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일기
雨中日記
6月 6日
여름이라고 하기엔 이르고, 봄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는 시간입니다.
이맘때쯤 매년 찾아오는 제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가, 여덟 살인 저에겐 마냥 좋아요.
하지만 엄만 싫은가봐요.
장보러 갈 때 옷이나 기껏 사 온 장거리가 젖을 수도 있어서 귀찮다나요.
그래서인지 비오는 날에 엄마는 꼭 아줌마 같이 방에 뒹굴며 최대한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평일엔 울상을 하며 직장엘 나가구요.
이럴 때 보면 우리 엄마는 꼭 어린아이 같습니다.
옷 젖는 것쯤이야,
살아가다보면 겪게 되는 어려운 것들 중에선 아무것도 아닌데.
하지만 엄마가 주신 머리에 한 매듭끈이 젖는 것만 조심하면 비를 참 좋아하는 저한테도 오늘은 무리에요.
그만 까먹고 우산을 놓고 갔지 뭐에요. 엄마가 그렇게나 갖고 가라고 말했었는데…….
바보 같은 이츠하. 넌 엄마한테 우쭐댈 자격 하나도 없어. 우산 하나 못 챙기는 엉터리잖아.
하늘님이 주룩주룩 쏟아내시는 빗줄기를 뚫고 갈 엄두가 나질 않아요. 학교에서 집까지는 걷는 시간을 빼고도 버스로만 30분이나 걸리거든요. 엄마가 그 뭐냐, 학군?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해서…….
아마 그냥 가버리면 감기에 걸리겠죠?
아픈 건 정말 싫은데…….
아픈 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나는요, 엄마가 정말 좋거든요.
다섯 살 때인가? 뭔가 엄청나게 열에 시달린 적이 있었는데
우리 엄마가 너무 아파해서…… 저보다 더…….
밤낮으로 잠도 못자고 간호하던 엄마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제 손을 꼭 잡고, 저는 처음 봤어요. 엄마가 그렇게 아파하는 건.
우리 엄만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한 분이거든요. 그날부터, 그래서 다시는 엄말 아파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냥, 딱 눈 감고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 우산을 빌릴 걸 그랬을까요?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부끄럽고, 민망하잖아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부탁한다는 건…….
아, 이런 못된 습관, 얼른 고쳐야 하는데. 선생님도, 엄마도 항상 걱정했었는데.
어쩌면 좋아.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비가리개가 있는 학교 운동장의 벤치에서 밍기적 거리는데, 어느새 해질녘의 시간이 되었어요. 저녁 특유의 쓸쓸하지만 포근한 바람기가 저와, 학교와, 운동장을 감싸 안았습니다.
아직도 비는 주룩주룩이에요. 어쩌면 저도 오늘부터는 엄마처럼 빗님이 싫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도리머리를 했어요. 잘못한건 빗님이 아니라 바로 나니까. 내 실수를 남한테 돌리면 나쁜 아이가 되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 하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아. 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지금 너무 슬프니까.
슬픔이 묻은 걸 사랑할 수는 없어요.
운동장의 담벼락을 넘어서 지나치는 도시의 차소리, 뭐가 그리 바쁜지, 빗소리 사이로 두련두련 들려오는 다급한 어른들의 말소리, 저벅저벅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질척해지는 운동장의 모래소리가 제 귓가로 흘러들어와 괴롭혔어요. 춥고, 무섭고, 아팠어요.
그만 눈물이 나와 버려서, 울음까지는 나오지 마라하고 꾸욱 꾹 숨을 삼키는데
“미안해, 우리 공주님.”
익숙한 향수와 분냄새가 비가 온 뒤 가라앉은 촉촉한 운동장에서도 제 코에 쉽사리 다가왔어요. 약간은 차갑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손과 아이 같은 숨결이 제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어요.
멋쟁이처럼 옷을 차려입은 엄만 학교 정문에서 저를 보자마자 비를 맞는 것도 아랑곳 않고 뛰어와, 냅다 뒤에서 안아주었던 거에요. 그리고 몇 번이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를 하셨어요.
무섭게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하다고. 다 엄마 잘못이라고.
ㅡ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그때, 엄마한테 조금 미안해졌습니다.
울 엄만 조금씩 울고 있는데, 나는 그만 행복해서
벅차서, 엄마가 좋아서
나는 마냥 아이처럼 엄마의 체온을 느끼며
무섭던 운동장이 꽃으로 가득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으니까.
엄마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연신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가 더는 마음을 신경쓰지 않도록, 일부러 다른 이야길 꺼냈어요.
“엄마, 우리 아빤 어떤 사람이었어?”
엄마는…… 아빠 얘길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보통은 (제가 드라마에서 본 바에 따르면)음, 사랑하는 사람은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에 대해선 잘 얘기 안하던데 말이죠. 근데 엄마는 그리워하는 것 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괜찮대요. 그리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라서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다나요.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엄마는 슬픈 얼굴을 했습니다. 망설이는 눈치였습니다.
“우리 이츠하는…… 아빠 보고 싶어?”
“으응…… 그런 건 아닌데.”
“그럼?”
“그으냥, 오늘 학교에서 자기 아빠에 대해서 소개하는 걸 하는 거 있지.”
그랬니, 그랬구나.
어딘가 허탈한 엄마의 혼잣말.
엄마는, 아빠라면 더 절 잘 보살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죄책감인가, 죄의식인가…… 아직은 엄마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른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아빠라는 존재는 하나같이 평일엔 코빼기도 안보이고 주말엔 배를 긁으며 거실에서 낮잠만 자거나 TV만 보는 사람이었거든요. 평일엔 날랜 족제비, 주말엔 꿀단지를 껴안고 자는 곰 같은 사람들이 아빠라는 게 아닐까. 제가 생각하는 아빠에 대한 감정은 이런 게 전부였어요.
이런 제 생각에 대해서 말을 하니 엄마는 헤헤 웃으며 (또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같이 운전자가)한 손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어요. 아빠가 곧잘 자기한테 해주던 거라더나. 근데 그걸 나한테 하는 건 뭐람. 엄마의 못된 손버릇이에요.
“우리 공주님은 대단하네? 아빠 없어도 안 힘들어하고.”
“아앗, 매듭끈 흐트러진다. 그야 엄마로 충분하니까 그렇잖아. 그보다 빨리 운전이나 해.”
“기분이다! 오늘 저녁은 우리 예쁜 공주님을 위해 전골로 해드리겠습니다~!”
“우와, 정말? 아, 아니 운전대 잡으라니까!”
“어휴 우리 이츠하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씩씩하고 예쁘고 당찬지…… 엄만 정말 세상을 다 가진거 같아요.”
“아 엄마!”
진짜…… 바보 같이 먹을 걸로 저러고 있어.
에휴, 우리 엄만 진짜 아직도 애기에요 아기.
이모랑 비교하면 정말 나일 헛드셨다니까.
걱정돼서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지켜줄 거예요.
오늘 같이 엄말 힘들게 하거나 고생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힘들겠죠, 때로는 눈물도 나오겠죠.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해낼 거예요.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 덕분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으니까.
우중일기, 끝.
모처럼 비가 오기에 생각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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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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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 확실히 근데 타키좀 그만죽여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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