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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어딘가 슬퍼 보여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비추고 있는데도 그런 느낌이 나는 건 왜일까?
바람이 불어와 흔들리고 날이 나빠지고 계속 흐려졌다.

두 사람은 마치 자신을 끌어안는 것처럼 서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것은 만지지만 만질 수 없는 것……

……그런

덧없는 포옹이었다.

아아…… 눈앞에 “유키노씨” “아키즈키군”이 있다.

이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확실하게 전해지는 고동.
이 공간에 “그대”가 있다.

아아…..우리는 살아있다.
각각의 장소에서 각각의 인생을……..

“우리는”………

살아있다………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비 [최종장] “순간편”-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고 구름이 끼고...... 그리고…… 뭐였죠?”
“…….비라도 내리면 그대를 붙잡으려만.”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눈앞의 소년을 계속 바라본다.
아니 이미 소년이라고는 할 수 없는 넓은 어깨. 단정한 용모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그”가 거기에 서 있다.

“어째서 여기에 있어?”
그녀는 따뜻한 그의 팔 안에서 안겨 있는 체로 입을 연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지금부터 거센 비가 내릴 것 같다.
두껍게 덮은 구름을 가르는 것처럼, 그 백색의 빛은 마치 아키즈키군 같았다.
답답했던 나날에 한 줄기 빛을 준 사람.

“비가… 비가 와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 흘러나온다. 
유키노는 조금 습한 타카오의 소매를 움켜잡으면서 얼굴을 들어 올린다.

“유키노씨……”

타카오의 혀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두 사람을 현실로 불러오듯이 시끄러운 차의 경적이 도로에 울려 퍼졌다.

**

“죄….죄송합니다!! 저!!!”

타카오가 놀라면서 뺨을 붉게 물들이면서 큰 동작으로 물러선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유키노도 정신을 차리고, 놀란 표정으로 타카오를 바라본다.

“저….저기!! 저… 갑자기 이런 곳에 와서……. 저기…..”
타카오는 횡설수설하면서 시선을 황급하게 여기저기로 옮겼다.
그런 그를 보면서 유키노는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며,
마음의 어딘가에서 안도하는 느낌을 받았다.

옛날하고는 눈높이가 달라졌어. 그래 키가 컸구나.
몸도 뭔가 커졌고……뭔가 매우 어른스럽다.

유키노는 가슴을 졸라오는 달콤한 욱신거림에 손을 대고,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를 쳐다본다.

“….저…저기 유키노씨!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저 이미 한계에요 한계!!”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서 곤란한 듯 어깨를 흔든다.
“아….미안해. 뭔가 믿을 수가 없어서……”

타카오의 당황한 표정에 시선을 뺏긴 것을 알아채고, 유키노는 부끄러운 나머지 양 뺨을
손으로 감추었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파도를 친다.

유키노는 아무리 해도 뜨거워진 뺨을 감출 수가 없어서, 얼굴을 돌린다.
두 사람의 위에는 지금이라도 펑펑 울 것 같은 하늘이 퍼져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비의 소리가 두 사람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저…저기.”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꺼내서, 똑같은 타이밍에 얼굴을 돌렸다.
시선이 겹치자 침묵이 잠시 이어지자.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유키노씨 지금의 얼굴 무척이나 웃겨요.”
“아키즈키군도 마찬가지야! 얼굴이 빨개져서는….”
두 사람에게 밝은 표정이 퍼져간다. 유키노와 타카오는 소리를 내면서, 
어깨를 떨면서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띤다.

……두 사람은 그때와 같은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빗속. 두 사람이 웃었던 그때와 같은 소리가 지금 두 사람의 귀에 울려 퍼진다.
속눈썹에 떨어진 빗방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을 반사하여,
그것은 확실하게 그 한순간, 그때가 실제로 있었다는 빛의 증거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확인하려고 하듯이 바라보며, 입술에 미소를 띤 채로 천천히 입을 닫았다.
부드러운 침묵의 시간이 두 사람을 품어간다.
아무 말도 필요 없는 따뜻한 시간이 두 사람의 사이에 펼쳐진다.


