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와 미츠하가 동갑이며 몸이 바뀌기 전에 타키가 이토모리로 전학간다면? 이라는 IF스토리


장편] 처음 온 이토모리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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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을 흐릿하게나마 혜성이 수놓고 있다.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하늘이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는데도 밝아오는 등불은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북적북적 활기찬 것은 내가 알던 도쿄의 모습과 같았지만, 삭막함이 느껴지지 않는 축제의 현장은 여기가 정말 내가 알던 도쿄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도시지만 도시의 삭막함을 완전히 벗어버린 장소. 아마 이 광경을 과거의 내가 보았다면 나는 이토모리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처음 와본 축제의 모습에 내가 넋을 놓고 감상에 잠기자, 옆에서 소매를 툭툭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타키 군, 또 혼자 다른 생각 했지?”

“아, 미안! 오랜만에 도쿄에 와서 감상에 잠긴 것 같… 푸핫!”

기껏 예쁘게 꾸미고 왔는데도 내 마음을 장난감 다루듯 흔들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입술을 삐죽 내민 미츠하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왜 웃는 거야?”

“미츠하 너, 지금 표정 되게 재미있는 거 알아?”

“뭐?! 내 표정이 어떤데?”

당황하며 얼굴을 붉힌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까까지의 우스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미츠하의 손을 잡아 얼굴을 그 손아귀에서 강제로 꺼내자, 그녀의 비명과 함께 양손에 가려진 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직이라는 듯 점점 빨개지는 얼굴과 젖어가는 눈망울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 귀여운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오늘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미츠하, 사람이 많아서 위험하니까…”

“응?”

“손 잡지 않을래?”

용기를 쥐어짜내 힘겹게 말했는데 미츠하에게서 반응이 없다. 걱정을 빙자한 욕심이니 당연한 결과인가?

속으로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미츠하의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아니, 나아가려고 했다.

손을 감싸는 부드러움에 걸음이 막혀 뒤를 돌아보자 얼굴을 붉히고 내 손을 붙잡은 미츠하가 있었다.

“미츠하?”

“떨어지면 안 되니까… 제대로 에스코트 해줘?”



축제답게 다양한 노점이 들어서있다.

오코노미야키, 야키소바, 타코야키 등의 다양한 먹거리는 물론이고 사격이나 긴교스쿠이(금붕어 낚시)와 같은 여러 오락거리도 함께 늘어섰다.

그럼에도 축제의 화려한 노점들에 시선이 가지 않았다. 화려한 시야와 소란스러운 주변의 소음보다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미츠하와 손을 잡은 게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슬쩍 옆을 보면 미츠하의 얼굴도 등불의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붉은 빛을 띠고 있다.

“타키 군! 저거! 저거!”

다급한 미츠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더니, 그곳에는 사과사탕이 있었다.

“먹고 싶어?”

“축제의 정석이잖아? 같이 하나씩 먹자.”

미츠하는 내 손을 붙잡은 채 나를 끌고 쪼르르 달려가 사과사탕 2개를 사버렸다.

"자, 타키 군도 하나 먹어."

난 이거 별로 안 좋아 하는데....

"고마워. 오 이거 맛있네!"

사과사탕은 이름이 사과사탕인 주제에 사과 맛은 전혀 안 나서 사기 당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거겠지만 맛에 오해가 생겨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 맛있기도 하고 축제 분위기도 나서 나는 정말 좋아해!"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사과사탕이다. 잘 음미해보면 그렇게 나쁜 맛은 아닐지도 몰라.

미츠하는 행복한 표정으로 사과사탕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 이게 저 정도로 맛있나?

"타키 군~ 뭐 하고 놀래?"

"이미 놀고 있는 거 아니야?"

"노점이 잔뜩 있잖아! 뭐 할까? 라는 얘기야."

아, 그런 거였구나. 음...

"그럼 저기서 다트라도 던질까?"

"재미있겠네.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하나 들어주기 어때?"

"너 이미 예전에 나한테서 소원티켓 하나 받지 않았냐?"

"아 맞다!"

까먹었던 거냐... 괜히 말했네.

"그것도 오늘 쓸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내 몸으로 다른 사람이랑 싸운 죗값은 무겁다고?"

"알겠어. 아, 우리 차례다. 내가 이기면 그 티켓은 없던 거로 하는 거야. 알겠지?"



"완전히 졌습니다."

"타키 군, 너무 못 던지는 거 아니야?"

"네가 너무 잘 던지는 거잖아! 뭐야? 3개를 던졌는데 전부 20점 3배라니, 사기잖아!"

"그건 나도 놀랐어."

이 녀석, 무녀라서 신의 가호라도 받고 있는 걸까? 최고점수를 연속으로 3개나 맞추다니 말도 안 되는 걸 봤다.

“그래도 덕분에 타키 군에게 소원을 2개나 빌 수 있네.”

“뭐로 할 건지 빨리 말해. 오늘 쓴다며?”

