 못생겨 보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싶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타키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기뻤다고 웃으며 말하는 미츠하. 웃음은 전염이라도 되는지 이제 타키의 얼굴에도 안도의 웃음이 완연해졌다. 타키가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나도 좀 걱정을 많이 했어.”

“어떤 걱정?”

“나, 사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쳐들어온 거였으니까…. 혹시 어색해져 버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민폐는 아닐까. 이런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뭐 이런 걱정들 말이야.”

“당연히 민폐지! 올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왔으면 좋았잖아!”


미츠하의 대답은 단호했다. 역시 민폐였나. 하는 생각에 타키의 어깨가 축 처지고 만다. 그러자 오히려 말한 미츠하가 더 깜짝 놀라 이것저것 말을 주워섬겼다.


“그래도, 타키가 와서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마침 나도 한 번쯤은 너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만나서, 직접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횡설수설하는 미츠하를 두고, 타키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왜 나는 오기 전에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미츠하와는 평소부터 연락을 해 오고 있었고, 상황이 어떻든 최소한 학교까지 빠지고 이 먼 길을 오겠다며 아버지에게 당당히 말하는 것보다는 쉬웠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정반대. 아버지한테는 정면으로 부닥쳐서 어떻게 설득을 했지만, 정작 미츠하에게는 간다는 말 한마디, 심지어 문자 하나조차 남기지 못했다.

사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이미 타키 스스로도 말한 적이 있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미츠하에게 연락하는 것이.

하지만 왜? 왜 무서웠을까. 왜 불안했을까?

어떻게 ‘텟시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고작 단 한마디가 사람을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다시 연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어제부터, 죽 고민해 왔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던 고민.

그 답을, 지금이라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결과를 듣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정확히는, 바라지 않는 결과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두려웠다.

그렇다. 텟시를 바라보며 웃어주는 미츠하의 모습 따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타키가 그토록 피해왔던 결과였다.

그렇다면, 내심 바라고 있던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타키는 알고 있었다.

아까, 미츠하가 ‘거절했어’ 라고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그만 안심하고 말았던 것을.


“미츠하.”

“응?”

“물어볼 게 있어.”

“그래? 말해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생각나고, 매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허전하고. 혹시나 그 사람이 내 곁에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지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런 건 말이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그랬던가. 지금 타키가 한 질문 또한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남의 마음에 대해서 ‘이렇다’라고 감히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지금이라면, 왠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츠하는 눈을 감았다.


내가 기쁠 때는, 이따 타키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했었다. 슬플 때는 타키에게 털어놓으면 된다고 내심 스스로 위로도 했었다.

과연 그건 단순히 만약을 위한 보고에 불과했을까?

일이 있어서 매일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전화를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왠지 하루가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은 허전한 기분이 되었다.

그건 과연 그저 평소의 생활 습관이 헝클어졌기 때문만 이었을까?

텟시의 고백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나는 분명 타키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텟시를 거절하면 텟시와 사야가 내게서 멀어질까봐 고민하면서도, 그렇다고 또 받아들이자니 타키와 멀어질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시간들.

그건 그냥 친구가 줄어들까봐 걱정했던 것뿐이었을까?

말로는 내지 않았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해 왔던 고민들.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또한 마지막까지 스스로는 결론을 내지 못했던 고민이었지만.

타키가 같은 고민을 말한 그 순간, 왠지 마음을 막고 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 알 수 있었다.

나는, 타키를.


“타키, 그건 말이야.”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츠하는 타키에게 말했다.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거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미츠하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엔 이제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미츠하는 타키만을 보고 있었다.


“그렇구나.”


타키의 반응은 놀랄 만큼 담담했다.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도 눈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럴 것이라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래서 미츠하 또한 알 수 있었다.

역시, 타키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두근거리는 박동소리를 행여나 들키기라도 할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미츠하는 타키의 반응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목울대로부터는 긴장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는, 미츠하를 좋아하는 거였어.”


그 순간, 미츠하의 세상은 바뀌었다.

기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이런 것이었을까. 타키 또한 완전히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넘쳐흐르는 기쁨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문득 온 세상이 함께 기뻐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그저 좋게만 보였다.

말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타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미츠하 또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이제 두 사람의 사이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을 뿐이야. 너와 만나고 싶고, 말하고 싶고, 네가 다른 남자애와 사귀는 게 싫어지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마음이 뭔지는 내 스스로는 알지 못했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미츠하였기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근 몇 주간 타키의 마음 중심에는 어느새 미츠하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랬지만,


“그래도 말이야. 미츠하 너 덕분에 알았어. 방금 그 말을 듣고 눈이 확 뜨였다고.”


타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츠하의 말 또한 봇물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타키가 자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아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나도 너와 같아. 타키 네가 내게 무슨 존재인지,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게 너무 알고 싶었어. 알고 싶었지만,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사실은 나, 속으로 너무 불안했어.”


괜히 나 혼자만 설레발을 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 혼자만의 마음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앞서나간 건 아닌가, 사실은 타키의 마음을 알고 싶어 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도 꼭꼭 숨겨둔 채로 살아왔던 지난날.

이제, 미츠하는 지난날에 작별을 고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제 불안하지 않아.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이제 알았으니까.”


타키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미츠하는 그런 타키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둘에게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불안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건 서로 확신한 마음을 나누는 일뿐.


“그래. 나도 이제는 내 마음을 알았어. 더 이상은 헤매지 않아. 나는 널 좋아해.”