“…………
이렇게 비를 맞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여기에 와서 쭉 자동차로 생활해서,
걷는 것도 오랜만이야.”
“저는 그 반대로 쭉 걷기만 했어요. 비에 맞으면서도 자주 있는 일이에요.”
“그래….. 조금은 부러워.”
“전혀 부러운 일이 아니네요. 저 빨리 면허를 따서 운전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타카오는 유키노의 뒤에 있는 차에 시선을 돌린다.
“아… 일단 차에 탈래?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어.”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키노가 미소를 지으면서 차에 타라고 눈짓을 준다.
“유키노씨가 운전할 수 있다니 약간은 의외네요. 괜찮은 거죠?”
“실례인 소리를. 출퇴근할 때 늘 차를 몰거든? 괜찮아!
빨간 안경을 쓰고는 유키노는 윙크한다.

“자아 그럼 부탁드립니다.”

타카오는 핸들을 잡는 유키노의 옆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보는 유키노의 표정에 숨을 삼킨다.
안경을 끼고, 핸들을 잡는 유키노는 타카오가 알고 있던 유키노가 아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유키노는 멋지게 핸들을 잡고 차를 운전한다.

유키노씨…..
이렇게 가까이 유키노씨가 있다.

타카오는 유키노의 흔들리는 머릿결을 쳐다보면서 무릎 위의 짐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

“저기…. 물어봐도 좋을까?”
“………예.”
“시코쿠에는 관광으로 온 거야?”
조금 망설이는 듯한 웃음을 띠면서 그녀가 나에게 물어본다.
“….아니요 다른 목적입니다.”
“…………”
와이퍼의 규칙적인 소리가 갑자기 울리며, 나는 높이 뛰는 심장을 억누르려고 어깨에 힘을 준다.

“저…저기 저…저는!!”
“하지만 모처럼 왔으니 조금은 관광을 하고 가.”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쉰 순간. 유키노씨의 시원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나는 골탕을 먹은 느낌으로 눈을 뜨고는, 약간은 위화감처럼 느껴지는 공기에 입을 다문다.
다그치는 듯한 유키노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무리를 하면서 밝은 척 하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와 대화를 계속한다.

변하지 않은 해맑고 부드러운 목소리. 조금 늘어뜨린 부드러운 머리카락. 
전보다 차분해진 얼굴.
여전히 유키노씨는 아름답다. 전보다도 더욱더. 아름답다.

나는 그런 유키노씨의 옆 모습을 시치미를 떼는 얼굴로 바라보며, 
왼쪽의 약지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투명한 매니큐어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자신의 약간의 잔꾀에 약간이지만 싫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무척이나 안심을 하는 자신이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처럼 많았다. 말하고 싶은 것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이 눈 앞에 펼쳐진 유키노씨의 미소를 바라보고 싶었다.
나는 지금은 유키노씨와의 대화를 즐기기로 하면서,
가슴에 흘러넘치는 많은 말을 살짝 붙잡아 둔다.

***

실없는 이야기, 지금 유키노씨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이야기, 도쿄 선생님들의 이야기.
우리는 일부러 핵심을 피하면서 별 지장 없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 타카야 선생님은 아이까지 낳았다고? 귀엽겠다.”
“그 선생님이 아이를 낳더니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져서. 모두가 다 놀랐다고요.”
“뭔가 상상이 안 되네. 오랜만에 도쿄로 가볼까?”
“…….그 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나요?”
“………응”

그때, 휴대전화의 벨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우리는 그 소리가 뭔가 현실로 되돌아가게 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전화기를 드는 유키노씨의 손을 바라다보며, 
다음 순간 유키노씨가 어떤 표정으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조금은 두려워하면서 침묵했다.

“응 미안 엄마. 응응 알았어.”
유키노씨가 전화를 하면서 내 쪽을 향해서 시선을 돌린다.
‘뭐야 유키노씨의 어머니구나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상태가 이상한 유키노씨를 살펴보기 위해서
고개를 돌린다.
“응 알았어. 미안해 지금 바로 돌아가니까 끊을게. 응.”
가벼운 숨을 쉬면서 유키노씨는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띤다.