내가 당혹감에 휩싸여있는 것은 아랑곳 않고 미츠하는 방실방실 웃으며 나에게 무엇을 시킬지 행복해 보이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제발 멀쩡한 걸 시켜주면 좋을 텐데….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반쯤 감고 낮은 신음을 흘리던 그녀는 좋은 것이 생각난 듯 입을 벌리더니 그대로 말을 꺼냈다.

“오늘 불꽃놀이가 시작할 때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따라와줄래?”

“그 정도야 당연히 해줄 수 있지. 아직 시간은 남았는데, 이제 뭐하고 놀까?”

젠장, 그때는 츠카사가 알려준 장소로 미츠하를 데려가야 하는데 어쩌지?

“일단 저기서 빙수부터 사먹고 생각하자. 타키 군도 빨리 와!”

저렇게 혼자 뛰어가면 길 잃어버릴지도 모르잖아… 뭐 됐나, 미츠하가 즐거워 보이니 이 녀석이 원하는대로 해주자. 미츠하에게는 처음 온 도쿄니까 말이야.

“타키 군~ 빨리 오라니까!”

“네가 너무 서두르는 거잖아! 그러다가 서로 떨어져버린다고!”

서둘러 미츠하의 곁으로 달려가니 그녀는 이미 내 몫의 빙수까지 주문을 마친 상태였다.

“타키 군 거는 소다 맛으로 했는데 괜찮지?”

“무난한 맛이네. 소다라면 어릴 때부터 많이 먹던 맛이니까 괜찮아.”

“그래? 그럴 거 같아서 소다로 했는데. 다행이네.”

우리가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얼음을 가는 기계는 소란스러운 기계음을 연발하며 얼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여기 소다 맛 빙수 하나랑 초콜릿 맛 빙수 하나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우리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온 점주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빙수를 받고 계산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초콜릿? 미츠하 너, 진짜 단 것만 좋아하는구나.”

“단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대. 단 맛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맛이야. 이상한 게 아니라구.”

“이상하다고 한 적은 한번도 없는데?”

“어쨌든!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있어.”

“알겠어. 이거 먹고 다음은 슬슬 시간이니 퍼레이드라도 구경가자.”

“퍼레이드?”

미츠하는 유원지도 아닌데 웬 퍼레이드냐며, 놀리지 말라는 듯 나를 쏘아보았다.

“가마에 사람들이 잔뜩 올라타서 행진하는 거 있잖아.”

“아~ 그거, 솔직히 재미 없는데 보러 가야 돼?”

“딱히 할 것도 없잖아? 야키소바나 오코노미야키 사줄 테니까 그거 먹으면서 보자.”

“둘 다 사줘.”

“난 네 지갑이 아니거든?”



결국 미츠하의 바람대로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를 둘 다 사서 우리는 가마행진을 하는 곳으로 갔다.

이미 시작한 행진은 작은 건물처럼도 보이는 거대한 가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타서 춤을 추며 거리를 나아가고 있었다.

“이 행진, 생각보다 엄청 크네.”

“이렇게 규모가 큰 퍼레이드는 처음 봐!”

“미츠하는 축제에 자주 온다고 하지 않았어?”

“이토모리의 축제는 규모가 작아서 이런 거까지 하지는 않거든.”

그렇게 말하는 미츠하의 표정은, 하늘의 혜성을 바라보며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이토모리의 축제는 대체 뭘 하는 거지?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를 뒤로한 채 시간을 보니 벌써 불꽃놀이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나는 미츠하를 불렀다.

“미츠하, 이제 슬슬 시간이야.”

“시간이라니?”

얘 설마 자기가 말해놓고 까먹은 거야?

“불꽃놀이! 나랑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서, 까먹고 있었던 거야?”

미츠하는 이제 떠올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크게 벌렸다.

“어디로 갈 건데? 안내해줄 수 있겠어?”

“오쿠데라 씨에게 위치는 받았으니까 휴대폰 보면서 갈 수 있어.”

“그래? 한번 보여줘 봐.”

“자, 여기.”

미츠하는 휴대폰을 잠시 조작하더니 내 쪽으로 화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장소는 놀랍게도 내가 잘 아는 곳이었다.

“어? 나 여기 알아! 사실은 츠카사가 나한테 여기로 가보라고 했거든.”

“츠카사?”

“아, 방금 만난 안경 쓴 내 친구. 걔가 거기가 숨은 명당이라고 추천해줬거든. 오쿠데라 선배도 그렇게 말했어?”

“아… 응! 마침 잘 됐네. 가볼까?”

“그래, 다행이네. 마침 갈 곳이 겹쳐서.”

미츠하는 옆머리를 살살 꼬며 앞장섰다.

오쿠데라 선배와 츠카사, 타카기의 합작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목적지가 같아서 다행이다.

“내가 잘 아는 곳이니까 앞장 설게. 잘 따라와.”


츠카사와 오쿠데라 선배가 알려준 장소는 사실 도쿄에 살던 시절 우리 집 주변의 한 건물 옥상이다.

