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콘] 새벽 산길, 그 1장
미야미즈 토시키는 새벽산길을 내려오는 아내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만일 나의 아내가 그저 범인(凡人)이였다면.
나는 미야미즈 후타바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쌀쌀한 새벽공기를 헤치며 후타바가 노랗게 그슬린 단풍길을 빗자루로 쓸어내리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허리가 굽은 산맥 아래로 곱게 뻗은 흙길. 그 위로 작디작은 흰 점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산길을 내려오는 후타바는 동양화에 묘사된 인물처럼 작아 보였다. 산길 아래로 이토모리 호수가 보였다. 동틀녘의 호수는 안개와 같은 적막감에 묻혀있었고 작은 문명의 불씨 하나 보이지 않았다. 토시키는 산마루에서 그녀를 굽어보았다.
저 멀리서 하얀 점이 크게 원을 그렸다.
“어-이!” 후타바의 목소리가 산봉우리를 타고 울렸다. 긴 메아리 소리가 귓불을 간질이자, 토시키는 메아리에 답하려는 걸 묵묵히 참으며 미소를 짓는 것으로 만족했다.
장모님께서 신사 곳곳을 둘러보실 시간이었다. 고함소리가 장모님의 귀에 들어가는 날엔 꼼짝없이 꾸중을 듣게 될 것이 뻔했다. "신관이 그리 야단법석을 떨면 어쩌자는 게냐!" 상상 속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아찔했다. 후타바는 그런 토시키의 사정을 잘 아는지 되려 더욱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악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둥글게 팔을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꼭 동네 꼬마가 약을 올리는 듯 했다.
그녀가 서 있는 산길은 신사에서 동떨어진 곳이기에 장모님의 귀에 들릴 염려는 없었다. 언젠가 장모님 귀에 들리는 날엔 어찌하려고 저러는 것일까? 분명 후타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글쎄요, 궁사님. 귀신들이 제 목소리를 흉내낸 게 아닐까요?” 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을 것이다. 장모님의 남은 눈칫밥을 전부 내 몫으로 남을테고. ㅡ물론, 이 정도는 견뎌주어야 훌륭한 사위로 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ㅡ 아침부터 신입사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토시키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동이 트기까지 한참 남은 아침녘을 둘러보았다.
장모님은 노인네답게 아침잠이 없었다. 하지만 신당에 기원을 올리는 일에 단 한번도 연륜의 핑계를 댄 적은 없었다. 한 번은 장모님이 관절염이 도진 무릎을 두드리시며 투덜거렸다.
“제기. 비가 오려나 무릎이 요 모양, 요 꼴이구나. 내 언제까지 참배나 하러 댕길꼬.”
“무릎이 많이 안좋으시면...” 후타바는 간언하면서도 차마 못할 말을 한 것처럼 보이겠끔 시선을 가라앉혔다. 그리면서도 창 밖의 청명한 밤하늘과 밥상머리 앞의 일기예보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노인의 관절통이 기우를 알아맞히는데 좋다는 것을 이 때 처음으로 알게됬다. 외가친척이 없었기에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후타바에게 장모님을 달래는 어려운 일을 맡겨놓고 나는 이야깃거리에도 낄 수 없어 열심히 찬거리나 뒤적이며 일기예보를 훑어보았다.
“아, 거. 아범 자네 반찬이나 망치지 말구 제대로 집게나. 아이야. 내지에 비 쏟아지는기야 무릎 꼬라지를 보니 확실하다마다.” 하늘을 살피는 후타바를 보며 히토하가 투덜거렸다. TV 예보에는 예고된 대로 “맑고 흐린” 이란 글자가 떠올랐다. 몰래 핸드폰을 힐긋거리던 후타바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살며시 보조개를 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새벽이 닥치기도 전에 이토모리에 기록적인 폭우가 덮쳤다. 근 10년만에 터진 물난리였다. 뒤늦은 추수철 한참이라 그 해는 농민들의 한탄어린 아우성이 가득했다. 장대우산도 폭우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칼바람이 닿기 무섭게 눈꺼풀을 까뒤집으며 날카로운 우산살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나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산길에 나서려는 후타바를 가까스로 만류하곤 낡은 이륜차로 진흙이 돌덩이처럼 쏟아지는 산길을 올라타는 묘기를 부렸다. 그날따라,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재주가 참으로 신통하다고 여겼다.