“뭔 일이 있나요?”
“응 어머니가 아키즈키군을 저녁 먹는데 초대하고 싶다고 해서, 
한번 말한 건 취소를 안 하는 분이라서….. 미안해 싫으면 무리해서 올 건 없고.”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되네요. 괜찮나요? 갑자기 방문해도.”
괜찮나요?”
“응 어머니가 바로 우리가 돌아올 거로 생각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어. 
도쿄에서 찾아온 옛 제자가 있다고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어.”
유키노씨는 조금은 부끄러운지 쓴웃음을 짓는다.

“유키노씨의 어머니…. 유키노씨와 거의 같은 얼굴이라서 웃음이 나왔어요.”
“응? 그렇게 닮았어?”
“예 무척이나 아름다우신 어머님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그다지 닮지 않아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 나이를 먹으면 닮게 된다는 게 사실인가……”
“…….나이를 먹어도 유키노씨는 아름다우세요.”
“………응?”
순식간에 유키노씨의 얼굴이 붉은색이 되어간다. 나는 그만 “풋”하고 뱉으면서,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너무해!! 왜 웃는 거야!! 그것보다도 그런 걸 가볍게 말하다니……. 아키즈키군”
놀리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유키노씨는 자동차의 깜빡이를 켠다.

“아키즈키군…. 나이가 몇인 거야?”
“20살입니다. 저…..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유키노 선생님!”
유키노씨의 그런 시선에 응하는 것처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조금은 잘났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래….네가 20살이라니…… 가장 즐거울 때네.”
“그렇게 내려보는 시선이 뭔가 그때의 유키노씨와 겹쳐 보여서 나는 순간 입을 다문다.

“자동차를 차고에 넣어야 하니까 내려서 기다려줄래?”

“예.”

후진하면서 차고에 차를 넣은 유키노씨를 보면서 난 생각한다.
유키노씨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까?
유키노씨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추고 있을까?

뒤따라가던 미소가 만났던 순간에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의 저편에 아름답게 나의 손을 몇 번이나 잡아주던 미소…..

유키노씨. 제대로 걷을 수 있게 된 겁니까?
이제 혼자서 울지는 않습니까?
구두가 없어도 걸을 수 있다고 그때 당신이 말했었죠.

내가 당신이 다시 걸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나는 시험 받는 걸까?”

구름이 움직인 틈새에서 내린 빛에 순간 눈이 찌푸려져, 멀리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타카오는 곱씹듯이 중얼거린다.


**************
“어서 와 아키즈키군, 기뻐! 유카리의 학생이 일부러 방문해오다니….”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연락도 없이 갑자기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오늘은 여행이나 뭐 그런 이유로 온 거야? 
별 볼 일 없는 집이지만 느긋하게 머물다가 가.”
그렇게 미소 짓는 유키노씨의 어머니께서는 차를 내오셨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나와 유키노씨는 눈을 맞추고 의미도 없이 웃는다.

믿을 수 없다. 나 정말로 유키노씨의 집에 있다.
나는 양손으로 찻그릇을 잡으면서 방을 둘러본다.

“뭔가 믿기지 않네. 아키즈키군이 우리 집에 있다니…..”
나의 마음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뜨거운 차를 마신다.

“저기 졸업하고 나서는 어떻게 지내? 대학에 진학한 거야?”
“이탈리아에 갔습니다.”
“이탈리아? 대단하네! 당연히 구두 장인이 되기 위해서지?”
“예. 구두공방에 수습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약간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뭔가 대단하네 아키즈키군.”
“이제부터 시작인 거죠. 구두로 먹고살려면 아직 백 년은 더 걸릴 거 같아요.”
“백 년이라니 난 죽어버릴걸.”
“저도 죽어버릴 걸요!”
웃는 소리를 내는 우리를 보면서 유키노씨의 어머니가 오븐의 문을 연다.
“뭔가 즐거워 보이네. 어느 쪽이 학생인가 모르겠어! 유카리 조금 도와줘! 
이걸 부탁할게.”
“예.”
그렇게 말하면서 유키노씨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부엌을 바라보니 보이는 유키노씨와 유키노씨의 어머니…. 따뜻하고 부드러운 풍경이다.
역시 가족이란 좋네….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광경.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아플 정도로 알 수 있다.
당연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소중한 것인가를.
그러면서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건강하실까? 새로운 가족은 생긴 걸까?

언젠가 만나는 날이 올 것인가? 부디 행복하시길….

“아키즈키군 이거 안주 그리고 이건 맥주!”
앞치마를 두른 유키노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맥주를 따라준다.


