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가 미츠하의 몸으로 과거의 자신을 만나 일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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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일 07:00 am [이토모리]
 

낯선 알람 소리가 의식을 침범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나는 생각했다. 알람이 울렸다는 것은 벌써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걸까? 하지만 몸은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어젯밤도 미츠하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설치다가 아침해가 뜨는 것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몸을 뒤척이며 옅게 신음하자 위화감이 들었다. 휴대폰 알람을 끄기위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눕자 가슴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뭐지?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비몽사몽 한 상태임에도 기묘한 이질감이 의식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상하리만큼 누워있는 곳이 딱딱하게 느껴졌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나는 신음소리가 뭔가 야릇하게 들린다. 옆으로 돌아누웠을 뿐인데도 가슴에 느껴지는 중량감. 묘하게 다른 이불의 감촉.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연약한 근육.


그 위화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우와아아!!!.......음?」



뭐지...?


주변을 살펴보니 전혀 모르는 장소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본의 전통식 다다미방. 고층 아파트에 침대가 놓여 있는 내 방과는 정반대의 풍경이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다. 아직 덜 깼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 숨을 깊게 들이켤 때마다 나는 공기의 냄새, 무엇보다도 물리적으로 느껴지고 있는 가슴의 무게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응?


나는 놀라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가슴이 달려있었다.


그곳에는 가슴이 달려있었다.



「................?」



잠옷 사이로 새하얗고 봉긋하게 부풀어 있는 가슴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이 입으로 새어나왔다.



「가슴...?」



흰색 속옷 너머로 가슴골이 보였다. 숨을 들이켜고 내쉴 때마다 잠옷의 촉감이 가슴에 느껴졌다.


주물러 볼까.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 처럼,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간 머뭇거린 뒤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봉긋한 부분을 가볍게 주물렀다.



「오오...!」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음. 뭐랄까. 브라를 차고있는데도 여자의 가슴이란건 제법 감촉이 좋구나.


그렇게까지 큰 가슴은 아니다. 한손에 모두 잡힐듯 말듯한 적당한 크기의 가슴이다. 하지만, 이정도 크기만 되어도 의외로 촉감이 좋다.


나는 주변을 확인한 후 계속해서 가슴을 주물렀다. 이러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가슴.

가슴.

가슴.

가슴.


앗....아아.....


리듬을 타며 이리저리 다양한 방법으로 가슴을 주무르다보니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여자의 가슴이란 건가....


황홀함에 빠진 채 열심히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데 문득 다른 방향에서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또 아침부터 가슴 만지고 있는 거야?」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왠지 모르게 낯익은 여자아이가 한심해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여자아이의 이름을 골똘히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그러니까.....아!! 요츠하양이었던가?」



힘들게 기억해낸 이름을 말하자 요츠하는 어이없음을 넘어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응? 잠깐만, 지금 뭐라고?



「언니? 나?」



나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요츠하에게 물었다. 하지만 요츠하는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쏘아붙였다.



「아침부터 무슨 잠꼬대야? 밥, 먹, 어!! 얼른 일어나!!」



요츠하는 맹장지문을 쾅! 하고 닫아버리고는 어딘가로 달려가 버린다. 뭐지....


주위를 둘러보니 방구석에 전신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뎌 전신거울 앞에 섰다.



「음....?」



나는 순간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눈을 비비며 다시 전신거울을 쳐다보았다.


삐죽삐죽한 긴 흑발, 투명함이 느껴지는 하얀 피부, 잡티하나 없이 말끔하고 명랑한 얼굴 생김새. 호기심 가득한 커다란 눈동자와 균형잡힌 용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청초함.


내가 그녀와 만난 것은 분명 하루정도밖에 되지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거울속에 비춰지고 있는 여자애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미츠하?


내가...미츠하라고?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당황한 탓인지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이 뛰고 있었다.


뇌수가 갈려나가는 듯한 긴장감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과 당혹감을 참지 못하고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 # #




10분 후


나는 우여곡절 끝에 교복을 차려입은 채 맹장지문을 열고 나왔다.


발을 디뎠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크게 휘청거렸다. 현기증이 세계를 뭉개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해서 벽에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뭐야?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것 처럼 세상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미츠하가 되어버린 거야? 왜? 어떻게? 무슨 원리로?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아도, 답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미츠하가 되어버린 원인이나 경위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는데, 답 같은 게 나올 턱이 없다.