이처럼, 날씨 여부에 상관없이 장모님은 신사 참배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후타바나 나도 신당의 일 앞에선 예외는 없었다. 또 무녀가 신사참배를 하는데 굳이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나에겐 이토모리를 지키는 수호신들께 앞으로의 노력에 결실을 볼 수 있게 하사 복잡한 심정을 담은 진심어린 기도였으며, 후타바에겐 그저 아침에 드는 모닝커피와 같은 수준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평생을 신사의 궁사로 살아온 장모님이라면 어떤 느낌이랄까? 아침잠 없는 노인들이 동네마실을 다니는 버릇과도 같다고 해야하나. 장모님처럼 오랜 세월동안 참배를 해온 분께는 차마 그 행위에 “각별하다”는 표현조차 달 수 없었다.
후타바나 나나 항상 이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선 숨을 헐떡이며 마른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오늘같이 보수공사를 하러 새벽부터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면 누구나 그럴 기분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후타바가 한층 더 크게 “오-이!” 하고 소리쳤다.
씩씩한 말투였지만 이번에는 공공장소에서 두런두런 나눈 속삭임처럼 예의바르다. 나는 양 손을 넓게 펼쳐 허공에 원을 그려보였다. 그러자 한동안은 나와 그녀만의 메아리 소리로 산맥을 고요하게 뒤덮었다.
토시키는 허공을 가른 손바닥들을 올려다보았다. 손바닥 위로 지구본 같은 천체가 얹혀졌다. 마치, 거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검은 눈에 비친 시선이 별들의 바다로 물들자 머릿속이 현기증으로 아득해졌다. 지구를 떠받드는 팔 아래로 상쾌한 바람이 피로를 덜어주나니, 그 기분을 감히 표할 수 없었다. 아침녘으로 물드는 수채화 속 하늘은 가히 장관이었다. 얼음장 같은 새벽하늘이 손길따라 동쪽으로는 호박을 닳은 햇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서쪽하늘로 껌뻑거리는 별들이 태양의 인도를 따라 짙은 심연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멀리서 빗질소리가 박차를 가하자, 토시키는 억센 빗자루 소리를 들으며 산마루에 박힌 매끈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불자 구슬 땀이 정수리를 타고 유성우처럼 흘러내렸다.
토시키는 다시 새벽녘 사이로 떠오른 산맥을 크게 둘러보았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산길 언저리는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나는 틈틈이 이렇게 후타바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학자의 기질이랄까 가끔은 관음증이라고 생각할정도로 나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을 사랑했다. 그녀가 잡초들을 개구쟁이처럼 쑥대밭으로 만들 적에도, 지금처럼 산길을 빗자루로 틈틈이 쓸며 내려올 적에도 그녀의 몸에선 틈틈이 후광이 비춰졌다.
누군가는 이 결혼생활이 내 민속학 연구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미야미즈 신관의 생활이 내 민속학 연구에 이점을 가져다 주는 부분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학자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없었다.