뭔가 기분이 좋아진 자신을 보면서 ‘나 정말 단순하네….’라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잔을 받는다.
살짝 떨리는 손끝, 순간 갑자기 심장이 떨리는 나였다.

“건배!”
유키노씨는 컵을 짠하면서 컵을 갖다 댄다.
“설마 아키즈키군과 술을 마시는 날이 올 줄이야.”
“예. 저도 동감입니다.”
“아키즈키군 술은 강해? 어린 애가 무리하게 어울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아요. 하지만 오늘은 이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요리를 맛보고 싶거든요.”
“듣던 중에 반가운 말이네. 유카리! 너도 좀 와서 배워!”

뭔가 유키노씨가 어린아이로 보여서 나는 흘러넘치는 달콤새콤한 욱신거림에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계란말이에 계란껍질을 넣던 유키노씨가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 크게 웃었다.

“아버지가 단신 부임이 되어서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더니…. 나에게 신세를 지다니….
이렇게 큰딸이 말이지…. 선생 실격이야.”
“엄마는…. 말하는 게 지나쳐…..”
“알았어. 미안해. 뭔가 즐거워서. 좋잖아? 이렇게 젊고 잘생긴 남자애가 있다니.”
“엄마는……”

즐거운 분위기의 식탁. TV가 필요 없는 단란한 분위기. 여기가 내가 부러워했던 것이 모두 있다.
유키노씨의 행복한 미소. 내가 그 무엇보다도 보고 싶었던 것.
나는 여기에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그 미소를 바라다보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도……

“그래도 요즘 무거운 짐을 치운 것 같아서 정말로 안심이야.”
“엄마 그 이야기는….”
“뭐야? 축하할만한 이야기잖아?”
“………유키노씨 결혼….하는 겁니까?”

나의 사고가 순간 멈춘다.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들려온 말이 조용히 가슴을 찌른다.

“아직이야. 하지만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말하는 유키노씨의 어머니는 미소를 짓는다.
“……그….그렇습니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마!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잖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멀리서 들으면서 나는 마치 화면을 쳐다보는 것처럼 대화를 듣는다.
상대는 공무원이라던가, 나이가 유키노씨보다 3살 연상이라던가, 
유키노씨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라던가….

나는 입을 다문 얼굴로 웃음을 띤다. 이럴 때 나도 더러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대로 “행복하세요.”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나는 입을 다물고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아키즈키군 이 층에 갈래? 엄마가 있으면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기 힘드니까.”
조금은 미안하다는 듯이 유키노씨가 나에게 말한다.
“아니요. 무척이나 즐겁고 요리도 맛있고요.”
“아키즈키군 느긋하게 있다가. 단 건 좋아해? 지금 컵케이크를 굽고 있어.
준비해둘 테니 나중에 들고 갈게.”
“감사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층의 유키노씨의 방으로 갔다.

***

“미안해. 어머니가 수다 떠는 걸 좋아하거든…..”
“아니요. 즐거웠어요. 이쪽이야말로 감사를 표해야 하죠.”
“응 거기 앉아. 지금 커피를 가져올 테니까.”


유키노씨의 방에 내가 있다.
…….뭔가 꿈만 같다.
5년 전 15세였던 때에 자기 자신을 떠올린다. 그 도쿄의 유키노씨의 방에서 오므라이스를 만들었지….

타카오는 그리운 눈으로 벽에 붙어있는 코르크판에 눈을 돌린다.
거기에는 사진이 왠지 몇 장 붙어있었다.

“와 유키노씨…. 젊다고 해야 하나…… 귀엽다….”
교복을 입고 있는 유키노씨의 사진에 눈이 멈추자 놀라서 그렇게 말한다.
“고등학생 때라…. 그때의 나와 같은 나이의 유키노씨……”
신비하다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있는 사진을 쳐다본다. 왠지 입술에 미소가 지어진다.
혹시 나와 유키노씨가 같은 나이에 만났더라면 나는 유키노씨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쳐다보고 있자, 기억에 있는 그리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그것은 도쿄에 신주쿠 공원의 일본정원이었다.
아무도 없던 신주쿠 공원의 일본 정원이 녹음에 둘러싸여서 마치 한 장의 포스트 카드 같았다.
사진에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으로 되어있다.
(역주: 필름 사진기로 촬영한 모양 아무래도 옛날 팬픽이다 보니.)

