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모리에 혜성이 안 떨어졌다는 if 전제 하에 쓰는 글입니다. 스포일러 및 저의 취향이나 해석,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민감하신 갤러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IF After Side'는 전부 본편의 엔딩 이후의 상황을 IF의 전제 하에 두고 쓰는 글입니다. 엔딩 이후로 정해진 건 없습니다.
더워서 잠을 잘 수 없어.
바람도 없고, 더워서 쓰러질 것 같은 밤중에 전화기에서 울린 미츠하의 말이 귀에 감돌아서 그런 탓일까. 아니면 공부로 꽉꽉 채워진 머리가 폭발해 버린 까닭일까.
늦은 여름날. 방학의 끝자락을 허겁지겁 붙잡고서, 계획이랄 것도 없이 우리는 충동적으로 어딘가를 찾으러 나갔다.
굳이 이유란 녀석을 설명하자면 밑도 끝도 없으리라. 그나마 시원한 여름이란 평에 어울리지 않게 도쿄나 이토모리나 한껏 뜨거워지는 건 똑같았다. 거기다가 시험이란 녀석이 머리 한구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다른 한쪽에선 그리움이 무럭무럭 커져가던 시점. 거기에다 찝찝한 습도와 강불로 놓은 듯한 온도까지 더해지니 끓어 넘치기 직전인 냄비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으음…."
어쩌면 이유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을지도.
이거 어때? 저거 어때? 옷의 이미지를 라인으로 신나게 보내며 골라달라고 재잘거리던 기운은 어디 가고, 타키 자신의 옆에는 낡은 버스 좌석에 기대 한없이 늘어진 미츠하가 있었다.
그 기운이나 거기에 어울릴 기운을 계획작성에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면 신타와 츠카사, 텟시와 사야카의 말처럼 우리는 살짝, 아니, 어쩌면 엄청 들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떠나는 둘만의 여행.
처음으로 보는 바다.
처음이라는 단어. 그 단어 하나가 어딘가를 자극한 걸까.
잔뜩 고동치는 두근거림에 계획표가 손에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라인을 열면 어디 가서 이걸 먹고 저걸 먹자, 어딜 가보자, 이거 보고싶다라는 이야기만 한가득 쏟아져 있었다.
이런 제멋대로인 계획표에도 좋다고 박수치며, 오히려 타키 자신은 거기에서 한술을 더 뜰 지경이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기 좋다고 하던데?
그렇게 무작정 써 내려간 계획표 끝에 다다른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어딘가의 바닷가 마을이었다.
이렇다 할 명소도 없고, 딱히 먹을만한 것도 없는 곳.
댈 수 있는 이유야 한가득 있었다.
우선 미츠하와 이야기한다고 시간을 너무 날린 것.
서로가 원하던 것이 너무나도 많이 쌓인 바람에 수많은 조건에 들어맞는 곳을 찾다가 아무것도 못 하게 된 것.
정신을 차려보니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점.
그리고 막바지에 허겁지겁 떠나던 자신들과 마찬가지 신세인 사람들이 많았던 점.
어딜 찾아봐도 만석, 자리 다 참, 자리 없음이란 빨간색 글자만이 떠올라 있는 상태에서 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의 약속이었다.
단 둘이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약속.
"…도착했어?"
"아직. 좀 더 자도 돼."
응…. 늘어지는 대답에 고개를 살짝 안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에서 살짝씩 느껴지는 온기가 어느새 팔을 휘감았다.
어디로 도망갈 것도 아니거늘, 자신의 팔을 붙잡고선 고개를 기대며 다시 잠드는 미츠하의 모습에 웃음 지으며 타키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라…."
내륙쪽의 도로를 따라서 가는지라 듬성듬성 보이는 푸른빛에 가슴이 뛰다가 말다한 것이 몇 번째인지.
나를 약올리는 게 아닌가. 그런 망상, 조금은 어이없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아닐 것이다. 잘못이란걸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도로를 설계한 사람이 풍경을 고려 못 한 것이 잘못이겠지.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살짝 약이 오르는 건 그만큼 기대를 했다는 반증이리라.