간혹 그녀에게선 톡쏘는 향기가 느껴졌다. 그 향기를 들이마실 때는 흡사 전기줄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기도 했는데, 나는 얼마안가 그것이 후타바에게 갖는 내 개인적인 호감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알게 될 때마다 나는 후타바를 사랑하게 되었고 또, 그녀가 숨겨둔 이면을 두고 함께 괴로워했다. 선천적인 직종 덕분에 나는 그녀의 특별한 직업군에 대해서도 별탈없이 섞여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를 사랑하는 나의 방식은 점점 우직해졌다. 그녀를 굽어보며 지금처럼 그녀를 둘러쌓은 산맥들을 둘러보는 일들을 사랑했다. 낫과 톱질이 아닌 흙길을 잘근잘근 딛는 튼튼한 발과 땀방울만이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이었다. 별과 바람은 하나였고, 밤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가끔씩 청명한 하늘속에서도 서글픈 얼굴을 닳은 달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우직하게 그녀의 삶을 관찰하던 때였다. 사냥꾼의 직감처럼 문득 떠오른 당신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그녀의 말과 언어 속에는, 내가 그리고 세상이 알지못한 진실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진실들, 그것은 자질구레한 대화로는 이끌어낼 수 없었다. 부부간의 사소하면서도 일상적인 대화가 쓸데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하룻밤의 장난처럼 즐거운 유희거리였다. 그렇지만 유희가 계속되면 계속될 수록 새로운 기쁨을 찾는 데에 무뎌지기 마련이었다. 후타바와 나는 서로 무뎌지지 않기 위해 해와 달의 방식을 추구했다. 마치, 대낮동안 즐거운 산책을 쉬지 않고 즐기고나서 밤에는 모닥불의 불길과 같은 휴식을 취하곤 했다. 밤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보이는 법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활개를 치며 사람이 아닌, 산짐승들과 귀신이 어둠속에서 자박자박 걸어나오기 시작하는 세계였다.
한참 사랑이 넘칠 시기에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이 끔찍한 문제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후타바는 이 긴긴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야생동물들이 밤이 왔다고 서둘러 불가를 찾아나서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이 침묵을, 긴긴 밤을, 놀이처럼 즐겼다.
이른바, 사냥꾼과 사냥감의 침묵이었다.
***
처음 이토모리에 연구차로 왔을 적부터 나는 사냥꾼이였고 후타바는 내 엄니 사이를 영리하게 뛰다니는 물고기였다. 팔딱팔딱 우아하지 맥박지는 심장고동. 그녀가 처음 입을 떼었을 적의 기억들은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오래된 전통이나 유래를 알게 된 학구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학자들의 연구과정 자체는 우아하지 않았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가축의 도살과정처럼 흉악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학자들의 방식은 이러했다.
문헌과 피험자의 증언으로부터 유출해 낸 정보가 사유라는 도마위에서 팔딱팔딱 뛰는 한 마리의 물고기라면 나는 눈 앞에 뛰고있는 그 멋지고 추악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고동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바다동굴 속에 울리는 미지의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나는 그 소리에 놀라울 정도로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사냥감을 동정하진 않았다. 나는 감상을 죽이고 학자로서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정중함 속에서 고통없이 물고기를 도살하곤 했다. 이른바, 합리적인 결론들의 도출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이후에 햇빛에 말려놓은 북어포처럼 빨래줄에 시뻘겋게 늘어뜨린 정보들을 이리저리 잡아뜯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곳에선 숨길 수 없는 피냄새가, 도살된 침묵 속에서 하나의 진실이 아름답게 매달려있었다. 진리앞에 선 순간만은 도덕과 위선적인 감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적어도 그녀와의 첫 면담때는 그러했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연구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연구를 시작하고 나서 머지않아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미야미즈 후타바는 내가 전에 알던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관능미가 아닌 신비한 눈매와 대조되는 정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춤사위. 그리고, 그녀가 숨을 내뿜을때마다 느껴지는 톡쏘는 향신료가 언어가 되어 모래사장에 디딘 나의 발을 조개껍데기처럼 아프게 찔러왔다. 그녀의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머리와 이성적인 말솜씨들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야생의 짐승들처럼 야만적이었고, 또한 자애로웠다.
나는 점차 그녀와의 대화속에서 사냥꾼의 긍지를 잃어갔고, 때때로는 그녀와 함께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아름다운 숲 속을 배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후타바는 아름다웠다.
