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링크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7536742 )
본 작품은 픽시브 닉네임 TMC님의 작품입니다. 원작자분 허가 하에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분 의향에 따라 본 사이트 이외로의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작가의 말]
12월의 그 육교 위에서 스쳐 지나간 뒤,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조금 오랜만입니다. 멋대로 전개한, 본편 사이에 만약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시리즈입니다.
재회 전의 두 사람이 육교 위에서 스쳐 지나간 것은 12월, 마침 지금의 시기네요.
그 날, 만약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분명 빨리 만났고 운명은 조금 바뀌었을려나,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걸 쓰는 와중 스파클 뮤직비디오 풀버전을 봤습니다.
다음에는 그 내용을 담은 것을 조금 써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전작까지의 북마크, 코멘트, 평가 등등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 뒤의 이야기:크로닉(Chronic)《novel/760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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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일까,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뜬 침대 위. 이동하는 도중의 열차 안. 그리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막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피부에 뚝 떨어져 문득 정신을 차리니, 타키는 또 어느새 오른손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는 마치 바람이라도 쥐고 있었던 것처럼 덧없고 불확실한 감촉이 남는다. 감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것은 아니고,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는 정말로 희미한 것.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타키도 아직 잘 모른다.
그 손으로 뭔가를 잡으려고 했던 것일까, 뭔가를 쓰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뭔가가 쓰여 있었던 것일까.
그저 예전에 분명 이 손바닥이 맞닿아 있었던 뭔가가 사라져 버렸다는, 그런 막연한 마음만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강한 쓸쓸함과도 닮은,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품은 채로, 타키는 시선을 떨구며 바라보던 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주변에 음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뀐 횡단보도로 발을 내딛는다. 오가는 혼잡한 인파의 건너편으로, 마치 그 손바닥에 있었던 뭔가를 찾으려는 듯이.
12월 초순의 거리는 벌써 화려한 크리스마스 무드에 완전히 물들어 있다.
차가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 하늘 아래. 오늘도 또 면접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타키는 무거운 기분으로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손에 들고 창가 자리에 걸터앉아 낡은 수첩을 펼쳤다. 수첩에는 앞으로의 면접이나 설명회, OB방문¹⁾의 예정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이렇게 일정의 확인과 면접 준비를 하는 것도 벌써 몇 번째일까. 이 시기까지 취직이 잘 안 될 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주위의 친구들은 이미 진작에 합격한 뒤라, 지금쯤 여유롭게 섣달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타키는 괜히 더 초조해지고 있다.
역시 다들 말하듯이 정장이 너무 안 어울리는 것이 원인일까……? 타키는 아직 매는 게 익숙해지지 않은 자신의 넥타이를 살짝 잡았다. 무겁게 내뱉은 숨이 커피에서 나는 온기 속에 녹아 들어간다. 길거리 쪽 창가 자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개의치도 않고 바쁘게 오가고 있다.
그래도, 얼마나 고된 싸움이 되더라도 건설업계로의 취직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야말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그런 거리를 만들고 싶다. 그렇게 강하게 바라기 시작한 것은 무엇이 계기였을까.
「——역시 한 번 더 결혼박람회 가보고 싶어」
어딘가의 커플일까, 뒤쪽 자리에서 그런 행복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종이컵을 손에 쥐고 커피를 들이키면서 타키는 들려오는 그 대화에 살짝 귀를 기울였다.
「한 번 더 간다고? 결혼 박람회는 이미 많이 갔잖냐. 어디든 다 똑같았잖아」
「아니 왠지, 전통혼례도 좋을 거 같아서」
크리스마스 전의 이런 시기니까 거리에 커플이 넘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에 비해 같은 장소에서 혼자서 취직 준비나 하고 있는 자신의 딱한 처지에 타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 교회 결혼식이 꿈이라고 말했으면서」
「그렇지만 평생에 한 번 뿐이잖아,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순 없는걸」
명백하게 행복의 오라로 가득 차 있는 대화다. 그래도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는 도쿄가 아닌 어딘가의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어서 왠지 정겹다.
