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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 미정)「노란빛 하늘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2차 수요조사 진행중 ☜
시나노마치역 앞 육교.
“……어?”
고슴도치 머리의 소년 타치바나 타키는 그곳에 서 있었다. 시간은 아마 저녁 즈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저 멀리서 햇빛이 사그라지며 물드는 하늘의 색깔이 노란빛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 풍경이 어째선지 낯설었다. 이 도시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보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타∼키 군.”
옆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 갈색 머리를 단정히 치장한 여성이 살랑거리는 동작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타키는 이 여성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자신의 직장 선배, 오쿠데라였다.
“자, 어서 가야지?”
“가요? 어디를요?”
“나 참. 저녁 먹고 들어가자면서? 금세 잊어버렸니?”
“그랬……던가요?”
“우리, 뭐 먹을까? 메뉴는 정했니?”
타키는 자기도 잊어버린 약속을 일러주며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오쿠데라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지, 그 모습조차도 낯설었다.
왠지 본능적으로 이 사람을 멀리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자, 어서 가자니까.”
오쿠데라는 그런 타키를 괘념치 않는다는 듯이 계속해서 끌어당겼다. 타키는 그 힘에 저항하듯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서있으려니까, 어느새 자신의 뒤쪽으로 다가온 무언가가 다른 쪽 팔을 덥석 움켜쥐었다.
타키는 그 손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소녀가 있었다. 노란색 조끼에 회색 스커트로 구성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근처 어느 학교에서도 이런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은 없었는데.
“타키 군!” 그 소녀가 다급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가자, 타키 군!” 반대편의 소녀를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오쿠데라가 다시 타키의 팔을 잡아당겼다.
“타키 군! 정신 차려!” 반대쪽의 소녀도 질세라 팔을 잡아당겼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오쿠데라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양쪽으로 팔을 잡힌 기묘한 상황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야. 예쁜 여자 둘이서 나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꿈이라니. 게다가 그 중에 한 명이 그토록 동경하던 오쿠데라 선배라니. 꿈이라면 차라리 깨지 않았으면 좋겠─
“정말이지, 타키 군!”
처음 보는 소녀의 외침에서 울림이 섞이기 시작했다.
─기억 안 나니?
“……뭐?”
타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급히 삼켜버렸다.
소녀의 목소리에서 애잔함이 묻어나왔다. 별빛으로 아스러지는 듯한 아련함과 슬픔이 뒤섞여 나왔다.
그리고─
육교라고 생각했던 바닥이 갑자기 흐물흐물해졌다. 그 바닥으로 자신의 발이 움푹 하고 들어가 버렸다. 바닥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오쿠데라의 모습이 노이즈가 가득 낀 TV 화면처럼 흐려졌다. 이내 색을 잃고 이상하게 꾸물꾸물 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점점 흰색 진흙 덩어리 같은 모양이 되어, 잡고 있던 타키의 팔을 집어삼켰다.
푸욱 소리를 내며 다리부터 시작해 몸을 집어삼키는 바닥. 자신의 팔을 움켜쥔 인간 형태의 괴물. 자신을 향해 뭐라 외치는 소녀.
“아…… 으아아악!”
참지 못하고, 타키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 단말마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으헉!”
튕겨 나오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기가 누워있던 바닥을 만져보았다. 다행히, 아주 튼튼한 고체 바닥이었다.
“아으……”
머리를 긁적이면서 억지로 몸서리를 쳐 보았다. 내가 이런 딱딱한 바닥에서 잠이 들다니.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쿠데라 선배가 괴물이 되어서 나를 잡아먹는 꿈이라니. 잠자리가 험해서 그랬나. 꿈 한번 되게 고약하─
“……어?!”
뒤늦게야 풍경을 확인한 타키는 다시 한 번, 숨을 들이키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꿈속에서 봤던 그 다리였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또 꿈속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또 뭐야? 꿈에서 깨어났는데 또 꿈속인 건가? 무슨 영화도 아니고, 꿈이 무한히 반복되기라도 한다는 거야?’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았다. 모든 게 멈춰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신호등은 전원이 꺼져있었다. 주황색 구름이 우뚝 멈춰 있었다. 뿌연 살구 빛 안개가 다리의 양 옆으로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고개를 살짝 내려서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뭔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굉장히 현실감 없는 다리였다. 모양만 시나노마치역 육교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만 제외하면.