그녀와의 대화속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모든 말투. 토씨 하나하나가 마치, 물고기와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다. 되려 범람하는 강물에서 낚시를 하는 것처럼 말씨 하나하나를 모두 귀담아 듣지 못할 때도 많았다. 매번 찾아갈 때마다 그녀는 가을의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연어들의 산란기였고, 강물이 범람하는 장마철이었다. 나에게 그녀는 마을에 닥친 재앙이자, 물고기를 선사하는 강의 여신처럼 보였다.
아무튼 이것이 지금까지의 나와 그녀 사이를 끌어당긴 이른바 인력이라고 불리는 사건이었다. 대화와 침묵은 인력의 에너지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지금도 그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마저도, 그 마저도 때론 치열한 기다림 끝에 얻을 수 있었다.
***
산마루에 쉬고 있던 토시키는 얼마 안가, 가쁜 숨소리와 함께 노랫말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토시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분주하게 연장통의 내용물들을 늘어뜨리며 몸을 가볍게 풀었다. 노랫말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자, 후타바가 덤불을 헤치며 산마루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자켓과 아침노을에 젖은 머리칼이 불쑥 덤불가지를 뚫고 나왔다. 덤불가지에 긁혀 엉망이었지만 그녀는 여느 무용수보다 더 우아하게 산길로 착지하며 느긋하게 쉬고있는 토시키의 모습을 보며 인사를 했다.
"오-하요!(좋은-아침!)"
"고생했어. 여보." 토시키가 말했다.
후타바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웃음기가 섞인 농이었지만 결코 소리내어 웃지는 아니했다.
"음, 다음번엔 당신도 좀 더 반갑게 말해줘요. 좋은-아침! 이라고.... 그나저나 당신도 참 뻔뻔하군요. 나보다 먼저 하늘님한테 한 눈을 팔았잖아요. 와이프보다 먼저 다른 사람한테 인사를 하다뇨?"
토시키는 심연빛 하늘을 어루만졌던 손을 바지주머니에 우겨넣으며 점잖게 헛기침을 했다. 후타바는 가끔씩 뻔뻔할 정도로 남의 생각을 잘 꼬집어 맞혔다. 잠깐동안의 상상이었지만 마치 그녀는 안내 책자라도 미리 읽은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음....그건 그렇고 올 해 산길 작업도 이걸로 전부 끝났네?"
"전부는 아니죠. 당신, 이번에 우리 엄마랑 고신대에 다녀와야하는 건 잘 알죠?"
"당신...어, 아니. 고신대? 지난번에... 장모님이랑 다녀온 거 아니었어?"
“한눈 팔았으니, 벌이에요.” 후타바가 팔짱을 꼈다.
고신대라면 건넛바위목을 한바퀴 더 넘어야 갈 수 있는 험하디 험한 산지였다. 쿠치카미자케를 바치러 매년 가을 때 후타바가 장모님과 함께 산을 오르곤 했다. 토시키가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후타바의 눈이 실망어린 빛으로 꺼져들었다. 불씨가 꺼지자 눈을 마주치던 토시키의 입꼬리가 점점 비명처럼 치솟았다.
토시키의 반응을 보던 후타바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갑작스런 웃음에 토시키는 “농담이에요.” 라는 말도 듣지 못한 채 흙먼지가 뭉게뭉게 손자국을 남기는 것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작업복에 손자국이 남은 것도 깨닫지 못했다. 평소 행실에서 볼 수 없었던 진귀한 모습에 토시키는 그 순간을 폴로라이드 카메라처럼 눈을 깜빡이며 그 모습을 주워담고 또 담았다. 평소 행실이 정적이고, 조곤조곤했던 탓에 그녀의 장난기 어린 몸짓이 여느 무용수가 추는 춤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게 된 새로운 이면이었다.
자켓을 벗어재끼며 허리에 두른 후타바는 흙이 묻은 손을 털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숨이 꺼지라 물을 들이키는 모습에 여유가 넘쳤다.