“나도, 너를 잠깐 몸이 바뀌는 현상을 겪었던 상대라는 과거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일을 함께하고, 또 나누고 싶어. 나도 타키 널 좋아해.”


마음을 전하고 행복을 나누는 두 사람의 입가에 유행처럼 미소가 번져갔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어느새 두 사람의 발걸음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마주선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지고, 마침내 0이 되었다.

그렇게 황혼의 노란빛이 가득한 대합실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굳게 끌어안았다. 

더 이상은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 # #


“이제 해가 졌네.”

“응. 완전히 졌어.”


지금, 타키와 미츠하는 어둑어둑한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서로의 손은 꼭 맞잡은 채였다.


“괜찮겠어?”

“응, 어차피 이 시간에 다니는 사람 없어.”

“그래도 그렇지.”

“내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자기 걱정부터 해. 사귄 첫날에 여자친구 집으로 쳐들어가는 입장이잖아?”

“아, 알고 있어!”


기세 좋게 쳐들어와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까진 좋았지만, 저지르고 보니 이미 당일에 도쿄로 갈 방법은 없어져 버렸던 상황.

타키의 원래 계획은 미츠하를 만난 후, 근방 도시로 이동해서 1박을 하고 도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알고 보니, 타키가 타고 왔던 그 차가 바로 이토모리 역의 막차였던 것이다. 물론, 그걸 대체할 버스 따위는 없었다.

타키는 걸어가면 된다고 억지를 부렸지만 미츠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반응에, 내가 그 정도도 못할 정도로 부실해 보이냐고 항변하는 타키였지만, 미츠하의 한마디에 침묵해야만 했다.


“너, 길 알아?”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제서야 현실을 인식한 타키의 어깨가 축 처졌다. 어깨를 늘어트린 타키를 보는 미츠하의 표정이 점점 짓궂어져 갔다. 슬쩍, 낚시를 던져 볼까.


“갈 데가 없다면, 내가 알려줄 수도 있는데.”

“어디야?! 빨리 알려줘!”


그리하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처지의 타키는 미츠하의 제안에 따라 그녀의 집에서 하루를 묵기 위해 이토모리의 시골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타키의 볼멘소리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맞잡은 손으로 전해져오는 미츠하의 온기를 느끼며 타키는 생각한다.

내 걱정이나 하라지만,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걱정을 해.

지금 나, 지나치게 행복해서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단 말이야.

날아가?

타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만다.


“우와….”


크고 작은 빛으로 가득 채워진, 시골 마을의 별하늘.

도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선명한 밤하늘의 축제에 타키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미츠하는 어느새 생긋 웃으며 그런 타키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예쁘지?”


미츠하가 건넨 말에, 타키는 여전히 시선을 빼앗긴 채로 대답했다.


“응, 너무 예뻐. 너와 몸이 바뀔 때도 몇 번은 봤지만…. 역시, 직접 보니까 더 좋아.”

“나도 내 눈으로 도쿄 보고 싶어.”

“오면 내가 안내해 줄게.”

“에이, 숙맥 주제에?”

“숙맥이라도, 네가 온다면 노력해야지.”

“응, 고마워. 언젠가 꼭 찾아갈게.”


조금은 놀렸지만, 타키는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미츠하는 꼭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타키 또한 굳게 맞잡아 주었다.

타키의 시선이 다시 하늘로 향했다.


“와, 저길 봐.”

“응?”

“정말 아름다워.”


그렇게 말하면서 타키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곧, 미츠하의 시선이 그 손가락의 끝을 따라갔다. 그리고, 미츠하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미츠하의 눈을 가득 채운 그것은…


“아!!!”

“갑자기 왜 그래?”


숨이 넘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경악하는 미츠하. 그런 그녀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어오는 타키. 그런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미츠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타키의 어깨를 콱 소리나게 잡았다. 어깨가 조금 아팠던 탓에 타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미츠하는 다급하게 물었다.


“타키, 오늘은 며칠이지?”

“10월 3일이잖아?”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이 되묻는 타키. 그의 어깨를 잡고 있던 미츠하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두 팔을 아무 통제도 없이 축 늘어트린 채로. 미츠하는 망연자실하고 만다.


“맙소사, 내가 이걸 잊어버리다니….”


아무리 행복에 겨웠다 해도, 이런 중요한 걸 말해주지 않았다니.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미츠하는 밀려드는 자괴감에 떠밀려 갈 것만 같은 자신을 느꼈다.

그렇지만 아직은 자괴감에 몸을 맡길 수는 없었다.


“미츠하?”


갑자기 이상해진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타키. 저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었다. 이제 돌이킬 방법은 없다 해도. 최소한 지금 상황에 대해서 알려 주기는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도. 아마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 반성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일단 사실대로 모두 말하는 게 우선이야.


“타키. 놀라지 말고 들어.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야. 거짓말 같겠지만, 믿어주길 바라.”


집에 들어가서 이 사태를 논의해 보는 건 나중의 일, 그 전에, 타키도 알고는 있어야 했다. 그래야 상황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듣고, 행동할 수 있을 테니까.

믿겠다는 의미로, 타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하는 설명을 시작했다.

저 하늘에 빛나는 혜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기지개를 켜며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었다.


티아매트 혜성 낙하 예정 시각까지,

남은 시각은, 앞으로 23시간.


-27화. 'The Doomsday' 에서 계속


-----------------------------------


본 편의 글자수가 매우 긴 관계로 후기는 생략합니다.


또한, 27화 이후의 연재분은 29화까지 전부 완성한 다음 한번에 올리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매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