“유키노씨 도쿄엔 가지 않으셨다고….”

나는 사진을 손에 들고 눈을 열고서 계속 쳐다본다.

*****************

“엄마 커피는 다 된 거야?”
“케이크가 조금 걸려서 그래. 다 구워주면 알려줄 테니까, 또 가지러 와.”
“예.”
“….저기 유카리. 이 엄마가 왠지 “아키즈키”라는 이름이 왠지 기억이 나는 것 같아. 왜일까?”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혼자서 안타까운 듯이 중얼거린다.

“글쎄 왜일까? 커피 필터를 거기에 놓아줄래?”
“….아 기억났다. 그 편지의 아이! 몇 년 전 편지를 주고받던 아이 아니야?”
어머니는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손뼉을 치면서 말한다.

“…….맞아.”
“진작 말해주면 좋았을 건데!! 지금 시대에 편지를 보내주는 고등학생이라니!
이 엄마는 감동했단다.”
“지금은 아무래도 E메일의 시대니까….. 편지는 이래저래 귀찮지.”
“하지만 손으로 쓴 편지가 상대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아? 멋지네…..”
“………”
“오늘 만나보니까 왠지 이해가 가는걸? 아아 그 편지의 주인인 아이라니…… 
순수한 눈빛을 가진 지금 시대엔 보기 드문 청년인걸.”
“엄마 괜히 요란스럽게…...”
유키노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갈색의 물방울을 보면서 눈을 느긋하게 감는다.

“도쿄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저런 아이 같은 학생도 만나서 좋았겠어 유카리,”
“……엄마.”
돌아보니 엄마는 잠자코 끄덕이면서 매우 기쁜 듯한 미소를 짓는다.
가슴에 뭔가가 찔린다.

유키노는 왠지 뜨거워진 머리를 억누르면서 ‘그만둬….’라고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돌아선다. 

…….아키즈키군.
아키즈키군이 와주었어…… 와주어서 정말로 고마워.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너는 나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는구나….

정말로 고마워……. 아키즈키군…….

유키노는 컵에 커피를 따르면서 호박색으로 떠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이 미소를 준 타카오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워했다.

“…당신을 만나기 이전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만나고 나서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백인일수의 50번)

“뭐야 갑자기? 놀랬잖아? 어떤 의미야 유키노?”
엄마가 옆에서 커피에 우유를 타면서 웃으면서 물어본다..

“응? 그렇네 인간의 욕심엔 끝이 없다는 거야.”
“뭔가 로맨틱하기도 하고.”
“그렇네 지금도 옛날도 사람의 생각은 변함이 없어.”

유키노의 어머니는 웃으면서 미소를 짓는다.
엄마의 손이 유키노의 어깨에 올려진다.

“유카리. 네가 선생이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엄마는 매우 행복해.”
“응 고마워 엄마.”

5년 전 그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째서 내가 그런 꼴을 당하고, 어째서 그렇게 괴로운 경험을 겪으면서까지 교사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괴로웠던 나날. 쫓기는 듯한 자신. 뭔가 해결책도 보이지 않았던 그런 나날.
…..교사를 그만두자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의 꿈, 겨우 손에 잡은 것. 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
하지만 그 꿈은, 너무나도 자신이 그려왔던 것과는 달랐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 한 줄기의 빛이 준 남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눈동자는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못쓰게 된 나를 위해서 손을 뻗어주었다.

“그러니 나는 힘내왔어 이때까지…..”

유키노는 쟁반을 들고서 흔들리는 커피에 신경 쓰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
***************

“기다렸지? 응? 뭘 보고 있는 거야?”
“이거……”

한 장의 사진을 건넨다.
유키노씨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시선을 피한 채로 쟁반을 테이블 위에 얹는다.

“그 후로 도쿄엔 가지 않았다고…..”
“……응 여기 커피. 설탕 넣을까?”
“아니요. 블랙이면 됩니다.”
툭 하고 놓인 커피 컵에서 좋은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1년 전에 내가 가르치던 반의 남자 학생이…. 병으로 그만……”
“……예?”
생각지도 못한 유키노씨의 말에 나는 허를 찔렸다.
유키노씨가 시선을 떨군 체로 내 앞에 커피를 놓았다. 
그 축 늘어진 속 눈썹은 마음 탓인지 흔들려 보였다.

