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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팬픽콘 제출작입니다.


<단편 – 다시 한번>


시나노마치의 한 육교위에서 한 남자가 한숨을 쉬며 도로를 바라보고 있다.

입에는 빈 담배를 문 채 불을 붙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 몇 시간째인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했다. 후회하는 건지 회상을 하는 건지 옆에서 봐도 전혀 모를 정도로 표정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건지, 계속 그녀 생각만 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언제나 곁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이끌어 주던 그녀. 거기에 특별한 추억까지 있었던 그녀.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고 없다.


★ ★ ★ ★ ★


1년 전에 전철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스가신사 계단에서 만난 그녀. 흔하디흔한 대사로 시작했던 우리였지만, 그 달콤한 연애도 1년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헤어지기 3개월 전부터 연락을 뜸하게 하더니 헤어졌던 그 날 이 육교에서 작별의 말을 건네고야 말았다.


"타키군, 난 정말 실망했어. 너에게 기대를 그렇게 많이 했었고, 해준 것도 많아. 하지만, 이제 지쳐. 우리의 특별한 관계도 관계지만 지금 나에게 타키군은 너무 부족해."


청천벽력 같은 그녀의 말. 하지만 그는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미츠하. 한 번만 더 생각해 줄 수는 없는 거야? 너도 10년 동안이나 기다렸잖아 나를... 그런데 인제 와서 왜 그러는 거야."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물어본 이유조차도 들려주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할 말만 또렷하게 했다.


"미안해. 난 지금 10년 전에 내가 만났던 사람이 타키군이라는 것조차 의심스러워. 전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분위기는 정말 비슷해. 하지만 나는 타키군에게 있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던 거야."


그렇게 말을 잇던 그녀는 결국 이별의 말을 전하고 말았다. 듣기 싫었던 그 말을.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나에게 타키군은 과분한 남자였어. 시골 출신에 그저 덜렁대는 그런 여자를 좋다고 해줬던 타키군에게는 고마워. 하지만, 난 더 이상 곁에 있을 수가 없어. 그럼 이만.“


말을 마친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 육교를 떠나갔다.


"미츠하... 잠깐... 미츠하!!!"


그녀의 마지막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녀는 그대로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왜 뛰어가서 붙잡지 못했을까. 그녀를 사랑했었는데. 그녀의 말이 정말 옳았던 것일까? 내가 부족했던 것일까? 내가 그녀에게 과분한 사람이었던가?


그녀가 떠나고 그는 고뇌에 빠진 채 육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하지만, 그녀는 두 번 다시 그 장소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 육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 ★ ★ ★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싶다. 하지만 그녀와 사귈 당시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을 알고 기뻐하던 모습을 떠올리니 차마 불을 붙일 수 없다. 담배를 피워보지도 않았지만, 앞으로도 피울 생각은 절대로 없다. 그래서 참아야 한다.


담배를 다시 손에 옮겨 쥔다. 그리고 사정없이 꺾어버린다. 아직은 무너질 때는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지만, 아직도 그는 그녀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던 '그 사람' 임에는 분명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 한번 마주친 걸로 서로를 찾아 뛰어다녔을 리 없지 않은가.


"미츠하...“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눈물을 떨구고 만다. 굵은 눈물방울이 천천히 육교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는 그렇게 소리 없이 슬픔을 표출하고 말았다.


아직도 후회하는 중이다. 그녀를 붙잡고 이유라도 들을걸. 아니면 다시 한번 마음을 돌려볼걸. 이미 다 부질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 그리고 행동이 너무도 많았다.


"여기까지인가...“


정면을 바라보던 시선을 하늘로 돌린다. 도쿄에서는 별이 보일 리 없으니 그저 불빛에 비친 검은 하늘만이 그의 시선을 가득 채울 뿐이지만, 어째서인가, 그 하늘에 별들이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녀와 같이 본 이토모리의 하늘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의 착각일까. 그날 그녀와 함께 봤던 그 밤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 중 그들의 별이 있을까 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 그녀는 나란히 붙어 있는 별을 가리키며,


[저 별이 너와 나의 별일 거야. 한시도 떨어지지 않잖아? 나는 우리가 저 별들처럼 평생을 갔으면 좋겠어]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너도 지금 나랑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무심코 나온 한마디. 곁에 없지만 어딘가에서 같은 하늘을 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를 상상하니 다시 가슴이 미어진다.


한 번도 헤어짐을 겪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두 번의 헤어짐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미어지던 가슴은 그를 옥죄이기 시작했다.