다리 밑에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대신, 강물인지 연기인지, 그마저도 아니면 구름인지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황홀경.
고슴도치 머리의 소년은 그 황홀경 속에서 눈을 떴다.
。。。。。。。。。。
미츠하는 그 황홀경에서 눈을 떴다.
“……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마자, 놀란 마음에 숨을 한껏 들이켰다.
이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 왠지 이곳에 온 적이 있는 것만 같다. 아니,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만 같다. 그 때는 이곳을 그저 ‘이상한 다리’로만 여기고 있었지만, 이제는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는 틀림없는 그 장소다.
도쿄의 육교.
도쿄를 하루 종일 헤매다가 멈췄던 바로 그 장소다. 우리가 만났던 그곳이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듯이, 그날의 육교에서의 풍경이 미츠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다리 너머로 보이는 배경이 황홀경이라는 것 정도일까.
그런데……
“……어?”
무게감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돌아온 듯한 무게감이었다.
그 무게감이 느껴진 곳으로 시선을 내려다보았다.
두 개의 언덕처럼 살짝 부풀어 올라 있었다.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보아왔던 손보다는 확실히 작아보였다. 손으로 이어진 팔뚝은 꽤 가늘었다.
복장도 달라져 있었다. 슬슬 익숙해져가던 남성용 파카가 아니었다. 자신은 어느새 여자 교복 셔츠를 입고 있었다. 회색 조끼가 두 개의 언덕을 덮고 있었다.
미츠하는 자신의 복장을 알아보았다. 3년 전의 교복이었다.
이번에는 그 회색 언덕을 검지로 살며시 눌러보았다.
손가락 모양에 맞춰서 언덕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두 개의 언덕을, 양 손으로 힘껏 움켜쥐었다.
앗.
주물러버렸다.
만질수록, 뭔가 뜨거운 게 가슴속에서 솟구친다.
틀림없다. 가슴이다. 여자의 가슴이다.
“돌아왔어……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어……!”
기쁨이 솟구쳤다.
돌아왔다.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 감촉도, 호흡도 전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두 팔로 힘껏 껴안았다. 자신의 몸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여자의 몸이라는 게 이렇게 기쁠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다는 것보다 더욱 기쁜 소식이 미츠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감이 말해준다. 틀림없이 이곳에 있다.
이곳에 있을 그 사람의 이름을 있는 힘껏 외쳤다.
“타키 군─!”
구운─ 구운─ 황홀경 너머로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들렸을 거야. 틀림없이 들었을 거야. 우리는 이어져 있으니까. 다시 이어졌으니까. 너는 여기에 있을 테니까.
우리는 곧, 다시 만날 테니까.
타키 군─!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딘가에서 들려왔는지 모를 그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정작 주위를 둘러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누가 있어─?”
일단 일말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누구야─! 대답이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지? 어느 쪽이지? 하늘 위쪽에서 들려온 것처럼 울려 퍼졌기에 앞쪽인지 뒤쪽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보았다.
순간,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카타와레도키다.’
자기도 모르게 그 단어를 내뱉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뒷모습이 갑자기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기다려!”
다급해진 미츠하도, 그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저 녀석?!
달렸다. 타키는 끊임없이 달렸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일단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보기로 했다.
정말 기가 막힌 다리가 아닐 수 없었다.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뻗어나갔다.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주위의 풍경마저도 그에 발맞춰 녹아서 흐느적대는 치즈마냥 가로로 늘어났다.
점점 이 풍경이 무섭게 느껴졌다. 이게 대체 무슨 꿈이야? 일어나면 온몸이 쑤실 만큼 끔찍한 악몽?
타키 군─ 하고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만 들릴 리가 없잖아. 여기 누가 있는 걸까?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나 좋으니까, 여기서 날 좀 꺼내줘!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타키 군! 잠깐만─!”
미츠하는 그 소년의 뒤를 쫓았다. 아무리 외쳐도 소년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대체, 이 사람은 왜 달리고 있는 걸까.
“거기로 가면…… 거기로 가면 안 돼!”