옥상과 도로가 이어져 있는 신기한 형태라서, 건물의 1층을 통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옥상에 출입 할 수 있는 장소이고 전망도 괜찮기 때문에 혜성을 보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아니, 혜성을 보기에는 더 좋은 장소가 많이 있겠지만, 이 축제의 불꽃을 같이 볼 수 있는 장소는 드물다.

불꽃놀이까지 생각하면 최고의 숨은 명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오쿠데라 선배는 이 장소를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지? 역시 츠카사의 계획인가?

어찌된 영문이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슬슬 도착이고 말이야.

“미츠하, 다 왔어. 여기야.”

아까부터 이리저리 둘러보던 미츠하는 잠시 나를 보더니 다시 앞을 바라봤다.

콘트리트 바닥을 검은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건물 옥상의 형태.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아까 말했듯이 한 면이 도로와 이어져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건물의 옥상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 탁 트인 전망에, 또렷이 보이는 혜성의 모습에 미츠하는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미츠하, 왜 그래?”

“여기 전망 되게 좋네…”

“그렇지? 오쿠데라 선배는 여기를 어떻게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도쿄 치고는 전망이 탁 트여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였어.”

“였다니?”

“지금은 여기에 안 살잖아 바보야. 아무리 그래도 이토모리의 하늘보다는 예쁘지도 않고.”

“누구보고 바보라는 거야! 확실히 이토모리의 하늘보다는 별이 안 보이지만 그만큼 건물의 불빛이 가득해서 나는 좋다고 생각해.”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미츠하의 눈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듯 도시 곳곳에서 비추는 빛을 잔뜩 머금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금새 앞으로 달려가 울타리에 매달려 혜성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미츠하를 바라보며 저거 위험하지는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금방 생각을 지우고 대화주제를 바꿨다.

“너, 나한테 여기에는 왜 오자고 한 거야? 오쿠데라 선배한테 대체 무슨 얘기를 들었어?”

“어? 그건 그러니까…”

뭐야, 얘는 왜 얼굴을 붉히고 있지? 오쿠데라 선배는 대체 미츠하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별거 없었어! 여기 오자고 한 이유는 그러니까… 오쿠데라 선배가 여기로 오라고는 했는데…”

“했는데?”

“으… 그 뭐냐… 여기 전망이 좋다고 그랬거든.”

“오쿠데라 선배는 여기에 오신 적이 없을 텐데?”

내가 없는 동안 츠카사나 타카기와 함께 와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에 올 이유가 전혀 없다.

“어? 그래? 타키 군이 모르는 거 뿐이지 않을까…?”

미츠하는 또 옆머리를 배배 꼬며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아, 시작됐다!”

갑자기 커진 미츠하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하늘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와 폭음과 함께 우리의 피부를 잠시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첫발을 시작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불꽃이 터지더니 점차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푸른 빛의, 그렇다고 마냥 파랗지만도 않은 찬란한 광채의 혜성 아래이기 때문일까? 대체로 따뜻한 색깔을 띠는 불꽃은 혜성에 어우러져 하늘을 더욱 화려하게 수놓았다.

“타키 군! 나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 봐!”

“나도 처음 봐! 애초에 1200년에 한번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형형색색 계속해서 펑펑 터져가는 불꽃 탓에 우리는 큰 소리로 외치다시피 대화했다.

그건 그렇고 혜성과 불꽃이 하늘을 가득 메워서 전혀 어둡지 않네. 분명 지금은 밤인데도 이렇게 밝은 하늘은 처음 봐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절경을 미츠하의 옆에서 함께 보고 있는 것까지 합쳐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이 한달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한 달밖에 안 지났다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지.

한 달, 이렇게 말하면 짧아 보이는데 30일이라고 말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처음엔 단순히 시골이 좋다고 생각해서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이토모리에 이사 갔다.

첫날부터 등교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토모리에서의 생활은 시작부터 여유가 없었다는 느낌이네.

이토모리 고등학교에 전학, 거기서 미츠하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예쁘고 약간은 속물적인 우등생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뿐, 친해지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가 생각이라도 해보겠어? 전학 둘째 날에 앞자리 여자애와 몸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지 말이야.

미츠하와 몸이 바뀌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미츠하의 몸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춤도 춰보고 쿠치카미자케도 만들어 보고… 미츠하에게는 미안하지만 여자의 가슴도 만져보고, 진짜 여동생은 아니지만 여동생이 생기기도 했네.

또 뭐가 있었더라… 맞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랑 싸워보기도 했지. 얘는 여자인데 나보다 강한 것 같아서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미츠하랑 시내에 데이트를 나가기도 했었구나. 얘랑 만나고 나는 이 한달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했다.

사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가서 바로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 나를 걱정해주던 가장 큰 이유였지만, 미츠하와 만나서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미츠하.”

“왜?”

“네가 좋아.”

말했다. 말해버렸다. 만난 지 아직 두 달도 안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니까, 이 기회를 차버릴 수는 없었다.

안 되면 츠카사한테 화풀이 좀 하고 텟시한테 위로나 받자.

“타타탓…타키 군…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데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갑작스러운 고백에 미츠하는 얼굴을 주변의 빛이 아닌 자신의 색으로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고, 잠시 말을 더듬더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네가 좋다고. 미야미즈 미츠하가 좋아.”