이곳을 떠나기 싫었다. 계속해서 기다리면 그녀가 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곳을 떠난다.


"미안해. 난 정말 바보야... 하지만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그것이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떠나면서 그가 남긴 한마디는 차가운 밤바람에 스쳐 산산이 흩어졌다.


★ ★ ★ ★ ★


"미츠하.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너 그 사람 정말 좋아했었잖아. 왜 그랬어.“


미츠하의 절친 사야는 타키와 헤어졌다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그녀에게 달려왔다.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녀가 헤어졌다는 말을 듣자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없었어. 내가 이곳에 계속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대로 질질 끌게 되면 그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미츠하는 그 말을 끝남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본심과는 다른 말을 그에게 해야 했던 그 사실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헤어지기 싫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닥친 현실은 그에게 헤어짐의 말을 해야만 하게 만들어버렸다. 기다려 달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했는지 후회가 되기도 했다.


"사야. 내가 정말 잘한 걸까? 난 정말 타키군을 사랑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것인데...“


울음은 곧 절규로 바뀌고 미츠하는 사야의 품에 안겨 울부짖기 시작했다.


10년을 기다렸던 그 사람을 만나서 1년 동안 행복했는데, 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헤어져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그렇게 행복하게 평생을 그와 함께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의 현실은 그런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에게 최악의 상황을 주고야 말았다.


더는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 몇 년이 될지 모른다.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 그를 자신 때문에 묶어둘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미츠하. 아직 늦지 않았잖아. 너는 왜 항상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니? 너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왜 변한 거야.“


옆에서 보던 사야가 답답한 마음에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야답게 그 말은 미츠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를 그렇게 사랑했다면,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왜 그에게까지 아픔을 주는 건데. 너 정말 그 사람 사랑했던 거 맞아? 정말로 사랑하는 거 맞냐고.“


계속해서 잔잔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하는 사야의 말에 미츠하는 울음을 그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나와 텟시를 이어지게 해준 사람은 너잖아. 난 그 사실에 고마워하고 있어. 이제야 내가 너에게 빚을 갚을 차례가 됐구나. 이번엔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겠어. 너의 그 생각 없는 멍청한 행동에 대해 도움을 주겠다고. 다만,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다시 물어볼게.“


[넌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1년 동안 그와 함께했던 많은 일들 그리고 같이했던 시간. 그와 함께 있었을 때 느꼈던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가슴에 겹겹이 쌓였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았다. 그리고 강한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인다.


"좋아. 알았어. 넌 내가 하라는 대로 해주고 조금만 기다려. 너희들 솔직히 이대로 두기엔 내가 봐도 너무 아까워. 그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 보기 힘들거든. 후훗“


그렇게 사야는 윙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했던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한마디로 대변해주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그녀는 사야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를 당장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용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면 그가 정말로 자신을 떠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사야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멈췄던 울음을 다시 터뜨리고 말았다. 


★ ★ ★ ★ ★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한 통의 문자. 하지만 그 문자는 타키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누군지 밝히지는 못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찾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문자는 특정장소를 말해주고 있었다.


타키는 지금 알 수 없는 조바심에 이끌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문자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내온 장난 문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했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녀를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자신이 지금 신에게 빌 소원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자에 적힌 곳에 도착한 타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사람의 기척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 거야. 미츠하!!!“


사람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이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외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공에 반사된 메아리일 뿐. 그녀의 대답은 없다.


한참을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그는 힘없이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자그마한 흰 종이를 발견했다. 겉에는 글씨가 쓰여 있는 크지 않은 메모.


그 글씨는 살짝 물에 젖어 번져있어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타키는 메모를 펼쳤다. 익숙한 글씨체의 짧은 메시지. 글씨체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쓴 것임이 틀림없었다.


[XX월 XX일 00:00 ㅇㅇㅇ]


갑자기 머리에 망치를 맞은 충격이 온다. 그녀가 말했던 이별의 말의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타키는 그 길로 지나가던 빈 택시를 세웠다.


"얼마가 나와도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할게요.“


택시기사에게 다급하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전철을 타도 되지만, 지금 그에게는 그 선택권은 없다. 몇 분 몇 초라도 빨리 그 장소에 도달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기다려. 마지막으로 널 볼 수 있으면 난 죽어도 좋으니까.“


그녀를 살려내려고 쿠치카미자케를 마실 때의 기억은 남아있었기에 지금 그의 심정은 그것과 필적할 만했다. 아니 지금이 더 절박했다. 지금 그녀를 만나지 못하면 이번엔 자신이 세상을 하직할 생각까지도 하고 있을 정도였다.