「그보다 텟시, 결혼식까지 수염 깎아. 나도 3kg 뺄 테니까」
느닷없이 들려온 그 이름을 듣고 타키는 순간 손을 멈췄다. 뒤쪽의 커플 쪽을 반사적으로 흘깃 쳐다본다. 분명 모를 터인 이름, 모를 터인 두 사람. 그런데도 어째서 지금 몹시 그립게 느껴진 것일까.
「너, 케이크 먹으면서 그런 소릴 하냐?」
「내일부턴 진짜로 다이어트 할 거야! 」
둘의 대화는 핀트가 딱딱 맞아서, 순진함보다도 서로에 대한 친밀함과 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미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듯한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소꿉친구인 걸까.
곁눈질로 살짝살짝 엿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곧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입고 가게를 나가 버렸다.
그들과 어딘가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 저런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분 탓일까 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다시 커피의 표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방금 전 그건 마치, 먼 옛날의 동급생이라도 만난 것 같은 그립고도 신기한 감각이었다.
그 날은 아침부터 매우 추운 날이었다. 카페에 들어왔을 때 막 내리기 시작했던 가랑비가 가게를 나올 때에는 확실히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리는 여기저기에 조명이 장식되어 있어서, 도쿄에서는 보기 드문 12월 초의 눈 내리는 풍경 너머로 희미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올해도 또 그런 계절이 찾아왔다.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바라보게 된 뒤로 몇 번째인지 모를 겨울이 왔다.
타키는 가로수에 달린 조명 아래를 정처 없이 걸으며, 카페를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육교에 다다랐다.
피부를 찌르는 공기는 차갑지만, 이대로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가랑눈이 내리는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오가는 사람들 중에는 우산을 펼친 모습도 조금씩 늘어난다.
그리고 육교의 한가운데 부근에서 누군가와 스쳐 지나갔을 때였다. 갑자기 그리운 소리를 들은 것처럼, 타키는 어째서인지 괴로울 정도로 애달픈 감각에 사로잡힌다.
스쳐 지나간 뒤에도 묘하게 뒷머리를 잡아당겨지는 듯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타키는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 뒷 모습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가, 특별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손을 움켜쥐고 다시 시선을 떨구고는 원래 가던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걸어나간다.
깜박이는 부드러운 빛에 둘러싸인 거리에 소리 없이 눈이 흩날린다. 그 뒤로 타키가 다시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 * *
차가워진 손바닥을 덥히려는 듯이 숨을 내쉰다. 정신이 들고 보니 그 뒤로도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런 버릇이 생긴 건 언제부터였을까.
볼에 살짝 닿은 차가운 감촉에 미츠하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두운 구름에서부터 작은 눈송이가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서 말한 대로 비가 진눈깨비를 거쳐 저녁부터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에서 돌아가는 길, 챙겨온 우산을 펼치며, 마치 드넓은 도로를 가로지르는 강과 같은 육교를 건너간다.
우산 때문에 시야에는 발 밑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중간쯤에 접어들었을 때 어떤 남자와 엇갈린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흔든 그 순간 지독하게 그리운 감각이 스쳐갔다.
조금 나아간 뒤, 그래도 너무 신경이 쓰여서 미츠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는, 말없이 등을 돌린 채 도로의 반대편으로 사라져간다.
만약 얼굴이 보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지만, 애매한 감정을 어찌해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그대로 다시 앞을 향한다. 우산 아래 내뱉은 숨결이 하얗게 번져 눈발 사이로 뒤섞여 사라져갔다.
미츠하의 전화가 울린 것은 육교를 막 내려왔을 때였다.
화면에 표시된 이름을 보고, 미츠하는 우산을 기울이며 핸드폰을 꺼내 귀에 대었다.
「미츠하, 오늘은 괜찮았어? 일은 다 끝났고?」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은 사투리 억양의 친구 목소리가 울린다.
「응, 괜찮았어. 사야는 어때?」
「오늘은 쉬는 날이었으니까. 텟시랑 같이 이것저것 쇼핑하러 다녔어. 그, 망년회도 얼마 안 남았고 하니까」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러고 보니 벌써 그럴 시기가 됐구나 하고 미츠하는 떠올린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눈 깜짝할 새다.