“거짓말.”

미츠하의 한마디. 그저 짧디 짧은 3글자. 한 단어일 뿐인 그 말에 나는 모든 것을 부정당했다.

그래도 난 지금 진심이거든?

“거짓말 아니야.”

“농담이지? 타키 군이 나를 조… 좋아한다고?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빨라지기 시작한 그녀의 말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더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동공, 색소라도 첨가한 듯 달아오른 볼, 그럼에도 부족한지 꼬물꼬물 쉴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은 나의 고백이 그녀를 얼마나 당황시켰는지 충분히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분명히 그녀는 혼란할 것이다. 나는 그녀를 당황시켰다. 마을에 있기 힘들어진 그녀를 벗어나게 해준다며 도쿄로 데려온 주제에 도쿄에서도 곤란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녀의 말에 긍정한다면 전부 없었던 걸로 할 수 있다. 그녀는 다시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일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저질렀기 때문일까, 끝을 보고 싶었다.

그녀를 곤란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나는 미츠하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을 지금 전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지금 이순간이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야!”

각오의 반동일까? 조금 욱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미츠하는 내 외침을 듣고 두 눈이 휘둥그래진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본의 아니게 큰 소리를 내고 난 뒤의 정적은 자업자득이지만 너무 뻘쭘하다.

어색해진 우리의 위를 혜성이 지나고 우리의 사이를 불꽃의 폭음이 채워주고 있었다.

내가 끝나가는 불꽃으로 시선을 옮기자 폭음의 사이로 미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심이야?”

얘가 드디어 인간불신에 빠지기라도 한 건가… 기껏 사람이 고백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진심이야.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도 난 너를 좋아해.”

“그래? 으응… 타키 군은 나를 좋아하는 구나…”

미츠하는 뒤로 돌아서더니 말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여기서 끝이야? 뭐 알겠다든가 싫다든가 뭐 그런 거 없어?

“잠깐.”

내 생각의 흐름을 끊는 미츠하의 한마디. 그에 맞춰 내가 완전히 멈추자, 미츠하는 살짝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타키 군은 내가 좋아서 내 가슴을 그렇게 만진 거야?”

“뭐… 뭐? 여기서 그게 갑자기 왜 나와?! 아니, 그게 아니고… 오히려 널 좋아하게 된 뒤로는 한번도 안 만졌어!”

이런 타이밍에 저런 질문이 어떻게 나오는 거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미츠하를 신경 쓰게 된 이후로 왠지 부끄럽고 엄청난 죄책감 같은 거에 사로잡혀서 만지지 못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미츠하는 몸을 완전히 내 쪽으로 다시 돌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기도 잠시, 숙이고 있던 얼굴을 치켜들고 나를 쏘아보며 크게 외쳤다.

“그 전에는 계속 만졌다는 거잖아! 이 변태야!”

“미안! 그래도 계속 안 만졌고 앞으로도 안 만질 테니까!”

망했다… 나중에 츠카사에게 화풀이나 해야겠네. 난 끝났다. 텟시… 난 여기까지다.

“뭐 됐어.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믿어줄게.”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미츠하는 가볍게 이 일을 넘어가주었다.

“진짜?”

“왜? 뭐 벌이라도 받고 싶어?”

“아니? 그럴 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준 그녀에게 혹시 몰라 확인을 해봤지만, 역시 가볍게 넘어가 주었다. 심지어 약간 웃고 있다. 무슨 일이지?

“어쨌든! 타키 군이 나에게 고백을 했으니 나는 답을 해줘야 되는 거지?”

“어… 그렇겠지?”

무슨 일인지 뒷짐지고 몸을 한 바퀴 빙 돌리며 미츠하가 말했다.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이런 반응은 상상도 못했던 반응이라, 미츠하의 대답이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내가 차이더라도 좋은 분위기로 다시 평범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은 들어,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타키 군.”

“네!”

아 이런… 갑자기 불려서 순간 존댓말로 답해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만히 서있어.”

“뭐? 그게 무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미츠하의 명령. 그리고 나의 반문은 그녀에 의해 억지로 막히고 말았다.

그것도 물리적으로.

말을 하던 입술은 기다랗고 얇은 막대기에 틀어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이 느낌은 손가락이다. 미츠하는 검지손가락을 세워 내 입을 막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잠깐의 당황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내 시야가 미츠하의 얼굴로 가득 차있다는 것.

눈을 감은 채 내 얼굴에 그녀는 얼굴을 맞댔다. 우리의 사이에는 그녀의 손가락만이 있을 뿐이었다.

잠시간의 정적, 수 초였을까 수십 초였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체감으로는 시간이 흘러가지 않아 한동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는 것이다.

드디어 그녀의 얼굴이 멀어지고 그녀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살짝 달라붙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가다 떨어지는 입술. 그녀는 그 손을 등 뒤로 숨겨 다시 뒷짐을 진 채 입을 열었다.

“이게 나의 대답.”

“뭐?”

이게 대답? 안되겠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더 이상의 사고가 불가능하다. 일단은 긍정적인 쪽인가?