“그 아이에겐 꿈이 있었어. 장래 파티쉐가 되고 싶다고…. 맛있는 것을 잔뜩 만들어서 모두를
미소 짓게 하겠다고 말했었어…….”
“………”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그저 유키노씨의 이야기를 듣는다.
입안에서 퍼지는 커피 맛이 너무나도 쓰게 느껴진다.

“괴로웠어….
나보다도 몇백 배 아니 몇천 배나 그 아이의 부모님들이 괴로우셨다는 건 알고 있어도,
너무나도 괴로워서……”
꿀꺽 유키노씨가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방안에 들려왔다.

“그래서…… 거기에 간 거야.”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김이 눈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변화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때와……”
“유키노씨…….”
“나는 또 너에게 구원받았을지도 몰라. 그 날의 그 장소에 가서 그 공기를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기분이 편해졌어. 또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 그렇게 생각해.”
“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요.”
“아키즈키 군은 나에게 있어서 “그리움” 같은 사람이야. 아키즈키군을 보면, 무척이나 치유 받아.
내 안의 더러운 것을 정화해주는 것 같아. 그런 기분…. 너는 알까?”

부드럽게 커피 컵이 쟁반 위에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초조한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리움”이 될 만큼의
그런 인간이 아니다. 나는 유키노씨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나는 유키노씨에게 있어서 그뿐인 존재입니까?”
“…….응?”
“유키노씨는 그때에도 저에게 구원받았고…..
하지만 나는 그런 훌륭한 녀석이 아닙니다. 저는…..저는…….
유키노씨를……..좋아합니다!”

나는 컵을 놓고서 진지하게 유키노씨를 쳐다본다.
커피 컵의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깨달으면서도 마음을 굳세게 먹고서,
자신의 진지한 마음이 전해지길 빌면서 유키노씨를 쳐다본다.

“………5년 전은 좋아한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런 애매한 말을 했습니다만……”
심장이 파열될 것만 같았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그때의 내가 함께 외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받아지지 않았던 그때의 나…..어린 아이였던 나…..
나의 격렬함을 감추지 못하여 마음만을 부딪치는 것만으로 전하지 못했던 나.

“저는…….유키노씨를 좋아합니다.”

방이 침묵으로 휩싸였다.
유키노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이거.”
가지고 왔던 종이봉투를 유키노씨의 눈앞에 내민다. 쭉 움켜쥐고 있어서 구겨지고 말았지만….
나는 꿀꺽하고 침을 삼키면서 양손으로 그 종이봉투에서 상자를 꺼낸다.
유키노씨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약속했던....그때 약속했던 구두입니다. 저의 첫 손님은 유키노씨입니다.”
유키노씨는 하얀 손이 상자에 닿고 그것을 소중한 것처럼 천천히 그 상자를 열었다.
가죽의 향기가 나고 유키노씨의 아름다운 눈은 크게 열렸다.

“…….이건?”
“예. 유키노씨의 구두입니다. 제가 이것을 건네기 위해서…. 오늘까지 힘내 왔습니다.”
“아키즈키군…….”
“저는 또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전에 저… 저의 마음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습니다.
유키노씨와 만나서…. 유키노씨의 마음을 듣고 싶어서…..”

손이 떨리고 숨을 쉴 수 없다…..
어떻게 된 거야 난….. 5년 전에는 이렇게 긴장되지 않았는데….

“나이 차가 많이 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맞선을 본 분처럼 제대로 된 직업도 지위도 아무것도…. 저에겐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분명히 유키노씨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전 말하겠습니다.”

그때의 당신이 읊었던 만엽집의 시가 사실은 저를 향한 것이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마음을 담아서 당신에게 답가하고 싶어도, 저는 아직 15세의 어린애였고,
유키노씨는 학교의 선생님이셨죠…….”

“유키노씨, 저 내일 10시 전차로 도쿄로 돌아갑니다.”
“……뭐?”
“혹시 조금이라도 저를 좋아하고 생각한다면…..
아니 저를 한 사람의 남자로 생각해준다면….”