「미츠하도 올 수 있지? 우리가 독신인 채로 맞는 마지막 망년회잖아」
다 함께 도쿄에 올라온 뒤로 쭉 계속해 온 일이었다. 그렇게 뭔가 이유를 붙이면서 셋이서 자주 모이곤 했었지만, 이제부터는 신혼가정이고 하니 너무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미츠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내년에 결혼할 예정이다.
「응, 마지막이니까. 일도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꼭 갈게. ……다시 한 번, 결혼 축하해, 사야. 너희 둘이 행복해져서 정말로 기뻐. 둘이서 정말 잘 어울린다고 옛날부터 쭉 생각했으니까」
「미츠하……응, 고마워」
수화기 건너편의 친구는 한동안 말문이 막힌 채였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높인다.
「나 결정했어. 응, 역시 결혼식은 교회에서 할래」
「어, 고민했었던 거야? 하지만 사야, 웨딩드레스 입어보는 게 꿈이라고 옛날부터 쭉 말했었잖아」
「사실은 전통혼례도 괜찮을 거 같아~ 하고 조금 전까지 생각했었지만 말이야. 물론 교회 결혼식이 꿈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나 있지, 미츠하에게 부케를 던져주고 싶어」
그것은 신부에게서 부케를 받은 여성이 다음에 결혼하게 된다는, 결혼식에 관해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야카의 제안에 미츠하는 그저 눈만 깜박였다.
「미츠하도 빨리 운명의 상대를 찾아서 다음엔 꼭 행복해졌으면 해서. 미츠하 쪽으로 던질 테니까 꼭 잘 받아야 해」
장난치는 듯한 말투였지만 어딘가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사야카의 목소리를 듣고, 미츠하는 차가워진 손가락에 다시 한 번 숨을 내뱉으면서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고마워 사야. ……그럼 나도, 사야를 위해 링 필로우²⁾짜줄게. 제대로 신경써서 엄청 귀여운 거 만들어 줄 테니까」
「어, 진짜!? 와, 미츠하가 만들어 준다면 분명 멋진 물건이 나올 텐데! 결혼식이 한층 더 기대되기 시작했어」
전화 건너편의 그녀는 기쁘다는 듯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미츠하, 정말로 좋은 소식이 있어. 저래 보여도 텟시도 널 걱정하고 있어. 지겹도록 말하긴 했지만, 미츠하가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응, 고마워, 라고 대답은 했지만, 친구들의 그 말은 미츠하의 가슴 속에 무겁게 울렸다.
전화를 끊기 전, 다음은 네 차례야, 라고 사야카가 다시금 말했다.
다음은 미츠하가 꼭 찾아야 해, 라고.
전화가 끊긴 뒤, 본 적이 없는 풍경 속에 서 있음을 깨닫고 미츠하는 걸음을 멈췄다. 지금 있는 곳은 빌딩과 빌딩 사이에 있는 작은 광장 같은, 살짝 트인 공간이다. 이야기하면서 걸은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평소대로 역으로 향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길로 와버린 것 같았다.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소복소복 쏟아진다. 도시에서는 눈이 땅에 떨어져도 축적된 열 때문에 바로 녹아 버리긴 하지만.
그 때 미츠하는 건너편에서 희미하게 뻗어있는 은백색의 빛을 보았다. 돌아보니 그곳에는 한 그루의 전나무가 높이 솟아 있다.
거리는 곧 크리스마스다. 다양한 조명이 장식된 그 커다란 트리 또한 겨울을 맞이하는 이벤트의 하나로서 여기에 세워진 것이겠지.
사람의 모습도 뜸해진 밤중의 도심. 삭막한 콘크리트 정글의 틈새에, 그것은 마치 도시가 잃어버린 물건과도 같이 혼자 외로이, 조용히 서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조명의 빛이 마치 환상을 보여주는 것처럼도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눈을 본뜬 하얀색 조명을 필두로 해서 초록색이나 파란색, 빨간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전구들이 나무 전체에 둘러 감겨 있고, 전구들 주위에는 크리스마스다운 다양한 장식물들도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그 때 미츠하는 나무 밑둥에 세워진 판에 써 있는 설명에 눈이 갔다.