둥근 부채꼴의 태양이 지평선 위로 불현듯이 떠올랐다. 마을 성당에 불이 켜졌다. 하지만,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성모마리아 상에 불이 밝혀지자, 문명의 기척들이 스멀스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후타바와 나는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건조해진 웃음기 위로 새로운 종소리가 햇빛처럼 솟아올랐다. 후타바가 토시키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하자 두 사람은 산마루에서 오랫동안 서로의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기나긴 아침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산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토시키는 이 평범한 일상도 점차 마음에 들었다. 논리로 연마된 감각이 무뎌지면서 밤길이 눈에 익는것처럼 눈에 또렷이 들어온 풍경이 있었다. 이토모리의 호수도 그 중 하나였는데 저녘노을 속,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나의 품에 안기던 날이기도 했다.
물론, 토시키의 시야에는 다른 풍경이 존재하지 않았다. 황량한 들판 사이로 미야미즈 가가 있었고, 그 주변의 사람들이 들꽃처럼 서서히 그의 인식속에서 자라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의 생활에 아직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시키는 귀농에 로망을 품은 도시 토박이처럼 허황된 망상에 매료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편안한 노후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ㅡ더군다나, 후타바는 한참 청춘의 나이대였다.ㅡ 농경생활에 적응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아직 그녀와 경험해보지 못한 값진 일상들이 한가득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단지, 토시키의 마음에 걸린 가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야생의 사고가 입지를 잃으며 정착을 하면서부터 느끼게 된 기시감이었다. 방금전까지 평범하게 굽어보던 이 작은 마을이 그랬다.
후타바의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인생을 울타리처럼 두른 이토모리가 그때까지만 해도 토시키의 눈에는 보잘것 없어 보였다.
후타바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녀가 신사의 일에 몰두할 적에는 영락없이 미야미즈 가의 존경받는 안주인이 되었다. 미야미즈의 신관이 되면서부터 나는 그녀와 나란히 서면서도 때때로는 그녀의 한 없는 높이에 경외감을 갖고 그저 우러러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미야미즈 후타바는 고독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높디 높은 고뇌의 구름을 고독하게 들이키는 모습은 지켜보기만 해도 쓸쓸해보였다. 밤이 되면 후타바는 지친 심신을 내 어깨에 기대오곤 했다. 풍파에 휩쓸렸지만 작고 당찬 어깨도 있었다 그녀에겐. 나는 그럴때마다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마음이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차마 그녀에게 내 고통까지 짊어지게 할 순 없었다. 그녀는 타인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저들과는 달라야 했다. 그녀의 마지막 디딤목이 되어야 했다.
마을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항상 후타바를 찾아왔다. 법적 사료나 관습만큼이나 그녀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였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을 부르는 일도 드물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녀는 자신의 식견과 신념에 맞게 최대한 공정하면서도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면 사람들의 입에선 항상 “후타바 님의 말씀대로” 라는 말들이 전염되었다. 그녀에게 무언가 조언을 받고나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마을사람들이 찾아왔다. 얼굴을 맞대며 가벼운 합장을 마치면 그녀에게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용무를 이른바 본색을 발톱처럼 드러냈다.
"꿈자리가 사납다."는 식의 개인문제 부터 재산문제, 법적 갈등까지 한보따리 풀어놓는 것은 예삿일이다. 신사에 찾는 이가 많으면 신경질이 날 법한 상황인데도 그녀는 항상 웃으며 찾아오는 이들을 응대했다.