털털거리며 정류장으로 들어온 낡은 버스에도 마냥 좋아하며 타던 미츠하도 그랬을 것이고.
더군다나 버스 안에는 타키 자신과 미츠하 둘, 그리고 운전기사 하나밖에 없었다.
번잡함과는 거리가 엄청나게 먼 탓인지, 둘만이라는 분위기에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지쳐 잠든 게 두시간 전.
그럼에도 30분마다 살짝씩 깨서는 아직 바다에 도착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렇게나 좋았던 거냐, 너는…."
잠든 얼굴에 물어봐도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걸 알지만은, 살짝 분한 마음에 말을 꺼낸다.
이렇게나 좋아할 거란 걸 진작 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한편으로는 그래도 좀 더 멋진 곳에 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욕심.
이런저런 생각이 섞이고 섞여 머리가 복잡해질 즈음,
─끼이익.
일이 일어났다.
*
"더워어어…."
뒤쪽에서 한숨과 함께 흘러나오는 솔직한 말에 또다시 어깨가 꿈틀거렸다.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닐 것이고, 그냥 답답해서 하는 소리이겠지.
하지만 그런 소리조차도 어쩐지 깊숙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냉각수가 새서 시동이 꺼진 게 내 잘못은 아닌데.
"더워…."
"…나도 아니까 그만해."
낡은 것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버스의 시동이 꺼지자마자 간신히 돌아가던 에어컨이 멈추며 버스 안의 온도는 급격하게 올라갔다.
마침 버스가 멈춘 곳이 정류장이었기에 그늘에 들어갈 수는 있었다.
들어갈 수만 있었다는 게 문제지.
"더워어어어어어…."
"…."
불쾌한 감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끝이 길게 늘여지는 소리에 타키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후우, 일단 버스 말고 다른 차가 와서 데려가 준다고 하니까 기다려 보자."
"그치마아아안…"
더운 거 나도 아니까 그만해. 그런 말조차 입안을 가득 채운 불쾌한 습기에 막혀 속에 내려앉았다. 이젠 입을 여는 것조차 귀찮을 지경이다.
찜통이 된 버스 안이나, 그늘이 있다 할 뿐이지 뜨뜻한 습기로 가득 찬 정류장이나 다를 게 뭔지.
이렇게 중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았건만.
물론 지금의 형태가 생각해 왔던 것과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안다. 기대치를 높게 잡았던 것도 알고.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이렇게 살짝은 초라한 길을 걷게 된 것도.
하지만 적어도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으…. 더워…."
시도 때도 없이 덥다는 말을 꺼내는 모습에 속에서 점점 열기가 차올랐다.
미츠하가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는 하릴없이 풀어지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불평불만을 듣고만 있으려고 만나려던건 아니였는데.
이 더위가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 아니면 내가 엄청 편한 녀석이라서 그런 건가. 자신을 만나고서, 단 둘이 여행을 간다는 설렘보다 지금 당장의 더위가 더 급급한 걸까.
…모르겠다. 끈적거리는 습기와 함께 후욱하고 열기를 한가득 담은 미풍이 불어와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저기, 타키."
"…."
"타─키."
"왜."
자, 이거.
그 불쾌한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온 한기가 하나. 물음에 대답하며 반사적으로 돌아보자마자 뺨에 닿은 조금 차가운 느낌.
화들짝 놀라 화를 내려는 것도 잠시, 눈에 들어온 음료수캔에 목구멍까지 끓어올랐던 무언가가 슬며시 내려갔다.
"응? 안마셔?"
"…너란 녀석은 정말이지…."
이 뻔뻔함인지, 아니면 천연덕스러움인지 뭔지 모를 것에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갸우뚱거리는 고개에 한동안 어이없어하는 것도 잠시, 결국 끝맺음은 한숨을 내뱉는 것이였다.
건넨 음료수를 받고서 한번에 내용물을 삼키자 특유의 청량감이 답답함과 함께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그런 뒤에도 한동안 미적지근한 분위기가 흘러갈 때에,
"어이, 자네들. 혹시 버스에 타던 사람들, 맞나?"