"다시 한번.“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입을 다물고 질주하는 택시의 안에서 도쿄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와 함께 다녔던 곳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는다. 이제 곧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한 기대까지 하고 있다.


"거스름돈은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택시기사에게 만 엔짜리 지폐를 건네고 그는 재빨리 내려서 그곳으로 향한다. 이젠 걸어갈 여유도 없다. 그녀를 처음 만날 때처럼 뛰기 시작했다.


★ ★ ★ ★ ★


"타키 씨. 오셨군요.“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그곳에서 예상을 뒤엎는 상황에 그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 그 사람은 자신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사야씨...“


사야는 그런 타키에게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미안해요. 타키씨가 원하던 그녀가 아니라 저라서. 하지만 그녀의 부탁이 있었어요. 두 번 다시 자기를 찾지 말아 달라고.“


기껏 힘들게 찾아왔더니 이런 결과인가. 타키는 이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왜 미츠하가 저를 피하는 거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침착하게 잘 들으세요. 미츠하가 타키씨한테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에요. 그녀는 누구보다도 타키씨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미츠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사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키는 크게 화를 내면서 그녀에게 소리친다. 자신이 이곳까지 온 것은 그런 시덥지 않은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미츠하는 어디에 있어요.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츠하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타키 앞에서 사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침착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전 지금 타키씨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려고 여기 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시면 전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없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분명 사야의 말이 맞았다. 타키는 지금 유일하게 미츠하의 거취를 아는 사람과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화를 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말에 의해 깨닫고 나서 다시 그녀의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따라오세요.“


그리고는 사야는 앞장서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는 동안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타키는 조급했지만, 그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 ★ ★ ★ ★


"여기에요.“


사야가 도착한 곳은 작은 주택 앞이었다. 자신이 알던 미츠하의 집이랑은 전혀 다른 곳. 사야는 말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세요.“


여전히 무미건조한 사야의 말에 집안에 한걸음 내딛는 순간. 타키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거실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 가운데 사진은 분명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말했던 이별의 이유가 이것이었나?


"미안해요. 이런 모습은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말하는 사야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현관에서 주저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타키군...?“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가만히 서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흑색의 반 머리, 그리고 매듭 끈을 한 여성이 보였다. 분명 그가 애타게 찾던 그녀.


"미츠하...?“


헤어진 뒤로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응. 나 여기 있어...“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미안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 하지만, 나 때문에 타키군까지 불행해지는 건 싫었어.“


작은 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려온다. 지금까지 자신이 들었던 어떤 소리보다도 크게.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거실을 바라보는 타키에게 미츠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내가 미야미즈가의 무녀를 이어받아야 했어. 그래서 타키군에게 부담 주기 싫었거든. 지금 타키군은 성공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큰데. 나 때문에 그 앞날이 막힌다면 그건 내가 싫었어.“


타키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둘의 만남이 뜸해질 시기에 미츠하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위독하셔. 요즘 그래서 시간이 잘 안 나.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미안해.]


미츠하의 어머니 후타바는 미츠하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미츠하는 자신이 미야미즈가를 이어받아야 하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녀의 아버지 토시키처럼 미야미즈 신관까지도 할 생각은 충분히 있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키군. 지금 타키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나는 알아.“


조용히 계속 말을 잇는 그녀.


"괜찮아. 이젠... 그리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타키는 그녀에게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괜찮지 않아! 넌 나 때문에 나보다도 더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


드디어 그녀에게 건네는 타키의 첫마디. 그와 동시에 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바보야... 넌 어쩌면 그렇게 너만 생각하냐.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너만의 생각으로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타키군...“


"제발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나 정말 힘들었어.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다고, 7년을 기다려서 간신히 너를 만났는데 너를 놓치면 난 살아갈 의미를 잃는단 말이야.“


목소리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상태의 톤. 평소의 타키의 목소리하고는 조금 다른 톤이다. 그것은 분명 처음 계단에서 만났을 때의 그 톤과 같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금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다. 자기 생각만으로 그에게 상처를 준 것으로도 모자라 그를 그토록 헤매게 만든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런 그녀에게 타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난 너를 처음 그곳에서 만났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네가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가 꼭 너를 다시 만나러 갈 거라고.」


그 말에 미츠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타키의 품 안에 뛰어들었다. 그런 그녀를 살며시 안은 타키는 그저 그녀를 꼭 안아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뒤에 서 있는 한 명의 소녀가 살며시 그녀에게 하얀색 종이를 넘겼다.