“아직 사귀지도 않은 남자애랑 벌써 키스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건 어른이 돼서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서 끝. 앞으로 잘 부탁해. 타키 군.”

“그게 무슨 뜻이야...?”

미츠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방금까지 입술에 느껴지던 손가락의 감촉, 눈앞에 시야를 가득 채운 그녀의 모습만이 머릿속을 휘저어 사고를 방해하고 있었다.

“꼭 직접 말하게 해야 돼? 나도 너를… 타키 군을 좋아하니까 잘 부탁한다는 뜻이잖아! 설마 타키 군은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애한테 이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미츠하가 날 좋아한다고? 츠카사의 추측이 진짜였다는 건가? 꿈은 아니겠지? 아… 젠장. 웃지 마라 타키! 조금만 방심해도 입꼬리가 올라가서 한심한 모습으로 웃어버릴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자! 불꽃놀이도 다 끝났잖아! 이미 밤 9시라구!”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츠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숙소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방향을 틀어 몸을 돌리는 그녀의 얼굴에 살며시 드리운 미소는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잠깐… 츠카사가 우리 숙소를 어디에 잡았는지 알려줬나?

“미츠하! 우리 아직 숙소가 어디인지 모르잖아!”



“오~ 츠카사가 괜찮은 방을 잡아준 거 같네.”

거실과 함께 제법 큰 화장실과 욕실이 있고, 방 2개가 달려있는 이 방은 둘이서 쓰기에는 많이 넓었지만 너무 넓은 게 아닌가 싶은 불만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내 방이 오른쪽이고 타키 군 방이 왼쪽이지?”

방이 다르더라도 같은 집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츠카사에게 따로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로 설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이성과의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다.

내 고뇌를 모르는 미츠하는 그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바빠 보였다.

“목욕 내가 먼저 해도 되지?”

“마음대로 해.”

자기도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주제에, 이 상황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걸까? 한숨을 연거푸 내쉬고 있자 욕실의 문이 살짝 열리고 미츠하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엿보거나 그러면 안돼!”

“문을 잠가!”

얼마 남지 않은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제법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기에 피곤함을 느끼고 거실 소파에 앉자, 욕실에서 샤워기의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문 너머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츠하가 씻고 있다.

솔직히 보고 싶다. 분명히 저 몸은 나의 몸이기도 해서 꽤 많이 봤을 텐데도 남자의 몸으로 있으니 역시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보다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그 후폭풍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일단 미츠하를 데리고 도쿄에 와버렸지만 여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보호자가 필요한 입장이다. 그리고 미츠하의 할머니를, 우리 아버지를 배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츠하에게 말해서 내일 돌아가도록 하자.

이런 일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 하나 없다.

이제 미츠하를 당당하게 지켜줄 수 있다. 좋은 명분이 생겼으니까.

나는 미츠하의 남자친구다.

내가 미츠하의 남자친구… 분명히 이게 현실이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꿈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는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 만능감, 만족감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미츠하를 지켜주자. 설령 마을 사람들이 미츠하를 부정하더라도 내가 그만큼, 그 이상 미츠하를 긍정해주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각자의 가족, 나토리, 텟시도 있으니 그렇게 외롭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방면으로 생각을 뻗어가고 있자 욕실에서 미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다 씻었으니까 타키 군이 씻어~”

일단 따뜻한 물에 몸부터 녹이고 오자.



가볍게 씻고 나오자 거실에는 소파에 누워 뒹굴 거리는 잠옷 차림의 미츠하가 있었다.

“미츠하.”

“응? 왜?”

나의 부름에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마주쳐오는 그녀에게 나는 서두 없이 본제로 넘어갔다.

“내일 이토모리로 돌아가자.”

“그래, 내일 돌아가자.”

“정말 괜찮은 거야?”

도망칠 정도로 마을 주민들의 시선이 무서웠던 그녀가 괜찮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상의 말을 나로서는 떠올릴 수 없었으니까.

"타키 군이 내일 돌아가자 할 거라고 예상은 이미 하고 있었고... 나도 마음의 준비는 다 됐어. 혹시 잘 안 되더라도 타키 군은 내 곁에 있어줄 거라고 믿으니까... 난 괜찮아."

"그럼 내일 아침에 신칸센을 타고 돌아가자. 아, 비행기 타고 갈래? 좀 더 비싸긴 해도 어차피 너 비행기 타본 적 없지?"

처음으로 도망쳐 나온 여행. 이토모리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 이미 사치스럽게 놀았다. 이 정도는 더 사치 부려도 되지 않을까? 사실 나도 비행기는 타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미츠하는 내 말을 듣더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확실히 비행기는 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타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여기서 더 타키 군에게 부담을 끼치기는 싫어. 지금 나한테 남은 돈으로 비행기까지는 무리잖아?"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바로 도쿄역으로 가자."

여기서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곁에 있어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그걸로 되는 걸까? 이래서는 사귀기 전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아니, 애초에 사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조차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래서는...

이토모리에서 나올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잖아.