요컨대, 이 상황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파악할 만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뭐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저 평범하게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뿐인데, 갑자기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던 여자아이가 되어버렸다. 대충 듣기만 해도 이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찌할 줄 몰라 불안에 빠진 채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데, 복도 방향에서 발걸음 소리가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요츠하인가? 조심스럽게 미행하는 듯한 느낌으로 고개를 내미니 주름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우와아아앗!?」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나는 고통을 호소하며 눈을 떴다. 눈앞에는 초로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할머니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라?.....너...」



할머니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시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시고는, 엄청나게 무섭게 느껴지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너...미츠하가 아니구나?」

「앗.....?」



어, 어떻게 아신 거지? 목을 죄어오는 듯한 긴장감속에서 두피의 땀샘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등줄기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단번에 정체를 들키다니 혹시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아니.....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넘어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고 계신거에요?」



할머니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최근에 네 행동을 보고 있으니 기억이 떠올랐단다. 나 역시 무녀였던 십대시절에는 완전히 모르는 마을의 남자와 뒤바뀌는 꿈을 꾸곤 했지」

「무녀...? 최근의 제 행동이라고요? 아니....그것보다 뒤바뀌는 꿈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질문에 침묵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미야미즈 가문의 여자들은 모두 겪는 일이지...내 어머니도, 나도, 내 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단다.」



미야미즈 가문의 여자들이 대대로 바뀌었었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내 정체를 단번에 맞춘 것 때문인지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묘한 설득력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다.



「하지만 서로 바뀌는 이유라던가 그런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딱 잘라 대답했다.



「모른단다.」

「네?」

「200년 전에 짚신가게 야마카시 마유고로네의 목욕탕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이 주변 일대가 모두 새까맣게 불타버렸지. 애초에 이유가 적혀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 때문에 신사도 고문서도 모두 불타버리는 바람에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그럴수가...」



나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낙담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멈추지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 됐든 이 현상은 꿈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전부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단다.」

「지워져 버렸다고요?」

「그래. 아무리 특별하고 좋은 꿈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망각에 뒤덮여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고 말지. 그러니 지금 네가 보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렴.」

「앗...」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가셨다. 뭔가 묻고 싶은 건 잔뜩 있지만 대화의 맥락으로 보아 더이상 알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최근에 내 행동이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전에 꾸었던 꿈은 이런 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번민에 휩싸여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침도 안먹고.... 언니, 오늘은 같이 안 나갈 거야?」



뒤돌아보자, 요츠하가 란도셀 가방을 맨 채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같이 나가? 어디를?」

「어디냐니, 학교인게 당연하잖아!! 지금 시간을 봐! 빨리안나가면 지각이라구!!」

「학교? 안갈건데?」



얼떨결에 교복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굳이 학교로 향할 필요는 없다. 학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건 둘째치고 미츠하의 인간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는데 어째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등교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언젠가 등교해야 하긴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사서 고생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사색에 빠져 결론을 내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쫘악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요츠하를 흘깃 보았다.



「......헉.」



가방끈을 쥐고 있는 주먹, 무표정하게 다물고 있는 입술, 눈을 위로 치켜뜨고 노려보는 듯한 시선. 멸시와 걱정이 뒤섞여 있는 그 날카로운 눈빛은 고개를 돌리는 것을 용납해주지 않았다. 그 커다란 눈동자가 발하는 안광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무심코 숨을 죽였다.


몇 초 정도 생각한 뒤,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요츠하를 따르기로 했다. 안그러면 무슨 저주라도 받을 것 같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가면!!」



너무나 긴장한 탓인지 버벅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내 대답에도 요츠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를 누그러뜨리며 옅게 미소 지었다.



「먼저 밖에 나가 있을게. 언니는 빨리 방에서 머리묶고 나와.」

「으, 응...」



뭔가 약삭빠른 것에 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까...


할머니께 인사하며 나가는 요츠하를 뒤로하고 나는 서둘러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맹장지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미츠하는 머리스타일은 분명 포니테일이었었지..... 그러나 방의 구조를 전혀 모르는 탓에 고무밴드가 어디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책상이나 바닥을 살펴봐도 고무밴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뒤지며 책상 서랍을 열어보던 와중, 왠지 모르게 익숙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서랍을 응시하니 여러가지 색깔로 이어져있는 실 매듭 놓여있었다.


.....어라?


ㅡ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



혼잣말이 나왔다. 답답함이 가슴을 죄어왔다.


갑자기 아련한 우수에 젖어들었다. 왜지? 어째서 갑자기....



「ㅡ언니!! 더이상 늦으면 뛰어가야 돼!!빨리 나와!」



밖에서 요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실 매듭으로 묶어올린 후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 # #





「다녀오겠습니다!!」

「언니, 늦었잖아!」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오자, 요츠하의 잔소리가 날아들어 왔다.



「아하하... 미안. 오늘은 좀 정신이 없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의 말을 남겼다. 보통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라면 이런 언니의 사과에 우쭐하며 용서해줄 것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츠하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최근에 언니가 이상하긴 했지만 오늘은 더 이상한 것 같아.」

「어? 뭐...뭐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신경쓰는 점이 이상해...」



설마 벌써부터 의심받고 있는 건가?


아직 들킨 건 아니지만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요츠하의 시선에 식은땀이 흘렀다. 특별히 크게 눈에 띌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어째서 벌써부터 의심받는 거야? 요츠하가 미야미즈 가문이라서? 무녀라서? 아니면 내 행동에 티가 나는 건가? 아직 미츠하가 된지 1시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버티지?