한 번은 농사철이 시작될 적에 물꼬싸움[역자 : 물꼬는 논에 물이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하여 만든 좁은 수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날 정도의 물꼬 싸움도 간혹 일어나곤 했었다.]을 중재한 적이 있다. 그 해는 전국적으로 살인적인 가뭄이 들어 온 나라가 논에 댈 물이 부족하던 때였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도 땅에 기근으로 갈라졌을 때였다. 이토모리에 비가 오자 농부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들 논에 물길을 대기위해 논밭으로 뛰쳐나갔다. 나와 후타바도 동사무소에서 논에 댈 배수펌프를 가지러 그 현장에 나와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나토리 댁과 야마기시 네가 물꼬를 잘못 트인 것으로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이 일은 나토리 네의 처남이 잘못한 일이었으며 잘못을 시인하고 물꼬를 튼 것은 다시 원상복구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사건은 당장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오해가 몸싸움을 불러들인 것이다. 싸움은 삽시간에 거칠어졌고 급기야 피를 보고야 말았다. 나토리 네의 처남이 몸싸움에 밀려 논두렁이로 굴러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엉망이 된 머리가죽이 진흙을 피로 물들였고 좁디좁은 마을에 터진 싸움은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싸움은 개인간의 다툼에서 가족간의 갈등이 되었고, 이윽고 가족싸움은 너도나도 들러붙은 마을사람들 때문에 삽시간에 카도이리 지구와 사카가미 지구 간의 해묵은 갈등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와 그녀가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민란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였다. 사람 키 만한 농기구가 정확히 서로의 목덜미를 향했고, 물꼬일로 나온 무사태평한 농부들은 손에 든 낫 따위를 이도저도 내려놓지 못한 채 얼떨결에 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놓여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후타바를 보았을 때의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건 마치, 구원자를 본 듯한 눈이었는데 후타바는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손에 들린 농기구들을 보며 걱정어린 탄식을 남몰래 흘렸다. 후타바는 한동안 말없이 숨만 다시며 마을사람들과 눈을 한명 한명 마주쳤다. 나는 그녀가 무언가라도 싸움을 말릴 조치를 취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잠시동안은 논밭의 물줄기가 조용히 흘러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경찰차의 사이렌소리도 없었고 누구도 그 불편한 침묵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때, 후타바가 낫을 들어올린 한명에게 다가가더니 낫을 잡아채곤 조용히 악수를 나누었다.
후타바는 일일이 손을 붙잡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험악한 표정을 짓던 장정들은 후타바가 다가서자 야단법석을 떨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나도 악수하는 일에 동참했고 사태는 조금의 소요도 없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분쟁에 휘말렸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당사자들의 친인척들도 모두들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그 때는 참으로 신기하다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되려 씁쓸한 순간이었다. 그저, 용기있는 사람이 나서서 싸움을 말리는 일만 있었어도 사건은 후타바가 나설 필요도 없이 쉽게 일단락 되었을 것이다. 혹자가 경찰을 불렀어도 될 일이었다. 모든 일을 위험천만한 일도 그녀에게 의탁하려는 마을사람들의 행동은 신앙으로 굳어진 미야미즈 가의 위엄을 고려해도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
나와 후타바는 엠뷸런스가 도착할 때 까지 피를 흘리던 나토리 네의 처남을 돌봐주었다. 피철갑이 된 붕대를 쥔 그녀의 손이 달달 떨렸다. 나는 내심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내가 대신 응급처치를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소독약을 더 가져와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순간, 엠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산 넘어 마을에 도착한 엠뷸런스는 이토모리 가교를 건너 곧장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그 때 그녀도 예고없이 내 쪽으로 몸을 미끄러지듯이 기대왔다. 흡사 지푸라기가 부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토시키는 창백해진 아내의 얼굴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창백해진 미소 아래로 그녀는 손발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이야기였지만, 후타바는 피를 극도로 무서워했다. 어릴 적 병치례가 많았던 탓에 후타바는 온갖 민간요법을 경험해왔고 마을 어르신들이 살아있는 동물의 피도 마시게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후타바는 피묻은 붕대를 만지며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듯한 벌레를 만진 것같다고 말해주었다. 급기야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토시키가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다행히도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불리자 그녀는 안정을 되찾았고 따뜻한 커피와 과자를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산을 내려가는 토시키가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자괴감을 담은 눈빛으로 마을을 노려보았다.