"미츠하, 나 먼저 들어가서 잘 테니까 너도 늦지 않게 자."

나는 그녀보다 먼저 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비록 침대는 없지만 준비된 이불은 충분한 푹신푹신함을 갖고 있어서, 적어도 미츠하네 집보다는 편안했다.

지금쯤이면 미츠하도 방에 들어갔겠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같이 잔다고 생각하니 이건 이거대로 굉장히 신경 쓰여서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타키 군..."

뭐라고 해야 하나... 금방 노크소리와 함께 미츠하가 나를 부를 것 같은 느낌? 지금쯤 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타키 군, 나 그냥 들어간다?"

문고리를 당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문 쪽을 바라보자 밝아진 조명과 함께 베개와 이불을 든 미츠하가 서있었다.

"미츠하? 지금 뭐 하는 거야?"

"소원 티켓, 지금 써도 돼?"


옆에서 같이 자줄 것

이불은 따로 쓸 것

절대로 이불을 넘어오지 않을 것

손만은 계속 잡고 있어줄 것


그녀가 말한 소원의 내용이다. 소원이고 뭐고 저래서는 내가 버틸 수 없다. 나도 남자니까... 지금도 이미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솔직하게, 조금은 과장되게 이 사실을 부풀려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타키 군이 나를 덮친다면 그 정도의 남자인 거지. 나를 보는 눈이 없는 여자로 만들 셈이야?"

라며 억지로 들어와 내 이불 옆에 자신의 이불을 깔고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버린 채 불 끄고 누우라고 나를 보챈다.

형광등을 끄고 내 이불에 들어가자 그녀의 이불에서 손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마 잡아달라는 거겠지.

저 손을 잡는 순간부터는 이성의 줄다리기 수준을 넘어선 줄타기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그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곡예에 나섰다.

부드럽고 시원하다. 기분 좋은 온도. 불이 꺼져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레 온 신경이 이불의 푹신함과 부드러운 그녀의 손에 집중된다.

“요즘 우리 손 자주 잡는 거 같네.”

“타키 군은 싫어?”

역시 아직 안 자는구나.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고 보니 계속 내가 먼저 잡거나 잡자고 했던 거 같은데… 미츠하가 먼저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나?”

“아마도 그럴걸?”

“앞으로는 많이 잡아줄게.”

“손잡기만 할 거야?”

“타키 군, 변태.”

“미안.”

나름 회심의 장난이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혼났다.

살며시 고개를 틀어 옆을 보자, 그림자가 드리운 미츠하의 실루엣만이 보이고 있었다.

“농담이야. 깍지도 껴줄게. 뭣하면 지금 껴줄까?”

“기쁘지만 거기까지 하면 잘 때 불편할거야.”

“응, 알았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 뒤로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방에는 우리의 심장고동과 체온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깍지의 대신인 듯, 미츠하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이제야 물어보는 것도 좀 그런데 말이야. 너, 왜 여기서 자겠다고 한 거야?”

마치 무언가를 꾹 참는 것 같은 그 행동에, 나는 이런 당연한 질문을 그제야 미츠하에게 물어봤다.

마주잡은 손에 힘이 조금 더 세게 들어간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츠하의 실루엣이 모양을 바꾼다.

비록 서로가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실루엣에 의지한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무서워.”

침묵을 깨는 그녀의 한마디에 내가 의문을 던지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일 마을사람들의 오해를 푸는데 실패하면 어쩌지? 나 때문에 우리가족이 마을에서 욕먹는 게 무서워. 나를 여기로 데려온 타키 군이 욕먹을까 두려워. 텟시와 사야는 마을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같이 욕먹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을에서 혼자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모든 게 무서워. 두려워. 혼자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미안, 민폐였지?”

“그럴 리 없잖아.”

내가 오기 전에 마을사람들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겉치레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마을사람들은 나와 아버지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외지인이라는 눈빛이 없는 것은 아니어도 그런 시선을 갖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우리가족은 이토모리에 잘 녹아 들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미츠하를 외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신사의 무녀님’이 의외의 일면을 보여 실망했다면, 그래서 미츠하를 외면한다는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미츠하는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텟시와 나토리는 겨우 이런 일로 미츠하를 떠나갈 친구들이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미츠하의 곁에 남을 것이다. 요츠하도 있고 할머니도 있다. 많지는 않아도 절대로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이정도 있다면 절대 적은 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츠하, 넌 혼자가 아니야.”

“그러네. 타키 군이 있으니까.”

역시 얘는 좀 둔감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수년간 줄곧 곁에 있던 텟시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니 어쩔 수 없는 걸까?

“나뿐만이 아니잖아? 텟시도 나토리도, 너희 가족도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사실 알고 있잖아.”

“응, 그러네… 사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불안한걸 어떡해. 무섭단 말이야.”