나는 어찌할 줄 몰라 요츠하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요츠하는 "뭐 상관없나."하고 중얼거리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요츠하에게 들키지 않도록 계단을 내려가며 조심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시야가 트이자, 나는 곧바로 주위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작은 건물들과 산지가 거대한 호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호수의 표면에는 아침햇살이 반사되어 빛의 입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산지 주위에는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과 산 능선이 눈에 띄었다. 빌딩숲에 둘러싸여 사는 도쿄인으로서는 이런 경치가 진귀하고 환상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쾌청한 날에는 어렵지 않게 후지산을 볼수있긴 하지만, 그 외의 자연을 도쿄에서 느끼려면 신주쿠 정원 정도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런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눈앞에서 봐버리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나는 요츠하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주변의 경치를 시선에 담았다. 그러다가 문득 바람에서 자연의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향기와 주위의 풍경에 감동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요츠하가 갈림길로 올라가 버렸다.



「언니. 그럼 나중에 봐. 수업 빼먹지 말고!」

「엇?」



요츠하가 인사하며 올라가는 것을 보니 저기는 초등학교 방향인 걸까? 그렇다면 고등학교 방향은 어디지?


난처한 마음으로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이 어디 안 지나가나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츠하. 아침부터 뭐하고 있어?」



뒤를 돌아보니 양갈래 머리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머리를 빡빡 민 덩치 큰 남자애가 아줌마 자전거를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웃으면서 다가오는 것을 보니 미츠하와 사이가 좋은 애들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수있었다.


나는 "안녕."하고 손을 흔들며 그 두명의 이름표를 힐끔 쳐다보았다. 양갈래 여자아이의 명찰에는 [나토리 사야카], 덩치 큰 남자애의 명찰에는 [테시가와라 카츠히코]라고 적혀있었다.



「오늘은 포니테일을 끈으로 묶고왔네?」



사야카가 묶어올린 머리카락을 가볍게 매만지며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미츠하를 처음 만났을 때는 고무밴드로 머리카락을 묶고 다녔으니 평소의 모습과는 이질감이 느껴질수밖에 없다.



「아침에 늦게일어나서 고무밴드를 못찾았거든. 좀 이상한가?」

「아니야! 끈으로 묶어올리니까 평소보다 화사해 보여! 텟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몰라...」



사야카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테시가와라에게 묻자 그는 대답하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궁시렁 거렸다.


비록 짧은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사야카와 테시가와라가 미츠하와 오랫동안 친하게 알고지낸 사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의심받지 않는 모양이다. 뭐야 의외로 속여넘기기 쉽잖아? 갑자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나 가볍게 웃고 있는데 테시가와라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쑥 내밀었다.



「그나저나 의외네. 요 며칠간 반 묶음 머리로 묶고 온 이후로는 더이상 여우에게 홀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테시가와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사야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난 도쿄에서 악령퇴치라도 받고 온 줄 알았지... 가출했다가 돌아온 이후 성격도 뭔가 미묘하게 당당해 졌고...」



여우? 악령퇴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 거지? 이야기를 전혀 따라갈 수가 없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저기 지금 그게 무슨소리...」

「미츠하!」



내 의문을 잘라버리듯, 주차장에서 갑자기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는 50대, 키는 170대 중반 정도일까? 무슨 선거유세라도 마친 모양인지 양복차림 위에는 [현직 미야미즈 토시키]라고 쓰여져있는 어깨띠를 상반신에 두르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에 선거 용품을 치우던 사람들과 그것을 지켜보던 주민들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남자는 내게 걸어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내가 신경쓰이는 것은 단 하나였다.



「미야미즈....」



가족인가? 미츠하와는 어떤 관계지?


사색에 빠져 생각하고 있는데 토시키가 내게 다가와 다소 강압적인 목소리로 뭐라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그 탓인지 주위에는 정적이 흐르고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흘려듣고 손가락으로 토시키를 가리켰다. 그리고 테시가와라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물어보았다.



「저기 텟시.」

「으, 응?」

「저 사람이 내 아버지야?」



내 목소리가 끝난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토시키는 경악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2013년 10월 3일 07:34 am [도쿄]



밖으로 나와보니 TV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타키군의 아버지는 도쿄의 지옥 같은 러시아워를 피하기위해 일찍 출근하신 모양이다.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TV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다. 얼핏 들어보니 티아매트 혜성이 보이기까지 하루 정도 남았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견딜수 없이 목이 말랐다. 혀에서 흙 맛이 났다. 나는 싱크대 옆에 있는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시야 한구석에 엄청나게 불길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하얀색 액체가 진득하게 묻어있는 페트병이 싱크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판단할 필요도 없었다.


ㅡ쿠치카미사케


뇌에서 그렇게 인식하자마자 나는 페트병을 집어 던지며 절규했다.



「어째서 쿠치카미사케가 여기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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