좀 잠잠해져라. 심장아….. 난 가슴을 누르면서 깊게 숨을 쉰다.

“그 구두를 신고서 역으로 와주십시오.”
“….구두를 신고서?”
“예. 신는다면 알아보겠습니다.”
“……..”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세찬 비가 창에 떨어지고, 
바람이 방충망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내 가슴에 뛰는 심장과도 같았다.

“…..제가 유키노씨를 만났을 때는 15세의 어린 애였죠.
하지만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저대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유키노씨가 보기엔 아직 멀었는지도 모릅니다…..”

말솜씨가 서툰 자신의 혀가 밉다.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얼마나 말을 생각해봐도 자신이 전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말을 뱉어내려고 한다.

“……포기하려고도 잊어보려고도 했습니다만……”
유키노씨는 조용한 눈동자와 시선이 겹친다.

“만나고 싶어서….. 뭔가 가슴에 큰 구멍이 난 것 같아서…….
저 유키노씨를 쭉……..”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
어떤 말을 해도 마치 바람에 흩어져서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유키노씨를 만나고 싶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만나고 싶었다.
나는 오늘 앞에 있는 유키노씨를 눈 안에 담고서,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키노씨를 양손으로 안고 있었다.



****



“당신이 만나기 이전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만나고 나서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언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너를 만난 지금. 언제까지라도 너와 함께 있고 싶어졌어….
나는 그렇게 바래. 그렇게 계속 바래.

지금도 옛날도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사람은 분명히 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슬퍼하고 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쭉 자신의 마음을 지탱해준 뭔가가 그것이 “당신”의 존재였다.
이것이 설사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고 해도,
역시 ”나”는 당신을 생각나서 마음이 타들어 갈 것이다.
어째서일까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서 웃고 있는 우리.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손을 펼친다.


“아키즈키군 택시가 왔어.”
“오늘은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또 언제라도 놀러 와. 오늘은 무척이나 즐거웠어.”
“아니요. 저야말로 즐거웠어요. 그럼.”
“유카리 빨리 내려와. 아키즈키군이 간다고?”
“아…아니요 괜찮아요. 밤늦게까지 실례했습니다.”
“아키즈키군….
전에 유카리에게 편지를 줬지? 정말 고마워…. 우리끼리의 이야기지만,
유카리는 매일 몇 번이나 기쁜 듯이 반복해서 읽었거든….. 
고향으로 돌아와서 기운이 좀처럼 없었어…..”
“….그런가요?”
“저런 선생이지만 또 잘 부탁해.”
“예 저야말로.”

“아키즈키군!”
시선을 올려보니 유키노씨가 현관 위에 서 있었다.
“이걸 찾느라고 늦었어 미안해!”
눈앞에 유키노씨가 건넨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이건?”
“응? 이건 지금 학교에서 내가 만든 책이야. 괜찮다면 읽어줄래?
학생들의 작품들을 엄선해서 만든 거지만…..”
“감사합니다. 오늘 호텔에서 읽어보겠습니다.”
“아키즈키군 오늘은 고마워.”
“…….저야말로 고마웠습니다.”

내민 하얀 손….. 나는 그 모든 것을 이 눈으로 새겨두고 싶어서….
뭔가 치밀어 오른 뜨거운 것을 삼키면서, 나는 유키노씨의 손을 꼭 잡는다.
이것으로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으니….

……쿵
택시의 문이 무정하게 닫히고.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가슴 속이 쓸쓸하게 식어간다.

그때의 희미한 동경의 대상이 지금 확실하게 연심으로 자라났다. 

타카오는 멀어지는 유키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따뜻함이 남아있는 손을 꾹 움켜쥔다.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그런 시간을 보낸 우리.
나는 당신의 마음에 뭔가 남아있는 걸까?
나는 당신에게 제대로 전한 것일까?


“………비 잘도 내리네….”
“예. 정말로 하지만 전 비가 좋아요.”


껌껌한 마을을 밝히는 가로등이 드문 시골길을 달리면서, 택시는 나를 다음 장소로 실어 나른다.
나는 흘러가는 경치를 보면서, “정말 아무것도 없네……” 그렇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지금은 이 손에 남아 있는 온기만으로 충분하다.


타카오는 눈을 감고서, 그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주먹을 움켜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