그 때를 떠올리자 토시키는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멀리서 관찰자로 지켜보던 때와는 이젠 상황이 달랐다. 결혼 이후에 토시키는 지아비로써 그녀를 돌봐주고 한 사람의 남편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은 그녀를 필요로 했고 나는 여전히 신관으로서의 소임을 십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이 그녀를 대신할 날이 온다면 마을의 악습들을 먼저 뿌리뽑으리라 토시키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녀를 대신할 좋은 제도와 풍습들이 자리잡고 나면 그녀도 마을사람들과 무리하게 자신의 소임을 위해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다. 토시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 하(下)편 계속. --
하편은 현재 수정중에 있습니다. 아 근데 글자수가 시-박 ㅠㅠ
?????? 아니잠깐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이거 진짜 주눅드는 실력인데유;;; - dc App
ㄴ 본문 토시키의 학자 아재체를 살리기 위해 글 내용이 다소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괜찮게 느껴지네요. 토시키 특유의 투박함 사이로 후타바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게 와... - dc App
아니 이런거 써주신다는게 더 감사합죠 굽신굽신... - dc App
잘봤습니다 본편에 없던 토시키와 후타바의 애정어린 모습 흐뭇합니다. 명작이네요.^ㅇ^ - 7월 1~15일 팬픽콘 개최 중입니다.
글이 약간 난해한 부분이 있네요. 민속학자라서 딱딱함을 어쩔 수 없죠 ㅎㅎ 하지만 작품 잘 봤습니다.
집에가서 자세히 읽겠습니다
성원 감사합니다 ㅠㅠ
예전에 그 토시키 19 팬픽은 어디감?
ㄴ갤 어딘가에 잘 묵혀잇음 ㅇㅇ 다음 소재 생각나면 좀더 자극적으로 써볼ㄱ....읍읍!!
와우.. 그냥 감탄이 나오는 토시키&후타바 팬픽이네요 둘의 캐릭터성을 잘 살리셔서 글을 써 주신 것 같습니다. 감상 잘했어요! ^.^
진짜 잘 쓰셨네요 느갤에서 이정도까지 잘 쓴 것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점검해보니 대략, 오타가 두세군데 보이고, 문장의 흐름을 잇는 문단구조가 어색한 곳이 보이네요. 아 그리고 념글가는바람에 하편 링크가 시밬....
[념글패치히밤... - 하편링크] http://gall.dcinside.com/yourname/889492
후타바의 향기를 맡고 찌릿한 냄새페티쉬 토시키... 굉장히 잘 봤습니다. 이렇게 잘 쓰시는 분은 오랜만이네요. 말씀하신대로 오타가 몇군데 보입니다. 그리고 문장구조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아마 실수하신 것 같아요. 의도라고 보긴 조금 어려웠습니다. 토시키와 후타바의 이야기, 분위기가 외전의 토시키 스토리와 비슷하네요. 홍보문구가 굉장히 인상적
ㄴ글자수 제한때문에 급하게 줄엿는데 지금 읽어보면 눈에 아무 많이 들어와서 부끄럽네요 ㅠㅠ 념글패치.. 히발....
다른데서는 볼 수 없었던 소재로 정말 잘쓰셨네요. 굳이 태클을 걸자면 아침인사에 굳이 일본어를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오타도... 저도 잘 내는 거라 오타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가는.....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읽어본 작품중에서 가장 표현이 세련된거 같습니다. 진짜 잘쓰시네요. 잘보고 갑니다. ㅎㅎ
ㄴㄴ 아침인사에ㅜ대한 답변은 하편에 남겨놓앗습니다.
한 가지... 아주 작지만 치명적인 것. 한국어에 '됬' 이라는 글자 조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됐'으로 쓰셔야 합니다. 원래 이런 거에 되게 민감한데 묘사가 워낙 좋으셔서 두 번째 읽을때야 이걸 발견하네요ㅋㅋㅋ
또한, 하편을 다시 보고 나서 상편도 다시 보니까 느낀 건데. 문단 단위로 갑자기 1인칭과 3인칭이 가끔 바뀝니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겐 그냥 3인칭으로 쭉 가는 편이 훨씬 나아보였습니다.
ㄴ 쪽집게 같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