"…네?"
트럭…?
*
이야기하길, 버스 기사와 친하다던가 뭐라던가. 그래서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런 이야기였다.
사실 별 상관은 없는 이야기였다. 그것보다는 다른 쪽에서 신경이 쓰였다.
트럭이라. 그러고 보니 이토모리로 향할 때 라멘집 아저씨가 태워주셨던 것도 트럭이였는데.
츠카사 녀석이나 오쿠데라 선배는 도쿄로 올려보내고 혼자서 이토모리로 향한 기억에 살짝 웃음 지었다. 그때는 혼자, 지금은,
"응? 무슨 좋은 일 있어?"
"글쎄다. 무슨 일일까?"
이렇게 둘이서.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둘이서 같이 훌쩍 여행을 떠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서로를 향해 재잘거리며,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기대는 그런 일을.
조수석이나 뒤 칸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쌓인 까닭에 짐칸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야 했다. 경찰에게 걸리지 않느냐는 말에 웃으며 대답하길,
─요즘 덥다고 단속 잘 안 해.
이토모리도 이러냐는 말에 미츠하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정말이냐.
"그러고 보니, 자네들 바다를 보러 간다고 했던가? 거기 아가씨는 바다를 처음 본다고 했고."
"아, 네."
"흐음…. 저쪽 코너만 돌면 바로 보이는데, 거기서 속도를 늦춰 줄 테니 일어서서 보게."
…네? 그래도 되나요? 황당함에 반문하는 것도 잠시, 옆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에 돌아보니 미츠하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야, 너까지 왜 그러는 거야. 어이없어하는 감정에 눈을 감다가도, 못 해줄 게 어디 있겠냐는 오기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결국 손을 든 건 이성이었다.
딱 한 번만이야, 딱 한 번.
"혹시 모르니 뭐라도 잡고 있게나."
"예. 감사합니다."
코너가 가까워질 때마다 고동치는 가슴. 곡선을 따라 돌아가며 점점 다가오는 소금내. 한 손으로는 무언가를 붙잡고서, 서로를 향해 맞잡은 다른 손.
거기에 어느새 타키도 아까전의 일은 잊은 채 일어서서 트럭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이 옮기라도 한 건지, 뭔지.
그리고 그런 잡생각을 잊게 할 정도로,
숨 막힐 정도로 차가운 푸른빛의,
바람 소리에 살며시 끼어 들은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정면에서 불어오는 소금내 가득 담긴 바람이 불어오는,
수평선 너머 세상 끝까지 닿을 것처럼 보이는,
너와 나의 바다.
우리의 바다.
그전까지 아버지와 매번 와서 익숙하게 봤던 풍경인데도, 조금 더 넓게 보이고, 조금 더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자신과 손을 맞잡고 있는 연인의 감정이 흘러들어온 탓일지도 모른다.
맞잡은 손을 따라 들어온 두근거리는 소리. 그리고 거기에 맞춰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바람. 눈동자에 가득 찬 푸른빛. 거기에 조금씩 떨려오는 손.
처음 보는 바다의 풍경에 겁을 먹기라도 했는지, 미츠하의 손에는 살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진짜,
"바다다…!"
바다일지도.
OP : ▶+DAYBREAK FRONTLINE 歌ってみた /めありー
후기 쓰는것도 오랜만이네요.
사실 많이 고민했습니다. 마음가짐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자문들도 해보고, 뭐 그랬습니다.
결국 답은 한결같더라고요. 죽든 살든, 좋든 싫든 저는 글쓰기밖에 못할거라는거.
게다가 어차피 독고다이 마이웨이로 쓰던 글이고, 여기에 좋다고 따라와 주시던 분들도 계셨는데 제가 죽어 있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3달만에 다시 키보드를 잡았더니 실력이 이모양 이꼴입니다. 속도도 엄청 느려졌고요. 8시간에 8kb라니, 실화인가.
1화 쓸때가 이랬던 것 같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더니 진짜 처음으로 돌아와 버렸네요. 아앍.
어쨌든, 이런 연유로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내일 읽어야겠다. 선추.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