다급하게 외치며 뒷모습을 쫓았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거기가 아니야. 그쪽으로 가면 안 돼. 거기는─
“타키 군─!”
마침내, 손이 소년의 목깃에 닿았다.
앞으로 쏠려버린 몸이 중심을 잃었다.
두 사람의 몸은 그대로 ‘퍽!’ 소리와 함께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너어어어어!”
겨우 몸을 추스른 미츠하는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짜악!’ 소리가 날 정도로 소년의 뺨을 힘차게 때려버렸다.
“매일 가슴 주물러댄 건 그렇다고 치자! 남의 쿠치카미자케 훔쳐 마신 것도 그렇다고 쳐! 그럼 하다못해 사람 말이라도 들어야 할 거 아니야!”
소년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기……” 소년이 뭔가 대꾸를 하고 싶다는 듯이,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미츠하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디서 부르는지 어떻게 아냐.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소년의 대꾸를 들은 미츠하는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만났는데……” 북받쳐 올랐다. “겨우 만났는데……”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만나야 하는 걸까. 자꾸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 둘을 갈라놓으려고만 하는 것만 같아서, 차라리 아무한테라도 좋으니까 푸념이라도 늘어놓고 싶었다.
그대로, 소년을 껴안았다.
“다행이야…… 살아있어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품에 안겨서 울고 싶었다.
“타키 군이…… 살아있어…… 응…… 타키 군……”
해냈다. 우리는 서로 원래 몸으로 되돌아갔다. 이 사람을 살려냈다.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성취감이 두 눈에서 방울방울 맺혀 뺨을 타고 똑 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어…… 그러니까……”
─너, 누구야?
“……뭐?”
“너, 나를 알아?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나?”
깜짝 놀란 나머지 울음이 뚝 그쳤다.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미츠하가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표정은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라고 묻는 듯한, 이 상황을 아리송하게 여기고 있을 뿐인 표정이었다.
“타키 군……? 기억 안 나니?”
“무슨 기억?”
“정말로 기억 안 나?”
“그러니까 무슨 기억?”
“나잖아, 나!”
“네가 누군데?”
다급하게 소리쳤는데도, 소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네가 먼저 날 구하러 왔잖아!”
미츠하의 마음속에 공포가 엄습했다. 그 공포에 눈이 따가워졌다.
“내가 무슨 구조대도 아니고, 평생 누굴 구하려고 한 기억은 없는데.”
따갑던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귀가 먹먹해졌다. 뭐지? 왜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거지?
“아, 맞아! 실매듭! 내가 너한테 실매듭 줬었잖아!”
“뭘 줬다고?”
“여기, 이렇게─”
미츠하는 소년의 팔목을 낚아채서 들어올렸다. 틀림없어. 분명 있을 거야. 이 팔목에……
……?
아무 것도 없었다.
소년의 팔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하얀 살결 너머로 약간의 핏줄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하잖아. 누군가가 속삭였다.
이미 이 사람은 실매듭을 내 손에 쥐어줬으니까.
“미안한데,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네. 근데, 나 좀 여기서 내보내 주면 안 될까?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야? 너는 누구고?”
소년은 불쾌하다는 듯이 미츠하의 손을 뿌리쳤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지? 왜 기억을 못하지? 설마 이 풍경하고 관련이 있는 걸까? 타키 군의 기억도 이 때로 되돌아가버린 걸까? 근데, 그때는 나를 알고 있었잖아?
─잊어버리고 말았어.
할머니의 그 쓸쓸한 읊조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새하얬던 머릿속이, 이번에는 새빨갛게 타들어갔다.
내가 이 사람을 잊을 뻔했듯이, 이 사람은 나를 천천히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몸이 바뀌었다. 그 뒤로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그나마 잡고 있던 기억의 실마리를 전부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이 사람은 나를 잊었다……?
‘그럼 이제, 나는 이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아냐. 그럴 리 없어.
미츠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가까스로 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 용기로 소년의 팔을 다시 한 번 힘껏 붙잡았다. 소년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자신의 손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손목에 오렌지색 실이 둘둘 둘러져 있었다. 실매듭과 똑같은 색깔의 실이 어딘가로 길게 늘어져있었다. 그 실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오렌지색 실은 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빛과 연결되어 있었다.