“그래서 내 방에 찾아온 거잖아?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 능력이 닿는 한, 아니, 능력이 안 된다면 능력을 키워서라도 들어줄게. 지금은 네 곁에 있어주는 것 말고 뭘 해줄 수 있는지 모르겠어. 나도 이런 내가 한심해. 그저 곁에 있는 것뿐이라면 전부터 계속 해줄 수 있는 거였고, 하고 있던 거였잖아. 나는 네 남자친구로서 잘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직접 물어보는 것부터 실격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지금 생각나는 나의 방법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츠하가 돌아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주잡은 손을 그녀는 놓았다.

“미츠하?”

“이제 괜찮아. 무섭지 않아졌어. 그러네. 내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구나. 그리고 타키 군도 있어. 내가 타키 군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야.”

“그게 뭔데?”

“어떤 때라도 내 곁에 있어주는 것.”

“그걸로 괜찮아?”

“친구로서 곁에 있어주는 것과 남자친구로서 곁에 있어주는 건 엄청난 차이라구!”

“알겠어. 알겠어. 계속 곁에 있어줄게. 남자친구로서 말이야.”

솔직히 좀 부끄럽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내가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지금 필요하고 현재 알고 있는 것부터 하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녀는 걱정을 떨쳐냈다. 나는 고민을 해결했다.

우리들의 도쿄여행은 나와 그녀에게 많은 변화를 안겨주었다.

도쿄에 오길 잘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신칸센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후 1번선, 1번선에 9시 23분 출발, 노조미 313호, 신 오사카 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괜찮다고 했잖아. 아직 무서워?”

“무섭지는 않아. 그래도 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네. 긴장되나 봐.”

우리는 현재 나고야로 가기 위한 신칸센을 타기 위해 도쿄역의 신칸센 플랫폼에 들어와있다.

나는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미츠하는 아직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고, 깍지까지 꼈다.

“타키 군?!”

“내가 계속 같이 있어줄게. 어때, 이제 괜찮지?”

잠시 당황했는지 높아진 목소리를 흘리던 그녀였지만, 이내 심호흡을 한번 하다니 어깨를 활짝 펴며 웃기 시작했다.

“깍지, 생각보다 빨리 끼우게 됐네.”

“그러게. 분명 마을 어르신들의 오해도 이렇게 빨리 풀릴 거라고 생각해.”

“고마워. 이제 괜찮아졌어.”

아까까지의 떨림은 온데간데 없고 그녀는 환한 미소로 나를 받아주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힘을 주어 강하게 서로를 잡았다.

우리가 떠드는 사이에 신칸센은 이미 들어와 문을 열기 시작했고, 우리는 입장 대기 줄에 서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츠하, 요츠하한테 선물할 기념품은 제대로 챙겼지?”

“당연하지! 텟시랑 사야 것도 챙겼어?”

“당연하잖아. 아, 우리차례다. 들어가자.”

기념품 얘기로 수다를 피우고 있자 줄은 금방 줄어들어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이 발을 떼면 우리는 돌아간다. 짧은 도쿄여행은 끝났지만 우리는 이제 시작을 하는 것이다.

들어가기 전에 나는 미츠하를 쳐다봤고,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좋아―.

“가자, 이토모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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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둘의 인상리스트는 서로가 맺어졌으니 이제 만들지 않습니다.

드디어 완결입니다!

1화가 2월 16일인데 완결이 6월 11일이네요!

너의 이름은. 상영이 끝나는 날에 첫토모리도 끝이라니, 아~ 뭔가 운명적이야!

약 4개월의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3화에서 2달 반을 먹어버린 것 같지만요.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뽕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너의 이름은.이 좋아 죽을 정도로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한창 팬픽을 쓰던 때와 비교하면 글쎄요...

아 어쩌지... 막상 후기 쓰려니까 쓸 말이 생각 안 난다 ㅠㅠ

일단 앞으로의 핫산 일정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계획은 있지만요.

한동안 완전히 소비자로 돌아가서 못 봤던 팬픽들을 좀 보고 싶습니다. 밀린 책들도 읽고 싶고요.

준비중인 타키미츠의 애프터스토리 장편이 있긴 하지만 첫토모리 마지막 연재주기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네요...

아마 한동안은 팬픽을 쓰더라도 단편~초단편만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연재주기도 느리고 필력도 안 좋은 글을 기다려주신, 봐주신 분들께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드립니다.

'처음 온 이토모리' 시리즈에 대한 질문, 그게 아니더라도 질문이 있다면 달아주세요!

제 신상정보에 대한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 답해드립니다.

다시 한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에필로그 -


나른한 주말 오후.

나는 타키 군과 함께 마을 호수의 주변 벤치에 앉아있다.

호수바람이 우리를 쓰다듬고 지나가며 은은한 가을의 햇빛이 쌀쌀한 날씨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덥혀주고 있었다.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버린 이토모리의 산들은 붉고 노란 빛을 뽐내고 있었고, 사라져버린 풀벌레 소리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듯 평소보다 새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다.

자칫하면 낮잠에 빠져버릴지도 모를 정도의 평온함. 우리는 그런 평온함을 영유하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잘 이해해주셔서 다행이네.”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침묵이 심심했던지 타키 군이 내뱉은 말에 나는 빠르게 긍정을 표했다.

우리가 도쿄에서 이토모리로 돌아온 그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사과하며 오해를 풀어나갔다.