『별에게 소원을』
제목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의 소원을 써서 트리에 걸어보지 않겠나요? ——어쩌면 산타클로스가 그 소원을 찾아서 이뤄 줄지도 모릅니다』
이벤트의 일환으로서,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품 모양의 종이에 소원을 적고 그것을 걸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한층 더 예쁘게 꾸며달라는 것 같다. 아래쪽의 받침대에는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상자 속에 넣어둔 몇 종류의 종이가 준비되어 있다.
기본적인 빨간 크리스마스 부츠를 본뜬 것부터 시작해서 선물 상자나 지팡이, 양초나 크리스마스 꽃다발 무늬도 있다. 둘러보니 나무 아래쪽에는 이미 누군가의 소원이 쓰인 몇 개의 종이가 걸려 있었다.
흥미를 가진 미츠하는 한동안 상자 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곧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별 모양을 본뜬 그 장식물의 뒷면에 글자를 써내려간다.
상자 안에는 종이를 매달기 위한 끈도 함께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쓰지 않고, 미츠하는 다 적은 종이를 들고 트리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붉은 매듭끈을 살짝 푼다. 그것을 종이에 뚫려 있던 구멍에 걸어서, 정성껏 트리에 동여맸다.
무스비의 매듭끈을 쓰면, 분명 별까지도 소원이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소원을 들어 준다면 신이든 산타클로스든 좋았다. 어두운 하늘에서는 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린다. 거리의 한구석, 계속해서 색을 바꿔가며 환상적으로 빛나는 그 나무 아래에서, 미츠하는 마음에 정한 소원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가슴 속에 새겼다.
* * *
그 뒤로 눈이 그칠 기색은 없지만, 쌓일 정도까지도 아니었다.
정처 없이 육교를 건넌 타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언제나 가던 장소로 향한다. 바로 집에 돌아갈 기분이 안 드는 날 밤은, 이렇게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폐관 직전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 밤, 사람은 드문드문 몇 명 정도밖에 없어서 도서관은 평소 이상으로 쓸쓸하고 휑하게 보였다.
『사라진 이토모리 마을・모든 기록』그런 제목이 붙은 사진집을 언제나처럼 손에 들고 자리에 앉는다.
무거운 표지를 펼치고, 벌써 몇 번이나 본 그 페이지를 천천히 넘겨간다.
이곳에 올 때마다 타키는 늘 이 책을 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모를 터인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몹시도 애달픈 기분이 들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라져 버린 마을의 풍경이기 때문일까. 그래도 어째서 이 풍경을 보면 자신은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일까.
이 기분은 비유하자면 향수라는 것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남한테 말한다면 분명 이상한 소리라면서 웃을 것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 도쿄에서 태어났고, 별다른 고향 같은 건 없을 터인데.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타키는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있지도 않은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그리고 이 사진 속 어딘가에, 쭉 찾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이 풍경이 그 “무언가”와 이어져 있다, 확신은 없지만 타키는 왠지 쭉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곧 관내에 올드 랭 사인³⁾이 흐르며, 폐관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린다.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일어난 타키는 책을 원래 있던 책꽂이에 꽂고서, 다시 눈이 내리는 밤의 거리로 걸어나갔다.
오늘은 우산도 챙겨오지 않았다. 밤에 눈이 내린다고 일기예보에서 말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렇게 늦게 집에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칠 기미도 없이 언제까지고 눈이 쏟아지는 잿빛의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어느새 다시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었음을 타키는 뒤늦게 눈치챘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 무언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막연하게 든다.
그러다가 어느새 고층 빌딩이 줄지어 서있는 곳까지 걸어와 있었다. 문득, 빌딩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은백색의 빛이 눈에 띄어 걸음을 멈춘다.
빌딩 사이의 쉬어가는 광장 같은 살짝 트인 장소에, 하얀 눈을 본뜬 조명에 둘러싸인 크리스마스 트리가 외로이 서 있었다. 실제로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의 그 모습은 뭔가 환상적인 광경으로 보였다.