"언니, 이걸... 할머니가 언니에게 전하는 말이래.“


하얀색 바탕에 검정글씨로 「미츠하에게」 라고 쓰여 있는 한 장의 편지. 두 사람은 그것을 펼쳐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너희가 이것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거겠지. 내가 항상 미야미즈 가문을 이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지만, 지금 도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너희에게 차마 가문을 이으라는 말을 해서 너희의 앞날을 막지는 못하겠더구나.


미츠하, 요츠하. 우리 가문을 굳이 이을 필요는 없단다.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란다. 이 할머니도 언젠간 세상을 떠날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너희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특히 미츠하. 너는 지금 사귀는 사람 놓치지 말고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 그 사람은 미야미즈 가문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사람이란다. 너희의 아니지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그 사람이란다.


이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니 꼭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단다. 언젠간 너희도 이 세상을 떠나서 할머니의 곁으로 오겠지. 그땐 이승에서 행복했었단 말을 듣고 싶구나.」


편지는 그렇게 끝이 나 있었다.


타키는 그 편지를 쥐고 멍하니 서 있었다. 미츠하의 할머니 히토하.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츠하와 같이 처음 대면했던 그 날, 인자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미츠하가 드디어 운명의 사람을 만났구나.」


그때는 몰랐다. 그저 미츠하와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 하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억의 일부가 돌아오고 나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다시 할머니를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랬던 미츠하의 할머니는 임종도 보지 못하고 미츠하의 곁을 떠나버렸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미츠하의 앞날을 걱정한 채.


미츠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말없이 그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다. 지금 이대로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할머니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할머니...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울면서 겨우 꺼낸 한마디. 타키는 울고 있는 미츠하의 등을 살며시 다독여 주었다.


그녀의 할머니는 그녀의 삶에 있어서 어머니만큼 소중한 존재였을 것.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집을 나가버렸기에 그녀의 할머니는 오랜 삶을 같이한 그녀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그녀의 가족이었다.


"괜찮아. 미츠하... 지금은 그냥 마음껏 울어...“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은 그녀의 감정에 마음껏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타키군... 난 정말 바보였어...“


"아니야. 미츠하는 절대 잘못 생각하지 않았어. 나 같아도 그렇게 했을 거야. 아마도.“


그녀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가장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했던 것은 그녀라는 것을...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했다.


가족을 잃은 그녀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는 것. 자신이 겪은 이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지금 타키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의 전부였다.


☆ ☆ ☆ ☆ ☆


며칠 뒤, 이토모리 마을. 그녀의 할머니를 고향에 모셔다드린 두 사람.


모든 일이 끝나고 두 사람은 이토모리 학교 운동장에 나란히 서 있다. 하늘에서는 그때와 같이 수많은 별이 총총하게 떠 있었고, 그녀가 말했던 두 사람의 별도 오늘은 나란히 붙은 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미츠하. 저 별 기억나?“


"응...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저 별은 우리 둘의 별이라고 했었지.“


"맞아... 두 번 다시 서로 떨어지지 않을 별...“


잠시 말이 없어진 두 사람. 시선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 별에 고정되어있는 채로 침묵이 흐른다. 도쿄에서 그녀에게 이별의 말을 들은 후 혼자서 보던 하늘이 갑자기 생각난 타키. 하지만 말을 꺼내기 전에 미츠하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두 번 다시 이별은 말하지 않을게. 정말 미안해. 타키군. 그리고 약속할게. 타키군이 가는 곳이라면 이제 어디든지 같이하겠어. 할머니의 유언대로...“


굳은 결심이 담긴 그녀의 말에 그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의 표현을 그 어떤 말보다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이 손을 놓지 않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는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처럼 영원히 함께하기를 맹세하고 있었다.


「그녀와 / 그와 다시 한번...」


<단편 - 다시 한번 끝>


<잡담>


드디어 하나가 끝났습니다. 다른 분들이 자신감을 가지겠네요 ㅎㅎ


이별이야기는 저랑은 좀 맞지 않았지만 이건 꼭 써보고 싶었어요. 이별의 장면에서 대사의 강도를 좀더 세게 했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뒷감당이 어려워지겠더라고요.


여하튼 팬픽콘에서 하나가 끝났습니다.


그럼 다음 단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