“괜찮아. 괜찮아! 이미 다 알고 있어! 테시가와라네 아들녀석과 사야카가 너희가 없는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단다. 미츠하, 가족이 부당하게 모욕당한다면 화를 내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때려서는 안돼. 앞으로는 조심하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생각하고 행동할게요.”

“그럼 됐어. 이미 마을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도쿄는 재미있었니?”


만나는 어른들마다 대화가 이런 느낌으로 흘러가서 우리는 금방금방 오해를 풀어나가며 각자의 집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잘 다녀왔냐는 인사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요츠하가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도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영화관이 어떻다든가, 카페가 어떻다든가, 실컷 자랑해주자 치사하게 언니만 가냐고 화를 내다가도, 기념품으로 사온 도쿄바나나에 금새 조용해졌던 것을 떠올려보면 요츠하가 당돌하긴 해도 아직 9살짜리 꼬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나와 타키 군이 사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사야 뿐이다. 굳이 숨길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밝히고 싶지도 않았기에 둘이서 함께 내린 결론이었다.

원래 둘이서 자주 다녀서 그런지 둘이 같이 있어도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다.

“미츠하.”

타키 군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러서 내가 이유를 묻자, 타키 군은 담담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

이 남자는 왜 나와 관련된 일만 되면 자신감이 사라지는 걸까?

“내가 말했잖아. 그냥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나는 충분해. 고마워. 정말로 내 곁에 계속 있어줘서.”

“당연하지. 네 곁을 내가 먼저 떠나는 일 따위 없을 거야. 미츠하가 사라진다면 내가 반드시 찾아줄게.”

“타키 군…”

이 남자는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말한다.

그런 것도 이 남자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지만 말이야.

“내 몸으로 그런 부끄러운 말을 해줘도 별로 설레지 않아요. 타키 양.”

“몸이 바뀌는걸 나보고 어쩌라고!”

내 모습을 하고 있는 타키 군이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심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타키 군이 온 뒤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와 몸이 바뀌기 시작해 맛보기 형식이라도 남자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었다.

그가 가져다 준 해방감,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의지했다.

비록 그 역시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는 나에게 있어 기둥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로 인해 주변의 인간관계 역시 변하기 시작해서 마츠모토네 패거리가 더 이상 나와 텟시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고, 나에게도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마을 어르신들의 미야미즈 추종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반 친구들과의 벽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가장 큰 인간관계의 변화는 역시 나와 타키 군이다.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타키 군이 이토모리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옛날 그대로 고슴도치처럼 주변에 가시를 세우고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타키 군.”

“왜?”

“이토모리에 와줘서 고마워.”

“너 때문에 온 건 아니거든?”

“고맙다고 하면 그냥 알겠다고 받아들여! 타키 군이 그러니까 지금까지 여자친구가 없었던 거 아니야!”

“그러는 너도 없었잖아!”

아직도 한마디도 안 지려고 그러네? 아… 정말, 나는 어쩌다가 이런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거람?

“나는 없던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거였거든? 타키 군도 알고 있잖아?!”

“으윽… 그건 그런데… 안 만든 거여도 결국 없던 건 마찬가지잖아!”

이대로는 끝이 안 날 것 같다. 주제를 넘기자.

“알았어. 아, 혹시 타키 군이 여기에 처음 왔던 날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네가 나에게 이 마을을 안내해줬잖아?”

“응, 나는 우리의 시작이 그때부터라고 생각해.”

“겨우 마을안내가? 몸이 바뀌기 시작했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겨우?! 나름 우리의 첫 데이트라고 그거!”

비록 정식은 아니지만 말이야.

타키 군은 내 말을 듣고 잠시 턱을 만지며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금방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네… 아무튼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생각해보니 나는 타키 군에게 그때부터 의지하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해서 말이야. 첫날부터 타키 군한테는 무녀로서의 내숭 같은 거 별로 안 떨었잖아?“

“오, 그런 것 같네.”

“그런데 말이야. 타키 군에게 그날 못했던 말이 지금 생각났어.”

“어? 뭔데?”

타키 군은 내 얼굴로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타키 군이 내 몸이 아니었다면 지금 건 꽤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네.


우리의 이 현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런 현상이 없더라도 우리는 계속 함께 있을 거라는 것.

근거는 없더라도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내가 계속 혼자 생각에 잠기자, 타키 군은 빨리 말하라며 나를 보채기 시작했다.

“아 정말! 말할 테니까 좀 조용히 해!”

“알겠어. 시시한 거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 몸의 주인은 지금 나라는 걸 잊지 마라고!”

“그러는 네 몸도 지금은 내가 갖고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미안.”

에휴, 정말이지… 분위기 한번 못 만드는 남자네.

“타키 군!”

“뭐, 뭐야? 갑자기.”


“이토모리에 온 걸 환영해.”


-fin


단편] 링크 모음집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19525


장편] 너를 위해서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874 (完)


장편] 네가 없는 3년 / 내가 없던 3년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900 (完)


장편] 처음 온 이토모리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9081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