그 불빛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트리 쪽을 향한다. 전나무의 녹색이나 크리스마스의 붉은색으로 색칠된 전구들 사이에 섞여서,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본뜬 몇 개의 종이가 걸려 있다.
『별에게 소원을』이라고 쓰여진 설명을 읽어보니, 크리스마스를 맞는 행사로서 소원을 쓴 종이를 매다는 모양이다. 별 생각 없이 그것들을 바라보던 중 문득 딱 하나, 다른 종이들과는 달리 눈에 잘 띄는 붉은 실로 묶인 별 모양의 종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정글을 뒤덮는 검은 밤하늘과 하얀 눈. 모노크롬의 세상에서 그것만이 갑자기 선명한 색채를 가진 것처럼 시야에 뛰어들어온다. 왠지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아서, 타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종이를 집어보았다.
빨간색 단색이라고 생각했던 그 끈은 자세히 보니 주홍색과 파란색도 들어간 매듭끈으로 섬세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뒤집어 보니 글자가 쓰여 있었다.
거기에 써 있던 누군가의 소원. 그것을 다 읽은 순간 타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다음 순간 튀어나가듯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12월 초의 고요한 거리에서는 아직 크리스마스 캐롤도 성가도 들려오지 않는다. 산타클로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런 거리의 한구석에서 발견한, 별 모양의 종이에 써 있던 말.
붉은 끈으로 트리에 묶여 있었던 소원은, 타키 자신이 매일 계속해서 바라왔던 그것과 틀림없이 똑같은 것이었다.
『계속 찾고 있는 누군가와 만날 수 있기를
아주 조금만이라도 좋으니까 좀더 함께 있을 수 있기를』
구르듯이 달려나가서 지나온 길을 더듬어 큰길로 나와, 인도를 지나는 인파에 부딪히면서도 계속 달려 다시 그 육교 위로 돌아간다.
아까 스쳐 지나갈 때 느꼈던 가슴 아플 정도의 애달픔을, 왜 그 때는 믿지 않았던 걸까.
쭉 찾고 있었던 누군가와 만나고 싶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라도 좋으니 함께 있고 싶었다.
지금 내리는 이 눈과 같이, 조용히 내려 쌓이는 마음을 품고 계속 살아왔는데.
그녀와 만나고 싶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다시 한 번만 만나고 싶다.
다리 위에서 그 모습을 찾아 주위를 빙글 둘러보았다.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타키는 모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육교 위에서 외치려고 한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를 알 수 없었다.
차디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열렸던 입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허무하게 침묵에 잠겼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흐릿해져 가는 거리의 건너편으로, 내뱉은 숨결만이 공중에서 하얗게 변해 사라져간다
지나가던 사람이, 눈 속에서 우산도 쓰지 않고 서 있는 타키를 의아하다는 눈으로 보며 옆을 지나쳐 갔다.
도쿄의 거리에, 그리고 우두커니 선 타키의 위에도 마찬가지로 눈이 쌓여간다. 인도 옆의 가로수를 장식하는 크림색의 조명이 흐릿하게 보였다. 볼을 타고 흐른 한 줄기의 무언가는 볼에 떨어진 눈이 녹은 것일까, 아니면…… 무력함에 올려다본 어두컴컴한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눈송이가 춤추며 떨어진다.
그래도 타키의 마음 속에는 하나의 희망이 싹터 있었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소중한 사람. 그것은 너무나 모호한 감정이라 어쩌면 그저 기분 탓일지도 몰랐고, 정말로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지조차도 의심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이 거리의 어딘가에는 그 사람이 있어. 타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만큼은 확신에 가까웠다.
손가락을 덥히기 위해 하얀 입김을 내쉰 우산 아래에서 문득, 멀리서 누군가가 부른 것만 같아서, 미츠하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 저편을 돌아보았다.
* * *
아침, 침대 위에서 눈을 뜨면 어째서인지 울고 있다. 분명 꾸고 있었던 꿈은 언제나 기억나지 않는다. 미츠하에게는 그럴 때가 종종 있다.