기억났다. 이 사람이 내게 이 실을 건네주었기 때문에, 내가 잠시나마 이 사람의 몸에서 살 수 있었다.
이 꿈의 출구는 저 너머에 있다. 이 실이 구명줄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병실에 누워 죽어가는 나를, 그 옆에서 잠들었을 이 사람은 설령 깨어나서도 기억하지 못하리라.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렇다면…….
움켜쥐었던 소년의 팔을 살며시 놓았다.
─어쩔 수 없구나.
미츠하도, 그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니. ‘툭’ 하고 끊어져버린 쪽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나마 남아있는 끈을 손에서 풀어버렸다. 팔에 연결되어 있던 실을,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받아. 이걸 잡고 잠에서 깨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잠에서 깬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몰라도 돼.”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꿈인 걸 다 아는데도 가슴이 두근대면서 숨이 답답해지다니, 정말 생생한 꿈이야. 아니면, 이제 내가 곧 꿈속의 인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일까.
“그리고……”
─나를…… 잊어 줘.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가 누군데 나더러 잊어라 마라야?”
눈앞의 소년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알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라도 내쉬고 싶었다.
“아냐. 아무 것도.”
방금 했던 말도 잊어버려. 무언가가 가슴팍을 헤집듯이 파고들었다. 꾹 참고 이를 악물면서 조용히 미소만 지어보였다. 울음이 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참았다. 혹시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아서, 행여나 이대로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가는 미련이 생길 것만 같아서, 바로 뒤로 돌아버렸다.
뒤를 돌아본 곳에는 끝없이 길게 늘어진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 너머로 진홍빛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저 너머가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라고. 이 길은 내가 원래 걸어가야 했을 길이라고. 나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모든 것은 이 세상에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된다.’
할머니에게 들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나도 역시, 어머니의 딸이구나.
그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해. 내가 있어야 했을 곳은 여기였던 거야.
내가 그걸 자꾸 거스르려고 하는 바람에.
내가 이 길을 걷는 걸 망설이는 바람에.
내가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 하마터면 위험해질 뻔했잖아.
여태까지는 그저, 그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다. 달아나고만 싶었다. 발버둥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그 운명이 이 사람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 나를 붙잡으려고 하고 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목숨과 맞바꾸면서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결국,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서 이렇게까지 ‘살아있다’라는 감정을 느껴 본 적은,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저 정해진 대로, 레일 위를 걷는 것처럼 책무와 집안일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던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짧은 인생이었지만,
너를 만나서, 네가 있었기에, 나는 행복했다.
난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너도 네 행복을 찾으러 가. 나를 잊고 너만의 행복을 찾으러 가면 돼. 너는 나를 잊고 사는 쪽이 더 행복할 거야. 괜히 나에 대해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으면, 그 기억이 평생 너를 괴롭힐 지도 모르잖아.
나는 널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네가 날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 건 조금 아쉽게 됐네.
그러니까, 너와의 추억은 나만의 것으로 남길게.
괜찮아.
내 마음 속에는 영원히 네가 남아 있을 테니까. 네 모습을 언제까지고 기억하면서, 나는 여기에 남을 테니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소년을 향해 미소만 지어보였다.
그래도,
마지막 작별인사만큼은 아름답게 하고 싶었다. 한 마디도 안 하고 돌아서려니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꼭, 행복해야 해. 타키 군.”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그 한 마디의 말만을 남기고,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갔다.
오히려 후련해졌다. 가슴속이 상쾌해졌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껏 들이쉬니 머리도 맑아졌다.
자신이 원래 있어야 했을 곳을 향해, 점점 속도를 내어 걸었다.
감각이 무뎌져간다. 호흡이 멎어간다. 발소리가 사그라진다. 아직도 가슴속에서 한 조각씩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아픔마저도 머지않아 무디어지리라.
그렇게 되뇌면서,
소녀는,
소년에게로부터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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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코멘트]
RE판은 확 이렇게 끝내버리고 싶다
비추 ㅈㅅ;; 실수로 잘못 눌렀네여 ㅠㅠㅠㅠ
그래서 6월달은 언제?
ㄴ 계절학기... 끝나면... 여유가 생길 거에요...
잘 봤습니다 이대로 끝내면 단행본 구매 안 해야겠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잘 보고 갑니자.