꾸는 꿈의 기억은 언제나 흐릿해져 있어서, 그 때 곁에 있던 사람의 얼굴조차도 알 수 없다. 그저 꼭 붙잡고 있던 손이 어느덧 풀리고, 온기가 자신을 떠나가는 그런 꿈. 하지만 그 날만큼은 달랐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은 분명히 외치고 있었다. 너를 만나러 왔어, 라고.
구하기 위해서 왔어, 네가 살아있어 주길 바랐어, 라고.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신비한 장소. 꿈이 끝나는 그 순간, 현실과의 경계에서 마지막에 들려온 말은 아침에 눈을 뜬 뒤에도 아직 분명하게 미츠하의 귓가에 남아 있었다.
『――네가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반드시 다시 한 번 만나러 갈 테니까』
꿈이 사라지기 직전에, 그가 남긴 말은 분명 이것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 목소리를, 냄새를, 존재를.
몸을 일으킨 채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빗으면서, 버릇처럼 머리카락 끝을 휘감으면서, 미츠하는 희미한 빛이 비치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너무 늦잖아. ……와 주기를, 쭉 기다리고 있으니까」
혼잣말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킥킥 하고 웃음을 흘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커튼에 손가락을 댄다.
그런 꿈을 본 탓일까. 오늘 아침만큼은 언제나처럼 슬프지 않았다.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커튼을 있는 힘껏 열어젖힌다. 아침의 햇빛이 눈부시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만일까. 가슴 속에 켜진 희미한 희망의 빛과도 같이, 누군가가 외친 그 약속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있었다. 아무리 기약이 없어 보인다 한들 소원은 분명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유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계절을 넘으면 다시 봄이 찾아온다. 손바닥을 바라보게 된 뒤로 몇 번째인지 모를 봄이 온다.
어제 내리던 눈은 이미 그쳐 있었다. 언제나 뭔가가 빠져버린 것만 같던 나날에 찾아온 작은 징조와도 같이, 창문 밖으로는 오랜만에 탁 트인 푸른 하늘이 보였다.
[각주]
1) OB방문: 회사 내의 동문 졸업생과 만나는 일. 여자면 OG
2) 링 필로우(Ring pillow)
이런거임 예물로 쓰는듯
3) 올드 랭 사인 (일어로는 반딧불의 빛, 蛍の光)
이별을 뜻하는 스코틀랜드 민요임 들어보면 다 아 이거~ 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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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또 날려서 개늦어졌네 ㅈㅅ
덧글은 전달해두림
겨울도 아닌데 겨울뽕차게 만드네 ㅠㅠ... 쉬이펄... 잘 봤습니다. 이 소설은 잘 접어놨다가 겨울에 한번 더 봐야겠음
이 분 소설이 번역된 게 두번째 같은데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잘봤어용 ㅎㅎ
요최근에 느갤에서 본 팬픽중에 최곤듯 존나 좋다 ㅠㅠ - dc App
ちんちん
이거 후편은 없냐 ㄹㅇ..
후속편 있는데 아직 안읽어봐서 내용은 모름
아니 근데 작가양반한테 글 링크도 보내주고있어서 틀림없이 열어볼텐데 덧글 일어로 친친은 왜달아 ㅁㅊ
ㄴ이어지는 이야기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뒷얘기가 있음
와, 육교씬에서 눈 내린거랑 크리스마스 기념 행사를 이렇게도 엮네... 정말 잘 봤습니다 무릎을 탁쳤네요
본편 사이의 이야기, 재미있었다. 어차피 만나는 건 알지만 전철에서 결국 서로를 찾아내는 장면까지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
갠적으론 만나는걸로 끝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그런가 아직 만나진 못했지만 만남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끝나는게 여운있고 좋긴했음
본편에서 잠깐 나온 장면으로 엄청 애틋하게 쓰셨네 문장도 감정도 섬세해서 좋다... 겨울이 그리워진다
텟시사야가 미츠하에게 부케 주고 싶어하고 마음쓰는 것도 그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을 셋을 상상하게 하네ㅜ
육교씬 이후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크리스마스라는 적절한 소재에 좋은 필력까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육교신 으아아... 기가막힌 소재선택에 감탄했습니다.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미차 - dc App
이런 띵작을 이제서야 보다니.... 지금이라도 개추박고 갑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